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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죽은 모나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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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3~4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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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죽은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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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투성이(農民)의 딸자식이 별수가 있나! 얼굴이 반반한 게 불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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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윤달이 들어 철이 이르다면서 동지가 내일 모렌데, 대설 추위를 하느라고 며칠 드윽 춥더니, 날은 도로 풀려 푸근한 게 해동하는 봄 삼월 같다. 일기가 맑지가 못하고 연일 끄무레하니 흐린 채 이따금 비를 뿌리곤 하는 것까지 봄날하듯 한다. 오늘은 해는 떴는지 말았는지 어설프게 찌푸렸던 날이 낮때(午正)가 겨운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대로 더럭 저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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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발 가운데 외따로 토담집을 반 길만 되게 햇짚으로 울타리한 마당에서는 오목이네가 떡방아를 빻기에 정신이 없이 바쁘다. 콩 콩 콩 콩 단조롭기는 하되 졸리지 아니하고 같이서 마음이 급해지게 야무진 절구 소리가 또 어떻게 들으면 훨씬 한가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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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 이마에서는 빚어진 땀방울이 볕에 그은 주근깨 새까만 얼굴로 흘러내리다가 구정물이 되어 그대로 절구 속 떡가루로 떨어진다. 떡이, 소금을 두지 아니해도, 찝찔한 것 같다. 싯싯 하면서 찧느라고 침도 튀어 들어간다. 싯 하고 콩 하니 내려찧고는 이어 허리를 펴면서 절굿대를 들어올리느라면 때에 전 당목저고리 앞섶 밑으로 시들어빠진 왼편 젖통이 댈롱 내다 보인다. 젖도,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코가 펑퍼짐 하니 궁상스러운데다가 겉늙은 얼굴처럼 시들어빠졌다. 기름이 한창 오를 여인네 사십에, 그러나 농군의 아내는 중성(中性)이 되어버린다. 여복(女服)에 머리 얹지 아니했으면 누가 여자라고 볼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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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콩 콩 콩 오르내리는 절굿대는 바쁘다. 그래도 아직도 두 번은 더 쳐야지 무거리가 아깝다. 절구통 옆으로는 그새 찧어서 쳐놓은 떡가루가 하얗게 큰 함지로 가득 담겨 있다. 떡가루를 뒤집어쓴 체가 절구에 울려 함지전에서 위태하게 달랑거린다. 절구통 가로 땅바닥에는 잔 놈, 굵은 놈 떡가루가 아끼듯 살살 뿌려져 있다. 쌀 한 알갱이 떡가루 한 낱도 새로와하는 규모지만 절굿대 끝에서 튀기도 하고 체로 칠 때 날리기도 해서 하는 수 없이 그만큼씩은 번번이 허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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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더럭더럭 저물어만 간다. 들판 건너 앞마을에서 저녁 연기가 하나씩 둘씩 가느다랗게 솟아오르고, 바로 언덕 밑 대밭집의 대숲에는 잘 새가 날아들어 요란스럽게 지저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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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저녁은 갈데없이 저물었다. 오목이네는 남편이 들에 나갔다가 잔뜩 시장해서 돌아올 텐데 냉큼 밥상을 갖다주지 못할 것이 민망도 하거니와 성미가 사나운 남편이 시장한 화풀이로 한바탕 푸념을 할 터, 더군다나 날이 이래서 내일은 장이 깨어지기 쉬우니 떡은 그만두라고 하는 것을 우겨서 기어코 떡방아를 시작했으니, 그랬다고 오금을 박을 터, 그래 옥신각신하다가 저녁도 먹지 하니하고 동리 쇠죽방으로 휙 나가버릴 테니 이 일을 어쩌나 싶어 정신이 없고 떡방아는 그냥 건성으로 찧어진다. 이렇듯 일이 사뭇 몰려 각다분한 때면 그는 딸 오목이 일이 절로 안타까와 속이 상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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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그렇게 멀지 아니했으면 왜 이다지 혼자서 쪼들리랴. 작년 초가을까지도 조석이며 바느질을 다 저 혼자 말아서 해치우고 그리고도 낮으로는 들일이며 밤으로 가마니치기, 신삼기, 또 장 안날이면 떡방아까지 거들어주곤 했었는데. 그 원수의 눈이 멀고 난 뒤로는 이렇게 혼자만 혀가 나오게 몰려 지내니, 그래 안타깝고 그래 속이 상하는 것이요, 그런 때면 생트집이라도 잡아 입으로나마 애꿎이 화풀이를 후련히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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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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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미가 나는 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절구질을 멈추고 서서 방으로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있는 양식에 물도 다 길어다 두었겠다 계집애가 나이 열여덟 살에 눈이 아니 보이기로서니 밥 한 끼 지어보지 못하랴. 어서 나와서 쌀도 씻고 불도 지피고 할 것이지 저녁이 이렇게 저무는데 아기똥하고 방구석에 처박혀 앉았기만 하느냐고 여지없이 지천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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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볼품 사납게 버럭 질러 부르는 소리에 그는 도리어 자기가 놀랐다. 눈먼 딸자식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것도 따지자면 어미 아비의 죄지, 배냇병신도 아니요, 작년 여름까지도 멀쩡하던 눈이 아프다는 것을 늦잡도리해서 필경 멀고 말았으니 가난한 탓이요, 어미 아비의 죄인 걸 그나마도 다른 자식이 있는 바도 아니요, 그야말로 눈먼 딸 자식 그것 하나뿐인 것을 갖다가 부려먹지 못해서 아등바등하며 화풀이를 하려 드는 어미의 심정이 몹시 불측스러워 그래 당장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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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넓적다리를 걷어 올리고 앉아 신총을 비고 있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눈감은 처녀의 두렷한 얼굴과 걷어 올린 넓적다리는 유난스럽게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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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은 방이 아니라, 인간이 실족(失足)을 해서 돼지우리에 빠진 양이다. 벽은 벌흙에다가 신문지를 그대로 바른 것이 검누렇게 퇴색이 되고 군데군데 찢어져 흙이 비어져 나온다. 북쪽 벽이 몸뚱이 하나 들락날락 할 만하게 뚫리고 거기는 시늉이나마 백지를 발랐다. 잘못하면 선실의 창으로 보겠다. 앞쪽으로 문골을 박는 흉내만 내고 진짬 죽창이 삐뚜름하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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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에는 낡은 갈자리, 그나마 웃목은 거적이다. 아랫목 한편 구석으로 가마니쪽을 둘러 앉힌 것은 이 방에서 쾨쾨한 냄새가 나는 청국장 시루다. 그것이 아니라도 잘 사는 사람 집의 돼지우리 셈밖에 안되는 이방에서 악취가 나지 아니할 리야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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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목으로는 가마니틀을 비롯해서 베헝겊으로 깨어진 자국을 바른 독도 있고 누더기 이불을 올려놓은 궤짝도 있다. 궤짝은 색종이로 바르고 그 위에는 열여덟 살 처녀의 눈떴을 때의 마음씨였던 듯이 무색 그림이 두어 쪽 붙어 있다. 짚신 삼을 짚신총, 짚신 삼아놓은 것이 제가끔 제 멋대로 그득한 짚북더기와 한가지로 널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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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서 눈감은 처녀 오목이는 걷어올린 넓적다리에다 짚 테를 대고 족족 신총을 비고 있는 참이다. (루소가 살았더라면 보여주고 싶은 한 장면이다.) 오목이는 신총을 비면서 그것은 손끝에 익어난 일이라 정신을 들일 것도 없고 감은 눈으로 고요한 세상을 보느라고 자지러진 어머니가 콩콩 떡방아를 찧는 절구소리도 아득히 먼 세상의 일로 귓결에 들리고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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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눈이 먼 뒤로부터는 언제고 그렇게 지낸다, 날이 새고 해가 저물고 밖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일을 하고 하는 것을 유념하면 다 알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아차리고 염량을 해도 눈이 먼 오목이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까 그는 차라리 곰곰이 앉아 신총이나 비고, 신이나 삼고 하면서 감은 눈으로만 보이는 고요한 세상-그 중에도 지나간 해 가을 처녀의 마음이 싹트면서 바로 만나던 한 사람 총각이 영상을 둘러싸고 갖추갖추 벌어지는 꿈 아닌 꿈의 세상을 두루두루 헤매느라고 거의 넋을 놓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즐거운 명상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시 저 끝에서 이 끝까지 되풀이하고 나면 그는 호하고 절로 한숨을 쉬고라야 만다. 그 명상의 세상이 눈이 멀고 난 시방 자기에게는 부러운 남의 일 같아서 눈먼 한을 그처럼 한숨으로 힘없이 자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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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정이 나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오목이는 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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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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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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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하고 신총 빈 것을 한 줌 주먹에 쥔 채 더듬더듬 앞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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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어머니가 역정이 나셨을까.’바람 기운이며 대숲의 새소리가 어쩐지 날이 저문 줄을 오목이도 알았다. ‘아마 떡방아는 바쁜데 날이 저물기는 하고 하니까 그래 어머니가 그러시나보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진작 나가서 하나 못하나 거들어드릴 걸.’오목이는 이렇게 뉘우치면서 문지방을 잡고 일어섰다 방문 . 앞이 마루도 없이 바로 토방이요, 그 밑이 연달아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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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대답을 하고 나가도 아까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러 부르던 어머니가 아무 말도 없으니까, 아마 단단히 역정이 나셨나보다 생각하고 그래서 주춤추춤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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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날 불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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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되불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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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타고 난 것이지만 약간 떨리는 듯한 소리가 가늘기까지 해서 자지러지게 애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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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알에 허옇게 백태가 덮이고, 동자께로 시뻘건 발이 서서 그것이 남이 보기에 얼마나 흉허우랴 싶어 일부러 육장 그렇게 감고 있는 것이다. 그래 눈을 감기는 했어도, 눈알이 상해서 움푹 패어 들어간 다른 장님들같이 그렇지는 아니하였다. 얼굴은 이름처럼 오목오목하니 애티가 나고 귀염성스럽다. 