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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3.20~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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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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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작자와 인물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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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야 씨의 작금의 작품 세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나는 또 하나의 의견과 적지 않은 불일치를 경험하였다. 다른 의견이란, 예컨대 임화 씨의 평문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태도인데, 작년도의 산문 문학의 결산 논문에 있어서 나는 『인문평론』과 『동아일보』를 통하여, 한씨의 자기 검토, 자기 정신의 개조에 대해서 경고를 발하고 하루 바삐 이러한 세계에서 발을 뽑을 것을 주장한 데 대하여, 임화 씨는 『문장』과 『조광』에서 한씨의 이런 태도를 극구 찬양하고 이 세계에 꾸준히 머물러서 끝까지 정신의 개조를 꾀하여야 한다고 격려하면서 ‘한씨는 가장 어려운 가치 있는 사업에 직면했다’고 말하였다. 임씨의 주장에는 물론 일리가 없는 바 아니나 그것은 결코 한씨의 문학을 정도로 구해 올리는 길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임씨가 시인으로서 경험한 궁경(窮境)을 소설가인 한씨에게 권면(勸勉)하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1년, 2년이 지나도록 쓸 만한 작품 한 편 내놓지 못하고 최근엔 거의 시작(詩作)을 단념한 듯한 임씨가 그것은 번연히 알면서 한씨에게 자꾸만 그러한 행로를 지시하고 있는 태도는 나에게는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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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 문학 당시에 이러한 궁경을 경험하였다. 다행히 단편집 하나로써 심리적인 안정을 얻고 되었거나 안 되었거나 나는 다른 세계의 탐구로 몸을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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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한씨가 지금 가고 잇는 길이 한 번은 다녀가야 할 길이라곤 생각지 못하는 바 아니나 될 수 있으면 한두 편으로써 그런 세계를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경고의 진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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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부심이 강하고, 또 생각하는 바 있어서 자기의 문학을 그러한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한씨에 있어, 나 같은 후배의 말은 그대로 ‘철없는 건방진 수작’으로밖에 생각되어지지 않았을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반드시 이러한 게 원인 되어서는 아니나, 『인문평론』3월호 소재의 「모색」은 그 뒤의 한설야 씨가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보여 줄 역작으로서 나의 흥미는 배중(倍重)하였다. 나는 일찍이 작년도의 씨의 「종두」평에서 한씨의 정신에 피로색이 가득하다는 것을 말해 두었었다. 「모색」에서 그것이 심화된 것은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모색」에 나타난 작자의 의식 상태는 혼란과 착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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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세속적 이녕(泥濘’속에서 검토하려는 이러한 주제의 작품은 붓을 들기 전에 작자 자신과 작중 인물과의 거리를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이 작품에서는 그러므로 주인공 남식이와 작자 한씨의 정신상 거리의 측정이다). 이것이 없이는 모색을 정상한 상태, 냉철한 눈으로써 시행할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씨는 그러한 구별을 할 수 있을 만큼 냉정한 정신에 있지 아니하였다. 남식이는 한씨 자신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한씨의 정신으로서는 허락할 수 없는 전연 별개의 인물이기도 하다. 작자 자신일 때엔 한씨는 이를 통하여 작자의 주관을 방송하고 그렇지 않을 때엔 남식이는 그저 한씨의 풍자의 대상일 따름이다. 