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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사상(朝鮮史上) 세계적(世界的) 사실(事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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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 1
최남선
1
朝鮮史上[조선사상] 世界的[세계적] 事實[사실]
2
── 久遠[구원]을 帶[대]한 過去[과거] 三丙寅[삼병인]
 
3
[목][차]
 
4
첫째는 大藏經[대장경] 雕板[조판]
 
5
人類[인류] 思想[사상]의 大寶庫[대보고]
6
그 流布[유포] 刊刻[간각]의 略史[약사]
7
世界的[세계적]의 一大[일대] 驚異[경이]
8
人天齊仰[인천제앙]의 大慧炬[대혜거]
 
9
그다음은 訓民正音[훈민정음]
 
10
姑息的[고식적] 制作[제작]인 文字[문자]
11
理想的[이상적] 文字[문자]의 標準[표준]
12
正音[정음]은 文字的[문자적] 結論[결론]
13
民衆[민중]의 文化的[문화적] 解放[해방]
14
正音[정음]은 世宗[세종]의 創作[창작]
15
眞價[진가] 發揮[발휘]는 今後[금후]
 
16
그다음은 丙寅洋擾[병인양요]
 
17
가깝게는 丙寅洋擾[병인양요]
18
朝鮮[조선]과 世界[세계]의 呼應[호응]
19
밀려드는 異國[이국] 文明[문명]
20
傳道史上[전도사상]의 一特例[일특례]
21
그 當時[당시]의 뭇솔리니
22
侵入[침입]에서 擊退[격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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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擾[양요]의 世界的[세계적] 意義[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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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丙寅年[병인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마는, 朝鮮歷史[조선역사]에 들어 있는 世界的[세계적] 價値[가치]를 가진 事實[사실] 중에서, 세 가지까지나 이 丙寅[병인]이란 年號[연호]에 매어 있음도, 재미있는 歲頭[세두]의 一感興材[일감흥재]가 아닐 수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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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大藏經[대장경] 雕板[조판]
 
