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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 춘향전 (一說 春香傳) ◈

◇ 출또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1925년
이광수

1. 출또

 
1
이날은 본관 사또 생신이라 하여 아침부터 인근 각읍 수령 이 모여드느라고 남원 읍내가 들끓는데 난데 없는 망건 장 사 파립 장사 황화 장사 거지들이 꾸역꾸역 모여 들어 옥문 앞으로, 광한루로, 삼문 앞으로 기웃기웃 돌아 다니기를 시 작하더니 오시가 지나자,
 
2
"허 오늘 수상하군."
 
3
"저 거지들이 예사 거지가 아닌걸."
 
4
"쉬—무슨 일이 나고야 말지."
 
5
하고 남원 읍내 사람들이 이 구석에선도 두런두런 저 구석 에선도 두런두런 귀에 대로 수군수군 끔적끔적 한다.
 
6
이때에 몽룡이 춘향이가 백 번 당부하던 옥문 밖으로 가지 도 안하고 삼문 밖으로 슬슬 들어가니 잔치가 어울어졌다.
 
7
백설 같은 구름 차일 덩그렇게 높이 치고, 동헌 대청에는 수병풍 모란병 각색 병풍 들어차고, 화문지의홍등매(花紋地 衣紅登每)에, 만화 방석 총전보료 뭉고전담 요를 깔고서, 초 롱, 약각등, 유리등, 세옥주(細玉珠)를 홍목 으로 줄을 하여, 석가래 수대로 총총히 걸어 놓았으니, 밤 깊도록 놀자는 뜻 이요. 샛별 같은 요강, 타구며 와룡 촛대 여기저기 벌여 놓 았다.
 
8
당상에는 부사, 현감, 당한에는 만호(萬戶), 별장(別莊), 그 중에는 임실 현감(任實縣監), 구례현감(求禮縣監) 운봉영장 (雲峰營將)도 섰여 있다. 이 모양으로 인근 읍 수령들이 청 천에 구름 모이듯, 용문산(龍門山)에 안개 모이듯 사방으로 모여들어, 차례로 벌여 앉으니, 위풍이 늠름하고 호령이 숙 숙하다. 아이 기생은 녹의 홍상, 어른 기생은 쾌자 전립으로 거북 같은 거문고를 무릎 위에 비껴 놓고 섬섬옥수로 이 줄 저 줄을 희롱하며, 옥같이 맑은 소리를 길게 가늘게, 끊이락 이으락 뽑고 구울려 후정화(後庭花)를 부르니, 풍류도 좋을 시고. 거문고 가야금 양금 생황 삼현(三絃) 육각(六角) 소리 가 반공에 이러었다. 남창에는 거문고요, 여창에는 육각이 다. 중한잎 잦은 한잎은 높은 하늘 너른 바다에 물구름 흐 르는 격이요. 후정화(後庭花) 시조(時調)는 부드러운 봄바람 에 꽃피어 무르녹는 격이요. 소용이(蘇聳耳) 편(編) 낙(樂) 은 모진 바람 재 오친 비에 제비 떼 빗껴나는 격이다. 노래 일편 대바침에 잡가 시조 모두 부르고 입춤 검무(劍舞) 연풍 대(宴豊臺)는 퇴상 후에 보기로 하고, 수파련다담상(水波蓮 茶談床)이 나오니 장진주(將進酒) 노래와 어울러 포도 미주 좋은 술이 순배가 바쁘구나.
 
9
이때에 몽룡은 때 끼인 얼굴에 길인 행색으로 차리고 삼문 안으로 주적주적 들어오며,
 
10
"여보아라! 사령들아 멀리 있는 걸객이 좋은 잔치 만났으 니 술잔이나 얻어 먹자 들어온다고 자상에 아뢰어라."
 
11
하고 진퇴하여 가까이 오니 좌상에 앉은 수령들이 호령하 여 분부한다.
 
12
"거 원 무엇이니 바삐 잡아 내떠리라."
 
13
어느영이니 지체하랴. 뭇사령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등 밀 거니 배 밀거니 팔도 잡고 다리도 잡고,
 
14
"이분네야 아무 소리맙소. 요란하이 이 분네야."
 
15
하고 몽룡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도 듣지 아니하고, 오줌 젖은 상단지 걸음으로 배추 밭에 개똥처럼 삼문 밖으로 밀 어 내친다.
 
16
몽룡이 하릴없이 문밖으로 쫓겨 나오니, 보던 사람들이 모 두 좋아라고 웃는다. 이리로 저리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들 어갈 틈을 엿보는 흔금이 엄밀하고 슬슬 보아 아무리하여도 들어갈 길이 없다.
 
17
몽룡이 할 수 없이 슬슬 뒷문으로 돌아가 지적지적하더니 문을 보던 하인들이,
 
18
"여보!"
 
19
하고 몽룡을 부른다.
 
20
"왜 그러오!"
 
21
"여보 보아하니 일 없는 사람인 듯하니 우리 잠깐 입시하 고 올 것이니 문좀 보아 주오. 아무라도 들어가려 하거든 이 채찍으로 먹여 주오. 문만 착실히 보아 주면 간친 파한 후에 술잔이나 먹이리다."
 
22
몽룡이 다행히 여겨,
 
23
"글랑 염려를 아주 놓고 가라이까."
 
24
하고 채찍을 받아 들고 섰다.
 
25
몽룡이 사령들에게서 받은 채찍을 들고, 문에 서서 어정어 정할 때에 한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서 낌새를 보느라고 기 웃기웃하며, 몽룡의 눈치만 힐끗힐끗 보고 저만치 둘러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사람만 들어가면 자기네도 들어가 볼 양으로 발들을 내 놓았다 들여 놓았다 한다.
 
26
몽룡이 들었던 채찍을 문에 세우고,
 
27
"이분! 낌 좋은 판이니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섰는 분 들도 아니 들어가시려오? 저기 있는 아이들도 내 알 것이니 모두 들어가 구경하여라.
 
28
하고 맘대로 문을 터 놓으니 마치 부문(赴門)하는 선배처럼 뭉게뭉게 뒤끌어서 문인 메어 들어간다."
 
29
몽룡도 그 틈에 섞여 들어가며,
 
30
"좋다. 잘 들어온다—에라 한 모퉁이 치어라!"
 
31
하고 보계판(步階板)으로 부쩍부쩍 올라가니 과중 수령들이 들었던 술잔을 놓고, 거 원 이게 무엇이니? 바삐 몰아 내치라!
 
