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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동산의 거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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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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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동산의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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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부] 雜評[잡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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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을 맡기는 맡았으되 걱정이 있다. 지금 한다 하는 잡지 문예란에도 현상소설에도 낙선될 만한 작품이 수없다. 그러니 뽑아서 평하자면, 한 달에 한둘 밖에는 평할 만한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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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노 생각다 못하여 작년 12월과 금년 정월 작품 가운데 내 눈에 뜨인 것은 다― 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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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春[장춘]군의 「運命[운명]」(〈創造[창조]〉12월)은 조선 문단 성립 이래의 가작의 하나이다. 東俊[동준]의 영어 교수의 묘사 같은 것은 참 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동준의 출옥 후와 H와 A의 연애 성립과 옥 안엣 번민은 좀더 똑똑히 그릴 필요가 있다. 또 “사랑은 신성하고 결혼은 인공적이라” 는 동준의 말, 이것은 작자의 사상은 아닌 듯싶다. 써 가는 가운데 가로 쑥 나온 구인 듯싶다. 소설이란 재미있는 사실이 있으니 써 보자 하여서는 안된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으면 그것을 작자의 사상과 혼합하여 동화시켜서, 작자 자신의 사상 섞인 무기에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작품은 참 예술적으로 되었어도 큰 실패가 있다 안할 수 없다. 묘사의 점으로, 한둘의 부족은 있다 하더라도 1919년 소설계에는 한 秀[수]한 소설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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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岳[백악]군의 「自然[자연]의 自覺[자각]」(〈現代[현대]〉1월)은 군 자기도 언제 말한 바와 같이 다메(だめ-못쓸 것)다. 통일이 없고 묘사까지 허투루 되었다. 주인공의 성격도 모르겠고, 또 주인공 P의 심리를 직접으로 묘사하여 내려오던 군은 ‘P는 여사여사하였다 한다’ ‘P는 무엇하는 듯하다’로 어느덧 제3자로 되고, 편지의 ‘자연을 자각하였다’ 하는 그 자연까지 똑똑치 않고, 또, 내용의 조화는커녕 주지까지 어떤 철리를 표현함이련지 어떤 인생관을 표현함이련지 알 수 없다. 인도주의와 이기주의의 범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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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鐘石[유종석] 군의 「妹家[매가]」(〈서광〉12월)는 아직 소설이랄 수는 없지만, 내용 통일되고 조화는 되었다. 좀더 힘써서 습작을 하면― 더 연습하면 향상될 力腕[역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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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人[삼인]」(〈서광〉12월) 은 이전 春園[춘원]군의 ‘소설이란, 부랑자는 자멸하고 선자는 亨福[형복]한다는 논법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억지로 준행한 점이 보인다. 세 학생의 성격과 경우는 괜치않게 되었는데 ―고투로 되기는 되었지만― 아까 쓴 그 같은 형에 끼워서 亦[역] 敗作[패작]이랄 수밖에 없다. 좀더 자유로이 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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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빛 군의 「薔薇花[장미화]」(〈서광〉1월)에는 18,9세기 낭만파의 오모까게(おもかげ-모습)가 보인다. 남편에 대한 안해의 사랑, 남편의 入獄[입옥]과 안해의 슬픔― 조화된 로만틱한 주지다. 月桂[월계]로 연상되는 사랑스러운 정다운 남편, 그렇지만 역시 공상에서 나온 작품이다. 