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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록 (西槎錄) ◈
◇ 1902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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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7
이종응(李鍾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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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광무 6)년 4월 5일 (음 임인 2월 27일) 맑음
2
출발 하루전날 밤에 대궐에 들어가 하직인사를 드리려고 네 행인(대사 및 수행원)일행이 입궐했으나 때마침 다른 공무와 상치되어 입시(入侍)하지 못했다. 오후 7시반에 외부(外部)의 청첩을 받아 일행이 외부를 방문했더니 주한 영국 공사 조던(J. N. Jordan, 朱邇典)도 와 있었다. 외부 서리대신 유기환(兪箕煥) 협판(協辦) 최영하(崔永夏) 교섭국장(交涉局長) 이응익(李應翼)등 여러 인사들이 함께 모여 해외여행을 축하하며 환송인사를 나누며 양식을 들었다. 서로가 회포를 푼다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또다시 궐문으로 나아갔으나 바깥문이 이미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조금 있다가 표신(標信)을 보이고 입궐하여 폐하를 알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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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6일 (2. 28) 밤에 비가 오다가 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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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시에 일행 네 사람은 입궐, 폐하께 사직하고 친서 한 통을 받았다. 나는 대사와 함께 칙명(국서)을 받들고 표훈원(表勳院)에 가서 친서를 봉안(奉安)하고 하룻밤을 쉬었다. 오전 11시에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밖 정거장으로 나와 12시에 기차를 탔는데, 외부대신 유기환, 협판 최영하 두분과 여러 신사들이 나와 전송했다. 우리 일행은 친지 10여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오후 2시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인천감리(仁川監理) 하상기(河相驥) 씨의 영접을 받고, 중국인 이태가 경영하는 이태여관(怡泰旅館)에 들어가 짐(行李)을 정돈했다. 이날 밤에 중추원(中樞院) 의장 김가진(金嘉鎭) 참서관 서병숙(徐丙肅) 두분께서 비를 무릅쓰고 와서 회포를 푼다음 각기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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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2. 29) 맑은 뒤 짙은 안개
6
오전 9시에 네 행인이 여관을 나와 부두에 도착했다. 영국 영사 고페(겁후, H. Goffe, 葛福)가 우리 일행의 고문관 자격으로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악수하고 인사를 나눈후 함께 윤선(輪船)에 올랐다. 총세무사 브라운(J. McLeavy Brown, 柏卓安)을 비롯하여 여러 친지들이 조그마한 배를 타고 러시아 윤선 로니호(露尼號)가 정박고 있는 곳까지 와서 전송해 주었다. 작별하고 돌아간 뒤에 기적이 두번 울리자 배는 출항했다. 이에 우리 일행 네 사람은 각기 선창안 선실로 들어 갔다. 선실의 침상과 휘장의 배포가 자못 정결했다. 잠시 쉬고나서 타루(柁樓) 위로 올라 가서 한가하게 갑판을 거닐면서 배의 장식과 기계의 웅부(雄富)함과 규모의 주밀함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속필(俗筆)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방울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영국 영사 고페(葛福)가 와서 식사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의관을 정제하고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식탁은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었고 식기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서양인 남녀, 아이들 수십명과 함께 한자리에 모여앉아 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수차례에 걸쳐 제공되었고 마지막에는 차대접을 받고 식사는 끝났다. 식당을 나와서 흡연실로 들어가 한차례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이같은 일을 하루에 세번씩 되풀이했다. 매번 기계(器械)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부지런히 힘써 밤낮으로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마치 지성껏 쉬지않고 움직이는 하늘의 도에 견줄만 하였다(晝夜不息 譬如至誠不息之道).” 나는 이를 두고 “하늘이 하는 일(天工)을 사람이 대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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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3. 1)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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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화분을 쓰러뜨렸다. 우리 네 사람은 타루(柁樓) 위를 배회하다가 남쪽을 바라보니 몇개의 산봉오리가 파도위로 출몰하는 것을 보고 선원에게 물으니 제주(濟州)의 한라산(漢拏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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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3. 2) 흐린후 맑음
10
오전 8시에 일본 나가사키(長崎) 항에 도착했다. 이 항구의 순사 한 사람이 군의(軍醫) 한사람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와서 여객들에게 의심스러운 병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한 후 하선을 허락했다. 11시에 하선해서 나가사키의 서양인 여관에 투숙했다. 대궐로 무사도착을 전보로 아뢰고(電奏) 또 집에 편지도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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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3. 3) 맑고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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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뒤에 우리 네 사람은 거리로 나가 한가하게 노닐었다. 도로에는 한점의 티끌이나 오물이 없었다. 작은 도랑과 큰 개울의 구획이 분명하고, 진귀한 나무와 아름다운 화초가 가지런히 정열되어 있어서 맑은 그늘이 땅에 가득하다. 저자의 가게(市肆)들이 서로 잇닿아 즐비하고 상품이 산더미처럼 풍부하다. 노래 부르며 노는 극장(戱場)에서는 남녀가 어울려 즐거히 놀고 있어서 그 기상(氣像)이 태평(太平)스러워 보였다. 항구안의 선박들은 갈대처럼 늘어 서서 밤이면 수백 수천의 등불이 수면위를 눈이 부시도록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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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3. 4) 흐리고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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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에 우리 일행이 유람하다가 한 고찰(古刹)에 이르렀는데 절 문밖에 커다란 돌비(石碑) 한 개가 서 있었다. 석비 정면에 「諏訪大社(추방대사)」 (대사를 방문해서 묻는다)라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비석 꼭대기에는 「御幣(어폐)」 두 글자가 가로로 쓰여 있었다. 