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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 ◈

해설본문  1949년 8월
염상섭

1. 1

 
1
“의사가 없으면 약이라두 지어 올 일이지. 사람이 성의가 없어.”
2
침대 위에 간신히 부축을 하여 일어나 앉은 병인은, 만경에 빠진 사람 같지도 않게 의식이 분명하고, 숨결은 차지마는 말소리도 또랑또랑하다. 병인은 어제부터 새판으로, 입원하기 전에 대었다가 맞지 않는다고 물린 한의(漢醫)를 병원 속으로 불러오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은 다 제쳐놓고 자기의 병 중세를 잘 이해하고 의사와 수작이라도 할 만한 아우 명호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 오늘, 두 번을 갔다 오면서 의사가 시골에 출장을 가서 못 만났다고 약도 못 지어 가지고 오는 것을 보니, 툭 건드리기만 하여도 끊어질 듯한 신경만 날카로운 병인은, 자기를 속이는 것만 같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의심스러운 판이라 화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3
“어서 퇴원부터 하시고, 의사는 있다 저녁 때 불러오기로 하죠.”
4
오늘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전차를 타기도 어중된 거리라, 걸어서 왕복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병실에 들어선 명호는, 웃통을 벗어 놓고 땀을 들이며 찬찬히 병인을 달랬다. 오늘 해를 넘길지 모르는 병자에게, 성의가 없다는 말을 들으니, 몹시 섭섭하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으나, 어쨌든 한약첩쯤 급한 것이 아니라, 예정대로 퇴원을 어서 시켜야 하겠는데, 또 딴 소리가 나올까 보아 어린 아이 달래듯 달래려는 것이었다.
5
“퇴원은 무슨 퇴원. 약이라도 지어 가지구 나가야지 이대루 나갔다간 당장 숨이 맥혀 죽어!……”
6
남의 고통은 조금도 몰라주고, 성한 사람들이 저의 대중만 치고 저의 형편 좋을 대로만 하겠다는 것이 화가 나서 역정을 와락 내어 보았으나, 숨결이 또다시 되어지며 말은 입 속에서 어룸하여져 버렸다. 병자는 성한 사람들의 자기에게 대한 동정과 성의가 부족하다고 늘 불만으로 넘기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동정이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나, 한편에 있어서는 비굴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육체의 고통이 극도에 오를수록 모든 사람이 부족하게 구는 것만 같고, 자기를 돌려내고 민주를 대는 듯싶어 고까운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7
퇴원은 놀라는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는 아마 길게 끌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벌써부터 나온 문제인데, 병자의 반대로 미루미루하여 오던 것을 어제 한약을 먹겠다는 말끝에 거기 따라 명호가 부쩍 우겨서, 당자도 찬성을 하게 된 것이었다. 정신이 말짱할 때는 옆의 사람이 송구스러울 만치 입원료가 더껌더껌 많아지는 걱정도 하고, 죽은 뒤의 장비 마련까지 하던 사람이 병세가 차차 침중하여지고, 육체적 고통이 시시각각으로 볶아져 대니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잊어버리고, 덮어놓고 병원에만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것이었다. 그것은 병원에 누웠댔자 별수가 없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마는, 다만 하나 주사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뇌일혈(腦溢血)로 인사 불성에 빠질 뻔한 것을 백지장 한겹지간에 요행히 붙들어서 한약으로 머리와 피를 내려앉게 하여는 놓았었지마는, 한달 전에 입원할 때, 이백 얼마라는 혈압(血壓)을 오륙십 그램씩 두 번이나 쥐어짜듯이 하여 피를 빼고, 무슨 주사인지 미국치를 비밀 가격으로 사들여다가 연거푸 놓고 한 덕에, 간신히 부지를 하여 온 머릿속이요, 심장이다. 거기다가 신장염이 곁들여서 부증이 들쭉날쭉하다가 어쩐 둥 하여 부기가 내리고 구미가 붙기 시작을 하여 한동안 수미(愁眉)를 폈던 것이나, 지금 와서는 완전히 마취제와 강심제의 농락으로 꺼져 가는 등잔의 심을 돋우고 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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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도 약이 없어 죽다니! 하기야 돈이 없지, 약이 없겠나!”
