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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분열의 초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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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26~
김남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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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기분열의 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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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에 있어서의 주체와 객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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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자기 분열을 반영하고 작가가 자기의 속에 극도로 격화된 자기 모순을 경험하는 시대는 물론 정상적인 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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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선배는 그러나 씨족적 제도의 원시적 통일이 한번 부서져서 그곳에 사회와 개인의 모순이 찾아온 이래(邇來) 이러한 정상적인 시대는 다시금 인류의 역사를 방문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그는 희랍예술의 영원의 매력과 관련하여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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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곤란은 희랍예술과 서사시가 어떠한 사회적 발전형태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금(尙今)도 우리들에게 예술적 향기를 주고 또 어떤 점으로는 규범으로서 그리고 미칠 수 없는 모범으로서 통용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다. 어른은 어린애 같은 모양이라도 하기 전에는 두 번 다시 어린애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어린애의 순진은 그를 즐겁게 하고 그는 다시금 그 진실을 보다 높은 평면에 재생산하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것인가? 유년성의 속에야말로 어떤 시대에든지 그 자신의 특성이 자연적 진실에 있어서 소생되지는 않을런가? 인류가 가장 아름답게 전개되어 있는 인류의 사회적 유년시대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계단으로서 어찌 영원한 매력을 발휘해서는 안될 것인가? 발육이 잘 안된 아이가 있고 조숙한 아이가 있다. 고대의 민족에는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 많다. 희랍인은 정상한 어린아이였다. 그들의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그것을 생장케 한 미발달적인 사회적 계단과 모순하는 것이 아니다. 매력은 오히려 후자의 결과이며 그 예술이 성장하고 그리고 그 밑에서만 성장할 수 있는 미성숙한 사회적 제 조건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과 불리(不離)의 관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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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에서 보는 바와 같이 희랍예술과 서사시의 현대적 매력은 이것을 생장케 한 씨족사회, 다시 말하면 개인과 사회(집단)가 원시적으로 통일된 인류의 정상한 유년시대였다는 데 있다고 그는 말한다. 개인과 사회와의 모순이라든가 이상과 현실과의 분열이 없고 개인의 사유 의지가 그대로 종족 씨족 사회 그것의 사유 의지로 되는 시대, 그러므로 종족의 모순과 자기분열 가운데서 번민하여 머물 날이 없는 현대인에게 있어 그것은 절대의 매력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강한 정상한 유년시대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반영한 그들의 예술은 가장 원시적인 단순한 리얼리즘에 의하여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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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아적 단일에 있어는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인 이상과는 분열되지 않고 인간 자신이 순수한 자연이고 인간은 천진난만하여 사기(邪氣)가 없고 분열되지 않은 감성적으로 조화된 통일체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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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된 계급사회의 출현 이후, 그러나 이러한 정상적인 시대는 다시 인류의 역사를 찾지 않고 그곳에 고저의 정도는 있을망정 끊임없이 격화되는 모순과 분열의 시대가 면면한 줄을 끌고 금일에 이르렀었다.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영웅적 서사시의 시대는 이미 간 곳 없고 희곡의 시대도 18세기로 종말을 고하여 시대는 시민사회가 그의 대단원을 초치하고 있는 ‘알게마이네 크리제’의 시대에 있어서는 예컨대 조이스와 프루스트의 제작(諸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는 혹은 옹졸스러우나 구태여 예를 우리 문학에서 끌어본다면 박태원씨의 「천변풍경」에서와 같이 장편소설의 형성, 그 자체의 붕괴에 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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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분열의 시대에 탄생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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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것이 극도로 뒤엉켜서 가지각색의 고질이 만연하여 그것이 모순인 것까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잃어버린 시대에 탄생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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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이야기된 뒤였다. 