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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선기(三仙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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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선기(三仙記)
 
 
2
예전에 한 사람이 있으되 성은 이씨요, 이름은 춘풍(春風)이니, 누세(累世) 사환가(仕宦家)로 수천 석 추수를 하고, 백여 간 와가에 남녀 노복이 수백 명이요 세간 집물이 불가승수(不可勝數)라. 통국(通國)에 몇 째 아니 가고, 또 자손이 성성하여 남들이 복가라 하는 지라.
 
3
이생 4형제에 둘째는 소년 등과하여 한각(翰閣)을 차례로 지내고, 셋째는 동문 진사하여 세마(洗馬)로 있고, 넷째는 외양이 동탁(童濯)하여 과목(果木)으로 치되, 아직 십 세 남짓하더라. 삼자가 다 유명하되, 맞사람과 비교하면 봉과 닭이요, 용과 뱀이라. 그러나 천성이 고상하여 부조의 부귀를 불의(不義)라 하고, 아우들이 대소과(大小科)할 때에 보기 싫어 피해 다니니, 혹은 칭찬 왈, 이 모(李某)는 천생 연골(軟骨) 학자로 도학이 고명하고 기상이 탁월하니 일후에 국가 주석지신(柱石之臣)이라 하고, 혹은 인물 아까운 괴물이라 하되, 이 모는 도무지 들은 체 아니 하고, 옳다 그르다 말이 없이 종일 꿇어앉아 경학(經學)에 잠심하여 밥 먹기를 잊고, 잠을 자지 아니하고, 부모를 늦도록 모시지 못함을 한하여, 기일(忌日)을 당하면 전칠후칠(前七後七)을 재계하고,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훼척골립(毁瘠骨立)할 지경에 이르고, 날마다 닭이 처음 울면 일어나 소제하고, 가묘(家廟)에 참배하고, 친산이 고향 땅에 있으니, 상거 오십 리라. 매월 삭망마다 성묘할새, 그 아우들이 말과 교자를 준비하되, 연로에 색주가(色酒家)와 여염 계집이라도 그 인물을 흠모하여 정신없이 보고, 혹 실과나 옥잠이나 옥지환을 빼어 던지고, 어떤 오입장이 계집은 차마 탐이 나 못 견디어 달려들어 들입다 안겨, 손으로 물리칠 뿐이요 눈을 들지 아니하니 세상이 이르기를 배안의 학자요 화식(火食)하는 부처라 하더라.
 
4
외당은 빈객이 가득하여, 세상의 세리(世利)와 공명의 의논인 고로, 그 번화함을 괴롭게 여겨 조용한 방을 치우고 혼자 있어 문 밖에 나지 아니하니, 집안 사람이라도 가보지 아니하면 그 얼굴을 보지 못하고, 부부의 인륜을 모르는 게 아니로되, 침식을 잊는 지경에 어찌 다른 생각이 있으리오. 이러므로 취실(娶室)한 지 십여 년에 내외지정을 아주 모르더라.
 
5
이생의 고명한 학식이 통국에 유명하여 대신이 천거하되, 이 모는 명환 귀족의 자손으로 공명에 뜻이 없어 세상 번화를 부운같이 여기고, 경학을 잠심하여 치국평천하할만한 재덕을 품었다 하여,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과 경연(經筵) 시독관(侍讀官)을 시키되 들은 체 아니 하고, 군위 현감(軍威縣監)과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제수하니, 내직(內職)도 아니 하거든 어찌 분요한 민정을 다스리려 하리오. 공부 차지 못하고 신병이 있음을 갖추어 표를 올리고, 세상에 출각(出脚)할 마음이 아주 없으니, 뉘 능히 그 효효한 뜻을 돌리리오. 이른바 불사왕후고상기사(不事王侯高尙其事)요, 종남첩경(終南捷徑)을 비소(鼻笑)할려라.
 
6
하루는 그 처남 김 시랑(金侍郞)이 와 보고 왈,
 
7
“형의 성현의 도를 즐겨하옴은 항복하려니와, 사속(嗣續)을 경영하지 아니하니 후사(後事)를 어찌 하려하오”
 
8
하되, 이생이 이윽고 보다가 왈,
 
9
“형의 말씀이 지당하로다.”
 
10
하더니, 그 부인이 잉태하여 일자를 두니라.
 
11
항상 그 아우더러 경계 왈,
 
12
“너희들이 일찍 공명에 유의하여 분경(奔競)을 면하지 못하니, 부디 조심하여 옛 성현의 심연박빙(深淵薄氷)의 훈계를 생각하고, 동동촉촉(洞洞燭燭)하여 부모·조상에게 욕이 돌아오지 아니하게 하라.”
 
13
그 아우형제 형이 엄훈을 받들어 겸양하는 덕이 조정에 유명하더라.
 
14
하루는 친산 성묘 길로 갈새 홍제원(弘濟院)을 지나니, 모든 활량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일시에 부액(扶腋)하여 모시고 가거늘, 이생이 대경하여 무수히 방색(防塞)한들 어찌 앉았더니, 그 중에 한 놈이 꿇어앉아 왈,
 
15
“우리들이 사람 되는 도리를 알지 못하나니 원컨대 선생님께옵서 가르치소서.”
 
16
하고 차례로 술을 권하거늘, 이생이 손사(遜辭) 왈,
 
17
“학생이 하는 것이 없으니, 어찌 열위 제공(列位諸公)을 가르치며, 본래 술을 먹지 못하오니 용서하시와 수이 놓아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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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이 일시에 웃고 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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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문무 양반이거늘 무슨 일인지 본래 무변(武弁)을 천히 여기는 중 선생님이 더욱 더하신 고로 오늘날 모시옴은 그 연유를 묻고자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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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패악한 말과 능갈친 행동이 듣던 바 처음이라.
 
21
이생이 귀를 씻고자 하나 아무리 할 수 없어, 온언순사(溫言順辭)로 손사 왈,
 
22
“학생이 성졸(性拙)하여 외인 교섭이 없사오니 어찌 열위 제공을 괄시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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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모두 웃으며 왈,
 
24
“선생의 거가에 동정을 자세히 모르거니와, 매삭에 두 번씩 이곳을 지나시되, 무슨 혐의로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아니하고, 향자에 우리들이 현회할 때에 무슨 원수로 부채 차면(遮面)하고 지나가시고, 읽으시는 글이 모두 우리 같은 사람을 욕하는 글이라 하니, 그 말이 옳사오며, 옛말에 사람을 소가 낳았단 말도 있다 하고, 사람의 몸이오 소 대가리로 농사법을 가르치고, 뱀의 대가리요 사람의 몸으로 사람을 많이 잡아먹었다 하고, 사람의 몸이오 소 자지로 세상 사람을 만들었다 하고, 글 잘 하는 선비가 오랑캐 목을 옭아 왔다 하니, 선생은 몇이나 옭아 왔사오며, 공자님이 도척(盜跖)에게 아무 말도 못 하셨다 하니, 그런 성인으로 어찌 도척 놈에게 휘이시며, 안자(顔子)가 많이 굶어 부증이 나고, 증자(曾子)가 옷이 없어 팔뚝이 울근불근하고, 자로(子路)가 해진 모시 도포를 입고 빌어먹었다 하고, 맹자(孟子)가 짚신을 도적하다가 주인에게 들켜 사과하였고, 도연명(陶淵明)이 굶어죽었다 하고, 주자(朱子)가 글을 너무 많이 읽다가 눈이 멀었다 하오니, 그 말이 옳을진대 선생은 공부하시와 무엇 하시며, 그 지경되기를 원하나이까.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나, 그렇지 아니하고 참말이면 글 좋단 말 그런 제 어미 붙을 쇠·개자식이 있겠사옵니까. 서서히 말씀하시와 우리들의 의혹이 없게 하시고, 듣사오니 송나라 고 경(高瓊)이 평일 문신에게 오죽 욕을 보았으면 단연 싸움에 글 지어 도적을 파하라 하였고, 고려 시대에 정중부(鄭仲夫)가 분을 이기지 못하여 한칼로 문신을 모조리 죽였다 하오니, 그러한 일도 있는지 우리는 모르거니와, 평일에 오직 교만하고 아니꼬워야 구 지경을 하였사오며, 문신들도 저의 죄를 짐작하고 마땅히 죽을죄에 죽었기로 아무 용계를 못 하였지, 만일 애매할 지경이면 제 무리는 가까이 돌아 권리가 유여하니, 어찌 무슨 꾀로 하든지 그 놈들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죽을 리 만무 하옵고, 또 우리는 아직 벼슬을 못하였거니와, 만일 과거하면 병수사(兵水使)를 지낸 후라도 소위 이조라나 발금장인가 저희들만 혼자 맡아 두고, 벼슬 지내야 아전(衙前) 3년만 지내도 우리네의 절을 젊은 놈의 자지같이 꼿꼿이 앉아 받고, 나이 저의 할아비 동갑이라도 으레 하대하고 갖은 교만을 다 부린다니, 그런 발가락을 젖힐 놈의 새끼가 어디 있으며, 동홍 때 학흉배(鶴胸背)는 하늘이 제수하였는지 저 혼자 차지하고, 사인교(四人轎) 평교자(平轎子)는 포도청 갇힌 모양이라 우리 불찌도 아니 하오나 우리 못 타계 하옴이 절분하옵고, 도포조차 저희만 입으니 도무지 욕지기가 나서 못 견디겠으니, 그런 개자식들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그 모양으로 지내다가는 음지가 양지 되는 날은 일시에 우리 손에 쥐소리 치고 죽을 지경을 당하거든, 우리네 쾌활한 목소리로 요놈들 이제도 한번 크게 지르면 대장부의 사업이 아니리까. 선생님은 무슨 뾰족한 꾀로 정승의 증손자요 판서의 손자요 판서의 아들로, 벼슬에 뜻이 없이 쭈그리고 앉아 밤낮으로 공자 맹자 탱자이니 시전(詩傳)·서전(書傳)·딴전이니 하고 앉아 무엇을 빨려 하고 좋은 벼슬을 시켜도 아니 하시니, 그렇게 싫은 벼슬 우리나 존 시켜 주시오.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지경을 당하였으니, 놓아 보내면 무슨 농간질하여 우리를 포도청이나 형조로 잡아들여 죽이든지 귀양을 보내든지 할 줄은 아오나, 오늘이야 옴치고 뛰지도 못하고 우리 손아귀에 걸렸으니, 내일은 어찌 되든지 당장에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사오니 할대로 하여 보십시오.”
 
25
모든 잡놈들이 곁금나기로 드나들며 욕설로 들이대니 공·맹자가 당하신대도 하릴없고, 소 진(蘇秦)·장 의(張儀)가 부생(復生)이라도 도리 없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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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이생이 무수한 패설과 질욕을 당하고, 좋은 말로 사양하고 일어서려 한들 저희들도 한 깐이 있으니 어찌 놓으리오. 모두 왈,
 
27
“이 술 한 잔을 잡수옵시고 풀고 돌아가옵시면 모르려니와, 만일 아니 먹고 뽀로통하고 가시면 우리는 모두 죽는 날이니, 젠장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한 번 죽기는 예상사(例常事)라.”
 
28
하고, 혹 손바닥에 침도 탁 뱉아 주먹을 불끈 쥐고 혹 팔뚝을 쑥 뽑아 마룻바닥도 치며, 혹 가래침을 곤두 올려 높은 퇴 아래 벼락 치듯 뱉기도 하고, 혹 발길을 번쩍번쩍 들어 바람벽도 탁 차서 일시에 날치는 양은 홍문연(鴻門宴)에 한 패공(漢沛公)어루듯 하여 화색이 박두하되, 글 읽은 사람의 철석같은 장위(臟胃)에 지은 죄 없으니, 일호(一毫) 구겁(拘㤼)이야 있으리요마는, 바삐 빠져갈 경륜(經倫)으로 공결 대왈,
 
29
“열위 제공이 웃노라고 하신 말씀을 학생이 어찌 괘념하오며, 학생이 본디 건구(健軀)하지 못하오나 주시는 술을 아니 먹지 못하와 한 잔 먹사오니 지극 감사하여이다.”
 
30
하고 잔을 들어 마시니, 평생에 처음이라 옥 같은 얼굴에 홍운(紅暈)을 띠었으니 만고일색이라.
 
31
모든 활량들이 상한(傷寒)이 날 지경이라, 혹 시절가도 하고 좋은 초성으로 권주가를 하며, 백옥잔에 홍소주를 가득 부어 드리며 왈,
 
32
“주불쌍배(酒不雙杯)라 하니 살아서도 석 잔이오 죽어서도 석 잔이라, 반 남아 늙었으니 다시 젊든 못 하리라. 이 술 한잔 잡수시면 춘풍 화기하고 안 먹으면 주먹당상이요, 한 잔 술에 눈물이오 살아생전 일배주라.”
 
33
하며 손을 붙들고 입에 대거늘, 마지못하여 마시니 인하여 대취하였는지라. 빙옥(氷玉) 같은 몸이 연감 덩이 같고, 효성(曉星) 같은 양목(兩目)이 불구슬이 될 지경에, 아무리 단정정일(端正精一)한 마음인들 어찌 견디리오.
 
34
주력을 못 이겨 쓰러짐을 깨닫지 못하니, 이른바 옥상자(玉箱子)도 비인 퇴가 아름다운 말이라. 이에 모든 활량들이 의논 왈,
 
35
“이 사람의 도학이 대단히 고명하다 하니, 우리 그 도학을 깨뜨림이 어떠하뇨. 그러나 술만 깨면 그 빙설 같은 마음을 누가 능히 돌리리오.”
 
36
좌중에 한 여자가 자원하되,
 
37
“내 능히 그 절개를 변하게 하리니, 날과 백년해로(百年偕老)하여도 아무 양반도 시비 말으시리까.”
 
38
모두 보니 이는 기생 홍도화(紅桃花)라. 본디 선천(宣川) 사람으로 10세에 가무와 음률이 구비하고 인물이 절등하더라.
 
39
평안도 내에 명기 둘이 있으니, 안주(安州)에 유지연 (柳枝蓮)이요, 선천에 홍도화니, 음률은 고사하고 문필이 유여하여 지조가 특출하되, 이미 기생 출신인 고로 마지못하여 행공거행하나, 항상 울울하여 사람을 구라더라.
 
40
감사(監司) 수령(守令)은 세력으로 압제하고, 호화 자제와 오입장이들은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다푸되, 어찌 항복하여 감심하리요. 나이 19세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 양인이 의논 왈,
 
41
“우리 궁향(窮鄕)에 생장하여 문견이 넓지 못하니, 천금씩 들여 기안(妓案)에서 제명(除名)하고, 경성에 올라가 마음대로 구경하리라.”
 
42
하고, 수천금을 들여 정속(正續)한 후 즉시 올라와 두루 다니며 살펴보되, 하나도 마음에 들지를 않는지라, 교방(敎坊)을 찾아가니 모든 기생이 모였고, 장안 장외의 오입장이가 돌아앉아 재주를 시험하거늘, 면면이 인사하고 말석에 앉으니, 좌중이 적적하여 정신이 없더라.
 
43
양인이 다시 일어나 치하 왈,
 
44
“우리 등이 하향에 생장하와 문견이 국척(跼蹐)하옵기로, 장안 물색을 구경하고자 하여 왔삽다가 오늘날 화연(華宴)에 참여하오니, 하향 천종(賤種)이 지극 범람하와 두서를 차라지 못 하오니, 열위 군자와 모든 형제께옵서 용서하시오니까.”
 
