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설가가 되겠다고 소설에 손을 대었던 일을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찔어찔한 모험이었다.
3
다른 부문의 학문이라면 연구를 하느니만큼 그만큼 거둬지는 성과에 따라 그만한 행세를 할 수 있지만 지어(至於)소설이야 연구를 하느니만큼 그만큼 거둬지는 성과로서는 행세를 할 수가 없고, 그 어느 일정한 수준이 있어 그 수준을 돌파하여야 그리하여 그 수준이 문단적으로 인정이 되어야 그래야 비로소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요, 그러기 전에는 대학 문과 몇 개를 나왔대도 응용이 되지 않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모험인 학문이 소설인 줄은 도무지 모르고 나는 소설의 문으로 덤벼들었던 것이다. 발표만 하면 소설가가 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은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투고발표를 해야 문단은 반응이 없었다. 이러다가는 십년 공부 나무아미타불만 될 것 같아 일시는 다른 방면으로 방향을 돌려 볼까도 하였으나 전공(前功)이 가석(可惜)하여 그대로 우기자니 암만해도 그 성공 여부에 장담이 가지않아 마음이 늘 초조하였다. 소설 공부란 마치 전재산을 다 털어 바치고 금광을 하는 모험과 같았다.
4
그런 데다가 한번 물이 든 이놈의 문학이란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장담도 가지 않는 붓대를 놓지 못하게 하여 밤낮 책상 앞에 붙들어 앉혀 놓고 세월이야 가던 오던 제멋에 취게 하여 그저 자구 쓰게만 만들었다.
5
글을 쓴다는 것은 살을 깎는 것과 같았다. 쓰면 쓰는 이만큼 건강은 부쩍 축이 났다. 글이란 그대로 아로새겨지는 피인 것임을 나는 알았다. 여기서 나는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내 피로 아로새겨진 학문이야말로 내 생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글을 쓰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좋다는 젊은 혈기로 이런 모험에 주심(柱心)을 북돋아 주었다. 그까짓 성공 여하는 말할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나는 그저 소설을 썼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6
나는 다시 마음을 사려먹고 앉아 각국의 명작이란 작품은 모조리 사다 쌓아 놓고 읽으며 쓰며, 한편 또 투고를 시작하여 그 발표 여부와 비평 여부로 자시의 역량을 저울질해 보았다. 투고를 하면 발표는 되나 역시 반응은 여전히 없었다.
7
이러구려 소설에 붓을 대고 허비한 시간이 10여 년, 어쩌면 십년 적공(十年積功)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소설 공부엔 십년 적공에도 등용문이 열리지 않았다. 과연 위험한 길이었다. 여기엔 내 재질의 둔한 원인도 있겠지만 원체 이 문단국(文壇國)의 등용문 담당 수위는 수준 평가의 안목이 한없이 높아서 좀해서는 문을 열어 주지 않는 것이었다.
8
남의 글도 내 글보다 별로 나은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 나는 세심한 주의로 남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해 보았다. 과연 등용문 담당 수위는 잘못이 아니었다. 소설은 쓴다고 하면서도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를 채 몰랐던 것이다. 구성이니 묘사니 표현이니 하는 데 있어 그 어느 하나에도 말한 마디 글자 한 자의 차로 소설이 되고 안 되는 것임을 나는 그직에야 알았다. 그리하여 내 글이 이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의 차에서 남의 것만 못한 것임을 알았다.
9
그러나 그 말 한 마디 글자 한 자의 차라는 그것이 또한 그리 수월한 것이 아니어서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바르고 고릅고 아름답게 그렇게 써지는 것이 아니었다.
10
이런 것을 그저 그대로 자꾸 싸워 나가다 보니 어느 틈엔지 내 이름위에도 소설가라는 레테르가 붙게 되어 이런 글의 주문도 받게는 되었으나, 제가 쓴 글을 스스로 검토해 볼 때마다 결점 투성인 것을 무난히 발견할 수 있는 처지니 나는 아직도 소설가로서의 꼬리가 완전히 떨어지지 못한 올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