32
하고 호령이 추상 같다. 그 중에 운보영장(雲峰營將)이 마 의상서(麻衣相誓)권이나 보고 또 나이도 지긋하여, 지인지감 이 있다고 자처하는 사람이다. 곁눈으로 몽룡을 살펴보니, 행색은 허술할 망정 면방안활(面方雁闊)하고 미장목수(眉長 目受)하고 이곽(耳廓)이 돈후(敦厚)하고 준두(準頭)는 융기 (隆起)하고 성음(聲音)이 청장(淸狀)하되, 언불요순(言不搖 脣)하고 소불로치(笑不露齒)하고, 인중(人中)이 길고, 천정 (天庭)이 윤택하고, 산근후(山謹厚) 창고만(倉庫萬)이요, 삼 정(三停)이 균정(均整)하고, 오악(五岳)이 구전하며, 언간청 원(言艱淸遠)하고, 좌단침정(座端沈檉)하고 법령엄장(法令嚴 壯)하고, 장벽방후(墻壁方厚)한데, 연견(鳶肩)에 화색(火色)하 니 삼십정승(三十政丞)이요, 명주출해(明珠出海)하니 팔십태 사(八十太師)로다.
 
33
운봉이 본관을 보고,
 
34
"여보시오. 그 분을 보아하니 의복이 비록 남루하나 양반 인가 싶으니 좌석을 같이함이 어떠하오? 시속에 상한(常漢) 들이 양반을 세웁니까 우리네가 양반 대접을 아니 하고 누 가 한단 말이요?"
 
35
하고는 본관이 가타 부타 대답도 있기 전에 몽룡을 보고,
 
36
"이 양반 이리 앉으시오!"
 
37
하고 말석에 자리를 권하니 몽룡이 웃으며,
 
38
"기야 양반이로고 동시 양반을 아끼니 운봉이 과시 사람 을 아는고."
 
39
하고 서슴치 않고 호기 있게 운봉이 권하는 자리도 마다하 고, 부적부적 상좌로 올라가서 본관의 곁에 끼어 앉아 진똥 묻은 다리를 그 앞에 펴벌리니 본관이 혀를 차며,
 
40
"게도 눈이 있다 다리를 뻗는닥게—. 도로 오그리요—허허 운봉도 야릇하것다. 거 원 무엇이람."
 
41
하고 고개를 돌리니 몽룡이 점잖게,
 
42
"여북하여 그러하오? 내 다리는 뻗기는 용이하여도 오그 리기는 과연 극난하오."
 
43
하고 그대로 앉았으나 아무도 권하는 이는 없고, 자기네 들만 먹고 앉았으니 몽룡이 소리를 높여,
 
44
"좌상에 말씀 올라가오. 잘나가는 걸객으로 공복(空腹)이 자심하니 요기를 시켜 보내시오."
 
45
이 말에 수령들은 모두 눈쌀을 찌푸리고 유독 운봉장이 하 인을 불러,
 
46
"여보아라. 상 하나 이 양반께 받자 오라."
 
47
하니 이윽고 귀신 다 된 아이놈이 상 하나를 들어다 몽룡 의 코 앞에 대고 눈알을 구울리며,
 
48
"팔 아프니 어서 받아."
 
49
하고 반말거리를 한다.
 
50
몽룡이 상을 받아 들고 살펴보니, 다른 사람 앞에는 모조 리 열명이 들어붙어도 다 못 먹을리 만큼 산해진미를 갖추 갖추 놓았는데, 이 상에는 뜯어 먹던 가리 한 대, 대추 세 개, 밤 두 낱, 소금 한 줌, 장종자에 저리침 채 한 보시기, 이빠진 사발에 탁주 한 사발을 덩그렇게 놓았으니, 남의 상 보고 내 상을 보니 없던 심장도 절로 나서, 실수하여 엎지 르는 체하고 한복판을 뒤집어 놓고,
 
51
"아차 이 노릇 보아라! 먹을 복이 못되나보다."
 
52
하며 두 소매와 옷자락으로 엎친 모주를 묻혔다가 좌우벽 에 뿌리는 체하고 만좌 수령에게 함부로 대고 뿌렸다.
 
53
수령들이 모주 방울을 피하노라고 고개를 돌리고 몸을 비 키면서,
 
54
"어허 이것이 무슨 짓이란 말고. 미친 손이로고!"
 
55
몽룡이 다 뿌리고 나서,
 
56
"웬통으로 묻힌 내 옷도 있소. 약간 튀는 것이야 글로 관 계하오?"
 
57
하고 앉는다.
 
58
운봉이 민망하여 자기 받았던 상을 몽룡 앞에 밀어 놓고,
 
59
"자 이 상을 받으시오."
 
60
하고 권한다.
 
61
"웬 일이요?"
 
62
"염려말고 어서 자시오. 내 상은 또 나오."
 
63
몽룡이 운봉이 권하는 상을 받아 제 상같이 앞에 놓고 또 트집을 잡아,
 
64
"통인 여보아라. 상좌에 말씀 한 마디 올라가오 하여라.
 
65
내 가만히 보니 어떤 데는 기생하여 권주가로 술을 드리고 어떤 데는 기생 권주가는 말고 떠꺼머리 아이하여 얼렁얼렁 하니 대체 어찌한 일인지......대체 술이라 하는 것은 권주가 가 없으면 무맛이니 기생 중에 똑똑한 것으로 좀 나려 보내 시면 술 한 잔 부어 먹읍시다 하여라."
 
66
하니 본관이 심히 못마땅하여 관자놀이가 불룩불룩 하며,
 
67
"그만하면 어량(於量)에 족의(足矣)여든 또 기생 암질러 허—고이한 손이로고."
 
68
몽룡이 본관을 노려보며,
 
69
"여보 어찐 말이요. 나는 기생 권주가 하나 못 들을 사람 이란 말이요?"
 
70
하고 대드는 것을 보고 운봉이 곁에 있던 기생 하나를 불 러,
 
71
"네 이 양반 술 부어 드리라."
 
72
기생이 귀찮아 하는 듯이 이마를 찡기고 몽룡의 곁으로 가 서 술을 부어들고 외면하고 앉으며 몽룡이 웃으며,
 
73
"묘하다! 권주가 할 줄 알거든 하나 하여서 나를 호사시 키려무나."
 
