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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靑春) ◈

◇ 1 ◇

해설목차  1권 2권  3권  4권  5권  6권  7권  8권  9권  10권  11권  12권  13권  14권  15권  16권  17권  1926년
나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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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安東)이다. 태백(太白)의 영산(靈山)이 고개를 흔들고 꼬리를 쳐 굼실 굼실 기어 내리다가 머리를 쳐들은 영남산(嶺南山)이 푸른 하늘 바깥에 떨어진 듯하고, 동으로는 일월산(日月山)이 이리 기고 저리 뒤쳐 무협산(巫峽山)에 공중을 바라보는 곳에 허공중천이 끊긴 듯한데, 남에는 동대(東臺)의 줄기 갈라산(葛蘿山)이 펴다 남은 병풍을 드리운 듯하다.
 
2
유유히 흐르는 물이 동에서 남으로 남에서 동으로 구부렸다 펼쳤다 영남과 무협을 반 가름하여 흐르니 낙동강(洛東江) 웃물이요, 주왕산(周王山) 검은 바위를 귀찮다는 듯이 뒤흔들며 갈라 앞을 스쳐 낙동강과 합수(合水)치니 남강(南江)이다.
 
3
옛말을 할 듯한 입 없는 영호루(暎湖樓)는 기름을 흘리는 듯한 정적 고요한 공기를 꿰뚫어 구름 바깥에 솟아 있어 낙강(洛江)이 돌고 남강이 뻗치는 곳에 푸른 비단 같은 물줄기를 허리에 감았으니, 늙은 창녀(娼女)의 기름때 묻은 창백한 얼굴같이 옛날의 그윽한 핑크 색 정사(情史)를 눈물 흐르는 추회(追懷)의 웃음으로 듣는 듯할 뿐이다.
 
4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태화산(太華山) 중록(中麓)에 말없이 앉아 있는 서악(西岳) 옛 절 처마끝에는 채색 아지랭이 바람에 나풀대고 옥동(玉洞)한 절〔大寺〕 쓸쓸히 빈 집에는 휘 -- 한 바람이 한문(閑門)을 스치는데 녹슬은 종소리가 목쉬었다.
 
5
노래에 부르기를 성주(城主)의 본향(本鄕)이 어디메냐고 읍(邑)에서 서북으로 시오리를 가면은 바람에 불리고 비에 씻긴 미륵(彌勒) 하나가 연자원(燕子院) 옛 터전을 지킬 뿐이다.
 
6
낙양촌(洛陽村)의 꿈 같은 오계(午鷄)의 울음 소리 강물을 건너 귓속에 사라지고, 새파란 밭 둔덕에 나어린 새악시의 끓는 가슴 타는 마음을 짜내고 빨아내는 피리소리는 어느 밭 두덩에서 들리는지 마는지.
 
7
벽공(碧空)을 바라보니 노고지리 종달종달 머리를 돌이키니 행화(杏花)ㆍ도화(桃花) 다 피었다. 할미꽃 금잔디 위에 고달피 잠들고, 청메뚜기 콧소리 맞춰 춤춘다.
 
8
일요일이다. 오늘도 여전히 꽃 피고 나비 춤추는 파랗게 개인 날이다.
 
9
석죽(石竹)색 공중이 자는 듯이 개이고 향내 옮기는 봄바람이 사람의 품속으로 숨바꼭질한다. 버들가지에는 단물이 오르고 수놈을 찾고 암놈을 찾아 날개를 쳐 푸르륵 날고 목을 늘여 길게 우는 새들은 잦아지는 봄꿈에 취하여 나뭇가지에서 몸부림한다.
 
10
반구 귀래 (伴鷗) (歸來)의 두 정자를 멀리 바라보는 곳에 낙동강 푸른 물이 햇볕에 춤을 추며 귀에 들리는 듯이 고요한 저쪽 모래톱에는 사공이 조은다.
 
11
신세동(新世洞)에서 빙그르 서남으로 돌아가는 제방 위에는 머리를 모자에 가리고 웃옷을 한팔에 걸은 방년 이십의 소년은 얼굴이 향내가 나는 듯이 불그레하게 타오르고, 두 눈은 수정 알 박은 듯이 영롱한데, 머리는 흑단(黑檀)같이 검고 눈썹은 붓으로 그린 듯하고 두 입 가장자리는 일수 조각장이 가 망칠까 마음을 졸여 새긴 듯이 못 견디게 어여쁘다.
 
12
그는 영호루 편을 향하여 걸어갔다. 걸음걸음이 젊은이의 생기가 뛰고 허리를 휘청 고개를 까댁, 흐르다 넘치는 끓는 핏결이 그의 핏속에서 춤춘다.
 
