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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3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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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인직
1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르는 것이라. 점순이가 입에는 꿀을 발랐으나 가슴에는 칼을 품은 사람이라. 나이 어리고 세상도 겪지 못하여 본 춘천집은 점순에게 어떻게 홀렸던지 점순의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만든다 하여도 곧이듣게 되었더라. 그날 밤에 점순이가 전동 김승지 집에 돌아가니 부인이 혼자 앉아서 점순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더라.
 
2
"마님, 쇤네는 도동 갔다 왔습니다."
 
3
"오오, 어서 이야기 좀 하여라. 대체 그년의 인물딱지가 어떠하더냐?"
 
4
"인물은 어찌 그리 어여쁜지요. 사람도 매우 얌전해요. 성품도 대단히 순한 모양입디다."
 
5
"요 배라먹을 년, 주제넘기도 분수가 있지. 네가 춘천집의 얼굴은 보았으니 알려니와, 잠깐 보고 성품이 어떠한지 어찌 그리 자세 아니? 그만두어라 듣기 싫다. 누가 너더러 그런 소리 하라더냐. 너도 벌써 영감처럼 춘천집에게 홀렸나 보구나. 무엇 먹을 것이나 주며 살살 꾀더냐."
 
6
하면서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버썩 난 모양이라. 점순이가 그 부인 앞에서 자라날 때에, 대강이는 자로 얻어맞느라고 마치 돌같이 굳었고 마음은 하루 열두 번씩 핀잔과 꾸지람 듣기에 졸업을 해서 여간 꾸지람을 들어도 들은 듯싶으지 아니한 점순이라. 점순이가 눈을 깜짝깜짝하고 앉았다가 부인의 골을 좀 돋우려고,
 
7
"마님, 춘천마마님은 아들애기를 낳는데 어찌 탐스러운지요."
 
8
부인이 기를 버럭 내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9
"요년, 네 눈에는 그년의 집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좋게만 보이더냐. 꼴 보기 싫다. 내 눈앞에 보이지 말고 네 방으로 나가거라. 나가라 하면 얼른 나갈 일이지. 왜 거기 앉았느냐."
 
10
점순이가 문을 열고 나가더니 마루 끝에 가서 팔짱을 끼고 쪼그리고 앉았거늘, 부인이 한 손으로 촛불을 가리며 미닫이 유리로 내다보다가 미닫이를 열어 젖히면서,
 
11
"요년, 보기 싫다. 왜 똑 마주 보이는 고기 가서 앉았느냐."
 
12
점순이가 행랑으로 나가는데, 마침 김승지가 안중문으로 들어오거늘, 점순이가 다시 돌쳐서서 안뒤꼍으로 살짝 들어가더니 무슨 말을 엿들으려고 안방 뒷문 밖에 숨어 섰더라.
 
13
김승지는 안방으로 들어가다가 그 부인이 좋지 못한 기색으로 외면하고 앉은 것을 보고 또 무슨 성가신 소리나 할까 염려하여, 김승지가 주책없는 말을 횡설수설한다.
 
14
"여보 마누라, 내가 무슨 의논을 좀 할 일이 있소. 이런 일은 나 혼자 처결할 수 없는 일이야. 아마 마누라가 이제 생산은 못 하지…… 불가불 양자를 하여야 할 터인데 마땅한 곳이 없거든."
 
15
하면서 혼자말로 엉벙하고 앉았는데, 부인은 아무 대답이 없더라.
 
16
"여보 마누라, 경필이 둘째 아들을 데려다가 키우면 어떠하겠소. 그 애가 마누라의 마음에는 아니 들지……."
 
17
부인은 고개를 획 두르면서,
 
18
"언제 내 눈에 드는 것을 고르느라고 이때까지 양자를 아니하였소. 영감이 딴 욕심이 있어서 양자를 아니하였지."
 
19
"내가 딴 욕심은 무슨 딴 욕심……."
 
