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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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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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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본관 사또 생신이라 하여 아침부터 인근 각읍 수령 이 모여드느라고 남원 읍내가 들끓는데 난데 없는 망건 장 사 파립 장사 황화 장사 거지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어 옥문 앞으로, 광한루로, 삼문 앞으로 기웃기웃 돌아 다니기를 시 작하더니 오시가 지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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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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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오늘 수상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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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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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지들이 예사 거지가 아닌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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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무슨 일이 나고야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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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남원 읍내 사람들이 이 구석에선도 두런두런 저 구석 에선도 두런두런 귀에 대로 수군수군 끔적끔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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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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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몽룡이 춘향이가 백 번 당부하던 옥문 밖으로 가지 도 안하고 삼문 밖으로 슬슬 들어가니 잔치가 어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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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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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같은 구름 차일 덩그렇게 높이 치고, 동헌 대청에는 수병풍 모란병 각색 병풍 들어차고, 화문지의홍등매(花紋地 衣紅登每)에, 만화 방석 총전보료 뭉고전담 요를 깔고서, 초 롱, 약각등, 유리등, 세옥주(細玉珠)를 홍목 으로 줄을 하여, 석가래 수대로 총총히 걸어 놓았으니, 밤 깊도록 놀자는 뜻 이요. 샛별 같은 요강, 타구며 와룡 촛대 여기저기 벌여 놓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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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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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상에는 부사, 현감, 당한에는 만호(萬戶), 별장(別莊), 그 중에는 임실 현감(任實縣監), 구례현감(求禮縣監) 운봉영장 (雲峰營將)도 섰여 있다. 이 모양으로 인근 읍 수령들이 청 천에 구름 모이듯, 용문산(龍門山)에 안개 모이듯 사방으로 모여들어, 차례로 벌여 앉으니, 위풍이 늠름하고 호령이 숙 숙하다. 아이 기생은 녹의 홍상, 어른 기생은 쾌자 전립으로 거북 같은 거문고를 무릎 위에 비껴 놓고 섬섬옥수로 이 줄 저 줄을 희롱하며, 옥같이 맑은 소리를 길게 가늘게, 끊이락 이으락 뽑고 구울려 후정화(後庭花)를 부르니, 풍류도 좋을 시고. 거문고 가야금 양금 생황 삼현(三絃) 육각(六角) 소리 가 반공에 이러었다. 남창에는 거문고요, 여창에는 육각이 다. 중한잎 잦은 한잎은 높은 하늘 너른 바다에 물구름 흐 르는 격이요. 후정화(後庭花) 시조(時調)는 부드러운 봄바람 에 꽃피어 무르녹는 격이요. 소용이(蘇聳耳) 편(編) 낙(樂) 은 모진 바람 재 오친 비에 제비 떼 빗껴나는 격이다. 노래 일편 대바침에 잡가 시조 모두 부르고 입춤 검무(劍舞) 연풍 대(宴豊臺)는 퇴상 후에 보기로 하고, 수파련다담상(水波蓮 茶談床)이 나오니 장진주(將進酒) 노래와 어울러 포도 미주 좋은 술이 순배가 바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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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몽룡은 때 끼인 얼굴에 길인 행색으로 차리고 삼문 안으로 주적주적 들어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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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사령들아 멀리 있는 걸객이 좋은 잔치 만났으 니 술잔이나 얻어 먹자 들어온다고 자상에 아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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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진퇴하여 가까이 오니 좌상에 앉은 수령들이 호령하 여 분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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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원 무엇이니 바삐 잡아 내떠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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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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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영이니 지체하랴. 뭇사령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등 밀 거니 배 밀거니 팔도 잡고 다리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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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네야 아무 소리맙소. 요란하이 이 분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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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몽룡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도 듣지 아니하고, 오줌 젖은 상단지 걸음으로 배추 밭에 개똥처럼 삼문 밖으로 밀 어 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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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하릴없이 문밖으로 쫓겨 나오니, 보던 사람들이 모 두 좋아라고 웃는다. 이리로 저리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 어갈 틈을 엿보는 흔금이 엄밀하고 슬슬 보아 아무리하여도 들어갈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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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할 수 없이 슬슬 뒷문으로 돌아가 지적지적하더니 문을 보던 하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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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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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몽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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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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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보아하니 일 없는 사람인 듯하니 우리 잠깐 입시하 고 올 것이니 문좀 보아 주오. 아무라도 들어가려 하거든 이 채찍으로 먹여 주오. 문만 착실히 보아 주면 간친 파한 후에 술잔이나 먹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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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다행히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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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랑 염려를 아주 놓고 가라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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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채찍을 받아 들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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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사령들에게서 받은 채찍을 들고, 문에 서서 어정어 정할 때에 한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서 낌새를 보느라고 기 웃기웃하며, 몽룡의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저만치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사람만 들어가면 자기네도 들어가 볼 양으로 발들을 내 놓았다 들여 놓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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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들었던 채찍을 문에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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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 낌 좋은 판이니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섰는 분 들도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있는 아이들도 내 알 것이니 모두 들어가 구경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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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맘대로 문을 터 놓으니 마치 부문(赴門)하는 선배처럼 뭉게뭉게 뒤끌어서 문인 메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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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도 그 틈에 섞여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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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잘 들어온다—에라 한 모퉁이 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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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보계판(步階板)으로 부쩍부쩍 올라가니 과중 수령들이 들었던 술잔을 놓고, 거 원 이게 무엇이니? 바삐 몰아 내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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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그 중에 운보영장(雲峰營將)이 마 의상서(麻衣相誓)권이나 보고 또 나이도 지긋하여, 지인지감 이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다. 곁눈으로 몽룡을 살펴보니, 행색은 허술할 망정 면방안활(面方雁闊)하고 미장목수(眉長 目受)하고 이곽(耳廓)이 돈후(敦厚)하고 준두(準頭)는 융기 (隆起)하고 성음(聲音)이 청장(淸狀)하되, 언불요순(言不搖 脣)하고 소불로치(笑不露齒)하고, 인중(人中)이 길고, 천정 (天庭)이 윤택하고, 산근후(山謹厚) 창고만(倉庫萬)이요, 삼 정(三停)이 균정(均整)하고, 오악(五岳)이 구전하며, 언간청 원(言艱淸遠)하고, 좌단침정(座端沈檉)하고 법령엄장(法令嚴 壯)하고, 장벽방후(墻壁方厚)한데, 연견(鳶肩)에 화색(火色)하 니 삼십정승(三十政丞)이요, 명주출해(明珠出海)하니 팔십태 사(八十太師)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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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이 본관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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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그 분을 보아하니 의복이 비록 남루하나 양반 인가 싶으니 좌석을 같이함이 어떠하오? 시속에 상한(常漢) 들이 양반을 세웁니까 우리네가 양반 대접을 아니 하고 누 가 한단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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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본관이 가타 부타 대답도 있기 전에 몽룡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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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반 이리 앉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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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말석에 자리를 권하니 몽룡이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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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야 양반이로고 동시 양반을 아끼니 운봉이 과시 사람 을 아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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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서슴치 않고 호기 있게 운봉이 권하는 자리도 마다하 고, 부적부적 상좌로 올라가서 본관의 곁에 끼어 앉아 진똥 묻은 다리를 그 앞에 펴벌리니 본관이 혀를 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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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도 눈이 있다 다리를 뻗는닥게—. 