13
그는 버들가지를 꺾어 입 모퉁이를 한 옆으로 찡그리며 한 손에 힘 주어 그것을 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어 피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만족치 못한 듯이 길 옆에 내던지고 또다시 댓 걸음 앞으로 가다가 다시 버들가지를 찢어 내버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아래위 툭 잘라 꺾어 던지고 다시 비틀어 입으로 잡아 빼었다. 그러나 공교히 옹이의 마디가 쭉 훑는 바람에 애써 비튼 버들을 반가름하여 놓았다.
 
14
그 소년은 잠깐 눈을 밉상스럽게 찡그리고 한참 그것을 바라보더니 휙 집어 풀 위에 던져 버리고 얄상궃게 싱긋 웃으면서,
 
15
'빌어먹을 것 괜히 애만 썼네'
 
16
하고 또다시 버드나무를 쳐다보았다.
 
17
이번에는 기름하고 휘청휘청하는 놈을 길게 찢었다. 그리고는 풀 위에 주저 앉았다. 마음 유쾌한 잔디가 앉아 있는 몸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 어루만지는 듯이 편안하게 한다.
 
18
그는 피리를 내었다. 칼을 대고 가지를 돌려 아래위 쓸데없는 것을 베어 버리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졸여 살며시 빼낸 것이 버들피리다. 그는 그 끝을 둘째 손가락 위에 대고 칼날을 세워 혀를 내려고 살짝 겉꺼풀만 벗겼다. 그러고 또다시 저쪽 편 혀를 내려 하다가 그는 갑자기 '에쿠'하고 칼 들은 손으로 그 둘째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그 손가락을 입에다 넣고 호호 불었다. 내려는 피리는 그의 겨드랑이에 끼어 있었다.
 
19
손가락에서는 진홍빛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그 소년의 주머니에는 종이도 없고 수건도 없었다. 양복 입은 그에게 피나는 손가락을 동여맬 만한 옷고름이나마 없었다. 쓰리고 아픔을 견디다 못하여 상을 찌푸리고 사람의 집을 찾아간다는 곳이 영호루 높은 집 옆으로 돌아 초가라 삼 간을 해 정히 짓고서 오는 이 가는 이에게 한 잔 술 한 그릇 밥을 팔아 가면서 그날 그날을 지내가는 주막집이었다.
 
20
"물 주소."
 
21
꽉 닥치는 감발한 장돌뱅이.
 
22
"그런둥 그런둥, 허허허."
 
23
큰 웃음 웃는 촌양반이 밥을 먹고서 막 일어서 들메인 미투리를 두어 번 구르고,
 
24
"야, 주인 아즈먼네이 또 만납시다이."
 
25
"응"
 
26
하는 군소리에 뭉치인 인사를 던지고 언제 보아도 그저 그대로 말한 마디 없는 영호루만 쳐다보고서 무슨 감구지회가 그의 마음을 쓰다듬는 지 반 얼빠진 사람처럼 한참 있다가 어디론지 가 버린다.
 
27
주막집은 잠깐 조용하였다. 부엌 구석에 조을던 누른 개 한 마리가 앞발을 버티고 기지개를 켜고 긴 혀를 내밀어 콧등을 두어 번 핥더니 그대로 푸르륵 털고 나아온다.
 
28
그 소년은 그 주막집을 마루끝까지 들어서며,
 
29
"여보, 주인"
 
30
하고 주인을 찾았다. 뒤꼍에서 손을 씻었는지 치맛자락에 물 묻은 것을 훔치며 나오는 사오십 가까운 중년의 노파가 양복장이가 이상한 듯이 슬며시 내다보며,
 
31
"왜 그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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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33
그 소년은 온순한 어조로,
 
34
"그런 게 아니라요, 내가 손을 다쳤는데 처맬 것을 좀 얻으려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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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손가락을 내보였다. 손가락 끝에는 누른 빛 도는 혈장(血漿)이 엉키어 붙었다. 그 노파는 끔찍하게 여기는 듯이 얼핏 달려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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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 그거 안되었십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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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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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계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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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마루 위로 올라가려 하였다.
 
40
그때 어떠한 처녀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그 마당 한 가운데로 들어섰다.
 
41
발은 벗었으나 살빛은 검노른데 바짓가랑이 밑으로 보일 둥 말 둥 하는 종아리는 계란빛 같이 매끈하고, 행주치마를 반허리에 감았으니 내다보느냐 숨어드느냐 몽실 매끈한 겉 가슴이 사람의 마음을 무질러 녹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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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는 잘 마른 인삼 같으며 가늘지도 않고 굵지도 않고 매끈 동실한데 귀밑의 섬사한 솜머리털이 보는 이의 눈을 실눈 감듯이 가무 삼삼하게 한다.
 
