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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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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 9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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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
 
 
2
서울역 1, 2등 대합실이다. 한편 벤치에 앉아서 약 30분 후에 도착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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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동그랗게 나오고, 비비꼬인 양복에 떨어지다가 만 레인코트를 입고, 두어 조각 긴 구두, 때가 반질반질 묻은 모자를 쓴 매우 신경질적인 신사 한 분이 굵은 스틱을 질질 끌며 대합실로 들어서자, 그 뒤에는 인조 옥색 치마에 인조 분홍 저고리를 입고, 서투른 말똥 머리를 한 아낙네가 바스켓을 가지고 걸어 들어온다.
 
4
두 사람은 실내를 휘휘 둘러보더니 마침 비어 있는 내 옆에 앉는다. 아무리 뜯어 보아도 시골 보통학교 을종 훈도(乙種訓導)가 박혀 있는 것 같다. 또 부인을 보아서는 보통학교 2, 3학년에 중퇴하였거나 그렇지 아니면 야학 쯤 다니던 여자로 신혼여행쯤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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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를 어쩐단 말이요?”
 
6
“아니,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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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 거시기…… 전차를 가 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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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허둥지둥 눈이 둥그래서 밖으로 나가련다. 여자는 남편의 옷깃을 붙잡으며 놀란 얼굴로,
 
9
“왜요? 무엇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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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를 어쩐단 말이요? 지금 오다가 산 것을 잊었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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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를 살피고 양복 저고리 포켓 좌우에 손을 넣었다 꺼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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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 글쎄 무엇 말이오? 지금 산 것이면 그럼 반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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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응, 그래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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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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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의아해서 손가락으로 남편의 왼편 손가락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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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 이런 정신, 전차에 떨어뜨린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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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씻으며 나를 흘낏 보고 무참해서 아무 말 없이 털썩 앉는다. 여인은 허리가 부러지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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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왜 그러셔요? 나는 깜짝 놀랐지. 일전에도 그러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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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없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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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으니, 두 사람은 어물어물하고 잠깐 묵묵하였다. 여인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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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타고 들어가시려면 추워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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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관계치 않지만 당신이 춥지 아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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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 저는 관계치 아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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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여인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을 만치 애교를 부린다. 때마침 고학생이 신문을 팔아달라고 가지고 온다. 남자는 두 장을 사가지고 한 장씩 들고 본다. 나는 옆에서 보다가 속으로, ‘퍽도 사이좋은 젊은 부부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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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세상,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일러주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인가. 과연 일남일녀(一男一女)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처럼 굿 앤 파인(좋고 멋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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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비밀이 없고, 울 때 같이 울며 웃을 때 같이 웃고, 어려운 때 서로 도우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내 몸과 같이 아파하며, 그의 말은 은연중 다 듣게 되고 그가 없으면 성사하기 어려우며, 그는 모든 일에 비서역(秘書役)이요, 그는 모든 일에 참고서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것이랴. 간간이 말다툼쯤 하면 어떠하랴. 그것이 여러 번 쌓인 것 중에 싹이 나면 아람답고 귀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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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생활에 세 시기를 지내야만 참 아름답고 귀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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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연애할 때는 양성간(兩性間) 본능적으로 미혹(迷惑)하게 되어 열(熱)과 정(情)도 있거니와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결혼 당시로 약 1년 반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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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가정 내 한 방구석에서 2년쯤 서로 지내면 차차 결점을 알게 된다. 즉 권태증이 생기기 시작된다. 그리하여 미보다도 추, 선보다도 악, 장처(長處)보다도 단처(短處)가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동서양을 물론하고 이혼 통계를 보면 결혼 후 2년, 혹 3년 된 때가 제일 많다. 그 고비만 넘기면 다시 의식적으로 무엇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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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혼 후 2, 3년을 지내고 보면 양인 간에 자녀가 생겨 부득이 떠날 수 없게 되거니와, 사람도 많이 겪어 보고 하면 세상에는 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양 개성을 가진 자가 만나니 맞을 리가 없다. 서로 양보하여 맞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서 그들은 이미 서로 장처 단처를 아는지라 총명한 자는 여기서 상대방의 단처를 버리고 장처를 보장(補長)하기에 힘쓸 것이다. 타성 타인(他性他人)이 만나 이만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끼게 되면 이에 더 행복한 자 어디 있으며, 이에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 또한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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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배우고 체험하고 사량(思量)하여 이 아름다운 생활을 해 볼 생각이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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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潮[대조]』(1930. 9)
【원문】젊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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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부부 [제목]
 
  나혜석(羅蕙錫) [저자]
 
  # 대조 [출처]
 
  1930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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