도로 오그리요—허허 운봉도 야릇하것다. 거 원 무엇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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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고개를 돌리니 몽룡이 점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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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북하여 그러하오? 내 다리는 뻗기는 용이하여도 오그 리기는 과연 극난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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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대로 앉았으나 아무도 권하는 이는 없고, 자기네 들만 먹고 앉았으니 몽룡이 소리를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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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에 말씀 올라가오. 잘나가는 걸객으로 공복(空腹)이 자심하니 요기를 시켜 보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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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수령들은 모두 눈쌀을 찌푸리고 유독 운봉장이 하 인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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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상 하나 이 양반께 받자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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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이윽고 귀신 다 된 아이놈이 상 하나를 들어다 몽룡 의 코 앞에 대고 눈알을 구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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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아프니 어서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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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반말거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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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상을 받아 들고 살펴보니, 다른 사람 앞에는 모조 리 열명이 들어붙어도 다 못 먹을리 만큼 산해진미를 갖추 갖추 놓았는데, 이 상에는 뜯어 먹던 가리 한 대, 대추 세 개, 밤 두 낱, 소금 한 줌, 장종자에 저리침 채 한 보시기, 이빠진 사발에 탁주 한 사발을 덩그렇게 놓았으니, 남의 상 보고 내 상을 보니 없던 심장도 절로 나서, 실수하여 엎지 르는 체하고 한복판을 뒤집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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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이 노릇 보아라! 먹을 복이 못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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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두 소매와 옷자락으로 엎친 모주를 묻혔다가 좌우벽 에 뿌리는 체하고 만좌 수령에게 함부로 대고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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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들이 모주 방울을 피하노라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 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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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고. 미친 손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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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다 뿌리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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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통으로 묻힌 내 옷도 있소. 약간 튀는 것이야 글로 관 계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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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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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이 민망하여 자기 받았던 상을 몽룡 앞에 밀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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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상을 받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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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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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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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말고 어서 자시오. 내 상은 또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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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운봉이 권하는 상을 받아 제 상같이 앞에 놓고 또 트집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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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 여보아라. 상좌에 말씀 한 마디 올라가오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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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만히 보니 어떤 데는 기생하여 권주가로 술을 드리고 어떤 데는 기생 권주가는 말고 떠꺼머리 아이하여 얼렁얼렁 하니 대체 어찌한 일인지......대체 술이라 하는 것은 권주가 가 없으면 무맛이니 기생 중에 똑똑한 것으로 좀 나려 보내 시면 술 한 잔 부어 먹읍시다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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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본관이 심히 못마땅하여 관자놀이가 불룩불룩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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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면 어량(於量)에 족의(足矣)여든 또 기생 암질러 허—고이한 손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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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본관을 노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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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어찐 말이요. 나는 기생 권주가 하나 못 들을 사람 이란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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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드는 것을 보고 운봉이 곁에 있던 기생 하나를 불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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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 양반 술 부어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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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귀찮아 하는 듯이 이마를 찡기고 몽룡의 곁으로 가 서 술을 부어들고 외면하고 앉으며 몽룡이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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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다! 권주가 할 줄 알거든 하나 하여서 나를 호사시 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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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외면한 대로 입을 비쭉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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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노릇은 못하겠다. 비렁방이도 술 부어라, 권주가까 지 하라니 권주가 없으면 술이 줄닥이에 아니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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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쫑알거리고 나서 그래도 마지못하여 권주가라고 한다 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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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우 먹우 먹으시오. 이 술 한 잔 먹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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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다 듣지도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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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요년 네 권주가 본이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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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 권주가는 응당 그러하냐. 잡수시오 말은 생심도 못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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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 몽룡을 흘겨보고 독을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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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망측해라. 갖추갖추 성가시게도 구네, 그럼 잘 하오 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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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권주가를 다시 부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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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박이시오. 처박이시오. 꿀떡꿀떡 처들여 박이시오. 