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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심(牛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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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7월
이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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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심(牛心)
 
 

1. 1

 
3
“애 어마, 오늘 소죽엔 콩깍지나 좀 넣고 끓여라.”
 
4
하고 주워온 벼이삭을 고르고 있던 오구랑이 할머니가 여물깍지 광 앞으로 삼태기를 가지고 가는 며느리를 보고 광목 짜개는 소리를 친다. 나는 구유에 괴었던 턱을 번쩍 들면서 내가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고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고는 나 자신의 귀가 거짓말한 것이 아닌 것을 다지고는 ‘후유’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밀짚 위에 네 굽을 꿇으면서 중얼거리었다.
 
5
이런 빌어먹을 놈의 신세가…”
 
6
죽에다 깍지나 콩을 넣으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지를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7
“인제 이 집도 또 다 산 모양이로구나!”
 
8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9
사실 나는 이러한 향응(饗應)에 여러 번 속아왔다.
 
10
삼 년 전이다. 안골 김 선달네 집에 있을 때 담배 대궁처럼 빼빼 말라빠진 선달이 머슴 돌쇠를 보고 콩 좀 듬뿍 놔주라는 소리를 듣고 외양간 속에서 엉덩춤을 추었던 것이다. 콩이 섞여서 뚜꺽뚜꺽하기는 했지마는 나는 콧노래를 불러가며 구유 밑바닥이 드러나도록 싹싹 핥았었다.
 
11
‘이쿠, 인제 이놈의 영감쟁이가 복을 받으려나보다.’
 
12
하고 나는 번듯이 드러누워서 양을 새기며 그야말로 소웃음을 웃었다. 그득히 긁어넣었던 콩알을 꺼내어 되씹는 맛이란 반할 만하였다. 나는 그 콩짜개를 이튿날 아침까지 참참이 꺼내어 되새겼다.
 
13
이튿날 아침이었다.
 
14
일년에 한 번 저희 집에 다니러 갈 때나 떨치고 나오는 광목 홑단 두루막을 돌쇠가 걸뜨리고 나왔다. 그것을 본 나는,
 
15
‘벌써 즈 아버지 제사가 또 돌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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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생각하였다. 그랬더니 제사 지내러 가는 줄만 알았던 돌쇠는 두루막 자락을 지푸라기로 붙들어매고는 구유 앞으로 와서 내 고삐를 끄르며,
 
17
“이러 이 소!”
 
18
하고 낄낄 입천장을 찬다.
 
19
구레나룻 볏단도 다 날랐고 매였던 품도 다 벗었는데 또 어디를 끌고 가려는 겐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20
‘옳거니, 달래로 무를 사러 가는고나!’
 
21
했다. 나는 작년에도 이맘때 돌쇠가 지금 입은 두루막을 떨치고 나와서 나를 끌고 달래로 무를 실러 갔던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정신도 없지! 하고는 나 자신을 나무랐다.
 
22
“이러 이 소! 낄낄!”
 
23
돌쇠는 또 한번 입천장을 찼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지마는 나는 사람처럼 아둔한 것이 없거니 하였다. “이러 이 소”하는 말은 “소야 일어나거라.”하는 말일 건데 일어나서 걷는데도 “이러 이 소”하는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24
“어디 가나?”
 
25
“장에 갑니다.”
 
26
“이 바쁜데 장엔 뭣하러! 자네넨 타작이 다 끝났나?”
 
27
“웬걸요, 앞뜰 닷 마지기만 그저께 해치웠지요.”
 
28
나는 생전 처음으로 양철집이 번지르르한 읍내 구경을 했다. 쇠장터 거리를 빠지다가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한 손에 그릇을 십여 개나 목판에 받치어 타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29
“사람이란!”
 
30
하고 탄복하다가 돌쇠한테 엉덩이를 철썩 얻어맞았다. 이리하여 팔십오원이니 구원이니 하고 웬 중절모자와 악다구니를 한 끝에 나는 돌쇠의 손에서 중절모자한테로 넘어갔던 것이다.
 
31
“에 참, 소 조옿다!”
 
32
중절모자가 대문 앞을 들어서려니까 쥐뿔도 모름직한 친구들이 둘러서서 가장 시험이나 하는 듯이 나의 걸음새를 보고 엉덩이도 쥐어박아본다.
 
