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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마(艶魔) ◈
◇ 4. 역습(逆襲) ◇
카탈로그   목차 (총 : 15권)     이전 4권 다음
1934.5.16~11
채만식
1
艶 魔[염마]
2
4. 逆 襲[역습]
 
 
3
1
 
 
4
그 웃음은 승리한 사람이 패배(敗北)한 사람에 대하여 웃는 독특한 조롱을 머 금은 것이었었다.
 
5
영호는 분통이 터지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6
"여보 탐정선생님."
 
7
저편에서는 실컷 웃고 나서 이렇게 묻는 것이다.
 
8
"네…… 말씀하오."
 
9
"어제 저녁에 조꼼만 거기서 더 기다리셨으면 좋은 구경을 하셨을 텐데…… 참 안타까우시겄읍니다."
 
10
"천만에."
 
11
영호는 지지 아니하려고 이렇게 대답할밖에
 
12
"그러나 여보 탐정선생."
 
13
"말을 해요."
 
14
"아따 그렇게 성미 급하게 굴지 말어요. …… 다른 것이 아니라 이건 경 곤데 요전 속달우편까지 해서 이번이 두번째요…… 사건에서 손을 끊지 아니하겠소?"
 
15
"우리는 세번째는 경고 없이 행동을 취하오."
 
16
"맘대루 하구려."
 
17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가 있으면 지옥에 있는 사람도 불러내어다 쓰고 우리에게 걸칫거리는 존재면 천당에 있는 사람이라도 생명을 빼앗소."
 
18
"나는 절대로 사건에서 손을 끊지 아니하겠소. 인제 최후에 가서 아까 댁이 웃든 그 웃음을 내가 댁 앞에서 웃어보일 테니 그때 봅시다."
 
19
"응, 그 용기만은 가상하오. 그러면 앞으로는 경고 없이 행동을 취하오."
 
20
영호는 그들에게 잡혀 있을 '그 여자'를 생각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해내는 동안 그들의 위해를 입지 아니하도록 우선 방도를 차리지 아니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을 일러두었다.
 
21
"그렇지만 댁들도 이것은 알아두어야 하오. 나는 경찰의 촉탁을 받은 사람도 아니요, 또 경찰과 협력하는 사람도 아니요, 내 독특한 방법으로 사건의 종말까지도 짓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그와 교환조건으로 어제 저녁에 잽 힌 포로들의 몸에 위해를 가해서는 아니 되오. 만일 위해를 입힐 눈치가 있다면 나는 재래의 절개를 깨트려 경찰과 협력하기를 사양치 아니하고, 그리고 종말에 가서도……"
 
22
"하하하하."
 
23
저편에서는 다시 한번 웃는다.
 
24
"탐정선생님이 인제 보니까 그 색시한테 쫄딱 반하신 모양이군요, 하하 하하…… 그래 그 색시에게 위험을 입히면 경찰을 동원시켜 우리를 붙잡어다가 현저동 백일번지 별장으로 보내겠다는 말하자면 위협이구려? 하하 하하…… 잘 알었소. 그러나 우리는 산 포로가 필요한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러 서는 그 포로의 생명을 빼앗을 필요도 있으니깐 미안하지만 선생님하고 약속은 할 수가 없는걸……"
 
25
"그러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역시 댁들도 맘대로 하구려……"
 
26
"하라고 아니해도 할 테요. 그러나 여보 탐정선생…… 우리 정말 한가지 교환 조건이 있소…… 당신이 쫄딱 반한 그 색시를 잠시 소용이 있으니 소용이 끝난 뒤에 털끝 하나 상하잖고 돌려보내 준다고 약속하면 당신이 이 사건에서 손을 끊겠소?"
 
27
영호는 잠깐 대답하기를 주저하였다.
 
28
그 조건을 승인한다면 물론 탐정으로서 굴욕은 굴욕이다.
 
29
그러나 '그 여자'만은 무사히 구해낼 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30
그러나 그것은 신사와 신사 사이에 할 말이다.
 
31
저편은 사람 죽이기를 담배 한 개 피우기보다 예사로 여기는 흉악한 악당의 무리다.
 
32
그러한 그들에게 어떻게 약속을 하며 그 약속이 이행되기를 바라랴.
 
33
"그건 그리 할 수 없소."
 
34
영호는 이렇게 똑 잘라서 대답을 하였다.
 
35
"그러면 교섭 파열."
 
36
이렇게 한마디 하고 전화 끊는 소리가 댕그랑 울린다.
 
37
영호는 잠깐 동안 수화기를 그대로 대고 있노라니까 교환수가 "낙방?"하고 묻는다.
 
38
그는 교환수에게 지금 이곳에 걸리어든 전화가 어디서 온 것인가 물어보았다.
 
 
39
2
 
 
40
조금 있다가 교환수는 지금 전화는 자동전화에서 온 것이라고 대답한다.
 
41
그러리라고 생각한 것인데 역시 추측이 어그러지지 아니하였다.
 
42
자동전화에서 온 것이라면 더 추궁해도 소용이 없다.
 
43
어느 곳인지 알아가지고 쫓아간댔자 그가 그때까지 그곳에 꾸물거리고 있을 리 없는 것이요, 또 편지에도 지문을 남기지 아니하는 패들이니 자동 전화엔들 지문이 남길 리가 없는 것이다.
 
44
영호는 그 자리에서 제일여관에 묵어 있는 상준이를 전화로 불러내었다.
 
45
아침밥을 재촉하여 먹고 올라오는 길에 집으로 오지 말고 익선동 이러 이러한 집으로 가서 오복이와 교대를 하라. 그리하되 안방 다락 같은 데 숨어있어 가지고 누구든지 들어오거든 잘 보아 두었다가 그의 뒤를 밟아보라.─
 
46
 
47
한 시간 가량 지나서 오복이가 상준이의 트렁크를 들고 돌아왔다.
 
48
지금까지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고 오복이는 수면 부족으로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 보고를 한다.
 
49
"열두시까지만 자게…… 헌데 상준이는?"
 
50
아직 나이 어린 상준인지라 영호는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는 것이다.
 
51
"안방 다락에 자리를 잡고 있읍니다.──내다볼 구멍을 뚫어놓고──한 몫 끼어 활동하는 것이 좋은지 아주 싱글벙글하든데요."
 
52
오복이는 조금 전에 영호가 분통이 터질 뻔한 것도 모르고 저야말로 싱글벙글 웃는다.
 