그러나 양초같이 흰 얼굴에 눈을 막 감고 있으니까 어디라 없이 속세의 사람이 아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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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는 그러지 아니해도 벌써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는데 딸의 목소리가 들리고 이어 더듬더듬 기다시피 나서서 혹시 지천이나 들을까봐 놀란 비둘기처럼 조심하는 것이 그만 눈물이 나게 애처로왔다. 그는 얼른 목소리를 부드럽혀 딴 말로 둘러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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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나오지 말아라. 나는 짜악 소리두 없길래 불러보았지야…… 신총 비구 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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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어머니의 속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어머니가 무엇 일을 시키려다가도, 또 나무람을 하려다가도 차마 불쌍해서 못하고 언제나 목소리 부드럽게 상냥히 구는 것이 도리어 슬프고 마음이 무거웠다. 차라리 그는 어머니가 그런 눈이 멀지 아니했을 때처럼 함부로덤부로 일도 시키고 나무랄 때는 나무람도 하고 했으면 적이 마음이 가벼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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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는 절구에서 떡가루를 꺼내어 체에다 찰칵찰칵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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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잠시 우두커니 문지방을 잡고 서서 잠잠히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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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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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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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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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목소리는 더욱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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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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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니가 어떻게 밥을 한다고 그러냐…… 인제는 거진 다 되었으닝개루 그만두구 들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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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렇게 반색을 해서 다독거리듯 말린다. 그러다가 그래도 미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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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배고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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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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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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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제가 시장한 것보다 저녁이 저물고 하니까 민망해서 그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배가 고프지 않으냐는 말을 듣고 보니 잊었던 시장기가 다시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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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좁쌀이 반도 더 섞인 것을 일찍이 먹고 점심을 먹지 아니하니까 언제든지 저녁때면 시장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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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시장할 뿐 아니라 오늘은 어쩐지 속이 궁금해서 무엇 맛있는 것이 먹고 싶었다. 김장이라고 흉내만 낸 갈잎같이 뻣뻣하고 씁쓰름한 김치에 청국장 한 뚝배기가 언제나 변찮고 밥상에 오르는 이 집의 반찬이다. 오목이는 먹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생각에 보았다. 생각해 보니 퍽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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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환갑잔칫집에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얻어먹은 갈비도 먹고 싶고, 작년 가을에 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사다 주어서 날로 기름 소금에 찍어 먹던 양도 먹고 싶고, 그러다가 제육둘림이 선연히 보이면서 와락 먹고 싶어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돼지고기를, 그놈 맛있는 김치를 수웅숭 썰어넣고, 밀가루를 살짝 두어 복복 주물러서 바글바글 지져놓고 뜨끈뜨끈한 채로 밥을 먹었으면…… 이렇게 생각하다가 또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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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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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어머니를 불러는 놓고도 차마 말이 나오지 아니해서 주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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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는 딸이 무슨 말을 할 듯이 긴하게 부르고도 말을 아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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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냐?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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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재차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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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저어, 장에 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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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더듬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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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무엇 사다 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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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니, 저어, 내 신 팔거든…… 저…… 아버지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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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신 판 것은 잘 뫼야(모아) 두어야지 써서 쓰겄냐(되겠냐)! 내가 떡 판 돈으로 사다 주께 말하여 봐라, 무엇 사다 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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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신 판 돈으루 사…… 돼지고기 닷돈(十錢)어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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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돼지고기란 말을 해놓고 오목이는 무색해서 해죽 웃는다. 오목 이네도 딸을 바라다보고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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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냐, 사다 주마 …… 돼지고기가 먹구 싶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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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지만 지(김치)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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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림하여 먹게? 오오냐, 내가 내일 장에 갔다 오믄서 돼지고기 사구 또 지두 맛있는 놈 조개(조금) 얻어와서 둘림 해주마…… 워느니 아무리 어려워두 지름끼를 한 번 사다가 먹을라던 참인디 잘 되았다…… 한 냥어치만 사다가 늬 아버지랑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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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제육둘림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침을 또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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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러자면 짚신을 한 켤레라도 어서 더 삼아야겠는데, 그렇지만 날이 흐렸다더니 어떨까 해서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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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괜찮얼까?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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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원 나두 혼자 시방 허느니 그 걱정이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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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는 치고 난 무거리를 절구에 붓고 다시 절굿대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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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사립문께서 헴 하는 밭은기침 소리가 들려 오목이는 얼른 문을 닫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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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라고 하는 앞마을 총각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시늉이나마 장가를 가서 자식깨나 낳고 착실히 살림에 매어달려 있을 나이인데 스물세 살이라도 아직 총각이다. 총각이로되 말썽이 이만저만치 않은 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열여덟 살 되던 해에 집을 나가더니 오 년이나 타관으로 돌아다니다가 작년 가을에 도로 굴러들어왔기 때문에 언제 장가를 들고 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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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 년 동안, 한 일 년이나는 부산서 방직공장에를 다녔고 그러다가 어떻게 밀항을 해서 오사까로 건너가 다시 방직공장에 다녔다. 제 말에는 매삭 육십 원씩을 받았네, 칠십 원씩을 받았네 했지만, 사 년이나 있다가 오면서 단돈 십 원도 모아가지고 오지 못했고 올 때에 입고 온 하이칼라 양복도 며칠 아니해서 읍내 면서기한테 오 원을 받고 팔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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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향과 부모가 그리워서 잠깐 다니러 왔으니까 이제 곧 도로 간다고는 하면서 가는 기맥도 없고 그저 집에 붙어서 하기 싫은 농사일을 마지못해 거들어주고 있는 참이다. 집안의 농사일은 마지못해서 거들어주지, 노상 번둥거리고 돌아다닌다. 