좀더 실제적으로 되어야 할 전체의 묘사가 너무 과장되고 공상적으로 되어 전전세기식이 되고 말았다. 좀더 實寫[실사]로 20세기식으로 썼으면 가작일 터인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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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岳[백악]군의 「同情[동정]의 눈물」과 〈修養[수양]〉의 「春日芳草之夢[춘일방초지몽]」은 완결을 못 보았으니 언제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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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것은 간단하게 다―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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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젠 잡평이나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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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綠星[녹성]〉이라는 잡지가 생겼다. 보니 활동사진 잡지다. 표지에 코발트색으로 예술 잡지라 쓴 아래, 어떤 女優[여우]의 사진이 있기에, 하데나(ハテナ―무언가) 그의 劇[극]서 예술적 논평이라도 있는가 하고 보니 笑哉笑哉[소재소재]활동사진 잡지다. 나루호도(なるほど―과연) 활동사진도 한 예술이지만 활동사진의 筋書[근서]는, 예술이라면……우습다. 편자의 무학으로 인함이나 활동사진 잡지라기는 부끄러워서 그랬느냐? 어떠한 예술의 명의를 남용한 죄는 용서치 못하겠다. 나는 예술가를 대표하여, 〈녹성〉에 예술이라는 이름을 지워서 예술에 무형적 명예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를 該誌[해지]편집자에게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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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身[수신]〉이란 잡지 비슷한 서물이 났다. 거기서 이전 〈唯心[유심]〉에 실렸던 논설을 많이 보았다. 그리하려면 〈유심〉몇 편에서 전재라고 죠토 가이소나모노다가(チヨツト書いそぅな物たが―좀 양해를 얻었어야 할 텐데)그러지 않는 것은 웬일인지. 원래 우리나라 일부 인사 가운데는 그런 염치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 〈每日申報[매일신보]〉의 「人[인]과 獄[옥]」이라든지 〈서광〉의 「金剛山日記[금강산일기]」라든지 모두 남의 것을 전재하고 자기 것처럼 모른 체하고 있다. 좁으러운 공명심으로 인해서냐 무식으로 인해서냐? 어떻든 못쓸 버릇이다. 법망을 뛰는 절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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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서는 별 것이 다― 소설을 쓰련다. 이것을 賀禮[하례]할 만한 현상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 러시아 각성 시대에 참 ‘별것이다―’ 소설을 쓰려던 것을 알 수 있고, 일본도 明治[명치]초에 그런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를 보면 모두, 국민에게 문예란 이 따위냐 하는 경멸의 생각만 나게 하였지 효과는 없었고, 駄小說家[태소설가]는 모두 자멸하고 말았다. 주의하라. 참 작품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3일만 계속하여 원고를 쓰면 체중까지 적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을 그리 쉽게 생각하는 타소설가 모두 자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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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興社[문흥사]에서 원고료를 제정하였다. 왈 ‘원고 1頁[혈]에 50전 이상 1원 이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그만둔 편이 낫지 1매 25전 이하란 놀라지 않고 어떠랴? 최선 제정이니 할 수 없다고 할 사람도 있으렷다. 그렇지만― 문사란 대개 빈한한 사람이다. 한 달에 20頁[혈]을 쓴대도 원고료 20원 내외니 매달 2,3백 원의 생활 비용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문사는 무엇 먹고 살랴! 적어도 1頁[혈] 4원 이상(일본 문사의 원고료의 3분의 2)은 되어야 하고, 그리한 바에는 문사의 글과, 현상 응모 정도의 글을 구별하여야겠다. 그러지 않는 것은 문사를 모욕하는 것이다. 개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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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의 체면을 보존키 위하여서는 문사조합이 긴요하다. 이번 田榮澤[전영택] 군 渡日[도일]시에 서울서 문사조합 조직 운동을 하여보라고 부디 원하였더니 어찌해선가 실패하였다 한다. 