사람이 어찌 사고하기 7천 년여 너무나 뒤늦게 세상에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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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폐(老廢)해버린 세상에 나는 너무 뒤늦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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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부르짖는 라·부류이엘과 뭇세가 이 뒤늦은 탄생을 어떻게 인식하였는가에 있는 것보다도 흥미는 오히려 이들이 이것을 어떻게 처분하였는가에 있지 않을런가. 확실히 그들은 희대의 예민한 감수성, 보들레르와 같이 이 뒤늦은 탄생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의 향락으로 옮아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스스로 테카당스(퇴폐)의 이론가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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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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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개인과 사회, 내지는 사회와 예술과의 원시적인 통일이 깨어지고 유구한 역사가 그곳에 머물 수 없는 분열과 모순을 경험하면서 금일에 이르는 동안 예술, 문학은 무엇으로써 인간의 진보에 공헌하였고 어떠한 모양으로 이를 통과하면서 이 모순의 극복과 해결을 위하여 노력하였는가. 한 권의 문학사를 더듬어 우리가 한가지로 노리는 바는 실로 뭇별과 같이 빛나는 희세의 천품들이 이의 극복을 위한 불굴의 노력에 의하여 영원히 빛나는 광채를 후세에 나기었고 다시 이와의 고투에서 패배한 수많은 시체와 이것과 실갱이하는 동안에 흘린 늠름(凜凜)한 혈흔이 서로 엉크러져서 종이의 갈피갈피에 가로누워 있는 것을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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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라고 불리워지는 거개의 거장은 분열을 반여하고 모순을 적발하는 고매한 정신에 의하여 모순과 분열의 초극을 위한 성전(聖戰)에 객관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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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증적 예술이론 이전 우리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남겨주는 관념론 미학의 최대의 성과자 헤겔이 예술의 주제와 예술과 사회의 모순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심오한 사색을 거쳐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렀으며 해결의 일보 전에서 이율배반의 마의 바퀴를 예술 사멸의 선고에 의하여 물리쳐버린 것은 우리에게 가장 교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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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의 타협자나 그의 옹호자에 있어서는 예술의 주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 통례였고 그러므로 헤겔 이외의 관념론 미학은 하나도 무엇을 그릴 것인가의 문제 앞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헤겔은 그의 미학에서 용감히 예술의 주제는 세계사적인 전사회적인 관심 하에 그려지는 세계와 인간의 필연적 행동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甘粨石介[감백석개]역 『헤겔미학의 변증법』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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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그는 그 자신이 살고 있는 근대사회 그 자체가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느냐 하는 흥미 있는 부면에 손을 뻗침에 이르렀으나 이곳에서 그는 근대사회의 산문성과 예술과의 극도의 모순 앞에 마주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는 “세계사적 과정에 참여하고 혼자서 거대한 사회적 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자유로운 자립적인 인간”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데 그의 주위의 어느 곳에서도 그는 그런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왕후, 장군, 시민, 제4계급 그 어느 곳에서도 그는 이러한 인간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사회는 무한히 분화하여 조직은 복잡해지고 직업은 전문화, 기계화되고 자기의 심정과는 무관한 법령은 지나치게 냉혹하여 인간은 자기의 자유 의견에 의하여는 아무것도 행동할 수는 없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민족제도(民族制度) 시대의 역사적 통일에 비하여 이는 너무나 산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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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개인의 통일이 깨어졌을 뿐 아니라 세계는 세계로서 그리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다시금 갈기갈기 분열되어 있는 곳에 근대사회의 산문성을 규정하는 특수성이 있다 할까. 