53
영호도 할 수 없이 고소를 하고 나서 신변이 차차 위험해 올지 모르니, 밤과 또 잠자는 방문을 안으로 잘 닫아걸 것은 물론이요, 낮에도 방심을 하지말라고 주의를 시켰다.
 
54
그러나 그들은 둘이 다 이러한 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55
즉 오복이가 익선동 그 집으로부터 나오기 겨우 삼 분 전의 일이다.
 
56
자가용도 아니요 보통 영업하는 인력거 한 채가 휘장 친 안에 손님을 태우고 예전 측후소 골목으로 해서 그 집 문앞을 지났다.
 
57
휘장 속에서는 긴장된 두 개의 눈이 그 집의 대문이 환히 열리어 있는 것을 보았다.
 
58
인력거는 그대로 그 집 문앞을 지나쳤다.
 
59
인력거는 훨씬 더 가서 근처에서는 그럼직하게 대문이 크고 전화번호 패와 적십자사원 패까지 붙은 집 문앞에 대었다.
 
60
대되 가던 방향과 반대로 앞을 돌리어 오던 방향 즉 익선동 그 집을 앞 휘장의 셀룰로이드로 내어다볼 수 있게 대어놓았다.
 
61
이렇게 인력거는 대어놓았으나 인력거 안에서는 사람이 내리지 아니하였다. 인력거꾼은 타고 온 사람이 무어라고 했는지 보이지 아니하는 곳으로 멀 찍이 비켜섰다.
 
62
누가 보든지 인력거 안에서는 두 개의 눈이 멀찍이 바라보이는 익선동 그 집앞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63
그러자 오복이가 트렁크를 들고 그 집으로부터 나왔다. 휘휘 전호 좌우를 둘러보는 것이 인력거 안에서 빤히 내어다보였다.
 
64
오복이가 안심하고 저편으로 걸어가자 인력거 안에서는 차부를 불렀다.
 
65
"이걸 손에 쥐고──남이 보면 편지를 가지고 심부름 가는 것처럼 말이야 ── 저기 가방을 들고 가는 사람의 뒤를 따러가보아…… 어느 집으로 가는지 그것만 보고 오게."
 
66
인력거 안에서는 종이를 접은 쪽지 하나가 나온다.
 
67
차부는 그것을 받아 들고 오복이의 뒤를 따랐다. 트렁크를 들고 가니 그림자를 놓칠 리가 없다.
 
68
차부는 계동으로 따라 올라왔다. 그는 오복이가 들어가는 영호의 집을 보아 두었다가 한참 후에 그 앞까지 들어와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아니하고 번지까지 알아내었다. 그는 다시 발을 돌이켜 인력거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갔다.
 
 
69
3
 
 
70
차부가 돌아오는 것을 인력거 속에서 보고 있던 사람은 비로소 인력거 밖으로 나선다. 그는 '그 여자'의 아버지 되는 수염 좋은 노인이다.
 
71
"알었나?"
 
72
"네."
 
73
차부는 굽실한다.
 
74
"어데야?"
 
75
"바로 계동 위생소 터에다 새로 집들을 지은 집인뎁쇼. 계동 × × 번지 노 × × 올습니다."
 
76
"문패는?"
 
77
"백 무엇이라고 붙었어와요."
 
78
차부는 그의 한문 지식의 정도가 백자(白字)를 알아보는 데 그쳤던 것이다.
 
79
노인은 눈을 험하게 뜨고 북편을 흘겨보는 것이다.
 
80
"수고했네. 이리 와서 잠깐 기다리게."
 
81
노인은 조금 뒤에 인력거를 뒤세우고 그 집을 향하여 걸어갔다.
 
82
그는 대문 밖에서도 인제는 안에 아무도 없으려니 안심을 했는지 조 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마치 자기 집이나 들어가듯이 척 들어섰다.
 
83
안마당으로 들어서서 사방을 휘 둘러보았다.
 
84
그러고 나서 건넌방문을 열어보고 안방문을 열어보았다.
 
85
다시 내려와 부엌과 광과 변소와 두 개의 뜰아랫방까지 열어보았다.
 
86
그는 마당에서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그의 노안(老眼)에는 고요하나마 분노가 불타올랐다.
 
87
그는 잠시 우두커니 서서 있다가 대문 밖으로 나갔다.
 
88
인력거를 잡아탔다.
 
89
"어데로 모시랍쇼?"
 
90
차부의 묻는 말에 차 안에서는 잠깐 동안 아무 말이 없다. 그는 어떻게 할까? 하고 몹시 궁리하는 눈치다.
 
91
필경 후 하는 한숨 소리와 한가지로 대답이 나온다.
 
92
"오든 길로 도루 가세…… 가면서 혹시 누가 뒤를 밟어오잖나 살펴보게."
 
93
"네 염려 맙쇼."
 
94
인력거는 움직였다.
 
95
이편 상준이는 노인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에 경험이 없고 나이 어린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다.
 
96
그러나 뚫어놓은 창구멍으로 해서 일심으로 노인의 모습이며 일거 일동을 살폈다.
 
97
급기야 안방문을 열 때에는 방금 다락문까지 열어보는가 싶어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노인이 다 둘러보고 나서 마당 가운데 서서 있다가 대문 밖으로 나갈 때에는 잔뜩 들이마신 채 있던 숨이 한꺼번에 푹 내쉬어졌다.
 
98
인력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재빠르게 밖으로 뛰어나왔다.
 
99
인력거는 마침 예전 측후소 편으로 골목 어귀로 돌고 있다.
 
100
상준이는 시치미를 뚝 떼고 좀 빨리 쫓아나갔다.
 
101
한 희극으로 볼 수가 있다. 노인은 차부를 시켜 오복이의 뒤를 밟게 해가지고 영호의 집을 알아내었는데 이번에는 노인 자신이 영호의 수하에게 뒤를 밟히고 있는 것이다.
 
102
상준이가 측후소 문앞까지 나와 보니 인력거는 큰거리로 나서서 남편으로 구부러진다.
 
103
그는 얼핏 몸을 돌이켜 측후소 앞 빈터로 해서 골목길로 빠져가지고는 큰길로 나섰다.
 
104
`인력거는 남으로 곧게 내려가 교동 어귀에서 동편으로 구부러졌다.
 
105
상준이는 뒷골목으로 해서 동관 파주개로 나섰다.
 
