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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11
이효석
1939년 조광 49호에 발표한 이효석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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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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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H를 보내고 나니 올 여름의 손님도 아마 마지막으로 치루어 보낼 듯한 감이 난다. H는 만주를 돌아오는 길에 들린 것이었다. 현직을 버리고 그 방면으로 진출해 보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 작년이었고, 그 전주로 구체적 답사를 떠난 것이 이번 길이라고 한다. 결의를 굳게 하고 세목(細目)의 성산(成算)을 세웠다는 말을 들고 나는 그의 성공을 눈앞에 보는 듯 찬의(贊意)를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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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정치적 두뇌를 가진 그는 시인만으로 시종하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시인인 그를 정치의 혼갈 속에 버리기도 이 또한 아까운 일이다. 차간(此間)의 소식을 가장 잘 아는 것이 그 자신, 그는 그 스스로 적합한 일을 항상 자의적으로 개척해 나간다. 낯설은 땅에서 무슨 일을 맡든 반드시 두각을 나타내게 되리라고 믿으며 반면에 평생 시를 버리지 않을 것도 내게 맹서하다시피 했다. 이번에도 만주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발 2천미터의 관모봉(冠帽峰)을 답파했다고 하면서 거기에서 얻은 열 편이 넘는 시편(詩篇)을 헤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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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을 올랐다 넘어 버리기까지에는 일주일이 넘어 걸린다는 험준한 고산의 실감이 행(行)사이에 넘쳐 온다. 간결한 표현과 맥 치는 기백이 미래의 훌륭한 시인을 약속한다. 순결한 시심(詩心)으로 광야의 영륜(營綸)을 말할 때에는 또한 그 포부가 크고 호흡이 거칠다. 시골에 오래 살고 있는 관계로 도회의 관찰이 처음이어서 순박한 동심에 감각성이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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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나 다방 안의 풍속까지가 그에게는 신기해서 시심의 자극을 받는 모양이었다. 감격하는 양은 방관하기조차 좋은 것이어서 그런 감격의 웅접은 그 스스로 기쁜 것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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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이 없고 영탄을 잊은 인간, 혹은 그렇게 되기를 원하고 가장하는 인간같이 맛없고 빡빡한 것은 없다. 약고 까스러지고 갖은 지혜로 무장하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다 일가견을 가진 척, 제언에는 반드시 반박이 있고 화제에는 반드시 설명을 하며 결코 감동하는 법도 흥분하는 법도 없는 인간─이것이 가장 곤란하며 그 자신 불행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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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나 아랑의 냉정을 귀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반면에 있어서의 인간미의 결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정념이라는 것이 화되는 때도 있으나 칼날의 이성과 수학적 계산만을 가지고는 바른 처단이 어려울 때가 있으며 그런 정확한 척도라는 것은 필경 뜻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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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H는‘거리’의 시상(詩想)을 말하며 도회의 흥미를 탐내다가 이것저것 지난 일에 말머리가 돌았을 때 이야기는 우연히 R의 소식으로 떨어졌다. R은 그의 근향(近鄕) 사람, 그와는 거래가 잦고 사람됨이 비슷해서 과거의 정치객이요, 시인이요──단지 약간의 상위(相違)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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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R을 안 것은 H를 앎으로 인해서였으니 진지한 태도며 열정이며 시인적 소질이 비슷한 두 사람을 같은 범주 속에 적어서 기억하게 된 것이었다. 그날 밤의 H의 이야기는 주로 R의 방랑벽의 주제로 떨어져서 3,4 년 동안 헤어져 있게 된 내게는 반갑고도 진귀한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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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에 대한 나의 흥미의 하나는 그의 용모가 내 눈에는 웬일인지 예수와 흡사하게 어리우는 점이다. 갸름한 면상에 온순한 눈동자와 코와──턱수염만이 검게 드리웠더면 영락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행정(行程)을 본받음인지 젊은 반생은 첩첩한 고난으로 얽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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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얻지 못하므로 방랑하게 되는 것이요, 방랑하는 동안에 방랑벽이 뼈 속에 젖어들어 그것이 온전히 생활의 동인(動因)이 되게 되었다. 내가 알고만 있는 그의 반생의 걸음도 수천 킬로이며 그의 찾은 곳이 수백 개 소가 된다. 