여하튼 헤겔은 이러한 사회, 이러한 인간은 예술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이리하여 그는 드디어 자유 획득을 위한 영웅적 인간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한다는 고육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중세가 아닌 근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인간은 영웅이 아니고 시민적 질서의 반역자로서 범죄자로 자멸하여 버릴 것이라고 한다. 결국 그에게 있어서는 근대사회의 산문성의 지양은 절망적인 것으로 보이었고 동시에 그곳에는 영원히 그가 요망하는 자유로운 자립적 인간은 찾아볼 수 없으므로 위대한 예술은 이곳에 사멸해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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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이 결론은 물론 지극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역사적 제약성에 의하여 이 산문사회의 현실적인 지양의 조건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또한 장편소설의 리얼리스트 맹장들이 이러한 산문적인 현실을 직시하여 그의 분열, 모순을 용감히 묘파하는 가운데서 그의 훌륭한 예술의 길을 발견하고 그것을 후세에 이방에 사는 우리들에게까지 남겨 주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술과 현실사회와의 모순, 그리고 개인과 사회의 분열의 해결을 예술의 사멸이라는 지극히 무력하고 항복적인 문제의 안출(案出)에 의하여 결론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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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곳에 모순과 분열을 그대로 제시하는 가운데서 그의 표면을 현란히 화장하여 스스로 그것의 총아(寵兒)가 되어버린 흥미 있는 하나의 대상으로 붓을 돌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는 오늘 이 순간까지 항간에 수없이 많은 찬앙자(讚仰者)와 모방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저 『악의 화(華)』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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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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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성찰은 우리 문학의 현상에 있어 지극히 시상성을 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알게마이네 크리제의 시대에 있어서 가장 영향을 주고 있는 현혹한 문학일 뿐 아니라 현대청년에게 침윤되는 감염성에 잇어서도 결코 적게 평가할만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험삼아 한 권의 시잡지를 들고 보라. 또는 혹은 문사 제씨의 한 가닥의 수필을 보라. 무수한 유상무상의 보들레르의 맹목적 인용자, 에피고넨, 모방자, 동감자 - 이리하여 조선의 신세대는 보들레르의 ‘저충(蛆虫’에 의하여 좀먹히우고 썩어가고 있다. 보들레르의 비밀은 수다한 우리들의 비밀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계시에 차있는 독서를 즐기는 청년의 비밀로 되는 기회도 또한 적지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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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부르제는 그의 『현대심리에 관한 시론』제1조에서 “보들레르에게는 위선 연애의 특수한 개념이 있다. 그 신념의 특질은 우리들의 사회와 같이 조화를 상실한 범주에 속하여 있는 세 개의 형용사에 의하여 상당히 정확하게 표현되리라고 생각된다.”고 말하면서 다시 이 세 개의 전혀 조화를 잃은 형용사를 설명하여 “동시에 신비가이고 쾌락아이고 특히 분석가이다” 라고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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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3종의 근대적 결합이 종교적 신념의 위기, 파리(巴里) 생활, 현대의 과학정신 등에 의하여 가공되어 그의 융합에 이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정을 모르는 순결에의 갈망이 육욕에 의하여 가장 강렬하게 자극된 환락에의 격렬한 기아(飢餓)와 혼교(混交)되어 있다. 수다의 착란에 의하여 위협을 당하면서 분석가의 이지는 언제나 참혹하게 엄연히 그 힘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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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신비감이란 지성의 방축(放逐)에서 홀로 분리된 감각의 속에 남아있는 최후의 잔재이고 쾌락이란 건전한 인간적 이상과 사회적 행동에서의 도피가 가져오는 유일의 배설처가 아니었던가. 그러면 이러한 것과 혼연히 융합하는 분석적 정신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착란한 감수성의 자기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자기 분열을 의식하고 극도의 모순 속에 처하여 있는 자기 자신을 깨닫는 가운데 다시금 그의 위치를 초극하려 않고 그의 환경을 스스로 향락하는 교양인의 교만한 정신의 유희. 