106
인력거는 여전히 까드락까드락하며 동편을 향하여 가고 있다.
 
107
차부는 가다가 말고 잠깐 돌아서서 뒤와 좌우를 살펴본다. 아까 노인의 부탁을 잊지 아니한 모양이다.
 
108
그러나 좌우의 포도로 즐비하게 오고가는 사람 가운데 시치미를 뚝 따고 걸어가는 상준이의 어찌 미행자로 발견할 수가 있으랴.
 
109
혹시 그가 상준이를 측후소 골목 같은 데서 일단 보았다면 다소 의심을 할것이나, 여기는 가령 열 명의 미행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발견하지 못 할 것이다.
 
110
인력거는 여전히 동편을 향하여 가다가 종묘 앞까지 이르렀다. 그때에 상준이는 인력거와 평행을 하고 있었다.
 
111
종묘 앞길 어귀에서 인력거는 머물렀다. 탔던 노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내렸다.
 
112
상준이도 그의 눈에 띄었다. 상준이는 천연덕스럽게 길 옆 담배가게로 들어갔다.
 
113
담배를 사는 체하며 그는 노인을 감시하였다.
 
 
114
4
 
 
115
노인은 인력거삯을 주는 모양인데 웬걸 일원짜리인 듯싶은 석 장이나 주고있다.
 
116
차부는 멀리서 보아도 이게 웬 땡이냐는 듯이 좋아는 하면서 그래도 한번 사양을 하는 모양이다.
 
117
노인은 어루만지듯이 손짓을 하며 받아두라고 하는 거동이다.
 
118
차부는 연해 굽실거리고 노인은 일단 일단 돌아서서 종묘의 문 편으로 두어 걸음 걷다가 되돌아서서 차부를 부른다.
 
119
차부가 옆으로 가까이 가자 노인은 무슨 말을 묻고 차부는 무엇인지 까막까막 생각하다가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120
몇 마디 말이 있은 뒤에 노인은 다시 가려던 길을 가고 차부도 돌아갔다.
 
121
차부는? 하고 보니까 바로 근처의 병문으로 들어간다.
 
122
상준이는 얼핏 담배가가를 나와 바로 그 옆에 있는 잡화점으로 뛰어들어 갔다.
 
123
그는 수건과 비누 하나를 되는 대로 사가지고 그 상점에다 모자와 외투와 양복 저고리를 벗어 맡겼다.
 
124
그런 후에 그곳을 나오는 상준이는 누가 보든지 아침 목욕을 하러 가거나 그렇잖다면 하고 돌아오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125
상준이는 수건 끝에 비누를 싸매어 가지고 일부러 홰홰 내두르며 노인의 뒤를 밟았다.
 
126
노인은 마침 종묘 문앞에서 궁장을 끼고 바른편으로 돌아가려는 판이다.
 
127
그는 다시 한번 전후 좌우를 둘러본다. 그러나 상준이에게는 별로 주 의도하지 아니한다.
 
128
상준이는 휘파람을 불면서 뒤를 따랐다.
 
129
궁장을 끼고 돌아가다가 얼마 아니 가서 바로 바른편 길 옆집으로 노인은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상준이를 힐끔 돌아다보았으나 상준이는 모르는 체하고 그냥 그 앞을 지나쳤다.
 
130
그러나 상준이는 곁눈으로 그 집의 번지와 문패를 볼 것을 잊지 아니하였지만 문패도 번지도 다 떼어버리고 없다.
 
131
상준이는 결코 뒤를 돌아다보지 아니하였다.
 
132
그는 그냥 무심히 그 길로 가서 의전병원 옆 네거리까지 가가지고는 계동으로 올라갔다.
 
133
전화통 앞에 붙어서서 분주히 전화를 걸고 있던 영호는 모자도 외투도 저고리도 없이 세수 수건을 들고 뛰어 올라오는 상준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134
"너 이게 웬일이냐?"
 
135
그러나 상준이는 연해 싱글벙글 웃는다.
 
136
"미행하느라고 변장했지요."
 
137
"미행 ! 허 ! 그래서?"
 
138
상준이는 제가 겪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 빼놓지 아니하고 자세히 이야기를 하였다.
 
139
영호는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끝까지 듣고 있다가 상준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탄복하여 그의 등을 툭툭 친다.
 
140
"어, 기특하다 ! 우리 상준이가 그런 수단이 있는 줄을 몰랐는걸 ! 잘 했어."
 
141
상준이는 부끄러운 듯이 볼을 약간 붉히고 고개를 숙인다.
 
142
영호는 이번에는 다가붙는다.
 
143
"수염이 탐스럽고 수달피 댄 큰 외투를 입고?"
 
144
"네."
 
145
"틀림없지?"
 
146
"네."
 
147
"집은 큰집이든?"
 
148
"그리 크잖은 것 같애요."
 
149
"문패도 번지도 다 떼어바리고 없고……?"
 
150
"네…… 자국은 남었어요."
 
151
"헌데 그 인력거꾼하고 하는 이야기가 대강 어떤 눈치인지 모르겠든?"
 
152
"아마 무슨 부탁을 노인이 하니까 차부는 승낙을 하는 모양 같애요."
 
153
"간단하게? 여러 마디로?"
 
154
"여러 마디 하든데요."
 
155
영호는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으나 노인이 차부에게 무엇을 부탁 하였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차부가 그 일행의 한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156
──
 
157
영호는 상준이의 보고로 활기를 띠었다.
 
158
그는 밖에 나갈 준비로 옷을 갈아 입으면서 이번에는 칭찬 대신 상준이의 미행을 비판한다.
 
 
159
"너 그런데 한 가지 실수를 했다.──다행히 무사는 했지만."
 
160
상준이는 약간 불복인 듯이 영호를 치어다본다.
 
161
"무슨 실순지 아직도 모르겠니?"
 
162
"모르겠는데요……?"
 
163
"아래층에 가서 식모더러 오복이가 일어나거든 나가지 말고 기다리게 하라고 이르고 너는 자동차에 가서 기다려라…… 가면서 이야기해 주마."
 
164
말을 일러 내려보내고 영호는 다시 수화기를 떼어 들었다.
 
 
165
5
 
 
166
영호는 × × 일보사에 전화를 걸고 사회부장을 불러내었다.
 
167
아까부터 몇번이나 걸었으나 아직 아니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168
이번에는 찾는 사람이 나왔다. 전부터 가까이 아는 터라 약간 인사가 끝 난후에 영호는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하였다.
 