어찌해서 맘이 내켜 품깨나 팔면 품삯을 받은 돈으로 노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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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렇게 하는 짓이 거상에 벗어날 뿐 아니라 차림새도 눈에 벗어난다. 오사까에 있을 때에 입던 것인지 여름이면 정강이 나오는 유까 다를 걸치고 돌아다니고 봄 가을 , 겨울이면 역시 오사까 공장 시절의 물림인 골덴복을 입고 육장 지낸다. 머리는 밀기름으로 빤지르르하게 갈라붙인다. 그래 처음 그가 동리에 돌아와 그렇게 눈에 벗어나게 하고 다닐 때에는 동리 사람이 손가락질도 하고 더러는 연갑들이 맞대놓고 빈정거리기도 했는데, 그러다가 달려들어 욕을 하고 그래서 싸움이 되고 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를 가외 사람으로 돌려버리지, 상관을 아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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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리의 과년한 계집아이들은 그렇지 아니했다. 본래 생김새도 야불야불하니 예쁘장스럽고 웃을 때면 눈초리가 먼저 웃는 것이라든지, 또 동리 계집아이들로 보면 양복까지 입고, 대처(都巿)바람을 쏘였다는 부러운 이력이며, 더우기 그애들은 평생 들어보지도 못하는 ‘창가’-술이야 눈물인가 라는 것, 또 뭐 강남 달이 밝아서 임과 놀던 곳- 이런 것을 간드러진 목소리로 부르고 지나가면 그애들은 금시로 가슴이 두근두근해지고, 우르를 달려가서 울타리 구멍으로 내다보고 이래서 옛날 같으며 귀공자다운 추앙을 소리없이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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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벌써 계집애를 두엇이나 탈을 내주었는데, 오목이도 작년 가을에 그 손에 걸렸을 것을 눈이 멀고 그 때문에 꾸욱 들어앉아 있느라고 겨우 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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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금출이가 오목이네 집에 오기는 오목이 아버지 두성이한테 품을 살려고 온 것이다. 그는 오면서 반 길밖에 안되는 짚울타리 너머로 오목이를 자세히 보았다. 보고 그는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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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목이가 눈이 멀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보통 장님같이 생겼을 오목이를 생각하고 그만 금을 싹 그어버렸다. 그는 작년 가을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고 있는 오목이를 만났을 때에는 장가를 들어 평생 같이 살기라도 하고 싶게까지 흠씬 마음에 들었었다. 다른 계집아이들은 처음부터 그따위 촌 계집애, 싱겁디싱겁고 멋대가리 없는 촌 계집애를 누가 데리고 살아, 장난이나 하고 말지 하고, 그 할 대로 장난삼아 용색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목이는 첫눈에, 원, 저 계집애가 그새 저렇게 좋아졌나 하고 버럭 욕심을 내었었다. 그래서 슬금슬금 농간을 부리려던 판인데 오목이가 그 뒤로 눈병이 와락 더쳐 가지고 도무지 문밖 출입도 하지 못해 그러다가 필경 눈이 멀고 말았다니까 아깝다고도 생각하면서, 눈먼 계집애를 무엇에 쓰랴고 그렇게 기역자를 놓고 영 잊어버리다시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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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것인데 오늘 보니까, 도리어 작년 가을 눈이 멀지 아니하고 목화밭에서 해죽해죽 웃을 때보다 월등 더 나아 보였다. 그새 일 년 남짓 한 동안에 훨씬 불은 몸피도 몸피려니와, 훤하게 트인 얼굴, 그리고 무엇 보다도 먼 흔적이 없이 가만히 눈을 내리 감고 있는 애틋한 자태가 어떻게 보면 도무지 손도 대기 어려운 선녀나 아닌가 싶게 그윽히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울타리 밖에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짐짓 헴 기침을 하고 마당으로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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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방애(방아) 찌예기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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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는 오목이네더러 그는 공손히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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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냐? 어서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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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네도 곰살갑게 인사를 한다. 과년한 딸을 두었기 때문에 남의 집 총각을 심상하게 보고 대하고 하지 않는지라 오목이네도 금출이를 두고 더러 생각하는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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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도 퍽 똑똑하고 그만큼 대처 바람을 쏘였으니 그만하면 무던하기는 하니, 그렇게 반질거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이나 했으면 오목이 배필로 꼭 알맞을걸…… 이렇게 애석해하다가도 오목이가 눈이 먼 것을 생각하면 기가 탁 질리고 앞이 아득해서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기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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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두 장에 떡히여 갖구 가겨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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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절구 가로 가까이 가서 절구와 함지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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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두가 무어냐! 요새가 시방 한참이지!…… 느이 집은 아즉 양식이나 안 떨어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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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랜만에 만나는 촌사람끼리 가까운 사이면 으례 묻는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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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떨어진 게 무어라우…… 장리라두 좀 얻어와야 헐 틴디, 큰일났구 만이라우…… 그놈의 좁쌀 한 되 두 되 팔아다 먹올라낭개 허천나서 죽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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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말이다 ! 일 년, 삼백예순 날을 하루두 안 쉬구 소같이 일을 히여두 살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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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 조선사람이 못나서 그리어라우…… 내지는 안 그리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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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지가 무어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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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말이라우……. 거기서는 농사짓는 사람덜두 다 그렇게 만만잖이여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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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그 방면의 농촌이며 농민의 사정을 알아보았으리요마는, 공장에 다닐 때 농촌 사람들로 직공이 되어 온 사람들한테 설들은 정담(政談)을 늘어놓는 푼수다. 그래 그러한 말에는 귀가 먹은 바 지지 아니하는 오목이네를 데리고, 그는 뭐 농민××이 어떠니, 소작××가 어떠니 조선 사람도 대처로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 오면 만만찮으니 하고 아는 소리 모르는 소리 한참 서서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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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오목이네가 마지막 체질을 할 때에 겨우 제 볼일을 이야기 하고 돌아갔다 볼일이라는 것은 . 내일 보리밭에 오줌을 내는데 두성이 더러 하루 일을 해달라는 것이다. 오목이네는, 내일 장에 가마니와 짚신을 팔러 가니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일을 해주러 가지 못할 듯하다고, 그러나 돌아오면 상의해서 좌우간 저녁에 다시 기별해 주마고 어리벙벙하게 대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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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창가를 부르면서 울타리 밖으로 돌아간다. 오목이는 방안에서 귀를 바싹 기울여 금출이가 이야기하는 음성을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가슴을 찢고 싶게 안타까왔다. 만약 눈이 멀지 아니 했으면 그새 늘 두고, 작년 가을 목화밭에서 본 뒤로 가슴속에 영상되어 들어앉은 금출이의 정말 얼굴을 문틈으로 내다볼 수가 있을 텐데, 그래 그렇게 안타까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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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이었었다. 오목이가 목화밭에서 목화송이를 따고 있는데 등 뒤에서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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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 그새 퍽 컸(자랐)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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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까 그가 소문만 듣고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어려서 보던 금출이었다. 오목이는 왈칵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치달아 고개를 칵 숙여버렸다. 금출이는 오목이 앞에 바싹 다가오더니 숙인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빙글빙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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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컸어! 나 알겄냐? 내가 금출이다. 알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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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대답은 차마 아니 나오고 가슴만 맞방망이치듯 두근거렸다. 그러나 마음은 느긋하니 좋았다. 그래 잠깐 고개를 들고 방시레 웃었다. 안다고 말로 열 번 더 한 것보다도 효과 있는 것이다. 금출이는 더욱 입이 헤벌어져 오목이의 손을 잡으려고 내밀다가 그래도 차마 못하고 바구니에서 목화만 한 송이 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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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겄지?…… 그새 참, 퍽 컸다. 그러구 퍽 이뻐졌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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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수줍은 웃음을 입술로 물고 바구니 가만 만지작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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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반갑다. 난 그새 늬가 시집간 줄 알었다,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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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그만 부끄럼을 못 참아, 빗밋이 싹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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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서 그러냐? 헤에 참! 아는 사람보구 무엇이 부끄러서 그리어?…… 이따가 저녁에 등 너머 벌판으루 놀러 나오니라, 응…… 나 돌아댕김서 구경허던 이야기랑 또 창가랑 불러주께…… 응 오목아.”