그러므로 그것은 부르제와 같이 분석가나 과학적 정신으로 표현할 것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에 대한 권태나 공포, 허무에 대한 흉포한 욕망과 기호가 추급(追及)하는 착란하고 전도된 신경의 불합리한 천착을 분석이라고 일컬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들레르는 극도의 염세주의와 구할 수 없는 허무주의와 데카당스의 이론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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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우리는 조선문학이 가지는 유일의 보들레르적 존재, 그리고 이러한 퇴폐적인 병리적 분위기를 가장 많이 그의 예술에 표현한 고 이상(李霜)의 제작을 일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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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기사로서의 교양을 쌓아 가지고 세상에 나오자 맨처음에 지식, 기술과 사회와의 새에 극도의 모순을 발견한 젊은 감수성이 그 뒤에 스스로를 데카단이라고 선언하였는지는 과문한 필자의 알 길이 없는 바이어니와 가공 할만한 방약무인의 태도로써 그가 ‘유곽과 같은’ 침침한 작은 방 안에서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며 현실에서 패배하고 생활에서 유리된 무능한 인텔리의 병적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희롱하고 속세에 대하여 역설을 던지며 홀로 자기분열을 향락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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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초조해보고 스스로 안타까워하고 의심하고 일부러 애써 ‘연구’ 하였다. 그가 작품의 처처에서 사용한다는 “나는 열심히 연구하여 본다”는 것은 단순한 상식적인 성질로 보건대 하나도 연구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내객(來客)이 처에게 어째서 돈을 줄까 하고 연구해 보았고 다시 처는 어째서 매일같이 50전의 은화를 자기에게 주는 것일까 연구해보나 상식인에게는 하등의 연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뻔한 사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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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상 자신도 이것은 잘 알고 있다. 그는 그 연구의 아슬아슬한 과정을 스스로 향락하고 싶을 따름이다. 무기력, 무능력, 무의미를 신비화하고 과장하여 그는 그의 동물적 상태를 득의의 신경기능에 의하여 분석(연구)한다. 물론 이 분석은 착란되고 거꾸로 선 자의식이다. 그러면서도 자의식이 홀연히 정지되는 순간 그는 현실에서의 비상을 꿈꾸어 날개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이 분열이나 모순의 극복을 위한 집착(執着)한 비약이 아니라 현실 생활의 권태에서의 신비적 여행인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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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이후의 「동해」「종생기」등을 보면 전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허세가 도처에 느물거리고 있다. 신부와 얼굴과 완력에 대한 허세, 이 자각된 최후의 허세는 불쌍한 자기분열의 최종의 자기희롱이 아닐런가. 그는 의식했던 안 했건 하나의 단명한 데카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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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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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문제는 보들레르와 이상이 자기분열의 향락자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데카단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느니보다도 이것이 여하히 하여 발생하였으며, 그리고 조선문학의 새로운 세대들에 대하여 이것이 그처럼 매혹적인 이유가 어데 있는가를 구명하는 데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풀 부르제도 전기의 저술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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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장 빈번하게‘불건전’이라는 형용사를 그의 이름 위에 얻어 달지 않으면 안되었던 작가일 것이다. 이 형용사가 만일 상술한 바와 같은 종류의 정열이 그의 요구에 적합한 환경을 발견하기는 지극히 곤란하였다는 의미로 쓰여졌다면 그것은 정당하다. 인간과 환경과의 새에 모순이 있다. 그 결과 정신적 위기와 심정의 고민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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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만일 ‘환경’이란 말 대신에 ‘사회’라는 두 자(字)를 갖다 놓으면 이야기는 한층 더 정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빌려오면 데카당스의 발생적 근거는 더욱 더 명백해지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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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시민적 이데올로기는 자기의 역사적인 운명을 현실적으로 생활하면서 장래 세계에 대하여 건전한 이상에 불타고 있었다. 임페어리얼리즘의 이데올로기는 현실의 세계사적 동향에 대하여는 온전한 개인주의적 맹안자(盲眼者)이었다. 혹자는 풍윤(豊潤)한 이윤의 분배를 가슴에 안고 새로운 생활관계가 가져다준 도락에 자기만족하여 있었다. 기외(其外)의 다수한 소시민적 이데올로기는 가혹한 현실에 눌리워서 현실공포증에 걸려 있었다. 심오한 세계관이라든가 거대한 사회적 관심이라든가를 완전히 상실해 버리었던 그들은 두드릴 문을 발견할만한 눈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현실로부터의 각양각색의 도피와 염가의 회의주의와 쾌락주의가 그들이 의뢰할 유일의 지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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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선의 새로운 문학적 세대들의 보들레르 열(熱)은 자기가 실행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앞서서 단행한 것에 대한 매혹, 그리고 자기분열을 초극하려는 문학적 에스프리 대신에 모순의 소심한 향락적 심리의 대치, 통틀어 청년들의 정신적 생활적 빈곤의 문학적 투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희랍예술에 대한 매력이 그의 건강성에 있다면 보들레르와 이상에 대한 매력은 그의 병적인 곳에 있다 할 것이다. 