169
──사회부 기자 가운데 경찰서를 담당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출입하는 경찰서에 가거든 오늘 아침에 시내 어느 곳에서든지 감찰 없이 내버린 인력거 하나가 혹시 발견이 되지 아니하였느냐, 물론 그것이 신문으로는 사호일단(四號一段) 재료밖에는 아니 되지만, 이편으로 보면 호외거리보다도 더 긴한 것이니 곧 좀 알려주도록 하라.
 
170
저편에서는 쾌히 승낙을 하였다.
 
171
영호는 전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생활이 불규칙하여지고 음식이 모두 식는데도 밥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또 뛰어가는 영호를 식모가 등뒤에서 근심 스레 바라본다. (원래 근심과 즐거움은 애인과 한가지로 남의 것은 서푼 값에 못가지만 내것은 천냥에도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니까.)
 
172
영호는 팔다리와 전신에 기운이 차 넘는 것 같았다. 어젯밤 일과 또 오늘아침에 조롱을 받아 분하고 안타깝던 우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말았다.
 
173
운전대에는 상준이가 외투도 모자도 저고리도 벗은 아까 그대로 기다리고 앉아 있다. 영호는 그가 몹시 신통스러웠다.
 
174
차를 몰아가면서 영호는 상준이더러 물었다.
 
175
"아직도 무슨 실수 없었든지 생각이 아니 나니?"
 
176
그러나 상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모르겠다는 듯이 눈으로 대답을 한다.
 
177
"그러면 위선 그 노인이 인력거를 타지 않고 걸어갔다면 너는 어찌할 양으로 했니?"
 
178
"제가 인력거를 타지요."
 
179
상준이는 서슴잖고 대답한다.
 
180
영호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181
"그러고 그 다음…… 이게 중요한 것인데…… 아까 말이다. 그 노인의 집이 종묘 앞에서 그렇게 가까웠으니 말이지 만일 한 십오 분이고 이십분이고 그보다 더 삼십 분 사십 분이나 걸어가도록 멀었었다면?…… 그렇다면 네가 목욕 수건을 들고 따라가는 것이 대번 폭로가 될 게 아니냐?"
 
182
상준이는 비로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183
사실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일이다. 다행히 그 노인의 집이 그렇게 가까 왔기 말이지 그렇잖고 순라골을 다 돌아 연건동이나 연지동 같은 데로 여러 골목을 걸어가게 되었다면 일은 완전히 실패되었을 것이다.
 
184
그러나 생각하면 그래도 불복이 있다.
 
185
"그렇지만 종묘 앞에서 인력거를 내렸으니까 집이 멀잖을 텐데요……"
 
186
"아니…… 노인이 뒤를 밟히지 아니하랴고 그리는 것이니까 종묘 앞에서 내렸다고 그의 집이 가까우리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물론 목욕 수건을 들고 나선 것은 걸작이다. 나도 첩경 내기 어려운 꾀야 응…… 그런데 또 다행히 노인이 집 가까운 데서 내렸기 때문에 네가 성공을 한 것이다. 알겠니?"
 
187
상준이는 고즈너기 고개를 숙였다.
 
188
차는 종묘 앞까지 가까이 왔다. 영호는 차를 가솔린 스테이션에 맡기고 상준이는 의복 맡긴 상점에 들어가서 맡겼던 것을 찾아 입고 나왔다.
 
189
영호는 상준이를 앞세우고 목적한 그 집 앞에 다다랐다.
 
190
과연 문패도 번지 쓴 패도 떼어버리고 자국만 남아 언뜻 보기에 빈집 같으나 좀 주의해서 보는 사람에게는 번지 쓴 패까지 떼어버린 것이 되레 조건이 붙었다는 의심을 주게 되었다.
 
191
영호는 다가서서 대문을 밀쳐보았다. 안으로 잠그고 열리지 아니한다.
 
192
영호는 잠깐 주저하다가 손가락을 조금 벌어진 대문 틈으로 넣어 손쉽게 빗장을 벗겼다.
 
193
영호는 서슴지 아니하고 안대문을 거쳐 마당으로 들어섰다.
 
194
이제는 노인과 영호는 한편인 셈이다. 그러니까 영호가 활동하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고 되레 노인을 만나 그와 공동전선을 취하자는 것이다.
 
 
195
6
 
 
196
대문 소리가 나고 또 안마당으로 사람이 들어섰으니 응당 반응이 있을 것인데 집안은 고요하니 아무 인기척이 없다.
 
197
집은 아주 조그마한 단가 살림집이다.
 
198
들어서면서 정면에 부엌이 있고 왼편으로 광이 있고 바른편이 안방이다.
 
199
그리고 마루와 건너방이 있을 뿐이다.
 
200
마당에는 장독대의 자리는 있으나 아무것도 놓인 것은 없다.
 
201
안방과 건넌방에는 겉문이 척척 닫기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그러면 집안에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202
부엌문을 열고 보니 새로 건 솥이 있고 무연탄과 장작이 조금씩 있으며 살림 나부랑이도 있으나 모두 어설프다.
 
203
부엌으로든지 마루로든지 뒤 울안이라는 것은 통하지 않고 다 막히었다.
 
204
혹시 상준이가 잘못 알지나 아니하였나 하고 다시 한번 다지어보았으나 틀림없다고 확언을 한다.
 
205
그러면 노인이 역시 상준이를 의심하고 그를 따느라고 임시 남의 집 대 문안에 들어섰던 것인가?
 
206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다. 좌우간 이따가 저녁이고 다시 한번 와보는 것이 상책이라고 영호는 상준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207
대문은 전대로 밖에서 빗장을 잠글 수가 있었다.
 
208
만일 무슨 흔적을 남겨놓았다가는 노인이 돌아와서 눈치를 채고 또 자리를 떠 버릴 테니 큰일이다.
 
209
가솔린 스테이션까지 나온 영호는 문득 어제 저녁의 익선동집 일을 생각 하였다.
 
210
이제는 노인은 감시할 필요가 없이 직접 담판을 한다더라도 노인의 신변에 미쳐오는 위험에 대해서는 감시를 해야 할 것이다.
 
211
만일 노인조차 어젯밤과 같은 일을 당하여 종적을 잃게 된다면 그때는 완전히 엉터리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212
영호는 다시 돌이켜 그 집 앞으로 와서 앞뒤의 이웃집을 물색하였다.
 
