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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1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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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인직
1
점순이가 행랑으로 나가더니 방문을 펄쩍 열며,
 
2
"여보 순돌 아버지, 이를 어찌한단 말이오. 큰일났소구려. 마님께서 순돌 아버지를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벼르시니 웬일이오."
 
3
"춥다, 문 닫아라. 들어오려거든 들어오고 나가려거든 나가지, 왜 문을 열고 서서 말을 하여."
 
4
"에그, 남의 말은 안 듣고 딴소리만 하네."
 
5
"듣기 싫어, 말은 무슨 말……."
 
6
"나는 모르겠소, 마님께서는 순돌 아버지를 쳐죽인다 내쫓는다 하시는데 어찌하면 저렇게 겁이 없누."
 
7
"영감은 마님을 겁을 내서 벌벌 떨으셔도, 작은돌이는 겁커녕 눈도 끔쩍거리지 아니한다. 누가 김승지 댁 종노릇 안 하면 죽는다더냐."
 
8
점순이가 문을 톡 닫고 아랫목으로 들어오더니 아랫목 불목에 잠들어 누운 어린 자식 포대기 밑으로 두 손을 쏙 집어넣더니 생긋생긋 웃으면서,
 
9
"여보 여보, 순돌 아버지."
 
10
"보기 싫다. 여우같이, 요것이 다 무엇이야."
 
11
"남더러 공연히 욕만 하네."
 
12
"욕이 주먹보다 낫지 아니한가."
 
13
"걸핏하면 주먹만 내세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설마 쳐죽일라구."
 
14
"설마가 다 무엇이야. 너도 마님같이 강짜만 하여 보아라. 한 주먹에 쳐죽일 터이다."
 
15
"강짜는 빌어먹을 년의 강짜를 하고 있어. 나는 순돌 아버지가 다른 계집에게 미쳐서 날뛰는 것을 보면, 나는 다른 서방 얻어 가지 밤낮 게걸게걸하고 있을 망할 년 있나."
 
16
"얘, 그것 참 속시원한 소리를 하는구나. 하느님이 사람 내실 때에 사람은 다 마찬가지지, 남녀가 다를 것이 무엇 있단 말이냐. 네가 행실이 그르면 내가 너를 버리고, 내가 두 계집을 두거든 네가 나를 버리는 일이 옳은 일이다. 두 서방이니 두 계집이니 그까짓 소리도 할 것 없지. 두 내외가 의만 좋으면 평생을 같이 살려니와, 의가 좋지 못하면 하루바삐 갈라서는 것이 제일 편한 일이라. 계집 둘 두는 놈도 망할 놈이요, 시앗 보고 강짜하고 있는 년도 망할 년이라. 요새 개화 세상인 줄 몰랐느냐."
 
17
"여보 요란스럽소, 함부로 하지 마오. 그러나 춘천마마 댁이 어데요? 나도 가서 구경 좀 하겠소."
 
18
하더니 눈웃음치며 작은돌의 어깨 밑으로 머리를 바싹 디민다.
 
19
계집에게 속지 아니한다고 큰소리를 탕탕 하던 작은돌이가, 점순에게 속을 뽑혀서 정신 보퉁이를 송두리째 내어 놓았더라.
 
20
점순이가 경사나 난 듯이 아낙으로 살짝 들어가다가, 안마루에 김승지의 신이 놓인 것을 보고 안 들어가고 도로 돌아나간다. 마침 대문간에 박참봉이 들어오다가 점순이를 보고, 박참봉은 점순이가 춘천집의 뒤를 밟으러 와서 이 방문 열어 보고 저 방문 열어 보고, 요리 기웃 조리 기웃 하던 모양이 생각이 난다.
 
21
점순이는 작은돌에게 당장 들은 말이 있는 고로, 박참봉의 주선으로 춘천집이 남대문 밖에 집을 사서 들었단 말을 낱낱이 알았는지라. 박참봉도 점순이를 유심히 보고, 점순이도 박참봉을 유심히 본다.
 
22
"영감 계시냐?"
 