9
병인은 목에 걸리는 소리로 이런 한탄도 하던 것이었다. 하여간 주사를 만날 놓아야 모루히네의 진통제나 강심제 따위로는 병근을 건드리지도 못하는 것쯤은 번연히 알면서도, 그 주사나마 못 맞으면 당장 숨이 질 것 같으니 병원을 못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네 시간 만큼씩에 놓던 것이 세 시간 두 시간으로 단축이 되고 나중에는 가슴이 타오르고 뻐개질 듯이 조비비하듯 할 제는 오밤중에라도 조르고 보채고 아귀다툼을 하다시피하여 한 대 맞고 나면, 가슴이 후련히 툭 터지고 옥조이던 사지가 느른히 풀리는 그 신통한 맛이란 감칠 듯하여, 아편쟁이의 주사란 것도 이래서 못 떨어지나 보다고 생각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급한 고비를 넘기고 본정신이 들면은 이래서는 안되겠다! 인제는 다만 하나 한약을 다시 먹어 보는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이 드는 것이었다. 기구가 있으면 주사약을 한 상자 간호부에게 들려 가지고 나가서 급할 때마다 주사로 숨을 돌려 가면서 한약을 써보고 싶으나, 그럴 형세가 못되고 보니, 한약을 먹으러 나가기는 나가겠으되, 그러면 주사 대신에 숨이 지려 할 때 붙들어 주는 즉효가 나는 한약을 지어 오라고 어린 아이처럼 보채는 것이었다.
10
“염려 마세요. 주사는 아침 저녁으로 K선생이 댁에 가서 놓아 드리니까…….”
11
이렇게도 안위를 시키고 달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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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안 사람들은 병인의 그런 사정은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병원에서 객사를 시킬 것이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요, 다만 어서 집으로가서 운명을 시켜야 초상을 치르기가 편하다는 타산만으로 서둘러대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치르는 것이 도리어 비용이 덜 들겠다는 뒷공론도 있었으나, 집안 식구가 거산을 할 것이요, 더 고생일 것이라 하여 병인이 퇴원하여 준다는 것만 다행하여들 하였다. 사실, 저의 들 성한 사람의 사정만 생각한다고 병인이 불평인 것도 그럴 듯한 말인지 몰랐다. 그러나 병이 이미 기울어져서 산 사람과의 교섭이 차츰차츰 멀어져 가니 정성이나 애정이 한 꺼풀 두 꺼풀 벗겨져 가고 엷어져 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집에서 한 달, 병원에서 한 달, 두 달을 두고 잠시 한 때 옆에서 떠나지를 못하게 하는 안해도, 인제는 진력이 나서 어서 나가고만 싶어하였다. 또 요행 이 고비를 넘긴다 하더라도 이러한 늙어가는 이의 병이란 대개 중풍으로 누워 있게 되기가 십상 팔구이니 그렇게 되면 없는 살림에 서로 못할 노릇이요, 한 달에 이삼만원하는 입원료를 무엇으로 대어 나가느냐는 걱정부터 앞을 서는 것이었다. 가장을 잃으면 어린 것들과 노두에 방황하겠다고 애를 부덩부덩 쓰고 지성껏 병구완을 하던 것도, 아직 든든한 생활력이 남아 있고, 그래도 회춘할 일루의 희망이 있을 동안이었다. 산 사람이나 당장 내일부터라도 먹고 살아야지 하는 태산 같은 걱정이 앞을 가리니, 다만 남는 것은 인연이라든지 의리나 체면 뿐이었다. 그러나 앓는 사람은 그럴수록에 동정과 애정과 성한 사람의 성의에 매달리려고 애원하는 것이요, 역정을 내는 것이었다.
