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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문단 합평회 ◈
◇ 조선문단 합평회 (제4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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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3~8
현진건
1
『조선문단』 합평회 [제4회]
 
2
- 5월 소설창작 총평
 
 
3
評者[평자]
4
梁白華[양백화] 廉想涉[염상섭] 玄憑虛[현빙허]
5
羅稻香[나도향] 方春海[방춘해] 崔曙海[최서해]
 

 
6
필자 최 학 송
 

 
7
도향 : 늦어 가는데 어서 시작하지!
 
8
춘해 : 글쎄, 벌써 4시가 지났는데!
 
9
상섭 :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적어서야 재미있어야지, 활동을 잘하시면 여러분이 오실 텐테!
 
10
빙허 : 그래, 만날 우리만 하니 안된 것 같애!
 
11
춘해 : 글쎄 우리 성의가 부족해서 그런지 모두 오시잖아요. 김기진 씨며 박월탄 씨며 박영희 씨에게도 여러 번 말씀해 보았는데 늘 분주해서 못 오신다구 하시고 김낭운 씨는 오늘 아츰에 최 군이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12
상섭 : 조선일보에도 몇분 계시지요?
 
13
춘해 : 우보(牛步) 씨며 성해(星海) 씨께도 말씀했는데 역시 분주하시대요.
 
14
도향 : 신문사 일이니까 그럴 게야! (잠깐 침묵 ─ 금방 비가 쏟아질 듯이 하늘은 우중충 흐리었다.)
 
15
도향 : 이러구 앉았을 테요? 어서 합시다.
 
16
빙허 : 무엇부터 하시겠는지요? 나는 이번에 다 보지 못하였는데 (그 고운 손으로 머리를 득득 긁는다.)
 
17
도향 : 또 『개벽』부터 하지요.
 
 

 
18
「흙의 세례(洗禮)」(『개벽』 5월호) 星海[성해] 作[작]
 
 
19
백화 : 「흙의 세례」!
 
20
상섭 : 「흙의 세례」는 성해 군이 그 동안 쓴 중 잘 된 듯싶습니다. 이게 너무 주제넘은 말 같지마는 예서부터 비로소 이 사람의 창작의 터가 잡히잖나 하는 생각으로 보았습니다. 터라는 것은 이 사람의 경향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사람의 기교적 방면도 말한 것이니 즉 내용과 형식을 아울러 하는 말씀입니다. 그건 작들을 보면 구상이라든가 모든 표현이 미성품을 못 벗어났는데 이것으로 보면 잘되고 잘못된 것은 막론하고 성품(成品)이라 할 수 있어요. 다른 분이 또 말씀하세요. 나는 또 있다가 말씀하지요.
 
21
도향 : 글쎄, 말을 해야 할 텐데 급히 보아서 그런지, 돌멩이 삼킨 것 같애요.
 
22
상섭 : 암, 읽은 그 때의 기분관계도 물론 많지요!
 
23
백화 : 작자가 흙의 세례라는 제재를 쓴데 퍽 미숙한 점이 많고 회화가 어찌 부자연스러운지요.
 
24
도향 : 회화 뿐 아니라 표현방법이 전혀 부자연해요.
 
25
백화 : 그 공연히 당치 않은 이론을 늘어놓은 데가 많아서 흥미가 없어지고 거기 따라 문장이 조잡해요.
 
26
도향 : 작품을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 아니고 그야말로 설명적이 됐어요.
 