74
기생이 외면한 대로 입을 비쭉하여,
 
75
"기생 노릇은 못하겠다. 비렁방이도 술 부어라, 권주가까 지 하라니 권주가 없으면 술이 줄닥이에 아니 들어가나."
 
76
하고 쫑알거리고 나서 그래도 마지못하여 권주가라고 한다 는 것이,
 
77
"먹우 먹우 먹으시오. 이 술 한 잔 먹으시오......"
 
78
몽룡이 다 듣지도 아니하고,
 
79
"여보아라! 요년 네 권주가 본이 그러냐."
 
80
"행하 권주가는 응당 그러하냐. 잡수시오 말은 생심도 못 하느냐."
 
81
기생이 몽룡을 흘겨보고 독을 내어,
 
82
"애고 망측해라. 갖추갖추 성가시게도 구네, 그럼 잘 하오 리다."
 
83
하고 권주가를 다시 부른다는 것이,
 
84
"처박이시오. 처박이시오. 꿀떡꿀떡 처들여 박이시오. 이 술 한잔 처박이시면 만년 거지될 것이니 어서 어서 들이지 르시오."
 
85
하고는 술잔을 몽룡의 코 끝에 내어 대이며,
 
86
"자! 어서 받으오—팔 아프지 않소?"
 
87
한다. 몽룡이 이윽히 그 기생을 뚫어지게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88
"예라 요년 앗어라."
 
89
하고 술을 받아 마신다.
 
90
술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몽룡은 음식상을 다가 놓고 주린 판에 비위가 열려 순식간에 한 알 안 남겨 놓고 다 모두 휘 몰아 들이고, 이 빨 사이를 쪽쪽 빨며,
 
91
"사월 팔일에 등 올라가듯 상좌에 말씀 하나 올라가오.
 
92
음식은 잘 먹었소마는 또 괘씸한 입이 싱거워 못 견디겠으 니 저 초록 저고리에 다홍 치마 입은 동기(童妓)좀 내려 보 내시면 호사하는 판에 담배까지 한 대 붙여 먹겠소."
 
93
하니 운봉 영장은 또 무슨 트집이 날까 보아 다른 사람이 무슨 말하기 전에 그 동기더러,
 
94
"붙여 드리라."
 
95
하고 분부하시니 그 동기 샐쭉하여지며,
 
96
"그것도 수컷이라고 제반 악증의 소리가 나오네—운봉 안 전은 분부 한 몫을 모두 맡았나보다."
 
97
하고 짜증을 내고 몰룡의 곁에 와서 불쑥 손을 내밀며,
 
98
"담뱃대 내시오!"
 
99
한다. 몽룡이 골통대를 내어 주니 기생 담배를 아무렇게나 부스러뜨려 입담배를 가루 담배로 만들어 두어 모금 빨아 붙여 몽룡을 부며,
 
100
"엇소 잡수우."
 
101
하고 일어나 가려한다.
 
102
몽룡의 곁에 있는 것이 싫어서 일어나 다른 데로 가려는 것을 몽룡이 굳이 손을 붙잡고, 희롱하고 앉았더니 이윽하 여 몽룡의 뱃 속에서 벼란간에 이륙좌기(二六坐起)하는 노래 같이 똥땅 주루룩 탁탁 하는 별별 소리가 나며, 창자굽이가 꿈틀꿈틀하며 방귀가 나오려고 구멍을 내려 뚫는다.
 
103
몽룡이 발뒤축으로 잔뜩 고여 기운을 모았다가 슬며시 터 놓으니 부시시 하고 그저 뭇대어 연해 나오는 방귀가 온 동 헌에 다 퍼진다. 그 냄새가 어찌 독하든지 코를 쏘는 듯하 다. 좌중이 모두 코를 가리우고,
 
104
"응!"
 
105
"퓌!"
 
106
하는 소리가 연발하고 몽룡에게 손을 잡힌 동기는,
 
107
"애......피......애......피"
 
108
하고 손으로 코를 쥐고 대굴대굴 군다.
 
109
본관이 저만치 코를 돌리며,
 
110
"어 고약하다. 이것이 필시 저 통인놈의 조화로다. 사핵하 여 바삐 몰아 내치라!"
 
111
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니 애매한 통인은 망집 소조하여 어 안이 벙벙하다.
 
112
몽룡이 본관을 보며,
 
113
"통인은 애매하오. 내가 과연 방귓자루나 뀌였나 보오. 하 고 무한히 슬슬 통통 뀌어 버리니 온 동헌이 모두 구린내 다. 모든 수령들이 혀를 차며 운봉의 탓만 하고 담배만 퍽 퍽 피우니 좌중이 자못 파흥이 된다."
 
114
본관은 주인이라, 이 좋은 잔치에 파흥되는 것이 아까워서 흥을 돋누라고 이야기를 꺼낸다—
 
115
"여보 임실(任實)! 그래 임실 온지가 벌써 삼년이나 되었 다 하니 그래 과만 전에 볏백이나 장만하였소."
 
116
임실이 물었던 담뱃대를 빼고,
 
117
"볏백은커녕 잔용도 부족하오."
 
118
"그럴 게요, 묘리를 모르면 잔용도 부족하단 말이 응당 그러하지요."
 
119
하고 고개를 돌려,
 
120
"여보 함열(咸悅) 날더러 남원 와서 치부(致富)하였다고, 조롱하는듯이 말은 하오마는 나도 처음에는 준민고택(俊民 膏澤)은 아니하려 하였더니, 할 밖에는 없는것이 번에 없는 별봉(別封)이 근래에 무수하고, 궁교(穹交) 빈족(貧族) 걸패 (乞牌)들은 그칠 적이 바이 없고, 원청 주야 경륜 생각하다 못하야 묘리를 터득해 내인 것이, 이방놈과 짜고 묵은 은결 (隱結) 들쳐내어 단 둘이 쪽반하니, 자미가 바이 없지 아니 하고, 또 사십 팔면 부민들을 낱낱이 추려내어, 좌수차첩(座 首差牒) 풍헌자첩(風憲差牒)을 내어 주면, 묘리가 있고, 금년 에 와서는 향고소임으로도, 착실히 재미를 보았고, 또 환자 요리(還子要利)도 해롭지는 아니하오. 이러나 하기에 지탱을 하여가지 그렇지도 아니하면 어림없소."
 
121
하니 만좌 수령들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극구 칭송(極口稱頌) 한다.
 
122
운봉 영장이 듣다 못하여,
 
123
"여보 본관 객담 마오. 거 원 무슨 말이라고 하오? 여차 성연에 풍월귀나 합시다." 하니,
 
124
"운봉 말씀이 옳소."
 
