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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8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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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인직
1
춘천집이 어제는 죽을 마음뿐이더니, 오늘은 박참봉의 말을 듣고 철천한이 되는 마음이 풀어지며 혼자말로,
 
2
"나도 살았다가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죽기 싫은 마음은 사람마다 있는 것이다. 낸들 죽기가 좋아서 죽으려 한 것은 아니라, 김승지 영감에게 정을 두고 먹은 마음대로 될 수가 없는 고로 한을 이기지 못하여 죽으려 한 것이라. 오냐, 죽지 말고 참아 보자. 천리가 있으면 죄 없는 길순이가 만삭한 배를 끌고 우물 귀신 되려는 것을, 하느님이 굽어보고 도와 주지 아니할 이치가 없을 것이라. 우리 영감이 나를 딴 집 배치를 하여 주고, 사흘에 한 번씩만 와서 볼 것 같으면 나는 더 바랄 것도 없고, 한 될 일도 없을 터이야. 박참봉은 나를 언제 보았다고 그렇게 고맙게 구누. 말 한마디를 하여도 내 속이 시원하도록 하니, 어찌하면 남의 사정을 그렇게 자세히 아누. 처음 보아도 반갑고 정숙한 마음이 나서 내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싶으나, 박참봉이 나를 이상히 여길까 염려되어, 속에 있는 말을 다 못 하였으나 우리 영감의 일이나 좀 자세히 물어 보았더면 좋았을걸…… 박참봉이 왜 남자가 되었던고, 누구든지 여편네가 내게 그렇게 정답게 구는 사람이 있어서 평생을 한집안에서 좀 지내 보았으면……."
 
3
그렇게 생각하는 춘천집은 아직 박참봉 집에 있어도 비편한 마음이 별로 없을 듯하나 박참봉은 하루바삐 집을 구하여 춘천집을 보내려 하는 것이 곡절이 있더라.
 
4
박씨가 김승지의 부탁을 허술히 여기는 것도 아니요, 춘천집이 싫어서 하루바삐 배송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 소문이 김승지 부인의 귀에 들어가면, 박참봉이 다시는 김승지 집 문안에 발 그림자도 들여놓을 수가 없는 사정이요, 또 김승지의 부인에게 무슨 망신을 당할는지, 무슨 욕을 먹을는지, 조심되는 마음이 적지 아니한지라. 남녀가 유별하니 재상의 집 부녀가 남의 집 남자에게 욕할 수 없고, 망신시킬 수도 없을 듯하건만 남의 일에 경계되는 일이 있더라. 김승지를 따라서 춘천 책방 갔던 최감찰이라 하는 사람은 춘천 있을 때에 춘천집 혼인 중매 들었다고, 김승지의 부인이 만만한 최감찰만 욕을 하던 차에 최감찰이 사랑에 왔단 말을 듣고, 열이 나서 야단을 치며 하는 말이, 그 못된 뚜쟁이놈이 왜 내 집에 왔단 말이냐. 영감이 돈냥이나 있고 남에게 잘 속는 양반이라, 최감찰이 남의 재물이나 다 속여 뺏어 먹고 남을 망하여 놓고 싶다더냐.
 
5
그 망할 놈 내 집에 다시는 오지 말라 하여라, 하는 서슬에 집안이 발끈 뒤집히며, 안팎이 수근수근하는 소리를 최감찰이 듣고, 다시는 김승지 집에 발길을 들여놓지 아니한 일도 있는데, 박참봉이 만일 그 지경을 당하고 김승지 집에를 못 가면, 박참봉에게는 아쉰 일도 많이 있을 터이라.
 
6
박참봉은 어데든지 인심도 얻고 사면이 다 좋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아무쪼록 소문 없이 일 주선을 하자는 작정이라, 한성병원에서 나서서 계동으로 가는 동안에 그 생각만 하며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데, 강동지가 대문 밖에 혼자 나섰다가 박참봉을 보고 반겨서 하는 말이,
 
7
"나리는 혼자 다니며 애를 쓰시는구려. 그러나 내 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8
"애쓴다 할 것은 무엇 있나. 자네 따님은 한성병원에 가서 있는데 아무 탈 없는 모양이니 염려 말고, 보고 싶거든 가서 보고 오게."
 
9
"아무 탈 없을 것 같으면 가서 볼 것도 없습니다."
 
10
강동지는 그 딸을 가서 보고 싶으나 그 딸이 자수하려는 마음이 다 강동지를 원망하는 마음에서 생긴 줄 아는 고로, 춘천집이 쾌히 안심되기 전에는 가서 보지 아니할 작정이라. 박참봉이 그 눈치를 알고,
 
11
"그렇지, 아무 탈 없는데 가볼 것 무엇 있나. 내가 어떻게 주선하든지 집 구처를 속히 할 터이니, 자네 따님은 이 집으로 다시 올 것 없이 며칠간 병원에 있다가 바로 집에 들게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게."
 
12
하면서 옆을 돌아보니, 김승지 집 종 점순이가 와서 옆에 섰는지라.
 
13
박참봉이 하던 말을 뚝 그치고 강동지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들어가는데, 점순이가 안마당으로 들어가니 박참봉이 그 마누라가 점순에게 속을 뽑힐까 염려하여, 점순이 뒤를 따라 들어가며 실없는 말을 시작한다.
 
14
"너 어찌하여 여기 왔느냐?"
 
15
"댁에는 못 올 데이오니까."
 
16
"너 언제 내 집에 와보았느냐?"
 
17
"전에는 못 왔습니다만 이제는 자주자주 오겠습니다."
 
18
"오냐, 기특하다. 이 담에는 낮에 오지 말고 밤에 오너라. 기다리고 있으마."
 
19
"에그 망측하여라. 누가 나리 뵈러 옵니까, 마마님 뵈러 오지요."
 
20
"나는 마나님커녕 별상님도 없다. 이렇게 늙은 놈에게 또 마마님이니 별상님이니, 그런 것이 있어서 어찌하게."
 
21
"누가 나리 댁 마마님 뵈러 왔습니까. 우리 댁 마마님 뵈러 왔지."
 
22
"이애, 너의 댁 영감께서 첩 두셨단 소문이 있으니 참말이냐."
 
23
"영감마님 심부름하러 온 점순이를 병신으로 알으시네. 어서 마마님 뵙고 가겠습니다. 어느 방에 계십니까?"
 
24
박참봉의 부인은 눈치꾸러기라, 그 남편의 말하는 눈치를 보고 점순이를 대하여 솜씨 있게 생시치미를 떼니, 여우 같은 점순이는 집구경한다 하며, 염치없이 이방 저방을 들여다보다가, 주인마님 외에 여편네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하릴없이 돌아가더라.
 
25
박참봉이 그날로 각처 집주름을 불러서 어떻게 집을 급히 구하였던지, 불과 사오 일이 못 되어 집을 구하였더라.
 
26
욕심덩어리로 생긴 강동지는 경기까투리 같은 박참봉의 꾐에 넘어서, 그 욕심을 조금도 못 채우고, 겨우 서울 오던 부비만 얻어 가지고 춘천으로 내려갔으나, 춘천집이 김승지와 의좋게 산다 하는 소문만 들을 지경이면 그날로 다시 서울 와서 김승지에게 등을 댈 작정인데, 강동지가 춘천으로 내려가면서 그 딸더러 간다는 말도 안 하고 내려갔더라. 춘천집이 그 부친이 서울 있을 때는 야속하니 마니 하였더니, 그 부친이 떠났다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더욱 산란하고 꿈자리만 사납더라.
【원문】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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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직(李人稙) [저자]
 
  1906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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