20
"인제는 영감의 욕심챔이 되었으니 양자는 하여 무엇 하시려오. 그렇게 탐스럽게 잘생긴 춘천집의 속에서 낳은 자식을 두고 양자가 다 무엇이야. 자식 없는 나 같은 년만 팔자가 사나웠지. 열 살이 되도록 콧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경필의 둘째 아들은 데려다가 무엇 하게. 나는 자식 없이 이대로 있을 터이야."
 
21
하면서 눈물이 비죽비죽 나니, 김승지는 또 부인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더라.
 
22
춘천집을 보면 춘천집이 불쌍하고, 부인을 보면 부인이 불쌍하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나 지내고 마음이 변하면 여사이나 김승지는 그날 낮 후까지 도동 첩의 집에 갔을 때에 춘천집의 고생하는 모양과 춘천집의 설운 사정 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오장이 슬슬 녹는 듯이 춘천집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 작정한 일이 있었더라.
 
23
무슨 작정인고? 춘천집의 고생하는 모양이 어찌 그리 불쌍하던지 이후에는 마누라의 야단은 고사하고 옥황상제의 벼락이 내리더라도 춘천집 하나는 고생도 아니하고 지기를 펴고 지내도록 하여 주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지 못한 그날 밤에 그 부인이 자식 없는 신세를 말하면서 눈물이 나는 것을 보고, 또 어찌 그리 불쌍하던지 첩인지 무엇인지 다 귀치 아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두 가지 일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더라.
 
24
아까 박참봉이 왔을 때에 세간 궤를 열고 백 석 추수 논문서를 내어 주면서 하는 말이, 이것을 가지고 도동으로 가서 춘천집을 주고 아무쪼록 춘천집이 마음 붙이도록 안심을 시키고 오라 하였는데, 아차 좀 천천히 했더면 좋을 뻔하였다 하는 마음도 있고, 또 춘천집이 자식까지 낳은 터이라 버리기도 난처한 마음이 들어간다.
 
25
"여보 마누라, 그런 말은 뉘게 들었소?"
 
26
다른 날 같으면 부인의 성품에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말을 하였을 터인데, 그날은 무슨 까닭으로 그리 조용하던지 비죽비죽 울면서 목소리도 크게 아니하고 김승지를 돌아다보며,
 
27
"여보, 사람을 그렇게도 속이기요. 참 야속하오."
 
28
"할 말 없소. 내가 생각이 잘못 들어서 그렇게 되었소."
 
29
"영감께서는 꽃 같은 젊은 계집을 두고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고 혼자 호강을 하고 재미를 보실 터이로구려. 나는 나이 사십이나 되어 쪼그라진 것을 영감이 돌아다보시기나 할 터이오. 내가 자식이나 있으면 자식에게나 마음을 붙여 살 터이나, 자식 없는 이년의 팔자는 어찌 될 것인고. 죽어 후생에는 나도 남자나 되었으면…… 말으시오, 말으시오, 그리를 말으시오. 영감은 열세 살, 나는 열네 살에 결발 부부 되었으니,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마음이 변치 않고 살다가 죽은 후에 송장은 한 구덩이로 들어가고 혼은 합독사당에 의지하야 아들 손자 증손 고손의 대까지 받아 먹어도 같이 앉아 받아 먹을 줄 알았더니, 이 몸이 죽기 전에 영감은 춘천집에게 뺏겼소구려. 영감은 돌아가신 후에 춘천집이 낳은 자식에게 따뜻한 제사를 받아 잡수시겠소구려. 에그 설운지고, 이년의 신세는 어찌 될 것인고. 죽어서는 무자귀 될 것이요, 살아서는 소박데기 되겠고나. 무자귀 되는 것은 누구를 한하리까마는 소박데기 되는 것은 영감이 무정하여 그러하지. 영감이 춘천 군수 도임길 떠나시던 날 내가 세수하고 거울을 보고 앉았는데, 영감이 담뱃대를 거꾸로 잡고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담배 물부리를 내 앞 이마로 쓱 들이밀면서 하시는 말이, 이것 보게, 발써 센 털이 났네 하시기로, 내 말이, 영감이 걱정이 되실 것 무엇 있소, 젊은 첩이나 두시구려, 하는 내 말은 진정으로 나온 말은 아니오마는, 그때 영감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소. 영감의 말씀이 늙으면 마누라 혼자 늙소, 젊을 때는 같이 젊고, 늙을 때는 같이 늙고, 고생을 하여도 같이 하고, 호강을 하여도 같이 하지, 내가 설마 마누라가 늙었다고 젊은 계집을 두고 마누라를 고생이야 시키겠소, 하시던 말이 어제 같고 지금 같소. 지금 영감의 몸은 여기 앉았으나 영감의 마음은 도동 춘천집에 가서 계시겠소구려. 속 빈 쇠부처같이 등신만 여기 계시면 쓸데 있소. 가고 싶고 가고 싶은 도동을 못 가시고,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춘천집을 못 보시면, 투기하는 아내만 미운 생각이 들 터이오구려. 한 번 밉고 두 번 미우면 세 번 네 번째는 원수같이 될 터이구려. 원수가 되기 전에 나는 나 혼자 살다가 죽을 터이니, 영감께서는 춘천집이나 데리고 잘 살으시오. 여보, 복 받으리다…… 에그, 내 팔자 이리 될 줄 꿈이나 꾸었을까."
 