45
좌중이 처음 그 모양의 출중함을 보고 십분 흠앙하더니, 그 수작을 들으매 뉘 아니 흠복하리요.
 
46
장안 모가비 장낙하(張落霞)와 이십 사 교방(二四敎坊)의 도수석(都首席) 영산홍(映山紅)이 일시에 몸을 일으켜 답례하고 왈,
 
47
“양위 교서의 방명을 들은 지 오래더니,  오늘날 상대하오니 좌상에 광채 조요하도소이다.”
 
48
양인이 손사하고 왈,
 
49
“소자 등이 늦게야 음률에 우의하는 체하였사오나 채를 마치지 못하였사오니 더럽다 마시고 가르치심을 바라나이다.”
 
50
영산홍이 다시 사양하고 왈,
 
51
“우리 서로 만나매 무슨 사양함이 있으리요. 아직 날이 늦지 않았으니 한바탕 놀아 보사이다.”
 
52
하고, 초미금을 내려 홍도화를 맡기고, 장 낙하는 단소를 차고, 영산홍은 목청을 가다듬어 채련곡(採蓮曲)을 시작하거늘, 양인이 사양하지 않고 각각 줄을 골라 무릎 얹어 놓고 의란조와 옥색연을 시작하니, 육률(六律)이 화명하고 오음(五音)이 불란하여 정신을 동탁하는지라, 곡조를 마치고 사례 왈,
 
53
“배우러 하여 시험하였사오나 지극 황송하여이다.”
 
54
하니, 좌중이 일일 탄복하여 감히 말을 내지 못하더라.
 
55
인하여 하직하고 나와 의논 왈.
 
56
“대강 인물도 극귀하도다. 장 낙하와 영산홍은 장안에도 판막이 한다는 위인이 일개 탕자 음녀(蕩子淫女)를 면하지 못하니 도리어 불쌍하도다. 우리 아직 재상의 인물은 못 보았으니 기회를 기다리자.”
 
57
하더니, 마침 만조백관을 시가(侍駕)하여 서호(西湖)에 성연을 배설한다 하거늘, 양인이 참예할새 순담(淳淡)한 의복으로 나아가니, 포진(布陣) 범절(凡節)이 풍비하고 금옥이 만좌한 가운데, 영산홍이 수십 명 지생을 데리고 풍치를 돕다가, 양인을 보고 놀라 기좌(起坐)하고 왈,
 
58
“사관(舍館)이 어디시완대 한번 작별 후 다시 못 뵈왔삽더니, 이 자리에 뵈오니 감사하여이다.”
 
59
열위 재상이 일시에 신혼이 담락(湛樂)하여 기울어진 관을 바루지 못하고, 내 몸이 어디 있는 줄 짐작하지 못하여 좌석이 적막하다가 왈,
 
60
“조선 인물을 연산홍뿐으로 알았더니 과연 이상하도다.”
 
61
영산홍이 꿇어 고왈,
 
62
“저 낭자는 천상 물색이옵고 인간 속태는 아닌 중, 그 음뤂은 능히 요순(堯舜) 삼대(三代)적 풍류를 정진하온 듯, 소녀 등의 유는 아니오니 복망 상공은 시험하여 보옵소서.”
 
63
이에 자리를 주고 치하 왈,
 
64
“우리 등이 흥을 억제하지 못하여 약간 주효를 가지고 소풍할까 하였더니, 의외에 천선이 하강한 듯하니 지극 감사하도다.”
 
65
양인이 공경 대왈,
 
66
“소인 등은 원향(遠鄕)에 생장하와 경화(京華) 성의를 구경하고자 왔삽다가, 오늘날 당돌히 촉범(觸犯)하였삽더니, 열위 상공께옵서 너무 관대하오니 황공하와 아뢰올 말씀이 없나이다.“
 
67
제공이 책책(嘖嘖) 칭찬 왈,
 
68
“탁 문군(卓文君)의 인물과 설교서의 문장을 고서에 보았더니 오늘 다시 친히 보거니와,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고병(高騈)의 문장 재덕이 없으니 어찌 품재(品才)하리요.”
 
69
양인이 환공 손사하고 앉으니, 술이 두어 순배 지나매, 한 재상이 청하여 왈,
 
70
“알든 못 하오나 한 곡조를 아끼지 아니할까.”
 
71
한대, 양인이 손사하고, 홍랑은 거문고를 가지고 유랑은 노래하여 벌목정정(伐木丁丁) 조명영영(鳥鳴嬰嬰)을 서로 화답하니, 옛날 풍류 지을 때에 봉황의 자웅성(雌雄聲)을 다시 듣는 듯, 수십 명 일등 명기들이 혼을 잃고 앉았더라. 삼장을 마치매 일어나 하직하니 뉘 능히 만류하리요. 다만 다시 옴을 당부할 뿐이라. 양인이 사처에 돌아와 탄식 왈,
 
72
“자고로 인물이 극귀하기로 몇 천 년 이래에 자도(子都)와 진평(陳平)과 두목지(杜牧之)뿐일까. 옳도다. 우리 만일 문장과 인물과 취지가 당나라 이 적선(李謫仙)같은 이를 얻지 못할 지경에는, 차라리 문을 닫고 들어앉아 문주금기(文酒禁忌)로 세월을 보냄이 옳을까 하여 경성에 왔더니, 방불한 자질도 없으니 어찌 하리요.”
 
73
유랑 왈,
 
74
“자고로 공자 왕손과 재상 자제를 얼렸으니, 우리 좀더 구경하옴이 어떠할꼬?”
 
75
홍랑 왈,
 
76
“자고로 말세에는 새 임금을 기다려 개국공신(開國功臣)을 내기로, 개헌에 용이 나고 자식이 아비보다 나을 수 있거니와, 지금은 승평세계라 인물이 평평할 것이니, 오늘 놀음에 모든 재상이 거진 모였으되, 하나도 특출한 군자를 못 보았으니, 그 자손이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니 다시 보아 무엇 하리요. 우리 도로 내려가 고향을 떠나 사방에 운유(雲遊)하여 혹시 군자를 방문하다가, 또 구하지 못하거든 중원(中原)을 건너서 구경이나 하고 돌아와 정하게 늙음이 좋다.”
 
77
하고, 행장을 차려서 문을 나서니 어찌 창연하지 아니하리요.
 
78
무악재를 넘어 홍제원에 이르니, 모든 활량들이 가마귀같이 지저귀거늘,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헤치고 들어서니, 한 소년 남자를 에워싸고 조롱하거늘, 살펴보니 굵은 망건은 촌 생원도 쓰지 아니할 것이요, 사승 추포로 도포를 하여 입고, 육성목 바지 저고리와 버선이오, 손뼉 같이 옥혁대로 가슴에 돋아매고 앉았으되, 옥 같은 얼굴에 도화색을 띠었고, 그린 듯한 살짝에 반월 같은 옥륜(玉輪)이 비치었고, 돌을 원만한 천장에 원산(遠山) 같은 눈썹이 팔자로 빗기었고, 뚜렷한 단봉안(丹鳳眼)에 효성 같은 광채 조요하고, 단사(丹沙)로 찍은 듯한 입술에 검은 수염이 다문다문 나고, 섬섬옥수는 백공단 주머니에 풀솜을 가득 넣고 보글보글 만지는 듯, 동탁작약(童濯綽約)한 태도와 단정현앙(端正懸仰)한 풍재와 쇄락정대(灑落正大)한 기상이 천만인 중 제일이오 천상 천하에 으뜸이라.
 
79
여러 잡놈들이 무수히 조롱하되, 박힌 듯이 꿇어앉아 조금도 동요하지 아니하니, 엄위(嚴威)한 형용과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할러라.
 
80
이윽고 권함을 이기지 못하여 삼배주를 마신 후 홍도화 양협에 솟으며 미미히 웃는 모양 목단화 아침 이슬에 반쯤 피는 듯, 주력에 곤하여 옥부처 같은 몸을 안상에 기울여 놉거늘, 유 지연이 나아가 받들어 고이 모셔 누이고 밖으로 나갔더니, 모든 활량들이 그 마음 돌리기를 원하거늘, 홍도화 자원하니 좌중이 모두 흔연 왈,
 
81
“장자는 경향에 유명한 범절로 장안 모가비 장 낙하가 숨도 못 쉬고, 조선 명기 영산홍이 고개를 들지 못하니, 오늘 저 천생 학자님께 향할진대 뉘 능히 막으리요마는, 연조문 쇠사슬은 창아동을 만들어도, 저 학자의 절개는 휘우지 못할 것이오, 종각에 달린 인경 꼭지는 말랑말랑하도록 주물러도, 저 학자의 염통은 찔러도 못러도 못 보고, 호조(戶曹)에 동부동 순슴덩이는 들었다 놓아도, 저 학자의 창자는 들지 못 하리니 힘대로 하여 보옵소서. 우리 등이야 어찌 요량하리까.”
 
82
이에 양인이 교자에 모셔 본댁으로 인도하니라.
 
83
야심 후에 이생이 깨어 보니 집에 와 누웠고, 어제 일이 몽중 같은지라. 아우 삼 인이 모셔 있다가 깨어남을 보고 반가와 차를 올리고 연고를 물으니, 이생이 역력히 말하온대, 세마(洗馬)는 대로하고 한림(翰林)은 웃어 왈,
 
84
“형장은 혐의 말으소서. 저희들이 수백 년 쌓인 한을 풀 곳이 없다가, 형장의 평일 너무 온자하심을 여러 순 보았으므로 한 번 설원(雪怨)한 도량이니, 비록 혼자 당하신 듯하나 통조(通朝) 문관(文官)이 일시에 당한 일이오, 그 역시 우과풍과(雨過風過)오니 형장께서는 아무 손해 없삽고 저희들이 불쌍하여이다.”
 
85
이생이 아무리 분한들 할 수 없고, 그 후는 조심하여 피하더라.
 
86
수일 후에 양개 서생이 명함을 드리거늘 맞아들이니 들어와 예배하고 왈,
 
87
“소생 홍 영학(洪榮鶴)은 선천 사옵고, 소생 유 봉학(柳奉鶴)은 안주 사옵더니, 하향 천종으로 문견이 넓지 못하여 경화 성사를 찾아 흉금을 넓히옵고, 경학하더니, 선생님께옵서 도학이 고명하심을 듣잡고 교화를 받자올까 하나이다.”
 
88
하고 다시 일어나 절하고 폐백을 올리거늘, 이생이 사양타 못 하여 받고 살펴보니, 선연한 골격과 발월한 기상이 반악(潘岳)의 풍채와 이 태백(李太白)의 용모를 겸하였고, 단정한 범절과 온공한 거동이 볼수록 반갑고 사랑하여 놓을 마음이 없는지라.
 
89
삼 인이 대좌하니 주객을 분별치 못하겠고, 공부를 시험하니 비록 경학은 없으나 영오한 재주와 특달한 의사는 의표에 지나는지라. 새로이 경학을 심심하니 강하를 터놓은 듯, 불과 수월 동안에 지식이 통투하니, 주야로 강론하여 즐거운 마음을 측량하지 못하되, 양인이 너무 사제지분(師弟之分)을 차려 수삭이 지나되, 한 번도 우러러보지 아니하고 웃는 양을 보지 못하나. 모시고 있어 일동일정을 대신하고 조금도 태만한 모양이 없으니, 이공의 정대한 성정으로도 항복할지라.
 
90
하루는 한가함을 탐하여 월영루(月影樓)에 오르니, 원래 이공의 조고(組考) 이 상공(李相公)이 노래(老來)에 벼슬을 하직하고 집에 머물러 늙을 때에, 외헌(外軒) 동편에 월영루를 짓고, 앞에 연못을 파고 못가에 백화를 심고 못 가운데 대석가산(大石假山)을 모았으니, 물색이 가장 소쇄하고 누마루가 높아, 올라앉으면 장안 경개가 눈앞에 벌였고, 누(樓) 옆에 연익당(年益當)을 짓고 백가서(百家書)를 준비하여 감추니, 이는 자손을 계계승승하게 함이라.
 
91
이공이 공명에 뜻이 없어 번화한 것을 취하지 않는 고로 연익당에 와 공부하되, 한 번도 월영루에 오르지 않았더니, 이날 양인을 데리고 누에 올라 보니, 이 때 정히 삼월망간(三月望間)이라. 백화는 만방하여 난간을 덮었고, 청활한 물은 연못에 가득하여 반 줌 티끌이 없고, 층층한 연엽은 군자의 본색을 자랑하고, 사이사이 금붕어는 양양자득하여 잠겼다 떴다 하고, 만호 장안에 꽃과 버들은 춘색을 자랑하고, 총총한 아름다운 기운은 오운을 옹위하였으니, 왕 자안(王子安)의 임고대(臨高臺)에 비길 만하더라.
 
92
이 학자의 온자한 심지로도 춘사가 있거든, 하물며 양랑이야 번화장에 생장하여 호탕한 풍채와 활발한 행동이 남녀를 겸하여 일시라도 고적한 것을 모르다가, 이 학자의 옥모 영풍을 흠모하여 그 철석 심장을 돌릴 경륜으로 본색을 변개하고 여화위남(女化爲男)하여 사색 없이 모시나, 해동청(海東靑) 보라매가 다리에 끈을 매어 횃대에 앉았으며, 만수번음(萬樹繁陰) 꾀꼬리가 목에다 굴레 쓰고 농중에 갇힘과 같아, 어찌 울적한 회포 없으리요.
 
93
이날을 당하여 절승한 경개를 구경하매 자연 감동하는 의사가 석가여래 부처님이라도 요동할지라. 곡조를 마치매 양생더러 왈,
 
94
“공등이 번화지에 생장하여 음률에 밝으리니 한 번 타 속객을 가르치라.”
 
95
양랑이 그 용모 동지를 새로이 흠모하여 들입다 안고 싶으되, 겨우 주리치고 공경 대왈,
 
96
“하향 천생이 어찌 아는 게 있사오며, 또 선생의 희음(稀音)은 옛적 삼황(三皇)의 정음(正音)이라, 소생 등이 어찌 화답하오리이까. 그러나 이미 존명이 계시오니 어찌 거역하리까.”
 
97
하고, 유랑이 나앉아 거문고로 한 곡조를 타니, 이공이 공경 기좌 왈,
 
98
“우우하며 풍풍하도다. 제순씨(帝舜氏) 남궁(南宮) 훈풍이 오늘 다시 불도다.”
 
99
홍랑이 또 한 곡조를 타니, 이공이 추연 탄왈,
 
100
“처창하고 핍진하도다. 혜숙야(嵆淑夜)의 광릉산(廣陵散)이 세상에 전하지 못한 줄 알았더니, 그대는 왕 자교(王子喬)의 후신이라. 오늘날 막약산하를 다시 탄식하는도다.”
 
101
하거늘, 양랑이 서로 돌아보아 그 지음(知音)하는 양을 신기하여, 골똘한 계교 이룰 도리가 있음을 기꺼워한들 뉘라서 그 속을 알리요. 양인이 다시 일어나 손사 왈,
 
102
“소생 등이 잠깐 배웠사오나 곡조 이름을 몰랐더니 선생님께옵서 가르치시니 지극 황감하여이다.”
 