27
백화 : 이 작품은 성공한 작품이라구 할 수 없어요. 한 마디 더할 것은 「흙의 세례」라는 것이 조선말로 뻑뻑한 것은 고사하고 말이 되지 않았어요. 그냥 ‘흙세례’라 하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28
상섭 : 이 사람이 쓰려는 것은 명호의 내적 생활의 갈등과 모순에서 헤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 작에서 실패했다 하면 갈등과 모순이 준 내적 고통의 흔적을 뚜렷이 보여주지 못한 데 있습니다. ─ 사이 ─ 주인공 자기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가지고 현사회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나아가겠느냐? 그렇잖으면 톨스토이즘의 신봉자를 입내 내이겠느냐는 그 두 가지길 중에 어떤 길로 나가겠느냐고 방황하다가 농촌으로 와서도 아직까지 방황할 뿐 아니라 그 주인공이 고민한 흔적이라는 것이 이것으로서는 매우 박약합니다. 맨끝 부인이 자기 동무가 세간적(世間跡)으로 출세하는 것을 보고 자기네가 이대로 있으면 세상 사람이 아모도 모르게 끝을 마치리라고 한탄할 적에도 명호는 거기 대한 태도를 분명히 표시치 못한 것으로 보면 명호의 고통이 심각하게 못 들어간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그의 사상이 확립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작자의 가진 사상, 또는 이 작을 한 태도가 따라서 어떠한 정도까지 철저하게 투철하게 잡지 못하고 쓴 것이 보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실패라 하면 실패랄 것이외다. 그러면 내가 비판하는 요점은 작자로서 명호의 두 가지 길 가운데 어떠한 한 가지를 편벽되이 동정해 쓰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순전히 객관으로 묘사할 경우에 그 갈등과 모순의 싸움에서 나오는 쓰리고 심각한 그 자취를 보여 달라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표현으로 봐서는 아까 백화의 말씀같이 부부간 대화 같은 것은 어조에 서투른 점이 있으나 적당히 배치한 점에 있어서는 이분의 그 전작에 비해서 낫게 생각합니다.
 
29
백화 : 내가 회화가 부자연하다는 것은 어조만 부자연할 뿐 아니라, 억지로 맨들어낸 회화 같아서 미숙하고 또 그 회화를 통하여 그 두 주인공의 성격을 도모지 볼 수 없고 모순만 드러나는 것을 말함이외다.
 
30
상섭 : 그리구 백화 말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연히 이론을 늘어놓았다고 하는 말씀이 있기에 말씀이지만 만일 그것이 신성한 직업을 유희로 아는데 대해서 부부간 토론을 했다든지, 또는 부부가 전원생활을 시작한데 대해서 피차 의견을 교환했다는 점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라 하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몇 군데 나타나는 그러한 회화나 이론을 보면 이 작의 중심이요 따라서 작자가 말하려는 골자라고 생각합니다.
 
31
백화 : 상섭 군의 지금 말씀과 나의 공연히 이론을 늘어놓았다는 말씀과는 그 의미가 전연히 다릅니다. 즉 나의 말은 본문에 들어가 읽어보면 간단하고 성필(省筆)할 곳이 있는 것을 너무 기다랗게 늘어놓아 독자로 하여금 염증을 일으키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32
(─ 사이 ─ 습습한 바람이 방안을 스치고 간다.)
 
33
상섭 : (춘해와 서해를 건너다보면서) 왜 두 분은 말씀 없소?
 
34
서해 : 쓰는 것이 분주하니 생각할 수도 없구 말할 수도 없어요.
 
35
상섭 : 이리 주시오. 그새 내가 쓸 테니 말씀하세요.
 
36
서해 : 괜찮아요. 춘해, 말씀하시지요.
 
37
춘해 : 작자의 쓴 동기라거나 정신은 퍽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억측인지는 모르지만 이 작을 쓸 때 몹시 고심을 하면서도 잘 맘대로 시원하게 붓끝이 안 나려가 억지로 쓰므로 어색하고 틉틉하고 평범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고 간간히 일본문투가 있는 것 같습디다. 밭갈 때의 정경, 고운 발이 모래알에 찔리는 장면 같은 것은 그림같이 되었고 재미있던데요.
 
 

 
38
「가난한 사람들」(『개벽』 5월호) 李箕永[이기영] 作[작]
 
 
39
상섭 : 이기영이가 누굽니까? (안경을 번쩍거리면서 방안을 돌려본다. 대답하는 이는 한 분도 없고 서로 낯만 쳐다볼 뿐.)
 
40
춘해 : 작금 『개벽』 현상문예에 뽑힌 작인데 참 잘 썼습디다.
 
41
상섭 : 기억이 안 나는걸요!
 
42
백화 : 이 작자로 말하면 처음 뵈는 작자인데 이번에 이 작을 보고 대단히 마음에 친친하게 생각나는 것은 마치 아는 사람의 작품을 대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작 전체에 대해서 다소 성필할 곳이 없지 않으나 대체에 있어서는 이달 발표된 각 잡지 가운데서 그중 좋은 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문장이 평담(平淡)한 중에 자연스럽고 구상과 회화가 표현 방법이 퍽 노련한 맛이 뵈어요. 이 점에 있어서 작자의 이러한 작품을 ─ 이 위에 많이많이 내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번 작품에 대해서는 모순되는 것이 서너 군데 있으나 내가 본 중으로는 처음 작이므로 이번에는 말하고자 아니합니다. 끝에 작자의 건강과 분투를 빕니다.
 