26
맨 먼저 想起[상기]되는 것은, 八四0[팔사십]년 前[전]인 高麗[고려] 宣宗[선종][삼]년 丙寅[병인]의 〈大藏經[대장경]〉續修[속수][급] 刊行[간행]입니다. 〈大藏經[대장경]〉은 一[일]에 一切經[일체경]이라고도 하여, 佛敎[불교]를 中心[중심]으로 한 印度[인도]·西域[서역]·支那[지나]·朝鮮[조선](後[후]에는 日本[일본]까지) 諸國[제국]의 思想的[사상적] 產物[산물]의 一大[일대] 集成[집성]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人類[인류]의 文化[문화] 중에서 가장 思想的[사상적]인 印度[인도]의 그것이 雪山[설산]과 碧海[벽해]의 사이에서 가장 푼푼스럽게 開敷[개부] 榮華[영화]한 一切[일체]의 成果[성과]를 한 둥우리 속에 담은 것이, 이 貴重[귀중]한 人類[인류]의 세간입니다. 무엇이 끔직하다, 무엇이 보배라 하여도, 人類[인류] 文化[문화]의 最高[최고] 價値[가치]인 思想[사상]의 榮華[영화]를 간직한 〈大藏經[대장경]〉만한 寶庫[보고]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數千年[수천년] 印度[인도]에서 築造[축조]된 것이, 西域[서역]으로부터 支那[지나]를 經[경]하고 朝鮮[조선]에 來[내]하여, 千[천]년 동안 可能[가능]한 온갖 修治[수치]를 더하여 오다가, 다시 二[이]백여 년 동안 高麗人[고려인]의 손에 整理[정리] 完成[완성]된 것이, 이 〈大藏經[대장경]〉이란 人類思想[인류사상]의 最高[최고] 殿堂[전당]이니, 이 殿堂[전당]과 아울러 그 열쇠를 맡아 가진 이가 우리 朝鮮人[조선인]이며, 이 聖職[성직]을 맡게 된 것이 실로 시방부터 十四週甲[십사주갑][전]의 丙寅年[병인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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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類[인류] 思想[사상]의 大寶庫[대보고] 〈大藏經[대장경]〉이라 하면 佛敎[불교]의 것임은 事實[사실]이지마는, 決[결]코 佛敎[불교]만의 것은 아닙니다. 印度[인도]에 있는 一切[일체]의 思泉[사천]이 佛敎[불교]라는 湖水[호수]에 滙渟[회정]되었다가, 東[동]으로 東[동]으로 朝宗[조종]하여 人類[인류]의 思想的[사상적] 太平洋[태평양]이 成立[성립]되었는데, 이 一大海[일대해]를 괴어 가지고 있는 全東方的[전동방적], 아니 東方[동방]을 主[주]로 한 全人類的[전인류적]의 것이 佛敎[불교]라 할 것입니다. 본디 佛敎[불교]는 人類[인류]의 觀念[관념]을 全的[전적]으로 轉換[전환]시키다시피 한, 思想的[사상적] 根本[근본] 改造[개조]·究竟[구경] 革命[혁명]이라 할 性質[성질]을 가진 것이지요마는, 그 契機[계기]는 오직 常樂我淨[상락아정]에 대한 見解[견해]의 特殊[특수] 獨絶[독절]함에 있을 뿐이요, 大要部目[대요부목]은 거의 印度[인도] 在來[재래]의 諸思想[제사상] ──〈吠陀[폐타]〉以來[이래]의 〈梵書[범서]〉〈奧義書〉〈經書[경서]〉내지 그 精華[정화]인 六派哲學[육파철학] 등의 轉進[전진] 醇化[순화]된 것이니까, 그러므로 佛敎[불교]까지의 印度[인도]諸思想[제사상]은 어느 程度[정도]만큼의 痕跡[흔적]을 佛敎[불교]의 內[내]에 遺在[유재]치 아니한 것이 거의 없읍니다. 말하자면 印度[인도]의 思想[사상]이 進[진][우][진]하여, 그 當然[당연]한 歸着點[귀착점]에 간 것이 佛敎[불교]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佛敎[불교]一過後[일과후]의 印度[인도]는, 마치 伯樂[백락]의 지나간 冀野[기야]와 같아서, 思想[사상]으로 採擧[채거]할 만한 것치고, 이 큰 藥籠[약롱]의 中[중]으로 收括[수괄]되지 아니한 것이 하나도 없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大藏經[대장경]〉이란 것은,실로 이 全成果[전성과]를 可能[가능]한 데까지 包容[포용]하게 된 것입니다. 다라고는 못할망정, 없는 것은 없다 할 만큼, 印度[인도] 古思想[고사상] 百科全書[백과전서]의 觀[관]을 가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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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流布[유포] 刊刻[간각]의 略史[약사] 佛陀[불타]는 著述家[저술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佛說[불설]이라는 諸經[제경]도, 다 聞人[문인]의 記誦[기송]을 뒤에 編纂[편찬][우] 記錄[기록]한 것인데, 여기 그 敎團[교단]의 約束[약속]이던 律[율]이란 것과, 敎徒[교도]의 哲學的[철학적] 辨證[변증]이 論[론]이란 것을 合[합]하여, 이른바 三藏[삼장]이란 內容[내용]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이 藏經[장경]은 傳播[전파]의 地理[지리]와 所用[소용]의 文字[문자]로써 二部[이부]에 나누이니, 시방 錫蘭(실론)·緬甸(버어마)·暹羅(타이)·安南(베트남) 等地[등지]로 流通[유통]한 巴利語[파리어] 所記[소기]는 그 南傳[남전]이요, 尼波羅(네팔) 以北[이북] 西藏[서장]·支那[지나]를 中心[중심]으로 하여 蒙古[몽고]·滿洲[만주]·朝鮮[조선]·日本[일본] 諸處[제처]에 流布[유포]된 梵語[범어][급] 그 翻譯語[번역어]의 所記[소기]는 그 北傳[북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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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南傳[남전]은 敎義[교의]도 小乘[소승]에 그치고, 따라서 그 分量[분량][극]히 적음에 反[반]하여, 北傳[북전]은 小乘[소승] 諸書外[제서외]에, 그 엄청난 發展[발전]인 大乘[대승]의 文籍[문적]을 包容[포용]하였으므로, 量[양]도 前者[전자]보다는 十百倍[십백배]의 많음을 이루었읍니다. 當初[당초]에는 梵語[범어][혹] 그 西域語[서역어] 譯本[역본]이던 것을, 後漢[후한] 佛法流通[불법유통] 當時[당시]로부터 漢譯[한역]이 생기기 비롯하여, 唐宋[당송]의 際[제]에 이르기까지 約[약] 千年間[천년간]에 퍽 距多[거다]한 部帙[부질]이 漢文[한문]으로 譯成[역성]되었읍니다. 그러나 卷帙[권질]로써 傳寫[전사]할 뿐이므로 訛誤[와오]의 沿襲[연습]도 많고, 또 不幸[불행]한 者[자]는 부지중 湮滅[연멸] 消失[소실]되는 것도 적지 아니하던 것입니다. 이것이 宋初[송초](太祖[태조] 開寶[개보][사], 西紀[서기] 九七一[구칠일])에 와서야 〈蜀本[촉본]〉의 彫板[조판]을 보게 되고, 爾來[이래] 支那[지나]에서만 무릇 十三[십삼], 四回[사회]의 刊刻[간각]이 생기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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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的[세계적]의 一大[일대] 驚異[경이] 이 初雕本[초조본]인 〈蜀板宋藏[촉판송장]〉은 그 뒤에 곧 高麗[고려]로 傳入[전입]되어 敎徒[교도]의 法勇[법용]을 크게 鼓發[고발]하니, 이것이 法國[법국] 養護[양호]의 願心[원심]을 機緣[기연]으로 하여, 顯宗[현종]의 二[이]년(西紀[서기] 一0一一[일영일일])의 藏經[장경] 雕板[조판]이 되었읍니다. 이 大事業[대사업]은 이후 凡[범] 六七[육칠]년의 長期[장기]를 지내어, 五七0凾五[오칠십함오], 九二四卷[구이사권]의 內容[내용]을 가지게 되니, 蜀板[촉판]에 比[비]하여 近[근] 二割[이할]의 加收[가수]를 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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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만한 程度[정도]의 超越[초월]은 到底[도저]히 高麗人[고려인]의 熾盛[치성]한 弘法願力[홍법원력]을 滿足[만족]시킬 수 없어서, 필경 튼튼한 一代行者[일대행자]를 鐘毓[종육]하여서 世界的[세계적] 一大[일대] 偉業[위업]을 經紀[경기]하게 하니, 무엇이냐 하면, 文宗[문종]의 王子[왕자]로 出家[출가]의 沙門[사문]이 되어, 몸이 親[친]히 異域[이역]을 游歷[유력]한다, 使者[사자]로 널리 四隣[사린]에 訪求[방구]한다 하여, 佛敎[불교] 聖典[성전]의 究極的[구극적] 集成[집성]을 實現[실현]케 한 大覺國師[대각국사] 義天[의천]의 〈大藏[대장]〉完成事業[완성사업]이 그것입니다. 그는 當時[당시]에 있는 世界[세계]를 範圍[범위]로 하여, 當時[당시]까지의 人類[인류] 思想[사상]의 成果[성과]를 人間[인간] 能力[능력]의 究極[구극]까지 彙集[휘집] 壽傳[수전]하려 한 驚嘆[경탄]할 大計劃[대계획]이니, 아마 朝鮮人[조선인]이 먹어본 마음의 最大限[최대한]을 보임일 것입니다. 遼[요]로, 宋[송]으로, 日本[일본]으로 前後[전후] 二0年間[이십년간]에 採訪[채방]한 〈三藏章疏[삼장장소]〉一0一0部[일영일영부] 四七四[사칠사]여 卷[권]은, 그의 偉大[위대]한 心力[심력]과 그 時代[시대]의 豊盛[풍성]한 助緣[조연]으로 말미암아 完整[완정]한 內容[내용]과 精妙[정묘]한 板本[판본]을 갖추게 되었읍니다. 이것이 흔히 〈義天續藏[의천속장]〉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前記[전기] 顯宗[현종] 以來[이래]의 刻藏[각장]을 合[합]하여 佛敎[불교] 있어 온 뒤에 처음 생긴 聖典大全[성전대전], 人類[인류] 있어 온 뒤에 처음 보는 思想[사상]의 大寶庫[대보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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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偉大[위대]한 事業[사업]에 손을 댄 것이 八四0年[팔사십년][전]의 丙寅[병인]입니다. 朝鮮史[조선사]의 中[중]에서 丙寅[병인]이란 年號[연호] 중에서도, 가장 意義[의의] 있게 記憶[기억]될 年條[연조]는 아마 이 해의 丙寅[병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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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天齊仰[인천제앙]의 大慧炬[대혜거] 顯宗[현종]의 〈初刻大藏[초각대장]〉과 義天[의천]의 〈續修全書[속수전서]〉는 不幸[불행]히 火難[화난]을 입어서 다 그 貴重[귀중]한 板子[판자]를 잃고, 뒤에 가서는 印本[인본]의 殘存[잔존]조차 극히 寥寥[요요]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高麗人[고려인]의 世界的[세계적] 價値[가치]의 造成願力[조성원력]은 이 때무에 一層[일층]의 灼熱[작열]을 보이게 되니, 그 高宗[고종] 二三[이삼]년(西紀[서기] 一二三六[일이삼육])으로부터 凡[범] 十五年間[십오년간]의 勞費[노비]로써 完成[완성]한 高麗[고려] 在雕[재조]로, 爾後[이후] 漢文[한문] 藏經[장경]의 絶對的[절대적] 典據[전거]가 된, 海印寺[해인사] 現存[현존] 六三九凾[육삼구함] 六五五七卷[육오오칠권] 十三[십삼]만 面[면]의 彫板[조판]이 그것입니다. 