2월 22일(음력 1월 10일) - 조선에서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가 천주교 엄금에 관해 하교를 내렸다.그 내용은 “천주교 신자는 인륜을 무너뜨리는 사학(邪學)을 믿는 자들이니,인륜을 위협하는 금수와도 같은 자들이니 마음을 돌이켜 개학하게 하고, 그래도 개전하지 않으면 처벌하라”는 것이다.그러나, 실제의 공격대상은 노론 시파, 소론, 남인에다 왕실인사까지 광범위했다. 이로서
신유박해가 일어났다.
3월 17일 - 천주교 신자임이 밝혀진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며느리 신씨가 사약형을 받았다.
4월 8일 -
이승훈(충청도 예산군에 유배 중이었음)·
정약종·최필공(崔必恭)·최창현(崔昌顯)·홍교만(洪敎萬)·홍낙민(洪樂敏)이 서대문 형장에서 사형되었다.
4월 24일(음력 3월 12일) - 청국인 신부
주문모가 의금부에 '내가 당신들이 찾는 천주교 신부'라며 자수하였다. 그는 황해도 황주로 갔다가 한양으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4월 28일(음력 3월 16일) - 주문모로부터 세례를 받았던 천주교 신자 김건순이 체포되었다.
5월 31일(음력 4월 19일) - 주문모가 한강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6월 1일(음력 4월 20일) - 김건순이 서소문 밖에서 참수당하였다.
6월 13일 -
은언군이 유배지 강화도에서 사약을 받고 사사되었다.
7월 2일(음력 5월 22일) - 강완숙과 자신이 전교한 궁녀들이 함께 서소문에서 참형으로 순교하였다.
10월 4일 - 홍필주가 서소문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1월 5일(음력 9월 29일) - 청나라 북경 주재 구베아 주교에게
신유박해의 사실을 알리고 청나라의 무력에 호소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을 담은 백서(
황사영 백서)를 작성한
황사영이 잡혀 한양으로 끌려올라왔다.
중국 백련교(白蓮敎)의 난 점차 평정됨.
영국이 아일랜드를 병합.
프랑스(나폴레옹)와 오스트리아 간 강화(講和) 성립.
영국이 카나티크를 병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