43
두 뺨에는 연홍빛 혈조가 밀려 올랐고 쌍꺼풀 졌는지 말았는지 반쯤 부끄러움을 머금은 두 눈에는 길다 하면 길고 알맞다 하면 알맞을 검은 속눈썹이 쏟아져 나오는 신비스러운 안채를 체질하듯이 깜박한다. 코는 가증하게도 오똑 갸름하고 청춘의 끓는 피 찍어 묻혔느냐 그의 입술은 조금만 힘 주어 다물지라도 을크러져 터질 듯이 얇게도 붉다. 혹단 같은 검은 머리에 다홍 댕기 드리지나 말지 이리 휘휘 저리 설기 들다 남은 머리가 반쯤 곁 귀 위에 떨어졌는데, 머리에 인 물동이에서 진주나 보석을 흘리는 듯이 대굴 따르륵 구르는 물방울은 소매 걷은 분홍 저고리에 남이 알면 남편 생각 간절하여 혼자 울은 눈물 흔적이라 반 웃음 섞어 놀려 먹을 만치 어룽지게 할 뿐이다.
 
44
그 처녀는 허리를 구부리고 물동이를 내려 정지간 물독 속에 물을 부었다.
 
45
그리고 머리에 얹었던 또아리를 다시 오른손 네 손가락에 휘휘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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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본 그 소년의 손가락 상처는 깨끗하게 나은 듯이 쓰림도 모르고 아픔도 몰랐다. 다만 몽환의 낙원에서 소요하듯이 아무 때도 없고 흠도 없는 정결의 나라에 들었을 뿐이었다. 환락에 차고 찬 그의 두 눈에서는 다만 칠야의 명성(明星)을 끼어안으려는 유원한 애회(愛懷)와 이 꽃잎의 이슬을 집으려는 청정한 애욕의 꽃잎에 명주실 같은 가는 줄이 그 처녀의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고치 엮듯 하였다. 그러고 그의 심장은 나어린 그 처녀를 지 근거려 보는 듯이 부끄러움과 타오르는 뜨거운 정염(精炎)이 얼기설기한 두려움으로 소리가 들리도록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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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방에서 나왔다. 마루를 내려와 그 처녀를 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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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良淳)아, 반지그릇은 어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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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화가 나서 몰아세우는 듯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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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방 안에 없어요,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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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는 양순의 은실 같은 목소리가 구슬이 튀는 듯한 발걸음과 함께 그 소년의 신경의 끝과 끝을 차디찬 얼음으로 비비는 듯도 하고 따가운 젓가락으로 집어 내는 듯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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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간 양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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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아니고 무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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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승리자의 만족한 웃음을 웃는 듯이 자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는 비로소 처음으로 마당에 그 소년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누가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는 듯이 멈칫 하고 섰다. 그러다가는 앵둣빛 같은 웃음을 웃으며 누가 간지르는 듯이 정지로 뛰어들어갈 때에는 그 처녀 육체의 바깥에 나타나지 않는 모든 부분 샅샅이 익지 못한 청춘의 푸른 부끄러움이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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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헝겊을 가지러 마루에 던져 놓은 반짇고리로 가까이 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쓸 만한 오라기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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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어떻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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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주저주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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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해요?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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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끄러움을 삼켰는지 점잖고 얌전하게 얼굴빛을 가라앉힌 양순이는 다시 나왔다. 뒤적뒤적 가위 소리를 덜컥거리며 반짇고리를 뒤지는 노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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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서신 저 양반이 손을 다치셨는데 싸매 드릴 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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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까 양순은 다시 고개를 돌이켜 그 소년을 쳐다보더니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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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잠깐만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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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똘똘 뭉친 조각보 보퉁이를 들고 나오더니 이리 끄르고 저리 헤쳐 한 카락 자주 헝겊을 꺼내어 오니, 그것은 작년 섣달 설빔으로 새 댕기를 접을 때에 끊고 남은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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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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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서 자기의 헝겊을 그 젊은 소년이 그의 손에 감는 것이 그다지 기뻤든지 서슴기는 그만두고 간원하듯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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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그것을 받았다. 그 헝겊이 그리 곱지는 못하였으나 자기의 손을 감을 때 봄바람 같이 부드러우며 노곤한 햇볕같이 따뜻하였다. 피가 몰려 흥분된 손가락은 마음 시원하도록 차지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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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감고 저리 동이기는 하였으나 한 손으로 맬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끝은 입에 물고 한끝은 오른손에 쥐고서 거북하게 매려 할 때 양순은 이것을 바라보더니 가엾이 여기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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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매 드릴까요?"
 
69
하고 두 손을 들어 그 소년의 윤기있는 손가락을 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소년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려 할 때 녹는 듯한 반 웃음을 살짝 웃고서 아무 소리 없이 싹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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