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애연지(愛煙志) ◈
카탈로그   본문  
미상
계용묵
1
애연지(愛煙志)
 
 
2
불란서 희극작가 몰리에르는 그 작품 「돈·주앙」에서 스가나렐의 입을 빌려 담배 예찬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3
"아리스토돌이 무어라고 하던 아니 모든 철학자가 무어라고 떠들던, 담배의 철학에는 미치치 못하리라. 담배야말로 모든 예의 바른 사람들의 정열인 것이다. 담배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도저히 인생의 의의 같은 것을 알 턱이 없다. 담배는 피로한 뇌를 풀어 주고, 부정한 것들을 제거해 줄 뿐이 아니라, 무언 속에서 우리 인간의 마음을 도덕적으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담배에 의해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사의 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끽연자는 어디에 처하게 되는지 ‘자, 한 대 피웁시다.’ 하고 자기의 담배를 꺼내 피우기를 권한다. 요구를 받고 비로소 응 하려는 그런 의향을 가진 실례를 범하는 자는 끽연자 중에는 한 사람도 없다. 요구 이전에 벌써 상대방의 마음을 지찰(知察)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담배는 그것을 피우는 모든 사람에게 훌륭한 도덕심을 길러 주게 된 다. 이것은 틀림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4
우리는 이 극시인의 이런 예찬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가장 신사적인 예의를 지닌 것이 담배요, 또 그런 예의가 우리의 생활 가운데 별로히 없음을 잘 안다. 객대(客待)에 초인사가 담배라는 것은 오늘 와서는 담배를 아니 피우는 사람들까지라도 알고 있게끔 보편화되어 있다.
 
5
담배를 이렇게 권하는 풍속이 언제부터 생기었는지는 알 바이 없으나 혼자만으로는 피우기에 너무도 그 자극적인 신비한 맛이기 때문에 노나서 피우므로 같은 경지에서 신묘한 맛을 느껴 보자는 것이 그 이유일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이러한 담배의 권에 응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 의 온갖 맛 가운데서 제일가는 맛 한 가지는 모르고 지났다고 아니 할 수가 없다.
 
6
담배를 처음으로 피우기 시작한 스페인의 로드리크 더 헤레스라는 사람은 금연의 율칙을 범하고 옥중 신세까지 졌다는 기록이 있거니와 끽연은 건강을 해하는 불필요한 것이니, 연초 재배 대신에 보리나 그런 것을 심어서 기한에 떠는 무리들을 구조해야 된다고 역설을 하며 단연을 주장하던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그 굳센 의지로도 이 담배의 유혹에는 어찌 하는 수가 없었다. 참고 참고 참아 오다가도 누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기만 하면 그 묘한 향기에 그만 비위가 동하여 더는 참을 수 없이, 호주머니로 손 이 들어가 담배를 꺼내 피워 물고야 배겨났다는 것이다.
 
7
일단 이렇게 담배 맛을 한번 알게 용이히 단연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거니와, 이런 신묘한 맛임을 이미 알고야 구태여 단연을 하잘 필요가 어데 있소. 나는 일찍이 끽연에 맛들인 것을 후회는커녕 오히려 큰 행복으로 알고 있다.
 
8
몇 해 전 나는 모지(某誌)에서 담배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9
"맛치고 담배 맛처럼 알뜰한 맛이 세상에는 다시없을 것 같다. 내 생활에 있어 담배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벗이요 또 좋은 스승이다.
 
10
몸이 피로하였을 때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맛이란 실로 애연가가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가까운 벗이 일찍이 이 담배 맛처럼 지 친 심신에 위무를 준 적이 있을까. ‘피존’ 같은 것을 한 대 피워 물고 고요히 앉아서 힘껏 한 목을 들이빨았다가 후우 내여 뿜으면 그 연기와 같이 피로도 일시에 몰려나와 공중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 같은 기분이 정신을 새롭혀 준다."
 
11
이것은 꾸밈없는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12
일찍이 내가 담배를 배우지 못하였던들 이러한 벗 이러한 스승을 이미 못 가졌을 것이 아닌가 하면 종교적인 예의로 담배 이파리를 태워서 신에게 바치기를 잊지 않고 성히 장려를 하여 오늘 내 입에까지 담배 맛을 전해 준 ‘마야 족속’ 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13
모든 것에 있어 진리를 철(撤)하기까지에는 그 뒤에 숨은 고심이 큰 것이어니와 내가 담배 맛을 알기까지의 고심도 결코 헐한 것이 아니었다.
 