층계 위에는 구리로 만든 기둥문(銅柱門)이 있었고, 그 제도는 우리나라의 홍살문(紅箭門)과 거의 같았다. 높이는 4-5장(丈)이고 기둥 둘레는 두 아름(抱) 정도이며 기둥위에 「明治二十九年製造(명치이십구년제조)」(1896) 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또한 이 문을 세우는데 보조한 사람의 성명도 기록되어 있었다. 층계마다 대문이 있고 맨 위 층계의 대문에는 「諏訪大社」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문안에는 구리로 만든 말 (銅馬) 한 필이 서 있었는데, 몸집이 아주 장대하고 불당 앞 층계 좌우에는 구리로 만든 사자(銅獅子) 두마리가 서 있었다. 이곳에서 본 각가지 기괴한 물건들을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다. 돌난간과 돌탑은 지극히 질박하고, 고목과 울창한 등나무, 무성한 대나무밭, 기이한 꽃으로 꾸민 경치(景光)는 깊고 그윽했다. 동쪽 석대위에는 정갈한 집(精屋) 한 채가 있었다. 내키는대로 걸어서 나아가니 푸른 나무 그늘 아래에 몇 개의 의자와 탁상을 설치해 놓았다. 우리 네사람이 빙 둘러 앉으니 미녀 두 사람이 와서 절하면서 다과와 맥주를 가져왔다. 이에 술과 차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주위를 거닐기도 했다. 돌아올때 두 여인에게 약간의 은화를 주니 감사하다고 인사한 다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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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3. 5)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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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에 나가사키항을 출항했다. 프랑스(法國) 상선 ‘뒤쓰호’에 탑승했다. 선박위의 기계와 선창에서 일하는 선원은 흑인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날 풍랑이 크게 일어났다. 오후 11시에 마관(馬關 : 시모노세키, 下關)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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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3. 6)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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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멎고 풍랑이 가라 앉았다. 오후 4시에 고베(神戶) 항에 도착했다. 기일이 촉박해서 하선하지 못하고 다만 배위에서 항구의 지세를 바라보니 그 규모가 나가사키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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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3. 7)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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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에 고베로부터 윤선이 출항했다. 바람이 순하고 파도가 일지아니해서 항행은 순조로웠다. 망망한 해상에는 무수한 범선(帆船)이 출몰 왕래하고 있었다. 오후 3시에 풍랑이 자주 일어나자 항행이 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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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3. 8)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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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요코하마(橫濱)항에 도착해서 미국 상인의 여관 그랜드 호텔(그랑도 호테루, Grand Hotel)에 투숙했다. 대궐로 전보를 치고 집에도 편지를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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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3. 9)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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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공사대리 유찬(劉燦)이 찾아와서 반나절동안 회포를 풀고 점심을 먹은 후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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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3. 10)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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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東京) 빈이궁(濱離宮)에서 관앵회(觀櫻會)가 개최되었는데 궁내대신(宮內大臣)이 조칙을 받들어 청첩하기에 나는 고희경 수원과 함께 이 모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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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3. 11)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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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부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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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3. 12)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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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다가 오전 9시 부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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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3. 13)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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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화평해서 점심을 들고서 식당 서쪽 석대(石臺)에 올라 갔다. 해상을 바라 보니 보트(踵船) 3척이 떠 있었다. 각 선상마다 10여인이 타고 있었는데, 첫번째 배위의 사람들은 붉은 옷(紅衣)을 입었고, 두번째 배위의 사람들은 녹색 옷(綠衣)을 입었으며, 세번째 배위의 사람은 흰 옷(白衣)을 입고 있었다. ‘一자’로 배열해 서고 배 3척 뒤에 또 하나의 작은 윤선(小輪船)이 있는데, 배위의 사람들은 수십인이고 각각 홍․녹․백색의 깃발을 들고 있었다. 갑자기 한 발의 포성이 울리자 배 3척은 일제히 노를 져으며 나르 듯 달렸다. 맞은 편 해안 언덕을 향해 달리는 것 같았다. 작은 윤선 위의 사람들은 삼색기(三色旗)를 흔들면서 달리는 보트를 향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3척의 배가 일시에 앞을 다투며 질주했다. 맞은편 해안 언덕에 먼저 도달하는 배가 우승하는 배이다. 이곳 토인에게 물어보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경주놀이(競舟戱)다. 각 학교 생도들이 이 운동을 위해 대(隊)를 나누어 승부를 건다. 작은 윤선 상의 사람들은 앞서고 쳐지고 이기고 지는 자를 심판하는 검사(檢査)하는 사람이다. 대개 서양의 풍속을 따온 것인데 하나의 아름다운 행사이다.”라고 했다. 해안 언덕에서 경주 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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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3. 