33
이것이 내가 철난 후로 처음 팔려간 것이었다.
 
34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세 번째 이 집으로 넘어온 것이다. 두 번째 넘어올 때는 그야말로 상팔자였다. 사흘 동안이나 파리나 쫓고 누워서 콩죽만 먹었던 것이다.
 
35
지금도 나는 그때 생각을 한 것이다.
 
36
사실 나는 이전에 박 첨지네 논을 갈러 갔을 때 박 첨지가,
 
37
“이쿠, 너두 도수장이 멀잖았고나!”
 
38
하던 소리를 듣지만 않았던들 콩깍지 주라는 소리가 반가웠을 것이었다.
 
39
이 집, 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는 덕칠네 집으로 온 후로는 일만 호되게 고되고 먹는 것 한 가지 변변지 못했다. 여름 한철이면 논둑으로 돌아다니며 풀이나 흠씬 뜯으니까 이러니저러니 주인 탓을 할 것도 못 되지마는 풀빛이 노래진 후로는 여물 한 줌 가지고도 발발 떠는 덕칠이었다.
 
40
작년 봄에 나는 이 집 주인한테 음성 장에서 팔려왔다. 처음 와서는 하도 주인이 노랑방퉁이 짓을 해서 얄밉기도 하고 사실 이 집에서 주는 것만 먹고서는 일을 감당해나갈 재간도 없어서 하루는 단식을 하고 죽을 먹지 않았다. 두 끼나 내가 때를 거르는 것을 보더니 덕칠이는 얼굴이 노랗게 질려가지고 예천이(소침장이)를 불러댄다 기름을 먹인다 법석이 났다. 그래도 오는 날부터 여물깍지만 들이대는 데 배알이 나서‘날잡아잡슈’하고 누웠으려니까 밤이 이슥해서 덕칠이가 나왔다. 성냥불로 구유 속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더니 눈이 홱 돌아가는지 법석을 하며 콩을 얻어 온다, 또 예천이를 부른다 야단이다. 그래서 나는 걸쭉한 죽을 받았다. 콩내가 구수하게 치미는 것을 내려다보면서도 나는 버티었다.
 
41
이튿날 아침에 나는 또 한 차례 예천이한테 생침을 맞았다. 덕칠이와 온 집안 식구가 모두 구유 앞에 둘러서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을 보니 딱하기도 했지마는 그보다도 턱없이 멀쩡한 것이 생침을 자꾸 맞을 턱도 없어서 흉물을 떨며 간신히 일어났다.
 
42
“얘 이놈의 소야, 누구를 죽이려고 이러느냐. 너 하나에 집이고 밭이고 다 들어간 것은 모르고 네가 우리 식구를 모두 굶겨죽이려는 셈이냐?”
 
43
덕칠이가 구유 멜빵을 잡고는 한탄을 하였다. 그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
 
44
나는 그제서야 덕칠이가 어떻게 나를 사온 것을 알았다. 밭 하루갈이로서는 아홉 식구가 연명할 수가 없으니까 그것을 팔고 다 쓰러져 가는 초가를 포목전 보는 중국 사람한테 잡혀가지고 나를 산 것을 안 것이다.
 
45
이 처참한 정경을 알고 그의 눈물을 보니 사실 꾀병 앓을 덧정도 없어졌다. 내 마음이 악독지 못한 탓이었지마는 나는 가슴까지 쓰렸다.
 
46
사실 내가 보기에도 밭 반나절갈이로는 아홉 식구가 연명해 갈 도리가 없었다. 방 주골 김 참봉네 논을 너 마지기 얻어부친다고는 한다지마는 도지 물기에도 바쁜 눈치였다. 아홉 식구의 이마를 쥐어짠대야 노랑물 한 방울 나올 데 없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인가 생각되었던 것이다.
 
47
그런 중에도 덕칠이는 벌써 환갑이 가까웠다. 마나님은 쇠꼬리처럼 마른데다가 해수병이 있어서 찬바람만 나도 콜록거린다. 개량개량한 것이 언제 쓰러질지도 기약할 수 없는,자기 말마따나 공동묘지 어귀에서 사는 위인이었고 덕칠 영감만 해도 강단이 있어서 버티기는 하나마 나이란 무서운 것이다.
 
