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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소설이 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베스트셀러즈의 정상을 점하고 있는 상태에 대하여 그 원인 같은 것을 착○(窄○)해 보면서 그들의 리얼리즘이 우리 소설의 현상에 던져 주는 교훈이나 암시 같은 것을 써 보라는 것이 편집자의 주문이다. 그 방면에 대해서 교양이 없는 문외한인 필자가 이 글을 초하는 것은 아메리카 리얼리즘을 자기류로 해석해서 현재의 우리 문단에 대한 반성 자료를 그 곳으로부터 끌어와 보려는 전혀 필자 개인이나 또는 이 땅의 리얼리즘 연구의 긴급한 필요에 응하려는 심산으로서이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 대한 정곡을 얻은 전문가의 요령 있는 연구와 아메리카 소설에 대한 대방(大方)의 관심에 대한 요망은 의연히 금후의 우리 소설계에 있어 하나의 긴요사(緊要事)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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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종의 소설이 수만, 십수 만의 독자를 가진다는 사실은 독자층의 사회 심리에 의하여 결정되는 바가 크므로 그 사실을 가지고 곧 소설의 문학적 본질을 경홀(輕忽)히 결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고 매행 부수를 가졌다는 것이 그 문학의 예술적 우수성을 말하는 표적이 될 수 없다는 소리는 벌써 상식으로 되어 버렸다. 그러나 만약 독자를 한 사람도 가지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 소설의 명예가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좀더 진지한 태도로 최고 매행의 현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순수 소설이 최고 매행을 가리켜 통속 소설시하는 데는 읽히지 못하는 작가의 억지와 자기 위안이 은폐되어 있을는지도 알 수 없다. 문학이 하나의 표현 의욕인 바에는 소설이 수십 만의 족자를 가졌다는 사실은 역시 그 문학의 위대성에 속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도 아메리카 소설의 최고 매행의 현상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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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벅 여사의 「대지」가 일본 독서계에 있어 베스트셀러즈의 하나이었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이어니와, 가령 최근에 번역된 크로닌의 「성채」(씨터들)는 발매 1개월에 미국에서 20만 부, 영구에서 14만 부, 3년동안 최고 매행의 정상을 점하였다 하며 브롬필드의 「우계래(雨季來)」(더 레인즈 케임)도 한가지로 현재 미구 출판계에서 압도적인 매행을 보이고 있다 한다. 역시 일본 독서계를 풍미한 마가레트 미첼 여사의 「바람과 같이 가다」는 수백 만 부를 매진하고도 의연히 미국에서 굉장한 세력으로 팔리고 있다 한다. 이렇게 몇 개의 제목만 추려서 생각하여 보아도 우리는 이상의 소설들이 결코 내지(內地)의 통속 소설들이 최고 매행을 보이는 것과는 판이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지만 전기의 몇 작품의 실제에서 검토하여 본다면 문학 작품이 적거나 많거나 제 요소는 차치하고 우선 최근의 내외인의 독자 심리를 고려하여 그 원인이 될 만한 것을 적출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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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나는 정치적 시사성과 전기성(傳記性), 사실성 등을 고려해 보고 싶다. 「대지」는 이미 노벨상까지를 받은 작품이라 그 문학적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 운위함도 쑥스러운 일일 것이나 확실히 지나라는 것과 지나 사변이 가는 정치적 시사성을 몰각하고는 이 작품의 최고 매행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계래」도 이러한 관점으로 재단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인도가 세계적인 정치적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는 것, 인도와 인도인에 대한 이해가 구미인의 초미의 긴요사가 되었다는 것, 이것은 역시 우계의 인도를 배경으로 한 다채한 이 소설이 베스트 셀러즈가 되는 하나의 이유로 될 것이라 생각한다. 「바람과 같이 가다」는 남북 전쟁의 사실(史實)에 취재한 소설이다. 펄벅의 다른 소설 예컨대 「싸우는 천사」나 「어머니의 초상」 등은 전기(傳記)요 「어머니」는 역시 지나(支那)에서 취재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시사성이나, 사실·전기성을 타면에서 관찰한다면 소재의 문제로 귀착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나, 인도, 남북 전쟁의 전지(戰地), 이러한 것에서 단순한 지방색만이 아니라 하나의 정치성과 역사성까지를 합쳐서 생각하면서 다시 「성채」가 의사가 쓴 의사 주인공의 열렬한 휴머니즘의 작품인 것을 아울러 생각한다면 세계를 뒤집는 동서의 대전을 전후하여 일반 대중의 독서 심리가 어떤 방면으로 향하여 있는가 대충이라도 짐작할 수 있지는 않을까.(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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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상의 몇 개 번역 작품의 최고 매행을 필자는 우선 소재의 매력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물론 소재의 신미(新味)나 매력이나를 단순히 ‘로컬 컬러’에서만 해석하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가지는 시사성, 정치성, 전기성, 사실성(史實性)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일방 그 밑을 흐르는 일종의 소박한 휴머니즘까지도 아울러서 이해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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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학은 과연 소재만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능히 수많은 독자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일까. 