23
하면서 사랑으로 들어가는데, 점순이가 안으로 돌쳐 들어가더니 안방 미닫이 밖에 서서,
 
24
"사랑에 손님 오셨습니다."
 
25
"오냐, 게 있거라."
 
26
하더니 나갈 생각도 안 하니,
 
27
"계동 박참봉 나리 오셨습니다."
 
28
김승지가 박참봉 왔다는 말을 듣더니 벌떡 일어나 나가더라. 점순이가 안방으로 톡 튀어 들어오더니 부인의 앞으로 살짝 와 앉으며,
 
29
"마님…… 마님께서 암만 그리하시면 쓸데 있습니까. 사람마다 마님만 속이려 드니, 아무리 하면 안 속을 수 있습니까."
 
30
"무엇을…… 점순아 점순아, 무엇을 그리하느냐. 어서 말 좀 하여라. 춘천집이 어데 있는지 알았느냐?"
 
31
"계동 박참봉 나리가 남대문 밖에 집 사주었답니다. 오늘도 영감께서 마마 댁에 가셨는데, 침모도 거기 있답니다."
 
32
부인이 눈이 뚱그래지더니 점순의 앞으로 버썩버썩 다가앉으면서,
 
33
"얘, 내 말이 맞았구나. 저것을 어찌한단 말이냐. 영감께서 침모와 춘천집을 한집에 두고 호강을 하신단 말이냐. 에그, 어떻게 하면 그년들을 쳐죽여서 한 구덩이에 집어넣을꾸……."
 
34
점순이가 그 말을 듣고 상긋 웃으면서,
 
35
"마님……."
 
36
부르더니 다시 말이 없이 또 눈웃음을 친다.
 
37
"응, 무엇을 그러느냐, 무슨 할 말이 있느냐."
 
38
"말씀하면 쓸데 있습니까. 마님께서는 마음이 착하시기만 하셨지, 모진 마음이야 어데 조금인들 있습니까."
 
39
"에그, 네가 내 마음을 아는구나. 내가 말뿐이지 실상 먹은 마음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다 그만두고, 아까 하던 말이나 하자. 글쎄 저년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40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실 일이 있습니까."
 
41
"에그, 요 방정맞은 년, 그것이 다 무슨 소리냐. 그래 그년들이 내게 걱정이 되지 아니한단 말이냐. 요년, 너도 그따위 소리를 하려거든 내 눈앞에 보이지 말아라."
 
42
"에그, 마님께서는 말씀을 어떻게 들으시고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네. 쇤네가 설마 마님께 해로운 말씀이야 하겠습니까. 마님께서 쇤네 말을 자세히 들으시지 아니하니, 어데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까."
 
43
"오냐, 네가 횡설수설하는 소리 없이, 춘천집과 침모를 어떻게 조처할 말만 하려무나. 내 자세히 듣지 아니할 리가 있겠느냐. 그래 무슨 말이냐. 어서 좀 하여라."
 
44
점순이가 가장 제가 젠 체하고 말을 얼른 하지 아니하더니, 본래 잘 웃는 눈웃음을 한번 다시 웃으면서,
 
45
"마님, 마님께서 쇤네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46
"요년아, 무슨 말이든지 얼른 하려무나. 내게 유익한 말이면, 무슨 말을 안 듣겠느냐."
 
47
"마님께서 저렇게 심려하실 것 무엇 있습니까. 마마님이든지 침모이든지 다 죽고 없으면 마님께서 걱정이 없으실 터이지요."
 
48
"이애, 그를 다 이를 말이냐. 그러나 그년들이 새파랗게 젊은 년들인데 죽기는 언제 죽는단 말이냐? 그년들이 도리어 내 약과를 먹으려 드는 년들이다. 약과뿐이라더냐. 내 눈만 꺼지면, 그년들이 이 집 기둥뿌리를 빼놓을 년들이다."
 
49
"그렇기로 첩을 두면 집이 망하느니 흥하느니 하는 것이, 다 그 까닭이 아니오니까."
 