이 술 한잔 처박이시면 만년 거지될 것이니 어서 어서 들이지 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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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술잔을 몽룡의 코 끝에 내어 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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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받으오—팔 아프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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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몽룡이 이윽히 그 기생을 뚫어지게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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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라 요년 앗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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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술을 받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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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몽룡은 음식상을 다가 놓고 주린 판에 비위가 열려 순식간에 한 알 안 남겨 놓고 다 모두 휘 몰아 들이고, 이 빨 사이를 쪽쪽 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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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팔일에 등 올라가듯 상좌에 말씀 하나 올라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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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잘 먹었소마는 또 괘씸한 입이 싱거워 못 견디겠으 니 저 초록 저고리에 다홍 치마 입은 동기(童妓)좀 내려 보 내시면 호사하는 판에 담배까지 한 대 붙여 먹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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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운봉 영장은 또 무슨 트집이 날까 보아 다른 사람이 무슨 말하기 전에 그 동기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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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여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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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분부하시니 그 동기 샐쭉하여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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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수컷이라고 제반 악증의 소리가 나오네—운봉 안 전은 분부 한 몫을 모두 맡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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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짜증을 내고 몰룡의 곁에 와서 불쑥 손을 내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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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 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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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몽룡이 골통대를 내어 주니 기생 담배를 아무렇게나 부스러뜨려 입담배를 가루 담배로 만들어 두어 모금 빨아 붙여 몽룡을 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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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소 잡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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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어나 가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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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의 곁에 있는 것이 싫어서 일어나 다른 데로 가려는 것을 몽룡이 굳이 손을 붙잡고, 희롱하고 앉았더니 이윽하 여 몽룡의 뱃 속에서 벼란간에 이륙좌기(二六坐起)하는 노래 같이 똥땅 주루룩 탁탁 하는 별별 소리가 나며, 창자굽이가 꿈틀꿈틀하며 방귀가 나오려고 구멍을 내려 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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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발뒤축으로 잔뜩 고여 기운을 모았다가 슬며시 터 놓으니 부시시 하고 그저 뭇대어 연해 나오는 방귀가 온 동 헌에 다 퍼진다. 그 냄새가 어찌 독하든지 코를 쏘는 듯하 다. 좌중이 모두 코를 가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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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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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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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가 연발하고 몽룡에게 손을 잡힌 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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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애......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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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손으로 코를 쥐고 대굴대굴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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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저만치 코를 돌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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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고약하다. 이것이 필시 저 통인놈의 조화로다. 사핵하 여 바삐 몰아 내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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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니 애매한 통인은 망집 소조하여 어 안이 벙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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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본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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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은 애매하오. 내가 과연 방귓자루나 뀌였나 보오. 하 고 무한히 슬슬 통통 뀌어 버리니 온 동헌이 모두 구린내 다. 모든 수령들이 혀를 차며 운봉의 탓만 하고 담배만 퍽 퍽 피우니 좌중이 자못 파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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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주인이라, 이 좋은 잔치에 파흥되는 것이 아까워서 흥을 돋누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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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임실(任實)! 그래 임실 온지가 벌써 삼년이나 되었 다 하니 그래 과만 전에 볏백이나 장만하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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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이 물었던 담뱃대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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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백은커녕 잔용도 부족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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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게요, 묘리를 모르면 잔용도 부족하단 말이 응당 그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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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고개를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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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함열(咸悅) 날더러 남원 와서 치부(致富)하였다고, 조롱하는듯이 말은 하오마는 나도 처음에는 준민고택(俊民 膏澤)은 아니하려 하였더니, 할 밖에는 없는것이 번에 없는 별봉(別封)이 근래에 무수하고, 궁교(穹交) 빈족(貧族) 걸패 (乞牌)들은 그칠 적이 바이 없고, 원청 주야 경륜 생각하다 못하야 묘리를 터득해 내인 것이, 이방놈과 짜고 묵은 은결 (隱結) 들쳐내어 단 둘이 쪽반하니, 자미가 바이 없지 아니 하고, 또 사십 팔면 부민들을 낱낱이 추려내어, 좌수차첩(座 首差牒) 풍헌자첩(風憲差牒)을 내어 주면, 묘리가 있고, 금년 에 와서는 향고소임으로도, 착실히 재미를 보았고, 또 환자 요리(還子要利)도 해롭지는 아니하오. 이러나 하기에 지탱을 하여가지 그렇지도 아니하면 어림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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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만좌 수령들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극구 칭송(極口稱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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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영장이 듣다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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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본관 객담 마오. 거 원 무슨 말이라고 하오? 여차 성연에 풍월귀나 합시다."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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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말씀이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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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좌우 수령들이 모두 좋다 하여, 일변 먹을 갈라고 시 축을 내어 놓고, 운자를 내고 어떤 수령은 글귀를 생각하노 라고 눈을 내리감고 어떤 수령은 수염을 내리쓸고 어떤 수 령들은 몸을 흔들고 어떤 수령능 콧소리'응흥흥'하고 생 각난 글귀를 중얼거려 보고 모두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조 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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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나앉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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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에 말씀 올라가오. 나도 비록 걸객이나 오늘 좋은 잔치에 배부르게 얻어 먹고, 그저 가기가 섭섭하니 지필이 나 빌리시면 차운(次韻)하나 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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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이 글을 짓는다는 말에 만좌가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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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꼴에 또 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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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조롱하는 것을 운봉이 만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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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에 귀천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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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필을 당기어 몽룡의 앞에 놓으니, 본관이 보고 앉 았다가 무릎을 턱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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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 그 손이 글을 잘못 짓거든 좌석에서 몰아 내치는 것이 어떠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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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러 수령을 돌아보니 모두 좋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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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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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붓을 들고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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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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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글을 잘 지으면 본관을 몰아 