「대지」는 위에서도 말하였거니와 이미 노벨상에 의하여 그 문학적 평가가 고정되었다 볼 수 있을 것이나, 확실히 예술적인 높이를 가지고 다스리기에는 약간 다른 것에 비하여 수준이 옅지는 않을까 하는 느낌을 주는 모양 같다. 더구나 2부, 3부에서 우심하다고들 말한다. 정종백조(正宗白鳥) 씨는 미첼 여사의 「바람과 같이 가다」를 두옹의「안나 카레리나」이상이라고 칭찬하였으나, 그에 대해서 덕천추성(德田秋聲) 씨가 구역이 나서 중도에 팽겨쳐 버렸다고 말한 고백담에도 일리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매행 부수의 현상을 ○통(○統)한 대중의 심리란 엉터리 없는 것이어서, 영화를 기연(機緣)삼아서도 사고 싶고 베스트 셀러라는 바람에 무턱대고 사 두는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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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경우들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하여도, 세계에 퍼져 있는 소설의 독자란 반드시 심경 소설이나 서정물 같은 중편물만의 심취자는 아닐 것이므로, 일본 문학의 순수 작가들의 특이한 경지에서 예술의 극치를 발견하려는 문학관 앞에서는 능히 그 예술적 성격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 하여도, 그것이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즈의 하나가 되는 데는 별반 지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방, 작품의 소재가 가지는 상술한 바와 같은 모든 매력을 간주하지 말고, 순전히 이것을 문학적으로만 검토하여도 우리는 물론 아메리카 소설이 가지는 최고 매행의 비밀을 이해할 길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소재성보다도 일층 본질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아메리카 소설의 전혀 특이한 생장(生長)과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발전 과정에서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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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메리카 소설이 독자의 면모로 발족을 시작한 것은 금세기 전후에 걸쳐서의 일이었는데, 최초의 수년 간 로맨틱 시대를 지난 뒤 그것은 곧 리얼리즘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러한 문학적 환경은 아메리카가 처하여 있는 경제적 사회적 조건에 의하여 발생된 것으로 약간의 상술을 필지로 하거니와 여하튼 이러한 사정은 20세기의 구라파 문학과 아메리카의 그것을 엄밀히 구별하는 하나의 기본 조건이 되었고 동시에 독자층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간과치 못할 근거를 이루어 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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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평론』지 신년호에 역재(譯載)되었던 밀튼 월드만 씨의 「아메리카 소설의 동향」의 모두(冒頭)는 이것을 간결하게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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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나 불란서의 소설가를 보면 그들의 목적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혼란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최고의 재질을 가진 그 많은 작가들이 피로와 불(不) 가운데서 주제와 형식의 두 방향에 실험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실험은 고전적 소설과는 표면상 거지반 연락이 없다. 이것이 현대 아메리카 소설과 퍽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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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 소설들이 세기말과 20세기에 들어와서 어떠한 실험에 종사하고 있는가는 그 방면의 전문가들에 의하여 우리 문단에도 적지않게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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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의 소설가의 이름, 가령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나 헉슬리 같은 이름을 드는 것으로 벌써 우리는 용이(容易)치 않은 그들의 상태를 추상(抽象)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새로이 개척한 신심리주의 소설의 실험이라든가 그런 것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정신적인 원인과 필요에 의해서 시행되었다고 하였도 고전적 장편 소설과 표면상 연락이 끊어졌다고 보는 데는 일리가 없지 않을 것이며 그의 회삽성과 난삽성 때문에 거대한 독자층과 격리되고 있다는 현상은 또한 가릴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아메리카 소설이라고 하여도 일찍이 헨리 제임스와 같은 신심리주의의 시조를 낳았고 프루스트에게서 직접 영향을 받은 어네스트 헤밍웨이나 윌리엄 포크너가 없는 바 아니고 셔우드 앤더슨과 같은 신 프로이트주의자가 없는 바 아니나 이들은 한 가지로 역시 독자 대중과는 태반 담을 쌓고 있는 현상이다.(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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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월드만 씨도 “포크너와 같은 현대 아메리카 작가 중 가장 중요한 작가의 작품이 널리 읽어지지 않는 이유는 주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여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고 앤더슨의 작품은 최근 「다크래프터」가 「어두운 청춘」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나 헤밍웨이의 전쟁소설과 함께 난삽이 지나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직 헨리 제임스가 프루스트나 조이스에 비견될 회삽성을 가지고 있으나, 주지하는 바 그는 미국 문학보다도 영국 문학에 속하는 사람이고, 그 영향에 있어서도 아메리카 소설은 거의 받은 것이 없다는 것이 사가(史家)의 정설 같다. 