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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봉사 ◈
◇ 운명(運命)의 탄생(誕生) ◇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2권 다음
1944
채만식
1
沈[심]봉사
2
運命[운명]의 誕生[탄생]
 
 
3
때는 고려조(高麗朝) 중엽.
 
4
곳은 황해도 황주 고을 도화동이라는 한적한 마을.
 
5
눈먼 선비 심학규 심봉사는 사개 뒤틀린 방문을 삐그덕 밀치고, 더듬더듬 앞 툇마루로 나선다.
 
6
마루는, 구월의 한낮 가까운 맑은 햇볕이 문턱 밑까지 가득히 드리워 데워 놓은 듯 따스하다.
 
7
“햇볕도 좋기도 하다! …… 진작 나와 앉었을걸!”
 
8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심봉사는 마룻전으로 더듬어 나와, 끙 하고 한발 개키고 한발 걸트리고 앉는다. 눈은 멀어 보지는 못하여도 기운으로 날이 흐렸는지 맑았는지 그늘이 졌는지 빛이 들었는지쯤은 알곤 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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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존 날씨를, 앞 못보는 인간도 졸 제, 성한 사람들이야 조옴 상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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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한창 푸르러 있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기라도 하겠는 듯 처마 너머로 얼굴을 든다. 그러나 먼 눈에, 아무리 일기가 청명키로니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어제 오늘 비롯은 바 아니로되, 안타까움에 가벼운 한숨을 내어쉬면서 고개를 도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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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냇병신이었다면 미련도 없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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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까지도 멀쩡하였다. 스물한 살 적 봄, 과거 보러 갈 날을 며칠 앞두고 우연히 모진 열병을 앓았다. 그 끝에, 두 눈이 흐리기 시작하더니, 차차로 더하여가다 마침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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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희망과 포부 큰 심학규 당자를 비롯하여, 부모 양친이며 부인 곽씨의 그 실망과 비탄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일변, 눈을 도로 나수어보겠다는 한 줄기의 여망과 정성스런 노력은 버리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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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알이 상하였다거나 곯아 찌부러졌다면 도로 나수다니 생의도 못할 노릇이나, 불행중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알만은 성하였다. 눈알이 아팠거나 농이라든지 궂은물 같은 것이 흐르거나 한 일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 눈알이 상하지 아니한 것은 십분 분명하였고, 겉으로 보기에도 정녕 성한 눈알이었다. 그런 성하고 아무렇지도 아니한 눈알 위에 가 무엇인지 엷고 희끄무름한 거풀이 한 거풀 덮이어 가지고, 그것이 가리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 덮인 거풀만 벗어지면 눈은 도로 보이리라는 것이 당자 심학규나 가족들의 여망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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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통히 폐하고, 부모 양친과 부인 곽씨가 당자를 데리고 눈 나술 경황에 골몰하였다. 영하다는 의원은 원근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청하여다 혹은 찾아가서 약을 썼다. 상약으로도 남이 가르쳐주는 것이면 한가지도 빼지 아니하고 다 하였다. 뜸질도 무수히 하여 보았다. 침도 여럿에게 많이 맞아 보았다. 장님 대어 경도 한두 차례 읽은 바 아니었다. 무당 불러 큰굿하고 푸닥거리하고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절을 찾아다니며 시주도 하고 불공도 드렸다. 명산에다 치성도 드렸다. 무릇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면 아니한 것이 없이 골고루 다 하여 보았다. 그러나 그 어느 한가지에서도 조그마한 효험도 보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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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노력과 정성을 들이기 오 년, 그러자 양친이 전후하여 세상을 떠났다. 한가지로 사무치는 유한에 차마 눈을 감지 못한 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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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규의 선대는 고려조의 개국공신의 하나로, 대대이 개경(開京:松都[송도])서 높은 벼슬하고 영화롭게 지내 내려오던 집안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영락하여 심학규의 증조부 때, 이곳 황주로 낙향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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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을 하여 초토 속에서 명색 없이 살게 된 그들은 자연 지난날의 영화에 미련과 향수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영화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랑이 간절하였다. 그 대 그 대의 당주(當主) 된 이는 반드시 그 자제로 하여금 부지런히 학문을 닦고 명문의 예법을 배우게 하며, 해마다 과거를 보게 하며 하기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런 골똘한 욕망과는 달리, 심학규의 조부며 부친이란, 사람 얌전키나 하였지, 조금이나마 남께 솟을 만한 재주가 없어 과거는 보는족족 낙방을 하고, 초시 한번 한 적이 없고 말았다. 그러나마 집안이 번족하여 자제가 여럿이고 하였다면, 그중에는 혹시 출중한 인물이 섞이어 남즉도 한 것을, 그역 가운이랄까, 증조부 대에서 시작하여 심학규에 이르기까지 사 대가 내리 외톨의 독자들이었으며, 외톨 독자가 생겨나느니 한갓 범상한 인물이고 범상한 인물이고 하였으매 번번이 꼼짝 변통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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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규 역시 범상한 구석이 있어 선대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 여러 대의 곡진한 입신양명의 간절한 욕망이 물리어 내려와 그 한몸에 쌓인만큼, 뜻의 골똘함은 유난한 바가 없지 아니하였다. 겸하여, 아직 한번도 과거에 응한 일이 없으니, 등과급제가 단순히 재질에만 달린 것이 아니고 한 바에야, 심학규 그만은 전도가 여망 있는 편으로 미측이라 할 수가 있는 터이었다. 그런만큼 양친의 심학규에 대한 기대는 심히 곡진함이 있던 것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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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에 전장된 짐이 그만큼이나 큰 심학규였다. 그런 그가, 바라던 과거를 보아 급제를 하여 벼슬을 하고 영달이 되어 몸과 가문을 빛내며, 누대의 여한을 풀고 하기는 고사요, 불의에 폐인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남의 부모 된 애정으로 하든지, 그와 같은 기대의 빗나감으로 하든지 지하로 돌아가는 양친의 슬픔과 유한은 진실로 뼛속에 사무치고도 남는 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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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은 홀로 오지 아니한다 이르거니와, 양친의 궂김과 동시하여, 가난이라는 어려움이 외로운 심학규에게 닥치어 왔다. 본시도 넉넉치는 못한 살림이었다. 일부분 자작을 하고, 일부분은 병작을 내주어 그 추수로 겨우 일년 계량을 지탱하여 오던 형편이었다. 그러던 것을, 오 년 동안이나 눈 나수기에 빚을 얻어 대고, 진 빚을 갚느라고 땅뙈기를 팔아 대고 하였으니, 옅은 가산이 남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친의(부친이 나중 궂기었는데) 초종 범절을 치르고 나니 전답은 고사하고 살던 집마저 팔아 상채(喪債)를 갚아야 하였고, 인하여 시방의 일간 초옥으로 옮아 앉은 것이었었다.
 