14
내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열한 살 적이라고 기억되는데 어른들이 하는 모양 그대로 연기를 힘껏 들이빨아서 흡연을 하였더니 별안간 가슴이 찢어지는 것같이 얼얼하고 속이 메슥메슥해 오며 땅이 팽팽 돌아갔다. 그대로는 그 변소에서 부지해 낼 수가 없어 집으로 들어와 세상 모르고 꼬꾸라져서 한나절 동안을 어쩔 줄을 모르고 뒹굴던 생각이 지금도 선하다.
 
15
이렇게 한 번 혼나 보았건만 그대로 나는 그 후로도 줄곧 계속해서 자꾸만 피워댔다. 근처에서 파는 한 갑에 2전짜리 권연 ‘투구’ 표를 매일같이 한 갑씩 사서는 산으로 들로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다니며 피웠던 것이다.
 
16
내가 담배를 피우는 눈치를 안 동리 사람들은 귀밑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벌써 담배를 피운다고 아이자식 버렸느니 어쨌느니 하고 욕하는 소리를 넌지시 귀로 들으면서도 나는 이 끽연의 율칙을 여전히 범하고 있었다.
 
17
어린 한 시절을 이러구러 맛도 모르고 이렇게 담배와 친히 지내오는 동 안, 저도 모르는 가운데 담배는 정신적인 유일한 벗으로까지 사귀어지고 말았다. 피우는 도수가 점점 늘어나, 하루 스무 개 한 갑짜리로는 늘 부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담배 생각이 날 때 담배가 없으면 아무런 일도 손에 붙지가 않았다.
 
18
원고를 쓸 때가 더욱이 더했다. 담배 없이는 도저히 매듭진 생각을 풀 수가 없었다. 생각이 옹색할 때마다 담배를 피워 물어야 그것은 풀렸다. 연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가 후우 하고 내뿜을 때면 머릿속이 이상히 시원해지며 얼크러졌던 생각도 연기와 같이 풀려 스르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담배의 비치(備置)가 없는 이 나는 언제든지 원고를 못 쓴다. 이것을 나는 유독 나만의 버릇인 줄 알았더니 담배와 친한 사람들은 다 그런 모양이었 다.
 
19
한참 싸움이 치열하던 소위 대동아전쟁의 말기였다. 물자난은 담배까지 그 영향이 미쳐 배급 이외에는 담배를 얻어 살 수가 없는 시절이었다. 하룻밤은 그때도 역시 나는 원고를 쓰노라고 열두시를 넘기고 새로 한시가 가깝도록 책상머리에 꾸부리고 앉아서 펜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그 근처에 살던 비석(飛石)형이 대문을 치기에 나가 보았더니 담배가 없어 원고를 못 쓰겠 다고 담배 있으면 몇 개비 좀 달라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다 자고 있을 이 깊은 밤에 찾아와서 걸은 대문까지 칠 것일까? 애연자가 아니고는 실로 이 심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20
역시 이 무렵이었다. 모 사건으로 당시 나는 경기도 경찰부 유치장에 한 1개월 동안 갇혀 있던 일이 있었다. 이때 이 속에서 간절하던 담배 생각이 란 잊을 수가 없다. 밥보다도 먼저 생각키는 것이 담배였다. 이런 것을 며 칠 동안을 굶고 있으려니 정신이 흐리고 입이 마르고 도무지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유치장을 벗어나는 날은 나서는 그 자리로 우선 담배를 사서 피워야겠다고 그저 담배만에만 정신이 오르고 있는데 하루는 같은 방에 있는 친구가 관식(官食)들이는 사람을 끼고 벤또 속에다가 담배 한 개를 박아 들여왔다. 그래 그 친구는 여기에 불을 붙여 가지고는 그 유치장 십여 인에게 모조리 돌아가며 한 목 음식의 턱을 내었다. 이 사람들은 이 안에서 담배 피는 법을 다들 알고 있었다.
 