이런 상태에선 모색도 불가능하거니와 설사 모색이 가능하다고 하여도 그 결과는 별것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눈에 띠는 것은 남식이의 졸렬한 심정이나 강박 관념에 붙들려 있는 심리를 다소 과장적으로 펼쳐 보이면서 작자는 그 뒤에서 사실을 제법 회심의 미소를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모두 세속에 어울리지 않은 까닭이므로 세속에 다소라도 어울려 나가는 너희들(독자)은 이만도 못한 놈이다’ 이런 작자의 심리가 낱낱이 들여다보일 뿐 아니라 이러한 때 작중 인물 남식이는 풍자의 대상에서 어느 새에 그대로 작자 자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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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을 통하여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작자의 심술이 실상은 현실을 애띠게 보는 데 의한 자기 투안(偸安)의 경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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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씨가 자기의 정신을 타개할 생각으로 모색을 꾀하려고 하였다면 다음 일절에다 거점을 두어야 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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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멀리 뵈는 무엇을(신념) 좀더 가까이 잡아다가 자기의 것을 만들어 보려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잡혀지지 않는 난감한 생각만 더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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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신념을 잃을 듯하여(혹은 이미 잃어 버려서) 그것을 다시 찾으려는 자기 입장이다. 이것만이 모색의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씨가 어느 정도까지의 가라앉은 침착성을 가지지 못하고, 혼란한 채, 피곤한 채 되범벅을 개면서 돌아가면 진정한 모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한씨가 소설을 적지 않게 피곤한 정신 세계로 끌고 간 증거로 씨가 플롯을 버리고 전혀 미세한 에피소드로써 작품을 미봉(彌縫)한 것과, 그것을 미봉해 나간 것이 설화체, 그것도 과장벽이 상당한 ○○체였다는 것을 들어둠이 필요할까 한다. 그러나 이 설화체와 삽화체 구성에 대해서도 나는 일찍이 씨의 작품에 대하여 경고해 둔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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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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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문외한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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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평의 제1회분을 써서 신문사로 보내고 난 뒤 석간을 보니까 김영수씨가 본란 ‘화요 평론’에서 「월평을 주(誅)함」하고 가슴이 선뜩 하는 제목으로 월평가(月評家)를 주(誅)해 놓았다. 방금 창작 월평을 한 회분 썼고 계속해서 제2회분을 써야 할 판에 이런 서슬이 시퍼런 제목을 보면 제목으로 그 내용이 추측되지 않은 바 아니나 역시 나는 그것부터 읽어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의견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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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문단에 뚜렷한 영도적인 논리가 미약하여진 대신 이의 대역으로 등장하여 분에 넘치는 접대를 받고 있는 것에 ‘월평’이 있다” 김씨의 주문이 서두가 이런 것인데 이것도 따져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4, 5년래 나도 가끔 창작 월평에 붓을 들었지만 영도적 논리(?) 대신에 월평이 등장했다는 말도 딴소리고 또 분에 넘치는 접대 운운은 더욱 맞지 않는다. 내가 현재 쓰고 있는 이 지면에서도 그 전에는 월평이라면 의레히 4, 5회분의 ‘접대’를 하였는데, 지금은 3회, 또 『인문평론』이나 『문장』으로 말해도 다른 평론은 통단 2단으로 ‘접대’하는데 김영수 씨도 보시는 바 월평은 3단, 매수도 지극히 적고 또 6호 활자가 되는 수도 적지 않다. 대접은 샘스러 푸대접을 받는 것이 월평이고 다른 영도적인 논리 강화(?)를 위하여 월평 같은 것의 의의가 전보다 적어졌다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니까 김씨가 계속하여 ‘월평은 평가의 부채는 아니다. 여기도 아니다. 여흥도 아니다’라고 말하여도 ‘물론 그렇다’고 생각은 하면서 그리고 현재의 나도 여기라곤 생각지 않으므로 ‘원 누가 장난인 줄 알고 말썽 많은 창작평을 썼던 친구가 있었던가’ 정도로밖에 딴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좀더 읽어 보고 김씨의 주문의 신수(神髓)가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령 인용을 하자면 “월평이 한번 게재되면 직접적으로 작가가 감수하는 생리적인 영향은 작가 이외의 부대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미치지 못할 정도다”라는 이런 구절에 있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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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월평가한테서 단단히 욕을 먹고 하루 종일 우울하게 지낸 경험이 많았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2, 3일 간 눈만 멀뚱거리고 앉았을 때가 아마 금후에도 내가 작품을 쓰는 한 얼마든지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은 아닌 것이다. 