22
이래 십오 년. 눈을 못본 지 이십 년.
 
23
심학규에게 만일 부인 곽씨의 그 현철함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에 벌써 굶어죽거나 얼어죽지 않으면, 지팡막대 두드리며 거리로 방황하는 걸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었다.
 
24
곽씨부인의 현철함은 진실로 기특한 바 있었다. 남편께 대한 애정 물론 도타왔다. 우연만한 선비면 스승으로 모실 만큼 학문이 도저하였다. 그런데다 겸하여 침선의 솜씨가 대단히 좋았다.
 
25
곽씨부인은 마음을 굳게굳게 먹고 일어섰다. 삯바느질을 맡아다 하였다. 삯빨래질, 삯마전질을 맡아다 하였다. 혼사집, 환갑집, 소대상집, 초상집 불리어다니며 찬수 장만이며 일 서두리하여 주었다. 미처 그런 일이 없는 날이면 밭김도 매러 나가곤 하였다. 일년 삼백육십일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추우나 더우나, 밤이면 밤에 하는 일로, 낮이면 낮에 하는 일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이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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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여 버는 것으로, 앞 못보는 가장 공경을 살뜰히 하였다. 그러면서 푼푼이 밀리는 것은 모았다 눈 나수는 약값이면 약값에, 치성드리는 비발이면 비발에 보태어 쓰고 하였다.
 
27
몸이 고되고 매우 고생스런 노릇이었다. 그러나 곽씨부인으로는 몸 고된 것이나 고생 같은 것은 아무 상관이 아니었다. 아무리 몸이 고되더라도, 아무리 고생스럽더라도 앞 못보는 가장을 편안히 잘 공경하면 그만이었다. 하루 세 차례 섬식지 아니하고, 과히 어설프지 아니한 끼니를 대접하여야 하였다. 여름이면 가볍고 시원한 것으로, 겨울이면 추워하지 아니하도록 의복 분별을 하여야 하였다. 장님이란 자칫하면 궁해보이는 것, 가뜩이나 궁해 보이라고 땟국 묻었거나 살 비어지는 의복을 입혀놓아서는 아니 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약간씩이나마 밀리는 것이 있어가지고, 좋은 약이 있다면 사서 쓰기를 잊지 아니하며, 영한 의원이 있다면 청하여다든 같이 찾아가서든 기어이 보이고 하며, 종종 치성드리기를 저버리지 아니하며 하기를 꾸준히 하여야 하였다. 이 감장을 하여가자면 자연 그만큼이나 부지런히 납뛰지 아니하고는 뒤를 대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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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지어미 된 자, 불우한 지아비를 잘 받들며 편히 거느리자는, 진정으로부터 우러나는 정성이었다. 그런지라 곽씨부인은 몸 고됨이 고된 줄을 몰랐고 차라리 즐거웠으며, 고생이 고생 된 줄을 몰랐고 차라리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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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기를 십오 년! 하루 같은 십오 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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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에 심학규는 눈은 비록 멀어 앞을 보지 못할망정, 한푼의 가산이 없어 집은 비록 가난할망정, 그런 병신의 몸이요, 가난한 푼수하고는 지나친 호강을 하며 지내 내려왔다.
 