 

2. 2

 
1
성한 사람의 정성이 부족하여 가거나, 저의들의 사정만을 생각하거나 말거나, 정신이 말짱하고 원체 체력이 든든하던 병인은 지치고 살이 야위기야 하였지마는, 좀체 자기가 그렇게 쉽사리 훌꺽 넘어 가리라고는 생각지 안했다.
2
“큰 산소의 아버니 옆에 내가 들어갈 자리는 하나 넉넉히 되지마는 장비는 터무니 없고, 이런 세대에 무어 볼거 있소. 간략히 화장을 해서 뼈나 갖다 묻두룩 하우.”
3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아이들의 교육과 취직이며, 생활 방도를 의논한 끝에 이러한 유언도 하고, 어떤 때는 유골을 갈아서 정한 산에 올라가 날려보내도 좋겠다는 지나는 말도 하여 가족들을 놀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유언은 언제나 한 번은 죽을 것이니, 이 기회에 미리 자기의 의사 표시를 하여 두자는 것이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각오를 하고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주사의 힘으로 버티어 나가거니 하는 불안은 있으나, 주사를 놓고 나면 그 저리고 쑤시던 가슴이 훤히 터지고 부축을 하여서라도 몸을 가누고 일어나 앉을 수 있는 것을 보면, 자기의 원기에 대한 자신이 다시 생기고, 능히 소복되리라는 새 희망도 비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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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제 퇴원을 하느니 마느니 하고, 한참 부산한 통에 C라는 젊은 위문객이 왔을 때는 이때까지 서둘던 가족들이 무색하리만큼, 병인은 내일이라도 일어날 듯이 명랑한 낯빛으로 수작을 하는 것이었다.
5
“그동안 이렇게 편찮으신 줄은 몰랐습니다 그려. 지금 ××재단을 설립 중인데 물론(物論) 돌아가는 것을 보니까, 어떠면 선생을 부사장으로 추대할 듯싶더군요. 그야 이사(理事)자리야 하나 안 드리겠습니까마는, 공교히 이렇게 누워 계셔서 안됐습니다. 어서 속히 일어만 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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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청년은 병인의 기를 돋아 주려고 위로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내통을 하여 주고, 또 그리하면 자기에게도 좋은 일이 없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찾아 다니다가 병원까지 왔다는 말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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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런 이야기가 있어! 좀 있으면 일어나게야 되겠지마는 하여간 그 축들 만나건 잘 부탁해 주우. …… 어, 오늘 C군이 찾아 준 것도 의외지만, 아마 나두 인제 운이 틔려는군! 힘 좀 써 주슈. 꼭 부탁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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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은 젊은 친구의 손을 붙들고 은근한 정을 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 손은, 병증세를 캐어 묻고 병인의 가다가다 허청 나오는 목소리와 어떻게 보면 사색이 질린 낯빛을 이모저모 뜯어 보는 눈치더니, 처음 달겨들면서 떠벌여 놓던 기세와는 딴판으로 차츰 기색이 달라지면서 꽁무니를 빼는 수작을 어름어름 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병인은 그래도 신기가 매우 좋아서, 안해더러 내일은 P에게 연락을 해서 그 ××재단의 내용을 알아 보고, A에게 가서는 이러저러한 전달을 하고 부탁을 하여 두라는 분별을 하고 누웠다. 옹위를 하고 앉았는 가족들은, 이 양반이 오늘 해를 못 넘기리라고 서둘던 양반인가? 하는 생각에 멀끔히 병인의 얼굴을 바라들 보며, 어쨌든 반갑고 기쁘기도 하며, 어떻게 보면 과시 병이 고망에 깊이 든 것이 아닌 것 같이도 보여 다시 새로운 희망도 생기는 것이었다. 퇴원을 재촉하고 장사 지낼 걱정을 끼리끼리 수군거리던 것이 우습기도 하였다.