125
하고 좌우 수령들이 모두 좋다 하여, 일변 먹을 갈라고 시 축을 내어 놓고, 운자를 내고 어떤 수령은 글귀를 생각하노 라고 눈을 내리감고 어떤 수령은 수염을 내리쓸고 어떤 수 령들은 몸을 흔들고 어떤 수령능 콧소리'응흥흥'하고 생 각난 글귀를 중얼거려 보고 모두 무슨 큰일이나 난 듯이 조 용하다.
 
126
몽룡이 나앉으며,
 
127
"상좌에 말씀 올라가오. 나도 비록 걸객이나 오늘 좋은 잔치에 배부르게 얻어 먹고, 그저 가기가 섭섭하니 지필이 나 빌리시면 차운(次韻)하나 하오리다."
 
128
걸인이 글을 짓는다는 말에 만좌가 웃고,
 
129
"저꼴에 또 글이라니."
 
130
하고 조롱하는 것을 운봉이 만류하여,
 
131
"문무에 귀천 있소?"
 
132
하고 지필을 당기어 몽룡의 앞에 놓으니, 본관이 보고 앉 았다가 무릎을 턱 치고,
 
133
"옳소. 그 손이 글을 잘못 짓거든 좌석에서 몰아 내치는 것이 어떠하오?"
 
134
하고 여러 수령을 돌아보니 모두 좋다 한다.
 
135
몽룡이 붓을 들고 웃으며,
 
136
"만일 내가 글을 잘 지으면 본관을 몰아 내칠까."
 
137
하니 본관이 심히 못하땅하여'응'하고 고개를 돌린다.
 
138
몽룡이 운자를 보니 기름고(膏) 높을고(高)자 절귀운이라.
 
139
순식간에 일필휘지로 써 놓고 유심하게 운봉의 옆구리를 꾹 찌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온다.
 
140
운봉이 그 글을 보니,
 
141
"금준에 좋은 술은 천 사람의 피로구나.
 
142
옥반에 맛난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 떨어지매 민루조차 떨어지니, 가성 높은 곳에 원성이 높았세라."
 
143
글을 다 보고 나더니 눈치 빠른 운봉 영장은 벌써 알아차 리고 본관더러,
 
144
"나는 백성의 환자(還子) 주기를 금일로 출령하였기로 먼 저 가오."
 
145
하고 일어나 나간다.
 
146
곁에 앉았던 전주판관(全州判官)이 운봉의 하는 양이 수상 한 것을 보고 몽룡을 글을 당기어 보더니,
 
147
"나는 미진한 급한 공사 있어 먼저 돌아가오."
 
148
하고 일어서 나가고 연하여 고부현감(古阜懸監)이 또,
 
149
"하관은 하루거리를 얻은 때가 되었으니 먼저 가오."
 
150
하고 황망히 일어 나아간다.
 
151
본관이 취흥이 도도하여 화다가 화를 내며,
 
152
"낙극진환(樂極盡歡)이라니 종일토록 놀지 않고 공연히들 먼저 찍찍 달아나니 남의 잔치에 파흥이라 고이한자들."
 
153
하며 먼저 가는 수령들을 흘겨보더니 다시 좌중을 바라보 며,
 
154
"여보시오. 가는 이는 가거니와 우리는 세잔갱작(洗盞更 酌)하여 훗토시 놉시다."
 
155
이때에 삼방하인(三房下人)들이 마침 때가 되어 관문 근처 로 이 골목 저 골목 난데 없는 망건 장사 파립 장사 미역 장사 황화 장사들이,
 
156
"헌 망건에 헌 갓 팔 것 있소?"
 
157
"미역들 안사리아—울산 장곽들 사오."
 
158
"바늘 사리아. 실과 물감들 사리오."
 
159
"헌 담뱃대 파쇠 삽시다."
 
160
하고 야릇한 소리로 외우고 돌아 다니며, 어사의 부채군호 만 살피더니, 몽룡이 부채를 넌짓 들고 상방 하인 손을 치 니, 어디서 나오는지 군관서리 역졸들이 청건대를 둘러 띠 고, 흥전립을 젖혀 쓰고 우르르 삼문으로 달려 들어온다. 그 중에 청파역졸이 달 같은 마패를 해같이 번쩍 들어 삼문을 쾅쾅 두드리며,
 
161
"이 고을 아전놈아 암행어사 출또야 큰 문 바삐 열어 라!"
 
162
하고 소리가 벽력같고 한편으로는 봉고(封庫)하고 우직근 와직근 두드리며 급히 몰아쳐 들어 오며,
 
163
"암행어사 출또하오!"
 
164
이 소리 한 마디에 기왓골이 터지는듯 하늘에 다은 해도 발을 잠깐 머무르고 공중에 나는 새도 소리를 못하고 푸득 푸득 떨어진다는 것이다. 만좌 수령이 청천벽력을 당하니 한참은 쥐죽은 듯 소리도 못 내고 몸도 못 움직이고 눈이 휘둥글하여 벌벌벌벌 떨고만 앉았고 본관은 지랄하는 사람 모양으로 입술이 개흙 빛이 되어 게거품을 푹푹하고 풍동한 사람 모양으로 머리와 사지를 덜덜덜 떨고 앉았다.
 
165
된벼락을 맞은 수령들이 겨우 정신을 수습하였다는 것이 반 밖에 수습이 되지 못하여,
 
166
"갓 내어라 신고 가자."
 
167
"나귀 내어라 업고 가자."
 
168
"창의 잡아라 타고 가자."
 
169
"물 마르고나 목을 다오."
 
170
하고 거동 언어 수작이 뒤섞여 나오니 임실현감(任實縣監) 은 갓을 급히 쓰노라고 갓모자를 뒤켜 쓰고,
 
171
"여보아라. 어느 놈이 갓구멍을 막았구나."
 
172
"갓을 뒤켜 쓰셨소."
 
173
"압다. 언제 바로 쓸 새 있느냐. 좀 눌러다고."
 
174
하여 그대로 꽉 누르니 갓이 벌컥 뒤집힌다. 겨우 갓을 쓰 고 나서 오줌을 눈다는 것이 칼집을 쥐고 누니 오줌 맞은 하인들이,
 
175
"허 요사이는 하늘이 비를 끓여 내리나보다."
 