31
명색이 선비의 집 여인으로, 항차 젊으나젊은 몸으로, 집안에 들어앉아 삯바느질쯤이야 그다지 상스럽지 아니하다 하겠으되, 매일같이 주야로 나다니며, 서인과 뒤섞이어 빨래품을 판다, 밭김을 맨다, 더욱이 온갖 잡배가 모여 들끓는 잔칫집에 가서 일을 하여준다 하는 것이 심히 체모 아닌 일이요, 그렇게 하여 벌어다 주는 것으로 구복을 채우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는 것이 심학규로는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아니한 마음의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짓을 막자하니, 당장 그날부터 끼니가 간데없을 터이매, 막상 못할 노릇. 기한을 모르고 몸은 비록 편안타 하지만, 마음은 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편안치가 못하였다.
 
32
그래저래, 하루 한시도 마음 가운데 떠나지 아니하고 간절한 원념(願念)은 ‘어서 제발, 눈을 떴으면……’ 하는 것이었다.
 
33
눈을 뜨면, 눈을 뜨는 그것이, 다시 광명을 보는 그것이 우선 기쁨이야 물론이었다. 눈을 뜨는 그날부터 하다못해 동네 아이들을 모아 훈장질을 하더라도, 아낙으로 하여금 그렇듯 체모 아닌 고생을 아니 시키겠으니 오죽이나 떳떳하며 좋은 일인고. 다시 과거를 보아 급제를 하고……
 
34
눈을 떠 광명을 보고, 아낙을 내어놓아 품을 팔아다 구복을 도모하던 창피를 면하고 한다는 것만 하여도 크지 아니한 바 아니나, 진정 심학규의 더 곡진한 욕망은 과거를 본다는 데 있었다.
 
35
‘눈을 떠, 과거를 보아. 급제. 벼슬. 승차, 또 승차. 몸의 영달과 빛나는 가문. 네 대 만에 비로소 풀리는 유한. 지하에서 안심하실 선영 제위……’
 
36
이것이 오로지 눈 하나 번쩍 뜨고 못뜨고 하는 데 달려 있는 것이었었다.
 
37
사람은 어떠한 원념을 지나치게 그리고 오랫동안을 두고 골똘하였느라면, 어느덧 그것이 신념화(信念化)하는 수가 있는 법이었다. 심학규의 눈 도로 떴으면 하는 간절한 원념도 그리하여 이십 년이나 두고 ‘눈을 제발, 어서 떴으면 제발, 어서 떴으면……’ 하는 동안 언제부터인지 그것이 ‘뜨느니라. 쉬이 뜨는 날이 있느니라’ 하는 확신-신념이 되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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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따지어 생각하여 본다면, 아무 그럴 근거도 있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된 신념이든 신념이 생긴 이상 그는 그 신념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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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 그 다음엔 기다림과 초조였다. ‘왜 이다지 더딘고. 어서 하루바삐 떠야지. 나이는 들어가고 세월은 늦은데, 이러다는 과거 볼 시절을 다 놓치고 말지. 내일이라도, 모레라도. 아니 이따라도 번쩍 환히. 아하, 어서 제발 좀……’
 
40
이렇게 기다리고 초조하던 것이었었다.
 
41
심봉사는 툇마루에 앉아 한참이나 보이지도 아니하는 눈을 연방 깜짝 거리면서 무엇인지를 생각해내려 애를 쓰다 마침내 탄식을 한다.
 
42
“허어! 늙었고나! 이렇게 잊어버리다가는, 눈을 뜨기론들 무슨 소용이 되리!”
 
43
조백[早白]이라고 할는지는 모르나, 미상불 망건 밖으로 비어진 살짜기 희끗희끗 흰머리가 섞이었다. 얼굴에는 굵은 주름도 잡히었다.
 
44
긴 한숨, 그러더니, 먼 눈에서 가만한 눈물이 한줄기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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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마, 자식이라도 하나 있다면! …… 쯧, 이것저것 다 잊고……”
 
46
위로는 제왕을 비롯하여 아래로는 서민에 이르기까지 가멸한 사람이거나 곤궁한 사람이거나, 성한 사람이거나 병신이거나를 물론하고, 슬하에 자녀간 혈육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외롭고 슬픈 일일 것이다. 심봉사 역시 그런 인정의 테 안에 들지 아니치 못하는 사람. 먼 눈을 떠서 다시 광명을 보고, 선비의 체면을 도로 찾고, 그러고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하여 몸과 가문을 빛내며, 선영의 뜻에 갚으며 하고 싶은 원념과는 따로이, 현실적으로는 보다 더 핍절한 것이, 슬하에 두어보지 못한 혈육이었다. 이미 사십이 넘고 늙발에 들었으매, 늙음의 시킴일는지, 그는 방금 자탄하듯이 작히나 자식이라도 하나 슬하에 두었다면 눈을 뜨자는 원념도 무엇도 다 단념하고 거기에다나 낙을 붙이어 많이 남지 못한 여생을 보내었으면 싶은 바람이 무시로 간절히 나곤 하였다. 자탄에 앞서 흐르는 눈물도 바로 그 설움 그 외롬의 눈물이었다.
 