내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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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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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본관이 심히 못하땅하여'응'하고 고개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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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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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운자를 보니 기름고(膏) 높을고(高)자 절귀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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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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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일필휘지로 써 놓고 유심하게 운봉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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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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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이 그 글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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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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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준에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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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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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반에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 떨어지매 민루조차 떨어지니, 가성 높은 곳에 원성이 높았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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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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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보고 나더니 눈치 빠른 운봉 영장은 벌써 알아차 리고 본관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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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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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성의 환자(還子) 주기를 금일로 출령하였기로 먼 저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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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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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어나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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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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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앉았던 전주판관(全州判官)이 운봉의 하는 양이 수상 한 것을 보고 몽룡을 글을 당기어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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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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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진한 급한 공사 있어 먼저 돌아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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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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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일어서 나가고 연하여 고부현감(古阜懸監)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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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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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은 하루거리를 얻은 때가 되었으니 먼저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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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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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황망히 일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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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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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이 취흥이 도도하여 화다가 화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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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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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극진환(樂極盡歡)이라니 종일토록 놀지 않고 공연히들 먼저 찍찍 달아나니 남의 잔치에 파흥이라 고이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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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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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먼저 가는 수령들을 흘겨보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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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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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가는 이는 가거니와 우리는 세잔갱작(洗盞更 酌)하여 훗토시 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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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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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삼방하인(三房下人)들이 마침 때가 되어 관문 근처 로 이 골목 저 골목 난데 없는 망건 장사 파립 장사 미역 장사 황화 장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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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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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망건에 헌 갓 팔 것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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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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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들 안사리아—울산 장곽들 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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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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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사리아. 실과 물감들 사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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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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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담뱃대 파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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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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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야릇한 소리로 외우고 돌아 다니며, 어사의 부채군호 만 살피더니, 몽룡이 부채를 넌짓 들고 상방 하인 손을 치 니, 어디서 나오는지 군관서리 역졸들이 청건대를 둘러 띠 고, 흥전립을 젖혀 쓰고 우르르 삼문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 중에 청파역졸이 달 같은 마패를 해같이 번쩍 들어 삼문을 쾅쾅 두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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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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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을 아전놈아 암행어사 출또야 큰 문 바삐 열어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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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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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가 벽력같고 한편으로는 봉고(封庫)하고 우직근 와직근 두드리며 급히 몰아쳐 들어 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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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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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출또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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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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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리 한 마디에 기왓골이 터지는듯 하늘에 다은 해도 발을 잠깐 머무르고 공중에 나는 새도 소리를 못하고 푸득 푸득 떨어진다는 것이다. 만좌 수령이 청천벽력을 당하니 한참은 쥐죽은 듯 소리도 못 내고 몸도 못 움직이고 눈이 휘둥글하여 벌벌벌벌 떨고만 앉았고 본관은 지랄하는 사람 모양으로 입술이 개흙 빛이 되어 게거품을 푹푹하고 풍동한 사람 모양으로 머리와 사지를 덜덜덜 떨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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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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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벼락을 맞은 수령들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였다는 것이 반 밖에 수습이 되지 못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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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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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내어라 신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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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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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내어라 업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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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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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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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르고나 목을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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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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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거동 언어 수작이 뒤섞여 나오니 임실현감(任實縣監) 은 갓을 급히 쓰노라고 갓모자를 뒤켜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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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어느 놈이 갓구멍을 막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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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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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뒤켜 쓰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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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다. 