43
춘해 : 너무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에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꼭 집어내어 장점, 단점을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여간 주제넘은 말이지마는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새로 어느 문단과 작자에게 치하합니다. 전반은 지리하고 군더더기 같으며 좀더 간결하게 썼으면 하는 생각이 나며 후반은 총알처럼 독자의 가슴에 박힙니다. 읽고나서 생각하게 하는 작이라고 믿습니다. 작자의 정신, 성력(誠力)이 번개처럼 뻔쩍입니다.
 
44
춘해 : 이제 『개벽』에 실린 것은 끝났으니 『생장』 의 것을 평하시오.(잠깐 침묵, 일동의 책장 뒤지는 소리가 삭삭.)
 
45
도향 : 나는 다른 것은 다 보았지만 『생장』 은 책이 없어서 못 보았어요.
 
46
(문턱에 가 걸터앉아서 흐린 하늘아래 수굿한 나무숲을 내다본다.)
 
 

 
47
「첫날밤」(『생장』 5월호) 金浪雲[김낭운] 作[작]
 
 
48
백화 : ‘첫날밤’이란 제재는 누구든지 한번 써볼 만한 제재여요. 그런데…… (희멀쑥한 양반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꺼내는데 빙허가 맛장구를 친다.)
 
49
빙허 : 그래! ‘첫날밤’이란 말이 묘하게 된 말이야! 아마 일본말에도 ‘첫날 밤’이라고 혼인날 밤을 가리킨 말이 없지?
 
50
도향 : 모두 첫날밤 감상을 쓰였으면 꽤 볼 만할 게야! (진주 같은 눈이 웃음에 파들파들 떤다.)
 
51
상섭 : 제잡담하구 어서 말씀하세요!
 
52
백화 : 그런데 주인공 순희가 빈한한 가정의 희생으로 돈만 알고 색을 탐하는 자에게 백년을 의탁하게 되는 첫날밤에 신랑이 마음에 뜻하던 사람과는 판이하여 우물에 빠져 죽게 된 사실 같은 것은 현대 조선에 있어서 흔히 있는 사실이지마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느끼는 바는 도대체 작의 인상이 아모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평면묘사에 그치고 심각미가 없는 것은 이 작의 결점으로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표현에 무엇이 더 있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53
상섭 : 그리 비판할 내용을 가진 작은 아니지만 하여간 소위 구식결혼의 결함이라든지 결혼정책 ─ 다시 말하면 결혼으로 말미암아 일가족이 물질생활의 보장을 얻겠다는 그러한 불합리를 그린다는 정신인 듯싶습니다. 그러나 첫날밤이라는 제목이 독자에게 주는 기대에 반하여 결국은 평범합니다. 그러나 철두철미 평범했으면 오히려 모르겠지만 끝에 가서 순희가 자살한 데 이르러서는 청천에 벽력 같은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놀래인다는 것보담도 실망케 하였습니다. 이 작자는 「영원한 가책」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걸핏하면 주인공을 죽이는 솜씨가 상당한데 사람의 목숨이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닐 것 같습니다. 순희로 보더라도 나이는 비록 어릴망정 결혼이라는 것, 부부라는 것, 남성미라는 것, 성욕이라는 것,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상당한 개념이 있고 어떠한 욕구의 표준을 가진 만큼 영리하고 판단력이 있는 것이 나타났은즉 비록 절망의 절정에 섰다 하더라도 자기의 운명을 전향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요, 따라서 어떠한 정도까지의 노력이 있다가 죽으면 죽었을 것이외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그만한 지각이 나지 못했다든지 어리고 암매(暗昧)하였달 지경이면 적어도 첫날밤을 꿈같이 흐리머리 지냈을 것이외다. 그러면 작자가 주인공 다시 말하면 15,6세의 소녀라는 것, 또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해가 부족하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54
춘해 : 다른 분 말씀과 같이 순희의 성격 모순, 부자연하다는 것은 동감입니다. 그러나 나이 많은 색마와 어린 순희와의 첫날밤 갈등과 싸움과 분위기는 독자에게 소름이 끼칠 만치 잘 그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통일된 완전한 작이 못된 것은 섭섭하지마는 ‘가난한 부부’의 솜씨가 앞으로 많이 나올 줄 압니다. 문장이 부드럽고 작에 늘 여유가 보이는 것은 낭운 씨의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것을 증명합니다.
 
