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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6.5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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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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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도 이래 왕왕 (客年度) 기교주의가 운위되고 기교의 과잉이 논란됨을 들을 때 번번이 의아한 느낌을 금하지 못한 것은 기교 운운의 제목이 다만 화제의 결핍에서 나온 한 고책(苦策)의 출제였는지 모르나 그 소위 지나친 기교라는 것을 아무리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도 찾아낼 수 없었다. 소재의 시대성, 사회성, 겨루려고 애쓰는 작가에게는 표현 수법에 간혹 지지리도 재치 없는 이 보이고 부질없이 표현에만 치중하고 애쓰는 작가에게서도 우리는 아직 정당한 기교의 성숙을 볼 수 없음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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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기술을 갖추기에는 아직도 오십보나 백보의 감이 있다. 문학의 수준을 말할 때에 척도는 더 많이 기술에 걸려 있으니 수준의 저열은 기술의 치졸을 의미한다. 문학에 있어서의 표현은 들어가는 그 첫 대문이자 마지막 대문인 까닭이다. 다른 학문에 있어서의 표현 문제와 문학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동일에 논할 바 아닌 소이가 여기에 있다. 문학 이전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끝까지 문학과 겨뤄서 결단을 내려는 것이 참으로 그 표현이다. 문학에 일정한 체모와 면목을 주는 것을 표현이니 표현이 성역(成域)에 달하지 못하였을 때 문학의 체모를 갖추지 못한 것이며, 따라서 떳떳한 문학 행세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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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도 변변치 못한 마른 땅에 이십년쯤의 세월로 새 문학의 나무가 외국의 그것과 같은 키에 성달할 수는 도저히 없으며 아무리 조급히 군대야 오랜 세기의 중창(重蒼)한 연륜을 좁은 나무판에 주름잡아 넣을 수는 없다. 많은 사조의 번안도 필요하였고, 주의의 이입(移入)도 당연하였고, 각종 기교의 모방도 필요하였으나 모두 삽시간의 날림에 지나지 못하였고, 축소판을 넘지는 못하였고, 저작(咀嚼)이 부족하여 불소화에 그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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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 위에나 시대는 똑같이 흘러 일정한 사조를 강요하므로 시절 시절의 사조를 받아 담기에 미처 알맞은 그릇의 준비가 없어 헤매고 설레던 판이었다. 장구한 세월을 두고 탁마(琢磨)된 그릇 대신의 조제 남조(粗製濫造)의 목기는 항상 모처럼의 진찬(珍饌)의 격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분기하여 가령 신 리얼리즘의 기치를 높게 세우고 북을 둥둥 울린대야 그 소리에 상응할 문학 기술이 같은 아침에 땅에서 불쑥 솟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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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였으니 고골리를 거쳐야 하고 체홉을 지나야 하고, 아니 톨스토이까지도 몇 줄의 저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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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道程)이 짧고 흡수와 독창이 말할 수 없이 부족한 현재에 있어서 기교의 과잉의 난은 그런 까닭에 당치않고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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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李霜)의 기교? 아직도 아직도 마지막의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술의 시비는 묻지 말고 다만 기교에 한하여 보더라도 그의 유의 사상을 담기에는 그 기교가 아직도 설핀 것이니 부질없는 기교의 난은 부당한 것이다. 기술에 치중하는 듯이 보이는 거의 열 손가락에도 남는 다음 제너레이션(문학의)이 증대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여 현재의 문학의 수준은 볼 동안에 쑥 솟아오르리라고 예상되니 과교(過巧)의 논은 그때쯤에 와야 할 화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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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기교라고 하여도 손가락 끝에 철필을 세우고 그 촉 끝으로 눈알을 희롱함이 참된 기교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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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s est celare artem. 참된 재주는 재주를 감춤이다. 꾀를 감춤이 한고패 윗 패이듯이 기교를 감춤이 도리어 참된 기교인 것이다. 말을 아끼지 말고 덜고 깎고 자랑하지 말고 뽐내지 말고 ─ 문학의 참된 기교의 길은 물론 어렵다. 서도(書道)의 극치는 수법의 조솔고졸(粗率古拙)에 있다고 하니 곧 문학의 기교의 길과도 통한다. 헛되이 풍윤하거나 화려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낡고 옹졸한 곳에 수련된 명장(名匠)의 손 자취가 엿보이고 유현(幽玄)한 문학의 길이 있다. 홍차가 아니라 떫은 녹차의 맛이어야 하고 사탕을 넣지 않은 쓴 커피의 맛이어야 한다. 이러한 경지의 숙달한 문학의 표본은 아직 문 앞에 보이지 않는다. 참된 기교의 길은 먼 것이니 논란의 여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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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1937. 6. 5
【원문】기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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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李孝石) [저자]
 
  동아 일보(東亞日報) [출처]
 
  1937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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