176
하고 갈팔질팡하고 구례 현감(求禮縣監)은 말을 거꾸로 타 고 채찍질을 하니 말이 뒤로 달아난다. 황겁하여,
 
177
"이 말이 웬 일이냐. 본래 목이 없느냐."
 
178
"거꾸로 타셨소, 내려서 바로 타시오!"
 
179
"이애 어느 겨를에 바로 타랴—목을 빼어다가 앞에 박으려 무나."
 
180
하고 성화하니, 여산 부사는 쥐구멍에 상투 박고,
 
181
"내 상투 좀 빼어 주려무나."
 
182
하고 우는 소리를 하고 모두 말이 빠져 이가 헛 나가고, 이 모양으로 덤벙이니 차소위 말이 아니다.
 
183
이때에야 본관도 적이 정신을 차리어 바지에 똥을 싸가지 고, 겁결에 내당으로 뛰어 들어갈 제 종년이 내다르며,
 
184
"큰일 났소. 큰일 났소?"
 
185
"왜 또 무슨 큰일 났느냐?"
 
186
"대부인 마누라 뒤를 싸고 실내 부인 찌를 싸고 서방님도 소마 싸고 도련님도 밑을 싸고 소인네도 똥을 싸고 왼집안 이 모두 똥 빛이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187
하니 남원 부사 분부하되,
 
188
"여보아라 발 잰 놈 바삐 불러 왕십리 급히 가서 똥 거름 장사 있는 대로 성화같이 착래하라!"
 
189
하고 호령이 추상 같으나 대답하고 나서는 놈은 하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190
이때에 몽치찬 군관 역졸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리치 고, 저리 치고 함부로 둘러치니, 장구통도 깨어지고, 무고통 도 깨어지고, 피리젓대는 짓밟혀 부러지고, 해금대는 꺾어지 고, 거문고 가얏고는 바서지고, 양금 줄도 끊어지고, 교자상 도 부러지고 다담상도 깨어지고 준화 꽃은 흩날리고 화기 조각은 산산히 부서지고, 양각등은 으스러지고, 사초롱은 미 어지고, 그만 큰 잔치고 다 깨어져서 동헌이 텅 비었는데 좌수(座首) 이방은 곡격으로 발광하여 덤벙이고 삼방 관속 육방 아전 내외아사(內外衙舍) 위 아래 할 것 없이 쥐구멍으 로, 개구멍으로 굴뚝 구멍으로 황겁하여 달아난다.
 
191
어사 또 동헌 대청에 뚜렷이 앉아 삼방 하인 분부하여 대기치(大旗幟) 버려꽂고 숙정패(肅靖牌) 내어 꽂고 좌기(左記) 하니 남원 부사 절인 배추잎이 되어 어사 앞에 읍하고 서서 전전긍긍하고 처분을 기다린다.
 
192
어사 위의를 엄숙히 하고 소리를 가다듬어,
 
193
"국운은 망극하여 국록지신 되었거든, 성지(聖旨)바자와서 치민선정(治民善政)이 당연하거든, 곡법학민(曲法虐民)하고 준민고혈(晙民膏血)하여 남원 일경 변시 도탄(塗炭)에 오오(傲傲)하니 그래 어심(於心)에 무괴(無愧)하오?"
 
194
하니 부사는 고개를 수그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195
"죄당만사(罪當萬死)오나 어사또의 관후하신 처분만 기다 리오."
 
196
하고 머리가 허연 것이 눈물을 뚝뚝 흘린다.
 
197
어사또 변부가가 정경이 가긍하지 아님이 아니나, 봉명 사 신으로 사곡한 정을 둘 수 없어 변부사를 봉고파직하여 즉 각으로 지경 밖에 내치라고 엄히 분부하였다. 변부사를 파 직하여 지경 밖으로 내치라고 분부한 후에, 삼공형(三公兄) 을 불러 여러 가지 읍폐(邑弊)를 묻고, 도서원(都書阮)을 불 러 전결(田結)을 묻고, 사창빛(社倉色) 불러 곡부를 묻고, 군기빛(軍器色) 불러 군장과 복색을 묻고, 전세빛(田稅色) 불 러 새미난봉(塞米難捧)을 물어, 잘한 놈은 칭찬하고, 못한 놈은 형추일치맹타(刑推一致猛打)하여 단단히 때려 방송하 고, 예방(禮訪) 불러 불효불순 강상죄인을 찾아 일일이 원찬 (遠簒)으로 추론(追論)하고, 형방(刑房)을 불러 살옥(殺獄)을 물어 죄 있는 놈은 곧 처결하고, 애매하게 붙들린 백성이며 무슨 죄 있어 잡아다가 가두고도, 잊어버렸던 것이 이러한 해로 묵은 구수들을 모조리 찾아 내어 즉각으로 방송하라 분부하고 이 모양으로 모든 급한 공사가 얼추 끝난 뒤에 옥 사장을 불러,
 
198
"춘향이 대령하되 모든 기생 안동하여 대령하라."
 
199
옥사장이 성화같이 옥으로 달려가서 옥문을 박차고 들어 가,
 
200
"춘향아 나오너라!"
 
201
하고 소리 소리 외치니 춘향이 혼 없이 옥문으로 나오며,
 
202
"아이고 인제는 죽었구나. 몸이 무쇠로 되었기로 또 맞고 야 어이 살리."
 
203
하고 옥문을 나서는 길로 사방을 살펴보나 몽룡은 형적도 없다.
 
204
"아이고 어인 일고, 백 번 천 번 부탁하였으니 설마한들 잊었으리. 무정도 하신 님이로다."
 
205
하고 탄식하는 것을 보고 월매가,
 
206
"애고 이애 그년석 달아나서 벌써 담양 갔겠다. 저도 염 치가 있는 사람이지 무슨 면목에 네 낯을 대하랴. 집에서 자고 아침 처먹고 슬며시 나간 길로 일향 소식이 없으니, 아조 간 게 분명하다. 반점도 생각마라. 그 년석이 분명 동 냥군이 되었더라. 들겻잠에 이를 갈며 기지게에 잠꼬대로 밥 한 술 먹이시오, 돈 한 푼 좋은 일 하오, 하고 한두 번이 아닐러라. 만일 읍중 사람들이 권자인 줄 알고 양이면 손가 락질 지목하여 춘향이 서방 춘향이 석방할 터이니, 그런 망 신 또있느냐. 그래도 양반의 씨라 체면은 주릴하게 보니 그 래 정녕 달아났다. 앗어라 생각마라. 그년석 뺑소니했다. 접 지를 보아하니 소도적놈이 다 되었더라. 이집 저집 다니다 가 남의 것을 자리내면 그런 우환 또 있으며, 물어 줄 수 밖에 있느냐. 그년석을랑 애이 다시 꿈에도 생각말고, 만일 금일 좌기에 사또 다시 묻거들랑 잔말 말고 허락하면 그 아 니 좋겠느냐. 물라는 쥐나 물지 공연히 수절이나 화절이 니......"
 
