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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정보부(鄭寶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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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1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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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보부(鄭寶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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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작품의 여주인공과 꿈에서 만나 본 기록을 적어 보라 한다. 이 글을 쓰려고 붓을 들면서 문득 36계란 걸 생각했다. 투기나 횡재나 도박이 본시 꿈이라는 것과 인연이 많은 물건이지만 36계처럼 꿈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드물 것이다. 내가 꿈을 꾸고 해몽을 해 갖고 6계문의 각 판을 마치는 것이니 꿈과 꿈의 해몽이 6계꾼들에게 있어 태반 전부를 차지한다 하여도 그만이다. 그런데 꿈에서 계집을 만나 본 꿈을 6계꾼들은 무엇으로 해몽하였던가 ─ 이제 6계를 작난질하는 이는 조선 안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니 말하자면 옛이야기를 하는 셈이 되었는데 내가 필요 있어서 옛날의 6계 꾼을 4, 5인 찾아다니면서 알아 본 걸로 말해 보면, 그 여자와 꿈에 만나서 한 행동에 따라 다르지만 위선 ‘사부인(四婦人)’이라는 게 있었다. 이것을 각판대로 옮겨 보면, ‘양옥(良玉)’, ‘명주(明珠)’, ‘상초(上招)’, ‘합동(合同)’의 네 개인데, 이것을 어째서 이런 한자로 다 썼는지는 나의 한문이 밭으니 알 길이 없고 6계꾼 역시 외어 낸 문세로 중얼거리기나 했지 어찌된 까닭을 설명할 만한 유식자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설명이란 게 또 상서롭지 못한데다 풍기 문제나 일으킬 성질의 것이니 정초부터 그런 상스러운 소리를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어쨌든 ‘사부인’을 적용하여 행동하지 못할 것은 혹은 ‘길품(吉品)’이나 그 밖에 다른 걸 갖고 폭지를 썼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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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여주인공도 말하자면 계집임에는 틀림이 없겠는데 36계의 문제의 문제를 갖고 보면 소설가가 제가 만든 작중의 계집을 꿈속에서 만난 것은 무엇으로 표시를 해야 할까. 전날 36계를 따라다니던 6계꾼이 농사를 떠난 부랑민이거나 정업(正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난봉꾼이고 보니 소설을 쓸줄 아는 6계꾼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판례’가 서 있지 않을 것이니 6계문에다 맞추어 표시하긴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는데 대체 작중 여주인공이 꿈속에 나타난다면 작자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행동할 것일까. 여주인공을 몹시 학대한 소설가는 아마도 단단히 무장을 해야 할 것이며 지나치리만큼 이상화해 버린 소설가는 그와 연애나 그 이상의 것을 행동할 각오나 준비를 가짐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 청년 소설가들 중에 마작이나 화투나 미두에 취미를 붙인 이가 많음은 알고 있지만 30년 전에 대유행이던 36계를 작난해 보는 소설가는 한 분도 없을 것이니 꿈을 꿨자 해몽에 신이 나서 아침 먹기를 잊는다든가 그런 굉장한 맛은 역시 있을 턱이 없다. 달콤한 꿈에서 깨었거나 원한을 푼다고 칼을 들고 좇아오는 아슬아슬한 대목에서 꿈을 깨었거나 그대로 입맛만 밍밍하고 머리통만 얼찌근 할 따름이겠다. 머리를 털고 일어나서 ‘오늘은 재수가 좋아서 어디 원고료나 좀 생기려나.’ 이 정도가 고작일 것이니 소설가의 꿈이란 36계꾼의 꿈에 비하면 아무 중대성이 없을 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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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내가 썼다는 소설이란 게 단편 소설 10여 편과 중편 하나와 장편이 하나이니 작중에 설정된 여주인공도 그리 신통한 게 있을 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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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내가 쓴 단편 소설의 거개는 작품의 테마 때문에 여자가 주인공이 된 것이 적고 여자가 등장은 되어도 모두가 조연격인데다가 또 기류(妓流)에 속하는 분들뿐이다. 그래 실상인즉 꿈에 만날까 겁이 나는 그러한 계집들뿐이다. 여자를 그리되 커다란 매력을 느끼고 창조하는 성격이든가 그런 것이 아니니 결국 꿈에서 상봉한다면 그것의 ‘모델’이 된 여성들일 게다. 