곳곳에서 조그만 생활의 자취와 자기 혼자만의 시고(詩槁)를 남기면서 남북으로 유랑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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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 지치면 고향에 돌아가 잠시 쉬다가 마음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또 새 길을 떠나군 하는 것이 그의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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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이야기는 그가 고성(故城)에 가 있다가 장고봉 사건으로 해서 그곳을 탈출해 나온 고비의 전후였다. 고성에서는 조그만 사립학교의 교장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마침 순사부장과 면목이 있었던 까닭에 전과(前過)의 미치는 화도 보지 않고 되려 신용과 후원을 얻어 부락의 기독교도까지를 추출하고 교육의 효과를 높이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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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부장과 알게 된 경위부터가 진묘해서 그 전해 북행차 속에서 동행하게 된 한 식구의 갓난아이를 데리고 주체스럽게 구는 꼴을 보기 딱해 손을 거들어 주고 이럭저럭 친절을 베풀어 주어 간곡한 치사를 받게 되었던 것이 그 후 해를 넘어 R이 고성에 들어갔을 때 그때의 그 차중의 방객(傍客)이 바로 그곳 순사부장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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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의 호의를 사례하기 위해 부장은 R에게 갖은 후의와 친절을 베풀게 되어 R은 그 덕으로 교육의 업무를 순조롭게 수행하게 되었던 것이 해를 못 넘어 작년의 장고봉 사건이 왔다. 비행기의 폭격을 당하자 마을 사람들이 뒤를 이어 피난하는 속에서 R만이 나중까지 학교를 지키며 전란의 동정을 살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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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직실 온돌을 뜯고 몇 길 땅을 파고는 그 땅속 움에서 난을 피했다는 것인데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마을을 벗어난 후까지도 혼자 그곳을 사수했다는 것이 그의 담력이나 용기나를 고사하고 어리석고──혹은 미련하게까지 여겨지는 것이나 생각하면 그의 반생은 그런 일종의 만용의 연쇄였던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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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용기를 장하다 해서 당국은 그를 훈장의 영예로써 표창했다 하며 망설이다 결국 그것을 받은 R은 남은 난민을 이끌고 마을을 벗어나기를 시작했다 한다. 학교를 나설 때 긁어모은 돈이 삼백 원, 그것을 지니고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벌판과 언덕을 넘으면서 난민을 만나는 족족 삼백원으로 구해 주니 그를 구주(救主)로 알고 뒤를 따르는 자 수십 명을 넘어 강을 건너 여러 날만에 고향 근처에 다다라 H의 집을 찾았을 때에는 비 내리는 그믐밤이었었는데 R의 뒤를 따라선 초라한 꼴들이 어둠 속에 길게 뻗쳤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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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못 가 R은 궁금증이 나 그렇게 고생고생 뛰어나온 국경 너머 그 고장이 그리워 만류도 듣지 않고 기어코 단신으로 또 들어갔다는 것이다. 동란은 멈추었으나 산산이 파손된 마을의 재건을 계획하기 시작해온 역시 그 선봉이었다. 백두산에서 흘러 온 뗏목으로 학교와 인가들을 세우게 되니 겨울이 못되어 마을의 생활은 다시 시작되고 학교도 열게 되었다 한다. 난 속에서나 건설에서나 R은 항상 마을에서는 으뜸가는 장부요, 조그만 영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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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못 넘어 다시 학교를 버리고 그곳을 나와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은 두풍(頭風)이 일어서 더 교무를 담당할 수 없으므로 가는 것이나 두풍증 외에 또 한 가지 방랑벽의 준동의 사연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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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고향에 누워 한세월(閑歲月)을 보내며 요양중이라고 하나 몸이 거뿐만 해진다면 다시 일어나 어디든지 또 길을 떠날 것이 확실하다──고 나도 생각하며 말하는 H의 결론도 일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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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의 말로 나는 R을 보는 듯이 눈앞에 그릴 수 있어서 연전의 인상을 되풀이하면서 그의 일신상과 앞으로의 경험을 생각함이 흥있으면서도 눈물겨운 것이었다.
【원문】R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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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조광(朝光) [출처]
 
  1939년 [발표]
 
  수필(隨筆)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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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2년 0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