30
하면서 앉은 채로 폭 고꾸라지더니 엉엉 울다가 흑흑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아무 소리가 없더라.
 
31
김승지가 그 부인이 설운 사정 말할 때에 무안하고 불쌍도 하고 후회도 나던 차에, 그 부인이 엎드려 울다가 아무 소리 없는 것을 보니 눈이 휘둥그래지며 겁이 펄쩍 나서, 불러도 보고 손으로 흔들어도 보고 두 손으로 어깨를 안고 일으켜도 보는데, 심술에 잔뜩 질린 부인은 정신이 멀쩡하면서 눈을 감고 이를 꽉 악물고 사지를 쭉 뻗어 놀리지 아니하고 있으니, 김승지가 픽픽 울면서,
 
32
"마누라 마누라, 여보, 정신 좀 차리오. 글쎄, 왜 이리하오. 내가 마누라에게 적악을 하여 마누라가 그로 인병 치사할 지경이면, 내가 혼자 살아 있어서 무슨 복을 받겠소. 여보, 눈 좀 떠보오."
 
33
한참 그러할 즈음에 점순이가 튀어들어오더니, 에그, 이것이 웬일인가 하면서 온 집안 사람을 다 불러서, 계집 하인들은 방으로 들어오고 사내 하인들은 안마당에 들어와 섰는데, 그날 밤은 그 모양으로 온 집안에서 잠 한잠 못 자고, 앉아 새는 사람, 서서 새는 사람, 갈팡질팡 다니다가 새는 사람, 그렇게 소요한 중에 부인은 여러 사람에게 불안한 마음이 조금도 없이 흉증을 부리고 그 모양으로 밤을 지냈더라.
 
34
그 이튿날 식전에 김승지는 사랑에 나가서 잠이 들었는데, 동자아치는 밥을 짓고 반비아치는 반찬을 만들고, 그 외의 사람들도 다 각기 저 할 일 하느라고 나갔는데, 안방에 앉았는 사람은 유모와 점순이뿐이라.
 
35
그 집 대문 안에 그중 지각 있는 사람이 누구냐 할 지경이면 유모이라. 본래 김승지의 부인이 삼십이 넘은 후 아들 하나를 낳아서 유모를 두었더니 그 애가 세 살에 죽고, 그 후에는 부인이 자녀간 낳지를 못한지라.
 
36
유모는 그 애 죽던 날부터 제 집으로 가려 하나 김승지의 내외가 붙드는 고로 그때까지 있었더니, 그날 김승지 부인이 하는 경상을 보고 그 집안이 어찌 될지 대강 짐작이 있었더라.
 