103
하고, 인하여 아뢰되,
 
104
“소생 등이 하향 천종으로 경성에 왔삽다가, 천만 이외에 선생님을 모시와 공부 성장하옵고, 문견이 광복하오니 세세생생에 잊삽지 못할 터이오며, 평생을 모시려 하오니 더럽다 아니 하시리까?”
 
105
이공이 손살 왈,
 
106
“학생이 나이 차지 못하여 공부 미거하므로 항상 유익한 사우(師友)를 만나 배울까 하오되, 천성이 극졸(極拙)하여 문 밖을 나지 못하였더니, 의외에 양공을 만나 주야로 진익하오니 평생 원이 마친지라, 어찌 일시나 놓으리까.”
 
107
양랑이 다시 기좌하여, 꿇어 고왈,
 
108
“소생 등이 일찍 부친을 여의옵고 편모 시하에 일시를 떠나지 못하옵다가, 이번 걸음에 세월이 오래오니 사정이 절박하온지라, 잠깐 내려가 모친께 뵈옵고, 여간 산업을 책매하여 편모를 모시고 평생을 지내려 하오며, 또 어렵사온 소회 있사오니, 혹자 통촉하시리이까. 옛말에 자성제인이란 말씀으로 사람마다 저 사는 곳이 좋다 하옴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소생 등 사는 곳이 산천이 수려하오며, 평양은 2천 년 왕도라, 단군의 왕적과 기성(箕城)의 유적이 그저 있사와 정전터가 완연하오며, 외성은 양서의 추토라 아송이 풍풍하오니 한번 보실 만한지라. 복망 선생님께옵서 한번 굽히사 행차하옵시면, 소생 등이 모시옵고 내왕하며 송경(松京)을 지나다가 여왕의 4백 년 흥망과 정 포은(鄭圃隱) 선생의 구적을 추감(追感)하옵고, 해주를 지나다가 율곡(栗谷) 이 문성공(李文成公)의 유촉을 추앙하시옵고, 평양은 산천이 수려하여 한양과 다르옵고 완상할 만한 고적이 많사오니, 존의(尊意)가 어떠하실는지 황공하여이다.”
 
109
이공이 침음반상(沈吟半상(晌)에 생각하되
 
110
‘내 세상에 난 지 28년에 강산 구경을 못 하였더니, 저 소년은 진개 출중한 인재로 평생을 같이 있을 모양이오, 진실 무의미한 사람이니 이런 기회를 놓치면 흉금을 넓힐 도리 없고, 아무 때라도 나 혼자는 출입이 재미 없고, 또 그 말이 일리가 있으며, 그 영풍 도골을 잠깐 이별이 아연하니, 내 수십 일을 허송하옴이 아니라 간 데마다 유익한 도리 있으리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며, 저의 간청을 구태여 어길 것이 아니라’
 
111
하고 쾌히 허락하니, 양인이 대취하여 다시 아뢰되,
 
112
“행구 범절을 어찌 준비하시리?”
 
113
이공 왈,
 
114
“죽장망혜(竹杖芒鞋)로 촌촌 전진하여 산천 경물을 완상하옴이 어떠할꼬.”
 
115
양인이 꿇어 고왈,
 
116
“선생님께옵서 십 리 행보를 못 하여 계시니 내왕 천여 리를 어찌 도보하시리이꼬. 나귀 하나를 이끌면 소생 등은 행보가 능하온즉 선생님께옵서 간간이 타시오면 소생 등이 보호하여 모시리니, 한가한 풍치를 도울 듯하여이다.”
 
117
이공이 허락하고 두 아우를 불러 의논하니, 한림 형제 이왕에 향생의 재모를 흠앙하다가, 형장과 동행하여 강산 구경한다는 소식이 신기하여 양인에게 치하 왈,
 
118
“우리 사형(舍兄)이 너무 고상하시와 세정을 아주 모르시더니, 양위 공자를 만나신 후 잠적한 의사를 위로하고 공부상에 대단 유익하시더니, 지금 또 동행하시되 서도 물색을 구경하오면, 우리 사형의 과도한 천성을 넓힐 듯 지극 감사하오며, 양 공자는 세정에 한숙(閑熟)하더니 당부할 일 없다.”
 
119
하고 행장을 차릴새, 필려 서동을 준비하고 노비는 가는 데마다 당겨 쓰게 하니, 양인 왈,
 
120
“소생 등이 둘이니 하나는 나귀를 이끌고, 하나는 행구를 챙기면 적당하오니, 제자가 되어 선생님 모심이 더한 영화 없사오니, 서동을 데리고 가면 도리어 누가 될까 하나이다.”
 
121
한림이 그 말을 옳게 여겨 그대로 시행하니, 3인이 길을 나매 지기 상합할러라.
 
122
이공이 가묘에 하직하고 아우더러 왈,
 
123
“내 이번 길이 지속을 예료(豫料)치 못하니, 그 사이 제사 범절을 각별 조심하고, 다른 일은 부탁할 것 없으되, 공명을 너무 탐하지 말라.”
 
124
한림이 꿇어앉아 교훈을 받고 서문 밖에 나와 전송하더라.
 
125
행하여 고양(高楊)에 이르러 친산에 하직하고 차차 전진하여 송경을 지날새, 송악산(松岳山)·성거산(聖居山)은 기교한 봉만이 중천에 차아(嵯峨)하고, 낙타교(駱駝橋) 시냇물은 조수흔적이 간 데 없으니 4백여 년 흥망성쇠를 추감하고, 선죽교를 지나 송양서원(松陽書院)에 들어가 참배하여 포은 선생 충절을 흠복하고, 형하여 해주에 이르러 청성묘(淸城廟)에 들어가 백이 숙제(伯夷叔齊)의 인덕을 추앙하고, 율곡 구기(舊基)에 들어가 선현 유촉을 구경하니, 청명한 도학을 뵈옵는 듯 존경하고, 3, 4 일을 행하여 평양 지경에 이르니, 산천이 가려하여 2쳔 년 왕기(王氣)가 온자하고, 대동강을 건너 연광정(練光亭) 올라보매 현판이 걸렸으되,
 
126
‘장성일면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 만호루대천반기(萬戶樓臺千半期) 사시가취월중화(四時歌醉月中花)’
 
127
라 새겼거늘, 글을 보고 경개를 살펴보니 제일 강산이 분명하다. 경파대(鏡波臺)를 굽어보고 부벽루(浮壁樓)어디런고. 모란봉 기려하다. 영명사(永明寺) 북 소리는 원포귀범(遠浦歸帆)을 머무는 듯, 양덕(陽德) 맹산(孟山) 양 강줄기 굽이굽이 내려올 제, 반월도(半月島)·능라도(綾羅島)는 운중에 표묘하고, 형제산(兄弟山)·대성산(大聖山)은 산기도 수려하다. 두루 구경하고 내려서서 기자묘(箕字廟)에 참배하니 삼대 면목 의구하고, 팔조교(八條敎)·정전법(井田法)은 고적이 망연하고, 외성을 찾아가니 현송지성이 여전하다.
 
128
이에 양랑이 이 선생을 인도하여 대성산하에 이르니, 수간 초옥이 정결하되, 기묘한 대성산은 난간에 굽어 읍하는 듯, 잔잔한 청계수는 시문을 둘렀고, 가후에 노송나무 아래 학 두루미 춤을 추고, 문전에 청삽살이 손을 보고 반기는 듯, 번화하기로 유명한 평양 한 모퉁이에 정적한 별업(別業)을 배설하였으니, 다름아니라 양랑이 본래 형세 유여한 고로 선생 모시고 가는 연유를 기별하여 몇 날 동안에 새로 집을 짓고 이 모양으로 배설함이러라.
 
129
양랑이 선생을 모시고 들어가 좌정 후 차를 올리고 왈,
 
130
“소생 등의 정이 형제 같사와 일시에 떠나지 못하여 연전에 이 곳에 와 집을 짓고 둘이 모여 공부하던 곳이러니, 소생 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노모들이 고향으로서 올라와 기다린 지 벌써 10여 일이온즉, 선생인을 모시고 행역이 죄송하옵고, 안주(安州)·선천(宣川)은 별반 경개가 없삽기로 이 곳으로 모셨나이다.”
 
131
이공 왈,
 
132
“그대 등이 나를 위하여 이다지 용심하니 도리어 미안하도다.”
 
133
양일이 손사하고 지공 범절은 이르도 말고 낮이면 두루 경물을 완상하고, 밤이면 경의(經義)를 강론하니, 반 천 리 타향에 왔으나 객회는 아주 없고 낙재지중(樂在其中)하여 세월 가는 줄을 모르더라.
 
134
하루는 대성산에 올라가니 평양성이 눈앞에 있고 서면 관망하더니, 상봉에 올라 보니 삼층 석대를 쌓아 놓고, 그 옆에 삼 간 정자가 있으되, 돌로 쌓고 돌로 마루 놓고 돌로 우의를 이었으되, 극히 정쇄하고 인적은 없거늘, 양생더러 물으니 대왈,
 
135
“일이 허탄하와 아뢰옵기 황송하오이다. 그러나 예부터 전해 오는 말이 어느 때온지 이상한 사람이 내려와 간간이 있다 하옵기로, 거민들이 신선으로 지목하오되 보았다는 사람은 없삽고, 신라 진평왕이 사방에 유람하옵다가 이 곳에 와 그 소문을 듣고, 석대를 쌓고 집을 짓삽고 49일을 재계하고 신선을 기다리다가 내려와 이르되, 신선을 만나 보았노라 하고 퉁소 일곡을 배웠다 하여 불면 백운(白雲)이 비양(飛揚)하고 공중에 학의 소리 들린다 하였고, 그 후에 경명왕(景明王) 때에 선녀가 내려와 옥소를 불며 기린굴(麒麟窟)과 을밀대(乙密臺)로 왕래하였다 하고, 그 후에도 산상에 안개 자욱하면 무슨 소리가 난 듯하옵고, 월색이 명랑한 때면 간혹 신기한 자취가 있다 하오되 일이 심히 허황하옵고, 눈으로 보지 못하였사오니 아뢰옵기 죄송하오나 이미 물으시매 바로 아뢰옵나이다.”
 
136
이공이 청파(聽罷)에 침음 반향에 왈,
 
137
“예부터 신선이란 말이 있기로 사기에 전하였고, 조선에도 강원도 고성 삼일포(三日浦)는 옛적에 신동들이 내려와 영랑(永郞) 술랑(述郞)이라 자칭하고, 3일을 놀다가 갔기로 지금까지 삼일포란 이름을 전하였고, 최 고운(崔孤雲) 선생이 합천 가야산에 들어가 화식을 먹지 아니하고 있다가 간 곳을 모르기로 신선되어 갔다 하되, 도무지 황당한 일이니 어찌 믿으리요.”
 
138
하고 석대에 올라 보니, 석면에 바둑판 형적이 은은하거늘, 고이하여 양생을 불러 보이니,   양생이 자세히 보다가 치하 왈,
 
139
“아까 소생 등이 들은 대로  역력히 아뢰었삽고, 할 가지도 은휘하지 않았으되, 바둑 두었단 말은 듣지 못하였더니, 대강 신기하여이다. 선생님께옵서 명공(名公) 거경(巨卿) 댁에 생장하시와 자학(自學)과 범절이 그러하시니 환갑 급제와 고관 대작을 임의로 하실 터이옵고, 일등 미색을 방방이 두실 터이오니, 부귀를 부운같이 여기시고 주색을 아주 모르시나, 과연 연화계(蓮花界)에 계시나 천만인 중에 머리 위로 다니시는 모양이시니, 곧 이른바 지상 신선이시라. 또 신선이 별것이 아니와 인세간에 처하여도 물욕 색욕을 아주 모르고 잡념이 도무지 없다가, 도성덕립(道成德立)한 지경에 진세(塵世)를 하직하고 산중에 들어가 심지를 안양하오면 청명고결하여 정한 수한(壽限)이 없을 터이옵고, 옛 성인은 도성덕립은 출중하시오나 주야 생각이 생민의 도탄을 근심하시오니, 인세간 인연이 극중하신 고로 만대에 이름은 유전하실지언정 선분(仙分)은 적으신지라. 그러므로 고명한 인물은 세상과 영위가 없기로 옛날 팽조(彭組) 동방삭(東方朔)과 상산 사호(常山四皓)와 사마 덕조(司馬德操)와 진 도남(陳圖南)몇 사람의 재덕이  출중하오나 진세에 계관이 없삽기로, 후세에 이름은 적으나 자가 신장으로 말씀하오면 신선이 아니니이까.”
 
140
말이 채 끝나지 못하여 이공이 돌 틈에서 바둑 두 개를 얻으니, 하나는 푸르고 하나는 붉되 옥은 아니요, 지극히 가볍고 모양이 기묘하고 글자 모양이 은은하거늘, 자세히 보니 붉은 바둑에는 ‘선인(仙人)’ 2자를 썼으되 용사(龍蛇) 전자(篆字) 같고 예사 글씨는 아니라.
 
141
신기하여 양생을 보이지 아니하고 낭중에 넣으니, 양생은 보았으나 못 본 체하고 왈,
 
142
“선생님께옵서 이번 행차에 유전할 일을 얻어 계신지라, 이왕 천만 인이 보았으되 알아보지 못하였거늘 먼저 찾으시니, 평일에 물욕이 없고 청고하옵신 안목이 아니신면 어찌 그러하오리이까.”
 
143
이공이 재삼 손사하고 왈,
 
144
“이 일이 허탄하니 발설하지 말라.”
 
145
하고 내려왔더니, 수일 후에 홍생은 고향에 다니러 가고, 유생은 외성으로 책을 얻으러 가되 일찍 다녀온다 하더니, 날이 저물도록 오지 아니하거늘, 이공이 혼자 있어 석반을 파하고 등촉을 밝히고 글을 읽더니, 야심하도록 소식은 없고 자연 울적하여 계전(階前)에 배회할새, 이 때 정히 7월 망간이라.
 
146
금풍(金風)은 소소하고 천기 청명하러 만리 장천에 구름 한 점이 없고, 잔잔한 명월은 벽공에 배회하고, 충성(蟲聲)은 적적하여 객회를 돕는지라.
 
147
시전(詩傳) 칠월편(七月編)을 염하며 완완히 다니더니, 무슨 소리 금풍을 좇아 은은히 들리거늘, 자세히 살피되 이 때 정히 오경이라.
 
148
인성은 고요하고 그 소리 점점 가까운 듯하거늘, 자연 동심(動心)이 되어 소리를 찾아 높은 데를 올라가니 더욱 분명한지라. 혼자 이르되,
 
149
“당시에 보았더니 오늘날 내 귀에 들리도다. ‘노적오엽명(露積梧葉鳴)하니 추풍계화발(秋風桂花發)을. 증유학선려(曾有學仙侶)하여 취소농산월(吹簫弄山月)을.’ 이 글을 항상 절창이라 잊지 못하였더니, 이 때 정히 7월이라. 동엽(桐葉)은 울거니와 계화(桂花)는 없도다. 소리도 퉁소 소리 분명하고 산월조차 밝다마는 신선이야 어디 있으리요.”
 
150
하고 평양 성내를 굽어보니, 몇 군데만 불이 있고 사면 적요하고 퉁소 소리만 완연하되, 그 소리 청아하여 구천에 사무치는 듯 들을수록 신기한지라.
 
151
생세 20년에 성경 현전(玄典)만 속독하고, 세정은 모르는 중 더욱 음률이야 어찌 알이요마는, 선공(先公)을 들여 거문고를 만드니 천년지질(千年之質)이라.
 