105
오목이는 대답은 아니했으나 싫다는 눈치도 보이지 아니했다. 금출이가 부디 놀러 나오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 돌아서 가자 오목이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그의 등 뒤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재미가 나고 기뻐서 소리를 내어 웃고 싶었다.
106
그날 밤 달이 밝았다. 오목이는 저녁 느직이 등 너머 벌판으로 놀러갈까 하고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차마 가지는 못했다. 누구 동무를 하나 청해서 같이 갈까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것은 혼자 볼 재미를 동무한테 나누어주는 것 같아서 싫었다. 가려면 혼자 가야지. 그러나 가자고 들면 어쩐지 무섭기도 하고 부끄럽기만 해서 갈까말까 벼르는 동안에 그냥 밤은 깊고 말았다.
107
그 뒤에 오목이는 눈이 와락 더 아프기 시작했다가 이내 문밖 출입도 더 해보지 못하고 눈은 영영 멀어버렸다.
108
눈이 멀어 들어앉으면서부터 금출이의 영상은 오목이 가슴속에 뚜렷이 들어박혔다. 오목이의 가슴속에 들어앉은 금출이의 영상은 매일 그렇게 품고 지나는 사이에 요모로 조모로 변해가지고, 지금은 예수교인 같으면 예수다, 불도(佛道)하는 사람 같으면 부처님같이 숭엄하되, 그러나 숭엄만 하지 아니하고 정다운 우상이 되어버렸다.
109
오목이는 그새 일 년을 두고 그 우상의 실체인 금출이가 오기를 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그렇게 기다리고 있노라면 꼭 언제 그가 와사 찾을 것을 믿었다. 그러하던 금출이가 과연 오늘 왔다. 기다리던 참이나 너무 뜻밖에 왔기 때문에 사모하던 환상대로 금출이가 해주지 아니하는 것을 이상하게든지 혹은 섭섭하게든지 여길 겨를도 없이 우선 그는 놀랐고 그 다음은 반가왔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토록 가슴속에 위해 앉히고 사모하던 금출이가 당장 거기에 와서 있건만 그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왔다.
110
그날 밤 오목이는 어머니 아버지 잠이 든 사이에 밖에 나와 생각하면서 울고, 울면서 생각하고 날이 밝는 줄은 몰랐다.
 
111
이튿날 아침 때가 조금 겨워서, 어머니 아버지는 장에 가고 오목이는 혼자 방에 앉아 신총을 비었다. 마당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오목이는 놀라지도 아니하고 의심도 아니하고 당연한 일로 여겨 기다리고 있었다.
112
금출이로 보면 오목이 부모가 장에 가고 없을 것을 엿보아 어제 오늘 비로소 꾸민 일이지만, 오목이는 그것이 하늘이 시키는 정한 소리대로 되는 것 같이 태연하게 일을 맞이했다.
113
금출이는 마당에서 헴, 밭은기침을 한번 하고 짐짓
114
“오서방 어른 집에 기세라우?”
115
하고 부른다.
116
물론 아무도 대답하고 나올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래도 막상 몰라 그는 또 한번 불러본다 그러고 . 나서 영 대답이 없으니까 성큼성큼 방문 앞으로 다가선다. 여기서 비로소 오목이는 가슴이 조이기 시작했다. 금출이가 오는 것은 으례 당연한 일로 여겼으니까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음성이 들리고 할 때에는 태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왔다. 왔으니 이제는 긴장이 새로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첫날밤 신랑을 맞이하는 신방의 신부와 같은 긴장이다.
117
“오목이 혼자 있냐?”
118
금출이는 방문을 조용히 열고서 방안을 들여다본다.
 
119
금출이는 넌지시 물러앉아 양복 바지춤을 다스리고 나서 담배을 피워문다. 노린내가 나고 헤프게 타버리는 ‘단풍’이라도 명색은 궐련이다.
120
오목이는 새 채비로 수줍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이고 빗밋이 돌아앉아 손에 잡히는 대로 치맛고름만 만지작거린다. 그는 금출이가 시푸우하고 담배만 피우면서 말이 없는 것이 속이 답답했다. 무어라고 이야기도 좀 해주고 그러느라면 오목이도 스스러운 마음이 좀 풀려 그 사이두고 그렇게도 하고 싶던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다 할 텐데…… 그렇게 마주앉아 오손도손하니 놀면 퍽도 재미가 있을 텐데, 어쩌면 성이 난 것처럼 앉았기만 하니까 오목이는 답답도 하거니와 더우기 오래잖아 어머니 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기 전에 금출이는 돌아가게 될 텐데, 그렇게 심심하게 금출이가 돌아간다는 것이 오목이는 몸부림이 나게 안타깝고 섭섭했다. 그는 수줍지만 아니했으면 와락 달려들어 금출이의 목도 얼싸안고 볼도 비벼보고 몸뚱이도 만져보고 그리고 속이 후련하게 한바탕 울어라도 보고 싶었다. 그러매 그는 아까 금출이에게 몸뚱이를 내맡겨 그의 품에 안겨 있을 때에 정신이 없고 얼떨떨해서 그리 못한 것이 저으기 후회가 났다.
121
금출이는 오목이가 전에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도리어 와락 마음이 쏠렸던 것이나 보기에만 그렇게 구경 못하던 딴 음식같이 귀하고 신통해 보였지 실상은 비쌔는 맛도 없이 넘어가 버리는 것이며, 또 무엇이며가 역시 그동안 몇을 다루던 다른 촌 계집 아이들이나 진배없이 싱겁디싱거운 데 아주 그만 파홍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허리춤을 걷어 올리기가 바쁘게 일어서서 나가버렸을 것이나 그래도 차마 못하고 겨우 단풍 한 개를 뻑뻑 다 피웠다.
122
“하마 장에서 들올 때가 되었지”
123
그는 기지개를 싱겁게 켜고 일어서면서 제딴으로도 너무 싱거워 혼잣 말같이 두런거린다. 그러나 그만하면 핑계는 족하다.