213
뒷집은 집도 크고 부유해 보이니까 말을 잘 듣지 아니할 뿐 아니라 쓸모로 보아도 앞으로 있는 납작한 초가집이 적당할 듯하였다.
 
214
비뚤어진 대문을 밀치고
 
215
"이리 오느라."
 
216
부르니까 허리 꼬부라진 안노인이 나온다.
 
217
"누구 찾으시요?"
 
218
"주인양반 안 계십니까?"
 
219
"네, 우리 아들 말이요?…… 전방에 갔지요. 어데서 오셨소?"
 
220
노인은 알아보기나 하려는 듯이 노안을 들어 영호와 등 뒤에 섰는 상준이를 번갈아 본다.
 
221
"다른 게 아니라 댁에 방이 빈 게 있다고 해서 왔는데요."
 
222
영호는 이렇게 넘겨짚어 보았다. 실패하면 달리 교섭할 요량으로.──
 
223
"빈방이요? 글쎄……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지만……"
 
224
영호는 안으로 기웃이 굽어다보았다.
 
225
방이라야 안방과 건너방뿐인데 뒷집과는 등을 지고 앉은지라 건너방의 뒷 벽에 구멍 하나만 뚫어놓으면 모든 것을 내어다볼 수 있게 되었다.
 
226
아주 안성마춤이다. 노인은 말을 계속한다.
 
227
"식구래야 우리 모자뿐인데, 우리 아들이 건너방에서 거처하지요…… 나는 돈푼이나 얻어 쓰자고 세를 놓자지만 저는 조용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그 새도 멫번 말이 있는 것을 내놓잖앴다우."
 
228
마나님과 더 이야기했자 끝이 나지 아니할 것 같아서 영호는 마나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 동대문 안 어느 이발소로 그 아들이라는 사람을 찾아 갔다.
 
229
하기야 이제는 노인과 단도직입적으로 들여대는 판이니까 노인이 들어있는 그 집에 그대로 버티고 있다가 노인을 만나고 그래서 공동전선을 펴는 방법도 없지는 아니하다.
 
230
그러나 첫째 노인이 확실히 그 집에 들었는지 그것이 의문이요, 다음은 다른 일파의 불의 습격을 받더라도 딴 곳에서 감시하고 있으면 저편의 행방을 추적 할 여유가 있고──그러니까 불가불 먼저의 방법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도리라고 할 수가 있다.
 
 
231
7
 
 
232
영호는 젊은 이발사를 불러내어 자동차 안에서 교섭을 하였다.
 
233
우선 자동차 바람에 고분고분해진 그는 영호가 쥐어주는 십원짜리 석 장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고도 조건은 단지 오늘과 내일, 다직해야 모레까지 그 의 건넌방을 빌리자는 것이다.
 
234
그러나 그 방에서 무슨 음모를 하거나 사주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요, 벽에 조그마한 구멍 하나를 내고 그 뒷집에 든 사람을 감시하는 것뿐이니 아무 염려도 말려니와 또 한동안 절대 비밀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235
약속은 쉽사리 성립이 되었다.
 
236
영호는 이발사를 그대로 태운 채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237
모자가 무어라고 소곤거리더니 대번 건넌방을 치워 준다.
 
238
신사 때문에 감시하는 사람이 교대를 하거나 자주 출입을 하여서는 아니되 겠으므로 따로 십 원 한 장을 내어놓고 누가 와서 있든지 밥을 해주고 불 을 때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239
사십 원…… 그들의 한 달 수입만큼 되는 돈이 꿈결에 생겼으니 기뻐하는것은 도리어 당연한 일이다.
 
240
영호는 상준이에게 여러 가지 주의를 시킨 뒤에 또 주인 모자더러 절대 비밀을 지키고 되도록이면 동리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재삼 하였다.
 
241
영호는 자동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242
오정이다.
 
243
오복이는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다.
 
244
영호는 × × 일보사의 사회부장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245
──오늘은 아직 아무 경찰서에서도 그러한 인력거를 발견했다는 계 출이 들어오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246
그렇다면 그 일파가 그 인력거를 그대로 쓰든지 혹은 내버렸으되 아직 경찰서에 계출이 아니 된 것이니 좌우간 그것은 하루 이틀 더 기다려 보아 야할 일이다.
 
247
영호는 오복이에게 상준이의 트렁크와 담요를 약간의 돈과 같이 주어 보냈다.
 
248
내보내면서 영호는 시치미를 떼고 말하였다.
 
249
"상준이는 나이 어려도 그애가 제법이야."
 
250
이 말에 오복이는 돌아서서 영호의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251
"왜요?"
 
252
"그애가 우리 셋 중에 제일 큰 공을 세웠으니 말일세……"
 
253
그러고 나서 영호는 상준이가 오늘 아침에 노인의 뒤를 밟아 필경 그의 집을 알아내었다는 것을 약간 과장해 가지고 들리어 주었다.
 
254
"누구는 그 경우에 그만 일을 못할라구요!"
 
255
이 말은 결코 심상한 대답이 아니다. 영호는 싱그레 웃으면서.──
 
256
"자네는 어림없네…… 아무래도 머리가 좀 무거워서……"
 
257
오복이는 완연히 불쾌한 빛을 보이면서 말이 없이 나가버렸다.
 
258
영호는 혼자서 싱긋이 웃었다.
 
259
우두커니 앉아 있는 영호는 침실로 들어가서 베개 밑에 넣었던 '그 여자'
 
260
의 모자를 가지고 나왔다.
 
261
놓고 보느라니 여러 가지 감정이 가슴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다.
 
262
모자를 놓고 보면 그 주인공이 적의 손에 붙잡혔건만 자기는 이렇게 무료 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263
그러나 그렇다고 활동할 재료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264
아까 당장 가서 노인을 만날까 하였으나 그도 여의치 못하였고 인력거를 내버린 방향을 중심으로 활동해 보려 하였으나 긴한 그 인력거가 발견이 아니 되고.
 
265
아쉰 대로 그 다른 일파가 그처럼 위협을 했으니 그것이 말에 그치지 말고 이편에 육박전을 걸고 덤볐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어느때에 올는지 또는 그저 위협에 지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266
오복이가 간 지 삼십 분쯤 해서 전화가 왔다.
 
267
"저 오복입니다. 지급 곧 돌아가잖아도 괜찮아요?"
 
268
"왜? 무슨 볼일 있나?"
 