48
맏아들 장성이는 수숫대처럼 키만은 멀겋지마는 늘 휘청휘청하였다. 껑충하니 밤에 걸어갈 때면 흡사히 장대가 걸어가는 것 같고 싱거운 소리만 툭툭 던지는 것이 맺힌 데가 없는 위인이다.
 
49
“자식이 왜 저리 시원치 않을까…”
 
50
덕칠 영감은 아들이 걸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혼자서 탄식하였다.
 
51
맏아들이 그런 대신 둘째는 실했다. 누구를 닮았는지 토막을 쳐놓은 듯이 다부지게 생기었다. 기운 꼴도 썼고 몸 다루는 것이 날쌔기도 하였다.
 
52
사실 덕칠네 집안은 이 둘째아들 만성이가 버티어 나가는 셈이다. 그렇건마는 안달뱅이 덕칠 영감은 늘 그를 못마땅해한다.
 
53
“내 저렇게 소같이 먹은 자식은!”
 
54
높은밥 한 그릇쯤은 눈 끔벅 할 새 먹어치우는 만성이다.
 
55
끝으로 열네 살 난 막내동이 이쁜이가 있다. 이쁜이는 이름대로 예쁘장하게 생긴 참한 색시다. 그렇지마는 이쁜이도 이 집의 전통처럼 되어 있는 ‘개량개량’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도 댓가지처럼 말라배틀어졌다.
 
56
이런데다가 “아귀같이 먹기만 한다”는 장성의 어린 새끼가 둘에 기골이 장대한 장성이 댁, 지난 봄에 만성의 처로 얻어온 민며느리, 나를 보태면 열 식구나 되는 큰 집안이다. 야속하게도 먹을 것이 없으면서 아귀같이 먹어야 할 그들이었다. 억척같이 일을 해도 야속스럽게도 생기는 것이 없는 그들이었다.
 
57
이러한 집안에 태어난 것을 장성의 어린것들이 탄식하듯이 고르고 고른다는 것이 하루에 죽 세 끼도 못 끓이는 데로 팔려온 것이 나로서는 그지없이 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멍에를 멘 채 무심한 강산을 우러러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2. 2

 
59
그래도 오히려 나는 참았다.
 
60
아니 내 한 몸으로 이만한 식구를 벌어먹인다는 자부심에 나는 되레 이런 집으로 팔려온 것을 다행히 여긴 적까지 있었다.
 
61
그렇기에 여물만 멀겋게 끓인 것을 먹고 온종일 끌어보지도 못한 마차를 끌면서도 군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것이다.
 
62
사실 태산 같은 짐을 싣고 모도원 고개를 넘어갈 때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입에 풀칠하기에 눈이 뒤집힌 만성이는 발을 콩콩 굴러가며 매채를 울렸다.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을 보면‘쇠눈깔’이라고 하는데 우리들 축에서도 유달리 눈깔 망나니라는 별명을 듣는 내가 그 쟁반 같은 눈을 휩 뜨고 고개를 넘노라고 허우적대는 꼴을 보았다면 초상 상제라도 웃었을 것이다.
 
63
‘이 고개를 넘다가 나는 죽는 게다.’
 
64
나는 생각하였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끓어오르고 눈 속이 화덕 같다. 다리가 마비되어서 이것은 마치 기계가 돌듯 나도 모르게 드놓여졌다.
 
65
“이러 이 소야!”
 
66
‘딱!’하고 엉덩이에 매채가 울었다. 그럴 사품마다 죽을 힘을 다했다.
 
67
‘한 발자국만! 그저 한 발자국만! 이 한 발자국이 나를 살리고 굶어 뻐드러진 아홉 식구를 먹여살리는 것이다!’
 
68
나는 악을 박박 썼다.
 
69
‘오냐! 이놈들아! 내가 죽어 뻐드러질 때까지 채찍질을 하여라! 내야 어차피 죽기는 마찬가지다!’
 
70
이렇게 속으로 발악을 치면서도 나는 마차를 끌었다.
 
71
이러다가도 나는 만성이가 마루이찌라는 운송점에 가서 여덟팔자 수염을 깜상하게 기른 일본 사람한테 영감 그린 지전을 석 장이나 받는 것을 볼 때에는 기뻤다.
 