다 함께 젊은 사람들이 작품을 내놓고 우쭐하다가 가끔 정신이 나게 얻어맞고 제 작품이나 창작 태도에 반성을 가져보는 것, 이것은 만약 진정한 문학을 하고 싶은 사람에겐 입에는 쓰지만 언제나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또 매깨나 맞았다고 씨부렁거릴려건 아예 문단 안에 들어오지 않음이 좋을 것이다. 어느 점잖은 싸롱, 서로 칭찬해 주고 아첨하고 사교하고 그러는 생활권 내로 자리를 옮김이 마땅할 것이다. 이의가 있으면 논쟁을 걸고 사리를 따져서 항의문을 초하든가 ‘두고 보자!’ 하고 다음 작품에 정력을 써서 작품으로 평가를 아연케 함이 작가의 할 일이다. 여하튼 나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하는 까닭에 ‘생리적 영향’이란 어떤 것인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월평을 할 때엔 다름 아닌 ‘생리적 영향’을 고려하기 때문에 더 가혹한 태도를 취하는 때가 없지도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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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영수 씨의 문장을 들어 가지고 이런 글을 쓰다 보니, 『문장』3월호의 모윤숙 씨의 「미명」의 비평은 대단히 난처한 일거리로 되어 버렸다. 이 소설을 읽고 절찬을 마지않았다는 신사도 있는 모양이나 그 친구도 어지간히 뻔뻔스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것은 그저 시인 모윤숙 씨의 쓸데없는 외도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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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요즘 소설 이외의 다른 형식으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해서 일가를 이룬 분들이 가끔 소설에 붓을 드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나는 두가지를 생각한다. 하나는 작단에의 청신한 새로운 자극,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의 궁경의 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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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모두 좋은 일이고 또 앞으로 문외인의 소설이 아무리 서투르고 거칠더라도 이것은 쓰는 사람 자신의 문학적 타개를 위하여서나 또는 작단을 위하여서나 기여하는 바 없지 않을 것을 믿는다. 전자는 현재의 작단에 대한 불만이 동기가 되기 쉽고 후자는 그가 만일 시인이라면 자기의 시적 표현에 대한 염증과 시적 감각에 대한 절망의 자각이 동기가 되기 쉬울는지 모르나 여하튼 그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경향일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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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윤숙 씨의 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니까 삼가서 말하는 것이 예의겠으나, 아무래도 한번 단단히 시상과 표현의 기법을 반성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던 터이라, 씨의 소설이 이에 대한 깊은 각오가 있어서 씌어졌기를 희망하면서 「미명」을 읽었다. 그러나 나의 독후감은 그저 만연한 태도로 ‘나두 한번 써 봐야지’ 그래서 붓을 든 것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모씨는 아직 씨 자신의 시가 궁경에 빠져 있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각오나 자각이 없이 씌어졌더라도 「미명」이 보통 수준에 오른 것이라면 별문제가 없겠지마는 솔직히 말하자면 당선작 이하다. 여성이란 핸디캡을 당사자나 혹은 나 같은 제3자나가 지나치게 의식하려 들고 이용하려 들면 피차에 불쾌한 일이다. 문단에서라도 남녀 동등이 되어지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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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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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엉뚱한 제재와 고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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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료들 중에서 남이 거들떠볼 염도 하지 않는 제재를 붙들어서 재미난 소설을 꾸며 보려고 애쓰는 분에 이무영 씨가 있다. 문학 정신이 좀 저속해지지 않느냐고 남이야 웃건 말건 이씨는 이런 엉뚱한 제재에 가끔 착안한다. 『조광』3월호에 실린 「이름 없는 사나이」는 고급 신여성에게 풍자를 쏟아 주는 소설이다. 한인수라는 사나이는 모 전문학교 철학 강사로서 일찍이 아명, 별명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삼십이 넘어서 소설 쓰기와 여성 운동에 여가가 없고 좌담회에 출석하기에 집안 돌볼 틈도 없는 고명한 인텔리 여성 윤명희와 연해하여 조강지처를 이혼하고 새로이 결혼한 덕분(?)