47
삽짝문 밖에서 총총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번은 정말 아낙 곽씨였다. 건넌마을 환갑집에 불리어갔다 오때를 맞추어 남편의 점심 분별을 하러 오던 것이었다. 보자기에 싸든 목판은, 남편을 위해 받아가지고 오는 잔치 음식일 것이었다.
 
48
“마누라요?”
 
49
“네에!”
 
50
언제나 서로 정다이 부르고 정다이 화하고 하는 인사 겸의 문답이었다.
 
51
“잘 나와 앉으셨군요. 그러잖어두, 전 시방, 여태 그 구중중헌 방안에만 눠 기신가 허구서……”
 
52
“거, 남의 일 보아주러 갔다, 이렇게 빠져나와 허허!”
 
53
역시 언제나 말삼아 하는 걱정이요, 곽씨는 또한 곽씨대로 언제나 하는 대답으로
 
54
“잠깐 다녀오마구 허구, 일 좀 뜨음한 새 보아 나왔지요.”
 
55
그리고는 댓들로 좇아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56
“당신 드리라구, 고기서껀 국서껀, 떡이랑 줘서, 받아가지구 왔으니, 얼른 데워 드리께시니 조곰만 기대리시우.”
 
57
이윽고 부엌에서 불 지피는 소리,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러다 구수한 고깃국 냄새가 풍기어 나온다. 심봉사는 어금니에서 건침이 흥건히 괴어나오는 것을 무심코 깔꼭 삼킨다. 그리고는 자조(自嘲)엣말로
 
58
“속없는 창자로다! 고깃국물 냄새에 회가 동하니!”
 
59
그러자 마침 삽짝문에서
 
60
“오셌수?”
 
61
하고 찾는 동네 여인의 음성이 들리고 곽씨가
 
62
“누구요?”
 
63
하면서 대뜰로 나서는 기척이다.
 
64
“한갑집이 가셨대길래, 글러루 갔더니, 집으루 가셨다구 그래서.”
 
65
“내. 즘심진지 분별해 드릴 령으루.”
 
66
“저, 낼허구 모레허구 손 나세요?”
 
67
“낼허구 모레허구? 무언데?
 
68
“아따, 등너머 우리 사둔집이 초상이 났다우. 났는데……”
 
69
“초상집?”
 
70
“내. 한 이틀, 가 음식 마련 좀 해주시라구……”
 
71
“글쎄……”
 
72
“어디 먼즘 마춘 데 있는감?”
 
73
“마춘 덴 없어두……”
 
74
“그럼?”
 
75
“글쎄……”
 
76
“무어, 기허는 일이 있든지……”
 
77
“글쎄……”
 
78
두 여인의 이야기를 처음엔 무심히 듣고 있던 심봉사가, 끝에 몇마디부터는 바싹 귀를 기울인다. 초상집이고 어떤 집이고, 가리던 곽씨가 아니었다. 전고에 없는 일인데, 오늘은 졸지에 그처럼 초상집을 꺼리어하니, 반드시 곡절이 있음일시 분명하였다.
 
79
‘어인 내력일꼬?’
 
80
두어 번 고개를 깨웃거리다 퍼뜩
 
81
‘혹시 참.’
 
82
하면서 얼굴이 밝게 빛난다.
 
 
83
자녀를 바라기 그렇듯 간절하던 터라, 이 근년 내외가 앉으면 가끔 그런 상의를 하고 하면서 두고 별러오던 노릇이라, 마침내 신명께 축원이나 하여 보기로, 지나간 오월 단오에 드디어 내외 같이 묘향산(妙香山)을 찾아가 며칠 동안 치성을 드린 일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와, 얼마 있다는 부인 곽씨가 한 아름다운 구슬을 얻는 꿈을 꾸었다. 몽사를 이야기 듣고, 심봉사는 정녕 태몽이라 하면서 기뻐하였고, 이래 은근히 기다리는 바가 있었다.
 
84
“여보, 마누라 마누라?”
 
85
동네 여인이 물러가기를 겨우 기다려, 심봉사는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다뿍 달뜬 음성으로다 급히 부른다. 좀 침중한 편이 덜한 것이 이 사람의 타고난 천성이었다. 이러한 천성으로 인하여, 때로는 사려 분별이 미처 따르지 아니하는 감정이, 홀로 앞을 달리어 무심한 실수를 저지르는 적이 종종 있고 하였다.
 
86
곽씨부인은, 별안간 그렇게 급히 불러대는 바람에, 하마 놀라 네 하고 같이 급한 대답을 하면서, 부엌으로 내어다보면서 한다. 내어다보다 짜장 놀라
 
87
“에구머니, 저 으른이……”
 
88
하면서 달려나와 남편을 붙든다. 심봉사는 바싹 마룻전으로 나앉아서는 우환중에 턱과 상체를 잔뜩 앞으로 내밀어 하마터면 마루 아래로 굴러 떨어질뻔하였었다.
 