72
이렇듯 볶아치는 생활을 나는 반년이나 하였다. 그러던 것이 화물 자동차가 먼지를 피우고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 나도 마차를 끌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73
사람이란 짐승을 부려먹는 데는 이골이 난 동물이다. 마차짐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나를 품팔이로 내세웠다. 오늘은 장 첨지네 내일은 구 서방네 하고 이집 저집으로 끌려다녔다.
 
74
일은 좀 편했다. 그러나 일이 좀 수월한 대신 덕칠 영감네 집안에는 죽이나마 못 끓이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덕칠 영감은 그 조그만 곰방대를 물고는 뜰팡에 앉아서 한숨을 치쉬고 내리쉬는 날이 늘어갔다. 하다 못한 장성이는 정 주사네 머슴으로 들어가고 집안에서는 어린것이 아귀같이 밥을 내라고 볶아쳤다.
 
75
“배고파! 어머니!”
 
76
“아이, 죽이라도 후룩후룩 좀 들이마셨으면!”
 
77
코를 찔찔 흘리는 것들이 외양간 앞에 둘러앉아서 이런 넋두리 하는 소리를 들으면 비록 짐승일망정 눈물이 핑 돌고는 하였다. 짐이라도 하나 생겼으면 하였다. 모도원 고개를 넘다가 거꾸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짐만 생겨라 하였다.
 
 
78
이른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온 집안이 숙덕숙덜하더니 점심때가 실히 되어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영감네 집으로 내달았다.
 
79
“쥔 있소?”
 
80
나는 들은 척도 안했다.
 
81
“여보, 쥔 없소?”
 
82
조금 있다가 영감이 허우단심 뛰어들어왔다.
 
83
“당신이 쥔요?”
 
84
“그렇쇠다.”
 
85
영감은 머리를 굽실한다.
 
86
“임자가 김덕칠이야?”
 
87
“예에.”
 
88
“그럼 이리 좀 와!”
 
89
영감은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한동안 밖에서 떠들썩했다. 그러더니 마차를 이리저리 다루는 소리가 나고 사람들의 발소리가 잦더니 안 봉당에서 울음 소리가 터졌다.
 
90
사람들도 흩어지고 나는 점심때가 넘어서야 김 참봉 집 돌메방아를 가서 돌렸다.
 
91
저녁때 집으로 돌아오다가 보니 마차는 그대로 있었다. 나는‘괜히들 그랬군’했더니 자세히 보니 앞바퀴 위에 빨간 종이쪽지가 하나 붙었다.
 
92
나는 마차도 청결을 하는 겐가 하였다. 가끔 순사가 와서는 청결했다고 삽짝에다가 종이쪽지를 붙이고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93
그 종이쪽지가 청결했다는 표가 아닌 것을 내가 안 것은 그후 며칠인가 지나서다.
 
94
하루는 늘 짐을 부치는 사또오상이 와서 서투른 조선말로 영감을 보고,
 
95
“덕칠이, 자완(長湖院) 지미 시루지 아나?”
 
96
“실구야 싶지만 마차가 있어야죠!”
 
97
하고 영감은 외면을 하였다.
 
98
“마차? 조기 있눈고시 마차 아니고 모야.”
 
99
“넹감상 말두 마시오! 속상하오! 뻘건 딱지 못 보시오.”
 
100
“아 소오까! 젠장 이거 오또카나!”
 
101
사또오상은 가버렸다. 그래도 영감은 멀끔히 마차를 들여다보고 섰더니만 덜컥 하고 마차 위에 쓰러지며 푸념을 시작했다.
 
102
그러더니 어린애처럼 좍좍 울었다.
 
103
얼마를 울더니 다시 실성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서,
 
104
“이놈들… 이놈들! 내가 이걸 그냥 둘 줄 아느냐!”
 
105
하고 고함고함치며 마차에 붙었던 종이쪽을 박박 손톱으로 긁어냈다.
 
106
마차에 붙은 것을 다 긁어내더니만 영감은 다시‘와르르’하고 삽짝으로 갔다.
 
107
나는 그제서야 집에도 빨간 쪽지가 붙은 것을 보았다. 영감은 그것마저 벅벅 긁어내고는 땅을 치며 울었다.
 