21
연기가 복도로 나가 간수의 눈에 띄는 날이면 경을 치는 판이다. 그 한목 음식 돌려 빠는 것을 똥통 문을 열고 그 안에다 머리를 들여박고 연기를 내어 뿜는 것이었다. 나도 그 담배가 내 차례로 돌아오자 그들이 하는 대로 똥통 구멍에다 머리를 쳐박고 빨아내었다.
 
22
이것을 본 목사(다만 이분만이 담배를 안 피웠다.) 한 분이 나를 쳐다보더니
 
23
"여보, 계선생 그 담배 그렇게까지 해서 안 피우군 살 수 없소?"
 
24
하고 웃는다. 절도나 강도도 아닌 사상 계통으로 이런 데까지 들어오는 사람이 여기서 담배를 못 참으니 어찌 하느냐는 의미를 포함한 비웃음이었다.
 
25
이 목사는 이 방 안에서 나를 제일 인격자로 알고 있었다. 나는 실로 대 답할 말이 없어서 붉어지는 얼굴을 느끼며 마주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 는 그 후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목사의 조소를 살줄은 알면서도 차마 이 담배 윤끽(輪喫)에만은 참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런 기 회면 남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차지하여 단 한 모금이라도 더 빨려고 이 담배 물주를 교제하기 위하여 내가 먹다 담은 밥을(나는 사식을 먹었기 때문 에 분량이 많아서 늘 남겼다.) 이 담배 물주에게 주어 담배를 먼저 얻을 공작까지 하였던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추하고 더러운 짓 같아 보였으나 담 배가 주는 심신의 위로를 위하면 이렇게라도 아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담배는 나에게 있어 떼랴 뗄 수 없는 심신의 위안제(慰安劑)가 되었다. 내 심장질환으로 술과 담배가 금기인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이 담배만은 떼지 못하는 소위가 실로 여기에 있다.
 
26
해방 직전 고향인 시골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담배를 구하지 못하여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에 마비되는 정신을 위무시킬 길이 없어 혹 길가에 피다 버린 꽁초는 없을까. 이것이라도 주워 피어 보려고 기웃거리며 돌아가 본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 그까짓 애장서(愛藏書) 몇 권 들고 나가 담배와 바꾸어 오긴 예사다.
 
27
이러구러 오늘까지 삼십여 년 동안 피워온 담배가 하루 평균 사십본(四十本)은 잡아야 할 것이니 따져 보면 이 소비량이 무려 십여 만본에 달한다. 이제 이걸 담배 종렬로 더듬어 보면 ‘그레기’ ‘산호(珊瑚)’ ‘투구’ ‘꽃’ ‘백원(百圓)’ ‘조일(朝日)’ ‘단풍(丹楓)’ ‘마코’ ‘은하(銀河)’ ‘가찌도기’ ‘미도리’ ‘해타’ ‘비둘기’ ‘흥아(興亞)’ ‘효(曉)’ ‘목단(牧丹)’ ‘공작(孔雀)’ ‘무궁화(無窮花)’ ‘백두산(白頭山)’ ‘백구(白鷗)’ ‘샛별’ 그리고 일본 것으로 ‘에아쉽’ ‘빳도’ ‘체리’ 중국 것으론 ‘해적(海賊)’ 그리고 영국 것으론 ‘웨스터민스타’ 등이 있고 해방 후 미국 것으로 ‘럭키스트라익’ ‘필립모리스’ 것으로는 ‘탈레이’ ‘올드골드’ ‘쿨’ ‘체스터필드’ 같은 것이 소비의 대상이었다.
 
28
이 가운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비둘기’ ‘백구’ ‘체리’ ‘필립 모리스’ 같은 것으로 여유가 있고 구할 수 있는 한에는 지금도 애용하여 오나 근일(近日)은 ‘공작’ 으로 매일 벗을 삼는다.
 
 
29
〔발표지〕《신천지(新天地)》
【원문】애연지(愛煙志)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수필〕
▪ 분류 : 근/현대 수필
▪ 최근 3개월 조회수 : 5
- 전체 순위 : 6374 위 (4 등급)
- 분류 순위 : 1459 위 / 1821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애연지 [제목]
 
  계용묵(桂鎔默) [저자]
 
  # 신천지 [출처]
 
  수필(隨筆) [분류]
 
◈ 참조
  담배(-)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수필 카탈로그   본문   한글 
◈ 애연지(愛煙志)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2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