89
“큰일나시겠네! 절러루 조금 들앉으세요!”
 
90
“게, 마누라 여보?”
 
91
심봉사는 상관 않고 연방 그 알량한 눈을 끔벅거려싸면서
 
92
“정말이요?”
 
93
“무얼요?”
 
94
“흐흐! 마누라도 가만히 본다치면, 퍽 이뭉하거든! 흐흐흐!”
 
95
“무얼 가지구 그러시까아?”
 
96
“아무렴, 그렇다면 상가집일랑 가지 말아야 허구말구! 부정한 델랑 가지 말아야 허구말구!”
 
97
“오오! ……”
 
98
곽씨부인은 비로소 알아듣는다. 문득 수삽한 기운이 얼굴로 드러난다. 귓부리가 완구히 붉는다. 나이는 근 사십이라 하여도, 처음 일이요, 남편의 앞이라 역시 소부 같은 여자다움이 없을 수가 없었다.
 
99
“확실한 가늠이 선 뒤에 이쭈려니 허구서, 하루이틀 민 것이 고만……”
 
100
“허 허허허! …… 정녕 인제는, 틀림없겠다?”
 
101
“네에.”
 
102
“허 허허허! …… 아모튼 내가 평생소원을 풀었소, 평생소원을……”
 
103
심봉사는 곽씨부인의 손을 어루만지다 그 다음 등을 뚝뚝 두드리면서
 
104
“평생소원을 풀었어! 어허 기특헌지고, 우리 마누라!”
 
105
불우하고 외롭고 겸하여 지지리 가난한 이 부부, 이 가정에 모처럼 모처럼 큰 기쁨이, 행복의 웃음이 가득 차 넘치었다. 햇볕도 이를 축복하는 듯 한결같이 명랑하였다.
 
106
이윽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던 곽씨 부인이 김 오르는 고깃국과 밥과 떡이며 고기며 나물이며를 놓아 상을 차려 들고 나온다.
 
107
“때가 그만 겨워서…… 퍽 시장허셨지요?”
 
108
“시장야 무슨 그대지 시장허우마는, 아까버틈 마누라가 얼른 좀 돌아왔으면 허구 기대리기는 했었지.”
 
109
곽씨부인은 남편 앞으로 상을 놓고, 올라와 상머리에 앉으면서
 
110
“글 읽으시다 또 맥히셨든감? 자, 어서 식기 전에 드시우. 국이 잘 고아져서, 고기두 연허구, 국물두 바특해 좋습디다.”
 
111
“나이 사십이 넘었으니, 젊어서 총기만야 헐꼬만서두, 그 쉰 논어(論語)가 다 그렇게 맥히니, 허!”
 
112
그러면서 심봉사는 더듬어 수저를 집어든다.
 
113
심봉사는, 장차 눈을 떠 과거를 보게 될 날을 위하여 글 읽기를 게을리 아니하였다. 또 글 읽기는 눈이 먼 심봉사에게 유일한 심심파적이기도 하였다. 글을 읽는다고 하여도, 그러나 남처럼 책을 펼쳐놓고 읽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눈이라, 기억을 좇아 그저 외우기나 할 따름이었다. 자연 막히는 대문이 없을 수 없던 것이며, 막히는 때면 곽씨부인이 무식치 아니한 덕에, 책을 들추어 가면서 그 대문을 뚱기어주고 하였었다.
 
114
이, 글이 막히는 것은 심봉사에게는 불소한 위협이요 불안거리였다. 글을 그렇게 잊어서야, 가사 눈을 뜬다손치더라도 어떻게 과거를 보며 장원급제를 할 것인고 하여서 말이었다. 매양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도 그는, 여느 날 같았으면 무수히 걱정을 하고 슬퍼하고 하기에 한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오늘은 큰 기쁨이 생기어 가슴이 벙벙한 참이라, 그것을 근심걱정하고 뇌사리고 할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그쯤 지난말로 한마디 하여 두고 말던 것이었었다.
 
115
심봉사는 웃음이 만면하여 있는 채, 일변 고기 얼러 국물을 그득이 숟갈로 떠 후 불다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면서
 
116
“거 참, 국이 맛이 좋군…… 마누라도 같이 먹읍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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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많이 먹었으니, 어서 당신이나…… 간이 어떻죠? 싱겁거들랑, 간장을 쳐드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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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두 내 입에 꼬옥 맞소…… 거, 여자가 잉태를 한다치면, 홀몸 적과 달라, 보를 해야 합너인다. 그래야 태아게두 좋구, 또 해산할 때 힘두 더얼 들구 그런대서…… 장차 약을 좀 지어다 약보(藥補)두 하련과, 보는 식보(食補)가 제일이라구 일르지않소? 그러니 아무리 우리가 살기야 다 참 옹색하드래두, 응? 마누라?”
 
119
“네에!”
 
120
“더구나 마누라 나이, 내년이 벌써 사십 아뇨? 사십이면 노산(老産)인데, 우환중에 초산이니, 힘이 들어두 조옴 들겠소?”
 