207
춘향이 울며,
 
208
"아이고 그만하오. 듣기 싫소."
 
209
하고 끌려 갈면서 여전히 사방을 돌아보며,
 
210
"아이고 이를 어찌하며, 부모 유데도 아끼지 않고, 그 무 서운 형장을 마자 뼉다귀가 부서지면서도, 이를 악물고 그 님 위하여 수절을 하였건만, 전고, 천지, 우주간에 이런 일 도 또 있는가. 서방님 어데로 가고 나 죽는 줄 모르시나. 그 리다가 명천이 감동하여 꿈결같이 간신히 만나 할 말도 다 못하고, 나 죽는 양이나 친히 보고 남의 손 대이지 말고, 감 장이나 하여 달라고 신신 부탁하였더니 끝끝이 내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서방님이 날 속였네. 서방님마저 날 저바리 니 내 일을 어이할꼬—어디를 가 계시오? 서방님, 서방님."
 
211
하고 칼머리를 앞으로 와락 빼치면서 뒤으로 벌떡 주저 앉 아 두 다리를 펴 버리고 대성 통곡한다—
 
212
"이제야 참으로 나는 죽네—오늘날에 나는 죽네. 천지일월 성신님네야 오늘날에 나는 죽소. 산천 초목 금수들아, 오늘 날에 나는 죽네—수절하다가 나는 죽네. 내 일생은 오늘 뿐 이요. 오늘이 이 세상에 영결이로구나. 상단아! 마님 모시고 부대 잘 있거라. 살아가다가 서방님 만나거든 내 세세한 말 씀이나 하여다고."
 
213
상단이 춘향의 칼머리를 붙들고,
 
214
"아씨 그런 말씀마오—아씨 상사만 남면 쇤네는 살겠소?"
 
215
하고 운다.
 
216
춘향이 다 붙들려 일어나,
 
217
"마누라님들 나 죽은 뒤에 우리 어머니 부대 불쌍히 여겨 주오. 가끔 찾아보고 위로도 하여 주시고 밥 한 술이라도 잡숫도록 권하여 주오. 그리하시면 내가 죽은 혼이라도 마 누라님네 수복강녕하시고 후세에는 서왕 세계 극락 세계 가 시게 발원하오리다."
 
218
하고 몇 걸음 가다가는 또 혼절하여 칼머리를 안고 거헌 뜰에 놓으니 그래도 춘향은 깨어나지 못한다.
 
219
몽룡은 곧 뛰어 내려와 춘향을 드립다 안고 울고 싶건마는 체면에 그리도 못하고,
 
220
"아까 놀음 노든 기생 다 잡아다가 춘향의 쓴 칼을 저의 이로 물어 뜯어 즉각내로 벗기게하라.
 
221
하고 분부하니 뭇기생은 어인 영문을 모르고 분부를 거역 하지 못하여 달려들어 젊은 년은 이로 뜯고, 늙은 년을 혀 로 핥아 침만 바른다."
 
222
어사또 보고,
 
223
"조년은 어찌하여 뜯는것이 없나니?"
 
224
하고 호령하니 늙은 기생이 황공하여 부복하며,
 
225
"예 소인은 이가 없어 침만 발라 주면 불어서 젊은것들이 뜯기가 쉽사이다."
 
226
하고 아뢴다.
 
227
뭇기생이 가만히 보니 춘향의 맘을 좀 사두어야 할 모양이 아, 어떤 약은 년은 춘향의 귀에다가 소근소근,
 
228
"춘향야 내 거번에 산삼 넣고 속미음하여 보냈더니 먹었 느냐?"
 
229
하기도 하고, 어떤 년은,
 
230
"이애 일전에 실백잣죽 쑤어 보낸 것 먹었니?"
 
231
하기고 하고, 또 한 년은,
 
232
"수일전에 편강 한 봉 보냈더니 받었니?"
 
233
하기도 하고 다투어 용공을 하니 마치 모이 주어먹는 병아 리떼 소리와 같다.
 
234
어사또 어성을 높여,
 
235
"요 요괴스러운 년들아. 무슨 잔말을 그리 하느냐? 칼 바 삐 벗기라—."
 
236
하고 호령이 추상같다.
 
237
기생들이 겁을 내어 죽기를 기쓰고 아드득 아드득 춘향의 칼을 뜯으니, 마치 뭇개들이 뼈를 뜯는 것 같다. 이빠리도 빠지는 년, 입시울도 터지는 년, 볼따귀도 뚫어지는 년, 턱 아래로 버서진 년—쥐 뜯듯하여 죽을 힘을 다 들여서 간신히 칼을 버겨 놓았으나, 춘향은 아직도 기절하여 피어나지를 못한다.
 
238
어사또 의원을 명하여 곧 약을 지으라 하니, 김 주부, 이 주부 서로 의론하여 두루마리 펼쳐들고 붓대춤 추어가며, 생맥산(生脈散), 회생산(回生散), 패독산(敗毒散) 겁결에 함 부로 약명을 내어, 발 잰놈 시켜 지어다가 바삐 다려 먹이 니 춘향이 '휘휴'길게 한숨 쉬고 눈이 번히 뜨여 냉수를 찾는다. 기생들이 저마다 뛰어가서 냉수를 떠다가 춘향을 먹이려다가 못 먹인 년은 열없어 돌아서서 제가 그 물을 먹 어 버린다.
 
239
춘향이 회생하는 것을 보고 몽룡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정신이 쇄락하여지고 맘이 상쾌하여지니 즉각에 뛰어내려가 붙들고 싶으나 한 번 더 꾹 참고 음성을 변하여,
 
240
"여보아라, 춘향아! 노류장화는 인개가절이라. 들으니 요 마 창기년이 수절을 한다 하니 사심 해고로다. 네 본관의 분부는 아니 들었거니와 내 분부도 시행 못하겠느냐. 이제 를 방석(放釋)하여 수정을 정하는 것이니 바삐 나가 소세하 고 이제 올라 수청하라."
 