똑똑한 기별에 접치 못한고로 여기는 이밖에 더 안 쓰겠지만 문사 제군 중에 문사회의 필요를 感[감]하는 군이 있으면 돈돈(どんどん―그때마다) 창조사로 기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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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것은 다― 썼지만, 더 생각나면 다음 호에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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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창조]〉5호, 19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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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는, 그래도 좀 평할 만한 값이 있는 것만 평하기로 하였다. 모두 다― 평을 하려니까 너무 우스운 것이 많이 생겨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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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新靑年[신청년]〉12월호의 月野生[월야생]의「테니스의 後[후]」를 보았다. 원고지 2매면 끝날 만한 최단편이지만, 첫번에 잘했다 소리가 나온다. 참말로 邪氣[사기]없고 쾌활한 학생의 심리와 생활이 그 몇 글자 안에 똑똑히 나타나 있다. 그 작자는, 이것을, 감상으로 썼는지 소설로 썼는지 평자는 모르지만, 어떻든 무의식중에 나타난 그 예술적 천분을 보지 않을 수 없다. 테니스를 끝낸 뒤에 ‘몸에는 상쾌한 피곤을 감’하면서, 서늘한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서, 한 잔의 비어로 침착시키고, 어두운 뒤에 벗들과 작별하고 자기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밖에 비치는 달을 바라보며 자기 주인집으로 향하는 그 묘사는 극히 간단하지만, 그 가운데 작자의 표현하려던 기분은 다 ― 독자의 마음에 푹푹 들이박혀 독자로서 淸淨界[청정계]에 놀게 하며, 먼―옛적 전설시대에 신선과 바둑을 두게 한다. 이것을 의식하고 썼는지 무의식하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그 작품의 가치로는, 근래 매달 수십 개의 작품? 이 혹은 신문, 혹은 잡지상에 발표되지만, 그 따위는 모두 이 발굽에도 못 미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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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春[장춘] 군의 「生命[생명]의 봄」(본지 제5호)에는 該君[해군]의 작품에서 아직 보지 못한 장엄한 맛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惠善[혜선]의 죽음」이나 「運命[운명]」보다 됨이 좀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작품을 통하여 본 해군은 만문하고 보드라운 예술적 이지와, 온화한 아래 숨은 힘과, 세세한 정서의 주인이었었다. 우리는 해군의 작품을 읽을 때에는 가는 바늘 끝을 맛본다. 군의 갈 길은 역시 여기다. 「생명의 봄」은 물론 전에 발표한 작품보다 모든 묘사의 점이 우월하다. 그래도 군자기의 領分[영분] 밖에 나가는 장엄, 책망하는 이론, 설교에 찬 「생명의 봄」에서는, 우리는― 세세한 예술적 이지를 발견하려던 우리는, 실망에 떨어질 뿐 아니라, 그 작품 안에서 타 영분을 그려 내려는 모순까지 볼 수 있다. 英淳[영순]과 銀淳[은순]의 남매의 사랑의 막에서 도로 잠간 나타나던 그 세세한 이지는 독자에게 오히려 일종의 불안을 준다. 장엄과 온화, 그 두 길 가운데 장차 작자는 어느 길을 갈려는지, 나는 조선 사회를 위하여 해군이 온화로 자기의 갈 길을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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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園[천원] 군의 「버림을 받은 者[자]」(〈서광〉3호)는 칭찬할 만한 점은 없지만 비난할 점이 없는 작품이다. 句句[구구]이 힘만 넣었으면 큰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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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山人[오산인]의 「K先生[선생]을 생각함」(본지 5호)은 참말로 좋은 작품이다. 작자는 이것을 감상이라 하였지만, 참 잘된 작품이다. 다만 하나 아까운 것은, 작자가 이 작품의 가치를 모르고 무의식히 쓴 것이다. 모든 苦勞[고로], 모든 불행이 이만큼 맑게 이만큼 아름답게 되면 쓴 필자도 한 번 그 고생을 통절하게 맛보고 싶다. 또 K에 대한 그 집착, 대―구 이 박자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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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까지 발행된 잡지에 실린 작품은 다― 보았고, 그 가운데서 평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을 고르니까, 이상 4개 밖에는 없다. 