124
오목이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고개는 깊이 떨어졌다. 그는 안타까운 깐으로는 금출이의 손을 끌어당겨 앉히면서 괜찮으니 더 놀다가 가라고 붙잡고도 싶으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지지는 아니하고 만만한 울음만 목젖 밑까지 치밀어올랐다.
125
금출이는 오목이가 아무 대답도 아니하고 기색이 달라지니까 그대로 나가버리기도 멋적어서 주춤주춤하다가 휘파람으로 유행가를 부른다. 그러나 그는 방안의 무거운 침울이 싫고 또 오목이의 부모에게 들키거나 아니할까 해서 속이 뜨악하고 차츰 초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서성 서성하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오목이의 앞으로 가서 엉거추춤하니 쪼그리고 앉아 눈감은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본다. 그렇게 들여다보느라 니까 이쁘기는 미상불 이쁘다고 그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쁘기는 이쁘다고 보매 저 혼자 마음으로나마 뚝 잘라 떼어버리고 가기는 그래도 한구석 아까운 생각이 들어 그는 이제 아쉽고 심심하면 한두 번 더 오리라고 요량을 대었다. 그렇게 마음도 먹었으려니와 또 살살 달래기도 해야겠어서 오목이의 어깨 위에 얹어놓은 그의 두 손끝이 무척 상냥하고
126
“오목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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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소리도 끔찍이 은근하다. 오목이는 그만 참다 못해서 굵다란 눈물이 감은 눈에서 방울방울 떨어진다. 지금까지 섭섭하고 답답해서 솟아올랐던 눈물이 금출이가 갑자기 상냥하고 다정히 구니까 그냥 기쁜 눈물로 바뀌어 쏟아지는 것이다. 그런 곡진한 심정을 알 바가 없는지라 금출이는 당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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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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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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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어? 응 ? 너 성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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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깨에 얹힌 손으로 오목이를 잡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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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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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역하게 아니라면서 어깨를 흔든다. 어리광의 시초다. 오목이는 그대로 금출이의 가슴에 콱 들어안겨 그의 목을 얼싸안고 일껏 마음껏 울고 싶게 어쩐지 속이 슬픈 것도 같고 기쁜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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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울어…… 이렇게 울다가 혹시 늬 어머니 아버지가 와서 보구 왜 울었냐구 묻구 그러다가 눈치나 채면 큰일 안 나겄냐? 응, 오목아, 울지 마라…… 응. “
135
금출이는 처음 쩔쩔매었으나 차차 침착해서 어르듯이 오목이를 달랜다. 오목이는 울던 어린아이처럼 가늘게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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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겨우 안심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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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는 왜 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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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유행가를 한 토막 부르면서 오목이의 턱을 가볍게 쓰다듬고 일어 선다. 오목이의 입은 해죽이 벌어진다. 그것을 보고 금출이는 또 유행가로 「울면서 웃어야 할 신세랍니다」를 부르다가 끝을 방정맞게 마치면서 방싯 벌어진 오목이의 입술을 쪽 빤다. 무릇 눈물어린 채 방시레 웃는 여인은 한결 이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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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씻구 있어, 응 오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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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부탁하면서 일어섰다. 오목이도 마주 일어섰다. 그는 이마 위로 금출이의 입김을 받았다. 바로 한뼘 앞에 금출이의 얼굴이 있음을 생각할 때에 그는 불현듯이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 순간에 문득 일어난 이 생각은 오목이로 하여금 자기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잊게 했다. 그는 그 찰나의 아쉬움만 여겨 감은 두 눈을 번쩍 떴다.
141
뜨려고 할 때에 그는 자지러지게 놀랐으나 때는 늦고 할 수 없이 눈이 한번 떠지고라야 도로 감아졌다. 그는 금출이가, 눈뜬 것을 아니 보았더면 다행일 텐데, 그렇잖고 똑바로 보았으면 어찌하나 해서 애가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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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의 걱정은 바로 들어맞았다. 금출이는 갑자기 뜨는 오목이의 눈동자를 언뜻 보자 어깨를 오싹 옴츠렸다. 곱게 감은 눈두덩이 휙 벌어지면서 굵다랗게 불거진 두 눈동자는 부옇게 백태가 덮인데다가 붉은 발까지 섞여 흉헙다 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비록 일순각에 보고 말았을망정 그는 징그러운 두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방금까지 이뻐 보이던 눈감은 얼굴도 다시 보기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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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혼자 무참한 것을 어찌할 줄 모르다가 손을 뻗쳐 더듬더듬 금출이의 팔을 잡고 몸을 기댄다. 오목이로는 아직 부리지 못할 교태다. 그는 순간의 얄따란 자포가기로 그렇게 강잉해서라도 금출이의 내색을 살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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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홱 뿌리치고 싶은 것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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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또 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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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는 제법 대단하게 금출이한테 몸을 비비면서 아양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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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글씨…… 응 오지 인제……”
148
금출이는 몸서리가 치는 것을 참으면서 어물어물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말은 좋도록, 그런 내색은 보이지 아니하려고 마음은 먹어도 말하는 운이며 몸가짐이 어쩔 수 없이 서먹서먹해진다. 하물며 보지 못하는 대신 귀와 손 끝이 예민해진 장님한테야 좀처럼 속일 수 없는 것이다.
149
“멀 ! 안 올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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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이가 넘겨짚는 것을 금출이는 의젓이 시치미를 떼면서
151
“안 오기는 왜…… 오지 말래두 올걸……”
152
하고 삥등그린다.
153
“그럼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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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글씨…… 어느 날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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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출이는 이렇게 더듬다가, 언제라니 다시 올 수 있는 때라야 다 뻔한 것인데, 핑계대는 눈치를 채었겠구나 하고 얼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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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장날 오지…… 장날이래야 너 혼자 있을 테닝개루…… 그렇지 오목아.”
157
하고 으수하게 얼버무려 넘긴다.
158
“정말?”
159
“그럼…… 내가 거짓말할 줄 아냐…… 자 그럼 나 돌아오는 장날 올께 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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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 ?”
161
“응 꼭……”
162
오목이는 문지방을 짚고 서서 돌아가는 금출이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까 조금조금 부르던 그런 창가나 부르지 아니하나 하고 기다렸으나 그대로 발자국 소리만 감감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오목이는 영영 금출이를 놓쳐버리고 만 것만 같아 다시금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163
오목이네는 마침 점심때라 떡을 팔기에 한창 분주하다. 날이 흐려서 비가 올까 염려는 되었지만 그 대신 춥지 아니한 것이 다행이다.
164
또 호박을 무우말랭이 썰듯 썰어 많이 두고 켜를 두텁게 해서 팥고명을 얹은 호박떡은 아무나 먹기는 별미다. 더구나 그놈을 식지 않게 하느라고 솜 둔 누더기로 시루를 둘러싸고 꼭 맞는 나무 뚜껑으로 덮었기 때문에 떡 한 시루가 동이 나도록 김이 무럭무럭 올라 뜨끈뜨끈해 보이는 것이 지나가는 사람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165
오목이네는 벌써 일 년이나 두고 이 황화전(드팀전) 옆에서 떡장사를 하기 때문에 철을 따라 보피떡, 인절미, 송편, 무우시루떡 그리고 겨울 한철은 호박떡─ 아주 이 장에서는 낯익은 단골이 되고 토박이 장꾼들은 떡 생각이 나면 이리로 찾아오기까지 하게 되었다.