14) 맑고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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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으로 집에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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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3. 15)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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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의복점 주인이 대례복(大禮服)을 재봉하기 위하여 와서 우리 네 사람의 몸의 장단(長短) 치수를 재고 돌아 갔다. 유찬(劉燦) 공사가 내방해서 편안하게 회포를 풀었다. 오후 3시에는 우리 일행 네 사람은 마차를 타고 대로를 달려 공원에 들어가 화초를 완상(玩賞)하고, 또 경마장 구경도 했는데 그 규모가 웅장했다. 그 후 마차가 가는대로 도로를 왕래하며 한가로이 구경했다. 도로는 평탄하고 크고 작은 가옥들이 가지런하고 화려해보였다. 비록 몇 집 안되는 해촌(海村)의 초옥(草屋)에도 새장(鳥籠)을 올려달아 운치가 있었다. 가다가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지팡이를 집고 산에 오르니 산은 오히려 평평했다. 불당은 깨끗하고 처마 밑에 「백롱산(白瀧山)」이라 큰 글씨 3자를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암자 왼쪽에는 용추(龍湫)폭포가 있었는데 우리 네 사람은 한동안 그 주위를 거닐다가 맥주와 빙수를 마시면서 한가로이 앉아서 이야기하다가 여관으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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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 (3. 16)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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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3. 17)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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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5일 (3. 18)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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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 공사가 내방해서 종일토록 이야기하다가 저녁 먹고 인사를 나눈 후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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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3. 19)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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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3. 20)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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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3. 21)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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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하게 지내자니 기분이 울적해서 우리 일행 네 사람은 마차를 타고 바닷가로 소풍나갔다. 그곳에 이르러 보니 바다를 매립하고 부두를 축조하며 산을 허물어 축대를 만들어 부교(浮橋)로 통행하고 있었다. 수문(水門)으로 물이 소통하게 해서 물길이 빙글 빙글 돌면서 꼬불 꼬불 흘러가게 하는 규모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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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9일 (3. 22) 흐리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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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3. 23)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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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편지를 부치다.
 

 
48
7) Horace N. Allen, Korea : Fact and Fancy, p. 224(April 4, 1902) : 金源模, 『近代韓國外交史年表』(단국대 출판부, 1984), p. 193(190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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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급변을 고할때나 대궐을 출입할때 사용하던 문표(門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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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舊韓國外交文書』 권 14(英案 2), p. 413, 443.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예식은 6월 26일 거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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戴冠式祝賀大使派送國書 敬白英國君主兼膺海外所有屬國皇帝陛下 皇后陛下 戴冠大禮之辰 不勝懽喜 玆命 皇族從二品義陽君李載覺 充任大使 齎呈親書 隨參慶禮 庸伸賀祝之忱 冀賜延見 領此至意 幷祈兩陛下壽祿無彊 光武六年四月六日 在漢城慶雲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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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구한국때 훈장(勳章)․기장(記章)․상여(賞與) 등 업무를 맡아보던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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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崔聖淵, 『仁川鄕土史料 開港과 洋館歷程』(京畿文化社, 1959),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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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천 영국영사 고페는 고문관 자격으로 영국 대관예식 한국사절단의 안내역을 담당, 합류했다. 그래서 일행은 모두 5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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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경기는 조정(漕艇)경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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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국 부영특명대사(赴英特命大使) 일행은 요코하마의 동경의복점(東京衣服店)에서 영국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입을 대례복(연미복)을 주문 제작했다.
【원문】19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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