152
소리 청원하여 채 옹(蔡邕)의 초미금(焦眉琴)을 부뤄 아닐지라. 공퇴(公退)에 한가한 때면 매양 희롱하시니, 공이 그 때에 나이 10세라. 익히 본고로 만지되 곡조를 이루니 선공이 기이히 여기사 가르치니 지극히 쉬운지라 28 곡을 배웠고, 경주에 예부터 옥소 둘이 있으되 천하 보물이라. 아무리 불어도 소리 나지 아니하러니, 하루는 한 동자가 들어와 구경함을 청하거늘 내어 주니, 이윽히 보다가 당기어 부니 그 소기 요량하여 십 리거늘 신기하여 붙들어 두니, 그 동자가 화식(火食)은 먹지 아니하고 대추와 송엽만 먹고 밥마다 월하에 부니, 공이 본디 영민하고 인물이 출중한 고로 그 동자와 지기 상합하여 같이 있다가, 하루는 간 데 없고 글 두 귀를 지어 두었으니, 하였으되,
 
153
‘요화초락진연소(蓼花初落塵緣消)하니 욕거미귀천적요(欲去未歸天寂寥)라. 학배청풍취부진(鶴背淸風吹不盡)하니 천년일견해동소(千年一見海東簫)라.’
 
154
하였더라. 
 
155
공이 그 때에 배워 12조를 통하였더니, 이날 밤에 통소 소리에 옛일이 완연하여 월색을 좇아 점점 나아가니 이 곳은 대성산 석실이라. 촉영(燭影)이 몽롱하고 향운(香雲)이 자욱한 가운데 요요한 소리 구천에 사무쳐 구포 경지에 신봉(神鳳)이 우는 듯, 사람의 장위를 유양(悠揚)하는지라.
 
156
문외에 배회하여 차마 돌아서지 못하더니, 이윽고 통소를 그치고 탄왈,
 
157
“고이하도다. 퉁소 소리 홀연히 이지러지니 누가 절창(絶唱)하는 자 있도다. 이 심야에 올 사람은 없고 반드시 귀신이 희롱하옴인가. 나의 옥바둑은 누가 주워 갔는고. 날과 전생 연분 선리동자가 얻었는가. 혹 속연이 모르고 주워 갔는가. 그러나 속인은 알아보지 못하리니 고이하도다. 채란아, 너 나가 보아라. 속객이 나의 퉁소 소리를 듣고 찾아왔나 보다.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곡조를 이루지 못하리요.”
 
158
문을 열고 일개 미인이 나오거늘, 이공이 급히 몸을 감추지 못하여 눈에 띈 바가 되니, 그 미인이 놀라서 왈,
 
159
“선모(仙母)의 말씀이 신기하시도다.”
 
160
하고 왈, “그대 뉘시완대 이 지경을 범하였느뇨. 바삐 말하여 큰 죄를 면하게 하라.”
 
161
이공이 공결 대왈,
 
162
“소생은 경성 사옵는 이 모러니, 마침 무슨 소간이 있어 평양 등지에 왔다가 퉁소 소리를 찾아왔거니와, 무슨 큰 죄를 범하옴이 있느뇨?”
 
163
채란이 들어가 고한대, 분부 왈,
 
164
“과연 속객이로다. 죄를 짓고도 없노라 하니 더욱 고이하도다. 속인끼리도 절청(窃聽)을 기하거든, 하물며 선범(仙凡)이 다르거늘, 어찌 당돌히 천상 희음을 절청하리요. 아직 속한 화는 없으려니와, 일후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을 어찌 면하리요. 그러나 옛날 동문선이 갈홍 선옹(葛弘仙翁)의 거문고를 엿듣고 봉자성이 월궁 항아(月宮姮娥)를 희롱하엿으나, 다 숙세 여분으로 선음(仙音)을 능통한 고로 무사할 뿐 아니라, 마침내 좋은 도리 있었으니, 속객도 퉁소를 절청하였으니 곡조를 능통하는가 알아 오라.”
 
165
채란이 나와 문왈,
 
166
“그래 아까 들었다니, 우리 선모 부시던 소리 무슨 곡조뇨?”
 
167
이공이 그 노주(奴主)의 말을 들으매, 하도 허황 매랑하나, 당장 내 눈으로 보았으니 이상하도다. 그런 중 날더러 삼재팔난을 겪으라 하니 더욱 우습도다. 세상에 허무한 일이 많거니와, 더욱 신선이니 귀신이니 함은 아주 없는 줄 알았더니 대강 고이하도다 하고 왈,
 
168
“알든 못하거니와 아까 곡조를 못 다 들었으나, 곧 만파식조(萬波息調)인 듯하도다.”
 
169
이윽고 또 나와 물어 왈,
 
170
“어디서 배웠으며 몇 조나 아느뇨?”
 
171
이공 왈, “알기는 10여 조를 알거니와 내 본디 아노라.”
 
172
또 문왈, “만파식이 몇째뇨?”
 
173
대왈, “제 1조는 옥화용이오, 제 2조는 금동타요, 만파식이 제 3조이어니와, 그태여 묻지 말라. 나는 돌아가노라.”
 
174
이윽고 도로 나와 문왈,
 
175
“인간으로는 18년 전에 경주 지방에서 배웠는가. 그렇지 아니하면, 인간에 전하지 못한 곡조를 어찌 속인이 알리요.”
 
176
공이 대왈,
 
177
“과연 그러하거니와 어찌 아느뇨?”
 
178
채란이 도로 나와 꿇어 고왈,
 
179
“선리 상공이 오신 줄 몰라 달리 맞잡지 못하였사오니 죄송하여이다. 상공은 곧 소비의 구일 상전이로되, 그동안 천상 인간이 갈리와 몰라 보옵고, 여러 순 힐난하였사오니 용서하옵소서. 방에 계시는 분은 곧 벽도낭랑(碧桃娘娘)이시니다.”
 
180
이공 왈,
 
181
“벽도 낭랑은 뉘시며 그런 허황한 말씀은 내 본디 믿지 아니하노라.”
 
182
말이 미처 끝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왈,
 
183
“낭군이 연화계에 윤겁을 지내시고도 그 고상한 마음은 변하지 아니하시니이까. 반갑지도 아니하신가. 들어오소서.”
 
184
이공이 얼른 보니 방 안에 구슬발을 겹겹이 치고 향내 진동한 가운데 일개 부인이 섰으되 세상에 없는 인물이오, 몸에 오운이 어리어 바로 볼 수 없거늘, 마음에 희한하나 천성이 정대한 고로 도로 돌아서며 왈,
 
185
“남녀 유별하거늘 어찌 그리 무례하뇨.”
 
186
낭랑이 찬연히 웃어 왈,
 
187
“낭군의 고집은 본디 알거니와 하도 반갑고 희한하오니 체면도 던져 두소서. 그리 정대하실 터이면 남의 퉁소는 어찌 몰래 엿들어 계시니이꼬.”
 
188
나와 손을 이끌고 들어가거늘 이공이 고이히 여겨 들어가니 낭랑이 다시 사배하거늘, 이공이 답배 왈,
 
189
“모야 무지에 생면 남녀 언어 상통이 본디 불가하옵고, 또 예절 없이 핍박하여 끌어들임도 고이하고, 체례없는 예배는 무슨 일이니까?”
 
190
하고 일어서니, 낭랑이 추연히 왈,
 
191
“진세에 적강하시와 28년 동안에 전세 일은 아주 잊으시도다. 첩의 이름은 도홍선(桃紅仙)이옵고, 또 하나는 유홍선(柳紅仙)이라. 첩은 서왕모(西王母)의 반도(蟠桃) 소임하던 여관(女官)으로, 남이 이르기를 벽도 낭랑이라 하옵고, 유홍선은 자죽림(紫竹林) 관음대사(觀音大師)의 여관이니 남이 이르기를 유성군이라 하옵고, 낭군은 영소보전(靈宵寶殿)에 인감(印鑑) 맡은 선관이러니, 이천왕 부인(李天王夫人) 탄일에 모든 여선이 모이실새, 첩은 서왕모를 모시고 왔삽고, 유성군은 관음보살을 모시고 왔삽더니, 낭군이 옥제(玉帝)의 명으로 옥로자하주(玉露紫霞酒)를 영솔하시와 천왕궁 시기로 첩 등이 듣고자 하여 나아가온즉, 낭군께옵서 우수로 첩의 손을 잡고 좌수로 유성군의 손을 잡으사 희롱하시매, 첩 등은 연약한 여자라 이기지 못하여 명을 좇았사오나, 그 후는 다시 못 뵈옵고 다만 시비만 보내어 신식(神息)을 통하옵더니, 그 때 시비는 곧 채란고 채향이라. 신정이 미흡하와 항상 결연하오나, 천상 법문이 삼엄하와 조운모우(朝雲暮雨)에 경경하다가 낭군께옵서 남두성(南斗星)과 언힐(言詰)이 심하였더라. 그 후는 천상 인간이 현격하와 연연한 회포를 이때에 첩이 보탑동자(寶塔童子)를 잠깐 보내어 옥소를 유인하러 함이니, 그 동자는 곧 낭군께옵서 부리시던 아해요, 그 옥소는 곧 낭군의 옥소니, 낭군 적강(謫降)하신 후 동해 용왕이 유공하여 옥제께옵서 사송하였더니, 인간 도승의 도술로 뺏어다가 신라 왕께 바쳤으나, 인간 사람으로야 어찌 소리를 내리이까. 또 저 석탑 위에 바둑판은 곧 달관선자(達官仙子)가 봉경진인(奉鏡眞人) 가르치던 곳이라. 향자에 첩이 유성군과 내려와 놀다가 낭군 오실 줄 짐작하고 청홍(靑紅) 기자(基子)를 두어 표물을 삼았사오니, 이는 곧 자죽림 대궐루에 나는 버섯이니, 한번 나면 억만 년을 변하지 아니하고 지극히 가볍기로 천상 보배라. 기자를 만들더니 숙세 연분이 지중하와 낭군이 얻어 계시거늘, 어찌 인력을 피하시리이까.”
 
192
하고, 채란을 명하여 주효를 올리거늘, 이공이 십분 고이하여 반신반의하나, 자취가 명명하고 말이 유린한고로 급히 일어서지 아니하고 사기를 살피더니, 낭랑이 자하상에 옥액 경장(玉液瓊漿)을 가득 부어 드리거늘, 이공이 사양 왈
 
193
“학생이 본디 술을 먹지 못하나이다.”
 
194
낭랑이 웃어 왈,
 
195
“홍제원 활량의 술과는 다르오니 염려 말으소서.”
 
196
이공이 놀라 왈,
 
197
“낭랑이 어찌 알으시느뇨?”
 
198
낭랑이 공경 대왈,
 
199
“첩이 낭군의 단처(短處)를 일컬음이 아니라, 하도 결연하고 차마 잊삽지 못하와 낭군의 일동일정을 유심하여 살피오니, 그런 이를 어찌 모르리이꼬. 하도 반갑사와 체면도 버리고 염치도 없사오나, 복망 낭군은 전후생(前後生)의 고상하오신 마음을 굽히사와 첩의 알뜰한 정성을 돌아보소서. 낭군이 몇 해을 연화계에 계신 동안에 백명을 소각하시고 좋은 도리 많사오리니 너무 고집치 말으소서.”
 
200
이공이 마지 못하여 받아 마시니 향취 진동하고, 실과를 맛보니 모두 기이한지라. 인하여 두어 잔을 마시니 취하는 줄은 모르되, 자연 마음이 활발하고 호흥(毫興)이 도도하여 사례 왈,
 
201
“내 평생에 허무한 이치를 믿지 아니하더니, 낭랑의 말씀을 들으매 종적이 방불하고 사실이 유리하니 세상에 기이한 일도 있도소이다.”
 
202
하고, 낭중으로서 청흥 기자를 내놓으며 왈,
 
203
“대강 이상하여이다. 그 퉁소를 내어놓으소서.”
 
204
낭랑이 드리거늘 받아 보니 윤택한 옥광이 경주 옥소와 방불한지라. 이에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 요량 청절하여 세속 소리는 아니라. 낭랑이 칭사 왈,
 
205
“낭군이 전세 곡조를 잊지 아니하시도다.”
 
206
이공이 손사 왈,
 
207
“어찌 그러하오며, 전후생 일은 재기하지 말으소서. 더욱 허황하여이다.”
 
208
하고, 인하여 주흥을 못 이겨 그 옥수를 잡으니, 조 자건(曺字建)의 낙신부(洛神賦)는 종적이 맹랑하고, 초양왕(楚襄王)의 운우몽(雲雨夢)은 신정이 미흡하다. 위수(渭水) 속에 누른 구슬 낚시 음노 옭아 내니, 강 태공(姜太公)의 도술이나 풍운 재회(風雲再會) 조짐이요. 주 문왕(周文王)의 굽은 나무 칡덤불로 감았으니, 태사(太姒) 성덕 길임이나 군자 호구(君子好逑)아니올까.
 
209
정성이 지극하면 돌부처도 말을 하고 솜씨가 능란하면 산 사람도 혼을 뺄지라. 이 학자의 빙설 같은 절개와 철석 같은 심방이 부지중에 녹았으니, 옛말에 하였으되 대장부의 강한 창자도 부인에게 혹한다는 말이 명담이오, 순금의 굳은 물건도 풀무에도 녹느니라.
 
210
이윽고 평양 성내에 계명성(鷄鳴聲)이 자자하고, 동천에 새벽 샛별은 신광이 희미하다. 이에 벽도 낭랑이 운문상(雲紋床)을 걷어 안고 채란을 명하여 일배주를 다시 권하고 왈,
 
211
“낭군이 전세 연분을 이으사 추상 같은 엄위와 옥 같은 절개를 돌리사 더럽다 아니하시고 돌아보시니 지극 감사하거니와, 천상 인간이 현격하오니 다시 뵈올 날이 있사오리까.”
 
212
이공 왈,
 
213
“허황하오나 낭랑이 말씀하던 유성군도 만날 도리 있으리까?”
 
214
낭랑 왈,
 
215
“처소가 다르옵고 매인 몸이 임의로 못 하와 이번에도 동행함을 기약하였더니 여의치 못하였사오나, 연분이 지중하오니 자연 회합하는 도리 있사오리이다. 첩의 일이 시각을 어기오지 못하와 날이 밝으면 난처한 일이 있사오리니 이별이 창연하여이다.”
 
216
하고, 다시 자하상을 들어 권하고 일어서거늘, 손을 서로 잡아 이별하고 돌아올새, 중간에 내려와 돌아보니 촛불은 꺼지고 월색만 창만할 뿐이더라.
 