현대의 자기분열은 일방으론 건강성, 타방으로 병적인 곳에 있다 할 것이다. 현대의 자기분열은 일방으론 건강성, 타방으로 병적이고 퇴폐적인 곳에 그의 취미의 화합할 수 없는 양극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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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분열을 향락하거나 모순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의 초극과 통일을 꿈꾸어 적극적인 상극 속에서 산 보다 생기 있는 문학적 전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망각할 수는 없다. 허다한 리얼리스트 그 중에서 만일 괴테를 들어본다면 그는 이 모순을 무난히 간파하여 가장 쉽사리 처리해버린 중의 한 사람인 듯하다. 그는 개성의 반역과 사회환경에의 순응과의 간(間)에 능순(凌巡)하기를 거부하고 “개인에게 있어서는 귀속한다는 것은 오직 사회에 봉사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하여 봉사하는 것으로도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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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들의 흥미가 예술과 현실생활과의 극도의 상극에서 허둥지둥하면서 끝까지 이 갭에서 물러나지 않고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도록 질식할 듯한 번민에 머리를 잡아뜯던 ‘복수와 비애의 시인’ 네크라소프에게로 옮아감을 걷잡을 수 없는 것은 어인 일일런가. 역시 우리에게는 만족한 바이마르의 대신보다도 시정의 일개 시인 문필노동자의 끊임없는 고투가 매력이 있는 때문일까. -“자기의 과거의 생활 속에서 목격한 많은 사람들같이 지붕 밑 누거(陋居)에서 뻐드러져 죽어버리는 경애(境涯)에는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은 그 순간부터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져서 그림자도 남기지 않는 그러한 경애(境涯)에도 있고 싶지 않다. 그리될 바엔 나는 오히려 블라디미르 가도(街道, 세베리아로 가는 길)를 택할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엄습하는 이러한 내심의 갈등에 의하여 나는 번뇌를 거듭하고 있었다. 영원은 한가지를 속삭인다. 그러나 현실생활은 전혀 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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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안정을 구하는 마음과 시대의 선구자적 이상에의 동경과의 새에 부동하는 네크라소프는 그 자신 가장 격심한 자기분열의 체험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임종의 때에 이르도록 ‘불쌍한 일(一) 시민’인 자기의 시가 민중에게 조그만 양식이라도 될 것인가 하는 불안을 떨쳐버리지는 못하였다. 이리하여 그의 세계의 이원성은 우리에게 거대한 애모의 정을 일으키어 마지않는다. 이것은 당시의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하나의 공통된 체험이었고 동싱에 이 역사적 순간에 처한 우리들의 부인할 수 없는 일반한 심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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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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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우둔하고 문화적 전통이 희박한 우리들에게 있어 자기분열이나 혹은 주체의 성찰이란 것이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서 등장하게 되는 국면은 그러나 보다 더 구체적이고 특수적인 부면에 속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의 사회적 근거를 찾아 올라간다면 개인과 사회와의 괴리나 사회의 신분적 내지는 계급적 분열에 부딪칠 것이며 다시 더 쫓아 올라가 본다면 그것은 생산제관계의 생산제력과의 모순이라는 초점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물론 . 이러한 일반적인 관찰은 필요하고 정당하다. 그러나 원리의 해명이 그대로 곧장 시사성을 띤다고는 일률적으로 단언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들에게 있어 논의되고 있는 바 자기 분열의 문학적 초극은 실로 이 비비드한 부면을 취급하는 마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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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상과 같은 원리의 위에 서서 우리는 위선 이 땅의 문학하는 사람들이 소시민 지식층이라는 것을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의 결과 우리는 그가 처하여 있는 바 역사적 지위를 과학적으로 인식함에 이른다. 이렇게 인식된 것이 현재의 순간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설정된 문학의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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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객관세계의 모순이나 분열이 문제인 것보다도 주체 자신의 타고난 운명에 의한 동요와 자기분열이 중심이 되어 우리의 앞에 대사(大寫)되었다. 아니 객관세계의 모순을 극복하노라고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았던 주체가 한번 뼈아프게 차질을 맛보는 순간 비로소 자기의 속에서 분열과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며 이것의 정립과 재건 없이는 객관세계와 호흡을 같이 할 수는 없으리라는 자각이 그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과정으로 정시(呈示)되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관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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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운명을 거대한 집단의 운명에 종속시키고 불이 이는 듯한 열의를 그 속에 발견하면서 그곳에서 혼연히 융합되는 객관과 주체의 통일을 현현하던 고귀한 순간은 그러나 한번 물결이 지난 뒤에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를 주시해 볼 때에 그것은 실로 관념적인 작위의 여행계절이 아니었던가 하는 적막한 자기성찰을 가짐에 이른다. 