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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월씨(霽月氏)에게 대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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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6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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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月 氏[제월 씨]에게 대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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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작품의 비평이란 어떤 필요로 말미암아 생기느냐. 또 그 비평의 효과는 무엇이냐. 한 개의 작품의 비평이, 그 작품의 작자에게 손톱눈만치라도 반응을 일으킬 만한 권위가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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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만약 작가 ‘A’ 의 작품 ‘B’ 가 있고, 그 작품 ‘B’ 를 평자 ‘C’가 비평하였다 하면 ‘B’ 의 비평은 작자 ‘A’ 에게는 一分[일분]의 반응을 일으킬 권위가 없다. 만약 자기의 악평을 보고 낙심하며 자기의 선평을 보고 춤을 추는 작자― 즉 세상에 바친 가기의 기름자만 보고 지나는 작자가 있다 하면, 그는 존재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없는 편이 낫다. 그러면 비평은 무엇에 쓸데 있느냐면, 왈 이해력이 없는 일반 독자에게 이해력을 주는 것― 즉 독자를 지도하는 것이다. 비평이 생겨날 필요도 여기 있고, 비평 효과도 여기 있다. 만약 평자가 그릇된 평을 할 때는, 그 평의 독자인 몇 천 혹은 몇 만의 사람이 문예에 대한 그릇된 사상을 품게 될 것은 정한 일이니까. 여기, 평자는 가장 공평한 눈으로 가장 공정하게 모파상의 말 ‘평자 자기의 좋아하는 소설을 기초로 한 사상에 쫓아서, 일정한 소설 구성법을 정할 수 있는 것이라 단정하여 신작품 신사조를 제출하는 작가를, 평자 자기의 사상과 맞지 않는다고 배척하는 자니라’ 는 것대로, 자기의 상은 내어놓고, 작자의 사상에 화합하여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소설적 가치만 엄정히 비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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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제월 씨의 말대로 ‘그 작자의 집필하던 당시의 경우, 성격, 취미, 연령, 사상의 경향 등 제 방면을 고찰하여 완전을 기할’ 경우가 있다 하면, 그것은 즉 그 작자의 총평, 즉 평전의 일절― 즉 인격과 사상과 작품을 함께 평한 평전의 일절일 수밖에 없다. 제월 씨가 이렇게 작자의 평전의 일절과 한 개 작품의 비평을 혼돈하여 생각하는 희극을 연하는 데는 센티멘트릭 東仁[동인]도 다만 일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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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本報[본보] 59호 제월 씨의 ‘余[여]의 評者的[평자적] 價値論[가치론]에 答[답]함’ 을 캐어 보자. 이런 구가 처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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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군이 나(제월 씨 자기)더러 너는 백악의 작을 평할 때에 무슨 악감정을 가지고 인신공격을 하였다 하면서도 그 실 자기(나 즉 동인) 역백악 씨에게 호감을 가지고 나(제월 씨)에게 무리한 힐책을 한다. 즉 동인은 제월에게 동인 자기가 금하는 악감정을 가졌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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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월 씨에게 힐책한 것은 작품 평자의 권리로써 자기 본분을 잊고 평전의 일절에밖에 없을 작가의 인격 비평자가 되고 말았다 하는 점이다. 제월씨는 작품 평자로써 백악 씨의 인격을 공격하였으니 마땅히 힐책을 받을 만하거니와 나는 상당히 제월 씨의 평자적 가치를 평하는 자의 권리로 씨의 평자적 인격을 평하였거든 씨는 이것을 못 알아보고 ‘이는 동인 군이 백악 군을 무조건으로 변호하려는 것이다. 만약 동인 군이 이를 부인하면 이 一 文[일문](〈創造[창조]〉6호 소재)은 전연 동인 군의 무식이나 淺慮[천려]에서 나왔다’ 하여 소논설 하나를 해석 못하는 자기의 머리의 능력을 동아일보를 빌어서 이천만 앞에 폭로한 데는 나는 씨의 속단을 한 번 불쌍히 안 여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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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자연의 자각」의 평을 발표한 뒤에, 창조사 同人[동인]의 총공격을 받을 줄을 타인도 말하고 제월 씨 자신도 기다렸다’하는 말은 자기 자신을 미루어서 남을 해석하려는 좁은 지식을 유감없이 나타내었다. 내가 씨의 평자적 가치를 논함은 같은 〈創造[창조]〉 동인이라는 관계상으로 한 바도 아니요, 또는 특별히 백악 군에게 대하여 호감을 가져서 辯解[변해]하려고 한 바도 아니다. 만약 내가 백악 군을 변호하려고 하였으면 좀더 「자연의 자각」이 양작이라고 하였을 것이되 나는 어디까지든 ‘「자연의 자각」은 졸작이지만, 그 작을 평한 자도, 그 평론을 미루어 보아서 평자적 자격과 인격과 상식이 극하열하다’고 성명할 뿐이다. 내가 그 평을 쓴 것은 이 글 맨 처음에 있는 바와 같이 그렇게 일반 독자를 지도할 평자의 평이 너무 무식케 되고 볼완전하게 되었기에 다만 씨의 반성이나 一思[일사]를 바라고 쓴 바이다. 이것을 씨는 같은 잡지의 동인을 변호하려고 썼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어찌 씨가 좁으러운 마음의 주인이며 자기를 미루어 남을 해석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창조사는 창조사, 〈現代[현대]〉上[상]에 실린 백악 씨의 「자연의 자각」은 백악 씨 자유의사에서 나온 것. 거기 대한 평론은 또 딴 물건. 이것을 모르고, 창조사 총동원을 기다렸다는 제월은 참 염가의 두뇌의 人[인]이 아니고 무엇이냐. 