108
나는 차마 그 꼴을 볼 수가 없어서 외면을 했다.
 
109
그 빨간 쪽지를 찢은 덕택으로 영감은 유치장에서 거의 이십 일 만에야 집에 돌아왔다.
 
 
 

3. 3

 
111
과연 예측한 대로 나는 콩죽을 먹은 며칠 후에 읍내로 끌려가고야 말았다.
 
112
전날 석양판에 마지막으로 나는 김 참봉네 도지를 싣고 수청골로 갔다. 일년 동안 피땀 흘려 농사지은 데서 벼 두 말 남짓하게들 차지하고 영감은 모두 실었다.
 
113
영감이 나의 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내 뒤에는 중국놈하고 구장하고 안골 박 서방이 따라섰다. 이 셋이 다 빚쟁이인 줄도 나는 알지마는 나는 그뿐이 아니라 그들이 다 돈만원씩이나 가진 일테면 부자인 줄도 잘 안다.
 
114
내가 삽짝거리까지 끌려나가는 것을 보자 이 집안에서는 버레기 깨는 소리가 터졌다. 마나님이고 며느리고 애들이고 뜰팡에 엎치고 덮치어 통곡을 하였다. 영감이 내 고삐를 잡은 주먹등으로 눈물을 씻었다.
 
115
“어서 가세! 이러다가 파장이 되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116
구장이 사람한테 채찍질을 하였다.
 
117
시름없이 눈물을 씻으며 걸어가는 영감의 뒤를 나도 역시 맥없이 따라갔다.
 
118
읍내까지는 여기 사람들한테 물으면 그저‘갈만한 십리’라고 하지마는 기실은 이십리가 담뿍 된다.
 
119
철맞은 읍내장은 한창 어우러졌다. 한동안 좁은 골목을 빠지더니 바로 쇠 장터 앞에 있는 주막집 옆에다 나를 세워놓고 요기를 하러 들어갔다. 쇠장에는 수십 마리의 우리 동족이 말뚝에 매어져 있었다.
 
120
“자넨 요기 하잖을 텐가?”
 
121
하고 넌지시 던지는 말에 영감은 고개만 내둘렀다.
 
122
“왜 시장할 텐데 그러나.”
 
123
“구장님네나 자시고 오슈. 요기할 줄을 누가 몰라 그런답디까? 돈 없어도 누가 요기 시킨답디까?”
 
124
영감은 말하였다. 그것은 마치 화풀이를 하자고 서두는 것같이 들리었다.
 
125
영감은 국 가마 너머로 남 먹는 것들만 넌지시 넘겨다보고 섰었다. 그러더니 구수한 냄새에 비위가 드놓던지 슬쩍 외면을 한다. 나는 그 사품에 영감의 한숨소리를 들었다.
 
126
‘죽일 놈들! 어쩌면 같이 온 사람을 남겨두고 저희들끼리만 음식을 처먹는담!’
 
127
나는 혼자 분개했다.
 
128
보아하니 안에서는 커다란 열쇠 꾸러미를 늘어뜨린 술집 여편네가 따라주는 걸쭉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켜고는 국말이 밥을 기가 나서 긁어넣는다. 주거니받거니 흥이 나서 먹는 것을 보고는 나는 내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중국놈에겐 술을 따라주면서 같은 조선 사람인 그리고 어려서부터 같이 컸을 친구는 못 본 체하는 그놈들의 심사가 들여다보고 싶었다. ‘으흥’소리를 치고 그놈들의 창자를 산적 꿰듯 뿔에 꿰들고 한바탕 밟아 넘겼으면 하는 충동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럴 때다.
 
129
무엇인지 나의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본 순간 찬 땀이 쪽 흘렀다. 가슴에 화살이 픽 들어박힌 것 같았다. 나는 몸서리를 쪽 치고 외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30
나는 확실히 보았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다시 한번 살며시 훔쳐보았다. 그렇다, 그것이 틀림없다.
 
131
그것은 우리 친구였다. 내가 어렸을 적에 같이 놀던 나의 친구의 얼굴이었다. 아니 돌쇠한테 끌려서 논풀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삼 년 만에 만난 나의 죽마고우였다. 나는 그도 마침 한동리에 사는 것을 알고 틈틈이 만났다. 나는 그의 사내가 되었다.
 