9
C청년이 다녀간 뒤에 의사가 저녁때에야 들어왔다. 오늘도 가슴이 메어지고 숨이 막힐 때마다 K선생을 불러 오라 하고 출근을 아니 하였거던 자기 집에 전화를 걸라고 하던 K의사가 들어왔다. 병자는 아까 놓은 주사 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 그리 급한 지경은 아니나 의사의 얼굴만 보아도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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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길에 주사를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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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조금 있으면 또 닥쳐올 고통이 무서워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의사를 붙든 김에 아주 미리 주사를 듬뿍 맞아 두고 싶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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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놓아 드리죠.”진찰을 대강하여 보고 의사가 주사약을 가지러 나가는 것을 보고 명호는 병자의 눈에 안 띄우게 슬며시 뒤쫓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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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원을 시킬까 하다가 선생두 안 오시구 해서 그만두고 있습니다마는 어떤 모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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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낼 새로 어떻겠습니까마는 퇴원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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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한다는 말에 의사는 도리어 반색을 하는 눈치였다.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인제는 길게 끌리라는 예고를 할 제부터 벌써 의사는 이 이상 더 할 수는 없으니 데려 내가라는 말 눈치였던 것이다. 어차피 내일 한약을 지어 온 뒤에야 병인이 순순히 퇴원하겠고, 또 오늘 내일 새로 어떨 리는 없으리라는 의사의 말에 안심이 되어서 퇴원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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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뒤미처 주사침을 가지고 들어온 의사가 정맥 주사를 한참 신고를 하고 놓고 나더니, 명호에게 눈짓을 하며 나간다. 명호는 불길한 예감에 마음이 설레하면서 눈치 빠른 병자의 눈을 기우느라고 머무적 거리다가 넌지시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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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으면 오늘 해 전으로 나가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지금 보시다시피 약을 빨아들일 힘이 없는 것을 보니 인제는 심장이 완전히 주사의 힘으로만 부지를 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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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의사가 되레 서두른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주사에 피가 자꾸 흘러 나와서 주사약은 분홍빛으로 물이 들고, 몇 차례를 쉬어 가며 간신히 억지로 넣고 나온 길이었다. 그러나 퇴원을 한다고 법석을 하다가 겨우 준좌가 되고 병인도 ××재단이 되면 이사는 되리라는 뜬 소문일 망정 기분이 좋은 터에 재판으로 소동을 하는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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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은, 두 번씩이나 의사를 따라 나가서 수군수군하고 들어오는 명호의 얼굴을 빤히 치이다보며, 무엇을 찾아 내려고 몹시 초조해 하는 기색이었다. 마음을 턱 놓았던 화색이 금시로 스러지고, 불안과 공포의 빛이 휙 떠오르다가 꺼지면서 어색한 웃음을 띄우고 무슨 말을 꺼내려는 눈치더니 자기도 입밖에 내서 물어보기가 무서운 듯이 멈춧하고는 또다시 퀭한 눈으로 언제까지 명호의 기색만 노려본다. 위중하다는 기별을 듣고 이른 아침이나, 날이 저문 뒤에 뛰어 가면 어째 왔나? 하고 도리어 놀라며 겁을 내고 싫어하거나 흥분이 되곤 하는 병인이었다. 이렇게 의혹과 공포에 저린 눈으로 쏘아보는 양은, 마치 무서운 마굴에 불법 감금이나 당하고 앉아서, 감시하는 옥졸의 눈치만 숨을 죽이고 슬금슬금 노려보는 것 같아서, 명호가 도리어 얼굴을 둘 데가 없고 말이 막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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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말이 훨씬 차도가 있으니, 오늘 내일 주사를 좀더 넉넉히 맞으시구 내일 오후에 퇴원하시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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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는 잠자코만 있기가 도리어 괴로워서, 안 나오는 웃음을 지어 보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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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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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은 바르르 떨리던, 잔뜩 땅긴 신경이 일순간 확 풀리는 듯하며 귀가 번쩍해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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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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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의아한 눈치로 맥없이 한 마디 하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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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쯤야, 