이 在雕本[재조본]으로 하여 〈高麗藏[고려장]〉은 도리어 一大[일대] 飛躍的[비약적] 完整[완정]을 보임이 다행했지마는, 義天[의천]의 〈續藏[속장]〉은 李朝初[이조초]까지도 補修[보수]의 功[공]을 쉬지는 아니하였으나, 필경 完全[완전]한 復興[부흥]을 보지 못하고 衰運[쇠운]에 빠지고 말았음이 아무것보다도 큰 遺憾[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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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偉業[위업] 全部[전부]에 있어서는 一部[일부]라 할 것일망정, 그 願力[원력]의 延[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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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불교] 聖典[성전]의 世界的[세계적] 典據[전거]가 된 〈高麗板大藏經[고려판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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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上[좌상]) 〈根本薩婆多部律攝[근본살바다부율섭]〉은 顯宗朝初[현종조초] 雕本[조본]의 樣子[양자]. (中央[중앙]) 〈一切經音義[일체경음의]〉는 高宗朝[고종조] 再雕本[재조본]의 樣子[양자]이니, 〈一切經音義[일체경음의]〉는 宋[송]·元[원] 以來[이래] 中國[중국]·日本[일본]에 失傳[실전]되었던 것이 〈麗藏[여장]〉에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다시 世間[세간]에 傳[전]하게 된 佛敎學上[불교학상]의 貴重[귀중]한 文籍[문적]. (右下[우하]) 〈大集太虛空藏菩薩所問經[대집태허공장보살소문경]〉의 小揷圖[소삽도]는 그 年號[연호][급] 雕造[조조]의 後記[후기]를 示[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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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들어갈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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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海印藏[해인장]〉이 依然[의연]히 佛敎[불교] 最高[최고]의 淵叢[연총]으로 大光[대광]을 宇宙[우주]에 드리워 있고, 또 〈續藏[속장]〉의 逸本[일본]도 近年[근년]에 연방 發見[발견]되어, 그 圓妙[원묘]한 心法[심법]과 周到[주도]한 功力[공력]이 一大[일대] 驚嘆[경탄]·一大[일대] 感激[감격]을 자아내니, 大覺國師[대각국사]의 偉大[위대]가 이렇게 實體的[실체적]으로 朝鮮[조선][급] 朝鮮人[조선인]에게 永遠[영원]히 薰被[훈피]함을 기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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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訓民正音[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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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覺國師[대각국사]의 〈大藏經[대장경]〉續修[속수]에 着手[착수]하던 해로부터 六週甲[육주갑]의 後[후]요, 시방부터 八週甲[팔주갑]의 前[전]인, 李朝[이조] 世宗[세종] 二八[이팔]년 丙寅[병인](西紀[서기] 一四四六[일사사육])에는, 또 한번 世界[세계]를 뒤덮을 만한 一大[일대] 創造[창조]의 빛이 朝鮮[조선]에서 發[발]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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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人[조선인]의 創造的[창조적] 能力[능력]이 얼마나 끔직한 것을, 아무 것보다 잘 證明[증명]하는 朝鮮國字[조선국자] 「訓民正音[훈민정음]」의 完成[완성]이 그것입니다. 〈大藏經[대장경]〉의 集成[집성]은 무론 一大[일대] 事業[사업]입니다. 또 무론 人類的[인류적]인 것, 世界的[세계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朝鮮人[조선인]으로의 生活上[생활상]에 있어서는 그 逼切[핍절]한 要緊[요긴]과 深妙[심묘]한 意義[의의]가 오히려 訓民正音[훈민정음]의 比[비]가 아닙니다. 訓民正音[훈민정음]은 朝鮮人[조선인]에게 비로소 超時間[초시간]·超空間[초공간]·超物質[초물질]의 又一眼[우일안]·又一耳[우일이]·又一口舌[우일구설]을 주어, 그의 意思[의사] 感銘[감명]에 圓通[원통]한 機能[기능]과 久遠[구원]한 生命[생명]이 있게 한 神力[신력]입니다. 訓民正音[훈민정음]은 朝鮮人[조선인]의 感悟[감오]와 經驗[경험]과 信仰[신앙]과, 및 그리로서 나오는 詩[시]와 哲學[철학]과 科學[과학]과 내지 宗敎[종교]로 하여금, 비로소 成典的[성전적]·形體的[형체적] 成長[성장]을 可能[가능]하게 한 것으로, 朝鮮人[조선인]의 生活[생활]에 文學[문학]과 聖典[성전]과 참으로 제것다운 歷史[역사]와 精神[정신]의 記錄[기록]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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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인가, 訓民正音[훈민정음]은 朝鮮人[조선인]의 一致[일치]한 感情[감정]을 一致[일치]한 形式[형식]으로 傳通[전통][우] 堆積[퇴적]하게 하여, 朝鮮人[조선인]의 生活[생활]에 비로소 眞正[진정]한 意味上[의미상]에서의 朝鮮色[조선색]·朝鮮味[조선미]·朝鮮[조선] 情調[정조]를 띠게 한 것입니다. 要[요]하건대 訓民正音[훈민정음]으로 말미암아, 朝鮮心[조선심]의 마지막 凝固[응고](確立[확립])를 보고, 朝鮮人[조선인]의 精神的[정신적] 經絡[경락]이 비로소 强固[강고]한 成立[성립]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朝鮮[조선] 生活[생활]의 上[상]에 아무것보다 重大[중대]한 事件[사건]이 이 訓民正音[훈민정음]의 出生[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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訓民正音[훈민정음]은 진실로 朝鮮人[조선인]에게 홑으로 繪畵的[회화적] 言語[언어] 하나를 더 준것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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姑息的[고식적] 制作[제작]인 文字[문자] 人間[인간] 文字[문자]의 歷史[역사]도 다른 모든 것과 한가지로, 層階的[층계적] 發達[발달]의 一堆積[일퇴적]입니다. 시방 우리가 至上[지상]의 便利[편리]를 누리는 音標[음표] 文字[문자](알파베트)를 얻기까지에는, 진실로 여러 大段落[대단락]과 小試驗[소시험]을 치르지 아니치 못하였읍니다. 音標[음표] 文字[문자]의 앞에는 表意文字[표의문자], 그 앞에는 記憶的[기억적] 記號[기호], 또 그 앞에는 象徵的[상징적] 物質[물질](Symbolic object), 대강 생각하여 이 네 階段[계단]을 넘는 동안에는 數百[수백] 가지의 姑息的[고식적] 制作[제작]이 있었읍니다. 퍽 헤매고 퍽 애썼지마는, 재주가 모자라는 이에게서는, 또 機緣[기연]이 익지 아니하였을 동안에는, 不便[불편]한 대로의 便利[편리]라도 고맙게 알 밖에 없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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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知識[지식]과 眼目[안목]으로 보면, 幼稚[유치]하니 疏略[소략]하니, 당초에 말이 되지 못하는 것도 文字[문자]랍시고, 思想[사상] 傳達[전달]의 有形的[유형적] 手段[수단]이랍시고, 제 存在[존재]의 理由[이유]를 가졌었읍니다. 시방까지도 名色[명색]만의 文字[문자], 未開時代[미개시대]의 遺物[유물]임을 免[면]치 못하는 未備[미비]한 記號[기호]를 그대로 지키고 쓰는 國民[국민]이 적지 아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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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소금을 넣으면 사랑하는 뜻, 胡椒[호초]를 넣으면 미워하는 뜻, 檳榔實[빈랑실]을 넣으면 샘하는 뜻을 表[표]하는 것이 되는 수마트라島[도] 말레이人[인]의 象徵的[상징적] 物質[물질] 같은 것이라든지, 에스키모·멜라네시아人[인] 등의 刻木[각목], 오스티악·니그로人[인] 등의 結繩[결승] 같은 記憶的[기억적] 記號[기호]라든지, 이런 野蠻[야만] 部落[부락]에 行[행]하는 準文字[준문자]라 할 것은 且置[차치]할지라도, 人我[인아]가 共認[공인]하는 高等文字[고등문자]란 것들에도, 아직 理想的[이상적] 完全[완전]을 보인 것이 과연 드뭅니다. 文字[문자]의 電燈[전등]·自動車[자동차]도 그리 일찌거니는 생기지 못하였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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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想的[이상적] 文字[문자]의 標準[표준] 文字[문자]는 言語[언어]의 繪畵[회화]일 것입니다. 그 가장 實用的[실용적], 또 普遍的[보편적]의 記號[기호]일 것입니다. 언제, 어디, 무엇으로든지 言語[언어] 그것을 꼭 그대로 생긴 채로, 나오는 대로, 그리는 것이라야 합니다. 저 漢字[한자]와 같은 것은, 그 形象[형상]의 美術的[미술적]임과 그 含蓄[함축]의 神秘的[신비적]임으로, 文學的[문학적] 效用[효용]의 一方[일방]의 極致[극치]를 보였다 해도 可[가]하지요마는, 그것이 寫形的[사형적]이어서 靈活[영활]한 機能[기능]이 적고, 表意的[표의적]이어서 眩亂[현란]한 弊端[폐단]이 크고, 낱낱이 배우고 배워도 똑똑하지 못한 點[점]에서 到底[도저]히 文字[문자]의 妙諦[묘체]를 全備[전비]한 것이랄 수 없읍니다. 時代[시대]의 進運[진운]은 中國[중국] 本土[본토]에서도 그것을 살아 있는 古物[고물]같이 만들어 감이 실상 當然[당연]한 運命[운명]일 것입니다. 文字[문자] 本來[본래]의 使命[사명]으로 보아서 理想的[이상적]의 文字[문자]는 表音的[표음적]이어야 할지니, 그렇지 아니할진대, 소리면 다 그리고, 말이면 쉬 적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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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人類[인류]는 그 文字上[문자상]의 最高[최고] 要素[요소]를 表音文字[표음문자]로 發表[발표]하기 비롯하여, 오늘날 生命[생명] 있는 文字[문자]는 거의 이 種類[종류]의 것뿐이 되게 하였읍니다. 그중에서도 種種[종종]의 理由[이유]에 基因[기인]한 淘汰[도태]가 行[행]하여, 羅馬式[라마식]의 「알파베트」가 아직 가장 絶大[절대]한 勢力[세력]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그것은 다른 音標[음표] 文字[문자]보다 比較的[비교적] 便利[편리]한 組織[조직]을 가졌기도 했지마는, 그 世界的[세계적] 優越[우월]을 얻은 理由[이유]는 그보다 더 그 使用[사용] 國民[국민]의 國家的[국가적]·文化的[문화적]의 背景[배경]에 말미암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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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音[정음]은 文字的[문자적] 結論[결론] 訓民正音[훈민정음] 곧 朝鮮[조선]의 國文[국문], 아니 朝鮮人[조선인]의 獨創力[독창력]을 기다려 產出[산출]된 人類的[인류적]의 이 文字[문자]는, 실로 文字[문자]에 대한 온갖 要求[요구]를 가장 잘 具現[구현]한, 人類[인류] 文化[문화]의 文字的[문자적] 結論[결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音標[음표]로의 온갖 要件[요건]을 具備[구비]하고, 그 위에 論理的[논리적] 內容[내용]과 美術的[미술적] 外華[외화]까지를 兼[겸]한 文字[문자]는 世界[세계]를 통하여 初有[초유]요, 唯一[유일]인 것입니다. 그 組織[조직]에서는 한껏 合理的[합리적]이요, 그 應用[응용]에서는 아주 包括的[포괄적]이어서, 어디까지든지 科學的[과학적]·人類的[인류적]으로 생긴 唯一[유일]한 文字[문자]가 訓民正音[훈민정음]입니다.
 
