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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직업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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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12월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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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직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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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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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 부인네들이 직업이라는 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근대’의 정신이 들어와서 신분적인 제도가 차츰 잠적하면서 인민 각층에 직업의 제도가 확립되어 갈 때에 우리 부인네들의 직업 의식도 싹트기 시작한 것임을 틀림없겠으나, 제법 여성의 직업이 하나의 사회 문제로 성장되기 비롯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직업 여성’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10년 전후의 일이 아닐까. 적어도 우리 소설이 직업 여성이라는 작중 인물을 쓰기 시작한 것은 결코 오래 전부터의 일이 아니었다. 남성들의 직업 의식이 확립된 것은 퍽 오래 전부터의 일이 아니었다. 남성들의 직업 의식이 확립된 것은 퍽 오래 전의 일임에 불구하고 부인네들에게 있어 이것이 그다지 문제되지 않은 것은 첫째는 낡은 인습이 탓이었고, 둘째는 사회 기구가 별반 부인네들의 직업을 필요로 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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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 이전 낡은 사회에서는 부인네들은 가정 안에 매어 있어서 오로지 현처와 양모 되는 것만이 여성의 본분으로 되어 있었다. 창기(娼妓)나 무당이나 여비(女婢) 같은 것이 예외였으나 이들은 일반 천민으로 간주되어 스스로 사람 축에 끼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신분 관계를 타기한 뒤에도 직업에 나서기 위해서 가정 밖에 나오는 부녀들에게는 이러한 멸시가 오랫동안 따라 다니었다. 타방(他方) 조선의 생활 기구가 그다지 빠르게 자본제적으로 정비되고 발전되지 못한 때문에 부인네들을 근로하는 마당에 불러 낼 만큼 산업의 모든 부분이 난숙한 체모를 갖추지 못하였던 것도 원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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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의 경우에는 부인네들이 직업을 갖는 것의 단초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자각과 각오와 필요하였다. 최초의 부인의 직업이 교원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직업 여성의 선봉자가 자각한 신교육의 여학생들이었다는 것은 이러한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똑똑히 말하자면 그들은 직업 여성이라기보다는 더 많이 선각자적인 교육가였다. 직업이란 근로에 대한 보수가 필요하여 직장(교단)에 나서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를 인격적으로 살리고 동성에게 자기와 같은 각성을 주겠다는 선구자적인 자각에 의하여 가정을 나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일부 사회의 비난이나 가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굳은 자부심과 동시에 놀라운 긍지가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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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선에 있어서의 새로운 자본제의 산업의 발달은 대부대의 부인의 진출을 차츰 요구하게 되었다. 비로소 명실이 상부하는 부인의 노동자가 대량적으로 사회 기구의 부름에 응하여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방적과 생사계의 공장이 처처에 생기면서 손길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임금이 싸고 또 사나이들보다 부리기 편한 부인네들이 공장으로 뽑히어 들어갔다. 부녀자들 집안에 가두어 두던 낡은 사회적 관습보다도 그들에게 생활의 자(資)를 도움받아야 하는 가난한 가정의 현실이 훨씬 더 강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태껏 이들을 여공이나 부인 노동자라 불렀을망정 결코 직업 여성이라 부르지 아니하였다. 직업 여성이란 말은 부인네들이 사무소나 혹은 백화점 같은 데 진출하면서 생긴 말이며 이것은 거지반 이러한 대규모의 상업이나 기업이 형태가 우리 사회에 나타났다는 것과 동시기에 여자의 중등 실업 학교가 생겨났다는 사실과 부합시켜서 흥미있는 일이다. 여직공이나 여차장 등이 육체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데 반하여 직업 여성은 마찬가지 육체 노동을 바치면서도 어느 편이냐 하면 극히 상대적으로나마 지능 노동을 제공한다는 데 그 사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이피스트나 여점원이나 여사무원이나 양재사(洋裁師)나는 결코 짧지 않은 학교 교육을 요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밖에 여급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부인네의 직업이 생겼는데 기생이나 창기와 구별되는 점은 여급이 직(職) 얽매이는 형식, 다시 말하면 고용주의와의 관계가 훨씬 근대적인 점에 있는 것으로 그의 직무가 기생이나 다른 주점의 작부와 흡사하면서도 오히려 직업 여성의 이름이 적절한 것은 전혀 이러한 탓이라 하겠다. 