내게 직접 말 못할 것은 무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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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그 코웃음과는 반대로 좀더 자세한 의사의 말의 실증(實證)을 붙들어 보겠다는듯이, 일단 느꾸어졌던 정신력과 주의력을 눈으로 힘껏모아서 또다시 명호의 얼굴빛과 입술을 겨누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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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어떻게 차도가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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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마치 명호의 말 한 마디가 자기의 운명을 마지막 결정이나 한다는 듯싶이 커다란 희망을 가지고 애원하듯이 매달려 오는 기색을 보인다. 명호는 마음이 무거워지며 괴로웠다. 조금 전까지도 인제는 운이 틔우나 보다고 좋아하던 이 안타까운 병인에게 꾸며선들 무어라고 대꾸를 해 주어야 이 어려운 처지를 모면할지 선뜻 말이 아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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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원체 기력이 좋으니까, 인제 한약을 제곬을 찾아서 잘 쓰기만 하면 염려 없다는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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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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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C청년이 왔을 때부터 너무나 긴장이 계속된 끝이라, 뒷 말을 더 하려고 입을 쫑긋쫑긋 하다가, 기운이 빠져서 맥이 풀려가는 눈만 먼히 뜨고, 천정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웠다. 그러나 "딴 소리"라고 핀잔 주듯이 힘있게 부인한 것은, 명호가 거기 달아서 딴 소리가 아니라고 무슨 변명이라도 하고 덤비기를 바랐던 것인데, 아무 대꾸가 없이, 명호가 담배를 붙이고 마는 것을 보자, 병인의 눈에는 절망의 빛이 차차 짙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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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면야 내게 직접 말 못할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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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은 하여 가면서도 맑게 개인 병인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언제까지 스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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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형수보다도 더 못 견딜 일이다. 사형수는 제 운명을 알구나 있지 않은가?……사형을 집행할 때라두 미리 일러는 줄 테지. ……이 놈들이 정작 내게는―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내게는 알리려 들지를 않구서, 목숨의 임자가 저의들인 듯싶이, 저의들만 뒷구멍으루 숙실숙실하구 우물주물하다니!……대관절 산다는거냐? 살려주겠다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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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누웠는 병인은 머릿속이 점점 더 환하여지며, 조리가 뻔하게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눈을 별안간 번쩍 뜨고, 누구든지 눈에 띄우는대로 소리를 버럭 질러 보려고, 이상한 광채가 솟으며 부리부리 휘둘러 보았으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목이 탁 잠겨서 소리가 아니 나왔다. 눈의 정채가 훅 꺼지며 앞에 앉은 안해의 얼굴이 차차 멀어간다. 다시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 감기며 잠이 혼곤히 들어 갔다. 그러나 금시로 드르렁하고 코고는 소리가 나다가, 그 소리에 소스라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 두리번 사방을 돌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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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잠이 들었던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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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고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잠이 들었다가 그대로 숨이 넘어가지나 않는가 하여 잠이 드는 것도 겁이 나고 싫었다.
 

3. 3

 
1
“그럼 약을 지어 가지고 오죠.”
2
젊은 아이가, 퇴원 수속을 마치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명호가 벗어 놓았던 저고리를 입고 나서려니까, 침대에 꾸부리고 앉았는 병인의 뒤에서, 어깨를 주무르고 있던 명호의 형수가 그만두라고 손을 두른다. 그러나 명호는 못 알아 들은 척하고 나와 버렸다. 입원하던 날에 용한 한의가 있다고 하여 불러다가 보이니까, 고개를 내두르고 가버리는 바람에 왕복 자동차 삯만 없앤 일도 있었지마는 그러기에 병인이 아무리 졸라도 안해는 한의를 또 불러온다는 것은 반대요, 지금 입원료를 치르고 나면 병인을 태울 자동차 삯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하여 애가 닳는 판이라, 그까짓 먹을지 말지도 모르는 한약 몇 첩 값이라도 절약을 하래는 것이었다. 물론 명호도 그만 짐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마는, 병인의 마지막 원이라도 풀어 주고 싶고 살 사람의 유감이 되지나 않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3
명호는 자기 집 근처의 안면 있는 약국에서 세 첩을 지어 가지고 나오는 길에 약에도 소위 연대가 맞는다는 말이 있으니, 요행 들려서 또 지어가게 되더라도, 그 화제는 나를 주시오 하여 약봉지 묶은 데 끼어 가지고 나왔다. 지금 같아서는 기적을 바라는 것 같지마는, 그렇게도 죽지 않는다는 자신을 가지고, 애를 부덩부덩쓰는 그 정신력이라든지 체력으로라도 어떠면 돌리지 말라는 법도 없으리라는 엷은 희망은 아직도 한편에 남아 있고, 또 사실 집안 형편이나 가족의 앞길을 생각하면 지금 이대로 세상을 떠나 보내서는 큰일이라는 걱정이 뉘게나 있는 것이었다.