166
오늘도 오목이네의 그 육중(!) 한 노점 앞에는 네 사람이 제가끔 호박떡한 사발씩을 받아 들고 혹은 선 채로 혹은 한편으로 비켜 앉아 먹고 있고 두어 사람이나는 그릇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 전이면 한 사발이니 요기는 든든히 된다. 그래서 한참 이렇게 분주한 판에 남편 두성이가 한 어깨에 짚신 한 죽을 그대로 둘러맨 채 가마니 석 장을 한 팔로 질질 끌면서 뿌루퉁해가지고 이리로 온다.
167
“또 불(不) 맞었수 ? ”
168
오목이네는 손은 떡 시중에 바쁘면서 언뜻 남편을 바라보다가 말고 물어본다. 물어보나 마나 좋지 아니한 안색이며 가마니 석 장만 도로 가지고 오는 것을 보면 알조다.
169
“그렇다…… 제에길헐 ! “
170
두성이는 가마니를 오목이네 옆에다 아무렇게나 홱 내던진다.
171
“신두 아직 못 팔구 ? ”
172
“신전으루 가야지.”
173
두성이는 곰방대를 삐뚜름하게 물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짚신은 가마니를 검사하는 동안에 혹시 임자를 만나 파는 수도 있지만 대개는 가마니를 팔고 나서 다시 짚신전까지 가서라야 팔게 된다. 두성이가 만일 흥치객이어서 그 짚신을 둘러메고 장판으로 돌아다니면서
174
“자아 알뜰한 짚신이요, 열여덟 살 먹은 꽃 같은 처녀가 눈먼 눈을 감고 앉아 손끝에 정성을 들여 한숨 섞어 삼은 짚신이요, 다정다한한 짚신이요.”
175
하고 외운다면 혹시 호사(好事)하는 운치객도 있어 짚신이야 쓸 데 있건 없건 더러 중값을 주고 사려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176
두성이은 오늘따라 가마니를 불을 맞은 것이 아예 심정이 좋지 아니했다. 하기야 가마니를 한 죽을 가지고 오면 무사히 다 등급에 드는 때도 있지만 불을 몇 장씩 맞는 때도 없는 것은 아니다.
177
그래 그저 예사로운 일인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그렇게 심정이 좋지 못했다. 그는 하마터면 검사원한테 한바탕 들이대 줄 뻔까지 했었다.
178
그러나 꾹 참고 혼잣속으로
179
“이놈의 자식, 인젠 이놈을 둘러 꾸며 가지고 와서 기어코 내 손으로 합자(合字)를 찍힐 테니 두고 보아라.”
180
하고 앙심을 먹고서 겨우 돌아섰던 것이다.
181
“여보오 오목 아버지-“
182
오목이네가 분주한 서슬에 멎었다가 깜박 생각이 나서 남편을 부른다. 두성이는 장꾼들 틈에서 말없이 돌아본다.
183
“고기 다 동나기 전에 제육 한 냥(이십 전)어치만 사시유.”
184
오목이네는 겨우 말을 하고 손님 대응을 하느라고 도로 바빠버린다. 이렇게 해서 내외는 팔 것을 다 팔고 살 것을 사고, 또 마련할 것을 마련해가지고 새때나 되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향해 가고 있다.
185
불맞은 가마니 석 장 위에다 시루를 놓아가지고 두성이가 지게에 졌다. 시루 속에는 빈 사발과 주걱과 돼지고기와 또 오목이네가 아는 집에서 얻은 통김치 세 포기가 들어 있다. 그리고 밀가루와 양식에 이 다음장 떡쌀 하려고 판 것은 오목이네가 머리에 이고 간다.
186
이 내외가 그새 일 년을 두고 정 농사일이 바쁜 날이 아니면 기어코 이렇게 장을 보러 들어오곤 하는 것은 먹고 살기보다도 오히려 딸 오목이 때문이다.
187
두성이는 가마니를 치고 오목이네는 떡을 하고 오목이가 삼은 짚신까지 해서 장에 가지고 들어와 팔면, 오목이의 짚신 몫은 고스란히 손을 대지 아니해도 한 장에 내외 아울러 일 원 각수는 이문이 남는다. 그것은 작년 가을부터 시작해가지고, 하기야 그 속에서 양식도 팔아 먹고 옷 가지고 해 입고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끼고 아껴 푼푼이 모으다가 닭도 사놓고 돼지새끼도 사놓고 또 착실한 사람한테 변돈도 주고 해서 늘려놓은 것이 올 가을에는 도통 한 사십 원이나 되어 그놈으로 중소 한 마리를 샀다. 그래서 소는 도지소로 내주었고 그밖에 변돈 내준 것이 돈 십 원이나 착실히 되고 배메기로 내준 돼지도 두어 마리나 된다. 또 오목이는 제대로 배메기 돼지도 대주고 변돈도 주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도 거지반은 옷을 해서 방 웃목 구석에 허술하게 놓여 있는 궤짝 속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이것은 시집가려는 처녀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시키기도 하려니와 그 당자도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눈먼 오목이도 시집갈 채비로 그리하는 것이요, 어머니 되는 오목이네도 그것을 한편으로는 예사로이 보아버리는 것이다.
188
하기야 오목이 자신이나 또는 오목이네가 눈이 멀어서 시집을 가기가 막연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 것이 모두 마음에 없고 심란스럽기만 하지만 그렇지만 육장 두고 걱정만 하고 사는 바는 아니다. 어찌 해서 문득 생각이 나면 한숨도 나오고 아득하기도 해서 이게 다 공연한 짓이거니 하여 낙담도 되지만, 그러나 항용때는 그저 심상히 여기고 심상히 보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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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올봄부터는 오목이네는 딸을 시집을 곧 보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병신이기로니 딸자식을 그대로 늙히는 법은 없다. 그럴 뿐 아니라 그대로 늙히다가는 장래가 걱정이다. 지금 내외가 나이 근 오십이니 죽을 날은 멀지 아니했는데 그대로 데리고 있다가 내외가 다 죽는 날이면 그때에 가서 딸은 누구를 의지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그것이 막연하다 그러나마 제 위로든지 . 아래로든지 동기간이나 있어 거기 의탁하고 살아갈세 말이지 그러한 동기간은커녕 원근간에 일가도 없이 무우대가리같이 외로운 집안이다. 그야말로 돌에도 나무에도 기댈 곳이 없다. 그러니까 불가불 시집을 보내야 할 형편인데, 그러나 실상 시집을 보낸다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눈먼 계집애를 데려갈 사람이 있을 턱이 없는 때문이다. 그래 이리저리 혼자 궁리를 하다가 이 가을로 들어서는 마침내 한 꾀를 생각해냈다.
190
속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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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을 속여서 혼인을 하자는 것이다. 속 모르고 소문 아니 날 타관으로 여새겨보아 신랑이 그저 병신이나 아니고 거지나 아니거든 이편에서 우선 선을 보아놓고 저편에서 선을 보러 오거든 동리집 처녀나 하나 슬금 데려다가 대신 선을 보이고, 혼인날은 신부가 으례 눈을 감는법이니까 그것이 요행이라 그렇게 해서 예를 지나거든 당일 신행으로 그저 그 자리에서 얼버무려 신행을 시켜버리고 그러고 나면 첫날밤 신방에서든지 그 다음날이든지 조만간 탄로가 나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다 성례를 치르고 난 다음이니까 도로 쫓지는 못할 것이요, 저편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무어라고 말마디나 보내다가 말 것이고……
192
미상불 야트막하나 그럴 듯한 꾀는 꾀다. 그래서 오목이네는 떡장사를 하여 돈을 모으는 것도 오목이를 시집을 보낼 밑천인지라 크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요 그저 일이 년의 계획이다. 일이 년 그렇게 해서 돈 백 원이나 앞채면 급자기 정혼을 해서 얼른 혼인을 해버릴 양으로, 그래서 그는 남편도 몰래 이 가을로 들어 멀찍한 타관으로 대고 신랑감을 물색하던 중이다.