121
“이 갈비를 좀 잡서보세요? ……”
 
122
곽씨부인이 상의 접시에서 군 갈비를 집어 남편의 손에 들려주면서, 권이다.
 
123
“갈비는 찜을 질겨하시는데, 그런 대루 국물을 두구서, 쪄드렸으면 좋았을걸, 급해서 미처……”
 
124
“난 이 국만 해두 넉넉하니, 갈빌랑은, 자 옛소, 마누라 좀 자시우?”
 
125
“전 글쎄, 실컷 배불리 많이 먹었대두 그러시네!”
 
126
“정말 자셨소?”
 
127
“네에!”
 
128
“그렇거들랑, 갈비허구 고길라커든 뒀다, 이따 저녁에 먹게 합시다. 곤쳐 찜을 하든지 해서, 우리 겉이 먹읍시다그려?”
 
129
“이딴 이따구, 어서 잡숫는 대루 잡수세요. 잡숫구 냉기시면……”
 
130
“참, 마누라 여보?”
 
131
“네에.”
 
132
“몇 달이지?”
 
133
“석 달…… 석 달짼가바요?”
 
134
“석 달! …… 아따 그, 구실 얻는 꿈꾸든 그 달버틈 쳐서럿다?”
 
135
“네에.”
 
136
“참, 거 보구료? 내가 그때, 이건 무어 영락없이 태몽이라구 아니헙디까? 마누라는 그래두 곧이를 아니 듣구, 꿈을 어떻게 다 믿느냐구 그랬겠다? 흐흐흐!”
 
137
“……”
 
138
“허기야 마누라두, 혹여 허사가 될까바서 그랬지, 속으루야 정녕 태몽이거니 허구 믿기는 믿었지, 흐흐흐!”
 
139
“……”
 
140
“그런데 가만 있자…… 석 달이요, 지끔이 구월이니깐……”
 
141
심봉사는 왼손으로 손가락을 꼽으면서
 
142
“사월, 동지, 섣달, 정월, 이월, 삼월, 사월…… 사월이 산삭이구료?”
 
143
“그렇게 될까봐요.”
 
144
“생일두 꼬옥 존 때루군? 일난풍화허구, 보리나마 새 곡식이 나구 허는, 응?”
 
145
“……”
 
146
“생일두 잘 타구 났어! …… 아뭏든 구월산 신령이 영하시긴 영하셔! 그렇잔소 마누라?”
 
147
“구월산 신령두 영하시구, 일왈 심씨댁 선영 음덕이시죠!”
 
148
“그야 여부가 있소! 헌데 말요, 마누라?”
 
149
“네에.”
 
150
“그러니, 인젠 어쨌든, 떡두꺼비 같은 아들만 하나를 날 도리를 하란 말요, 응? 깨목불알에 고추자지가 대롱대롱 달린, 응?”
 
151
“욕심 같아서야 어련헐꼬만서두, 그것인들 인력으루다가 뜻같이 되는 노릇이어야 말이죠!”
 
152
“아따, 이왕이면 당상으루 이왕 생기는 바이면 기집아이보다두 아들자식을…… 그 말 아뇨?”
 
153
“당신이 복력이 있으시면, 이왕 아들자식이 생기는 것이구, 제 죄가 중하자면 쓰지 못할 자식 생기는 것이구 헐 테죠!”
 
154
“허허 , 건 공연한 소리! 기집아이 자식이라구 쓰지 못할 자식이란 법야 있나? 우리가 지지리 그, 눈먼 딸자식이라두 제발 하나만…… 해싸면서 바라든 일을 생각하면, 기집아이 자식 아냐 그보다 더한 거라두 감지덕지할 것이지!”
 
155
“국에 진지를 말아 잡수시까요?”
 
156
“응, 좀 말아 주시요.”
 
157
“국물이 식었나 본데, 잠깐 데워다 드리께요?”
 
158
“아니……”
 
159
“기름이 엉겨 어떡허시게?”
 
160
“과히 식지 아니했으니, 그대루 조금만 말아주구료…… 그러구, 마누라 여보?”
 
161
“네에.”
 
162
“마누라가 그런 걸 다 참 알어서, 부정한 상가집에두 다니기를 피하구 하니깐, 그런 조심야 내가 들어서 시키구 할 여부가 없는 것이지만, 그래두 각별히, 응? ……”
 
163
“네에.”
 
164
“또오, 집안에서거나 남의 집에 가서거나, 애야 힘에 너무 겨운 일하려 들지 말구…… 무거운 걸 함부루 든다든지, 응?”
 
165
“네에.”
 
166
“그러구. 부디 먹는 걸, 몸 보할 것으루……”
 
167
“네에.”
 
168
“몸 보하기야 고기에서 더 덮을 게 있소? 그러니 아무리 옹색하드래두, 가끔가끔 고기를 좀 먹두룩 하시요.”
 
169
“네에.”
 
170
“약은 지금 쓸 것두 쓸 것이려니와, 거 용을 불가불 구해 두어야 하겠소?”
 