269
"네."
 
270
"맘대로 하게."
 
271
영호는 쌀쌀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272
밤에는 크게 활동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점심──인지 조반인지 ── 먹은 뒤에 침실로 들어가려니까 또 전화가 왔다.
 
273
이번은 상준이에게서 온 것이다.
 
 
274
8
 
 
275
"저 상준입니다.──방금 들어왔었는데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다시 나갔어요."
 
276
보고는 그것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집에 노인이 들어 있는 것이 확실하다.
 
277
영호는 그렇게 속히 그가 돌아올 줄 알았더면 차라리 자기가 감시를 할 걸하고 후회하였다.
 
278
그는 침실로 들어가서 석간신문이 올 때까지 푹신 한잠을 자고 일어났다.
 
279
혹시 소포 사건이 나지 아니하지나 아니하나 하고 근심하던 것인데 다행히 각 신문에 모두 났다.
 
280
아주 선동적 제목을 붙이어 대부분이 꼭대기 기사로 취급하였다.
 
281
그리고 소포와 손가락을 사진까지 찍어서 내었다.
 
282
──사람의 손가락을 소포처럼 꾸미어 백화점의 변소에 버린 기괴 백% 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283
× 일 오후 한시 시내 × × 에 있는 × × 백화점의 이층 매장에 있는 여 점원이 변소에 들어갔다가 소포 꾸러미 하나가 주인 없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 하였다. 동 백화점에서는 손님이 잊어버리고 간 것으로 알고 온종일 보관 하였으나 아무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다음날인 × 일 아침에 소관 × × 서에 계출하였다. 이것을 접수한 동서에서는 그 내용을 풀어 본 결과 의외에도 그 속으로부터 사람의 손가락이 발견되었다.
 
284
이에 대하여 확실히 범죄의 유적임을 알게 된 동서에서는 아연 긴장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
 
285
──전게 손가락 소포에 관하여 동서에서는 그 소포에 씌어 있는 수취인 서광 옥의 주소인 가회동 이백십오번지를 찾았으나 원래 가회동에는 이백십오 번지라는 번지가 없을 뿐 아니라 서광옥이라는 것도 전연 허구의 인물인 듯하고, 또 소포의 우표나 스탬프도 아무데서나 떼어 붙인 가짜 소포인 것이 판명되었다.
 
286
──소포의 차출지는 군산 산상정 십팔번지요 차출인은 유대설이라 하였으나 동서에서 군산경찰서에 지급조회를 해본 결과 역시 주소와 성명이 허구인 것이 판명되었다.
 
287
──의문의 가짜 소포에 싸인 손가락은 의사의 감정에 의하건대 자른지 사흘 내지 나흘이 경과된 중년 남자의 왼손 엄지손가락이요, 여러 가지로 참작 하여 중류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의 손가락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우기 죽은 사람의 손에서 자른 것이 아니요, 산 사람의 손에서 잘라내었다는 것이 더욱 이 사건으로 하여금 중요성을 띠게 하는 것이다.
 
288
──이에 대하여 × × 서 × × 사법주임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언뜻 보면 혹시 경찰을 우롱하려는 장난인 듯도 하였으나 어느 누가 자기의 손가락이든지 또는 남의 손가락을 일부러 잘라서 장난을 할 사람이 있겠읍니까?
 
289
아직 단언을 할 수는 없으나 이것은 어느 범죄의 준비 행동인듯합니다. 운운.
 
290
이외에도 몇 개의 그에 관한 기사가 있으나 별로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291
영호는 싱그레 웃으면서──더우기 여기에는 옮겨놓지 아니했지만 최초 에그 가짜 소포를 발견했다는 여점원을 불러다가 취조한다고 쓴 대목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하였다.
 
292
날이 차차 저물어간다.
 
293
오복이가 결기가 나서 저대로 돌아다니다가 하마 돌아올 때가 되고, 또 상준이에게서도 하마 무슨 보고가 있을 텐데 웬일일까?
 
294
영호는 초조히 기다리며 밤이 들었으되, 두 사람에게서 모두 소식이 오지아니하였다.
 
295
시계가 열한시를 칠 때에 겨우 상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296
"또 들어왔다가 나갔어요. 그런데 이상해요."
 
297
"무엇이?"
 
298
"자세 말씀할 수는 없고 와서 보아야겠어요,"
 
299
"오냐 곧 가마."
 
300
영호는 전화를 끊고 막 외투를 떼어 입고 현관에 나서는데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나며 찾지도 아니하고 현관문이 와락 열린다.
 
301
말쑥말쑥하게 양복은 입었으나 모두 심술이 곱지는 못하게 생긴 사나이 셋이 척척 들어선다.
 
 
302
9
 
 
303
영호는 반사적으로 방어(防禦)의 자세를 취하였다.
 
304
그들은 분명히 악당의 일파인 줄 짐작한 것이다.
 
305
영호의 포켓 속에 집어 넣은 손에는 독와서 펌프가 쥐어져 있다.
 
306
그는 터럭 하나 들어올 빈 틈도 없이 어떠한 공격에 대하여서라도 막아 낼 자세를 취하였다.
 
307
그러나 심중에 다소 이상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308
첫째 이 침입자들이 어쩐지 그 악당의 일파인 것 같지가 아니하고, 또 그렇다 하더라도 한 사람쯤 비밀히 보내서 무슨 처치를 하든지 할 것이지 이렇게 세 명이나 요란스럽게 와글와글 보내어 남이 알도록 일을 할 이 치가 없으리라 고 생각한 것이다.
 
309
그러나 어쨌든 일은 잘되었다. 도리어 이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터이다.
 
310
아직 그 악당의 일파에게 대하여 조그마한 증빙과 단서도 없는 터인데 이 것은 저편에서 자진하여 그것을 제공하는 셈이니까.──
 
311
이러한 생각이 전광석화와 같이 머리에 돌며 영호의 사지는 찢어질 듯이 긴장이 되었는데, 저편에서는 웬일인지 통일이 없고 어릿어릿하는 눈치가 보이는 것 같다.
 
312
"웬 사람들이요?"
 
313
영호는 세 사람의 침입자를 번갈아 보며 꾸짖듯이 물었다.
 
314
그동안에 영호는 그들을 각각 다시 한번 세세히 관찰하기를 잊지 아니 하였다.
 
 
315
세 사람이 모두 말쑥말쑥하게 양복을 입었으나 그 하나도 스마트하게 몸에 착 맞는 것이 없다.
 