언제 바로 쓸 새 있느냐. 좀 눌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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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대로 꽉 누르니 갓이 벌컥 뒤집힌다. 겨우 갓을 쓰 고 나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칼집을 쥐고 누니 오줌 맞은 하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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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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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요사이는 하늘이 비를 끓여 내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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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갈팔질팡하고 구례 현감(求禮縣監)은 말을 거꾸로 타 고 채찍질을 하니 말이 뒤로 달아난다. 황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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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웬 일이냐. 본래 목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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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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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타셨소, 내려서 바로 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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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 어느 겨를에 바로 타랴—목을 빼어다가 앞에 박으려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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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성화하니, 여산 부사는 쥐구멍에 상투 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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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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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투 좀 빼어 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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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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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모두 말이 빠져 이가 헛 나가고, 이 모양으로 덤벙이니 차소위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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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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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야 본관도 적이 정신을 차리어 바지에 똥을 싸가지 고, 겁결에 내당으로 뛰어 들어갈 제 종년이 내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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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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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 났소. 큰일 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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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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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무슨 큰일 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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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인 마누라 뒤를 싸고 실내 부인 찌를 싸고 서방님도 소마 싸고 도련님도 밑을 싸고 소인네도 똥을 싸고 왼집안 이 모두 똥 빛이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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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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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남원 부사 분부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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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발 잰 놈 바삐 불러 왕십리 급히 가서 똥 거름 장사 있는 대로 성화같이 착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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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나 대답하고 나서는 놈은 하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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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몽치찬 군관 역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리치 고, 저리 치고 함부로 둘러치니, 장구통도 깨어지고, 무고통 도 깨어지고, 피리젓대는 짓밟혀 부러지고, 해금대는 꺾어지 고, 거문고 가얏고는 바서지고, 양금 줄도 끊어지고, 교자상 도 부러지고 다담상도 깨어지고 준화 꽃은 흩날리고 화기 조각은 산산히 부서지고, 양각등은 으스러지고, 사초롱은 미 어지고, 그만 큰 잔치고 다 깨어져서 동헌이 텅 비었는데 좌수(座首) 이방은 곡격으로 발광하여 덤벙이고 삼방 관속 육방 아전 내외아사(內外衙舍) 위 아래 할 것 없이 쥐구멍으 로, 개구멍으로 굴뚝 구멍으로 황겁하여 달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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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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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또 동헌 대청에 뚜렷이 앉아 삼방 하인 분부하여 대기치(大旗幟) 버려꽂고 숙정패(肅靖牌) 내어 꽂고 좌기(左記) 하니 남원 부사 절인 배추잎이 되어 어사 앞에 읍하고 서서 전전긍긍하고 처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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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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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 위의를 엄숙히 하고 소리를 가다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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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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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은 망극하여 국록지신 되었거든, 성지(聖旨)바자와서 치민선정(治民善政)이 당연하거든, 곡법학민(曲法虐民)하고 준민고혈(晙民膏血)하여 남원 일경 변시 도탄(塗炭)에 오오(傲傲)하니 그래 어심(於心)에 무괴(無愧)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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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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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부사는 고개를 수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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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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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당만사(罪當萬死)오나 어사또의 관후하신 처분만 기다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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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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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머리가 허연 것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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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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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또 변부가가 정경이 가긍하지 아님이 아니나, 봉명 사 신으로 사곡한 정을 둘 수 없어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여 즉 각으로 지경 밖에 내치라고 엄히 분부하였다. 변부사를 파 직하여 지경 밖으로 내치라고 분부한 후에, 삼공형(三公兄) 을 불러 여러 가지 읍폐(邑弊)를 묻고, 도서원(都書阮)을 불 러 전결(田結)을 묻고, 사창빛(社倉色) 불러 곡부를 묻고, 군기빛(軍器色) 불러 군장과 복색을 묻고, 전세빛(田稅色) 불 러 새미난봉(塞米難捧)을 물어, 잘한 놈은 칭찬하고, 못한 놈은 형추일치맹타(刑推一致猛打)하여 단단히 때려 방송하 고, 예방(禮訪) 불러 불효불순 강상죄인을 찾아 일일이 원찬 (遠簒)으로 추론(追論)하고, 형방(刑房)을 불러 살옥(殺獄)을 물어 죄 있는 놈은 곧 처결하고, 애매하게 붙들린 백성이며 무슨 죄 있어 잡아다가 가두고도, 잊어버렸던 것이 이러한 해로 묵은 구수들을 모조리 찾아 내어 즉각으로 방송하라 분부하고 이 모양으로 모든 급한 공사가 얼추 끝난 뒤에 옥 사장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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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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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대령하되 모든 기생 안동하여 대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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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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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장이 성화같이 옥으로 달려가서 옥문을 박차고 들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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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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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아 나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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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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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소리 소리 외치니 춘향이 혼 없이 옥문으로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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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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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인제는 죽었구나. 