혹자는 애상과 감상을 읊조리며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하여 그곳에 아무러한 상극도 경험하지 않으려고 급각도로 순수예술의 항구에 직행하였다. 혹자는 그곳에 자기비판이란 언급을 걸고 승려적 참회를 되풀이하였다. 그리고 혹자는 자기를 합리화하기에 바빠서 한번은 인간에의 귀환을, 그리고 그 다음엔 왜곡된 휴머니즘을, 또 혹은 전통의 세계를 배회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이 과정을 결코 소홀히 취급하지 않으려고 갖은 악매(惡罵)와 조소를 받으면서 불이 닿는 듯한 열의를 가슴에 숨긴 채 고요히 자기를 수습하려는 성실한 양심이 결코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부서지고 깨어진 자기를 부등켜 세우고 주체의 분열을 초극하는 길을 안타까이 찾으려고 극도로 준엄한 박탈(剝奪)의 탈을 들고서 자기 자신을 고발하려는 에스프리가 즉 이것이었다. 우리는 지난날의 일체의 문학적 실천의 과오와 일탈을 소시민적 동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개괄해 본다. 주관주의적 내지는 관조주의적인 창작상의 제 결함을 주체의 소시민성에 귀납시켜 본다. 이러한 때에 어찌하여 「주체의 재건과 문학세계」의 논자는 주체 그 자신의 속에서 분열과 모순을 발견하려 하지 않는가! 주체 자신의 소시민성을 어찌하여 뚜껑을 덮은 채 홀홀히 지나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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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세계에선 허영은 금물이다. 허세도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순간에 있어서의 문학의 주체를 구체적으로 성찰함에 결코 인색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것의 성찰을 회피하는 마당에의 논의되는 주체와 객관의 문학적 통일의 문제란 한낱 추상적인 문화적 유희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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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도목건작(島木建作)의 장편에서 일개의 학생이 자기분열을 농민에의 전화에서 초극하려고 그곳에 눈물겨운 고투를 전개하는 것을 보았다. 「생활의 탐구」의 주인공이 지식인으로서의 극도의 번민을 농민에의 자기 개조에서 해소하려고 그곳에 주체의 건립과 객체와의 통일을 기도하는 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잔인하게 박탈하고 고발하는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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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1.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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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론 소시민 지식인 일반의 문제라는 것보다도 구체적으로 우리에겐 문학자가 문제이었다. 소시민 지식인으로서의 문학자, 시민사회의 서자로서의 문학자! 이것의 성찰 뒤에 오는 문제를 우리는 집요하게 따라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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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 문학에 있어서 객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함일런가? 쉽게 말하여 그것은 묘사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말하여 문학적으로 파악되고 인식될 객관세계다. 문학을 인식론과 교섭시킨 현대 유물론의 공적은 이곳에 가장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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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객관세계를 인식하기 위하여는 과학으로서 충분하지 않았는가. 이곳에 세계관이 절대적인 연관성 밑에 지도적 지위를 가지고 문학에 임하면서도 역시 문학의 주체는 세계관의 이론적 파악만으로는 건립되지 못한다는 이유가 있다.(흔히 세계관이라면 어떤 특정된 주의 학설을 연상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그렇게 협착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역시 호판윤(戶坂潤)류로 세계직관이라고 넓게 생각해 봄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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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문학의 주체로서의 작가에게 있어서는 역사, 계급, 민족, 사회, 국가, 인류의 높고 깊은 문제를 얼마나 절실하게 자기 자신의 절박한 문제로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였다. 문학에 있어서는 주체와 객체의 교섭과 통일이 이러한 국면으로써 제출되는 때문이다. 객체로서의 생활과 세계가 알게 마이네 크리제의 시대에 있어서는 구체적으로 여하한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절실하게 자기 자신의 것으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가운데서의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회 전반의 문제 속에서 해결하면서 있는가가 중요하였다. 이것 없이는 주체와 객체와의 통일은커녕 터무니 객체에 대한 문학적 파악, 예술적 인식이 성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체가 자기 분열된 것을 그대로 방기하고 앞질러서 그와 객체와의 통일을 말하여 버렸다. 