316
방금 황금정 기성복집에서 사서 입은 것이 분명하다.
 
317
그중 맨나중에 들어왔고 키가 작은데다 끊이잖고 불안스러워하는 한 사람은 양복이란 처음 입어보는지 괜히 손으로 칼라와 넥타이를 자주 만지는 것이다.
 
318
맨앞에서 들어온 몸집도 크고 그중에서도 심술이 더욱 궂게 생긴 사람은 힘꼴이나 쓰는지 어깨가 떡 벌어지고 코는 위로 젖혀진 주먹코에 푹 숙여 쓴 헌팅 밑에서 눈방울이 휘휘 구르고 있다.
 
319
둘쨋번에 들어오던 키큰 친구는 얼굴에 아무런 특장도 없으나 못먹는 술을 먹은 것이 분명하다.
 
320
'좌우간 엑스트라(臨時雇[임시고])들이로구나……'
 
321
영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322
영호의 꾸짖듯 묻는 말에 앞에서 들어온 주먹코가
 
323
"댁이 배 백영호요?"
 
324
하고 한번 더듬으며 묻는다.
 
325
"네, 내가 백영호요."
 
326
영호는 앙연히 대답을 하였다.
 
327
그러니까 옆에 있던 키큰 친구가 영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328
"아닌 것 같은데……?"
 
329
영호는 속으로 고소를 하였으나 천연히
 
330
"아닌 것은 댁들이 어떻게 안단 말이요?"
 
331
하고 반문하였다. 이 말에 키큰 친구는 대답을 아니하고 먼저의 주먹코가 말을 가로막는다.
 
332
"확실히 이 집 주인 백영호요?"
 
333
"글쎄 그렇다는데 왜 자꾸만 묻소?…… 대관절 댁들은 누구며 무슨 일로 이렇게 왔소?"
 
334
영호는 속이 죄었다.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났으니 물론 기다리던 터라 다행은 하나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처치하고 상준이에게로 가보아야 할 일이다. 그의 전화에 '좀 이상해요' 한 것이 더욱 마음에 걸리는 때문이다.
 
335
주먹코는 포켓 속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한 장을 영호에게 내어준다.
 
336
"× × 경찰서 형사 최윤식."
 
337
명함에 쓰인 글자들이다.
 
338
영호는 실소할 뻔할 것을 억지로 참는데 나머지 두 사람도 척척 명함을 꺼내어 영호를 준다.
 
339
모두 인쇄잉크도 아직 마르지 아니한 새 명함들이다.
 
340
영호는 갑자기 태도를 고치어 허리를 굽혔다.
 
341
"네! 그러십니까? 이거 참 실례했읍니다…… 진즉 그런 말씀을 하시 지원…… 자 올라오십시요."
 
342
그들은 서로 잠깐 돌아보다가 척척 신을 벗고 영호를 따라 이층 응접실로 들어왔다.
 
343
영호는 그들을 탁자 가로 둘러앉히고 자기도 이편에 앉았다. 그러나 불의의 습격에 대한 경계의 자세는 결코 해제하지 아니하였다.
 
344
그러자 전화가 때르르 울린다. 받아보니 오복이의 급한 목소리다.
 
 
345
10
 
 
346
"차 찾었읍니다."
 
347
오복이는 급한 소리로 이렇게 말을 한다.
 
348
"잘했네,"
 
349
감찰 없는 인력거를 찾았단 말인 듯하다. 그러나 등 뒤에 침입자들이 있으니 자세히 보고를 들을 수는 없다.
 
350
"지금 이리 곧 아니 오세요?"
 
351
"내가 지금 바쁘니까 그만두고 자네는 상준이한테 가보게."
 
352
"상준이한테요?"
 
353
영호는 대답을 아니하고 전화를 끊었다.
 
354
자리로 돌아오니 세 사람은 담배 서랍에 내놓은 해태를 제가끔 붙여 물고아주 꿀맛같이 쭉쭉 빨고 있다. 그뿐 아니라 몇개씩 집어넣었는지 담배가 푹 줄었다.
 
355
"그런데 이렇게 늦게 무슨 일이신가요?"
 
356
영호는 의자에 앉으며 공순하게 물었다.
 
357
"에, 명함에 보신 바와 같이."
 
358
그야말로 일동을 대표하여 말하는 주먹코는 활동사진 변사의 말석(末席) 제자의 말본새 그대로다.
 
359
"──명함에 보신 바와 같이 우리는 × × 경찰서 형산데…… 가택 수사를 좀 하야겠어서……"
 
360
"네 가택수사요?"
 
361
영호는 짐짓 놀라운 듯이 눈을 허겁스럽게 홉떴다. 미상불 다른 의미로 '
 
362
가택수사'를 하겠다는 것이 의외는 의외였지만.──
 
363
"네 가택수사를 해야겠읍니다."
 
364
"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그러나 경찰서에서 하시는 일이니 방거할 수야 있읍니까. 그러면 해보시지요."
 
365
그들은 척척 일어섰다.
 
366
처음 현관에서 그들에게 양연히 대하던 영호의 위압에는 적지 않게 위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형사란 명함을 보인 뒤에 영호가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데 용기가 솟아났다.
 
367
영호는 우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실험실을 보여주었다.
 
368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침입자에게는 무릇 인연이 먼 것이라 호기의 눈으로 둘러볼 뿐이다.
 
369
사진실도 열어보이고 큼직한 것이면 저편에서 요구해서 열어보았다.
 
370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상준이의 방과 식모의 방과 안방을 모조리 들어가 보았다.
 
371
다락과 벽장도 다 열어보았다. 부엌도 들여다보았으나 지하실은 어디냐 고 묻지도 아니한다.
 
372
실상 지하실의 문은 찬장으로 가리었기 때문에 알지도 못했겠지만.──
 
373
현관에 벗어놓은 신을 집어다 신고 부엌으로 해서 뒤 울안으로 나가 도장, 광, 목욕실 모조리 둘러보았다.
 
374
그러나 애초에 눈에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375
이제는 그들의 눈에 띈 가운데 아니 보인 곳이라고는 맨처음 그들이 들어 앉았던 응접실 옆에 있는 침실 하나뿐이다.
 
376
그들은 영호의 안내도 없이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377
그 눈치를 챈 영호는 뒤층계로 해서 그들보다 앞서 이층으로 올라가 응접실로 들어가서 우선 침실의 도어를 잠가버렸다. 뒤미처 그들이 척척 들어섰다.
 