37
유모가 점순이를 보며,
 
38
"여보게, 내가 이 댁에 신세도 많이 지고 몇 해를 있어서 바라는 것은 마님께서 애기나 하나 더 낳으실까 하였더니, 마님께서 연세도 많으시고 자녀간에 낳으실지 못 낳으실지 모르는 터에, 내가 이 댁에 있어 쓸데 있나. 나는 오늘일지라도 마님께 하직하고 가겠네."
 
39
점순이가 이 말을 들으면서 눈을 깜짝거리고 앉았다가 생각한즉, 유모가 그 집에 있으면 저 하는 일을 눈치채일 염려가 있는지라.
 
40
"잘 생각하였소. 이 댁에 있어 무엇 하시겠소. 영감께서는 춘천마마님께만 마음이 있으시고 마님께서는 저렇게 심병이 되어 지내시니, 이 집안이 어찌 될는지 알 수가 있소?"
 
41
하는 소리에 부인이 눈을 번쩍 뜨며,
 
42
"이 집이 아니 망할 줄 아나. 내 눈으로 이 기둥뿌리도 아니 남는 것을 보아야 내 속이 시원하겠네."
 
43
하더니 다시 눈을 감고 누웠더라. 그날 그 집 안에는 다 밤새운 사람뿐이라, 너나없이 졸음을 참지 못하여 동자와 찬비 외에는 이 구석 저 구석에 가서 잠들어 자는 사람들뿐인데, 그 중에 지성으로 부인의 앞에 앉았는 것은 점순이라. 부인이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44
"얘 점순아, 이 방에 아무도 없니?"
 
45
"……"
 
46
"그 원수의 년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암만하여도 분하여 못 살겠구나."
 
47
"마님께서 왜 그리하십니까. 다 된 일에 무슨 걱정이 되어서 그리하십니까. 마님께서 이렇게 하시면 어제 하던 일은 헛일이 됩니다."
 
48
"글쎄 어제 일이 어찌 되었느냐? 어제는 춘천집이 자식 났다 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어찌 열이 나던지 너더러 물어 볼 말도 못 물어 보았다."
 
49
"마님께서 쇤네에게 그런 일을 아니 맡기시면 모르거니와 쇤네에게 맡기신 후에야 범연히 하겠습니까."
 
50
하면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연지를 문 듯한 입술을 부인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하는 소리에 부인이 벌떡 일어나며,
 
51
"오냐, 정녕 그렇게만 될 터이면 내가 며칠이든지 참고 잠자코 있으마."
 
52
"에그, 며칠이 무엇이오니까. 그러한 일을 그렇게 급히 서두르면 못씁니다. 며칠 동안이라도 일만 하려 들면 못 할 것이야 무엇 있겠습니까마는, 그렇게 급히 하면 남이 그런 눈치 챌 것이올시다. 만일 그러한 일이 단서가 나고 보면 마님께서야 어떠하시겠습니까마는 쇤네같이 만만한 년만 몹쓸 죽음을 할 터이올시다."
 
53
"이애, 그러면 그 일이 언제쯤 된단 말이냐."
 
54
"그렇게 날 작정, 달 작정을 하실 것이 아니올시다. 하루 이틀 동안이라도 기회만 좋으면 할 것이요, 일 년 이태 동안에도 기회가 좋지 못하면 못 하는 것이올시다."
 
55
"오냐, 걱정 마라. 내 아무리 참기 어려워도 눈 끔쩍 몇 달이든지 몇 해든지 참을 터이니, 네가 감쪽같이 일만 잘하여라."
 
56
하면서 부인은 점순이를 당부하고, 점순이는 부인을 당부한다. 이 방 저 방 이 구석 저 구석에는 사람사람이 잠들어 코고는 소리요, 마루에서는 찬비가 양념 다지는 도마 소리요, 부인은 점순이를 데리고 수군거리는 소리뿐이라. 해가 낮이나 되더니 그 소리 저 소리가 다 그치고 부인은 일어나고 점순이는 행랑으로 나가더라.
【원문】제 1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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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