193
그러나 두성이는 그렇지 아니했다. 그는 아내가 더러 딸 시집보낼 상의를 하면 대꾸도 잘 하지 아니했다. 사위를 고른대야 다 같은 농군일 텐데 농군의 집에서 호사감으로 며느리를 얻어가는 것도 아니요 반은 소같이 부려먹자는 것인데 눈이 멀어 옴쭉 못할 며느리를 누가 얻어가랴. 또 요행 갔댔자 눈이 멀었다고 구박이나 받고 서러운 눈물 흘릴 테니, 자식이래야 그것 하나뿐인 것 그나마 제가 웃어도 어미 아비는 속으로 울어야 할 불쌍한 병신 자식을 왜 굳이 그런 못할 노릇을 시킬까보냐는 것이다. 차라리 자기가 아직도 몸이 성하니 늙어 죽는 날까지 양을 줄이고라도 푼푼이 모으고 늘려두었다가 그놈을 물려주면 시집은 못 보내도 그것이 도리어 제게는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먹고 살아갈 도리라고, 그래서 그의 돈 모으는 계획은 크고 멀찍했다. 그런지라 이 가을에 아내가 그러한 야트막한 꾀를 내어가지고 그런 상의를 할 때도 그는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도로 쫓겨오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으며, 그렇게 쫓겨오고 보면 딸자식 몸 망치고, 돈 없애고 그리고 치소당하고 말 터이니까 아예 안될 말이라는 것이다.
194
그러나 오목이네는 콧대가 세었다. 그는 젊어서부터 무엇이고 남편을 억눌러가며 자기 요량대로 해나왔다. 오목이의 혼사도 우선 그렇게 운만 떼놓았으니까 반대야 하거나말거나 자기 혼자 범벅을 꾸며놓고 부득부득 밀고 나가면 남편도 그때 가서는 할 수 없이 굽히리라고, 그 뒤에는 남편과 별반 상의도 하지 않았다.
 
195
금출이가 오마고 했던 그 다음 장날 오목이는 기다렸어도 금출이는 오지 아니했다. 오목이는 낮때까지는 해가 몹시 더딘 것같이 기다렸다. 혹시 아니 오지나 아니하나, 마음은 조마조마하여서 지리하게 낮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금출이는 오지 아니하고 낮때는 겨웠다.
196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혹 저게 금출이가 오는 게 아닌가 하고 금출이의 버젓하고 좋아보이는 양자를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기다리다가는 허탕을 치고 밖에서 신발 소리, 기침 소리만 나도 가슴을 두근 거리면서 기다리다가 허탕을 치고 그렇게 까맣게 기다리다가 올 때가 마침내 겨우매 그는 여러 가지로 걱정도 되고 의심도 났다.
197
혹시 앓지나 아니하나, 그렇다면이거니와 요전날 눈을 뜬 것을 보고 어쩐지 기색이 다르더니 그래 정나미가 떨어져서 영영 아니 올 작정을 하고 가버린 것이나 아닌가. 정히 그렇다면 그 일을 어떻게 하나. 이렇게 생각하매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198
낮때가 겨운 뒤에부터는 올지말지하는 금출이를 그래도 기다리느라니까 장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쉬 돌아올 때가 가까와오매 해가 도리어 빨리 가는 것 같아 속이 초조했다. 마지막 마당에서 들리는 신발 소리에 금출인가 어머니 아버진가 하고 죄다가 그는 눈물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 얼굴을 수습도 하지 못하고
199
“오목아.”
200
부르면 방문을 여는 어머니한테 뜨이고 말았다.
201
오목이네는 딸의 기색이 다른 것을 알고 그래 얼굴을 먼저 유심히 보다가 눈물 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다. 지난 장에도 장에서 돌아오니까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돼지고기를 사왔건만 반가와하지도 않고 어쩐지 아이가 서먹서먹한 게 눈치가 다르더니, 그래 웬일인지 모르겠다고 내외가 걱정을 했었는데 오늘은 울기까지 한 것이 아무리 해도 졸연찮은 일인 것 같아 오목이네는 마음이 적이 불안했다.
202
“너 어디 아프냐? ”
203
오목이네는 방으로 들어오면서 묻는다.
204
“응? 왜 그리어? 아프다니? ”
205
오목이는 대답을 아니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두성이가 놀라 짐 내리던 것을 그만두고 열어놓은 방문 앞으로 와서 굽어보며 걱정을 한다.
206
“나두 모르겠수…… 글쎄 내가 방문을 여닝께 눈물을 씻구 있구만! “
207
“왜 그리어? 응…… 너 어디 아프냐? “
208
두성미가 졸연찮게 묻는다.
209
“안 아퍼라우. “
210
오목이는 겨우 가느다랗게 대답을 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귀애해주고 하는 깐으로는, 금출이가 온다더니 아니 왔어요! 하고 어리광같이 하소라도 하고 싶었다.
211
“그럼 왜 혼자 울어? “
212
“누구 동리 아이들이 와서 욕이나 허구 달아났냐? “
213
오목이네는 그런 것이나 아닌가 하고 물어본다. 눈먼 계집아이 혼자 있으니까 짓궂은 어린아이들이 혹 지나다가 보고 놀려먹기나 했나, 그래서 싸운 것인가 생각한 것이다.
214
“아니라우.”
215
“그럼 왜 울었어? “
216
내외는 다 같이 한말로 묻는다. 그래도 오목이는 대답할 수가 없다.
217
내외는 잠잠히 있더니 서로 쳐다보고 한숨을 마주 내쉰다. 내외가 꼭같이, 아아 저도 나이는 들어가고 하니까 제 신세를 생각해서 혼자 울었나보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218
“울지 말어라. 그것두 다 팔자 소관이지. 운다구 소용 있냐…… 그렇잖어두 너 보면 불쌍허다구 실심허시는 느 아버지 속상허신다…… 아예 울지 마라.”
219
오목이네는 비감이 들어 도리어 자기가 울듯이 타이른다. 오목이는 와락 방바닥에 엎드려 느껴서 운다. 오목이네가 딸의 등을 이루만지며 달랜다는 것이 마주 운다. 두성이는 비회를 어찌할 수 없어
220
“듣기 싫여 ! 왜 방정맞게 쪼옥쪽 울구 있어들. “
221
소리를 버럭 지르고 후유 한숨을 쉬면서 돌아선다.
 
222
그 뒤로 한 달이 훨씬 지나갔다. 겨울은 깊었고 눈도 자주 쌓였다.
223
오목이는 장날이면 장마다 아니 오는 금출이를 그래도 기다렸다. 금출이를 그렇게 한번 만나기 전에는 그는 기쁘게 기다렸었다. 이제 꼭 그가 찾아오리라고 든든히 믿고 기다렸다. 그러나 이제는 울면서 기다린다. 금출이는 영영 오지 아니하리라고 울면서 그래도 기다린다. 그러느라니 음식도 잘 먹지 아니하고 혼자 앉았다가 생각난 듯이 한숨을 내쉬고 밤이면 잠도 잘 자지 아니하고 해서 알아보게 몸이 축졌다.