〈創造[창조]〉4호·5호, 〈曙光[서광]〉2호·3호, 〈新靑年[신청년]〉12월호, 〈서울〉3호, 〈三光[삼광]〉2호·3호, 〈開拓[개척]〉창간호, 〈新女子[신여자]〉1호·2호, 〈女子時論[여자시론]〉1호·2호, 〈女子界[여자계]〉4호, 〈現代[현대]〉2호·3호, 기타 2,3 잡지에 무려 30여 개의 작품 가운데서, 이것 밖에 평할 만한 작품, 小許[소허]의 가치라도 있는 작품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 문단이 어찌 빈약한지― 또 빈약도 하지만, 어찌 일 푼의 가치 없는 문사, 三文[삼문] 문사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자연히 눈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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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언제나, 이런 빈약한 문사는 없어지고, 그래도 문단다운 문단이 될는지……. 잡평으로 들어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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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창조]〉7호, 1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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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동경] 유학생에게는 나쁜 버릇이 있다. 나도 만 5개년 이상을 동경서 지낸 사람으로 東京[동경] 유학생을 욕하는 것은 좀 불온당한 듯하다. 그러나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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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 입에 쓰다’는 격언을 따라서, 이것을 보고 東京[동경] 유학생(물론 일부분뿐)의 반성을 促[촉]함은 아니다. 아니, 그들은 어떤 권고라도 듣지 않을이만치 그들의 마음에는 교만으로 찼다. 즉 그 나쁜 버릇은 무엇이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 저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다. 그들의 언론을 보면 알거니와(무론 우리 사회에 결점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은 이 결점을 부쩍 과장하여 수십 곱의 거짓말을 가하여 가지고 이렇다 이렇다 책망을 한다. 〈學之光[학지광]〉매호에 이런 글이 없는 호가 없지만, 편하게 최근 호를 취하면, 그 가운데 高某[고모]의 글, 桂某[계모]의 글이 모두 이것이다. 무식한 뇌로 유식한 글을 쓰려면 모두 이따위가 된다. 그들이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된 것은, 소위 ‘유학생’이라는 자존심으로 말미암았겠지만, 특별히 이런 버릇이 있는 사람은 모든 初度[초도] 유학생, 유학생의 베이비인 것은 한 주목할 일이다. 소년기는 즉 위험기이다.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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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인사? 가운데는 우리 〈創造[창조]〉를 刀剪[도전] 아니하였다고 사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다. 그래서 평양에는 百部[백부]만 도전하기로 하였지만 평양 인사? 가 이렇게까지 몰취미하고 답답한 데는 놀랄 수밖에 없다. 보라, 조선의 대도회 가운데 하나이라는 평양에 청년회가 있느냐, 신문이 있느냐? 우리 손으로 만든 은행이 있느냐? 오락장이 있느냐? 아니, 말 아니하겠다. 쓰면 너무 길게 되겠는고로 그만두지만, 마지막에 나는 평양에 대하여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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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어서 썩어지고 내음새 나는 도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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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젓번 일본서 조선 파견할 순사 3천 명을 모집하였는데, 입격시험 문제에 ‘지금 세상에 클레망소라는 말이 유행되니 온 무엇이냐?’라는 것이 있었는데 2천7백9십 인이 모르겠읍니다 대답하였고, 그래도 ‘그 가운데 단 한 사람’이하나 있어서 ‘가성소오다의 속어올시다’ 대답하였단 말이 어떤 신문에 났다. 이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고 제일 신중히 생각하여야 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해답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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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낡은 말이지만 작년 봄에 어떤 목사가 예배당에서 ‘東京[동경]서 발간되는 잡지는 모두 도덕 파괴가 아니면 음탕한 소리뿐이니 도무지 사 보지 말라’고 광고한 일이 있다 한다. 