217
객당에 돌아오니 촉불은 그저 켠 채 있고 동방이 밝았는지라. 혼자 앉아 생각하니 지낸 일이 꿈 같아 일변 허무도 하고 일변 이상도 하여 스스로 헤아리되, 내 평생에 황당한 일은 믿지 않고 고서에 있어도 보지 않았더니, 내 몸으로 겪을 줄 오찌 뜻하였으리요. 대강 고이하도다. 당초에 경주서 퉁소 배우던 일과, 일전에 기자 얻을 일이 다 역력히 연고 있으니 그런 허무한 일이 어디 있으며, 내 비록 남자나 방의 범색은 고사하고 부부간에도 아주 소활하더니, 작야에는 무슨 일로 자연 동심하여 행위 부정하였으며, 또 고이한 일이 그 여자도 홍선녀로라 자칭하니 인간 사람은 아닌 듯하되 남녀지정은 인간 여자와 같으니 천상도 부부 있어 음양지리가 있는가. 견우 직녀의 일을 문장에 꾸민 말로 알았더니, 그러면 참말 부부지리가 있는가. 정녕 부부가 있을 지경이면 어찌 생산인들 없으리요. 질정하여 물을 곳이 없으니 평생 의심이 이에서 더 큰 일이 어디 있으리요. 혹 어떤 여자가 나의 외양을 사모하여 일장 흉계를 배설하였는가. 만일 그렇대도 내 일을 어찌 그리 자세히 알며, 종적이 그리 영락없이 맞으리요. 선녀의 말이 유성군을 만나리라 하였으니 또 시험하여 진위를 알리라 하고, 서책을 대하니 선녀의 성음과 미목이 완연하여 그리 정일(正一)하던 마음이 요동하는 지라. 책을 접고 있더니, 이윽고 유생이 꿇어 사죄 왈,
 
218
“소생의 외종이 있삽더니 무슨 죄레 걸리와 영문에 상사하여 왔삽기로 미처 집에 통하지 못하고 소친을 좇아 좌우 주선하다가 자연 어겼사오니 죄송 죄송하여이다.”
 
219
이공이 소왈,
 
220
“어찌 그다지 사과하며, 옥사가 어찌 될지 관려(關慮)가 적지 아니하도다.”
 
221
유생이 대왈,
 
222
“일은 무사하였나이다.”
 
223
이 모양으로 수작하되 어찌 의심히야 있으리요. 남녀가 모양이 다르고, 또 주야가 다를뿐더러 군자는 가기이기방이라. 어찌 의심이 그 지격에 이르며, 또 평일에 홍류 양생을 실실 군자로 믿었으니 어찌 일호나 치의(致疑)하리요.
 
224
수일 후에 이공이 유생더러 왈,
 
225
“홍생은 어찌 아니 오느뇨. 우리 심심하니 석실 구경이나 감이 어떠하뇨?”
 
226
유생이 대왈,
 
227
“명대로 하사이다.”
 
228
하고, 시비를 불러 약간 주효를 가지고 올라가니, 눈에 보이는 물색이야 어찌 일전가 다르리요마는, 이공은 별로 유의하여 보고 사색이 조금 다르더라. 유생은 소피하고 시비는 술을 데울 틈에 석실에 들어가니, 도홍선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여 자연 침음하다가, 문득 보니 남편 벽상에 글 두 귀가 붙었거늘, 빨리 떼어 보니, 하였으되,
 
229
‘중천명월강호도(中天明月江湖渡) 학배청풍문옥소(鶴背淸風聞玉簫) 욕문갈홍적강일(欲問葛弘謫降日) 중추월야주요금(中秋月夜奏瑤琴)’
 
230
보기를 다하매 낭중에 넣으니라. 도로 나와 석대에 올라 구경하다가 유생이 술을 드리거늘, 이공 왈,
 
231
“그대 날과 같이 있은 지 1년이로되 나의 술 못 먹는 줄을 모르는가.”
 
232
유생이 꿇어 고왈,
 
233
“어찌 모르리이까마는 선생님께옵서 객회가 없지 아니하시고, 또 경광(景光)이 좋은 곳이오니 한 잔이 해롭지 아니할 듯하와 준비하였삽더니 지극 황공하여이다.”
 
234
하고 송구히 물러서거늘, 공이 그 공경 손사함을 아름다이 여기고, 그 뜻을 어여삐 여겨 웃어 왈,
 
235
“내 본래 주량이 없는 고로 요량 없는 고견에 책망삼아 하였더니, 그대 너무 손사하니 도리어 무렴하도다.”
 
236
하고, 한 잔을 마시고 왈,
 
237
“수작이 없지 아니하니 그대는 어찌 하려뇨?”
 
238
유생이 온화한 말로 고왈,
 
239
“소생이 선생님을 모시온 지 거의 1년이오나 한 번도 설마하지 못하였더니, 오늘날 술을 주시오니 아니 먹지 못하나이다.”
 
240
하고 자리를 돌리고 한 잔을 마시니, 조발부용(朝發芙蓉) 같은 얼굴에 홍도화 작약하니 볼수록 만고절염(萬古絶艶)이라. 이공이 문득 낭랑의 얼굴을 생각하고 새로이 반가와 웃으며 왈,
 
241
“두 목지(杜牧之)와 반 악(潘岳)이 어찌 그대에게 지나리요.”
 
242
하고, 적이 침음하다가 왈,
 
243
“세상에 신선이란 말이 있으니 과연 있는가. 향자에 그대 등의 말이 산중에 수도하는 것이 신선이라 함이 방불하거니와, 서전(書傳)·시전(詩傳)은 성인이 지으신 바라 믿지 아니하지 못하거니와, 하늘 일을 보는 듯이 말씀하였고, 주 문왕(周文王)이 옥황상제 좌우에 계시다 하고, 상제를 일컬음이 몇 번이오, 천명(天命)이니 천장(天定)이니 천감(天感)이니 천시(天時)이니 하였는즉, 과연 무슨 형지가 있어 별세계를 배판하였을까, 아지 못할 일이오. 노자(老子)니 농옥(弄玉)이니 왕 자진(王子晉)이니 안 기생(安期生)이니 이태백·두 목지(杜牧之)는 신선이 될 듯이 말하고, 유 안(劉安)은 신선과 수작하였고, 또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용을 타고 신선이 되어 가고, 주 목왕(周穆王)은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요지(瑤池)에 가서 서왕모(西王母)를 보았고, 한 무제는 서왕모를 만나고, 동방 삭(東方朔)은 반도(蟠桃)를 도적하여 먹고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고, 당 명황(唐明皇)은 월궁(月宮)에 들어가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배웠다 하고, 한나라 장 건(張騫)은 떼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직녀와 수작하였다 하니, 모두 허황하거니와, 아주 없으면 성현과 문인·문객이 어찌 그리 영절스레 말씀하였으리요. 아주 없는가. 무엇이 좀 있는가. 의심이 없지 아니하고, 서왕모니 관음보살이니 함은 계집 신선이니 천상에도 남녀 분별이 있으며, 오륜삼강이 있는가. 학생이 공부 머거하여 사사 망령이라 하거니와 모두지 허황하도다.”
 
244
하고 침음하니, 이른바 십벌지목(十伐之木)이라. 유랑은 짐작하되 정대히 대왈,
 
245
“천하 만사의 유무를 어찌 질정(質定)하오리이까. 대강 하늘 일도 요량 못 하거니와 사람의 꾀도 요량 못하여, 정성이 지극하오면 귀신도 감동하나니, 사람인들 어찌 고집하오며, 옛 말씀에 성인과 하우(下愚)는 옮기지 못한다 하였거니와, 예사 현인·군자와 중등 인물은 시세를 따라 고치는 도리 있삽고, 풍속을 좇아 변하는 일이 있사오니, 그렇지 아니하면 자악의 집 종을 면하지 못하며 다리 기두을 안고 물에 빠져죽던 미생의 고집이오나, 소생 같사온 하등 바탕은 중심이 요량 없사와 조변석개(朝變夕改)하오며 변개 백출하오니, 소생의 평생을 어찌 예료하오리까. 오늘날 주력을 믿고 선생인 말씀 끝에 촉범이 많사오니 용서하옵심을 어찌 바라오리까.”
 
246
하고 공손히 섰으니, 선연 작약한 태도 일광을 따라 찬란하거늘, 이공이 볼수록 신기하여 헤오대,
 
247
“저것이 만일 여자 같고 날과 같이 있으면 어찌 무심하리요. 대강 남중일색(男中一色)이로다. 거야에 벽도 낭랑이 아무리 신기한들 남복을 시켜 백주에 자세히 보면 어찌 저만 하리요. 그뿐 아니라 홍생의 인물도 일반이니, 평안도를 색향이라 하더니 남녀가 일반이로다.”
 
248
하고, 책책 칭찬함을 마지아니하되 이른바 아가사창(我歌査唱)이로다.
 
249
평양 남중일색만 알고 경성 남중일색은 모르며, 경성 중에 제일 인물이 자기인 줄 모르도다. 대강 양랑의 인물이 빼어났다 한들 천연 작약한 옥모 영풍과 화려 정대한 행동거지는 일색 중 군자요 군자 중 일색이라. 쇄락한 풍채와 동탁한 용모는 천고에 처음이오 천하에 독보이니, 어찌 양랑으로 비교하리요.
 
250
그러므로 양랑이 하마 고생을 꿀같이 여기고 지극 정성을 다하여 거의 돌려 놓았으니, 신총한 도술은 강 태공의 병법이라.
 
251
이윽고 석양이 지나고 황혼이 가까우니 만호 누대에 가취성이 은은하고 석연이 희미한지라. 완보로 내려오니 홍생이 마침 들어오는지라. 반겨 맞아 3인이 촉하에 대좌하여 물어 왈,
 
252
“어찌 그리 오래 있느뇨. 우리 만난 후 잠시 이별을 아끼더니, 이번은 20여 일 왕반이 삼추 같도다.”
 
253
홍생이 꿇어 고왈,
 
254
“오랜 후에 고향 가온즉 자연 그러하오며, 여간 전토와 세간을 척매(斥賣)하노라니 자연 더디어 성우를 끼쳤사오니 죄송죄송하여이다.”
 
255
이공 왈,
 
256
“과연 경성으로 반이(搬移)하려는가. 공연히 날로 인하여 일장풍파를 겪도다.”
 
257
양생이 꿇어 고왈,
 
258
“선생님께옵서 이 곳으로 오시든 못할 터이옵고, 소생 등이 평생을 모시자 하오면 경성으로 가야 할 터이옵고, 그렇지 아니하여 소생 양인이 평생을 떠나지 아니할 지경에는 불가불 한 곳으로 모일 모양이온즉, 서울이 아니면 평양이모며, 또 소생 등의 형세 유여하오니 여간 비발로는 손해되지 아니하오며, 선생님 뵈온 후로 세월 가는 줄 모르오니, 설령 손해가 대단한대도 관계 없나이다.”
 
259
유생이 꿇어 고왈,
 
260
“소생도 고향에 가오면 수십 일을 허비할 터이오니, 그 동안 객회를 돕사올 듯 죄송하여이다.”
 
261
이공이 소왈,
 
262
“내 무슨 복력으로 양 수재의 천연한 용의를 쌍으로 접하여 배우리요. 한 분씩이나마 놓치지 아니하면 다행일까 하노라.”
 
263
양인이 손사하고, 유생 왈,
 
264
“우리 선생님께옵서 요사이 주량이 많이 늘어 계시니 치하할 일이라.”
 
265
하니, 홍생 왈,
 
266
“형의 말씀이라 하도다. 본래 근구(近口)하지 못하시거늘 어찌 별반 느시리요. 내 고향에 갔다가 본토 물산으로 약간 주효를 준비하였더니 과연 다행하도다.”
 
267
양생의 언사와 거동이 전보다 많이 버릇이 없어 선생을 희롱하는 모양이로되, 서로 흠모함이 금석같이 굳었으니 어찌 혐의하리요.
 
268
이윽고 주찬이 나오되 융숭하고 화치하옴이 관찰사와 다름이라, 명촉을 돋우고 주객이 솥발을 벌리고 앉아 맛볼새, 홍생이 백옥잔에 감홍로(甘紅露)를 가득 부어 아뢰며 왈,
 
269
“비록 술은 술이오나 과히 취하지 아니하오니 잡수심을 바라나이다.”
 
270
이공이 흔연히 받아 마시고 또 부어 홍생을 권하니, 홍생이 사양하지 못하여 일어나 절하고 받아서 마시니, 유생이 또 올리고 수작하여 3,4배에 지나니, 3인이 다 취하였는지라.
 
271
본래 춘풍 화기에 주훈을 겸하였으니, 그 모양을 볼작시면 서왕모(西王母) 요지연(瑤池宴)에 이 태백이 수석될 줄 어찌 뜻하였으리요.
 
272
이공이 주흥을 띠어 양생을 다시 보니 만고절염이오, 양인의 용모 색태 붓으로 그린 듯, 쌍생인들 어찌 그리 같으리요. 일변 벽도 낭랑의 면모 눈에 삼삼하여 생각하되, 벽도와 유성군은 동류라. 서로 언략이 있어 나를 구하되 뜻과 같이 못 하여 선후는 있을지언정 날과 정녕 연분은 있는 모양이오. 중추야에 거문고로 갈홍을 만나리라 하였으니, 갈홍은 곳 유성군이라. 28수에 유성이 갈홍곡두사유수라 하였고, 이름이 홍선이라 하니 분명한 유성군이라. 그러나 이제도 20 여 일을 기다려야 8월 15일이 될 모양이나, 유생이 또 안주를 가면 그 때 돌아오리니, 내 돌아감이 자연 8월 그믐께 되겠도다. 그러나 만일 그 눈치를 양생이 알면 모양이 수통(羞痛)하리니, 벽도 만날 때에는 다행히 조용하였거니와, 중추야에 또 어찌 틈을 타리요.
 
273
생각이 이 지경에 이르매 공부는 자연 등한하더라. 술을 파하고 각각 취침하되 분명한 삼개 남자일러라.
 
274
수일 후에 유생이 또 길을 떠날새 수이 다녀옴을 당부하고, 이후는 홍생을 데리고 주야로 강론하되 마음에 쏘이는 일이 있으니 어찌 전일(專一)하리요.
 
275
중추가 아직 멀었으니 노처녀의 혼인날고 참방(參榜) 한 사람의 참방 날 기다리는 것고 같이 어찌 잠시인들 잊으리요. 13일을 당하여 홍생이 꿇어 고왈,
 
276
“소생의 조상 분묘가 자산(慈山) 자모산성 근처에 있사오되, 길이 멀어 자주 성묘하지 못하였삽더니, 금년은 가까이 와 있삽고 재명일이 추석이오니 차례를 하고 올까 하오되, 그 동안 선생님께옵서 오죽 궁금하시리이까. 소생이 오늘 떠나면 내일 들어가 모레 일찍 차례 지내옵고 곧 떠나오면 16일은 일찍 돌아와 뵈올까 하나이다.”
 
277
이공이 잠시 이별이 결연하나 일변 기다리는 일에 조용함을 다행하고, 또 만류하지 못할 일이라. 평안히 왕환함을 당부하니라.
 
278
혼자 있어 경학을 잠심하더니, 15일에 석반을 파하고 정계에 나서니, 만천성하에 천색이 청명하고 뚜렷한 중추월은 만호에 시사가 없어 요순세를 만난 듯, 상표는 삽삽하여 가회를 일르키고 백로는 창창하여 사람을 생각한다.
 
279
밤이 깊어 가매 사면이 고요하거늘, 완완히 떠나 올라가며 원근 경색을 살피더니, 과연 청량한 소리 풍편에 들리거늘, 일변 신기하고 일변 고이하여 점점 나아가니 거문고 소리 완연한지라. 혼자 외오되,
 
280
‘영령칠현상(泠泠七鉉上)에 정청송풍한(靜聽松風寒)을 고조수자애(古調誰自愛)나 금인다불탄(今人多不彈)을.’
 