132
우리가 사귄 지 얼마 만에 그는 나의 자식을 낳았다.
 
133
그러나 그나 내나 팔린 몸이다. 또 언제 어디로 팔려갈지도 모르는 가엾은 신세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한탄을 하였다. 이놈의 인간들을 다 없애고 마음놓고 살아봤으면 하고 통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134
아니나다를까 나는 그 다음날에 어린것을 보지도 못하고 영감 집으로 팔려오고 말았던 것이다.
 
135
그것은 바로 그였다. 나의 친구, 아니 나의 계집이다. 아! 그것이 어찌 저 꼴이 되어 있을 겐가. 모가지만이 동그마니 부뚜막에 놓여 있지 않은가? 저 목을 누가 저렇게 잘라놓았을까. 목통에서는 아직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지 않은가?
 
136
그 노르스름한 머리털도 제 성미처럼 생겼다고 아양을 피우던 안으로 굽은 뿔도 그대로 둔 채 목을 자르는 무지막지한 놈이 있단 말인가?
 
137
그는 나를 안 보려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덧 주름살이 잡힌 얼굴에는 죽을 때의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저 눈! 그 영롱하던 눈! 보통학교 다니는 금순이라는 계집애한테 배웠다고 “푸른 하늘 은하수…”를 한답시고 끙끙대기만 하던 저 입!
 
138
나는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139
저놈들을 그대로 둘 수가 있느냐.
 
140
이러한 격동이 지나가자 그제서야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졌다. 이것이 우리의 일생이냐?
 
141
눈물어린 나의 눈은 또 한 가지를 발견했다. 나의 친구의 다리다. 나의 계집의 족이다! 그 다리에서도 피가 아직 흐르고 있지 않으냐?
 
142
아니 그것뿐이 아니다. 나는 그놈들이 막걸리를 먹고 섰는 저편 철망 속에 시뻘건 살덩이를 보았다. 커다란 쇠꼬챙이에 걸린 큼직한 살덩이를, 그것은 나의 아내의 허벅다리일 것이다. 아직도 살점이 꿈틀꿈틀하는 것 같다.
 
143
“이 소 팔 께요?”
 
144
하고 누가 나의 엉덩이를 탁 쳤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쪽을 보았다. 가무대대하게 생긴 사십 남짓한 사나이였다. 동저고릿바람에 회초리를 한 개만 들었다.
 
145
“예, 그렇소.”
 
146
영감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147
“얼마 달라오?”
 
148
그 사나이는 영감의 대답은 그만두라는 듯이 또 한번 나의 볼기짝을 후려 갈겨 보고는 앞뒤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나의 잔허리를 꽉 쥐었다 놓으며,
 
149
“얼마요?”
 
150
“왜 사시려요?”
 
151
“살 테니까 묻는 게지 사지두 않을 걸 값을 볼까.”
 
152
그러고 또 한번 다지었다.
 
153
“얼마 달라오?”
 
154
“백삼십원 주쇼.”
 
155
“뭐? 얼마?”
 
156
“백삼십원요!”
 
157
그 사나이는 꺼르르 웃어젖혔다.
 
158
“백삼십원! 백자를 어이 알았네.”
 
159
백삼십원 소리를 듣고 나는 이렇게 순직한 사람도 있나 하였다. 자기가 갚을 것이 백삼십원이라고 해서 백삼십만 달란 것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60
“댁이 미쳤단 말요?”
 
161
그 사나이는 사십밖에 못 보이건만‘댁’자를 선선히 붙이었다.
 
162
“왜 그 값이 못 간단 말요.”
 
163
“여보, 그 허튼소리 마오. 지금 소 금이 어떻게 떨어졌다고 백자를 갖다붙이오? 지난 장에도 피둥피둥 젊은 놈이 구십원밖에 못 갔소.”
 
164
“소를 보고 말을 해요. 이래봬도 마차소요!”
 
165
“마차소? 이 다 늙어빠진 놈이 마차소!”
 
166
“그럼 얼마나 가겠소, 금을 내보시오.”
 
167
영감은 기가 막히는 듯이 손만 싹싹 비비고 섰다.
 