이번 평양서 소규모의 간이잡지 열람소인가 라는 것을 한다는데, ‘〈創造[창조]〉는 악마의 잡지니 보지 말자’는 말이 났다 한다. 작년 어떤 신문 지상에 ‘지금 소설은 옛적 소설과 같이 볼 재미가 없다’는 말을 보았다. 이것이 모두 가성소오다식 대답이 아니냐? 남의 것을 웃기 전에 먼저 우리 것을 고칠 필요가 있다. 아니, 고칠 수는 도저히 없도록 그들의 병은 깊었다. 다만 빨리 그런 이들은 모두 죽어 없어지기를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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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이즈음 성행하는 일은, 소위 전도회니 무슨 회니 하여가지고 음악(이랄지 무어랄지 모를 奏樂[주락]) 몇 가지와 몇 연설을 한 뒤에 기부금을 내라 하는 것이다. 이것뿐으로는 죄를 작성치도 않거니와, 평론할 만한 일도 없으되, 그 기부금 처리 방법에 대하여서는 상당한 죄로써 힐문할 수가 있고, 琴童人[금동인]의 힐책을 한 번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한 번 기부금을 모집할 때마다 金指環[금지환] 10여 켤레와 가난한 사람들의 金指環[금지환], 현금, 記入金[기입금] 합하여 3,4백 원씩은 들어오는데, 그들은 이 돈을 어찌 처리하느냐? 다 그렇다는 바는 아니다. 다 그렇다고 하고 싶기는 하지만 똑똑한 증거가 없으니 용서하되, 그 일부분은 훌륭하게 형법상 詐欺取財[사기취재]의 죄를 구성한 것이 있다. 연전에 봉천서 뇌일혈로 객사한 모 목사의 부인 왈 “아들 똑똑한 것 두면 이렇다. 이번에 전도대에 따라서 모모지를 돌아왔더니 매일 이십 원씩의 분배금과 각처의 환대 접대를 끝없이 받고 왔다. 운운.”(단 그들은 갈 곳마다 그 교회에 전보로 환영을 청함). 그들은 한 푼의 비용도 자기 돈은 안 쓰고 각처 교회에서 路費[노비]까지 얻어 쓰고, 돌아올 때는 각곳에서 얻은 돈을 분배한다. 가난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전도를 위하여 낸 돈을 그들은 어디 쓰느냐? 아직 그들이 불쌍하여 이를 발표 안하였지만(거기는 필자의 벗도 많다) 그냥 그런 버릇을 하므로 종내 발표하노라. 지금 너희들은 저녁 먹을 것이 없어서 모녀 서로 붙들고 눈만 말똥말똥 있는 동포가 몇 백만인지 아느냐? 작년의 집안 壯丁被捉[장정피착]과 겸한 흉년으로 말미암아 동리에도 못 붙고 불쌍한 과부 고아들이 東離西流[동이서류]하여, 혹은 산골짜기에 외로이 굶어 죽고, 혹은 각곳에 구걸하며 부르짖는 그 소리를 너는 못 듣느냐? 이런 때에 그들을 못 구조할 망정, 동포에게 공헌은 못할망정, 유유히 동포의 가난한 돈을 전도라는 가명 아래 따 내어서 자신의 안락을 취하니, 이따위 악행이 어디 있느냐? 동포의 무지함을 좋은 일로 삼아서 그들을 속여서 돈을 따 내고 그 뒤에는 당연하다는 낯으로 머리를 들고 다니니 예서 더한 죄악이 어디 있느냐? 이제도 그냥 고치지 않으면 나는 상당한 수단으로 開戰[개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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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비슷한 書物[서물]인 〈修養[수양]〉이번 호(2집)를 보고 금동인은 一喜一悲[일희일])하였다. 기쁜 것은 〈학지광〉의 桂[계]군의 글을 ‘학지광에서 전재’라고 주를 ―전의 잘못을 뉘우치고― 한 것이다. 크게 찬할 가치있다. 그러나 그 編輯餘言[편집여언] 가운데 ‘금동인 군은 내용을 보지도 않고 도적문이라고만 평하는 것은 우리 문단에 이런 비평가를 가진 것을 부끄러워한다’ 한 구가 있다. 〈수양〉편집자에게 묻노라. 이 한 구는 도적문이 아니라는 뜻인가? 혹은 도적하여서도 내용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뜻이냐? 도적을 안하였다 하면 나는 〈유심〉과 그 밖 몇 잡지를 군들 앞에 군들의 죄를 探詰[탐힐]키 위하여 제공하리라. 뿐만 아니라, 소위 ‘수양소설’이라는 「春日芳草之夢[춘일방초지몽]」인가 하는 것도 일본 철학자 高山[고산]의 작을 못쓰게 번역한 바라고 훌륭한 증거를 들리라. 도적한 글이라도 내용만 좋으면 그만이다, 그 뜻이면 쓰기도 싫으나 몇 마디 써 보자. 여가 군 등― 뿐 아니라 ‘조선 일부 인사’에게 한 말은 ‘글은 남의 것을 빌어도 좋다. 다만 譯[역]이라든 전재라든 주를(이번 것과 같이) 달란’ 말이다. 도적놈도 남의 물건을 꼬도와리(斷リ―양해)없이 가져간 것 밖에 무슨 죄가 있느냐? ‘도적질한 죄는 보지 말고 내용의 좋음만 보라’는 것은 ‘저 사람은 문벌이 좋으니 도적질하여도 좋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군들에게도 우습게 생각되리라. 어떻든 군들과 같은 무학한 자들이 書物[서물]을 간행한다는 것은 참 우리 사회를 위하여 한심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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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할 말이 있지만 지면이 부족되니 來號[내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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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造[창조]〉제7호, 1923.7)
【원문】글동산의 거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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