우리는 좀더 주체의 수습과 건립을 위하여 사색을 계획할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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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순간에 있어서 문학의 주체를 소시민 지식인이라고 구체적으로 설정해 놓고 다시 그것이 한번 한정을 모르는 비둘기와 같이 비상하였다가 가책(苛責) 없는 현실에 부딪혀서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는 것과 그리고 그것이 격렬한 자기 분열의 속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 등을 우리는 위에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작가는 리얼리즘의 가운데에 아이디얼리즘이 침범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는 것도 위에서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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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나는 이러한 모든 것의 극복을 위하여 일찍이 고발의 정신을 제창하였고 다시 치열한 자기분열의 속에서 주체를 건립하는 최초의 과제로서 자기고발의 문제를 제기하였던 것이다. 나는 누누히 이야기해온 이 문제를 이곳에서 다시금 되풀이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하나의 가장 유력한 비판에 대답해둘 필요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가로되 고발정신은 현실의 암흑면만을 보고 긍정적인 면은 보지 못하므로 일면적이고 부정적인 리얼리즘에로 통하는 에스프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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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체 이러한 변증법이 나는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고 또 한편엔 부정적인 면이 있다. 예술은 이 중의 어느 한편만을 그려서 아니 된다. 그것은 일면적이다. - 이러한 평등이론, 공평(公平)주의를 나는 편증법이라고 부를 아량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부정의 부정이 긍정이라는 것, 지양 위에서는 높은 긍정만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다. 고발의 대상은 증오에 해당하는 일체이고, 이러한 증오를 무찌르는 고발의 정신은 증오에 치(値)한 것까지를 널리 포함하여, 인간의 위대한 능력과 그의 생활과를 사랑하는 긍정의 감정이라는 것, 이것이 정당히 이해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대체 애(愛)의 정서가 없고 긍정의 정신이 없는 곳에 여하히 하여 고발이나 자기고발이 있을 수 있을 것이냐 제씨는 ! 허무주의자에게서 부정 일관론자에게서 고발이라는 에스프리를 발견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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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생활에 대한 높은 사랑의 정서를 우리는 다시금 인식하여야 한다. 이것이 또한 데카당스의 이론과 고발의 정신의 영원히 상교(相交)할 날이 없는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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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끼는 새로운 문학을 정의하여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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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곡된 인간성과 생활을 극도로 증오하는 문학 2. 인간의 위대한 힘이 일체의 것을 창조하고 개조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고 예찬하는 문학 3. 부인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문학 4. 아이를 귀여워하고 중하게 다루는 문학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얼마나 높은 사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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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2.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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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생활에 대한 재인식은 그러나 우리에게 다시금 새로운 마의 수레바퀴를 던지고 있지는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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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작가에게 있어서는 여하히 묘사할까의 문제보다도 여하히 생활할 것인가가 보다 선행되는 문제라는 것은 요즈음의 하나의 상식이다. 다시 말하면 여하히 묘사할 것인가의 문제 속에 들어있는 주제와 묘사의 문제가 결국 작가의 생활로써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나는 물론 이러한 이론에 찬성한다. 그러면 생활이란 개념이 가지고 있고 동시에 이 문제에 부딪쳐서는 다시금 헛되이 온 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위 마의 수레바퀴란 무엇인가. 가령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 보자. - 생활은 높은 의미에 있어서의 실천이다. 우리가 아무리 생활적 실천을 가지지 못하고 또 가질 길이 망연한 지금에 있어서는 그러면 예술문학의 갈 길은 막혀있는 것이 아니야. 