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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鬼(귀)의 聲(성) ◈
◇ 제 19 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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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이인직
1
관왕묘 앞마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일시에 헤어지고 그 마당이 다시 적적한데, 그 적적한 틈을 타서 관왕묘 홍문 앞에서 빙빙 돌던 남자는 점순의 행랑방에로 서슴지 아니하고 쑥 들어간다.
 
2
점순이가 그 남자의 신을 얼른 집어 방 안에로 들여놓고 방문을 톡 닫으며,
 
3
"여보, 거기 좀 앉아 기다리시오. 내가 아낙에 들어가서 저녁 진지 치르고 나오리다."
 
4
하더니 안에로 들어가서 저녁 밥상을 차리는데, 춘천집이 심지가 좋지 못하여 저녁밥을 아니 먹겠다 하는 소리를 듣고 다행히 여겨서 차리던 밥상을 치워 놓고 행랑에로 나가서 방문을 펄쩍 열고 들어가며,
 
5
"여보 최서방, 내 재주 좋지. 벌써 저녁 치르고 설거지 다 하였소. 에그 참 설거지하기 싫은데, 우리는 이따가 장국밥이나 먹으러 나갑시다. 그러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오?"
 
6
"벌써 정한 일을 인제 와서 어떻게라니……."
 
7
"아니오,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의논한 일이 다 틀렸기에 말이오."
 
8
"응, 틀리다니?"
 
9
"침모가 오늘 별안간에 저의 집에로 갔소구려."
 
10
"침모가 없으면 무슨 일 못 하나?"
 
11
"못 할 것이야 무엇 있소."
 
12
"그러면……."
 
13
"요새같이 밝은 세상에 사람을 죽이고 흔적 없이 감추려 하면 쉬울 수가 있소. 침모는 우리 댁 영감께 귀염을 받는 사람인 고로 침모를 꾀어서 춘천마마님을 죽이면 영감 하나는 감쪽같이 속이기가 쉬울 터인데……."
 
14
"아따, 순돌 어머니 말은 알 수가 없는 말이오구려. 김승지 댁 마님은 침모까지 죽여 달라 하는데 침모를 꾀어서 춘천집을 죽이고 침모는 살려 두면 그것은 언제 또 죽인단 말이오. 나 하라는 대로만 하였으면 그까짓 것들을 하룻밤 내로 다 없애 버렸을 것을, 순돌 어머니가 무엇을 한단 말이오. 그러할 것 없이 지금일지라도 춘천집 모자를 죽여 버립시다."
 
15
"글쎄 침모가 그 일을 알고 있는 터에 말이나 아니 낼는지 그것이 조심도 되고, 또 오늘 침모가 저의 집으로 가는데 별안간 그런 일이 있으면 이 동내 사람이 의심이나 아니할는지……."
 
16
"무슨 일을 하면 하고 말면 말지, 벌써 일 년이나 두고 경영만 하다가 이제 와서 그것이 다 무슨 소리요. 그렇게 일을 하여서 무엇이 되겠소. 나는 순돌 어머니만 바라고 있다가 큰 낭패 하겠소. 여보, 그만두오. 나는 다시 순돌 어머니 믿고 오지 아니할 터이오."
 
17
하면서 벌떡 일어서서 나가려 하니,
 
18
"응, 잘 가는구. 다시 아니 올 것같이. 어데 반한 곳이 있어서 핑계 좋게 나를 떼어 버리려고 그리하는 것이로구."
 
19
하면서 상긋상긋 웃고 앉았더라. 최가가 일어설 때에 참 가려는 마음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점순이가 붙들고 만류할 줄 알았더니 만류를 아니하는 것을 보고, 도로 앉기도 열적고 갈 마음도 없는 터이라 주저주저하다가 딱 서서 하는 말이,
 
20
"글쎄 우리가 김승지 댁 마님 돈을 여간 없앴소. 그러나 지나간 일은 어떠하든지 이 앞일은 헐후히 하여서는 못씁니다. 우리가 마님 소원대로 하면 마님이 우리 소원대로 어떻게 하여 준다 합더니까?"
 
21
"장 들으면서 무엇을 새삼스럽게 또 물어."
 
22
"아니, 내가 자세히 물어 볼 일이 있소."
 
23
"말을 하려거든 앉아서 하구려. 온 동내가 다 들리라고 왜 서서 그리하오."
 
24
최가가 핑계 좋게 다시 주저앉으며 가슴 앞을 훔척하더니 지궐련 한 개를 집어 내서 붙여 물고 점순의 앞으로 버썩 다가앉으며,
 
25
"자, 이만하면 옆에 쥐도 못 알아듣게 말할 터이니 좀 자세 하오."
 
26
점순이가 본래 눈웃음을 웃으면 사람의 오장이 녹을 만치 웃는 눈웃음이라. 그 솜씨 있는 눈웃음을 상그레 웃으면서 얼굴이 복숭아꽃같이 붉어진다.
 