378
"저 방은?"
 
379
주먹코가 침실을 가리키며 묻는다.
 
380
"그건 내 침실입니다."
 
381
주먹코는 척척 걸어가서 손잡이를 잡고 밀쳐보았으나 꿈쩍도 아니한다.
 
382
영호는 현관에서와 같이 앙연하지도 아니하고 명함을 본 후에와같이 공순 하지도 아니하고 그들을 조롱하듯이 한편에 비켜서서 빈들빈들 웃고있다.
 
383
"이 문을 열어."
 
384
주먹코는 침실의 도어를 가리킨다. 그러다가 영호의 태도가 또 변하여 빈들 빈들 웃는 것이 의외롭다는 듯이 다시 한번 치어다본다.
 
385
"열 수 없는데요."
 
386
"경찰의 명령에 항거할 테야?"
 
387
"할 수 없지요."
 
388
"이 문을 부실 테야."
 
389
"거 그 문을 부시자면 둘이나 세 사람의 힘으로는 아니 될걸요."
 
390
영호는 어디까지든지 침착하고 조롱하는 태도다.
 
391
주먹코는 성이 나가지고 영호의 앞으로 척척 걸어온다.
 
392
"네가 그러면 그 여자를 저 방에 감금시킨 것이 확실하니 내놓아라. 그렇잖으면 체포다."
 
393
영호는 깜짝 놀랐다.
 
 
394
11
 
 
395
그들이 가짜 형사인 것을 영호는 처음부터 짐작을 하고 있었다.
 
396
다른 일파의 악당들이 보낸 엑스트라(臨時雇)들로 알았던 것이다.
 
397
그리하여 그들을 우선 저의 하는 대로 두어두고 눈치를 보아서 그 일파에 대한 단서를 잡으려고 한 것이다.
 
398
그러나 주먹코의 입에서 흘러져 나오는 한마디.──
 
399
"그 여자를 감금시켰다."
 
400
는 한마디는 영호의 추측을 여지없이 뒤엎어놓고 말았다.
 
401
영호는 오늘 아침에 그 노인이 인력거꾼을 시켜 오복이의 뒤를 밟게 한 것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터이므로 이 침입자들이 다른 일파의 일꾼 임을 의심하려고도 아니한 것이다.
 
402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까 그들은 '그 여자'를 찾으러 아니 뺏으러 오지 아니하였는가?
 
403
그렇다면 이 침입자들은 다른 일파가 보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여자'의
 
404
아버지 되는 노인이 보냈음이 분명하다.
 
405
그렇다. 확실히 노인이 그들을 보냈다.
 
406
오늘 아침에 노인은 인력거 속에서 그 집으로부터 나오는 사람을 발견 하였다. 그리고 인력거꾼을 시켜서 그가 계동 × × 번지 × × 호에서 사는 백 아무인 것을 알게 되었다.
 
407
동시에 노인은 그러면 이 백아무가 자기의 딸을 간밤에 그 집에서 붙 잡아간 것이라고 단정을 하였다.
 
408
백아무가 어떠한 인물이며 또 무슨 필요로 이 사건의 와중에 뛰어들었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노인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만 그 백아무가 이 싸움의 한 대적이요, 대적인 그가 자기 딸을 붙잡아 갔느니 라고만 생각 하였던것이다.
 
409
그리하여 그는 종묘 앞에서 인력거를 내리기까지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여 보았다.
 
410
경찰서에 고발을 할까도 생각하여 보았다.
 
411
소중한 딸을 구하자면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
 
412
그러나 아직은 절망상태가 아니니까 그 최후수단까지 취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보다도 형사대를 이편에서 만들어 내 어보 내자…… 이렇게 계획을 세운 노인은 차부에게 젊은 사람을 삼사 인 구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413
그는 집에 무슨 이상이 없나 잠깐 살펴보고는 다시 병문으로 나가 차 부와 한가지로 가형사감을 물색하였다.
 
414
자전거포, 이발소, 구둣방 같은 데를 뒤지면 그런 종류의 사람은 뭇으로라도 구할 수가 있다. 노인은 근처의 구둣방에서 세 사람의 젊은 친구를 골라내어 그들을 데리고 조용한 중국요리집으로 갔다.
 
415
막걸리값, 마코값도 없어 몸을 비비 트는 친구들이라 배갈에 잡채와 뎀뿌라 그것만도 생각지 아니한 행운이다. 그러한데다가 우선 하나 앞에 삼십원씩 내주면서 이놈으로 준비를 해가지고 일을 시작하여 성공만 하면 하나 앞에 또다시 백 원씩을 주겠다…… 노인의 조건은 이것이다.
 
416
그들에게는 자기네의 귀를 의심할 만큼 땡이다.
 
417
심심한데 장난하고 실패하더라도 이미 삼십 원씩은 먹어놓은 것이요, 또 성공을 하면 백 원이 또 생기고.
 
418
여부없이 다 승낙하였다. 노인이 최후에 만일 여의치 못하면 경찰서 같은데 발각이 되더라도 절대로 자기가 시킨 것이 아니요 그냥 깽질을 하려 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에도 쾌히 맹세를 하였다.
 
419
그들은 그 길로 황금정으로 가서 제가끔 기성복을 사서 입고 동무의 명함 포에 가서 명함을 두어 장씩만 박이고 그리고 만단의 준비를 해두었다가 약속한 밤 열시에 아침에 만나던 중국요리집에서 다시 노인을 만났다.
 
420
──순순히 듣지 아니하거든 완력을 써서라도 젊은 단발한 여자와 또 사나이 두 사람을,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백아무라는 그자까지 잡아가지고 이러 저러한 곳으로 오너라.
 
421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서 자동차를 불러 타고 가르쳐 준 번지를 찾아온것이다.
 
422
이러한 내력이 붙은 그들 세 사람이다.
 
423
그들은 영호의 태도가 변한 것을 보고 순리로는 되지 아니할 줄 알았는지 셋이서 앞과 좌우로 둘러싸고 공격의 자세를 취하였다.
 
424
"단발한 그 여자와 그리고 두 사람의 남자 말이다. 내놀 테냐, 아니 내놀테냐?"
 
425
주먹코는 한걸음 버쩍 더 나서면서 딱 어르는 것이다.
【원문】4. 역습(逆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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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4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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