몸이 무쇠로 되었기로 또 맞고 야 어이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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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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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옥문을 나서는 길로 사방을 살펴보나 몽룡은 형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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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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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인 일고, 백 번 천 번 부탁하였으니 설마한들 잊었으리. 무정도 하신 님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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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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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고 월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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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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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이애 그년석 달아나서 벌써 담양 갔겠다. 저도 염 치가 있는 사람이지 무슨 면목에 네 낯을 대하랴. 집에서 자고 아침 처먹고 슬며시 나간 길로 일향 소식이 없으니, 아조 간 게 분명하다. 반점도 생각마라. 그 년석이 분명 동 냥군이 되었더라. 들겻잠에 이를 갈며 기지게에 잠꼬대로 밥 한 술 먹이시오, 돈 한 푼 좋은 일 하오, 하고 한두 번이 아닐러라. 만일 읍중 사람들이 권자인 줄 알고 양이면 손가 락질 지목하여 춘향이 서방 춘향이 석방할 터이니, 그런 망 신 또있느냐. 그래도 양반의 씨라 체면은 주릴하게 보니 그 래 정녕 달아났다. 앗어라 생각마라. 그년석 뺑소니했다. 접 지를 보아하니 소도적놈이 다 되었더라. 이집 저집 다니다 가 남의 것을 자리내면 그런 우환 또 있으며, 물어 줄 수 밖에 있느냐. 그년석을랑 애이 다시 꿈에도 생각말고, 만일 금일 좌기에 사또 다시 묻거들랑 잔말 말고 허락하면 그 아 니 좋겠느냐. 물라는 쥐나 물지 공연히 수절이나 화절이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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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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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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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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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그만하오. 듣기 싫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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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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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끌려 갈면서 여전히 사방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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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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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를 어찌하며, 부모 유데도 아끼지 않고, 그 무 서운 형장을 마자 뼉다귀가 부서지면서도, 이를 악물고 그 님 위하여 수절을 하였건만, 전고, 천지, 우주간에 이런 일 도 또 있는가. 서방님 어데로 가고 나 죽는 줄 모르시나. 그 리다가 명천이 감동하여 꿈결같이 간신히 만나 할 말도 다 못하고, 나 죽는 양이나 친히 보고 남의 손 대이지 말고, 감 장이나 하여 달라고 신신 부탁하였더니 끝끝이 내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서방님이 날 속였네. 서방님마저 날 저바리 니 내 일을 어이할꼬—어디를 가 계시오? 서방님, 서방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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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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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칼머리를 앞으로 와락 빼치면서 뒤으로 벌떡 주저 앉 아 두 다리를 펴 버리고 대성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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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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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참으로 나는 죽네—오늘날에 나는 죽네. 천지일월 성신님네야 오늘날에 나는 죽소. 산천 초목 금수들아, 오늘 날에 나는 죽네—수절하다가 나는 죽네. 내 일생은 오늘 뿐 이요. 오늘이 이 세상에 영결이로구나. 상단아! 마님 모시고 부대 잘 있거라. 살아가다가 서방님 만나거든 내 세세한 말 씀이나 하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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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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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이 춘향의 칼머리를 붙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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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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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그런 말씀마오—아씨 상사만 남면 쇤네는 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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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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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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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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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다 붙들려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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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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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님들 나 죽은 뒤에 우리 어머니 부대 불쌍히 여겨 주오. 가끔 찾아보고 위로도 하여 주시고 밥 한 술이라도 잡숫도록 권하여 주오. 그리하시면 내가 죽은 혼이라도 마 누라님네 수복강녕하시고 후세에는 서왕 세계 극락 세계 가 시게 발원하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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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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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몇 걸음 가다가는 또 혼절하여 칼머리를 안고 거헌 뜰에 놓으니 그래도 춘향은 깨어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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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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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은 곧 뛰어 내려와 춘향을 드립다 안고 울고 싶건마는 체면에 그리도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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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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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놀음 노든 기생 다 잡아다가 춘향의 쓴 칼을 저의 이로 물어 뜯어 즉각내로 벗기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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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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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분부하니 뭇기생은 어인 영문을 모르고 분부를 거역 하지 못하여 달려들어 젊은 년은 이로 뜯고, 늙은 년을 혀 로 핥아 침만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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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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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또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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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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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년은 어찌하여 뜯는것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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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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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하니 늙은 기생이 황공하여 부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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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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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소인은 이가 없어 침만 발라 주면 불어서 젊은것들이 뜯기가 쉽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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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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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아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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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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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기생이 가만히 보니 춘향의 맘을 좀 사두어야 할 모양이 아, 어떤 약은 년은 춘향의 귀에다가 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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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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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야 내 거번에 산삼 넣고 속미음하여 보냈더니 먹었 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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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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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하고, 어떤 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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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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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 일전에 실백잣죽 쑤어 보낸 것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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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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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고 하고, 또 한 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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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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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전에 편강 한 봉 보냈더니 받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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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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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하고 다투어 용공을 하니 마치 모이 주어먹는 병아 리떼 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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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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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또 어성을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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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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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요괴스러운 년들아. 