168
“칠십오원 받우! 칠십오원이래두 상값이오. 그러구 우린 늙은 소를 사다간 손해만 보우. 더구나 마차소로 늙은 놈은 당초에 고기맛이 나야 말이지. 이건 아주 장 나무 껍질 씹는 맛이니.”
 
169
‘옳다! 이놈이 소 잡는 놈이로구나!’
 
170
하고 즉각적으로 나는 깨달았다. 보아하니 행패가 그럼직한 놈이다. 매부리 코에 눈깔딱지는 마치 아람 부른 밤송이 같다.
 
171
“그만두! 내가 잡아먹을지언정 그 값엔 못 팔겠소.”
 
172
영감은 넌지시 물러섰다.
 
173
그럴 때 요기하던 사람들이 우 몰려나았다.
 
174
“이 솔 사려구 그러오?”
 
175
먼저 구장이 나섰다.
 
176
“값이 하두 호되니 어디 사겠소.”
 
177
“얼마나 달랬소?”
 
178
박 서방이 영감을 보고 물었다.
 
179
“일백삼십원 내랬죠.”
 
180
“일백삼십원. 허 그건 너무 과하게 불렀군. 그래, 얼마나 보셨소.”
 
181
이번에는 사십 된 사나이를 쳐다보았다.
 
182
“칠십오원에 팔랬죠.”
 
183
“허, 그건 또 너무 내리깎았군.”
 
184
이번에는 왕 서방이 나섰다.
 
185
값을 가지고 한동안 실랑이가 났다. 오르고 내리고 하다가 영감은 백원 아니면 안판다고 뻗댔으나 빚쟁이로 본다면 하루라도 먼저 파는 것이 이익이라 구십원에 금을 놓았다.
 
186
“구십원엔 죽어도 못 팔겠소!”
 
187
하고 영감은 침을 퉤퉤 뱉으며 내뻗었다.
 
188
“이 사람이, 그래 뻔한 시세가 있는 걸 공연히 내 욕심만 차리면 되는 거야!”
 
189
구장이 한 번 영감을 몰아 윽박질렀다.
 
190
“글쎄, 그런 시덥잖은 소리 마우.”
 
191
하고 결기까지 내며 동저고리 사내가 눈을 흘기며 저쪽으로 가다가 되돌아 서서 또 보태었다.
 
192
“자 보구려,저기 있는 저 소가 칠십원에 팔렸소. 암소고기하구 늙은 황소 고기하구 대겠소! 더군다나 마차소로 늙어빠진 놈의 소를.”
 
193
“이놈! 내가 늙어빠져!’
 
194
하고 나는 그 순간에 피가 확 끓어올라왔다. ‘이놈이다! 나의 여편네의 목을 자르고 살점을 베서 판 놈이 이놈이다.’ 나는 눈이 팽 돌았다. 숨이 꼭 찼다. 다리가 와들와들 떨리고 가슴속에서 달구질을 쳤다.
 
195
나는 내 아내의 모가지를 또 한번 보았다.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내 여편네의 목통을 보았다. 네 토막이 난 다리를 보았다. 뻘건 핏덩이인 허벅다리를 보았다. 염통의 피를 보았다! 도끼날에 목을 잘리며 허우적대던 아내를 보았다. 눈물이 좌르르 쏟아지는 여편네의 얼굴을 나는 보았다. 흥건히 괸 피를, 목 잘린 여편네가 아픔을 못이기어 네 굽을 놓는 꼴을!
 
196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여편네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친구를 부르는 신음소리를! 남편을 부르고 자식을 외치는 소리를, 아니 동족을 부르는 소리를.
 
197
“으으응.”
 
198
나는 이것만을 기억할 뿐이다.‘으응’소리를 치며 고삐를 끊어가지고 그 놈을 쫓아간 기억밖에 없다. 나는 미쳤었다. 눈이 뒤집혔었다. 나는 뿔로 뜨고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피를 보았다.
 
199
그러나 나는 이밖에 기억이 없다. 오직 나는 고함쳐 동무를 부른 것을 기억한다. 그러고 어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200
다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온 장안을 헤매도록 나 혼자뿐이었다는 것 뿐이다.
 
201
나는 이밖에 모른다.
 
202
<「중앙」9호,1934년 7월>
【원문】우심(牛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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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영(李無影) [저자]
 
  193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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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4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