에 결혼하는 그 날부터 저도 모르는 동안에 이름 없는 사나이가 되었다. 그 후 세상 사람은 그를 한인수라 부르지 않고 곧잘 ‘윤명희 남편’이라고 불러 주었지 때문에……. 그러나 남이야 무어라든 결혼 생활만 행복되면 이에서 더 좋을 것이 없겠는데 이 윤여사의 여권 주장에 깔리어 그는 찍짹 소리도 못하고 지낸다. 드디어 주먹싸움까지 벌어지지만 양편이 모두 지지 않고 게다가 또 주위의 이목이 부끄러워 오늘도 내일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결혼 생활이다. 속살없이 우쭐대는 고급 여성을 통쾌(痛快)하게 공격해서 가령 전게(前揭), 모윤숙 씨의 「미명」에 나타난 ‘여성 옹호와 모성애의 변’과 호대조(好對照)다. 이씨는 이 엉뚱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심각한 낯을 하고 써볼 맛은 없었다. 그러므로 씨는 풍자를 넣어서 소설을 희화로 만들어 버렸는데, 모씨는 붓을 가다듬어 커다란 문제나 제기해 보듯 한 것도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대조다. 이씨는 소설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를 아는 분이니까 짓갈겨 써 버려도 구성이 그다지 흩어지지 않아서 볼 품 사납지는 않지만 모씨는 소설이 통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 분인지라 제법 정○하게 전개시켜 보인다는 장면이 과녁이 모두 헛맞아서 정당한 감상력은 읽어 가기가 곤란하였다. 그러나 무영이여 이제 이러한 엉뚱한 제재는 문외인들에나 맡겨 버리고 좀더 섬세히 감각을 소설 제작에 구사해 봄이 어떨까? 이런 종류의 것은 「어떤 아내」나 이번 작품 정도로 걷어치움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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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이기영 씨는 엉뚱한 걸 도무지 쓰지 않아서 혹은 쓰지 못해서 걱정되는 분이다. 이번에는 좀 엉뚱한 것을 쓰셨나? 하고 읽어 보면 언제나 매한가지 같은 세계 같은 수법이다. 십여 년 동안 씨를 길러낸 이씨의 작품 세계와 시의 센스가 이씨의 발목을 꼭 붙들고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인문평론』 3월호에 실린 「봉황산」도 말이 금강산이지 내용이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법 같은 것이 여전하다. 가령 나는 이기영 씨가 「소부(少婦)」같은 작품을 쓸 때에 ‘옳다! 이번엔 엉뚱한 걸 쓰신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은 자꾸만 고정화된 세계에서 발을 뽑으려고 애써 보나 결국 그것이 쉽게 되질 않아서 무한한 애만 쓰고 다시 옛 세계로 돌아가 붙고 말았다는 느낌을 주었었다. 이번 작품은 별반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외람된 대로 이씨가 자기 검토나 자성의 세계 같은 것을 한번 통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먹어 보았다. 한설야 씨에게 하루 바삐 떠나라고 부탁한 그 세계를 나는 이기영 씨에게 권해 보려는 것이다. 이씨는 ‘자기’를 여태껏 믿고 선반에 얹혀 놓고 지내 온 분이다. 그런 ‘자기’를 선반에서 끌어 내려다가 한번 추급해 보는 것이다. 혹시 새로운 길이 열릴는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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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정비석 씨의 『문장』3월호 소재 「고고(孤高)」에 대해서 일언하겠다. 전기 이씨 두 분을 상술한 바와 같은 논점에서 이야기하고 난 뒤 정씨를 생각하면 이 분은 한자리에 궁둥이를 붙이고 좀 집착성 있게 앉아 있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성’으로 ‘치정’으로 ‘지식인의 고(苦)도’으로, 신세대론을 그릇되게 오해하고는 「삼대」라는 작품으로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자리를 딴 데로 옮겨 보았다. 제것이 완전히 되도록 한 자리에 앉아 보지 않고 이렇게 자꾸 자리를 옮기는 것을 나쁘게 말하면 작가의 부동성(浮動性)이라 하겠으나 여하튼 「고고」도 정씨에겐 어울리지 않는 세계다. 실례된 고백이지만 나는 이것을 읽으며 ‘이건 김동리를 맡겼으면 성공할 작품이다’라고 여러 번 생각하였다. 동양적 체관을 밑에다 놓고 산과 절의 태고연(太古然)한 분위기를 풍겨 가면서 간결하게 꾸며 낼 솜씨는 신진 중에선 김동리 씨가 일일(一日)의 장(長)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고고성(孤高性)을 배금주의와 대조시킨다는 정씨의 생각이 너무 어수룩한 것 같다. 그러므로 아무리 한자나 한시 같은 것을 섞어 가면서 소위 장중미(莊重味)를 내려고 애쓰지만 혼탁한 시골 카페의 잡어(雜魚)들을 그리던 붓을 금시에 바꾸어 놓으면서 소기의 묘사가 그렇게 손쉽게 될 턱이 만무하지 않은가. 일정 기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작품 세계를 붙드는 것이 정씨에게는 우선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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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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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40년 3월 20일 ∼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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