50
訓民正音[훈민정음]은 音[음]이란 모든 音[음]을, 다 바르고 쉽게 적을 수 있는 唯一[유일]한 文字[문자]며, 形[형]으로 簡短[간단]할 수 있는 極致[극치]와, 그러면서도 形[형]으로 整美[정미]할 수 있는 可能[가능]을 다한 唯一[유일]한 文字[문자]니, 이는 그것이 原質的[원질적]으로 世界的[세계적]·人類的[인류적]의 究竟文字[구경문자]이게 생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意識[의식]은 당초 訓民正音[훈민정음] 制作者[제작자]의 抱負[포부] 중에 들어 있기도 한 것이니, 말하자면 文字[문자]로의 最高[최고]한 것으로서 人類[인류]의 文化[문화]에 寄與[기여]하리라 함은, 이 制作者[제작자] 本來[본래]의 理想[이상]인데, 訓民正音[훈민정음]은 不足[부족]할 것 없이 이 大理想[대이상]을 實現[실현]한 것입니다.
 
51
訓民正音[훈민정음]의 偉大[위대]한 그 精妙[정묘]한 組織[조직]에만 있는 것 아니라, 또한 그 聖高[성고]한 制作[제작] 動機[동기]에도 있는 것입니다. 世界[세계]에 생겨난 文字[문자]는 많았지요마는, 만든 文字[문자]는 訓民正音[훈민정음]뿐입니다. 더욱 特權階級[특권계급]의 神聖[신성] 表章[표장]으로 發生[발생][우] 發達[발달]된 文字[문자]는 許多[허다]하지요마는, 애초부터 民衆[민중] 文化[문화]의 化導機關[화도기관]으로 用心[용심] 盡力[진력]한 文字[문자]는 오직 訓民正音[훈민정음]이 있을 뿐입니다. 물건도 물건이러니와, 그 물건을 낳은 마음의 아름다움은 더욱 기릴 것, 느낄 것입니다.
 