요컨대 아메리카 소설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리얼리즘을 계승한 20세기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나 않을까. 이러한 생각을 세워 보기 위하여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지나온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아 우리 작단에 대한 반성 자료로 하고 싶다. 장편소설을 통하여 관철된 고전적 리얼리즘의 정신을 필자는 인간 사회의 전체성의 묘사에다 두었고, 역사의 행진을 내적 모순째로 노정시키는 데 그 방법으로서의 위력을 추켜들어 왔다(졸고 「관찰문학론」참조). 그러므로 무의식 세계를 내부적으로 묘사하는 신심리주의적 리얼리즘과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에서 그 본질을 설정하였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발생 상태를 살펴보면 그것의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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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리얼리즘은 문학사적으로는 낭만주의적 환상에 대한 항의로서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적 . 경제적으로 보면 그것은 그러므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환상과 독점 자본주의 시대의 현실과의 모순 속에서 개화한 것이었다. 이것은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중요한 성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가 제국주의 시대에 발생하고 개화하였다는 사실은 문학의 특질을 결정하는 데 하나의 기본 조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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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으로부터 187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은 ‘물질적 신장’이라든가 ‘경쾌 편적(遍迪)한 낙천관’등의 금과옥조가 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있던 경제적 낭만주의의 시대라고 보며 문학상의 낭만주의도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70년대의 초년에 와서 이것은 최초의 변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리얼리즘은 여기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패링튼 교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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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로맨티시즘의 비누 거품은 사방에서 깨어졌다. 꿈이 깨어진 농민과 불평을 품은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행사(行使)를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 의문으로부터 드디어 생활이나 문학이나에 대한 리얼리스틱한 태도가 발생하였다. 아메리카에 있어서의 리얼리즘은 로맨티시즘에 대한 신앙의 회진(灰燼)으로부터 생겨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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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미난 현상은 리얼리즘의 기복과 제 계단이 순환적 불경기의 기간과 병행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윌리업 딘 하웰즈의 리얼리즘은 1873년의 공황과 계속하여 일어나서, 80년대후기의 노동자들의 동요와 궤를 같이 하여 격별(格別)한 심각도를 표시하였고, 힐링 까란드의 리얼리즘은 포퓨리즘이라고 일컫는 농민 운동을 유발한 경제적 조절의 실패로부터 대두하였고, 스티븐 크레인과 프랑크 노리스의 그것은 90년대의 불경기와 동시에, 잭 런던의 그것은 1907년의 불경기, 그리고 싱클레어 루이스와 앤더슨의 리얼리즘은 세계 대전 후의 불경기와 병행하여서 일어났다고 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것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은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특질을 위하여 기록해 둘 만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메리카 리얼리즘이 아메리카 경제 기구의 모순과 밀접한 관련밑에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서, 그러나 이것과는 별개로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최초의 거인인 하웰즈는 벌서 1884년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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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문학 운동으로서 활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의 운동은 리얼리즘이다. 그것은 단지 각 개인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질서 전체를 사실(寫實)하는 것이다. 이 작품(E.W. 