무슨 잔말을 그리 하느냐? 칼 바 삐 벗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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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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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호령이 추상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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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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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들이 겁을 내어 죽기를 기쓰고 아드득 아드득 춘향의 칼을 뜯으니, 마치 뭇개들이 뼈를 뜯는 것 같다. 이빠리도 빠지는 년, 입시울도 터지는 년, 볼따귀도 뚫어지는 년, 턱 아래로 버서진 년—쥐 뜯듯하여 죽을 힘을 다 들여서 간신히 칼을 버겨 놓았으나, 춘향은 아직도 기절하여 피어나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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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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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또 의원을 명하여 곧 약을 지으라 하니, 김 주부, 이 주부 서로 의론하여 두루마리 펼쳐들고 붓대춤 추어가며, 생맥산(生脈散), 회생산(回生散), 패독산(敗毒散) 겁결에 함 부로 약명을 내어, 발 잰놈 시켜 지어다가 바삐 다려 먹이 니 춘향이 '휘휴'길게 한숨 쉬고 눈이 번히 뜨여 냉수를 찾는다. 기생들이 저마다 뛰어가서 냉수를 떠다가 춘향을 먹이려다가 못 먹인 년은 열없어 돌아서서 제가 그 물을 먹 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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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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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회생하는 것을 보고 몽룡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정신이 쇄락하여지고 맘이 상쾌하여지니 즉각에 뛰어내려가 붙들고 싶으나 한 번 더 꾹 참고 음성을 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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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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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아라, 춘향아!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들으니 요 마 창기년이 수절을 한다 하니 사심 해고로다. 네 본관의 분부는 아니 들었거니와 내 분부도 시행 못하겠느냐. 이제 를 방석(放釋)하여 수정을 정하는 것이니 바삐 나가 소세하 고 이제 올라 수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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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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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춘향이 땅에 고꾸라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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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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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이 말이 웬 말이요? 더러운 소리를 또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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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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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악돌은 면하였더니 수만석을 만났고나! 우리 나라 국록지 신은 모두 이러하오? 봉명 사신 어사또는 수절하는 춘향이 의 애매한 죄를 밝혀 주지 못할 망정 이런 분부 또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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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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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시오! 매로나 칼로나 죽다 남은 이 내 몸을 맘대 로 죽이시오. 죽이시오. 철석 같은 이 내맘은 변할 리 만무 하니 어서어서 죽이시오!" 하고 방성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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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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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 이렇게 악을 쓰고 우니 몽룡이 서안을 치고 대소하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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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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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로다. 열녀로다. 춘향의 굳은 절개는 천고에 무쌍이 요, 하늘에 닿은 의기는 고금에 너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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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별할 때에 춘향에게 받은 옥지환을 내어 행숭기생 을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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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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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갖다 춘향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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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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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수기생이 지환을 가져다가 춘향의 앞에 놓으니, 춘향이 정신없이 지환인 줄은 알았으나 낭군 이별시에 선물로 준 것인 줄을 채 모르고 우드머니 보고만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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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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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그런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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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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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환을 모르느냐—네 지환을 네가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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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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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춘향이 눈물을 씻고 자세히 보니, 과연 삼년 전에 이도령 이별할 때에 선물로 준 지환일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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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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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변 놀라고 일변 반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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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웬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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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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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환을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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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갑갑하여 본시 음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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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나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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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음서이 귀에 익구나, 그 음성이 귀에 익다, 정녕 님의 음성이로다, 하고 눈을 들어 치어다보니 철관풍채(鐵冠風采) 수의어사(繡衣御史) 미망랑군(未忘郞君)이 정녕하다. 천근같 이 무겁던 몸이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할 듯하여 한 번 뛰 어 올라가 몽룡에게 매어달려 몸을 비비 꼬고 한참이나 말 이 없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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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오? 생시오? 내가 죽어 혼이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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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더 말이 없이 울고 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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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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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하다—갸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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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는 못내 반겨하고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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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월매는 차마 내 딸의 맞아죽는 것을 어찌 보랴 하 여 집에 돌아가 혼자 울고 있다가 춘향이 어사또 수청들게 되었단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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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내 딸이야. 내 딸 착하다. 기특하다. 어사 사위는 참말 뜻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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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뒤어 들어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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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사위가 좋을시고. 엄동 설한 춥더니만 봄될 날이 또 있고나. 즐거움을 못 이기니 어깨춤 이 절로 난다. 강동에'범'이더니 길나라비가 훨훨, 소주 한 잔 먹었더니 곤대짓이 절로 난다. 탁주 한잔 먹었더니 엉덩춤이 절로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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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삼문에 다다라 문에 있는 관속들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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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을 모조리 뺄 놈들 같으니, 한서부터 주리를 할라 삼방관속 다 나오소. 