52
訓民正音[훈민정음]은 그 實用的[실용적] 價値[가치]로든지 精神的[정신적] 敎訓[교훈]으로든지, 世界[세계]의 驚異[경이]일 것, 人類[인류]의 感激[감격]일 것입니다.
 
53
홑으로 朝鮮[조선]의 빛, 朝鮮人[조선인]의 자랑일 것입니다.
 
54
民衆[민중]의 文化的[문화적] 解放[해방] 訓民正音[훈민정음]은 朝鮮[조선] 文化[문화]의 聖人[성인]인 世宗大王[세종대왕]께서, 朝鮮[조선]의 內容[내용]을 充實[충실]하게 함으로써 人類[인류]의 文化[문화]
 
55
AAA 〈訓民正音[훈민정음]〉의 一部[일부]:〈訓民正音[훈민정음]〉의 原本[원본]은 벌써 없어졌으나, 다행히 世宗[세종]의 命撰[명찬]이요, 世祖[세조]의 刊布[간포]에 係[계]한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의 卷頭[권두]에 그 謄本[등본]이 있어 當時[당시]의 面目[면목]을 볼 수 있으니 圖[도]는 그 一部[일부].
 
56
를 翼賛[익찬]하시고, 人類[인류]의 文明[문명]을 光大[광대]함으로써 朝鮮[조선]의 價値[가치]를 增長[증장]하려하신 巍大[외대]한 聖心[성심]의 一發露[일발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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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器都監[악기도감]·慣習都監[관습도감]·簡儀臺[간의대]·欽敬閣[흠경각]·測雨器[측우기]·布帛尺[포백척]과, 한가지 世宗[세종] 大王[대왕]을 앞잡이로 한 朝鮮[조선] 文化[문화]의 黃金時代[황금시대]를 꾸미는 百寶塔[백보탑]의 露珠[노주]인 것이 이 訓民正音[훈민정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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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氏朝鮮[이씨조선]이 들어와서, 朝鮮人[조선인]의 文化[문화] 價値[가치] 造成熱[조성열]이 正[정]이 頂點[정점]에 達[달]하였을 적의 그 尖角[첨각]을 이룬 一大[일대] 產物[산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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訓民正音[훈민정음]의 御製文[어제문]에서 「國之語音[국지어음], 異乎中國[이호중국], 與文字不相流通[여문자불상유통], 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고우민유소욕언이종부득신기정자], 多矣[다의], 予[여], 爲此憫然[위차민연], 新制二十八字[신제이십팔자], 欲使人人易習[욕사인인이습], 便於日用耳[평어일용이]」란 말씀을 볼 적마다, 그 謙遜[겸손]한 語句[어구]에 드러난 民族[민족]의 精神的[정신적] 獨立[독립]에 대한 熾烈[치열]한 誠意[성의]와, 民衆[민중]의 文化的[문화적] 解放[해방]에 대한 深到[심도]한 同情[동정]에 最高[최고]의 感激[감격]을 禁[금]할 이가 누구며, 御旨[어지]를 받아 썼을 〈正音[정음]〉鄭序[정서]에서 「三極之義[삼극지의], 二氣之妙[이기지묘], 莫不該括[막불해괄]……無所用而不備[무소용이불비], 無所往而不達[무소왕이부달]」이란 생각을 할 적마다, 누가 그 宇宙[우주] 賛化[찬화]의 大抱負[대포부]에서 奮勵[분려]를 새로이 하지 아니하겟읍니까?
 
60
訓民正音[훈민정음]을 만들고, 또 가진 國民[국민]이거니 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朝鮮人[조선인]된 다행을 느낌이 우리의 眞情[진정]입니다.
 
61
正音[정음]은 世宗[세종]의 創作[창작] 訓民正音[훈민정음]의 成立[성립]에 대하여, 혹은 그 素材[소재]의 存在[존재]를 생각하는 이가 있읍니다. 그러나 그 直接[직접]의 明證[명증]이 提出[제출]되기까지 世宗[세종]의 創作[창작]임이 흔들릴 것 아닙니다. 도 그 依據[의거]에 대하여도 古篆[고전]일세, 梵字[범자]일세, 巴思八[파사팔]이리라, 「데바나가리」리라 하여 聚訟[취송]이 紛紛[분분]들 하지마는, 近代[근대]의 이렇듯 큰일을 가지고 이렇게 向方[향방]을 잡지 못하도록, 꼭 어디서 나왔달 수 없이 아무 데도 들어맞지 아니함은, 본시 그것이 朝鮮[조선]의 獨創[독창]에서 나온 아무것보다 明白[명백]한 自證[자증]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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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序[정서]〉에부터 「恭惟我殿下[공유아전하], 天縱之聖[천종지성], 制度施爲[제도시위], 超越百王[초월백왕], 正音之作[정음지작], 無所祖述而成於自然[무소조술이성어자연],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而非人爲之私也[기이기지리지무소부재이비인위지사야]」라 한 것을 어째 尋常[심상]히 看過[간과]들 하는지 모릅니다(같은 鄭序[정서]의 「字倣古篆[자방고전]」이라 함은 古篆[고전]을 본떴단 것 아니라, 古篆[고전]에 비스름하였다고 解釋[해석]할 것을 시방까지 잘못들 읽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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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偉大[위대]한 心願[심원]이 언제부터 世宗大王[세종대왕]의 胸中[흉중]에 솟으셨든지, 그 二五[이오]년 癸亥[계해] 十二[십이]월에는 대랴갸 그 實物[실물]의 製成[제성]이 끝나고, 다시 三[삼]년 동안 音韻[음운]의 考證[고증]을 더한 뒤, 시방부터 四八0[사팔십]년 前[전]의 丙寅[병인]에는 正式[정식]의 發表[발표]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미 이 前年[전년]으로부터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는 纂輯[찬집]을 시작하였거니와, 〈正音[정음]〉公布[공포] 以後[이후]에 〈東國正韻[동국정운]〉〈四聲通攷[사성통고]〉등 音韻[음운]의 基礎的[기초적] 著述[저술]로부터, 儒書[유서] 諺解[언해]·佛典[불전] 國譯[국역] 등 外國[외국] 文化[문화]의 同化的[동화적] 努力[노력]과, 〈樂學軌範[악학궤범]〉〈國朝詞章[국조사장]〉등 固有[고유] 文化[문화]의 記錄的[기록적] 蒐集[수집]이 次第[차제]로 行[행]하여, 朝鮮[조선]의 文化[문화]가 〈訓民正音[훈민정음]〉을 中心[중심]으로 하여 그 獨立性[독립성]을 發揮[발휘]하게 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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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價[진가] 發揮[발휘]는 今後[금후]에 그러나 시방까지의 正音[정음]은, 그 素質[소질]의 一部[일부]가 發揮[발휘]되었을 뿐, 그 本義[본의]의 一重[일중]이 闡明[천명]되었을 뿐입니다. 그것이 朝鮮的[조선적] 利用期[이용기]로부터 世界的[세계적] 發揮期[발휘기]로 들어가서, 그 本地[본지]의 風光[풍광]을 全的[전적]으로 顯露[현로]하기는 도리어 今後[금후]에 屬[속]하였읍니다.
 