171
“용을 무얼 허시게?”
 
172
“마악 비스를 때 용을 댈여 쓴다치면, 힘 별반 아니 들구 순산을 합너인다……”
 
173
식보를 하여라, 약보를 해야 한다, 녹용을 구하여 두겠노라, 이건 바로 부자장자 부럽지 않게 서두르고 있다. 아낙이 바느질 품과 일품 팔아 겨우 연명을 하고 지내는 사세를 생각할진댄 감히 생의도 못할 노릇이었다. 그렇건만(노상이 형편과 물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건만) 미처 전후를 헤아리지 못하고서, 곧잘 그런 허랑한 경륜과 희떠운 수작을 하러드는 것이, 본시 이 심학규라는 사람의 사람 됨됨이의 딱한 일면이었다.
 
174
남남끼리라면 큰 숭일 것이었다. 또, 부부간이라 하더라도 웬만한 아낙이었다면 단박 핀잔이 나오고라야 말 것이었다. 그러나 곽씨부인에게는 남편의 그런 숭이, 숭이 아니었다. 숭을 숭으로 여기지 아니하는데에, 극진한 사랑의 극진한 소치가 있는 것이었다.
 
175
“꿈결 같구료! ……”
 
176
이윽고 상을 물리면서 심봉사가 퍼뜩 하는 말이었다.
 
177
“영영 혈육이 없고 마는가 했드니 꿈결 같아! …… 응? 마누라?”
 
178
“네에.”
 
179
“우리가 시방 이것이, 실히 꿈은 아니었다?”
 
180
“네에!”
 
181
“허, 허허허. 신기한 노릇야, 기특한 일야! 허허허허! …… 글쎄 마누라 여보? 세상에 이런 기쁠 데가 있소? 응? 막일러 내가 눈을 떴기로소니 참이대도록야 기쁠 수가 있겠소? 이 먼 눈을, 번쩍 시방 떴다기로소니 말요! 허, 허허허!”
 
182
여전히 높은 웃음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이 먼눈을 번쩍 시방 떴다기로소니! ……’ 하는 말이며, 마지막 웃음소리에는 그새까지와 달라, 이상히 공허한 여운이 섞이어 있었다. 말과 웃음소리에 공허한 여운이 섞일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적막한 그늘이 선연히 퍼져 올랐다.
 
183
심봉사는 평생소원을 풀었노라고 하였다. 또 먼 눈을 떴기로니 이다지야 기쁠까 보냐고 하였다. 사실이었다. 노상 빈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말을 타면 경마를 잡히고 싶은 것이 범인의 상정이었다. 한가지의 욕망! 슬하에 자녀를 두고자 하는 욕망은 이에 이루어진 바나 다름없었다. 아낙이 십삭을 채워 자녀간 아뭏든 나면 되는 것이었었다.
 
184
그럼, 눈은? ……
 
185
눈도, 자녀를 두고자 하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눈도 떠져야 할 것이었다. 자녀를 두는 것이나 눈을 뜨는 것이나가 다같이 인력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노릇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신명의 돌아보심과 선영의 음덕으로, 그 인력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한가지가 이루어지는 바이라면, 다른 한가지도 이루어지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었었다. 자녀는 하여커나 인제 두게 되었으니, 눈도 어서 바삐 번쩍 떠야만 하겠었다.
 
186
‘이 먼 눈을 번쩍 시방 떴다기로서니! ……’ 하면서 생각하니, 눈이 있었다. 먼 눈이 있었다. 어서 바삐 떠야하는 답답한 눈이 있었다.
 
187
‘눈은! 눈은 언제나? 만약에 영영 못 뜨고 만다면? ……’
 
188
이러면서, 순간 어둔 마음이 가슴에 스며듦을 억제하지 못하였고, 그것이 말과 웃음소리나 얼굴에 그처럼 드러난 것이었었다.
 
189
미루어 심봉사의 눈 뜨고 싶은 욕망이, 또는 희망이 얼마나 곡진함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자녀를 두고 싶던 욕망보다도 이편이 차라리 더 강렬하였을는지도 모른다.
 
190
하루하루를 손꼽듯 하면서 십삭을 채우고, 달 짚은 사월이 되었다.
 
191
곽씨부인의 배는 부를 대로 불렀고, 해산이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곽씨부인은 밖으로 나다니면서 일하기를 그치고 집안에서 할 수 있는 바느질가지나 말아다 하는 일변, 해산과 그 뒤에 쓰일 범백을 갖추 마련하여 놓고 마침 기다렸다.
 
192
그러던 차에, 어느 날 밤!
 
193
“에구우!”
 
194
잠이 들었던 심봉사는 옆에서 들리는 나차우나 심히 다급한 신음소리에 퍼뜩 놀라 깨었다.
 
195
“마누라 왜 그러우?”
 
196
“불 좀 켜시구…… 애구우!”
 
197
“오오!”
 
198
다시 물을 것도 없이, 해산을 비스르던 것이었었다.
 