그네들 생심이나 내돈치고 아니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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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려 하여도 손이 쉽고 속이려 하여도 잠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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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행악을 하니 관속들이 절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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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요사이 안녕하압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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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요사이 둔보는 사람들이 그리 수들 센가 그리 들 마소—그렇지 아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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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소. 망녕입시오. 그럴 리가 있삽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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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노 반가이 마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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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자치신네 이애 일은 그런 기쁜 일이 없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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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 보니 그 관노는 밉지 아니하던 사람이라, 좋아라고 걸음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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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람 이제야 말이지 어제 이 도령인가 이 서방인가 한 작자가 우리 집에를 찾아왔는데 주제 꼴을 보니, 곧 순 전 거지어든 우리 아기는 그래도 든 정이 나지 못하여 차마 박대를 하지 못하여서 날더러 그것을 집에 다려다 두고, 먹 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키라고 하데마는 그것이 공부를 하 면 어사나 될 터인가 감사나 될 터인가. 꼴이 집에 두어야 남이 우일 듯하기에 곧 그날로 따세었더니, 저도 염치가 없 었든지 그길로 달아나고 말지 않았겠나. 그래 아침에 아기 더러 이 말을 하고, 다시 생각말라고 다시 사또가 묻거든 두말 말고 방수들라 하였더니 저도 그 년석이 꼴보기 어이 없이 샐죽했든 게야. 그리 하였으니 고것이 내 말대로 어사 수청하락하였다하니 참 우리 딸 상냥하지......말이야 바로 만 일 본관수청 안 들었드면 오고랑이가 또 되었을 것을 요런 깨판이 또 있나? 이제야 이 서방 년석이 또 온다 한들 이런 소문 듣게 되면 무슨 낯에 말을 하겠나. 이제는 기탄없 지......애고 그런 흉한 놈을 이제는 아조 배송이다. 좋을 좋 을 좋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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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 하나가 나오다가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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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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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니? 누구더러 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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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또가 전등 책방 도련님이라오. 철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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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 깜짝 놀라다가 다시 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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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누구를 속일 양으로 그놈이 어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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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 아니오. 천만 의외에 말씀이요. 서울놈이 음흉 하여 가어사로 다니나 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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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양으로 아전의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우쭐우쭐 춤 을 추며 동헌으로 들어가서 어사를 치어다보니 이제 왔던 네로구나. 마른 하늘에 된벼락이 어디로서 내려온고. 월매 기가 막혀 벙벙하고 섰다가 그만 펄쩍 주저 앉아 아무 소리 도 못한다. 몽룡이 월매를 내려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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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요사이도 집팔기 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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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월매 열없이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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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그 말씀이지 어사또 일을 벌써 그때 알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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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기에 도로마 한 필 해남포 한 필 급히 바꾸어다가 사또 옷 지으랴고 빨리 보냈겠오. 지더라 물어보오. 모녀지 간이언마는 그때 그 말을 일언반사나 하였는가. 내 집에 주 무시면 혹시 누가 눈치나 알까 해서 아조 딱지손이 한 것이 지 뉘가 몰랐다구요. 나를 눌만 여기오—순라골 까마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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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퍼래도 속은 다 익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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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빤빤스럽게 대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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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기가 막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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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얼굴 들고 말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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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 얼굴을 숙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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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얼굴에 쥐가 나지요......그렇지만 아무리 사또시기로 장모를 어찌할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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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춘향이 아까부터 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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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만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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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둘까, 그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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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탈것 마련하여 춘향과 월매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 자리로 남원부사 봉고파출한 연유로 감영에 즉일로 보장 띄 우고 본관의 미결공사 거울같이 처결하여 버리고, 이방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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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고사(內外庫舍) 재물들이 모두다 탐장(貪臧)이니 동 헌에 있는 것은 민고(民庫)로 집장(執臧)하고 내아(內衙)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논매하여 금일내로 관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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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부하고 모든 공사 끝이 나니 벌써 황혼이 되었다. 몽룡 이 사초롱에 붙들리고 예전 가던 길을 걸어 춘향의 집 찾아 가니, 왼 집안 구석구석이 촛불이 휘황하고, 월매는 손수 어 사또의 저녁 진지상을 차리노라고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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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을 춘향을 위로하며 지내고 이튿날 미명에 춘향의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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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봉명 사신 몸이 되어 일각을 지체할 수 없어 이제 떠나 감영으로 가거니와 만사는 이방에게 분부하여 두었으 니, 너는 며칠 조리하여 어머니 모시고 서울로 치행하라. 그 러면 서울서 반가이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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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떠나니 춘향이 일변 기쁘고 일변 비감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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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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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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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전라도 오십칠관 좌우에도 모든것을 다 돌아서 승일상래(乘馹上來)로 입경하여 답전(踏前)에 복명(復命)하니 성상이 반기며, 귀히 여겨 손을 잡으시고, 원로 행역을 위로 하시며 민정을 물으신다. 몽룡이 경력문서(經歷文書)와 행중 일기(行中日記)를 받들어 드리오니 용안이 대열하사 칭찬을 마지 아니하시고 동벽응교(東壁應敎)를 제수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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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 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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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는 하교를 듣고 몽룡이 땅에 엎디어 춘향의 정절을 주 달하니, 성상이 들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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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절 지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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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곧 이조(吏曹)에 하시하사 정렬부인(貞烈婦人)이 직 첩을 내리시었다. 이런 영광이 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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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룡이 사은퇴조(謝恩退朝) 하여 북당(北堂)에 현알하고 사 당에 허배한 후에 부모전에 면품하여 춘향의 일을 여짜오 니, 부모도 기특히 여겨 곧 대연을 배설하고, 종족이 모이어 남원 집을 부인으로 승좌하여 백년 해로하고, 벼슬은 육경 상공을 다 지나고, 아들이 삼형제요, 내외손이 번성하니, 이 런 기사가 또 있는가. 이때부터 팔도 광대들이 춘향의 정절 을 노래지어 수백년 래로 불러오더니 후세에 춘향의 동포 중에 춘원이라는 사람이 이 노래를 몰아서 만고열녀 춘향의 사적을 적은 것이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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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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