내가 몇 분 사용한 모델은 이름은 서울 내지 평양 기생이지만 실상인즉 시골 그것도 따져서 평안도 어느 읍의 기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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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9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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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하고 평양 어느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계집에 대한 취미를 이야기하는데 효석은 문학 소녀형, 또는 콧날이 세고 이마가 희고 눈이 영채가 흐르는 ‘아이노꼬’형인데 반하여, 나는 성격적 파산에 가까운 기류라 하였다. 생각해 보면 효석의 소설의 어딘가 ‘하이칼라’하고 댄디한 냄새는 결국 씨의 여성에 대한 취미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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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편에 나오는 기생들은 그이 행동이나 정조는 어찌 되었건 그 모델의 거의 내 시골의 기생들이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시골 기생의 종합된 인상이 기초가 된다. 말하자면 금니나 박고 삼푸라치라든가 청어 눈깔처럼 새빨간 보석 반지란 놈을 끼고 후지기누나 인조 파레스나 조셋드나 휘감은 친구들인데 그 중에서 소주잔이나 걸치고는 궂은 비 내리는 날 약사몽혼이나 화무십일홍이나 한 가닥씩 읊는 아가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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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래간만에 고향에라도 가면 ‘긴상 원제 오셋소.’ 하고 인사나 하는 축들인데 주석에서 만나면 ‘나두 한잔 주구려.’ 하는 팔을 걷고 소주잔을 들이키는 그러한 걸녀(傑女)들이다. 물론 내가 저이들을 ‘모델’로 했는지 내가 흥미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참말 지극히 유쾌한 친구들이다. 그러니 이 친구들을 꿈에서 만나면 대체 어떻게 될 것이냐. 늘 하는 푸념이 ‘아마 서울서 긴상 만나면 모르는 척 할 걸’이었으니 꿈에서 만났다고 모르는 척 해 버릴 수도 없고 아무래도 평소의 애호를 보답하는 뜻으로라도 적으나마 주연쯤은 베풀어야 할 것 같다. 개라도 살찐 놈을 한 마리 잡아서 놓고 소주도 35도에 가까운 순수한 놈으로다 두세 되 받아 오고 그 잘 얼리는 수심가든가 어르랑 타령이든가 그리군 아무개 아무개 모두 손잡고 일어서서 내가 잘하는 배뱅이굿 노래도 한바탕 해 내쳐야 될 판이다. 이 연회비를 벌자고 해도 결국 우리 기생 친구들을 또 한번 이용해서 며칠을 주먹거리며 증증대어야 할 터이니 아예 당초에 꿈속에서라도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또 술 먹고 팔자 타령이나 하다가, 이대로 내처 살림이라도 차리자면 커다란 두통거리가 아닌가. 이래서 나는 작중 여주인공과는 기를 쓰고 만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들도 나의 심원(心願)을 알아차리고 꿈속일 망정 나와 만나려 하질 않는다.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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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말고도 중편이 하나 장편이 하나 있는데 중편은 여성 잡지에 실리는 관계상 부득이 신여성 두 분이 주인공이 되었으나 이 양반들은 어떻게도 건방지고 깍정인지, 나 같은 놈하고는 차도 같이 안 먹으러 든다. 다마나 치든가 골프나 하든가, 승마 보팅, 드라이브, 이런 것을 않고 어째 당신은 부엌 구석 같은 목로나, 공설 숙박소 같은 냉면집만, 궁상스리 찾아다니느냐고 야단인 판이니, 이런 분들을 꿈에서 만난다면 종로 네 거리에서 롤라스케이트라도 타자고 덤벼들 터이니 나처럼 심장이 약한 축이 또 뇌빈혈이나 일으키지 않을까 모르겠다. 나보다도 이런 축을 잘 다루는 효석이나 현민에게 혹 모두 싫다면 채만식에게나 소개해서 실컷 속물성에 대한 풍자나 당해보라고 맡겨 버리겠다. 제군에게 미리 당부해 두니 꿈속에서 나의 여주인공들이 찾아가면 과히 푸대접이나 말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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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장편의 여주인공은 제법 나와 오손도손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지난 여름 내가 장편을 쓴다고 양덕(陽德) 석탕지(石湯地) 온천에를 갔는데 실상 가본즉 적막하기 그지없어 개구리 소리를 귀따갑게 들으면서 램프등에 불을 켜고 구상을 하다가 그만 푸시시 잠이 들었다. 그 때에 어떤 예쁜 색시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내가 정보부(鄭寶富)올습네다.’ 쳐다보니 과연 미인이다. 여느 때 이렇게 찾아오면 침을 흘리든가 무어라고 남자의 체면도 돌보지 못하고 프로포즈를 할 판인데, 과시 엄숙한 꿈속인지라 고요히 예절없이 마주앉아 일석 담론(一席談論)을 하였다. 깨고 나서 구상을 고쳐서 정보부를 다른 또 한 분의 여주인공 쌍네 씨와 대척(對蹠)을 삼았으니, 이분의 은공을 잊을 수 없다. 소설에 나와 준 것도 황공한데 이렇게 구상까지 도와 주셨으니 , 정보부야 꿈 아닌 생시에 한번 찾아오려므나.(미〔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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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9년 1월 11일〕
【원문】내가 정보부(鄭寶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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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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