241
이 말에 춘향이 땅에 고꾸라지며,
 
242
"아이고 이 말이 웬 말이요? 더러운 소리를 또 들었네.
 
243
조악돌은 면하였더니 수만석을 만났고나! 우리 나라 국록지 신은 모두 이러하오? 봉명 사신 어사또는 수절하는 춘향이 의 애매한 죄를 밝혀 주지 못할 망정 이런 분부 또 하시오!
 
244
나를 죽이시오! 매로나 칼로나 죽다 남은 이 내 몸을 맘대 로 죽이시오. 죽이시오. 철석 같은 이 내맘은 변할 리 만무 하니 어서어서 죽이시오!" 하고 방성 통곡한다.
 
245
춘향이 이렇게 악을 쓰고 우니 몽룡이 서안을 치고 대소하 며,
 
246
"열녀로다. 열녀로다. 춘향의 굳은 절개는 천고에 무쌍이 요, 하늘에 닿은 의기는 고금에 너뿐이로다."
 
247
하고, 이별할 때에 춘향에게 받은 옥지환을 내어 행숭기생 을 불러,
 
248
"이것 갖다 춘향이 주라."
 
249
행수기생이 지환을 가져다가 춘향의 앞에 놓으니, 춘향이 정신없이 지환인 줄은 알았으나 낭군 이별시에 선물로 준 것인 줄을 채 모르고 우드머니 보고만 앉았다.
 
250
몽룡이 그런 줄 알고,
 
251
"그 지환을 모르느냐—네 지환을 네가 모르느냐?"
 
252
그제야 춘향이 눈물을 씻고 자세히 보니, 과연 삼년 전에 이도령 이별할 때에 선물로 준 지환일시 분명하다.
 
253
일변 놀라고 일변 반가와,
 
254
"이것이 웬 일인가."
 
255
하고 지환을 집어든다.
 
256
몽룡이 갑갑하여 본시 음성으로,
 
257
"눈을 들어 나를 보라."
 
258
그 음서이 귀에 익구나, 그 음성이 귀에 익다, 정녕 님의 음성이로다, 하고 눈을 들어 치어다보니 철관풍채(鐵冠風采) 수의어사(繡衣御史) 미망랑군(未忘郞君)이 정녕하다. 천근같 이 무겁던 몸이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할 듯하여 한 번 뛰 어 올라가 몽룡에게 매어달려 몸을 비비 꼬고 한참이나 말 이 없다가,
 
259
"꿈이오? 생시오? 내가 죽어 혼이오니까."
 
260
하고는 더 말이 없이 울고 쓸어진다.
 
261
몽룡이 춘향의 등을 어루만지며,
 
262
"기특하다—갸륵하다."
 
263
하고는 못내 반겨하고 칭찬한다.
 
264
이때에 월매는 차마 내 딸의 맞아죽는 것을 어찌 보랴 하 여 집에 돌아가 혼자 울고 있다가 춘향이 어사또 수청들게 되었단 말을 듣고,
 
265
"애고 내 딸이야. 내 딸 착하다. 기특하다. 어사 사위는 참말 뜻 밖이다."
 
266
하고 뒤어 들어오며,
 
267
"좋을 좋을 좋을시고. 어사 사위가 좋을시고. 엄동 설한 춥더니만 봄될 날이 또 있고나. 즐거움을 못 이기니 어깨춤 이 절로 난다. 강동에'범'이더니 길나라비가 훨훨, 소주 한 잔 먹었더니 곤대짓이 절로 난다. 탁주 한잔 먹었더니 엉덩춤이 절로난다."
 
268
하고 삼문에 다다라 문에 있는 관속들을 보고,
 
269
"발가락을 모조리 뺄 놈들 같으니, 한서부터 주리를 할라 삼방관속 다 나오소. 그네들 생심이나 내돈치고 아니 줄까.
 
270
고치려 하여도 손이 쉽고 속이려 하여도 잠깐이다."
 
271
하고 행악을 하니 관속들이 절을 하며,
 
272
"아주머니. 요사이 안녕하압시오?"
 
273
"이 사람들 요사이 둔보는 사람들이 그리 수들 센가 그리 들 마소—그렇지 아니하니."
 
274
"없소. 망녕입시오. 그럴 리가 있삽니까? "
 
275
한 관노 반가이 마주 나와,
 
276
"여보 자치신네 이애 일은 그런 기쁜 일이 없오."
 
277
월매 보니 그 관노는 밉지 아니하던 사람이라, 좋아라고 걸음을 멈추고,
 
278
"아 사람 이제야 말이지 어제 이 도령인가 이 서방인가 한 작자가 우리 집에를 찾아왔는데 주제 꼴을 보니, 곧 순 전 거지어든 우리 아기는 그래도 든 정이 나지 못하여 차마 박대를 하지 못하여서 날더러 그것을 집에 다려다 두고, 먹 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키라고 하데마는 그것이 공부를 하 면 어사나 될 터인가 감사나 될 터인가. 꼴이 집에 두어야 남이 우일 듯하기에 곧 그날로 따세었더니, 저도 염치가 없 었든지 그길로 달아나고 말지 않았겠나. 그래 아침에 아기 더러 이 말을 하고, 다시 생각말라고 다시 사또가 묻거든 두말 말고 방수들라 하였더니 저도 그 년석이 꼴보기 어이 없이 샐죽했든 게야. 그리 하였으니 고것이 내 말대로 어사 수청하락하였다하니 참 우리 딸 상냥하지......말이야 바로 만 일 본관수청 안 들었드면 오고랑이가 또 되었을 것을 요런 깨판이 또 있나? 이제야 이 서방 년석이 또 온다 한들 이런 소문 듣게 되면 무슨 낯에 말을 하겠나. 이제는 기탄없 지......애고 그런 흉한 놈을 이제는 아조 배송이다. 좋을 좋 을 좋을시고......"
 
279
아전 하나가 나오다가 듣고,
 
280
"쉬!"
 
281
"쉬라니? 누구더러 쉬래?"
 
282
"어사또가 전등 책방 도련님이라오. 철도 모르고."
 
283
월매 깜짝 놀라다가 다시 웃으며,
 
284
"에이 누구를 속일 양으로 그놈이 어사가 되어?"
 
285
"아니 아니 아니오. 천만 의외에 말씀이요. 서울놈이 음흉 하여 가어사로 다니나 보오."
 