65
朝鮮[조선]의 正音字[정음자]가 縱書[종서]와 한가지 橫書[횡서]될 機能[기능]을 兩有[양유]하고, 美術的[미술적]과 한가지 速記的[속기적]의 體樣[체양]을 兼存[겸존]한 것은, 人類[인류] 文化[문화]의 進度[진도]를 따라서 연방 變通[변통]되어가면서, 그 使命[사명]을 다하라는 當初[당초]로부터의 約束[약속]으로 생각할 것이요, 또 그렇기 때문에 人類[인류] 究竟[구경]의 文字[문자]이라 하게 되는 所以[소이]입니다.
 
66
人類[인류]의 言語[언어]가 聲音的[성음적]으로 「에스페란토」에서 極頂[극정]에 達[달]하였다는 以上[이상]의 强度[강도]로써, 形象的[형상적]으로는 朝鮮[조선] 正音[정음]에서 頂點[정점]에 達[달]한 줄은, 世界[세계]가 公認[공인], 又[우] 實行[실행]할 날이 決[결]코 멀지 아니한 將來[장래]에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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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도 干支[간지]가 있다 하면, 丙寅年[병인년]이 홑으로 朝鮮人[조선인]에게만 있어서의 記念[기념]할 丙寅年[병인년]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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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丙寅洋擾[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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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는 丙寅洋擾[병인양요] 〈訓民正音[훈민정음]〉發布[발포]의 丙寅[병인]으로부터 다시 七週甲[칠주갑]을 지낸, 시방부터 한 週甲前[주갑전]의 高宗帝[고종제][삼]년 丙寅[병인]에는, 또 한 가지 破天荒[파천황]의 波動[파동]이 朝鮮[조선]의 歷史[역사]를 뒤흔들었으니, 壬辰倭亂[임진왜란]·丙子胡亂[병자호란]과 한가지로, 五[오]백 년간의 三大[삼대] 外寇[외구]로 치는 丙寅洋擾[병인양요]란 것이 그것입니다. 前[전]의 兩者[양자]가 오랜 時日[시일]과 많은 人員[인원]으로써 한 떡벌어진 일임에 比[비]하여, 後者[후자]로 말하면 數百名[수백명]·數一0日間[수일십일간]에 지나지 못하는 장난 같은 일이지마는, 이는 量[양]으로만 하는 말이지, 그 質[질]로써 말하면 後者[후자]가 도리어 前者[전자]에 지나는 것이 있다 할 만함이 事實[사실]입니다. 이것은 뱀에게 물려본 사람이 지렁이 보고도 놀라는 셈으로, 洋亂[양란]이 났다 하매, 前[전] 兩次[양차] 外賊[외적]에게 혼뜬 京城[경성] 人心[인심]이 가마에 물끓 듯하여, 뒤죽박죽을 한 그 일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 丙寅洋擾[병인양요]란 것을 歷史的[역사적]으로 觀察[관찰]하여, 묵은 朝鮮[조선]이 새 世界[세계]하고 처음 接觸[접촉]한다는, 意味[의미] 深重[심중]한 一事件[일사건]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世界[세계]의 自己[자기] 擴張運動[확장운동]이 歐羅巴人[구라파인]을 앞잡이로 하여, 四方[사방]으로 팔을 벌리어 테 밖의 놈은 판 안으로 끌어들이고, 숨어 있는 놈은 들추어 내어서 全的[전적] 世界[세계]를 實現[실현]하려 하여, 특히 佛蘭西人[불란서인]에게 부탁하여, 東方[동방]의 隱君子國[은군자국]인 朝鮮[조선]을 끄집어내게 한 것이 「丙寅洋擾[병인양요]」라고 부르는 이 일입니다.
 
70
朝鮮[조선]과 世界[세계]의 呼應[호응] 朝鮮[조선]과 世界[세계]와의 交涉[교섭]은, 무론 오랜 옛적부터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리도 형상도 없이 하는 文化上[문화상]의 交涉[교섭]뿐이요, 意識的[의식적]으로 약간 聲息[성식]을 通[통]하기는, 唐[당]이란 긴 담 너머로 高句麗[고구려]와 西域[서역]이며, 新羅[신라]와 亞拉比亞[아랍비아]가 못 본 색시의 고운 목소리를, 서로 듣고 지낸 때에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도 中間[중간]에는 한참 막혀서 各在涯角[각재애각]에 彼此[피차]의 存在[존재]조차 잊어버렸다가, 「콜룸부스」와 「바스코 다 가마」와 「캡틴 쿡」의 덕분에, 東洋[동양] 航路[항로]가 터지게까지 되어서, 葡萄牙[포도아]·西班牙[서반아]·和蘭[화란] 등 西歐[서구] 諸國[제국]이 次第[차제]로 半商[반상] 半盜的[반도적] 植民[식민]을 東方[동방]으로 시험하고, 그 뒤를 이어서 佛蘭西[불란서]·英吉利[영길리] 등이 도적의 대적같은 격으로, 侵略的[침략적] 貿易[무역]을 印度[인도]·太平[태평] 兩洋[양양]의 間[간]에 行[행]하게 된, 한 四[사]백 년 전쯤서부터, 日本[일본]이란 防波堤[방파제]와 支那[지나]라는 長城[장성]의 속에 處女[처녀]같이 싸여 있는 東方[동방]의 隱士國[은사국]이 새로이 그네의 五官[오관]에 어른거리게 되었읍니다. 貿易船[무역선]의 先鋒[선봉] 같은 소임을 보는 宣敎師[선교사]의 중에는, 남보다 먼저 이른바 朝鮮[조선]의 發見者[발견자] 노릇을 하겠다는 者[자]가 한둘이 아니어서, 宣祖[선조] 二七[이칠]년 甲午[갑오](西紀[서기] 一五九四[일오구사])에는 「예수이트」敎會[교회]의 宣敎師[선교사] 「그레고리오 다 세스페데스」란 洋人[양인]의 발자국이 朝鮮[조선]의 땅에 박이게 되었읍니다. 이로부터 이른바 荒唐船[황당선]이니, 異樣船[이양선]이니 하는 外國[외국] 船隻[선척]의 記事[기사]가 우리 近世[근세]의 文籍[문적]에 끊이지 아니하게 되었읍니다.
 
