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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후(解放後) 문단(文壇)의 독재성(獨裁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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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4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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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放後[해방후] 文壇[문단]의 獨裁性[독재성]
 
 
2
재작년 8월 하순부터 젊은 소설가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며 글이 흔히 돌았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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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상이 되었으니 문학― 더우기 소설도 일제시대의 때를 벗고 새로운 길을 뚫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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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비평가들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발명해 가지고 진보적 민주주의 아래서 새 조선의 문학의 걸어나갈 길의 정의를 많이 운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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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이론들은 구체적으로 뜻을 알아 내기 힘든 것으로서, 모두가 추상적이요, 요령부득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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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소설을 붓[筆]하는 것으로 천직을 삼는 나 같은 사람도 뜻을 요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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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쓰는 사람 자신도 모를 것이다. 그 이론은 둘째 두고 ‘진보적 민주주의’ 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알아 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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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무엇’ ‘진보적 무엇’ 하는 ‘진보적’ 이란 말은 ‘공산주의’ 전성 시대에 공산주의를 가리켜 말하던 바로서, 혹은 기피의 의미에서 혹은 뽐내는 의미에서 공산주의를 가리켜 진보적 사상이라고, 공산적 무엇이라는 말을 진보적 무엇이라고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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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쟁을 하는 몇 해 동안 공산주의에 대탄압을 내리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는 동시에, 진보적 무엇이라는 말도 한동안은 그 자취를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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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합국이 전쟁에 승리를 하여 세상은 ‘민주주의’ 세상으로 변하여 민주주의의 원칙대로 언론이 해방되자 다시 ‘진보적’ 이라는 말이 유행을 시작하여 ‘진보적 민주주의’ 라는 것이 많이 운위된다. 그러나 진보적 민주주의가 어떤 것이라는 분명한 정의는 내려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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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민주주의’ 라는 것은 공산 진영에서만 쓰는 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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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미국을 독립시키고 法國[법국]에 혁명을 일으킨 근대적 민주주의는 옛날 그대로 있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새것을 또 다시 만들지 않았다. 그것과 다른 자는 민주주의가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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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북미합중국이 민주국이면 미국과 정치 이념이 다른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 뿐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등으로 재래의 어휘를 차입하여 진보적 운운의 문구로 가미할 것 없이 아주 새것을 창조하여서 신형의 국가에 씌우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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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류 세상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세계는 여기 동일 보조를 취하려는 시절이라, 지금 ‘진보적 민주주의’ 운운하여 眞民主主義[진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를 新造[신조]해 가지고 대중을 속이려는 것은 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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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판연히 다른 자를 가지고 ‘진보적’ 민주주의 운운하는 일부인의 행위는 비굴한 사기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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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진보적 민주주의’ 라는 자를 민주주의라는 글자가 섞이어 있다는 이유 때문에(그것만 때문에) 지지할 만한 아량도 없고 거기 속을 만치 어리석지도 않다. 뿐더러 ‘진보적 민주주의’란 자가, 조선의 현재에서 예를 들자면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주의이고, 한국 임시정부가 현존한데도 인민공화국이란 것을 신조하여 민족적 분열을 일으키려는 주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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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8 이북의 행위를 진보적 민주주의적 약소 민족 해방 행위라 하면, 그런 말을 하는 인사까지도 우리의 반역자라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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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에 있어서 상기(민족 해방이 되었으니 문학은 대폭적으로 향상되어야겠다는) 논을 부르짖는 一群[일군]은 과연 과거에 있어서는 그다지 신통한 작품을 산출치 못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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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30년을 문단에서 걸어온 사람들이지만 10년 전의 구태나 최근의 신태나 일 보의 진보가 없고 어떤 레벨까지도 아직 도달치 못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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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들은 이 새 세상에서 경천동지의 대작을 산출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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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로서도 그냥 알 수 없는 점은 ‘새 세상이 되었으니 거기 적응한 새 길을 열어야겠다’ 는 그 ‘새 길’ 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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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기묘한 