27
"이애, 요새 얼굴 좋았구나. 연지분을 발랐니?"
 
28
"남더러 해라는 왜 하여. 염체없이……."
 
29
"요 얌체없는 것. 네가 남이냐?"
 
30
"그럼, 남이지 무엇인가? 이편 계집 될 사람으로 알 것 같으면 걸핏하면 가느니 오느니 할라구. 본마누라 떼버리고 나하고 산다는 말도 다 거짓말인 줄 알아."
 
31
"얘, 그것은 염려 마라. 내가 간다 하니 우리 마누라에게 간다는 줄 알았더냐. 없다. 내가 여기 아니 오면 술잔 먹고 친구의 사랑에서 잘지언정, 요새는 우리집에서 자본 적이 없다. 어제도 우리 장모를 보고 내가 그 말 다 하였다. 딸을 데려다가 보낼 곳 있거든 보내라구…… 아따, 우리 장모가 그 말을 듣더니 죽겠다고 넋두리를 하는데 썩 대단하데…… 그러한데 순돌 어머니는 남의 속은 모르고 생으로 남의 애매한 말만 하니 딱한 일이야. 우리가 내외 될 언약이 있은 후에야 범연할 리가 있나. 순돌 어머니가 일 결말을 벌써 냈으면 우리 마음대로 될 터인데, 일 년이나 되도록 일을 끌어 가니 웬일인지."
 
32
"내 마음은 더 바쁜데."
 
33
"그래, 대관절 김승지 댁 마님이 우리 일은 어떻게 하여 준다던가?"
 
34
점순이가 상긋 웃으며 최가의 얼굴을 말끄러미 보다가,
 
35
"우리 일은 걱정 없어. 우리 댁 마님이 영감을 꾀어서 할 일은 다 하였다오."
 
36
"꼬이기를 어떻게 하였으며, 할 일은 어떻게 하였단 말이냐?"
 
37
"내가 거북애기를 젖 먹였다고 그 공로로 속량하여 주고, 최서방의 이름으로 황해도 연안 있는 전장 마름 차접까지 내어 놓았다오. 그 전장은 내 손에 한번 들어오면 내 것 되고 말걸……."
 
38
"우리 둘의 일을 마님만 아시는 줄 알았더니 그 영감도 알으시나. 이애, 무슨 일을 서슴다가는 아무것도 아니 될 터이니, 지금 내로 춘천마마를 죽여 없애세."
 
39
"그러나 어떻게 죽이면 좋겠소?"
 
40
"오늘 아침에 순돌 어머니 말이, 춘천집을 아편이나 많이 먹여 놓고 방 안에 석유나 많이 들이붓고 불이나 지르고, 어린애는 그 속에 집어던지고, 순돌 어머니는 마당에 서서 불이야 불이야 소리만 지른다더니, 왜 또 딴소리를 하여."
 
41
최가가 점순이더러 하오도 하다가 해라도 하다가 반말도 하는데, 어찌 보면 점순이를 잡것 놀리듯 하는 것 같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점순이를 집어삼킬 것같이 귀애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점순이는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아무 소리 없이 앉았는데, 최가는 갑갑증이 나서 점순의 앞으로 한번 더 다가앉으며 재촉한다.
 
42
"얘, 아편은 다 무엇이냐. 내가 안방에 들어가서 춘천집을 끽 소리도 못 하게 죽일 터이니, 너는 석유 한 통만 가져다가 안방에 들이부어라. 그리하고 불을 지르면, 누구든지 이 집에 불이 나서 춘천집이 타 죽은 줄로 알지 누가 죽인 줄로 알겠나."
 
43
점순이는 의구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앉았고, 최가는 시각을 참지 못할 것같이 재촉을 한다.
 
44
최가가 춘천집을 그렇게 급히 죽이려는 것은 춘천집을 미워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춘천집 모자를 죽이면 수가 날 일이 있는 곡절이요, 점순이가 대답도 얼른 아니하고 앉았는 것은 춘천집을 죽이기가 싫어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밤 내로 춘천집 모자를 죽이고 집에 불지른다는 꾀를 침모가 다 아는 고로 침모의 입에서 말이 날까 염려하여 그리하는 것이다.
 
45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최가는 재촉을 버썩 하고 있는데, 꾀 많은 점순이도 어찌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치 못하다가 무슨 좋은 도리가 있던지 최가를 치어다보며,
 
46
"여보, 최서방도 퍽 급한 성품이오. 무슨 재촉을 그렇게 하오."
 
47
"급하지 아니하면…… 무슨 일이 일 년을 끌다가 오늘은 무슨 결말이 난 줄 알았더니, 오늘도 또 결말이 아니 난단 말인가?"
 
48
"가만 있소. 이왕 참는 김에 내년 봄에 날 따뜻할 때까지만 기다리시오. 그러면 좋은 도리가 있소. 그러나 그때는 최서방이 그 일을 전담하여 맡지 아니하면 일이 아니 될 터이오."
【원문】제 1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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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