호의 「시골 이야기」)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작자는 표면적으로 의식치 못하는 대담성을 가지고 선악을 가리지 않고 일체의 물상을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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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환상을 물리치고 존재하는 모순의 일체를 제시하려는 ‘리얼리즘’의 핵심에 대하여 아메리카 소설은 처음부터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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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웰즈는 그 뒤 일상 다반사의 충실한 묘사가로 떨어져서 “부인의 신경과민성의 전문가가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얽혀 있는 뉴잉글랜드적 도덕 의식의 탐구자가 되고, 보스턴 상류 주택지의 잡담객을 자유로 그리는 수완가가 되어 버렸었으나”, 1889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도회의 수적(獸的) 현실은 당시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작가의 작품에 친숙해 있던 그의 사회적 도덕 의식을 흔들어서, 그는 일조(一朝) 래디컬로 전신(轉身)하여 「신재산의 무기」「알트루리아로부터 온 여인(旅人)」등의 작가로 되었고, 이러한 ‘리얼리즘’의 계주봉(繼走捧)을 인계한 까란드에 의하여 소설은 일층 가열 심각해져서 농민 생활의 흙과 땀을 주제와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은 널리 사회운동에까지 기여한 바 크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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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세밀한 발전의 상모를 기록할 준비도 또한 그런 자리도 아니므로 간단히 표면만을 훑어 보려하거니와 90년대에 이르자 금권(金權)의 지배는 날로 우심하여 사회적 계층의 새로운 편제를 거쳐서 그들의 조선(祖先)이 300년 전 피하여 온 낡은 사회 체제보다도 일층 더 그들을 비관 속에 떨어뜨리는 암영이 신대륙의 하늘을 덮었고, 이것은 크레인, 노리스를 거쳐서 최근에 이 땅에도 번역된 「아메리카의 비극」의 저자 테오도르 드라이저에 이르러 하나의 봉오리를 이루는 자연주의의 전성기를 보게 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경향 문학 전성 시대부터 「석유」「협동 조합」「보스턴」 「정글」「석회왕」등의 번역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업튼 싱클레어와 「야성의 절규」의 작자 잭 런던 등은 자연주의가 좌절된 후 로맨티시즘의 경련적(痙攣的)인 질호(疾呼)가 일어난 시기에 리얼리즘을 신장시킨 거물이었다. 대전 후에 리얼리스트로서 굉장한 성공을 보인 작가로 이미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메인 스트리트」의 작자 싱클레어 루이스가 있다. 이 밖에 대전 후에 나온 작가 중에서 가장 철저한 리얼리스트에 존 도스 파쏘스가 있는데 계층 의식이 농후한 전쟁소설을 써서 헤밍웨이와 함께 물의를 일으켰고, 일찍이 우리에게도 번역되어 읽힌 「북위 42도」는 그의 「맨하탄 트랜스퍼」와 함께 뉴욕을 묘사하여 이름을 떨친 작품이다. 요즈음 그의 「밤거리」가 번역된다는 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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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앤더슨도 신프로이트주의자로서 잠재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프루스트의 영향을 파리에서 받았다는 헤밍웨이와 함께 그의 내부 탐구가 결코 구라파 작가처럼 철저하지도 않은 것은 역시 아메리칸 리얼리즘 가운데서 치워난 덕택이 아니라 할 수 없으며 요컨대 아메리카 소설에 있어 리얼리즘은 그의 문학적인 본질과 전통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단언치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 문학적 환경이 우에서도 지적한 바 아메리카의 사회적 경제적 기구의 모순의 소치인 것은 부언을 요치 않는다. 상술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의 기구가 아메리카적으로 발달하여 그 복잡성과 다양성이 극도에 이르기까지 혼란되어 있는 사태를 냉혹이 정시하고 면밀히 관찰하려는 문학에 있어서는 필연적으로 그 형식에 있어 새로운 적응성을 개척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정신을 구현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질곡이 되는 영국적 산문에 대한 혐오의 표시와 새로운 문체와 장편 형식의 창건을 위한 노력, 이것은 그 방면의 전문가가 한가지로 ‘아메리칸 리얼리즘’의 건강한 ‘플러스’로서 우리들에게 전하여 주는 바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하여서도 우리들의 고려는 미쳐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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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 소잡(素雜)한 단문 끝에서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아메리카 ‘리얼리즘’의 커다란 한계성에 대하여서일 것이다. 러시아의 이론가들은 이것을 프티 부르의 리얼리즘이라고 개괄해 놓았지마는 물론 우리는 그러한 이론에 맹종하지는 않으나 역시 대부분의 아메리카 ‘리얼리스트’가 가지고 있는 졸라이즘은 부인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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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것은 고전적 리얼리즘이 가졌던 발랄성이 부족하고 졸라식의 자연주의 수법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기계론적인 철학관에 인한 비관의 암영이 강렬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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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에 읽히는 베스트셀러즈들이 일종, 소박한 아메리카적인 휴먼한 매력에 의하여 불안에 싸여 있는 동서양의 독서자들을 부르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메리카 리얼리즘이 어느 정도로 인간 정신을 부활시킬 수 있을는지 흥미 있는 검토거리라고도 생각되지 않는 바 아니다.(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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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40년 7월 27∼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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