50
"아무렴, 그렇기를 다 이르겠느냐.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도 네 말을 들으면 속이 좀 시원하다. 그러나 저년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지금으로 내가 교군을 타고 그년의 집에 가서 방맹이로 춘천집과 침모년의 대강이를 깨뜨려 놓고 싶다. 박참봉인가 무엇인가 그 망할 놈은, 왜 남의 집에 다니면서 남의 집을 망하야 놓으려 한다더냐. 그 망할 놈 다시 내 집에 오지 말라 하여라. 얘, 점순아……."
 
51
하면서 하던 말을 다시 하고 묻던 말을 또 묻는데, 속에서 열이 길길이 오르는 마음에 벌써 큰 야단이 났을 터이나, 점순이 입에서 부인의 마음에 드는 소리만 나오는 고로 그 말 들을 동안은 괴괴하였거니와, 그 말만 뚝 그칠 지경이면 부인의 야단이 시작될 모양이라.
 
52
서창에 지는 해가 눈이 부시도록 비추었는데, 창 밖에 지나가는 그림자는 날아드는 저녁 까치라. 서창을 마주앉아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주둥이를 딱딱 벌리면서, 깟깟, 깟깟깟, 짖거늘 구기 잘하기로는 장안 여편네 중 제일 가는, 전동 김승지의 부인이 시앗이니 무엇이니 하고 지향을 못 하는 중에, 저녁 까치 소리를 듣고 근심이 버썩 늘었더라.
 
53
"에그, 조 방정맞은 저녁 까치는 왜 남의 창 밖에 와서 짖누. 조년의 저녁 까치가 짖으면, 기어이 고약한 일이 생기더라. 내가 처음에 시앗 보았다는 소문을 듣던 날도 똑 요만 때에 까치 한 마리가 저기 앉아서 짖더니, 춘천집인가 무엇인가 그 못된 년이 생겼지. 얘 점순아, 어서 나가서 조 까치 좀 쫓아다구. 에그 요년아, 무엇을 그리 꿈적거리고 있느냐. 너는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왜 몸이 그리 무거우냐. 또 자식 배었으냐. 에그 고년, 뒷문으로 나갔으면 쉬울 터인데 왜 앞문으로 돌아 나가누. 조 까치 자꾸 짖는데 그만두어라. 내가 쫓으마. 수어―"
 
54
소리를 지르면서 서창 미닫이를 드윽 열어 젖히니, 까치가 펄쩍 날아 공중에 높이 떠서 남산을 향하고 살같이 날아가더니 연소정 산비탈로 내려간다.
 
55
부인은 까치만 보고 섰다가 까치는 안 보이는데 정신없이 먼산을 보고 섰다. 안방 지게문으로 나가던 점순이는 안마당 안부엌으로 휘돌아서 안뒤꼍으로 나가다가 나는 까치 지는 곳을 보더니,
 
56
"에그, 고 까치는 이상도 하지. 이 댁을 다녀서 춘천마마 댁으로 가나베…… 마님 마님, 저 까치 날아가는 곳이 마마님 있는 도동이올시다."
 
57
"아따, 그년 사는 동내 근처만 바라보아도 사람이 열이 나서 못살겠고나. 어찌하면 그 동내가 오늘 밤 내로 땅이 쑥 두루 빠져서 없어질꼬."
 
58
"에그, 마님께서 허구한 세월에 저렇게 속을 썩이시고 어떻게 견디시나."
 
59
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치마끈을 물어다가 눈물도 아니 나는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이 눈도 비비고 저 눈도 비벼서 두 눈이 발개지도록 비비더니, 가장 눈물이나 났던 체하고 고개를 반짝 들어 부인을 쳐다보며 앞으로 바싹 들어오더니,
 
60
"마님, 쇤네는 오늘 밤일지라도 물에나 빠져 죽든지 달아나든지 하지, 하루라도 이 댁에 있고 싶지 아니합니다."
 
61
"요 쳐죽여 놓을 년, 고것은 다 무슨 소리냐. 내가 네게 심하게 굴어서 살 수가 없단 말이냐. 요년, 네가 어데로 달아나…… 오냐, 네 재주껏 달아나 보아라. 하늘로 올라가지는 못할 터이니, 어데로 가면 못 붙들겠느냐. 붙들려만 보아라. 대매에 쳐죽일 터이다."
 