나는 이 글 여기를 보다가 그만 面鏡[면경]을 향하여 미친 것같이 하하하하 혼자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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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 군은 혹을 떼려다가 하나 더 붙였다’ 하는 것과 ‘나의 무식한 만치 동인 군도 자기 무식함을 폭로하였다’는 것은, 아직 설명이 없으니 밀어 두고 씨의 ‘제 1’ 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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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나의 ‘작품 비평가는 작가의 인격 비평을 할 권리가 없다’는 일정 불변의 작품 비평의 정의를 붙들어서, ‘이는 마치 재판관에게 범인의 신분을 조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하는 웃음나는 소리를 오직 정당한 듯이 썼다. 이것은 작품 비평과 작자의 평전의 일절을 구별치를 못하는 씨의 무식에서 나왔겠지만, 어떻든 탐사하여 보면 이것은 씨의 오해인 ‘비평가의 비평은 일반 독자를 지도하는지 못하는지는 모르되 작자를 직접 지도할 수 있다’하는 데서 나왔을 것이다. 생각하면 이런 것까지 모르는 씨와 논전치 않을 수 없는 동인 나의 경우도 불쌍하지만, 또는 이만한 理屈的[이굴적] 지혜― 무식하면서도 그 무식을 빨리 보면 감출 만한 이굴적 지혜를 가진 씨가, 무식의 길― 즉 오해의 길로 빠져 들어간 것도 조선 전 사회를 위하여 아깝게 안 여길 수가 없다. 제월 씨에게 말하노라. 작품 평자란 활동사진 변사와 같은 것이고 결코 판사와 같은 것은 아니다. 변사는 그 사진의 설명에만 주의하여야지 그 사진의 선악은 평할 권리가 없다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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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순이라 하다가 오히려 자기의 무학을 드러내고 ‘자아 공고와 자기 표현을 구별치 못하고 목적과 자연적 결과를 구별치 못한다’ 고 나를 무식하다 하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자아 광고와 자기 표현’ 의 진의를 모르고 어느 것이 목적이며 어느 것이 결과인지 모르는 희극을 연한 제월 씨는 그 論步[론보]를 한 걸음 더 나가서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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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먼저 볼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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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뿐으로는 예술품이 못 된다’고 씨는〈現代[현대]〉2호에 말하였다. 나는 여기〈創造[창조]〉6호에 실린 글의 일절을 또 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곧 ‘개념뿐으로도 훌륭한 예술품이 된다’ 고 한다. 그리고 나는 또 한마디 ‘제월 씨는 역사의 일절과 예술품을 구별치 못하는 통쾌한 變性批評者[변성비평자]이다’고 부르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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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역사적 개념과 문예의 개념은 비슷도 않단 말이다. 역사에, 어떤 역사에 ‘모는 몇 시부터 의자에 걸어앉아서 공상을 하며 何[하]를 생각하면서는 기뻐하다가 하를 생각하고서 슬퍼하였다’ 식의 상세한 개념(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논법의 유무는 하여간― 참말로 상세할 것이다)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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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역사의 그리는 바는 한 목적(흥이든 망이든)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나가서 그 목적까지 도달시키는 것으로써 거기는 인생이든 생활이든 존재할 유여가 없고― 뿐 아니라 그것이 묘사되었다 하면 그는 역사적 가치를 잃는 것이로되 예술품은 거기는 인생과 생활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자연의 자각」은 어느 편에 속하였는가. 이는 제월 씨의 판단에 일임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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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역사가에게는 운필에 절대의 자유가 없으되 예술가에게는(모델에게 의하였든 어떻든) 절대의 자유가 있다. 따라서 거기는 그 저작자의 主意[주의]가 활약한다. 또 이렇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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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예술품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니 이는 가르쳤지만 그 뒤에 나는 제월 씨에게 묻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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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념 즉 역사라 독단할 바가 아니니 내가 ‘개념뿐으로도 훌륭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곧 ‘역사도 훌륭한 예술품이 될 수 있’단 말과 한가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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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개념뿐으로 예술품 된다는 이유는 무엇이냐”나는 여기 간단하게 실례를 들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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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홉의 모―든 작품(노국 제1의 영리한 작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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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톨스토이의 만년의 민중예술품(단 사회개혁적 인도주의와 그 외 모든 위협적 作[작]을 謂[위]함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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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다만〈창조〉6호의‘제월 씨의 평자적 가치평’의 일절을 설명키 위하여 씀. 