4
그러나 그 역시 살 사람의 사정부터 가지고 따지는 말이었다. 죽는 사람도 정신이 말짱하고 죽는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서 한숨 돌릴 때는, 가족이나 자식 생각이 앞은 서기는 하겠지마는, 그 무서운 육체적 고통을 이를 깨물며 헤어나려는 모질고 줄기찬 본능과는 거리가 먼 수작 같았다..
5
‘……실상 사신대로 여년이 얼마 남은 것은 아니지만…….’
6
올 정초에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생들이 병인의 육십잔치를 지낼 의논들을 하던 것이 머리에 떠올라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명호는 그 말이 어쩐지 앓는 형을 비난하는 뜻 같이도 생각이 들자 찔끔하였다. 그야 누구나 하는 말이지마는, 여년이 얼마 남었거나 말거나, 단 하루 단 한 시간이 남았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고 바드득 애를 쓰는 그 형상을 비웃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7
‘……백 년을 산대도 가던 길을 반도 못 걷고, 하던 일을 손에 붙든 채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기 완성(自己完成)을 하고 떠나지는 못하는 것인데―미완성인대로 뒷대에 물려 주고 가는 것이 인생이면야, 죽은 뒤에 남는 처자식이 어떻게 되든지 뒤를 깡그릿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주검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만 그것을 두 손으로 바당기고 막아내려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나, 좋게 말하면은 생리적 조건이 허락하는 때까지의 자기 주장(自己主張)이요, 자기의 존재를 잃지 않겠다는 무서운 단판씨름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 완성을 허락지 않는 바에야, 항복이 아니라, 앞질러 선선히 길을 비켜서서 뒤에 물려 주고 시사약귀(視死若歸)로 조용히 물러가라는 말인데……그렇지만 ‘시사약귀’란 저마다 할 수 있는 노릇인가…….’
8
명호는 병원으로 터덜터덜 오면서 갈피 없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쓸쓸하였다.
9
‘……이번에는 내 차례인데…….’
10
명호는 무심코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이렇게도 살기 어렵고 보기 싫은 세상에 죽는 것쯤 조금도 아깝고 원통한 것은 없겠으나, 병고(病苦)에 시달리고 부대낄 것을 생각하면, 이 때까지 겪어 온 평생의 고생을 한 묶음 묶어다가 앞에 놓은 듯싶어 벅찬 생각이 들고, 지금부터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주사라는 현대적 마술에 맛을 들이고 감질이나 나지 않고서라도 죽는다면 얼마나 편하고 팔자 좋게 죽을 것인가 하고 혼자 실소도 하였다. 불도에 골독하던 재종형이 요새 앓아 누웠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서 헤어날 새가 없어서 아직 위문을 가지 못하고 있지마는, 위문도 위문이려니와, 불도에 신앙을 가진 사람의 투병술(鬪病術)은 어떤지 견학도 하고 사생관(死生觀)도 한 번 가서 들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머리가 허애져 가는 명호는 차차 죽을 차비를 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곰곰 하는 것이었다.
 

4. 4

 
1
명호는 병실에 들어 서며, 손에 든 약을 병인에게 내 보이고,
2
“여기, 이 화제는 이 약이 듣는 경우에, 내게로 보내시던지, 댁 근처에서라도 더 지어다 잡숫게 하라는 것입니다.”