이리하여 우리가 출입하는 사회와 가정에서는 지금 여러 층의 밖에서 일하는 부인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전문 학교 교원에서부터 각츠의 교원, 보모, 의사, 기자, 각종의 직업 여성과 각 산업 부문에 동원된 부인 노동자 ─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통계가 없어서 딱히 알수 없으나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들을 볼 수 없는 적은 대단히 드물게 되었다. 만약 가정 밖으로 부인네들을 불러 내는 일이 20년 내지 20년 전의 여성 문제의 안건이었다면, 부인네가 가정을 버리고 이렇게 여러 종류의 직장에 나선 결과 때문에 생겨난 사건으로 하여 금일의 여성 문제는 적지 않은 두통거리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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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가장 통속적인 한 가지를 들어서 말하자면 첫째로 ‘직업 여성의 결혼’ 문제가 있고, 둘째로는 그것을 거꾸로 한 것이지만 ‘결혼 후의 부인의 직업’문제가 역시 긴급하고도 딱한 문제가 아닐까. 이것은 사회학적 문제이면서 동시에 생물학적인 문제라는 데 통속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부인의 직업과 가정 제도와의 모순이 전자이고, 그것과 모성애와의 상극이 후자라고 볼 수 있으나, 생물학적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와 분리하여서 있을 수는 없을 것임도 넉넉히 추상(推想)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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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네들은 그들의 직업을 가진 채 결혼에 나아갈 수 있을까. 만약 결혼에 나아갈 수 있다면 현재의 가정 제도는 그것을 어느 정도로 허용할 것인가. 또 허용한다면 산아와 육아는 어떻게 할 것이며 아이들이 자라나고 아이들이 학교로부터 돌아오는 가정 안에 어머니의 배려와 사랑과 훈도(薰陶)가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인가. 좀더 생물학적 천착을 한다면 어머니 된 부인네는 아이를 내버리고도 안연(晏然)할 수 있으며 가정을 통해 남의 손에 맡겨도 마음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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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문과 질문을 던지고서 가만히 우리들의 직업 부인의 현상을 돌이켜 보면 독신을 지키는 부인네가 상당히 많은 반면에 결혼과 동시에 가졌던 직업을 내놓는 부인네가 대부분이라는 저윽이 범상되지 않은 현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직업이라는 것이, 그리고 가정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결코 순조롭게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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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을 가지기 위해서 일례를 들어 보자. 그 전 날의 자각한 부인 교육자들은 거개가 미혼이거나 독신자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이들은 가정으로부터 인격의 자유를 회수한 대신에 커다란 생물학적인 부자유를 둘러 지게 된 셈이다. 아내를 상실하고 어머니를 잃어버린 것이다. 남편과 자식들로 하여 받을 수 있는 가정의 단란과 조금도 다름 없는 독신 생활의 행복을 주관적으로 향락한다고 하여도 그들의 여성으로서의 가장 큰 성능과 기능을 상실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 『생활의 발견』의 저자인 임어당류로 말하자면 그들은 ‘무용한 주지주의에 붙들려서 외형적인 공적에 몰두’했다고 볼 수밖에 없이 되었다. 하마 부인 교육자가 아니고는 가르칠 수 없는 학문이나 부인 교육자가 아니고는 처리할 수 없는 교무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가사나 재봉도 숙수(熟手)나 양복 직공이 남성인 것을 보면, 반드시 여교원만이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은 아닐 상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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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남의 아내가 되지 않고 남의 어머니가 되지 않으면서까지 교육가가 되어야 할 자긍이나 공명심은 전혀 무의미한 허영심으로 된다. 독신주의란 말할 필요도 없이 자연에 어그러지는 일이며 인류와 민족과 국가의 경영을 생각할 때엔 하나의 죄악인 것이다. 독신주의자를 낳은 사람은 역시 어머니가 아닌가. 조선 사회에 독신주의자의 남성이 한 사람(?)도 없는 것은 유쾌한 일이지만 선각한 부인네들 중에 많은 독신주의자를 보는 것은 일부다처제처럼 불쾌한 일이기 비할 데 없다. 그러므로 본시부터 직업과 결혼은 상극해서는 아니될 물건이었다. 직업 때문에 결혼을 주저하거나 독신을 고집한다면 그는 인류의 경영을 모르는 사람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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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결혼 후의 직업 문제는 어떠한가. 만약 결혼과 동시나 또는 1년 전후하여(초임신〔初姙娠〕직업을 내놓은 부인네가 직업 여성 중의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라면 부인에게 있어 직업 문제란 거의 성립의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실상 딸을 실업 학교나 전문 학교(의약, 치 , 보육, 교원)로 보내는 가정의 심리를 알아 보면 다음 세 가지의 경우를 생각하여 딸의 장래의 생활을 보장해 주려는 전혀 소극적(消極的)인 착념(着念)이 지배적인 것이다. (1) 결혼하기 전 사회 경험이나 얻으면서 옷치레나 벌어서 하라고 혹은 집의 생활비나 약간씩 보조하면 다행이라고, (2) 결혼한 뒤 남편의 얼마 되지 않는 샐러리나 보조하면서 제 용돈이나 벌어 쓰라고, (3) 만약 불행하여 이혼이나 사이별(死離別)을 당하였을 경우가 온다고 하여도 제 생활만은 제가 개척해 나갈 수 잇게 하려고……. 