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만을 자랑하는 동방의 큰 서울로 자타가 허하는 대고구려 장안(長安) 서울의 성문이 고요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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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에서 성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적잖은 소민(小民)들은, 성문이 열리자 모두 성 안으로 빨리 몰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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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만성(萬姓)들과는 외톨이로 한 중년 길손이 역시 천천히 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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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길손에게는 의외인 것은, 번창을 자랑하던 이 '장안'서울의 모든 집 모든 가게가 모두 아직 굳게 문이 잠겨 있고, 거리에 나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며, 마치 죽음의 도시인 듯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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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은 내심 적잖이 의아한 마음을 품고 무연하게 넓은 장안 서울의 큰 길을 성 안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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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다가 어떤 반만치 문이 열린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그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성큼 가게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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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 나라라는 말이 수상쩍어서인지 주인은 비로소 이 길손에게 주의를 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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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당신은 한인(漢人)이구료!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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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한인- 그리고 오늘은 당신 나라 사람에게는 경축일이요, 우리 고구려 만성에게는 다시 없는 슬픈 날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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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라에는 경축일이요, 내 나라에는 슬픈 날이라는 이 간단한 한 마디의 말로, 길손은 이 날이 무슨 날인지 짐작이 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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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을지(乙支) 승장께서 무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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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승상께서 우리 만성을 남기시고 세상 떠나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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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은 이 대답에 뜻하지 않고 나무아미타불을 입 속으로 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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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만성은 어버이를 잃고 얼마나 아득하리. 여보소 주인, 내 비록 한인의 자손이요, 수(隋) 때 양제(煬帝)를 따라 이 나라에 침입했던 한 병졸이지만, 그때 이 나라에 떨어져서 이 나라 조〔粟[속]〕를 먹기 십여 년, 을지 승상의 헤아림을 한없이 받았고, 그 덕을 마음에 아로새긴 사람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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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당(李唐)이 고구려를 엿보는 이때, 을지 승상을 데려가시단 하늘 도 너무 야속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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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당이 역시 고구려를 엿볼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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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고구려가 서 있는 동안은, 그리고 우리 민족의 힘이 있는 동안은 고구려가 넘어지든 한족이 넘어지든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야 할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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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위해서는 걱정 마오. 을지 승상 가셨을지라도 을지 승상이 뿌려 두신고구려 혼은 그냥 남아 있소. 한병(漢兵)이 올 때는 말 타고 왔다가 갈 때는 업혀 가지 않을 수 없도록 그 준비는 고구려에 넉넉히 있읍니다."
27
"좋은 임금님에 충성된 승상님에 효용한 백성-만성에 과연 고구려나라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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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살수(薩水)에서 떨어져 이 나라에 투화(投化)하고 말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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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소. 우리나라에 투화하면 죽은 뒤에라도 나는 고구려 사람이어니 하 는 자랑이라도 남지만, 당신네 나라는 대체 한(漢)이요, 수(隋)요, 당(唐)이요? 죽은 뒤에도 돌아갈 나라가 없구료. 팔백 년 면면히 누려 온 고구려에 비하건대, 오 년, 십 년씩 누리다가는 딴 나라가 되고 하는 당신네 나라는 그것도 나라랄 수 있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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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듣기 부끄럽소이다. 말씀 말아 주십쇼. 그러기에 내 나라 배반하고 고구려에 투화하지 않았읍니까? 내 옛 나라 소식은 듣기조차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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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나이 여든 몇 살로 세상 떠난 이 나라 대신 을지문덕을 사모하고 조상하는 뜻으로, 이 나라의 만성은 모두가 자기네의 할 일을 걷어 치우고, 조용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근신하고 있었다. 시골 농부의 집에 태어나서, 어려서는 집 근처에 있는 석다산(石多山) 토굴에 들어가서 학문과 무술을 닦았다 하며, 자라서 평원왕(平原王)과 영양왕(嬰陽王)의 지의를 받아 나라를 요리하기 오십여 년, 평원왕과 영양왕의 두 대에 걸쳐 그때 중국 천지를 통일한 수나라의 큰 세력에 대항하여, 동방 소이(東方小夷) 고구려로서 능히 그 수나라와 마주 싸워서 수나라를 꺾어서, 소이(小夷) 고구려의 만성으 로 하여금 여전히 베개를 높이 하고 지낼 수 있게 만든, 인류 역사 있은 이래 가장 큰 영웅이요, 성인(聖人)인 을지문덕공이 그의 사랑하는 만성을 버리고 고요히 눈을 감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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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에는 수나라를 물려받은 이씨(李氏)의 당나라가 역시 호시탐탐히 '동 방 소이'고구려를 넘겨다보며 있고, 남방에는 백제와 신라의 두 작은 나라 가 동족인 고구려를 원수로 잡고, 수나라 당나라에 아첨하여 그 힘을 빌어서 고구려를 둘러엎으려는 온갖 꾀를 피우고 있는 이 위급하고 긴한 세상에 서 을지문덕이 차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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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고주몽(高朱蒙)이 북부여(北夫餘)땅에서 일으킨 조그만 나라 고구려를, 뒤이은 명군 명자들이 늘이고 늘여서, 서북방의 웅국(雄國) 한족의 나라와 우연히 대립하여 동방인의 자랑을 천하에 자랑하는 대고구려국을 튼튼히 지켜서, 수 양제의 이백만 대군을 살수에 함몰시키고, 그것을 빌미로 수 나라까지 둘러엎은 동방의 수호신 을지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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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보가 세상에 전하매, 그의 일생의 적이던 당나라 고조와 태종이 목을 놓아 울어서 위대한 영웅의 서거를 조상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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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 그의 일대는 사가(史家)의 놓친 바 되어 이제 살수(薩水)의 전기(戰記)하나 밖에는 전하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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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는 토막 모음으로 전하는 그의 일대를 소설화하여 이 아래 전하여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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