71
밀려드는 異國[이국] 文明[문명] 異樣船[이양선]은 異樣[이양]의 사람만을 가지고 오는 것 아니라, 異樣[이양]의 文物[문물] ── 敎法[교법]과 機器[기기]를 껴서 옴이 通例[통례]요, 또 이미 한 번 길이 나매, 海上[해상]말고라도 支那[지나]를 거쳐 오는 陸路[육로]까지 利用[이용]되어서, 海陸[해륙] 兩方[양방]으로 西歐[서구] 近世[근세]의 文物[문물]은 꾀꾀로 이 深閨[심규]같은 秘土[비토]로 流入[유입]하였읍니다.
 
72
支那人[지나인] 가는 곳의 布木商[포목상], 日本人[일본인] 가는 곳의 娼婦[창부]처럼, 西洋人[서양인] 가는 곳의 앞서는 이는 언제든지 宣敎師[선교사]이니까, 朝鮮[조선]에 맨 먼저 들어 온 西洋人[서양인][급] 西洋[서양] 文物[문물]도 基督敎[기독교]의 一派[일파]로, 그때에 흔히 西學[서학], 혹 天主學[천주학]내지 邪學[사학]이라고 하던 羅馬敎[라마교]의 그것이었읍니다. 무론 基督敎[기독교]의 初傳[초전]은 이미 壬亂[임란] 當時[당시]에 있었고, 〈澤堂集[택당집]〉을 據[거]하면, 許筠[허균] 같은 이가 이미 그 敎說[교설]을 唱言[창언]한 것도 같지마는, 이것이 天主學[천주학]이란 一思想[일사상] 勢力[세력]을 形成[형성]하기는 正祖[정조]의 初年[초년]부터이라고 함이 妥當[타당]합니다.
 
73
正祖[정조] 十二[십이]년 戊申[무신](西紀[서기] 一七八八[일칠팔팔]) 春塘臺[춘당대] 進士試[진사시]에 대한 洪樂安[홍낙안]의 對策[대책]에 「今日最可憂者[금일최가우자], 西洋一種邪說[서양일종사설], 將有漸熾之勢[장유점치지세], 甚至於乙巳之春[심지어을사지춘], 昨年之夏[작년지하], 湖右一帶[호우일대], 幾至家誦戶傳[기지가송호전], 眞諺翻騰[진언번등], 下及婦孺[하급부유]」라 하고, 其後[기후]의 〈上左相書[상좌상서]〉에 「今日珍山兩賊[금일진산양적], 爲何許變怪[위하허변괴], 蠅頭十襲[승두십습], 肆然刊印[사연간인], 頒諸京外[반제경외], 其中敎主[기중교주], 苞苴山積[포저산적], 命令惟意[명령유의], 一有通告[일유통고], 急於置郵[급어치우], 又以速歸天堂爲極樂[우이속귀천당위극락], 死於刀刃爲至榮[사어도인위지영]이라 한 것을 보아서, 傳敎[전교] 初期[초기]에 있어서의 그 弘布[홍포]가 어떻게 빠르고 컸음을 짐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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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道史上[전도사상]의 一特例[일특례] 朝鮮[조선]의 基督敎[기독교]는 知識階級[지식계급]으로부터 勢力[세력]을 扶殖[부식]하게 된 것이, 基督敎[기독교] 傳播史上[전파사상]의 一特例[일특례]라 할지니, 그것은 朝鮮[조선]에 본디부터 이러한 새 勢力[세력]을 要求[요구]하는 社會的[사회적] 磁氣[자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階級[계급] 思想[사상]·門閥[문벌] 觀念[관념], 특히 黨論[당론]이후에의 隘陋[애루]한 傾軋[경알]이, 원통한 犧牲[희생]과 有爲[유위]한 落拓者[낙척자]를 무척 많이 만들어 내었는데, 이네의 不平[불평]의 鬱結[울결]에 因[인]하는 厲氣[여기]는, 무엇이든지 導線[도선]을 얻어서 시원한 爆發[폭발]을 보이고야 말려 하였으니, 여기 吸引[흡인]된 것이 본시 이 基督敎[기독교]의 너머로 보이는 西洋[서양]의 富力[부력]·機器力[기기력]이었읍니다.
 
75
支那[지나]에까지 가서 基督敎[기독교] 受洗[수세]의 濫觴[남상]을 지은 李承薰[이승훈]으로부터, 他日殉敎者[타일순교자]의 名錄[명록]에 丁茶山[정다산] 兄弟[형제], 李家煥[이가환] 一族[일족]과 같은 世家[세가]요, 學問家[학문가]요, 또 南人[남인]의 色目[색목]에 붙이는 이들이 많음은, 우리의 推測[추측]을 證明[증명]하여 주는 有力[유력]한 一事實[일사실]입니다. 또 一邊[일변]으로, 여러 世紀間[세기간] 안으론 苛政[가정]의 虎[호]와, 밖으론 惡性[악성]의 狼[랑]에게 겹겹으로 侵攘[침양] 逼迫[핍박]을 당하여, 어디 가서야 이 現實[현실]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할꼬 하여, 황소 나갈 바늘 구멍이라도 찾던 被壓民衆[피압민중]에게, 보기에부터 든든한 새 길이 또한 이 基督敎[기독교]이었읍니다.
 
76
이러구러 基督敎[기독교]는 바로 遼原[요원]의 勢[세]로써 異敎國[이교국]으로의 朝鮮[조선]을 휩쓸려 들었읍니다.
 