3
고 설명을 하니까, 병인은 웃지는 않으나 만족하고 안심한 낯빛이었다. 약봉지는 거지반 다 꾸려 놓은 봇짐 속에 대수롭지 않은 듯이 꾸려 넣었다.
4
자동차를 부르게 하고, 이층에서 병인을 담아 내려갈 담가(擔架)를 올려 오고 하는 동안에, 위문을 온 전도 부인 같은 서너 부인이 들어오더니, 아낙네끼리 수군수군한 뒤에 병상 앞에 둘러서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병인은 직접 모르는 모양이나, 병인의 안해의 옛날 친구들이 위문을 왔다가 의외의 중태인 데에 놀라서 마지막 축원을 드리는 것이었다. 어제 명호가 한의를 부르러 갔다가 오니까, 형수의 말이 그 동안에 성교회에서 와서들 세를 붙이고 갔다 하면서,
5
“저기 성수(聖水)까지 받아 놓았습니다.”
6
하고 탁자를 가리키기에 명호는 잔소리가 하기 싫어서 그저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이상히 여겼던 것이다. 원체 병인은 불교를 좋아 하였었다. 부모의 장례 때도 일부러 승려를 청하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명호 형제들은 만일 형이 돌아가면 중을 부르겠느냐 비용 관계가 있으니 제례하겠느냐는 것까지 벌써 의논하고 있던 터이다. 그러나 그 동안 병원 안에 천주교를 믿는 간호부가 늘 와서 권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몇 번 사퇴를 하였으나, 나중에는 병인도 그 설교에 마음을 돌리고 승낙을 하여서 세까지 붙이게 된 것이라 하는 것이었다. 병인이 승낙하였을 뿐 아니라, 해로운 일은 아니니 그런가 보다고 별 이의(異議)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안손님이 와서 기도를 듣다가 눈물을 걷잡지 못하여 방문 밖으로 피하여 나가 버렸다.
7
물에 빠진 자가 새꽤기라도 붙든다는 세음으로 이 신령, 저 부처에게 닥치는대로 매달려서 공덕을 애걸하며 빌자는 것이 아니라, 주위와 지기(知己)가 제각기의 신앙을 빌어서, 병인의 쾌복이나 명복을 빌어 주는 것은 물리칠 수도 없거니와, 고마운 일이요, 아름다운 일이거니 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병자는 기도 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다만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들어가는 듯이 까드락도 않고 누워 있다.
8
그래도 담가에 옮겨 뛸 때는 눈을 분명히 떠서 둘러보고, 병원 문밖에 나와서 자동차에 떠메어 올리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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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수한테 길을 잘 일러 주어야지.”
10
하고 분명한 소리를 치는 데에 여러 사람은 서로 치어다 보며 신기해서 웃었다. 그러나 자동차 안의 시트에 들여 뉘자, 병인의 눈자위는 틀려 갔다. 명호는 눈길에 힐끈 보고 다짜 고짜 병원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서 간호부를 끌고 나왔다. 강심제를 또 한 번 놓아 달라는 것이다. 자동차 속에, 들어 서서 주사를 놓고 있는 간호부의 하얀 뒷모양을 바라보며, 명호는 시급히 조수석으로 뛰어 들어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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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병인의 증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앞의 운전대에 앉은 명호에게는 몰랐다. 오인승인 차 안에서 젊은 애들이 여상 좋은 낯으로 수작을 하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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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이 더 살고 싶고 말고 간에 집에 들어갈 때까지만 숨이 붙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 지경에 캄풀 주사가 효험이 있을까 없을까를 헤아려 볼 새도 없이 간호부를 끌어온 것은 다만 송장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욕심이요, 밖에서 죽은 송장을 집에 끌어들였다는 말만 듣지 않게 하자는 발뺌이나 체면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이다.
