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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심(人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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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계용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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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人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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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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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어떤 벗을 만났더니 그 쓰고 다니는 모자가 격에 맞지 않게 이상하였다. 껌정 바탕에 흰 줄 퍼런 줄이 서로 엇갈린 좁디좁은 리봉을 두른 싯누런 대만 파나마였다. 오십대에 가까운 그에게는 그 빛깔이며 제조된 품이 어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것도 작기가 엄청나게 작아서 머리에 썼다고 하기보다는 올려 놓았다고 함이 적당하게 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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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검소한 분이 되어서 언제든지 그 차림새에 무슨 모양이라든가 그런걸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의관을 격에 맞게 단정히는 차리고 다니는 성격이었는데 모자는 도무지 그의 성격과는 어울릴 뻔도 아니한 모자였다. 아무리 보아도 수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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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그거 금년에 산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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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물어보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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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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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히죽이 미소를 짓는 폼이 스스로도 우스운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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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그 우스운 이유를 못내 우스워하는 듯이 빙글빙글 그냥 웃고만 있는 태도가 어째 나더러 어서 그 이유를 캐고 물어 달라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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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 보아도 그 모자는 어울리지 않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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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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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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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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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어울리구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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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야, 남에 걸 얻어 썼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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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여전히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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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형 건 어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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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어. 남들은 맨머리로두 잘들 다니두만 난 무슨 점잖을 내서가 아니라 습관을 그렇게 길러 놓아서 모자 안 쓰군 밖에 나서기가 뭣해서 모자 걱정을 했더니 어떤 친구가 하나 쓸 테면 쓰라고 주둔 그래. 그래 쓰긴 썼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모자에 대한 인사를 받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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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무릎 위에 벗어 놓았던 모자를 다시 주워 들고 원 이게 그렇게도 보기 흉할까 하는 듯이 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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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월급쟁이루야 모자를 살 수가 있어야지. 웬만한 것도 값을 알아 보니 만 원이 넘어. 그러니 맨머리룬 나다닐 수가 없구, 격엔 맞지 않아두 썼지 별수 있어야지. 난 모자두 모자려니와 여름에두 꼭 조끼를 입어야 마음이 가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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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남은 다들 노타이 바람인데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조끼까지 받쳐 입은 앞가슴을 슬슬 쓸어 보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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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재미있는 세상이야. 