281
가까이 나아가니 석실에 은촉이 휘황하고 요량한 소리 잦아지거늘, 가만히 들어 보니,
 
282
“추풍석기혜(秋風夕起兮)여 백로위상(白露爲霜)이라. 명월교교혜(明月皎皎兮)여 조공방(照空房)이라. 주일고단혜(晝日孤單兮)여 야미앙(夜味央)이라. 유미일인혜(有美一人兮)여 천일방(天一方)이로다. 추풍절절혜(秋風節節兮)여 운명명(雲明明)이라. 세월조애혜(歲月阻碍兮)여 홀여유생(忽如遊生)이라. 소장기시혜(消長其時兮)여 노영기상(老嬴其像)이라. 원언사자혜(願言士子兮)여 사아심정(思我心情)이로다. 추풍호탕혜(秋風浩蕩兮)여 천우고(天又高)라. 군산위이혜(群山逶迤兮)여 계곡적요(溪谷寂寥)라. 등고망원혜(登高望遠兮)여 불자료(不自料)라. 가인적래혜(佳人適來兮)여 수여유오(誰與遊慠)라. 명월유정혜(明月有情兮)여 사고소조(四顧所遭)라. 원언사자혜(願言士子兮)여 사아심로(思我心勞)라.”
 
283
연하여 3장을 타더니, 홀연히 탄왈,
 
284
“내 비록 유 백아(劉伯牙)는 아니나 종 자기(鐘子期)가 왔나 보다. 그러나 양인은 인간 사람이어니와, 천상 희음을 뉘 감히 엿들으리요. 채향아, 나가 보아라. 고이하고 이상하다. 내 평일에 거문고를 희롱하되 그렇지 아니하더니 오늘은 신기하도다. 제 1 장에 줄이 놀더니 제 2 장에 끊어지고 제 3장에 이르니 신통하도다. 기울었던 달이 다시 둥글고, 끊어진 연분이 도로 이으려나 보다.”
 
285
말이 마치며 문을 열고 여화여월(如花如月)한 동선(童仙)이 나오거늘, 피하고자 하다가 짐짓 섰더니, 동선이 놀라 문왈,
 
286
“어떤 사람이완대 소식 없이 선경을 범하였는고?”
 
287
이공이 웃으며 왈,
 
288
“이 곳이 인간이지 어찌 선경이라 하리요. 허황한 말을 말라. 마침 객지에 있다가 월색을 쫓아왔거니와, 그대는 어떤 사람이며, 석실에 거문고 타는 이는 누구뇨?”
 
289
동선이 들어가며 대답이 없더니, 또 나와 문왈,
 
290
“모름이 중원밤에 왔다 가신 일이 있다니이까?”
 
291
이공 왈,
 
292
“어찌 묻느뇨?”
 
293
또 문왈,
 
294
“그날 어떤 사람을 보시니이까?”
 
295
대왈,
 
296
“허황한 일은 옮기기 싫거니와 어찌 묻으뇨?”
 
297
그 동선이 나와 재배 왈,
 
298
“선리 상공이 아니시니이까. 우리 낭랑이 기다리신 지  오래이오니 들어가사이다.”
 
299
이공이 정색 왈,
 
300
“낭랑이라 하니 반드시 여자라. 생면 남자를 들어오라 함은 무슨 일이뇨?”
 
301
이윽고 석실이 열리며 향취 진동한 가운데 일개 부인이 머리에 쌍봉오화관(雙鳳五花冠)을 쓰고 몸에 운뢰문금상(雲雷紋錦常)을 입고 나서며 왈,
 
302
“어찌 오시나이까. 천상 1일이 인간 1년이오니, 낭군이 인간에 적강하신 지 28년이 곧 천상 28일이라. 천왕궁에서 처음 보실 때에는 그리 호협하사 우리 등을 탈치 산양하듯 다루시더니, 연연 세계에 윤회를 지내시기로 그다지 정대하시와 전생 연분을 천만 이외에 만나시고, 무슨 원순진 사람같이 외면하시며, 수작이 그러하실 터이오시되, 하늘이 정하오신 일은 인력으로 어기오지 못하나니, 허황 2자는 아주 던져 두시고 들어가사이다.”
 
303
이공이 하릴없어 들어가 빈주지례(賓主之禮)를 차려 앉아 살펴보니, 인물 범절은 벽도 낭랑과 차등이 없으되, 금은 주취는 더욱 찬란하고 백옥로에 향연이 피어오르는 양은 한 무제 태산봉(泰山峯) 중에 백운 엉기듯 하고, 병풍을 사면에 쳤으되 한편은 진 공주(眞公主) 농옥(弄玉)이 소사(簫史)를 맞아 학의 등에 쌍으로 앉아 퉁소를 불며 벽공을 향하는 모양이오., 한편은 무산 선녀(巫山仙女)가 비 되고 구름 되어 초 양왕(楚襄王)을 모시던 모양이오, 한쳔은 서왕모(西王母)가 청조(靑鳥)로 노문 놓고 자운거(慈雲車)를 타고 미앙궁(未央宮)에 들어가 구광등을 높이 달고 한 무제와 수작하는 모양이오, 한편은 황제 현원씨가 구연단을 먹고 백일 승천할 제 용을 불러 난거(鸞車)를 메고 일들 미인을 옆옆이 끼고 옥황상제께 조회하던 모양이오, 천장을 쳐다보니 상청제자(上淸弟子) 당 명황(唐明皇)이 십부자(十夫子)를 앞세우고 이원 제자(梨園弟子) 뒤를 따라 갈고를 쿵쿵 울리면서 옥 같은 양 태진(楊太眞)을 곤룡포(袞龍袍)로 싸서 안고, 무지개 다리를 중천에 어영구붓 뻗쳐 놓고 흥청거려 올라가서 광한전(廣寒殿) 들어가니 이 때 마침 상원(上元)이라, 선관선녀(仙官仙女) 차례로 늘어앉고 금동 옥녀(金童玉女) 항렬 차려 예상우의(霓裳羽衣) 춤을 추니, 구경은 처음이나 추위를 못 이겨 웅숭그린 모양이라. 이공이 정신이 황홀하여 문왈,
 
304
“낭랑은 뉘시완대 날 같은 속객을 더럽다 아니 하고 체면없이 불러들이느뇨?”
 
305
낭랑이 공경 대왈,
 
306
“월전에 벽도 선녀게엑 대강 들어계옵시니 또 아뢰지 않거니와, 낭군의 일동일정을 첩 등이 유심하와 때를 기다리나니, 홍제원 활량에게 봉욕하신 날부터 첩 등의 연분이 올 조짐이라. 홍유 양생이 그 자리에세 낭군의 범절을 뵈옵고 허다 공행을 지내되 괴로운 줄 모르고 낭군을 유인하여 이 곳에 오심이 막비천정(莫非天定)이라. 낭군이 전세에 너무 고상하시다가 인간이 적강하시와 부귀가에 탄생하시되, 천성을 변치 아니하사 인간 재미를 아주 모르시고, 육식진찬(肉食珍饌)과 능라금수(綾羅錦繡)를 도리어 천히 여기시고, 일등 미색을 요물로 알으시기로 귀신이 미워하여 활량들에게 그 욕을 당하시고, 육례(六禮) 갖추신 부인이 출증하시거늘 돌아보지 아니하사 김 시랑(金侍郞) 곳 아니면 절대(絶代)할 뻔하시기로, 조물이 인도하여 첩 등의 숙세 연분을 도로 맺어 세상 재미 알게 하옴이니, 허황하다 말으시고 때를 순히 하소서. 인심이 곧 천심이라, 하늘이 하시는 일을 사람이 어기오지 못하고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늘이 또한 좇나니, 낭군이 빙옥 같은 절조와 금석 같은 심간을 돌리사 천명을 순수하시고, 세상에 나셨던 보람이 있게 하소서. 그 모양으로 계시다가 도로 상계로 돌아오시면 인간에 후세 이름은 전하시려니와, 쓸개 있는 인간은 천상과 달라 물색이 으뜸이어늘, 물욕을 아주 몰라 명환 거족의 자손으로 외양이 천만인 중 제일이오, 문장과 재주가 탁월하시되 부귀를 초개같이 여기사, 부모께 받자온 골육을 억지로 음지에 말려 30전 윤택한 기부를 꿇어앉아 골리고, 조발부용 같으신 용색을 중병 든 사람같이 혈색을 저상하시고, 공연히 험한 의복과 나막신으로 세월을 보내시니 그 무슨 악형이오며, 과거에 유의 아니하기는 혹 그러하올는지 조정 공론으로 좋은 벼슬을 사키시되 코방귀를 뀌시고, 연골 학자니 화식하는 부처이니 하는 칭호를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알으시니, 낭군을 위하여 아연히 여기오며, 그 고벽(痼癖)한 천성에 어찌 퉁소와 거문고는 배우신고. 이는 첩 등의 전세 천연(天緣)을 얻고자 하옴이니 하늘 조화 아니오리까. 천왕궁에서 모양 없이 잠깐 만나와 첩 등이 옥교 방신을 훼파(毁破)하온 후 범문이 삼엄하여 다시 만나지 못하고 몇천 년을 지내옵다가, 천상 인간을 격절하온 후 더욱 아득하와 견우 직녀의 1년 1도 만남을 제일 행락으로 알고, 우리도 언제나 선리관을 다시 만나리요 하였더니, 하늘이 인도하사 이 곳에 오실 줄 짐작하옵고, 벽도 낭랑과 동행할까 하였더니, 마침 관음세존(觀音世尊)이 일이 있사와 못 가시옵기로 못 왔삽다가, 이번에 게으름을 타 왔사오니 하도 신기하고 반갑사와 체면이 너무 없사오니 용서하옵소서. 천상법(天上法)에 매월 삭망에 모든 선관선녀가 영소보전에 와 조회하고 즉시 퇴조하옵되, 서왕모와 관음대사는 옥체께옵서 3일씩을 쉬게 하시나니, 모든 모신 여선이 한가할 듯하오나, 번을 나지 못하면 시각을 비우지 못하오니 틈 타기가 대단 어렵사온지라, 복망 낭군은 어여삐 여기소서.”
 
307
하고, 순금합에 교리화조를 가득 담고 옥파라에 만세 송순주를 부어 올리거늘, 이공이 전후 말을 들으매 십분 감동하여 사양하지 아니하고 받아 마시니 이향이 만구(滿口)하더라.
 
308
그 잔에 부어 홍유 양랑을 권하니, 찬연히 웃어 왈,
 
309
“우리 인연은 먼저 맺고 교배석(交拜席) 합환주(合歡酒)는 이제 먹사오니 어찌 천장(天定)이 아니리이까.”
 
310
하고, 서로 권하여 3,4배에 이르니, 만연 홍운(紅暈)이 쌍으로 피어오르는 듯, 정신이 미란하여 초연이 구면되니 어찌 온자(蘊藉)하리요.
 
311
오백 년 풍류업원 장 군서(張君瑞)가 인간 재미를 독판칠 제, 유요를 관포하니 화심(花心)이 경동하여 노적목단개(露積牧丹開)란 말씀이 천만고에 춘화도(春畵圖) 압축이라. 어찌 형용하리요.
 
312
다시 은촉을 돋우고 옥액 경장을 임의로 수작하니, 천상 인간에 중추 가절이 제일 명절이온 중 금상첨화요 낙막락(樂莫樂)이로다.
 
313
양랑이 그제야 안색에 화기 돌아오고 공경 대왈,
 
314
“서방님께옵서 은택을 드리오사 첩 등의 중죄를 옹서하옵시고 천금 귀체를 왕굴(枉屈)하실 지경에는 첩 등의 재물이 수천 석이오이 무슨 도리를 못 하오리까. 좋을 대로 주선하올 터이옵고 일동일정을 서방님께 취품하여 하오려니와, 우선 압경이나 하사이다.”
 
315
이생 왈, “오직 못난 놈이 무당의 서방되며, 여간 잡놈이 지생의 모가비 되겠느냐, 요량대로 하라.”
 
316
이에 주찬을 준비하고 박산로에 향을 꽂고 술을 권할새. 이생 왈,
 
317
“채란과 채향은 본래 어떤 사람이완대 자품(姿品)이 저리 선연 작약하며, 나이는 얼마나 되었느뇨?”
 
318
채란이 꿇어 고왈,
 
319
“첩의 성명은 오 봉린(吳鳳麟)이옵고 자는 채란(採蘭)이오, 나이는 12세이옵고 홍 도화의 외사촌이옵더니 조실부모하옵고 내종형에게 길렸나이다.”
 
320
채향 꿇어 고왈,
 
321
“첩의 성명은 유 경란(柳景蘭)이옵고, 자는 채향(採香)이오, 나이는 12세이옵고 유 지연의 내종이옵더니, 아비 일찍 죽삽고 어미은 서울 김 판서 댁에 있삽고, 의지 없사와 의형에게 있는 고로 일동일정을 같이하옵다가, 이번에 의형의 시킴을 받자와 서방님께 기망한 죄를 지었사오니 죄만죄만하여이다.”
 
322
이생이 그 용모 작약하고 언사가 온순함을 기특히 여겨 웃으며 왈,
 
323
“날 같은 천치를 일조에 오입을 시키자면 하나 둘이 되겠느냐. 너희 등도 수고하였도다.”
 
324
하고 한 잔씩을 천히 부어 주니,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받으니, 양랑이 비로소 웃어 왈,
 
325
“하늘이 비와 이슬을 내리시매 어찌 하나 둘만 도택을 입사오리요. 너희 등이야 세상에 났던 보람이 있도다.”
 
326
하고 술이 반취하매, 유랑이 고왈,
 
327
“첩 등 사인이 이왕 세월은 전생 일이옵고, 새로 은택을 입사와 환생(還生)한 모양이오니 경사가 아닐 수 없는지라, 한번 놀기를 허락하시리이까?”
 
328
이생이 흔연 왈,
 
329
“양경아, 나를 놀리려 하느냐? 나도 오입속을 트자하면 음률도 알아야 하겠으나 소장대로 하여 보리라.”
 
330
하고 홍랑더러 왈,
 
331
“요지에서 가지도 온 옥소를 그저 가졌느냐?”
 
332
홍 도화 황공하여 공손히 올리거늘, 또 문왈,
 
333
“채채야, 너희 등도 세세 장종으로 또 명장(名匠)에게 있으니 소장(所長)이 무엇이냐.”
 
334
채란·채향이 꿇어 고왈,
 
335
“소자 등도 원숭이같이 입내는 내나이다.”
 
336
이에 이생은 옥소를 불고 홍랑은 비파를 타고 유랑은 고문고를 타고 채향은 해금을 타고 채란은 양잠을 타고 화답하니, 오음육률(五音六律)이 화답하여 태평기상(太平氣象)이 융융하더라.
 
337
한 곡조 마치고 홍유 양랑이 노래를 하거늘. 이새이 거문고로 화답하니 천생기재(天生其才)라. 배우지 아니하여도 한 번 보고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아깝다 천승인군(千乘人君)이 휘우지 못하던 이 학자를 요마(妖魔)한 양개 여자가 호물호물 주물러 성경현전(聖經賢傳)은 간다 보아라 하고 청가요무(淸歌妖舞)에 침혹하여 추월·춘풍에 혼령이 들락날락하더라.
 
338
수년이 지나니 음률에 모를 것이 없고 오입 속이 능통하여, 이왕 평안도 내에 수석으로 있던 일등 명기 앵무·비취 등이 삼삼를 퇴보하니, 그 옥모 영풍과 그 공부와 그 범절에 음률조차 독보되니 어찌 다 형언하리요.
 