이곳에서 아무리 작가에게 앙양(昻揚)된 생활의 실천을 가지라고 부르짖는다고 하여도 그건 아무 소용도 없는 공허한 염불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리얼리즘의 실제상의 문제는 막다른 골목에 봉착하였거나 그렇지 않으면 온 길을 다시 거꾸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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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재인식하게 되는 생활은 물론 생활과 이론 등으로서 표명될 하나의 지극히 격렬한 상극의 면모임에는 틀림없으나 또한 극히 교묘하게 대두되는 정치주의의 신판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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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생활의 분열을 이러한 생활의 인식으로 끌고 간다면 그곳에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이원론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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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론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문제는 예컨대 문학자와 사회적 인간의 상극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자는 문학자이기 전에 위선 사회적 인간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임무를 다하여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이론이다. 이것도 물론 신판 정치주의이고 새로운 이원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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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상들이 예술과 사회(정치, 생활)와의 모순과 상극을 통일하기 위하여 사고된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그것이 이원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 아님도 자명한 일이다. 실로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하고 통일하는 일원사상이야말로 요망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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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체 문학자에게 있어서의 생활적 실천이란 무엇이며 작가에게 잇어서의 사회적 실천이란 무엇일 것이냐? 나는 그것을 문학적 예술적 실천이라고 말하려고 하며 또한 이것 이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문학자는 정치가나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에 의하여 그의 생활적 실천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 실천, 문학가적 생활에 의하여 사회와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전세계사적 동향에 문학자가 관여하는 것은 결코 정치가로서의 아니라 예술을 들고 문학적 실천과 생활을 가지고 참가한다는 것을 정당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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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물론 문학자가 정치적 활동을 하거나 이여(爾餘)의 딴 세계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론이 아니다. 오직 그것은 특정된 일개인의 문제이지 문학의 주체를 논의하는 마당에서 생각할 바가 아니라고 말할 따름이다. 그가 공장으로 가건 또는 정치의 가운데로 가건 그것은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학자로서 반드시 가야할 길도 아니고 또한 문학이 세계적 운동에 참여하는 유일의 길도 아니다. 문학자는 문학적 실천을 가지고 문학적 생활을 가지고 이 가운데로 간다는 것만이 유일의 진리이고 또한 예술과 생활, 문학과 정치와를 통일하는 유일의 일원(一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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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또한 주체의 자기 분열을 초극하는 유일의 방향이며 객관과 교섭하여 통일되는 단 하나의 고발정신의 가는 길이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태도만이 사회와 개인과의 격화된 모순을 문학적으로 지양하는 단 하나의 정당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현대 작가는 분열의 시대에 탄생한것도 사실이나 또한 그의 초극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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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유구한 인류의 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하고 동시에 먼 뒷날의 행복된 후세인이 현순간의 현대 작가에게 요구하는 바는 시민사회의 카타스티로 피의 시대에 있어서의 사회와 개인과의 복작하고 격화된 분열을 광범히 개괄하는 동시에 이의 초극과 통일을 위하여 쓰여지는 노력과 고난의 반영을 훌륭히 담은 문학적 재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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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寅[무인]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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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1938. 2. 2]
【원문】자기분열의 초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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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분열의 초극 [제목]
 
  김남천(金南天) [저자]
 
  조선 일보(朝鮮日報) [출처]
 
  1938년 [발표]
 
  평론(評論)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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