것이어서, 걸작이나 명작을 제작하겠다는 의도나 결의로써 명작이 나는 바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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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작자의 수완과 제작 당시의 환경과 심경과 취재의 適不適[적부적]이며 그 밖에 숙명적 원인으로서 명작도 나고 졸작도 나는 것이지, 작자의 결의 따위는 전혀 문제 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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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세상이 되었으니’ 혹은 작자의 심경에 따라서 청신하게 되어 작품의 가치에 영향될지는 모르지만 ‘새 세상이 되었으니 걸작을 내어야 되겠다’는 의식 의도로 좌우될 문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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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도 최근 수년 간의 극도의 출판 제한 시기를 제하고는 취재의 범위에 제한이 있었을 뿐이지, 그리고 이 제한쯤은 극복해 갈 곁길은 얼마이고 있었지― 그리고 취재의 범위에 제한이 있느니만치 그 구속의 불편은 不少[불소]하였지만 작가의 역량을 발휘치 못할 만한 금제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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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라, 만약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면 과거 일제시대에 명작을 못 만들었다 하면 그 사람의 소질이 근본적으로 부족한 탓인지, 그 죄를 국가 없는데 돌릴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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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방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역시 갑작스레 명작을 산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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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논을 주장하였더니만치 명작 못 되는 졸작은 발표치 못할― 자승자박을 하고 지금 쩔쩔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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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을 걱정하였다. 이런 迷論[미론]에 영향되어 작품 제작을 못하고 있는 신진 작가는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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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렇다 하면 이는 조선문학 발전에 지대한 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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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졸작 할 것 없이 많은 작품이 나와야 그 가운데는 명작도 있을 것이요, 대작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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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을 산출하는 것은 此[차] 신시대[新時代]에 안 될 일이라는 迷論[미론]에 영향되어 침묵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하면, 그 작가 자신과 조선문학을 위하여 슬퍼할 일이다. 누구든 그 길을 터 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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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몇 개 잡지에 몇 편 凡作[범작]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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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작을 지으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제재에 힘 안 들이고 써내니 써 낸 뒤 자신이 읽어 보아도 범작 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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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껏 원고를 부탁하여 이런 범작을 얻어 간 잡지업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벌충은 후일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고, 우선 봉쇄된 선을 잘라 버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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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이후의 文學道[문학도]에 또 한 가지 불문율이 있는 모양이다. 즉 작품 제재를 3․1이든가 8․15든가 국가 해방이든가 이런 것에 국한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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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공산주의 전성 시대에 계급 문제를 취급한 작품이 아니면 作[작]할 수 없다는 풍조가 생겼던 것과 같은 제도이다. 그러나 예전 계급 문제를 취급했던 뭇 작품이 계급 문제 취급만을 목적했던 자는 모두 벌써 생명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오늘도 꼭 그와 일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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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세상이 한 번 바뀌었으니만치 사람들의 기분도 청신하게 되었는지라 청신한 기분으로써 풍부한 제재로써 좀더 우수한 작품이 많이 생기는 것은 우리의 희망이요,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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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사위의 사정이 너무 어지럽고, 게다가 또한 문인들이 정업인 ‘文[문]’ 을 떠나서 정치가가 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문인의 한 기관인 ‘문학자동맹’ 은 문인 단체라기보다 정치가 단체라는 편이 좋도록 거기서 하는 일은 정치적인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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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당이며 조선공산당 등 적색 정당의 지도 하에 전혀 정당적 사업에 주력하는 감이 불무하다. 상기 양 좌익 정당에 협찬하는 여러가지는 성명이며 행사는 문학적 동맹원 전체에 諮詢[자순]하여 한 바가 아니요, 수뇌자 수인의 독재(이 민주주의 새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독재)로서 한 일이다. 이것은 문인의 오입이요, 문학의 모독이다.
 
 
41
우리는 이러한 오입에 길 헛들지 말고, 또는 자기의 미숙을 카무플라주하기 위한 ‘새 세상이니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 는 등의 迷言[미언]에 귀 기울이지 말고, 다만 자기의 믿는 대로, 그리고 자기의 힘자라는 대로 우리의 문학도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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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의 일제의 치하에서 감히 혹은 능히 쓰지 못하던 많은 제재가 다듬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대로 골라다가 人言[인언]에 구애되지 말고, ‘꼭 명작을 만들려’ 고 등달지 말며, 8․15 이전에 쓰던 방법도 무관하니 그저 내 열과 성을 부어 넣은 작품이면 넉넉하다는 자신을 가지고, 조선 문학 건설과 발전에 이바지하자.
 
 
43
(〈海東公論[해동공론]〉, 1947.4)
【원문】해방후(解放後) 문단(文壇)의 독재성(獨裁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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