 

 
55
「옥순이」(『생장』 5월호) 李鍾鳴[이종명] 作[작]
 
 
56
상섭 : 「옥순이」는 단편소설이라는 것보담 소품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당선이란 의미로 상당히 좋은 값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짤막한 속에도 때로 나타나는 사람사람의 기분을 잘 붙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도 서방님 내외와 옥순이의 막연하고 엷은 삼각관계를 보일 듯한 기분을 은연중에 알리운 것이라든지 떠날 때에 서방님과 옥순이가 느낀 인간의 조그마한 비극을 그린 데는 성공했다고 하겠고 따라서 이 작에서 취할 점도 거기에 있고 또 위에 소설이라 함보담도 소품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도 여기 있습니다.
 
57
백화 : 이 작품에 대해서는 상섭 군이 내 생각한 바와 같이 말했으니 더 말할 말씀이 없거니와 다못 당선이라는 의미에 있어서 장래를 기대할 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작중에 옥순의 성격이 분명히 나타난 것을 취합니다.
 
58
춘해 : 문장의 고운 것과 재미있다는 것 외에 아모 다른 할 말은 없습니다. 앞에 더 좋은 작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59
「절교(絶交)」(『생장』 5월호) 곰보 作[작]
 
 
60
상섭 : 이것은(「절교」) 얼마 안 된 거구 해서 물론 볼건데 「곰보」라는 서명이 장난 비슷하여 자기 작을 스스로 경멸히 한 심리가 보여서 불쾌하기로 안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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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 : 이것을 소설이라고 하면 표현방법이 너무 단순합니다. 이러한 표현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사실이 복잡하여짐을 취급하기 어려워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작자가 이러한 방식을 취한 것은 대단히 불만입니다. 「절교」의 주인공이 너무 평소에 친하게 지낸 만큼 다만 이만 사실을 가지고 절교를 한다 할 것 같으면 거기에 더 무슨 갈등이라든가 경로에 무엇이 있었더면 휠씬 독자에게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있어서 먼저 표현이 너무 단순하였기 때문에 그리 좋은 작이라고는 못 하겠습니다.
 
62
춘해 : 작자가 한 흥미에 끌려서 쓴 것 같습니다. 그만치 흥미를 가지고 본 것은 사실입니다. 좀 더 힘있게 쓰면 좋은 작이 나올 줄 압니다.
 
 

 
63
「계집 하인」(『조선문단』 5월호) 稻香[도향] 作[작]
 
 
64
춘해 : 전부 회화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써 나려간 작자의 수완에 감복합니다.
 
65
백화 : 그래요. 도향이 회화는 재미있게 써요.
 
66
빙허 : 회화에 대한 것은 동감입니다.
 
67
백화 : 「계집 하인」에 대해서는 처음에 봐 나려가다가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좀 의외의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엔고 하니 계집 하인을 구해 드릴 때에 남주인이 자기 안해의 말을 얼마큼 어기고 김 주사집 하인을 데려오고자 주장하는데 대해서 여주인공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양천집을 데려온 데 대해서 남주인공이 비록 불만은 느꼈으나 처음 주장하던 태도와는 조금 모순이 되는 점이 없잖습니다. 즉 말하자면 주인공이 무슨 야심으로는 그랬는지 모르나 처음. 주장하던 그것은 어디로 흐리머리해버린 것부터 아모리 처음에 유희로 했다 할지라도 너무 남주인공의 성격이 불분명하고 끝에 가서 그렇게 마치지 말고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었더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작자가 처음부터 써 나아가던 필로가 중간에 돌연히 변한 듯한 감이 있습니다. 이것이 읽고 나서 의외로 생각난다는 점이외다.
 
68
빙허 : 백화 말씀도 물론 일리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다 읽고서 느낀 것은 백화와 다른데 맨 처음에 끄집어내기를 사내가 계집 좋아하는 색골로 내기 때문에 반반한 점순 어멈을 데려오려고 남주인공이 말할 적에 무슨 딴 생각이 없지 않나 하는 느낌을 독자에게 줍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면 작자는 그 반질반질한 것을 좋아하는 도회인의 성미와 그 황소같이 일 잘 해도 질박한 촌사람을 서로 대조해 본 것인데……그러니 점순어멈 데려올 제도 반반한 것을 좋아하는 도회인의 기질에 지나지 않아요. 도회인의 기질과 향촌의 기질을 어느 점까지 대조는 되기는 됐는 데 내 생각 같아서는 너무 간단하고 미약한 것 같습니다.
 