 

5. 5

 
1
시체를 모셔 드린 방에는 불을 때어 놓았으나, 미리 세간을 말끔히 치우고 병풍만 한 채 남겨 있었다. 병원에서 떠나기 전에 벌써 빈소 방이 준비 되었던 것이다. 발상 전의 과수댁은, 옆 방에서 부리나케 보따리를 풀고 무엇을 찾았다. 명호가 오늘 반나절을 걸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지어 온 약봉지가 먼저 방바닥에 떨어졌다. 병자가 이틀을 두고 성화를 하며, 졸라서 먹으려던 것이다. 과수댁은 고뽀 속에 넣은 물 종지를 찾아내서 빈소로 가지고 가더니 신체의 주위에 말끔히 뿌렸다. 세를 붙이고 받아든 성수이었다.
2
발치께 서서 가만히 바라보던 명호가,
3
“그럼 장례는 어떻게 지내시렵니까? 제사는 일체 폐하시나요?”
4
하고 물으니까 과수댁은,
5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6
하고 다만 좋은 일이니, 교회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7
초상 집에서는 우선 삼일장이냐 오일장이냐는 의논이 벌어졌다.
8
“화장을 하라신 유언도 계셨으니, 화장으로 모시면야 삼일장도 넉넉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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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는 첫째 장비 걱정으로 화장을 앞세웠다.
10
“그야 우리 형세에 삼일장이죠마는, 화장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런 말씀이 계셨지만, 나중에 다시 아무래두 아버님 곁으루 들어가시겠닸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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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가서는 아무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나위가 없었다. 혹은 이 과수댁도 뒤미쳐 들어갈 데고 보니, 자기부터 화장이 싫어서 그렇지도 모르나, 돌아간 이도 아직 먼 앞일이거니 하고 가상적으로 여유를 두고 말할 때는 화장은 일밖에 냈을지 몰라도 당장 닥쳐온 실제 문제가 되고 보니, 역시 선산에 묻히고 싶어 하였을 것도 넉넉히 짐작할 일이었다. 나 죽은 뒤에는 수의(燧衣)를 무슨 감으로 하여 달라느니, 관속에는 이것 저것을 넣어 달라느니 하는 유언도 하거던 자기 묻힐 자리를 초점까지 해 놓고서 거기 못 묻힐까 보아 애를 쓰며 세상을 떠나는 것도 무리가 아닐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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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삼일이지, 오늘 해는 다 가구, 내일 하루인데, 첫째 산역(山役)이 문제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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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차지의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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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차에 뻐스 한 대는 따라야 할테니, 자동차 삯만 해두 두 대에 사만 원은 예산쳐야 할 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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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원 화장장이면 고작해야 오륙천 원에 너끈할 것인데, 없는 돈에 차삯만 사만 원 예산이란 엄청난다는 말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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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나 매장이나 돌아간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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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축들은 저의끼리 이런 소리도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옳다고 찬성하는 사람도 없고, 그르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었다. 하여간 하룻밤 하룻 낮을 안팎이 복작대고 들볶아쳐서 제 시간에 성복제도 지냈다. 성복제를 지내고 나니까 앓아 누웠다던 명호의 제종형이 지팡이를 짚고 지척지척 조상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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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더니,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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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관을 붙들고 상제들보다도 더 섧게 울고 나더니, 염주를 꺼내들고 염불을 시작하였다. 한식경이나 옆 사람들이 지리하도록 염불을 끝마치고는, 이 늙은이는 품에서 훔척훔척하여 백지에 기름히 싼 봉지를 꺼내서 관상명정을 쳐들고, 관 위에 끼어 놓는 것은 손수 베낀 경문인지 한 모양이었다. 장지에 나가서도 하관할 때 폐백과 함께 이 종이 봉지도 횡대 밑에 넣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성수에 말끔히 씻긴 혼백이, 또다시 불타의 대자대비한 공덕에 안겨 안온히 잠들지 모르나, 그보다도 먼저 산 사람이 제각기의 소임이나 향의를 기울인 데에 만족을 느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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