77
그 當時[당시]의 뭇솔리니 基督敎[기독교]의 이러한 弘布[홍포]와 浸染[침염]은 當時[당시]의 朝鮮[조선]에 있어서 아무것보다 큰 現實[현실] 反抗[반항]이었읍니다. 그는 善惡[선악] 兩意味[양의미]에서 다 그러한 것이었으니, 同情[동정]할 理由[이유]는 있다 할지라도, 그중에는 반드시 歡迎[환영]할 만한 理由[이유]만이 들어 있지 아니하였읍니다. 思想的[사상적]으로, 社會的[사회적]으로, 또 國民的[국민적]으로, 여기 대한 反動[반동]이 일어남은, 오랜 傳統[전통]을 가진 朝鮮[조선][급] 朝鮮人[조선인]으로의 當然[당연]한 事態[사태]입니다.
 
78
그런데 좋은 機會[기회]와, 그 機會[기회]를 헛되게 아니할 만한 人物[인물]이 아울러 나서, 이 混亂[혼란]한 局面[국면]에 무슨 波紋[파문]이든지 그리지 않지 못할 밖에 없는 形勢[형세]를 보였읍니다. 그것은 哲宗[철종] 昇遐[승하], 高宗[고종] 登極[등극]과 한가지 大院君[대원군]이란 장난꾼의 손에 거침새 없는 細沙[세사] 벌판이 벌어지게 된 그것입니다. 이러한 舞臺[무대]를 맡게 된 大院君[대원군]이란 「액터」는, 反動[반동] 勢力[세력]의 都元帥[도원수]란 소임을 가지고, 아무 거리낌 없는 짓거리를 한바탕 해 제친 것이, 對外的[대외적]으로는 江華島[강화도]를 背景[배경]으로 한 對佛[대불]·對日[대일]의 兩役[양역]과 大同江[대동강]을 背景[배경]으로 한 對米[대미]의 役[역]과, 豆滿江[두만강]을 背景[배경]으로 한 對露[대로] 交涉[교섭]의 一段[일단]들입니다.
 
79
그런데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라 할 법하여도, 앞서서는 佛國[불국], 뒤에는 米國[미국]을 自力[자력]으로 물리쳤다는 일이, 한층 大院君[대원군]의 傲氣[오기]를 增長[증장]케 하고, 이것이 그 이후 朝鮮[조선]의 運命[운명]을 決定[결정]하는 데, 直接[직접][우] 重大[중대]한 影響[영향]을 준 것은 매우 注意[주의]에 値[치]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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侵入[침입]에서 擊退[격퇴]까지 洋擾[양요]의 經過[경과]는 甚[심]히 單純[단순]합니다. 正祖[정조] 以來[이래] 社會的[사회적]으로 滋蔓[자만]한 基督敎[기독교]가, 國家的[국가적]으로 公認[공인]을 얻어보려고 機會[기회]를 엿보던 판에, 高宗[고종][이]년에 露國[노국]이 北邊[북변]을 窺伺[규사]하매, 敎徒[교도] 중의 世家[세가] 子弟[자제]들이 大院君[대원군]에게 進言[진언]하기를, 天主敎[천주교]를 利用[이용]하면 北憂[북우]를 펴이리라 하여, 한때 大院君[대원군]과 佛國[불국] 宣敎師[선교사] 간에 成立[성립]하였던 一種[일종]의 親好[친호] 關係[관계]가 事情[사정]의 推移[추이]로 因[인]하여 缺裂[결렬]이 되고 疏隔[소격]이 甚[심]하여지다가, 그 最後[최후]의 破綻[파탄]이 有名[유명]한 基督敎徒[기독교도]의 虐殺[학살] 事件[사건]으로 發表[발표]되었읍니다. 여기 대한 問責[문책]을 위하여, 丙寅[병인][팔]월 一0[일십]일(西紀[서기] 一八六六[일팔육육]년 九[구]월 十八[십팔]일)에 佛國[불국]의 로즈 提督[제독]이 戰艦[전함] 프리모게 以下[이하] 三隻[삼척]을 거느리고 왔다가, 勢弱[세약]하여 그대로 돌아가고, 九[구]월 五[오]일(陽[양] 一0[일십]월 十三[십삼]일)에 戰艦[전함] 뀨리르 以下[이하] 五隻[오척]을 데리고 다시 永宗島邊[영종도변]에 와서, 九[구]월 七[칠]일에 江華[강화]로 侵入[침입]하였다가, 約[약][일]개월 後[후]인 一0[일십]월 四[사]일에 朝鮮軍[조선군]에게 擊退[격퇴]되고, 그 뒤 佛[불] 本國[본국]에 普佛[보불]의 戰[전]이 비롯하여, 그대로 움치러지고 만 것이 그 經過[경과]의 大略[대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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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擾[양요]의 世界的[세계적] 意義[의의] 丙寅[병인]의 洋擾[양요]는 世界史[세계사]의 全面[전면]에서는 그리 注目[주목]될 事件[사건]일 것 아닙니다. 그러나 朝鮮[조선]과 世界[세계]를 붙들어 매어서 생각할 때에는, 진실로 深重[심중]한 意味[의미]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홑으로 혹 朝鮮[조선], 혹 佛蘭西[불란서]의 一葛藤[일갈등]으로 볼 것 아니라, 실상 世界[세계]가 佛蘭西[불란서]를 심부름꾼으로 하여, 朝鮮[조선]을 세계로 불러내는 일이었읍니다. 世界[세계]의 一重要[일중요]한 內容[내용], 世界[세계] 人文[인문]의 不可缺[불가결]한 一分子[일분자]로, 當然[당연]히 參加[참가]하지 아니치 못할 朝鮮[조선]이 오래 비켜서서 턱없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을 깨워 일으키고, 불러 내세우려 한 것이 이 朝[조]·佛[불]의 우악스러운 接觸[접촉]이요, 이 點[점]에서 이 事件[사건]이 相應[상응]한 世界的[세계적] 意義[의의]까지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洋擾[양요]는 朝鮮史[조선사]로서 보면 朝鮮[조선]이 世界[세계]를 抱擁[포옹]하려 하고, 世界史[세계사]로서 보면 世界[세계]가 朝鮮[조선]을 引出[인출]하려 한, 造化[조화] 大意[대의]의 發現[발현]으로 보아야 歷史[역사]를 참으로 알아보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大勢上[대세상]으로 말하면, 世界[세계]가 그때 朝鮮[조선]을 부른 데 대하여 마땅히 긴 대답하고 얼른 나서야 할 것인데, 朝鮮[조선]은 아직도 그 부름에 應[응]하지 아니한 채로 있는 폭이니, 朝鮮[조선]의 온갖 問題[문제]는 모름지기 이 見地[견지]에 서서 批判[비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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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九二六年[일구이육년] 一月[일월]一日[일일]∼三日[삼일] 東亞日報[동아일보]
【원문】조선사상(朝鮮史上) 세계적(世界的) 사실(事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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