69
상섭 : 이 작에 대해서 내용에 두 가지 점을 보는데 하나는 주인 부인의 처지로서 그 남편의 성적 생활에 대해서 신뢰치 않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늘 불안과 의혹을 가지는 것이요, 하나는 주인의 처지로 보아서는 아까 빙허 말씀마따나 도회인 ─ 이라는 것보담도 사람의 상정으로 외모를 택하려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가 한 여자의 외모를 택함으로 말미암아서 한 여자의 물질적 생활을 무시하고 희생케 한다는 중대한 결과를 낳는 것, 이 두 가지를 볼 수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사람의 약점인 동시에 깊은 인도적 관념으로서 생활을 지배하여 가지 못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만일 이 작자가 인도주의적 입지에 섰다든지 또는 그 주인공의 그 도덕률이 높았다 할 지경 같으면 혹은 일 잘하는 찌거뱅이의 편이 되었을지도 모르나 그 주인도 역시 보통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쁜 점순어멈을 택하였고 따라서 조그만 갈등이 생기고 눈물이 흐른 것이요. 또 사리의 정사(正邪)를 무시하고 한 사람의 밥그릇을 임의로 좌우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러한 점으로 보아서 가정의 사소한 사건을 붓 든 데서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즉 다만 읽히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게 한다는 점으로써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상과 표현으로 봐서 불만이 있습니다. 즉 기생에게서 온 편지를 뜯지 않은 대로 남편에게 전할 때에 이 작은 부부간 질투 싸움으로 발전되리라고 생각하였더니 편지 일절은 숨어버리고 계집 하인의 싸움으로 변한 것은 잘못된 점인 듯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면 그 편지가 피봉이 뜯겨 있는 것을 남편의 포켓에서 수건과 같이 부인이 꺼냈더면 편지 문제는 게서 끝맺고 말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점은 한 달에 삼원 즉 십일에 일원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셈을 모래알로 세어서 따지도록 양천집이 못생기게 한 것은 지나친 기교올시다. 하므로 날짜를 12,3일이라든지 월급을 30일에 대해서 사원이라든지 해서 계산이 어렵게 했더면 좋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구 끝으로 용어에 관하여는 말의 맛을 알고 썼다 하겠고 유창하게 군말이 없는 것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도향은 미소하면서 눈만 깜빡깜빡 한다.)
 
70
빙허 : 그런 셈하는 일절은 그래, 어떤 점으로 보면 상섭의 말씀도 일리는 있겠지만, 일부러 가장 셈대기 쉬운 숫자도 모래알을 가지고 세리만큼 만든 것이 어떤 점으로 보아 못난 할멈의 질박미를 나타내는데 유효치 않을까 생각합니다.
 
71
백화 : 양천집을 데려와 가지고 범백사가 남주인공의 눈에 걸리니 어떠한 말이 있을 텐데 그것이 없는 것이 안됐어요.
 
72
도향 : 어두우니 불이나 켜지!
 
73
춘해 : 불 켜라구 시킬까?
 
74
(방안에는 황혼 빛이 기어들었다. 저물어 가는 청산에는 비 듣는 소리가 그윽하다. 램프 불이 들어왔다. 일동은 다시 좌석을 고쳤다.)
 
 

 
75
「박돌(朴乭)의 죽음」(『조선문단』 5월호) 曙海[서해] 作[작]
 
 
76
서해 : 내 작품평은 내가 안 쓸 테요. 춘해 군 좀 써요.
 
77
춘해 : 왜?(상글 웃는다.)
 
78
서해 : 글쎄, 나는 안 쓰고 멀찍히 앉아서 들을 테요!
 
79
도향 : 내가 써 줄까? (연필을 들고 책상에 마주 앉았다.)
 
80
서해 : 아니야, 도향 군은 평을 해요.
 
81
춘해 : 그럼 내가 쓰지! (춘해가 붓을 잡았다.)
 
82
도향 : 「박돌의 죽음」은 지난번 「탈출기」에 비하면 좀 못합디다. 첫째 지난번 「탈출기」로 말하면 작자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체험한 것이 되어서 그러하였는지 전번 비평에 말한 바와 같이 조금도 구격이 나지 않더니 이번 것은 작자의 체험이 아니라, 상상으로 쓴 까닭인지 구격이 많은 듯합디다.
 