339
하루는 모든 기생들이 모여 음률을 배울새, 수백 명 명기생과 백여 명 재자율객(才子律客)들이 일시에 아뢰되,
 
340
“선생님께옵서 이제는 평안·황해 양도에 으뜸 수석이 되시와 악부(樂府)를 개조하옵시고 교방(敎坊)의 정사를 맡아 계옵시니 제일 교방(第一敎坊)을 창건하옴이 득당하여이다.”
 
341
이생이 손사왈,
 
342
“소생 같은 근지(根地) 없는 종적이 열위 제공의 어여삐 여기심을 입사와 교방에 참예하오나 어찌 그다지 과장하시느뇨.”
 
343
모두 칭사하고 즉일에 의논이 구일하여 평양성 한복판에 수백 간 교방을 창설하고 ‘관서 제일루(關西第一樓)’라 헌판하고, 정당(正堂)은 수미당이니 춘풍옹 이학자 선생님이 거하고, 동편 강선루에는 좌수석 홍 도화 낭랑이 십 이 교방을 거느려 거하고, 우편 수선루에는 유 지연 낭랑이 십 이 교방을 거느려 거하고, 중앙 만화당은 장광(長廣)이 30간이니 이십 사 교방이 모여 연습하는 곳이라.
 
344
자고로 조선 제일 강산이 평양으로 지목하더니, 이후는 제일 교방을 겸하였고, 이 춘풍의 성명이 자자하되 그 내력은 알 리 없더라.
 
345
이 때 이 한림 형제 형장을 관서에 보내고 수년이 되도록 소식이 없음을 조심하여 자주 탐문하되 적막하더니, 하루는 형장의 서간이 왔거늘 떼어 보니, 대강 한 헌뿐이오. 봉제사 범절을 정성으로 부탁하고, 환로에 너무 분견하지 말라 당부하고 왈,
 
346
‘우형이 생세 20 여 년에 세정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평양에 내려와 고금 사적을 열람한즉, 흉금이 쇄락하고 운치가 호탕하여, 종각의 장풍(長風)과 사마천(司馬遷)의 강회(江淮)가 몽매에 출몰하기로, 중원 강산을 구경하고자 하여 홍유 양생과 동행하여 떠나니, 소국에 국척(跼蹐)하던 종적이 중주(中州) 물색을 완상할진대, 세월을 요량하지 못하나니 기다리지 말고, 부디 조심조심하여 환해풍파(宦海風波)에 급류용퇴(急流勇退)를 생각하고, 우형의 방랑한 자취는 염려말라. 동행이 진실하고 세상이 태평하니 근심할 바 아니로되, 가묘와 선산에 하직하지 못하옴이 죄송하도다. 모월일에 우형은 의주 여관에서 부치노라.’
 
347
하였거늘, 한림 형제 서찰을 가지고 내당에 들어가 형수 김 부인께 설화를 아뢰고, 일변 탄식 왈,
 
348
“우리 형장은 짐짓 상등 인물이로다. 사마 장경(司馬長卿)의 명산 대천과 우소릉(右小陵)의 서촉 강산과 이 태백의 봉황대(鳳凰臺)와 최 호(崔顥)의 황학루(黃鶴樓)를 고서에 보았더니, 우리 형님의 풍정이야 어찌 고인을 양두하리요. 우리는 연골부터 환로에 침익하여 구구한 공명에 골몰하니 어찌 대장부의 흉금이라 하리요.”
 
349
하고 못내 탄복하더라.
 
350
원래 홍유 양랑이 이 춘풍의 필적을 모본하여 본댁에 부치고 추후하여 아뢰니, 이 학자의 혼신이 양랑의 농락 중에 들어, 손 오공의 금강봉(金剛俸)같이 능대능소(能大能小)하더라.
 
351
이 때 평안 감사는 누구든지 순사또 자제 나이 10여세세 부형 부귀에 띄어 술도 먹는 체하고 호사도 하는 체하고 오입도 하는 체하되,  천생 인물을 볼작시면 이마는 오숙이오, 생목은 도야지같이 끔쩍끔쩍하고, 입술은 거더중굿한 중 실룩실룩하고, 얼굴은 검도 푸른 중얽어 찍어매고, 키는 육 척 남짓한 중 멋이 질러 걸음은 왯죽왯죽하고, 가지록 보기 싫고 아니꼬운 모양에 일자 무식이로되, 가지를 보기 싫고 아니꼬운 모양에 일자 무식이로되, 남의 무매독자(無媒獨子)라. 버릇이 아주 없어 아무가 보아도 후레자식 못난 자식 소리는 소지에 우근진이라. 그러나 그 부모 마음에는 천하 귀동자로 여기고 제일 귀남자로 보이기로 아무런 대로 훈계 한 번 안 하니, 이 자식이 가지록 뛰논든 무슨 주변있으리요. 은자하고 정대한 부인은 첫날밤에 소박하고 기생방을 엿보다가 모든 오입장이 게발길접에 번듯 못하고, 애꿎은 통지기 행랑 추렴으로 오입속을 텄더니, 부친이 평안 감사함을 듣고 정신이 비월하여 신연(新延)을 기다리더니, 참지 못하여 고양 읍에를 마주 나가 수통인(首痛引)을 보고 왈,
 
352
“당신 곳에 어여쁜 기생들이 있소?”
 
353
통인이 처음은 모르다가 물어 알고 공경 대왈,
 
354
“천하일색이 수수만 명이옵고 놀기도 썩 좋지요. 서방님, 소인에게만 청하오시면 두름으로 꿰어차게 하오리이다.”
 
355
이놈이 아주 좋아 깨끗한 인물에 벙실벙실하더라.
 
356
그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도임하기를 기다리더니, 그 모양에 호사도 흠씬하고 부친을 따라 내려갈새 영제교(永濟橋)에 이르니 3백여 명 기생이 갖은 복색을 차려 양편으로 갈라 맞거늘, 이 모양을 보고 정신이 비월하여 괴상한 눈치를 흔키 까불 듯 하고, 돼지 거더리 같은 입귀에 오뉴월 삽살개 침 흘리듯 줄줄 흘리고 좌불안석하여 미친 놈 날뛰듯 하니, 대동강을 건너 연광정(練光亭)에 오르니, 조선 제일 강산에 좋은 경개는 소경에 단청같이 보이지 아니하고, 다만 기생만 기웃기웃 보더니, 사또 도임 초에 이교노령(吏校奴令) 헌신 받고 기생 점고를 당하여 사또 곁에 서서 차례로 살피니 낯낯이 일색이라. 심신이 산란하여 형용치못하더라. 3일 후에 수통인을 불러 문왈,
 
357
“일전에 보니 기생 사태가 났더니, 어찌 다시 소식이 없으며, 다 어디 있느냐?”
 
358
대왈,
 
359
“서방님께옵서 숱한 구경을 하시려거든 내일 소인만 앞세우시면 아주 티를 내시옵고, 눈에 드는 대로 소인에게 청하오시면 등대케 하오리다.”
 
360
원래 수통인 노 영철(盧永喆)은 본래 간교하고 영리하여 분부 시행은 진신진미케 하기로 사또 등대마다 거행하되 한 번도 꾸지람 한 마디 아니 들었고, 돈을 많이 모으되 제 아비가 주색이 심하여 용전여수(用錢如水)하기로 매일 간구하여 허전장령으로 준민고택(浚民膏澤)을 많이 하더니, 이 춘풍이 교방 주인 된 후로 범절이 정대하고 행위 정직하므로 평양 일판이 심복하여 풍속이 일변하니, 부정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기생의 범절의 조촐하여 난잡한 행장을 못 하니, 상하 남녀가 표준을 삼되 그 중에 패악하고 간교한 남녀는 은은히 원망하더라. 그 중에 심 일청(沈日淸)이라 하는 기생이 인물은 출중하나 천성이 음란하여 행위 부정하기로 고방에 섞이지 못하고 자로 논박을 당하여 이 춘풍을 공연히 원망하고 노 영철이 또한 이 춘풍을 꺼려 조심하되, 일청과 상합하여 은근히 해할 뜻을 두더니, 이에 교방에 사통(私通)하되 사또 자제 행색이 부잡하여 주색을 탐하니, 만이 그 용색을 채우자 하면 풍속을 더럽힐지라. 내일 교방에 간다 하니 인물 좋은 기생은 다 감추고 박색만 추려 있게 하라 하였거늘, 이 춘풍이 본래 군재라, 그 말을 믿고 있더니 이튿날 노 영철이 사또 자제를 인도하여 나갈새, 호사를 능란히 하고 들어가니 모든 기생이 맞거늘, 면면히 살펴보니 그 안목에는 술술한지라. 돌아와 문왈,
 
361
“내 서울서 들으니 평양은 제일 색향이라 하더니, 썩 어여쁜 기생을 못 보겠으니 어찐 일이며 기생이 모두 그만이냐?”
 
362
대왈, “그 연고는 일후에 아뢰려니와 교방에 있는 기생은 모두 잡년이라. 서방님의 수청이 합당치 못하옵고 출중한 인물을 보시려 하면 은군자(隱君子)를 좇으소서.“
 
363
사또 자제 대희 왈,
 
364
“내 어찌 알리요. 네 인도하라.”
 
365
대왈, “서방님께옵서 든만 잘 쓰시면 양 귀비 서시(西施)를 다시 구경하시리이다.”
 
366
이에 탄왈,
 
367
“내 평생에 일색이 원이로되 여의치 못하였으니, 만일 내 눈에 들면 어찌 재물을 아끼리요.”
 
368
영철이 주왈,
 
369
“예사 인물은 임의로 부르려니와, 정말 안색은 나가 보시리이까?”
 
370
말이 채 끝나지 않아 급히 문왈,
 
371
“어디 있느뇨. 천 리라도 가리라.”
 
372
대왈,
 
373
“염려 말으소서.”
 
374
하고 집에 돌아와 일청을 흠씬 가꾸어 놓고, 그날 밤에 인도하여 평양 한 모퉁이에 일간초옥을 찾아 들어가니, 비록 유벽하나 극히 정결하고 일개 미인이 있되 보는 바 처음이라. 정신이 미란하여 들입다 안고 왈,
 
375
“세상에 어찌 이러한 인물이 있으리요.”
 
376
하고 미쳐 날뛰거늘, 그 미인이 천연히 물러앉으며 왈,
 
377
“천첩이 하양 천질로 범절이 남의 유예 섞이지 못하기로 궁벽한 곳에 낙척하와 세정을 모르오니, 귀인과 언어 상통이 불가하오니 서방님은 어디 계시니이가?”
 
378
영철이 공경 대왈,
 
379
“이 서방님은 순상 사또 자제시라. 문필이 우려하시도 예도 범절이 출중하시와, 이 곳에 오신 지 수일에 오늘날 비로소 교방에 나가 보시고 하나도 눈에 띄는 게 없다 하시기로, 내 부득이하여 모시고 왔사오니 미인은 사양하지 말고 순종하라.”
 
380
미인 왈,
 
381
“천첩이 미거하와 성색을 모르고 인사 범절이 대단 불공하왔사오니 황송하오며, 날 같은 박색 누질이 어찌 귀공자를 모시오며, 육십 노모를 버리고 떠나지 못하오며, 형세 극빈하와 방아품을 팔아 연명하오니, 감히 존명을 봉행치 못하리로소이다.”
 
382
사또 자제 침을 줄줄 흘리며 왈,
 
383
“미인의 모친은 곧 나의 장모님이 되실 터이외 자연 모셔 갈 터이옵고, 우리 아버님 평안 감사는 고사하고 우리 집도 수천 석 추수를 하니, 미인의 청하는 대로 시행하리니, 아무 염려 말고 날과 백년해로만 작정하라.‘
 
384
하고 정신없이 날뛰는 양은 차마 더러워 못 볼러라.
 
385
이튿날 데리고 책실에 들어와 무슨 큰 보배나 얻은 듯이 흥에 겨워 날뛰며 이름은 옥 경선(玉京仙)이라 하고 소원대로 시행하니 간교한 남녀의 휼계로 천치 같은 놈을 농락하되 소위 순사또가 그 자식을 만금 보옥으로 여겨 조금도 교훈이 없으니 평양 일판이 노 영철·옥 경선의 차질러라.
 
386
하루는 옥 경선이 아뢰되,
 
387
“평양이 예부터 색향으로 유명하옵고 기생 출척(黜陟)을 사또께서나 책방에서 주장하시더니, 이 춘풍이라는 사람을 기생 홍 도화·유 지연 두 년이 얻어다가 모가비를 삼고 저이 두 년이 좌우 수석이 되어 모든 기생을 꼼짝도 못 하게 하고, 영중 대소사(營中大小事)를 모두 참첩하여 농락이 무쌍하기로 아니꼬와 못 견디오니, 서방님께옵서 사꼬께 아뢰어 그 권리를 뺏고 세 연놈을 중치(重治)하오면 중소속이 춤을 출 터이옵고, 서방님 성명이 경향에 유명하시리이다.”
 
388
이놈이 청파에 대희 왈,
 
389
“우리 아버지께옵서 내 말은 들으시려니와 어찌 하면 될꼬?”
 
390
옥 경선이 주왈,
 
391
“수통인 노 영철이 말도 잘 하고 백사에 영리하오니 의논하소서.”
 
392
이놈이 졸지에 귀가 높아 즉시 영철을 불러 연유를 말하니, 영철리 침음양구(沈吟良久)에 왈,
 
393
“이 춘풍의 세를 서방님께서는 당치 못하시니, 잘못하면 큰 일을 만나고 옥 경선조차 뺏기시리이다.”
 
394
이놈이 대로하여 이를 갈며 왈,
 
395
“설마 그 같은 놈을 못 당하랴. 순사또는 일도 왕이니 설마 그 놈 하나야 못 죽이랴. 그러나 네 본래 재간이 있으니 되도록 궁리하라.”
 
396
영철이 주왈,
 
397
“이 춘풍은 인기도 잘 나고 인물도 잘 생기고 권리가 대단하오니 여간하여서는 되지 아니하리니, 여차여차하시와 살인죄로 몰면 제아무리 유명하여도 벗어나지 못하리이다.”
 
398
원래 본관 사령 곽석이 동기 매옥을 유급한즉 순종치 아니하므로 칼로 찌르다가 못 죽이고 팔을 상하였더니 교방에 내고(來告)하거늘, 이 춘풍이 일변 매옥을 치료하며 곽석을 잡아로라 하니, 곽석이 도망하다가 중화(中和) 지경에 이르러 구토설사로 붙들려 죽은 일이 있더라. 이에 곽석의 어미를 시켜 고관(告官)한대, 본관이 그 일을 아는 바로되 옥 경선의 뇌물을 많이 받고 또 그 세를 꺼려 즉시 이 춘풍을 나입하여 혹치(酷治)하니, 교방 등장과 평양부 대 내소민 등장이 물밀 듯 들어오되, 그 애매한 사실과 그 범절의 표준되어 영중상하 뇌덕이 죽지 아니함을 아뢰거늘, 본관이 대로 왈,
 
399
“이놈이 과연 세력이 유명하도다.”
 
