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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7
박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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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와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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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화의 『인간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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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가 시를 쓰고 그 시집을 낸 것은 나와 처음 만나던 해부터이며 그 후 6, 7년간에 이미 4권의 좋은 시집을 냈다. 참으로 읽기 쉬운 시, 아름다운 시, 정서의 노래 그리고 인간의 향수를 알려주는 그의 여러 작품을 나는 언제나 읽고 남에게 권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와 친하고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다. 그가 시인이 된 것은 물론 그의 어떤 천성에서 기인되는 일이라 할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고난한 현대의 사회나 그 제상이 준 것 같다. 병화는 시에서 언제나 대상과 그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으며 어두운 투영은 항상 병화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바다나 명동이나 가을이나 또는 비오는 포도에 그는 고절된 그의 의식의 상태를 발견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몰래 그 흐름과 감정 또는 마음의 애수를 시라는 형태로서 기록하는 것인데 이것이 맛이 나고 슬프고 공감을 우리에게 주는 데는 그의 재능의 힘이 있는 것 같다. 봉래와 경린은 원래부터 병화를 잘 알고 있지만 간혹 나와 모이면 ‘통속적’, ‘쉽게 쓴다’, ‘감상적’이라고 한다. 나도 이에 동의하고 있는 한 사람이지만 역시 좋은 점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아무나 다 알게 쓰기 위해서는 통속적일 수도 있고 그의 기품과 생활은 그를 쉽게 쓰게 만들지도 모른다. 나는 건전한 그리고 낭만적인 센티멘털이 너무 우리나라 시에 없는 것을 걱정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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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견지에서 병화의 시는 “가랑잎 내리는 오후의 잡초원 같은 내 가슴에”, “인생은 짧고 고독은 길고”, “지구 저쪽 야간열차 속에서 전쟁에 혼자된 여인의 찬 기침소리가 들린다”는 등 참으로 순박한 그리고 건실한 페이소스가 짙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의 마지막 인간에 대한 성실이고 우리가 그의 시를 읽을 때 시에 이중으로 나타나는 그의 인간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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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에서 사교도 하고 연애도 하고 울기도 하고 멋도 내고 그런가 하면 철학자처럼 명상도 하고 아버지처럼 고민도 한다. 이런 것을 조금도 속이거나 가리지 않고 독자에게 터놓은 것이 병화의 자랑이며 그것을 시의 기교나 표현으로 만들어내는 데서는 그가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가는지도 모른다. 「인간 사장(砂場)」, 「남포동」, 「통근버스」와 같은 그의 심변(心邊)의 현상에서 착상한 시는 모두 그 수준에 있어 훌륭한 것이며 아직까지의 시의 사고의 개념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자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며, 나는 병화가 그의 마지막 페이지를 위하여 「사랑이 가기 전에 같은 」시를 쓴 데 대하여 머리를 숙이는 것이 예의가 될 것 같다. 병화는 후기에서 대단히 힘든 말을 했으나 그까짓 소리를 우리는 들을 필요는 없고 그저 심심할 때에 또는 실패나 인생이 외로울 때에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정신적 위안을 주지나 않을까.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시의 어떤 발전 수준을 병화의 시집 『인간고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부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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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195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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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환(朴寅煥) [저자]
 
  조병화(趙炳華) [출처]
 
  1954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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