62
"누가 마님을 싫어서 죽고 싶다 하는 말씀이오니까. 아낙에 들어왔다가 마님께서 저렇게 근심하시는 것을 보면, 쇤네는 아무 경황이 없습니다. 오늘 밤일지라도 춘천마마님이 죽고 없으면, 쇤네는 냉수만 먹고 살아도 살이 찌겠습니다. 마님께서 쇤네 말씀대로 하시면 아무 걱정 없으실 터이지마는……."
 
63
하면서 먼산으로 고개를 돌이키니,
 
64
"얘, 무슨 말이냐. 어데 좀 들어 보자. 춥다, 거기 서서 그러하지 말고 방으로 들어 와서 말 좀 자세히 하여라."
 
65
점순이가 팔짱을 끼고 흔들거리고 안방으로 들어오더니, 안방 아랫간 웃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인의 얼굴을 말끄름 쳐다본다.
 
66
"얘, 점순아, 나는 그만 죽고 싶은 마음만 나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67
"마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쇤네는 아무 경황 없습니다. 에그머니, 그 원수의 춘천마마님 하나 때문에 온 집안이 이렇게 난리 필 줄 누가 알았을까."
 
68
"아니꼽다. 그까짓 년을 마마님이니 별상님이니 내 앞에서는 그런 소리 말아라. 네나 그년이나 상년은 마찬가지지. 이후에는 마마님이라고 말고, 춘천집이라고 하든지 강동지 딸년이라고 하든지 그렇게 말하여라."
 
69
"영감마님을 뵈온들 쇤네 도리에 그렇게 말씀할 수야 있습니까…… 마님…… 마님 소원을 풀어 드릴 터이니 마님께서 춘천마마의 일을 쇤네에게 맡기시겠습니까."
 
70
"오냐, 좋은 도리가 있으면 맡기다뿐이겠느냐. 나는 쪽박을 차더라도 시앗만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71
"그런들 재물 없이야 어찌 삽니까."
 
72
"재물이 다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재물도 성가시다. 영감께서 돈만 없어 보아라. 어떤 빌어먹을 년이 영감께 오겠느냐. 영감이 인물이 남보다 잘나셨느냐, 말을 남보다 잘하시느냐. 어떤 년이 무엇을 보고 영감께 와…… 돈 하나 바라고 오지…… 선대감 살으셨을 때는 재물도 많더니라만, 선대감 돌아가신 후에 영감께서 계집에게 죄 디밀고 무엇 있는 줄 아느냐. 내포서 올라오는 추수섬하고, 황해도 연산서 오는 추수 외에 무엇 있다더냐. 내가 잠자코만 있으면, 며칠 못 되어서 춘천집에게로 죄 디밀고 무엇 남을 줄 아느냐. 그 원수의 침모년도 영감의 돈 냄새를 맡고 달라붙은 것이다. 영감은 그 나머지 재물을 죄 까불어야 다시는 계집에게 눈을 뜨지 아니하실 터이다. 세상 사람이 다 재물이 좋다 하더라도, 나는 좋은 줄 모르겠다."
 
73
"마님께서는 이때까지 고생을 모르고 지내신 고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사람이 재물 없이 어떻게 삽니까."
 
74
"그런 말 마라. 세상에 고생치고 시앗 두고 근심하는 고생 같은 고생이 또 어데 있겠느냐. 나는 시앗만 없으면 돈 한푼 없더라도 아무 근심 없겠다. 내 손으로 바느질 품을 팔아 먹더라도, 영감과 나와 단 두 식구야 어떻게 못 살겠느냐. 내가 자식이 있느냐, 어데 마음 붙일 데가 있느냐, 영감 한 분뿐이지……."
 
75
"그럴 터이면 마님께서 돈을 많이 쓰시면, 춘천마마님과 침모를 죽일 도리가 있습니다."
 
76
하면서 부인의 귀에 소곤소곤하는 대로 부인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이 떡 벌어졌더라.
【원문】제 1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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