허무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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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자 이야기의 흥미는 이제부터라는 듯이 여전히 빙글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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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죽지 않구 모자만 잃은 것두 다행이야. 혜화동서 성북동 사이의 그 고개탁 길을 만원 전차는 내달아 올라가다가 그만 탈선 전복이 됐지. 내가 전차를 탔었거든. 꼭 죽는 줄 알았어. 그저 몸이 갑자기 휘청한다고 알고는 전복인지 무언지 그 순간 정신이 없었지. 정신 없는 시각이 얼마나 경과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뭇 발들이 모가진지 가슴 패긴지를 가리지두 않고 자꾸 지리밟으며 왔다갔다 하는데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을 때에야 전차가 전복이 되고 나는 쓰러진 전차 바닥에 네 활개 쭉 펴고 근더져 있었음을 알았단 말이야. 그적에야 나는 아차 큰일났구나. 전차 전복이구나. 이러단 밟히여 죽겠다. 어서 일어나자 정신이 들었으나 앞으로 뒤로 자꾸 서루 떠밀며 오고가는 뭇 발이 가슴으로 목으로 사정없이 연달아 밟아내는 그 통에서 몸을 뒤잴 수가 있어야지, 참 급하둔. 그런 걸 어떻게 태수를 하다 비비댕겨 간신히 일어나 보니까 그적엔 벌써 승객은 반 이상이나 빠져 나가고 전차 안이 좀 휑해진 짬이지 사지를 놀려 보니 괜찮은 것 같애 상처는 요행 없나 부다 하고 안심을 하고 나도 내리려고 머리를 쓸어 보니 머리엔 모자가 없지 않겠나. 세상에 이런 법도 있소? 전차가 전복되어서 피를 흘리며 사네 죽네 하고 오구장단이 일었는데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남의 물건을 훔친다는 거야, 어디 세상에······. 눈들이 뻘개서 차 안을 델편델편 살피다가는 만년필일지 고무신짝일지 그저 무어든 눈에 띄이는 대로 슬쩍슬쩍 집어 넣는 친구가 있다면 더 할 말 없지 않아. 이걸 보니 내 모자는 벌써 어떤 친구가 집어 가지고 내려간 게 빤하더군. 전차 안에 떨어졌을 모자가 차 안에 없을 말룬. 어쨌든 무슨 물건이건 몸에서 떠나 있기만 하면 그건 내 물건이래두 내 것이 안 되니까. 그저 내 것이면 손에 다 꽉 부러쥐고 있어야지. 인심 참 고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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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그는 어처구니없는 듯이 그리고 재미있는 현상 아니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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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백주 대로에서 부인네들의 가슴에 달고 다니는 금단추를 오다가다 마주치는 것처럼 콱 가슴에 안기어선 떼어 가지고 달아나는 세상인데 그까짓 손안에서 벗어난 물건쯤 슬쩍 들고 달아나는 건 예사일는지 모른다. 눈을 감으면 코를 베어간다는 것이 서울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벌써 동화같이 아득한 옛날 이야기에 속한다. 눈에 꼈던 안경을 전차 안에서 쓸렸다는 친구도 있다. 지금은 눈 뜨고도 눈알을 빼앗기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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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고 사람 사는 사회에 선악의 대등이 없으련만, 해방 후 이렇게도 인심이 포악해졌다는 것은 무슨 때문일까. 나는 길을 가다가도 미군의 작업복을 너슬너슬하게 입고 개털 모자를 머리에 쓴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멀찌감치 피해서야 간다. 내 몸에 돈 없고 아무 잘못 없지만 어쩐지 그런 사람을 보면 이짝에선 점잖게 얌전히 입을 붙이고 가만 있어도 무어 잘못했다고 생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까 보아 슬근이 겁이 나는 것이다. 한 번 웃고 말 성질의 것에도 눈에 핏대를 돋우세우고 따지는 시비가 노상에는 가끔 있으니 이 시비에 대들 철학과 완력의 수양을 이미 닦아 넣지 못한 사람으로선아니 겁이 나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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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잘못인지도 모르게 복잡한 인파 속에서 오다가다 서로 부딪쳐 이마빼기를 받게 된다든가 발을 밟게 된다든가 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요, 약간의 피해가 설혹 있다 하더라도 고의가 아닌 이상 참고 지나는 것이 예의일 것이어늘 혹은 자기의 부주의에 부끄러움을 느끼어 남이 볼까 두렵게머리를 숙이고 달아남이 마땅할 이런 경우에 처해서 한쪽 상대는 한쪽 상대에게 눈에 핏대를 세우고 불문곡절 뺨을 갈기고 구둣발을 건네고 하는 야만질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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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보객뿐이 아니라 차류도 무섭다. 교통의 율칙은 자기가 범하고도 행객 더러 피하지 않았다고 행악을 하기가 예사다. 언젠가는 을지로 노상인데, 뒤에 찝차가 달려오는가 보다 했더니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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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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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소리와 같이 문이 절컥 열리고 맨머리에 미군 작업복을 입은, 많이 나서야 나이가 스물셋이 채 되었을까 말까 한 겨우 소년의 티를 면한 승객한 사람의 새파란 청년이 머리를 쑥 내밀더니 차가 지나가는데 피할 줄도 모르고 귀는 뭣 하러 달고 다니며 눈은 그게 가죽이 모자라서 내어놓았느냐고 하는 서슬이 푸른 호령에 어처구니없는 명을 한 바탕 개어내고 맞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돌아선 일도 있지만 이렇게 여러 모로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이 되었고 무서워하지 않을 수 없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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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일본 천황 히로히도가 눈물을 흘리며 항복 방송을 하던 그 흐느낌 소리가 우리들의 귀에 아직 젖어들 때의 그 살이라도 서로 베어 먹일듯이 있는 마음을 다해서 베풀던 인심 그 인심은 어디로 갔을까. 해방이 가져온 인심이래서 눈물겹던 그 심정이 이렇듯 냉정한 인심에 다시 눈물이 겹게 된다는 것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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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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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단행본〕 *『노인과 닭』(범우사, 1976)
【원문】인심(人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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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3년 03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