224
부모는 애를 태우며 걱정을 했다. 약도 지어다 먹이고 영하다는 장님한테 무꾸리도 해보았으나 모두 효험이 없다.
225
그러나 그러면서 오목이의 혼사도 뜻밖에 좋은 자리가 있어 급급히 말이 어울렸다. 오목이네가 팔십 리나 되는 신랑집에 가서 선을 보고 왔고, 저편에서도 선을 보러 오니까 동리 처녀 하나를 미리 짜두었다가 대신 선을 보였다. 서로 합의해서 정혼이 되고 사주가 오고가고 납채까지 드리고 마침내 혼인날까지 작정이 되었다. 그것이 음력으로 해가 저물려는 섣달 보름께요, 오목이가 금출이를 만난 지 한 달하고 십여 일 되는 때다. 혼사가 이렇게 작정이 되매 오목이는 필경 몸져 드러누웠다.
226
그는 혼인말이 있는 눈치를 알고 몇 번이나 시집을 아니 가겠다고 어머니를 졸랐다. 울기도 하면서 어리광도 부리면서- 그러나 속을 모르는 어머니는 그래서는 못쓴다고 내내 타이르기만 했다.
227
미상불 오목이는 금출이 일을 젖혀놓고 생각하더라도 시집을 가고 싶었고 그래서 옷도 해두고 돈도 모으고 했었으나 막상 그렇게 속여가지고 시집을 가게 되니까, 가서 병신인 것이 탄로가 나고 그래서 괄시와 욕을 당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 창피하고 치사스러워 그런 걸 무엇하러 부득부득 갈까 보냐고 고개가 절로 흔들렸다. 그러한데다가 금출이를 생각하면 그는 더우기나 시집 같은 것은 천만리 밖의 일로 마음에 없건만, 그러나 그것이 들이밀듯 닥쳐오니까 속이 사뭇 초조했다.
228
오목이는 아버지가 좀 더 단단히 야단을 쳐서 어머니를 못하게 막아냈으면 했으나, 그도 처음은 무어라고 역정을 내고 몇 번 큰소리를 하고 나더니 마침내 슬며시 물러앉아, 나는 모른다는 듯이 내맡겨버리고 말았다.
229
그래서 오목이는 마침내 내일로 혼인날을 앞둔 전날 밤을 당했다. 밤이 이슥하도록 동리 여인들이 모여 앉아 음식이며 그밖에 이것저것을 마련하느라고 분주하다가 다 돌아가고 집안은 조용해졌다. 어머니 아버지도 벌써 잠이 들었다. 오목이는 자리에 누운 채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첫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일어났다.
230
밖에서는 바람이 눈을 몰아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목이는 방문을 살그머니 열고 토방으로 내려섰다 . 바람은 눈을 몰아다가 사정없이 흩뿌린다. 대번 몸이 떨리게 추위는 모질다. 오목이는 눈에 반이나 덮인 신발을 손더듬어 겨우 찾아 신고 살금살금 기다시피 마당으로 내려섰다. 지팡막대도 없다.
231
그는 금출이를 찾아가자는 것이다. 그새도 몇 번이나 아랫동리로 금출이네 집을 찾아가 볼까 해보았으나 간절한 마음뿐이지 눈먼 몸으로 차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하기야 금출이를 찾아가서 뜻대로 만난댔자 별로 어찌하자는 요량은 없다. 시집을 그곳으로 가기가 싫으니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 달라든가 또는 왜 그렇게 무정하냐든가 하는 그런 넋두리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리운 금출이를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만나자는 다만 그것뿐이다.
232
그래서 몇 번이나 두고 별렀으나 낮에 나갔다가는, 남몰래 해야 할 것을 남은 보고 보는 남은 못 보는 터라 들키기가 십상이요, 그러니 밤에나 가야 할 터인데, 그러나 가기는 간다더라도 집을 찾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눈이 멀었으니 전에 보던 그 길로 해서 그 집을 찾아갈 수도 없는 것이요 그렇다고 누구더러 물어를 보며 또 묻재도 밤중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고…… 그래서 생각은 애달팠고 하루 이틀 닥쳐오는 혼인에 속은 조이면서도 거조를 못했는데 마침내 혼인 그 전날 밤이 되매 그는 이것저것 거리끼고 돌아볼 나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그렇게 나서는 것이다.
233
바람은 칼날같이 차고 눈도 찼다. 오목이는 몸을 떨면서 개 짖는 소리만 짐작삼아 발을 떼어놓았다. 바람에 밀리고 발을 헛디디고 하면서 두 걸음에 한번 엎드러져서는 일어나고, 가다가는 고꾸라지고 그래도 그는 갔다. 아무 것도 다 잊고 그저 금출이만 생각하면서 갔다.
234
그러나 눈은 멀고 다녀본 지도 오랜 길이라 짐작도 무디어 그는 행방조차 잡지 못하고 애오라지 들판에서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다. 눈먼 지척은 천리다. 이렇게 헤매기를 한식경은 더하다가 그는 마침내 다리가 뻣뻣해서 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판에 마침 불어치는 바람에 채어 어디라 없이 나지막한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졌다.
235
그는 손에 잡히는 눈을 허위적거리며 겨우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애를 써도 일어나지지는 않았다. 울며 부르짖고 소리를 내어 사람 살리라고 외치고 할 생각은 나지도 아니했다.
236
오목이는 정신이 차차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알고 그는 이래서는 못쓰겠다고 다시 한번 용을 써보았으나 몸은 일어서지지 아니했다. 정신은 차차 더 흐려갔다. 필경 아득한 가운데 만사를 다 잊어갔다. 마지막 머리올 만하게 가느다랗게 남은 정신에 젖어 있는 것은 금출이 생각뿐이다.
237
그때다. 바로 그때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출이가 소리가 없이 기척도 없이 나타나가지고 빙긋이 웃으면서 그의 앞에 서서 있다. 오목이는 확실히 눈으로. 보는 눈으로 금출이를 보았다. 그는 두 팔을 벌려 덥석 금출이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방시레 웃었다. 그러고 나서 아주 정신을 놓았으되 오목이는 몰랐다.
 
238
밝은 새벽, 오목이네 집에서 야단이 나고 이어 동리가 발끈 뒤집혔을 때에들 가운데로 지나던 동리 사람이 눈 속에 묻혀 얼어죽은 오목이를 보고 달려와서 알려주었다.
239
오목이는 들 가운데 논귀퉁이의 물에 패인 웅덩이에 몸이 반이나 눈에 싸여가지고 앉은 채 방시레 웃은 채로 죽었다.
240
미친 듯이 달려온 두성이네 내외가 오목이의 시체를 끌어안고 부르짖어 울고, 모여드는 동리 사람들은 저마다 애처로와 혀를 차고 돌아선다.
241
그러나 사람마다 다 속으로 궁금한 것은 오목이의 방시레 웃는 입이다. 또 어째서 오목이가 눈바람 치는 밤에 들 가운데 나왔다가 그렇게 얼어죽었을까 하는 것은 아는 사람이 없었다.
242
다만 그 안날 밤 밤새도록 투전을 하느라고 늦잠을 자던 금출이만은 소식을 듣고 그 속을 알았다. 그러나 그도 방시레 웃은 입은 연유를 알지 못했다.
【원문】얼어죽은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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