83
빙허 : 체험 같은 것은 둘째 쳐놓고, 통털어 말하면 처참미와 건실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작자가 아르치바세프에게 사숙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묘사가 그 식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근간의 작품에 대해서 평면묘사가 많다고 비난소리가 높은 이때에 이 묘사로 말하면 평면을 벗어서 입체묘사에 제일보를 떼어놓은 듯한 것이 무엇보담도 반갑습니다.
 
84
백화 : 이 작품에 대해서 이 작자의 작품을 본 이래로 생각나는 것은 읽은 후 묵직한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작자에게 대해서는 실례의 말씀 같지마는 이 작품이 되고 안 된 것은 둘째로 하고 이 작자의 주제가 현대 조선 작가가 취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방면으로 나아가서 거기에 한 특색이 있고 또는 그 작품이 러시아 작품같이 대륙적 기분이 늘 있음은 작자의 이전 환경의 소산인지는 알지 못하겠으나 그 점에 대해서 이 작자께서는 이러한 방면에 성공한 작이 이 다음에 나타날 줄 믿습니다.
 
85
상섭 : 빙허, 백화 두 분의 말씀이 적평이니 더 말할 것이 없지만, 한편 도향의 말씀한 즉 체험이니 체험이 아니니 하신 것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작을 볼 제 느낀 바로서는 당장에 구역질이 나고 인생이란 이렇게도 쓰리고 아픈 것인가? 하며 현대 제도 아래서 호흡하는 우리로서는 면치 못할 일인 줄은 알지만, 다시금 몸서리를 쳤습니다. 즉 그만큼 작에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통털어 지금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류의 고뇌라는 것을 늘 생각하여야 겠지마는 우리 조선인으로서는 또한 조선인의 고뇌를 절실히 체험하고 맛보고서 그것이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또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 ─ 즉 우리 생활의 표준과 신념을 얻는 데에 많은 힘을 써주어야 할 텐데 그 점으로 보아서 이 작자의 장래에 많은 기대가 있는 것을 더욱이 발견하였고 한편으로는 그 전에 작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작품이 하나씩 발표됨을 따라서 위에 빙허, 백화 두 분이 말씀한 거와 같은 소질과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가는 것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86
춘해 : 쓰다가 무슨 말을 하나. 할 말을 다들 하셨으니 더구나 말하기 어려운데. 첫번과 끝은 좀 덜 좋으나 4장부터 클라이맥스인 박돌의 죽음 속에는 진정이 흐르고 독자를 흠뻑 차밍합디다. 정말 함경도 사투리에는 좀 읽기 거북하던데요. 자 ─ 인제부터 서해가 쓰시오.
 
 

 
87
「꿈 묻는 날」(『조선문단』 5월호) 金彈實[김탄실] 作[작]
 
 
88
춘해 : 나는 급히 봐서 그런지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어요.
 
89
도향 : 첫째 제목이 얼핏 보기에는 알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보면 대단히 몽롱한 그야말로 꿈같은 작이어요.
 
90
백화 : 이 작에 대해서는 첫째 문장이 미숙하기 때문에 ─ 즉 일문직역체 같아서 작 전체를 갖다가 몽롱하게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91
상섭 : 이 작품은 내용을 들여다 보기 전에 글로만 보고 느껴지는 것은 작자가 퍽 신경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경질이 있는 사람이 쓰는 글은 머리와 끝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첫째 글을 해석하기 어려워요. 그러므로 이 작이 독자에게 악감을 살 듯싶습니다. 그런데 결국 여기 표현한 것을 겨우 뜯어볼 지경 같으면 주인공이 의중지인(意中之人)이 있어서 꿈을 꾸었는데 해몽을 하러 갔다가 다른 불쾌한 일을 보고서 그대로 돌아왔다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야요. 그러면 무엇을 독자에게 암시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짧은 것이나마 다시 몇 토막 내어서 일기로 적어둔다면 혹 작자로서는 무슨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지요.
 
92
빙허 : 작자는 알겠지만 제삼자는 모를 작이야요. 허허.
 
93
도향 : 하하.
 
94
일동 : 하하하.
 