199
“온, 일 어떡허나? 어서 힘을 쓰구려! 불꾼 힘을…… 온, 이거 온! 허어 이거 온!”
 
200
어쩔 줄을 모르고 황망해하면서, 일어나 앉은 자리에서 뭉개기만 한다.
 
201
“그렇게 당황하실라 마시구, 애구우 배야! …… 등잔에 불을 먼점 좀 켜서요!”
 
202
“아무렴 켜구말구! 내가 부시쌈이를 얻다 놓았드라? …… 내 불 켤께시니, 마누랄랑 어서 힘을 써요! 어뿔싸! 불수산을 지어다 둔다든 게 고만! ……”
 
203
불수산도 지어다 두지 못하였으니, 녹용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204
부시쌈이를 찾아서, 부시를 쳐서, 황개피에 불꽃을 일궈서, 등잔을 찾아서, 불을 켜 하기까지에 심봉사의 노력은 대단한 바가 있었다.
 
205
“이거 온, 눈 먼 내가 애기를 받는 수가 없구…… 그래 누구를 좀 청하리까?”
 
206
“옆집 귀덕어멈이나……애구우!……혹시 힘이 지쳐 까라지드래두 막상 몰라 부탁은 해두었으니, 좀 불러주세요. 애구우 배야!”
 
207
“내 그럼 불러오리다!”
 
208
“천천히 나가세요, 넘어지시리다.”
 
209
울타리 너머로 부르는 소리에, 귀덕어멈은 기다렸던 것처럼 냉큼 대답을 하더니, 이내 달려왔다.
 
210
염려하였던 대로, 곽씨부인은 초산인데다 겹치어 노산이 되어서 대단히 난산이었다. 비스르기 시작하기는 실상 초저녁이었는데, 첫닭이 울도록 문도 잡히지 아니하였다.
 
211
부엌으로 나와 불도 지피고 물도 데우고 하면서 심봉사는 연해 토방과 부엌을 들락날락 애를 태웠다. 그러면서 생각하였다. 배기만 하면 낫는 것이야 다 저절로 되는 것이거니 하였더니, 이런대서야 자녀를 바란다는 것도 졸연한 일이 아니로다고.
 
212
닭이 두회째 울어서야 겨우 해산을 하였다. 산모는 그러고 나서 지쳐 그만 정신을 잃었다.
 
213
이리하여 아무려나 운명의 생명은 세상을 나온 것이었었다.
 
 
214
얼마 후에야 곽씨부인은 도로 깨어났다.
 
215
“정신이 좀 들었소?”
 
216
옆에 지켜 앉았다 기척으로 알고 심봉사가 하는 말에 곽씨부인은
 
217
“무어지요?”
 
218
하고 먼저 묻는다.
 
219
“허! 마누라가 나물국이 먹구 싶었든가바!”
 
220
“……”
 
221
곽씨부인은 얼굴에 낙망하는 빛이 가득하면서 눈을 감는다.
 
222
“그러나저러나 딸이면 대수요? 걸 가지구 애야 마음 언짢아할란 마시요!”
 
223
“조옴 섭섭허세요? …… 지가 죄가 많아서……”
 
224
“글쎄 그러지 말래두, 마누라는 그래쌓는구려? 딸자식이라두 하나 생긴 것만 감지덕지하지……”
 
225
“그래두 다 늦게 모초롬 자식이라구 생긴 것이 딸자식이니! ……”
 
226
“아들자식두 잘못 두면 패가망신을 허구, 선영에 욕 끼치구…… 딸자식이라두 잘만 두면 효도 받을 대루 받구 가문 빛낼 대루 빛내구 한다지 않소? 선영 향화야 외손봉사는 못 시키우?”
 
227
“아 그렇구말구요!”
 
228
귀덕어멈이 첫국밥을 지어가지고 들어서면서 마침 그렇게 대꾸를 하던 것이다.
 
229
“그러구 또 늦게나마 시작을 하셨으니, 연달아 더 나시면 그때는 아들애기를 나시게 될 것이구요!”
 
230
“그렇지만 여보게, 나는 영영 아들은 못 두어두, 다신 우리 마누라더러 해산일랑 하지 말랄 생각일세!”
 
231
“망녕의 말씀두! 애기 나시기, 힘 좀 드셌다구요?”
 
232
“제일에, 내가 옆에서 십년 감수는 했나보이!”
 
233
“호호호호! …… 자, 애기어머니, 어서 국밥 좀 잡수세요. 애기 낳기 힘드는 거야, 무슨 병인가요? 그러구 첨이니깐 그러시지, 둘째버틈두 훨씬 수나롭답니다!”
 
234
“혹시 그렇다면 모르거니와……”
 
235
응애 하고 울음소리가 난다.
 
236
“어이꾸 내 새끼가! ……”
 
237
그러면서 심봉사가 애기한테로 돌아앉는다. 입이 흐물흐물, 그 알량한 눈을 끄덕끄덕, 곧 끌어안고 일어서서 둥기둥기라도 하겠는 모양이었다.
【원문】운명(運命)의 탄생(誕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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