그리고 사실은 앞일을 먼 데까지 살필 줄 아는 부모는 이 제3의 경우에 준비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딸을 직업적인 학교로 보내는 일이 뜻밖에도 많아진 것이다. 면허장이나 자격이 붙지 않는 실업 학교로 보내는 분들은 대체로 제1과 제2의 이유나 순전한 결혼 대기차로 통학시키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남편을 모시고 아이를 두셋씩 달고 직업에 나설 생각을 하는 당자도 없을뿐더러 그런 경우가 온다면 그들의 그의 직업을 상당히 불행하고 고된 것으로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직업여성의 직업에 대한 의식이 이처럼 소극적인 것과 동양(同樣)으로 그것을 양성하는 학교 교육의 목적도 말하자면 소극적인 점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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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식층의 직업 부인의 문제가 이렇게 애매한 데 반하여 하층 계급의 직업 부인의 문제는 좀더 절박된 현실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그들은 결코 여성을 인격적으로 해방하려는 고귀한 자가이나 긍지를 가지고 직장에 나서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대기하는 동안 사회 경험이나 치르고 화장품대나 벌을 양으로 직업에 나서는 것도 아니다. 좀더 절박한 문제, 좀더 절실한 욕구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현실의 명령에 의하여 그들은 가정이나 또한 젊은 환상과 꿈을 내버리고 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벌지 않으면 살수 없는 것이다. 단마디로 말하여 그들은 지나치게 가난한 것이다. 결혼이 생활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그들은 언제나 직업을 던져 버릴 용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영등포 같은 데 와 있는 농촌 출신의 부인 노동자를 보라. 양미간을 찌푸리고 고함을 지르는 여자 차장을 보라. 연초와 고무와 양복과 제사에 종사하는 가정 부인네들을 보라. 이들은 누구나 결혼을 갈망하고 있고 가정의 꿈을 지니고 있고 남편을 섬기는 것과 아이를 기르는 것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도 실상은 가정이나 모성애가 직업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가고 싶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 나가는 것이다. 여성은 가정 안에 있는 것이 원칙이란 말은 공연한 남성들의 폭언만은 아닐는지도 모른다. 가정 제도만이 여성을 가정 안에 붙들어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생물학적인 본성이 가정 안에 있는 것을 밖에 나가는 것보다도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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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앞으로 더욱 더 부인네들게 직업을 요구하고 가정 외에서 근로하는 부인들 대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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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피치 못할 일이다. 외국의 실제를 보아도 그러하다. 전지(戰地)에 나가는 데 있어서 부인보다도 남성이 우월된 기능을 발휘하는 동안 이렇나 경향은 더욱 더 증가될 것이다. 전쟁 전에도 소련이나 독일 같은 데서는 많은 부인 노동자를 배양하였고, 아메리카 같은 사회에서의 직업 부인의 지위는 상당한 수량을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국에서는 직업과 가정 제도, 직업과 모성애의 상극은 어떻게 해결짓고 있는 것일까. 우선 가족 제도는 우리의 경우와 다르니까 우리처럼 심각한 모순은 없다 쳐도 생물학적인 본성과의 모순은 어떻게 해결짓고 있는 것일까 산아 제한 같은 것이 일시 유행하였으나 ‘낳아라! 늘리라!의 정책 이래 신통치 않아졌을 것임은 물론이다. 결국 이 모순을 될수록 적게 하는 사회 정책이나 시설이 고작이 아닐까. 산전 산후에 대한 적의(適宜)한 처치, 육아에 대한 사회 시설, 아동 교육에 대한 국가의 격별(格別)한 배려, 그리고 끝으로는 저윽이 심리적이지마는 노동의 신성(神聖)과 노동의 즐거움과 환희를 강조하고 선전해서 가정에의 애착과 모성애의 본능을 적게 만드려는 각종의 심전개발적(心田開發的)인 시책 등. 그러나 이러한 사회 시설이나 국가의 배려 자체가 여성에겐 직업보다도 가정이 더 본성에 합당한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여성의 직업 문제가 해결하여야 할 가장 근원적인 안건은 의연히 그대로 남아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앞으로의 인류의 경영을 꾀하는 분들의 저윽이 큰 두통거리가 되리라고 생각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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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940년 12월호)
【원문】여성의 직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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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남천(金南天) [저자]
 
  여성(女性) [출처]
 
  1940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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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