 

 
95
「서문학자(序文學者)」(『조선문단』 5월호) 任英彬[임영빈] 作[작]
 
 
96
도향 : 쉽게 말하면 자기가 쓰려고 하는 테마는 소위 글 쓴다는 사람을 풍자하려고 한 것인데 내용이라든지 구상이라든지 말하면 그렇게 볼 것이 없게 생각나요.
 
97
빙허 : 「난륜」에 비하면 문장이 세련된 것은 사실이외다. 그런데 그것이 글쓰는 사람에 대한 풍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풍자에 그친다고 할 것 같으면 서문 쓰는 데 일년인가 이태인가 걸렸으니 그도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고 쓰지도 않고 아모 것도 아니면서 일종의 핑게라고 본달 것 같으면 핑게라구 하기에는 그 학자의 양심이 대단히 고상한 줄로 생각합니다. 왜 그런고하니 그만큼 책을 보았는지 말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말하는 것을 보면 크로포트킨이니 뭐니 하는 이름도 아니 그만한 소양이 있는 사람으로 그것을 안 쓰고 참는데 그 사람의 양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풍자로만 돌릴 수 없고 그렇다고 그런 훌륭한 포부가 있었으면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는 대재(大材)의 장성을 기다린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대단히 희미하고 몽롱한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98
백화 : 이 작품을 보고 이 작자를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말고 다른 작품으로 썼다면 좋았을 텐데 이 작의 구상, 필치로 보면 평범하나 그다지 흠은 없은즉 나의 생각 같아서는 이 작은 작자의 한 유희로 쓴 것이랄 수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99
상섭 : 작자가 편벽된 태도를 취한 것이 잘못이에요. 즉 작자가 서문학자에게 대해서 일종의 증오를 느끼면서 썼다는 것이 작자로서는 잘못이 아닐까 합니다. 작자의 선악감이 아모리 강렬할 때라도 늘 공정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합니다. 원래 이 작은 사람의 공통성이라 할 자아자찬벽을 그리려는 것이나 도리어 이 작을 일관한 기분은 소견이 부족한 사람이 남의 결점을 꼬치꼬치 드러내지 못해서 애를 쓰고 또 그렇게 적발함으로써 일종의 감흥을 느끼는 심리를 그린 것 같은데 이러한 사람의 더러운 약점을 볼 적에 서문학자의 과장편과 허영을 미워하는 것 보담도 그 허영과 과장벽을 미워하는 서문학자의 친구들의 심정을 나는 더 미워하고 일보 더 나아가서는 그 서문학자의 친구들과 한편이 되어진 작자의 태도에 불만을 가집니다. 하여간 이 작으로 말하면 성공하였다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연히 지리하게 썼고 또 아까 어느 분은 풍자라고 함보담도 작자가 아는 어떠한 사람에게 대한 불만을 토로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납니다.
 
100
춘해 : 문학연구회에서 한번 낭독하는 것을 듣고는 그후 보지 못하여 자세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재미있는 작이었던 것은 지금껏 기억에 남았습니다.
 
101
서해 : 나는 내 성질이 이상스러워서 그런지 첫째 묘사나 기교를 논하기 전에 그 작자의 소질, 경향 및 그 작자가 표하려는 정신부터 알고 싶습니다.
 
102
상섭 : 물론 그렇겠지요, 오늘날까지는 작자로나 평자로나 피차에 어떠한 ‘레벨’까지 넓은 의미로 그 토대가 완성되지 못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 같고 또 작자와 평자의 경계선이 분명치 못한 관계로 한 평자가 일 작자 혹은 그 이상의 작자에 대해서 감시하고 이해하고 연구한다거나 비판하게까지 못 되고 또한 작자 자신도 자기의 일관한 사상과 경향을 보여 주지 못하는 데에 큰 원인이 있을 듯싶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날 지경 같으면 물론 그렇게 될 것이겠지요. 다시 말하면 그 작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이 자라가는 동안에 발사되고 구현되는 것이니까 물론 작자를 떠나서 작만 만지고 기교 등의 말절(末節)에만 착목(着目)할 것이 아니라, 작자의 소질 경향을 아울러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새 밤은 아홉 시가 가까워졌다. 흐린 밤 비소리 그윽한 회포를 자아낸다.
 
103
〈부기〉 「동경」(韓秉道[한병도] 作[작])과 「상환」(自我靑年[자아청년] 作[작])은 사정으로 인하여 다음 호로 미루었습니다.
 
 
104
(『조선문단』, 1925. 6.)
【원문】조선문단 합평회 (제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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