설명 안하면 제월 씨는 모르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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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씨의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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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 상용일기도 예술품이 된다고 단언한다. 한 개 사람의 참 일기는이것 곧 인생의 생활의 단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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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 더 상세히 ‘나는 몇 시부터 어디 앉아서 여사한 생각을 하면서 기뻐하다가 여사히 생각하니 도로 슬퍼졌다’라고까지 쓰면(물론 상용일기에는 이렇게까지는 안 쓰고 다만 제월 씨의 과장 잘하는 악성질이 이런 毒語[독어]를 발케 함이지만) 훌륭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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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제5를 토구키 전에〈現代[현대]〉2호의 씨의‘자연 자각 평’(?)의 일절을 보자. 씨왈, ‘실연은 고통이다. 운명은 인공으로는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은‘백만인이 다 아는 진리로서 소설가인 씨(백악 씨)의 설명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운운. 즉‘백만인이 다 아는 일은 소설에 쓰지 말아라’ 이것이 씨의 주장이다. 그러면 나는 ‘일정한 문자와 일정한 사구도 백만인이 다 아니 소설에 이를 못 쓴다’ 는 말인가 힐책한 바이다. 지금 우후죽순 같이 나는 소설들의 주장하는 바 ‘사랑 없는 결혼은 제로’ 이라는 백만인이 아는 진리를 쓴 것을 가만히 보던 씨가 왜 이 「자연의 자각」에 한하여 ‘백만인이 아는 바를 썼으니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웬일이냐고 힐책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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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제6. 씨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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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은 余[여] 제월이 ‘자연의 자각평’ 을 쓴 동기를 모르면서 余[여]를 평함은 웬 마치 도적질한 동기를 모르고 그들을 개탄하려는 재판장과 같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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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면경을 향하여 파안일소 뒤에 내 몸을 살피며 자문하였다. ‘내게 천리안의 능력이 있는가. 내가 通觀客[통관객]의 능력을 가졌는가?’하고. 나는 〈創造[창조]〉6호에서 말하였다. ‘제월 씨가 이 평을 쓴 동기를 나는 엿볼 수가 있다’그렇지만 엿보는 것뿐으로 만족치 못하겠기에 그 뒤에 나는 ‘모르겠다’ 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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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리안도 아니요 통관객도 아니지만, 나의 평은, 씨의 글에서만 얻은 지식으로 한 나의 평은 정당하였다. 그 이유는 아직껏 씨는 3회를 연속하여 나의 글을 반박하려 하였으되 자기 뺨을 자기가 쥐어 때리는 셈이 되었지 나에게는 한 마디로도 참 반박을 못한 것이 증거한다. 이것으로 보아서 씨의 비유 ‘도적’ 은 그릇된 것인 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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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작품 운운, 인신공격 운운은 전에 썼으니 그만두고 그 다음에, 씨는 나의, ‘나는 어떤 사람같이 겉으로 공손하고 속으로 독을 품은 말은 못하는 사람이므로 사양 않고 侮的[모적] 辭句[사구]를 썼으니 운운’을 취소하라 하되 이유를 모르겠으니 취소 못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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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다음에 나의 ‘「자연의 자각」은 결코 良作[양작]은 못 된다’하여 〈창조〉 독자에게 解誤[해오]를 않게 하려 한 것을 제월 씨는 ‘동인의 고충’이라 하였지만 이것 역 자기 마음으로 남을 헤아리는 씨의 실책이니 더 할 말 없고, ‘동인 군의 오진을 자각케 하기 위하여 이 글을 썼다’는 씨의 말은 동인은 好意[호의]를 감사하며 誤好意[오호의]를 비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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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제1회에서 ‘동인의 무식한 점을 쓰리라’, ‘동인의 군두덕에 썩은 살과 뼈를 붙여서 혹을 떼려다가 오히려 하나 더 얻었다. 그 이유를 쓰겠다’성명하였지만 동인은 아직 그것을 발견치를 못하였으니 웬일인지. 만약 그것뿐 ―씨의 3회의 연속한 답변― 으로 동인의 무식이 증명되었다 하면― 동인의 혹이 하나 더 가하여졌다 하면 동인은 그런 혹 그런 무식을 자꾸 더 몇 개라도 사양치 않고 맡으리라. 왜냐하면 그 혹 그 무식은 마이너스 혹, 마이너스 무식인 바는 위에 증명된 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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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이해’ 운운은 ‘자칭 천자’ 의 암시니 볼 필요 없고 마지막에 나는 또 다시 ‘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이 겉으로는 공손하고 속으로 독을 품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므로 사양 없이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썼으니 그것을 알아보아 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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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분주한 붓끝을 다른 데로 향하자.
 
 
36
(東亞日報[동아일보], 1920.6.12∼13)
【원문】제월씨(霽月氏)에게 대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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