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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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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어느 친구 집에 들렸다가 마루 구석에 안기어 놓은 닭을 보고 나는 문득 닭의 그리움을 느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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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백 마리씩이나 닭을 치는 가정에서 자라난 나이었건만 나는 별로 닭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했다. 정한 데 없이 돌아가며 배설을 하고 못 댈 데 없이 돌아가며 주둥이질을 하는 그것이 미워서 닭은 아예 치지 마자고 늘 집안에 건의를 하여 오던 것이, 전쟁 말기에 징용을 피해서 고향으로 내려가 병을 칭탁하고 배겨 있으면서 소적(消寂) 삼아 닭을 치다가 닭의 그 희생적인 정열에 나는 그만 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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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맡아 가지고 치던 닭을 금년엔 내가 맡아 친다고 할머니의 승낙을 얻은 다음, 나는 닭이 안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음력 정월 보름을 넘어 서더니 하루 걸러 알을 낳곤 하던 닭은 알을 뚝 그치고 목줄기 털을 구슬러 세우며 꼴꼴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안기를 기다리던 차이라 반가 워서 나는 알을 주었다. 알을 받은 닭은 그저 그 알이 몸 밖에 내놓일세라 좌우 깃을 폭 느리우고 주동이로 알을 한 알 품안으로 몰아 놓으며 품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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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닭은 모이 한 톨 물 한 모금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고 알을 한번 품은 그대로 옴짝도 않고 이삼 일을 둥지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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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에 상식이 없는 나는 닭이 이렇게도 여러 날을 내려와서 모이를 안 먹는 것이 짐짓 근심스러워서 할머니더러 닭이 알을 품은 후부터는 한 번도 내려와 모이를 안 먹으니 어떻거느냐고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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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머, 아직두 닭 모이를 한 번두 안 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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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고 안는 닭을 가꿀 줄도 모르는 것이 닭을 말아 치겠댄다는 눈치로 놀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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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안는 닭은 모이를 그릇에다가 담아서 둥이 안에 들여놓아 줘야지 내려와서 모이를 먹기 기다리다가는 굶어서 몸이 약해 병들어 죽는다고 어서 모이를 둥지 안에 들여놓아 주라고 하시면서 물레질도 떼시고 일어서 손수 고방으로 내려가 강냉이 바가지를 들어내다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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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면 내려와서 모이를 주워먹고 다시 둥지로 올라가 알을 품고 품고 하려니만 생각하고 있던 나는 할머니의 이 말씀에 짐짓 놀랐다. 보통 때 에는 모이를 찾아 산일지 들일지를 헤아리지 않고 종일을 쏘다니며 살멱을 휘어질 듯이 불려가지고 들어오곤 하던 닭이 알을 품기 위해선 이렇게도 생명조차 돌보지 아니하고 연 이삼 일씩이나 굶어가며 눈이 새빨갛게 불덩이가 되어 그저 모든 정열을 창조에만 맡기는 그 거룩한 정신 덩어리였던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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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하니 안는 짐승은 다 그랬다. 어렸을 때 안는 새를 잡아 가지고 놀던 생각이 난다. 평상시에는 나무 아래로 지나가기만 해도 저를 해할 까 보아 겁을 집어먹고 푸드득푸드득 날아가던 비둘기도 알을 일단 품기 시작만 하면 나무 아래는커녕 그 나무에 올라가 둥지 가까이 접근까지 해도 눈 한 번 깜박하지 아니하고 그저 도록도록 마주 건너다볼 뿐 둥지를 떠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재빠르게 손을 내어 덮치면 흔히 비둘기는 손안에 들어 오곤 했다. 비둘기뿐이 아니라 물닭이도 꾀꼬리도 멀화부리도 이렇게 잡아 가지고 노끈으로 발목을 매어 끌고 다니며 논 일이 있었다. 창조의 정 열엔 사람도 무서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미루어 볼 때 그까짓 굶는 것쯤 문제가 아닐 것이었다. (모이를 안 주면 굶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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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불 아니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아 사흘씩이나 굶은 닭의 그 생명이시가 바쁜 것 같아 할머니가 주시는 강냉이 바가지를 받아 들기가 급하게 둥지 안에다가 들여놓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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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그 굵다란 강냉이 알을 두 알일지 세 알일지그저 주둥이에 쪼여지는 대로 삼켜 넘긴다. 한참이나 이렇게 주워삼키더니 그적엔 목이 메어서 캐엑 하고 학춤을 추며 목을 내두르기에 고무신짝에다가 물을 떠다 또 올려놓아 주었더니 목도 어지간히 말랐던 모양이다. 주둥 이를 연거푸 물에다가 담가선 고개를 들어 삼켜 넘기기 무려 수십차나 반복을 하다 이렇게 고팠던 배를, 이렇게 갈했던 목을 닭은 참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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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닭을 한 번 안겨 본 후부터 저도 모르게 닭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시골과 같이 닭의 주위에서 이 정열 덩어리인 닭과 벗하여 살고 싶은 충동을 닭을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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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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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 *『노인과 닭』(범우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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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용묵(桂鎔默) [저자]
 
  194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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