286
이 모양으로 아전의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고 우쭐우쭐 춤 을 추며 동헌으로 들어가서 어사를 치어다보니 이제 왔던 네로구나. 마른 하늘에 된벼락이 어디로서 내려온고. 월매 기가 막혀 벙벙하고 섰다가 그만 펄쩍 주저 앉아 아무 소리 도 못한다. 몽룡이 월매를 내려다 보고,
 
287
"이 사람! 요사이도 집팔기 잘하는가."
 
288
하니 월매 열없이 웃고,
 
289
"이제야 그 말씀이지 어사또 일을 벌써 그때 알았지요.
 
290
그럼 하기에 도로마 한 필 해남포 한 필 급히 바꾸어다가 사또 옷 지으랴고 빨리 보냈겠오. 지더라 물어보오. 모녀지 간이언마는 그때 그 말을 일언반사나 하였는가. 내 집에 주 무시면 혹시 누가 눈치나 알까 해서 아조 딱지손이 한 것이 지 뉘가 몰랐다구요. 나를 눌만 여기오—순라골 까마중이요.
 
291
겉은 퍼래도 속은 다 익었다오."
 
292
하고 빤빤스럽게 대답을 한다.
 
293
몽룡이 기가 막혀,
 
294
"이 사람 얼굴 들고 말하소."
 
295
월매 얼굴을 숙이며,
 
296
"애고 얼굴에 쥐가 나지요......그렇지만 아무리 사또시기로 장모를 어찌할라오?"
 
297
하니 춘향이 아까부터 딱하여,
 
298
"여보 그만두오."
 
299
"그만둘까, 그러하지."
 
300
하고 탈것 마련하여 춘향과 월매를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 자리로 남원부사 봉고파출한 연유로 감영에 즉일로 보장 띄 우고 본관의 미결공사 거울같이 처결하여 버리고, 이방불러,
 
301
"내외고사(內外庫舍) 재물들이 모두다 탐장(貪臧)이니 동 헌에 있는 것은 민고(民庫)로 집장(執臧)하고 내아(內衙)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논매하여 금일내로 관랍하라."
 
302
분부하고 모든 공사 끝이 나니 벌써 황혼이 되었다. 몽룡 이 사초롱에 붙들리고 예전 가던 길을 걸어 춘향의 집 찾아 가니, 왼 집안 구석구석이 촛불이 휘황하고, 월매는 손수 어 사또의 저녁 진지상을 차리노라고 분주하다.
 
303
그날 밤을 춘향을 위로하며 지내고 이튿날 미명에 춘향의 손을 잡고,
 
304
"나는 봉명 사신 몸이 되어 일각을 지체할 수 없어 이제 떠나 감영으로 가거니와 만사는 이방에게 분부하여 두었으 니, 너는 며칠 조리하여 어머니 모시고 서울로 치행하라. 그 러면 서울서 반가이 만나리라."
 
305
하고 떠나니 춘향이 일변 기쁘고 일변 비감하여,
 
306
"또 이별이오?"
 
307
하고 웃는다.
 
308
이로부터 전라도 오십칠관 좌우에도 모든것을 다 돌아서 승일상래(乘馹上來)로 입경하여 답전(踏前)에 복명(復命)하니 성상이 반기며, 귀히 여겨 손을 잡으시고, 원로 행역을 위로 하시며 민정을 물으신다. 몽룡이 경력문서(經歷文書)와 행중 일기(行中日記)를 받들어 드리오니 용안이 대열하사 칭찬을 마지 아니하시고 동벽응교(東壁應敎)를 제수하사,
 
309
"나가 쉬라."
 
310
하시는 하교를 듣고 몽룡이 땅에 엎디어 춘향의 정절을 주 달하니, 성상이 들으시고,
 
311
"그 정절 지귀하다."
 
312
하시고 곧 이조(吏曹)에 하시하사 정렬부인(貞烈婦人)이 직 첩을 내리시었다. 이런 영광이 또 있는가.
 
313
몽룡이 사은퇴조(謝恩退朝) 하여 북당(北堂)에 현알하고 사 당에 허배한 후에 부모전에 면품하여 춘향의 일을 여짜오 니, 부모도 기특히 여겨 곧 대연을 배설하고, 종족이 모이어 남원 집을 부인으로 승좌하여 백년 해로하고, 벼슬은 육경 상공을 다 지나고, 아들이 삼형제요, 내외손이 번성하니, 이 런 기사가 또 있는가. 이때부터 팔도 광대들이 춘향의 정절 을 노래지어 수백년 래로 불러오더니 후세에 춘향의 동포 중에 춘원이라는 사람이 이 노래를 몰아서 만고열녀 춘향의 사적을 적은 것이 이 책이다.
 
314
(끝)
【 】출또
▣ 우선 표시 (부가정보나 한줄평에서 우선순위 높은 자료입니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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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견 3
필아저* (49.166.***.**)   
2021-04-07 17:03:22
『일설 춘향전』은 『춘향전』의 여러 계보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춘향전』의 계보들을 하나로 종합하는 가장 최종의 『춘향전』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는 식민사회에서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겠다는 포부에 맞닿은 것이며, 그러한 전통을 기획하는 절대적인 지위에 작가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49.166.***.**)   
2021-04-07 17:02:30
『일설 춘향전(一說春香傳)』은 ‘춘향’이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1925년 9월 30일부터 1926년 1월 3일까지 총 96회 분량으로 연재되었다. 1925년 『동아일보』는 『춘향전』을 “조선 사람의 전통적 정신”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설정하고 이를 다시 씀으로써 “참된 국민문학”을 만들어낼 것을 이광수에게 요청하고, 이러한 개작의 방향은 계몽주의적 태도를 전제로 하는 이광수의 창작의 방식과 교호하면서 근대적인 문학의 체제를 갖춘 새로운 『춘향전』을 탄생시킨다. 『일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기본적인 서사를 바탕으로 하되, 식민사회에서 요청되었던 조선적 전통을 기획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일설 춘향전』의 창작은 적층적이고 서민적인 형태로 유통되었던 『춘향전』에 작가적 주체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근대적인 소설의 형태로 확정하였다는 의미를 지닌다. - 교보문고(해설)
필아저* (106.240.***.***)   
2021-03-11 12:23:29
춘향전 중에 최고의 작품인 것 같습니다. 고전 소설을 현대 소설로 재탄생한 작품 중에는 이광수의 '허생전 (이광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광수 허생전 강추...
“게시작품”
▪ 분류 : 근/현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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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설춘향전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25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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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장편소설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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