400
하고 일변 물리치고 상영(上營)에 문부를 올리되 이 춘풍은 본래 탕자의 행위로 사령 곽석과 기생을 싸움하다가 저의 세력으로 곽석을 죽이려 하매 곽석이 도망하거늘, 중로에 사람을 보내어 찔러 죽었다 하였거늘, 소위 순사또도 이왕 노 영철의 참소로 이 춘풍을 공연히 미워하다가 본관의 문첩을 보고 대로하여 분부하되,
 
401
“춘풍의 죄상은 만만 해연하나 살인한 자취가 분명치 아니하니 특별히 감사일등하여 원악지에 정배하라.”
 
402
하였더라. 이에 이 춘풍을 엄형아여 경상도 장기(長岐)로 귀양보내고, 홍유 양랑은 춘풍과 부동하여 호세(豪勢)한 죄로 엄치하고 교방을 폐지하니라.
 
403
이후 노 영철이 기탄없이 빙공영사(憑公營私)하여 재물을 수탐하되, 그 기염을 두려워 뉘 능히 지척(指斥)하리요. 그러나 하늘이 그 악관을 채지 아니시와 24 삭이 채 못 되어 순상(巡相)이 경직(京職)으로 올라가니, 사또 자체 옥 경선을 못 잊어 데려가고자 하거늘, 옥 경선은 본디 음녀로 노 영철과 동악 상제하는 년인 중, 그 추하고 더러운 사또 자제를 재물로 인하여 하첨하였거니와, 뺏을 것 다 뺏고 재산이 요부하니, 어찌 다시 돌아보리요. 각색으로 꾀명하고 요악한 말로 아첨하되,
 
404
“서방인 같으신 재덕으로 수히 등과하사 또 평안 감사하여 내려오시거든 소녀는 그 사이 정절하고 있다가 멀리 나가 맞자오리리, 그리 알으시고 공부에 유의하옵소서.”
 
405
하고 거짓 눈물을 흘리거늘, 그 창자 없는 놈이 그 아첨하는 요설(妖設)에 혹하여 쾌히 허락하고 가더라.
 
406
이 때 신임 사또는 홍 상서(洪裳瑞)니 이조 판서(吏曹判書) 승품(陞品)하여서 기백(箕伯)을 제수하시니, 본디 문장 재학이 유려하고 연장 50 에 풍신도 위영하고 온자한 성저에 주색은 아주 모르더니, 도임한 지 1년에 은위가 병행하고 인덕이 흡족하여 평안 일도가 태평가를 부르고, 전관의 미결한 원옥(怨獄)을 차례로 명결(明決)하니, 원근에 승성이 양양하더라.
 
407
이듬해 4월 8일을 당하니 우순풍조(雨順風調)하여 천기 청명하고 마침 순상(巡相)의 생신이라. 전임 본관은 탕관으로 파직하고 신관은 마음이 명철한 중 순상의 교화를 이어 선치하더니, 이날을 당하여 순상께 아뢰되,
 
408
“불감하오나 평양은 자고로 조선 제일 강산으로 천명하옵고, 연광정(練光亭) 8일 놀이는 태평성사로 전래하옵는 중, 연래에 연풍인락(年豊人樂)하와 성세연월(盛世年月)을 다시 본 듯하옵고. 또 사또 생신이신줄 알고 근읍 수령이 모두 전할 뿐 아니라, 부내 백성이 분부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모두 준비한 모양이오니 복망 특허하옵소서.”
 
409
순상이 침음양구(沈吟良久)에 마지못하여 허락하시니, 부내에 화기융융하여 호진범절을 등대할새, 순상이 순담한 복색으로 연광정에 좌기하고, 근읍 수령이 좌를 정하고 본관이 모든 비장을 데리고 전배하니, 진수성찬은 이르도 말고 생소고각(笙蕭鼓角)이 우우풍풍하여 길군악·여민락을 차례로 아뢰니, 이른바 태평성사라.
 
410
한창 이리 흠씬 놀 즈음에 홀연 난데없는 옥소성이 자자하더니, 좌변 수석 홍 도화는 깁치마를 거듬거듬, 우변 수석 유 지연은 전립을 제쳐 쓰고, 검무 추던 유 채향·오 채란 등은 칼을 던지고 정신이 창황하여 급한 걸음으로 난가넹 내려서고, 모든 기생들이 황황히 따라가니, 순식간에 3백 명 기생이 쓸어 버린 듯하고, 다담 감검하던 옥 경선이 하나만 있으니 홀지풍파에 놀이가 고름이라. 순사또께옵서 수상하게 여기사 물으사 왈,
 
411
“옥 경선아! 어찌 나가지 아니하며 대강 퉁소는 뉘가 불었으며, 그 소리에 놀라 일시에 미쳤느냐. 무슨 다른 연고가 있느냐?”
 
412
옥 경선이 꿇어 고왈,
 
413
“자세히는 모르거니와 아마도 장기로 귀양갔던 서방님이 돌아오리사다 대동강 월변에서 퉁소를 불엇나 보이다.”
 
414
사또 문왈,
 
415
“이 춘풍 성명도 좋다마는 대강 어떠한 인물이완대 그러하단 말이야?”
 
416
옥 경선이 대왈,
 
417
“근본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오나 대강 경성 인물 같사오며, 좌수석 홍 도화와 우수석 유 지연이 모셔다가 저의 말뚝서방을 정하고, 양기가 본래 요부하와 평양 한복판에 제일 교방을 짓고, 이 춘풍 서방님은 24교방 모가비가 되고, 양기는 좌우 수석이 되어서 평양 일판 기생을 독차지하여, 순사또께옵서나 각읍 수령이 혹 기생 수청을 정하시려도 이 서방님 분부 아니오면 감히 꼼짝도 못 하옵고, 평양뿐 아니라  황평 양도 각읍 기생이 모두 그 절제를 받자와 표방과 제품을 주장하와 농락이 무상하옵기로 각처 교방에서 뇌물이 물밀듯하옵고, 그뿐 아니오라 영내 본관 이속 것이라도 임의로 출척하온 터이, 전임 사또 자제 서방님과 권리 싸움을 하다가 살인죄를 범하와 경상도 장기로 정배갔삽고, 홍유 양기는 이 서방님을 의세하여 갖은 요약을 부리다가, 이 서방님 귀양가실 때에 수천 냥을 드려 치행을 융슝히 하옵고, 그 후에 영명사(永明寺)에 불공하와 이 서방님 해배도 수이하고, 또 세세생생에 3인이 도로 내외 되어 천만 년을 행락하자고 발원하옵고, 두문불출하와 수절하니 체하다가, 이번 놀이에은 무슨 계교로 참예하였사오며, 마지에 옹이로 이 서방님이 오늘 풀려 오다가 대동강 월변에서 퉁소를 불기로 그년들이 체면도 모르고 그 모양으로 날뛰어니 그런 변괴 어디 있사오며, 소인은 홍유 양기에서 시기를 받자와 교방에 용납지 못하였나이다.”
 
418
사또 청파에 좌우를 돌아보사 왈,
 
419
“옥 경선의 말이 진정인가?”
 
420
수통인 노 영철이 꿇어 고왈,
 
421
“과연 그러하옵고 이 서방님 귀양간 후로 평양 부내가 조용하옵더니, 또 풀려 온 지경에는 도로 요란할 뿐 아니라, 사또 정치에도 대단 손상할 듯하여이다.”
 
422
말을 마치지 아니하여 좌변에 추던 유 채향과 우변에 검무 추던 오 채란이 꿇어 고왈,
 
423
“국가에도 소인이 있어 군자를 모함하면 국체가 손상하는지라. 옥 경선이 아뢰온 말씀이 절절이 무소이오니 사또 살피소서. 소인 등은 나이 어리와 이 서방님과 상관은 없사오나, 사실은 자세히 아옵기로 죽기를 무릎쓰고 아뢰옵나이다. 이번 실수는 만만 가통하오나 본사는 그렇지 아니오며, 노 영철의 말씀은 더욱 음흉하오이다. 이 서방님은 서울 재상 자제로 문장 도학이 출중하시고, 외화는 천선이 하강하온 듯하고, 천성이 정직하고 범절이 안상하시고 예정이 엄숙하더니, 우연히 유람차로 내려왔다가 홍유 양인이 그 범절과 학문을 사모하고, 또 음률에 정통하옵기로 무수히 간청하와 잠깐 머물더니, 부내 기생들과 소년 공자들의 흠앙하와 교방을 창건하고 수석으로 모셔 범절과 음률을 배우되, 한 번도 호방한 모양은 보지 못하옵고 예도에 벗어난 자를 효유하기로 부중 상하가 표준을 삼아 풍속이 일변하여 음란한 구습이 아주 없고, 옥 경선의 아릔바 기생 독차지한다 함은 자연 음률을 배우자 하오면 교방에 와야 할 일이로되, 하나도 난잡한 행위는 아주 없고, 뇌물을 받는다 하옴은 기생이 새로 교방에 참예하면 예물이 있으되, 하나도 자용치 아니하고 부내의 빈민을 구제하옵고, 수청 기생을 간섭한다 함은 순사또께서나 본관 사또나 비방 나리나 별성 행차께옵서 수청을 찾으시면, 인물과 가무를 택출하여 범절과 행동거지를 연습하여 들여보내옵고, 만일 음란한 행사나 요야한 거동이 있으면 별로이 표방하여 옥에 섞이지 못하게 하옴이오. 영본관 이속을 출척한다 함은 평양은 물중지대하옵고 물풍한 곳이라, 뇌물법이 있삽고 관록의 빙공영사(憑公營私)가 없지 아니터니, 이 서방님 내려오신 후 자연 부정한 일을 하다가 관가에 엄형당함은 감수할지언정 이 서방님 들으실까 부끄러워하고, 남의 선악을 펴놓지 아니하되 악인이 자연 항복하옵기로 행신 불측한 자는 자괴지심이 있사와 영본관의 중심을 사양하옴이오. 이 서방님의 왈가왈부는 없삽고 전임 사또 자제와 권리 싸움 하단 말씀은 사또 자제 서방님이 천하 박색이오, 천성이 영리치 못하므로 아무 세정에 어두움을 간교한 노 영철이 양적(陽翟) 대고(大賈)에 진 태자로 알고 가지록 농락하여 좋은 말로 교방에 기별하여 박색만 보이라 하고, 저의 놈 상관한 요악 음란하온 심 일청을 요야케 만들어 바치고 각색 아첨을 다하오니, 그 장차 서방님이 천선이 하강하였다 하와 옥 경선이라 칭하고 수유 불리(須臾不離)하고 언청계용(言聽計用)하옵기로 간교한 남녀가 각색으로 협잡하여 연놈이 1년 동안에 천석 거부가 되옵고, 평일에 흉측 음란하기고 교방에 참예치 못하옵더니, 아무리 득세하오나 이 서방님을 꺼려 없이할 마음으로 모함하였사오나 백지 애매하온지라. 신입 사령(新入使令) 곽 석(郭石)이 동기를 겁측하다가 여의치 못하여 칼로 찔러 상하옵기로, 이 서방님이 의원을 맞아 백단 치료하와 살리고 곽 석을 부르오니, 그 놈이 자겁하여 서울로 도망하다가 중로에서 구토설사하여 죽었거늘, 옥 경선이 본관에 수천금 뇌물로 환롱(幻弄)하와 살인죄로 몰라 귀양보내었삽고, 홍유 양기가 치행을 융성하였다 하옴은 예사오나, 그도 또한 부내 오입장이들이 탄식왈, 현인군자가 소인의 참소에 몰린들 오래지 않아 돌아오리라 하고, 매명 닷돈 출물리 수천 냥에 이르되, 이 서방님이 받지 아니하시고, 죽장망혜로 혼자 갔삽고, 홍유 양인이 불공하단 말은 더욱 허문한지라. 양기의 모친이 자식이 없어 부처에게 발원하고 나았삽기로, 지금까지 해마다 생일이면 시주하옴이오, 이 서방님 발원하단 말은 허사오며, 노 영철의 말이 이 서방님이 있을 때에는 영중이 요란하더니, 귀양간 후 조용타 하고 또 돌아오면 사또 정치에 손상하리라 하옴은 알지 못할 말이라. 소인이 이왕 아뢰온 말씀을 통촉하옵시고 영철더러 하문하옵소서.”
 
424
순사또 사색을 살피시니 벌벌 떨고, 옥 경선은 얼굴이 찬재비 같아서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사또 짐작하고 물러서라 하시더니, 이윽고 모든 기생이 들어와 사죄하고, 홍유 양인이 계하에 내려 사죄 왈,
 
425
“애매히 귀양갔삽던 이 춘풍 서방님이 오래간만에 풀려 오옵기로 하고 반갑사와 부지불각에 정신이 아득하여 체면을 생각지 못하옵고 사죄를 지었사오니 중죄를 감당하여지이다.”
 
426
하거늘 순사또 혁연히 진로하여 왈,
 
427
“너희들이 천기 출신으로 일도 방백을 희롱하니 그런 무엄한 도리 어디 있으며, 이 춘풍은 하등 인물이 완대 행위 부잡함을 면치 못하니, 일변 엄치할 차로 선화당(宣化堂)에 대좌기를 차리되 별반 엄정하라.”
 
428
하시고 사색이 엄위하니, 사또 도임한 지 수년이 지나되 노하심도 처음이오, 대좌도 처음이라. 영중이 진률하여 수작이 황란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라.
 
429
이에 영장 중군이 대군물을 풀어 풍우같이 몰아 진을 치고 8 비장(八裨將)이 복색을 갖추어 부복하고, 삼반 나졸은 복색을 선명케 하여 벌여 서고, 곤장(棍杖)·태장(笞杖)·홍주장(紅朱杖)을 차례로 배설하고, 사또께서 융복을 갖추어 좌기하고, 관자통인(貫子通引)은 착전립(着戰笠)하고, 아해 통인은 전복 입고 좌우에 시립하고, 한 번 호령에 산천초목이 탕진할지라. 이 춘풍과 홍 도화·유 지연·오 채란·유 채향 5인을 잡아들여 차례로 수죄할새,
 
430
“이 춘풍 네 들어라. 너는 본래 양반의 자손으로 학업을 힘써 입신양명하여 우으로 명왕을 충성으로 섬기고, 아래로 부모 조상을 영화로 받들고, 이름을 죽백에 드리옴이 대장부의 사업이어늘, 경향에 출몰하여 주색에 침면하니 파락호(破落戶) 자제의 행위를 면치 못하고, 또 유무죄간에 살옥을 당하니 인자에 골육이 전율할 일이라. 전관이 특별 관유하여 정배지경에 처하였으니, 해배하는 날에 개과천선하여 고향에 돌아가 사자의 직업을 수척할 것이어늘, 구습을 잊지 못하여 도로 내려와 요괴한 퉁소 소리로 모든 창기를 유인하여 소위 감사의 놀이를 희롱하니 죄상이 어떠하뇨. 홍유 양기야, 네 들어라. 너희들은 일개 하향 천기 출신으로 요야한 용색을 자랑하여 부귀인이 자체를 유인하고, 온자한 사대부를 미혹하여 여우같이 아당하고 요귀같이 환롱하여 백방으로 간교를 부리고 천 가지로 요악을 부리다가, 순사또를 모시고 소위 놀이를 배설한 자리에 간사한 음부의 퉁소에 반하여 체면을 손상하고 행동이 방자하니 그 죄를 어찌할꼬. 오유 양기야, 네 들어라. 너희 년들은 아직 모우미성한 아해로 간사한 탕자를 부동하여 말도 잘 하는 체하고 경개도 아는 체하여 당돌히 내달아 관장을 비방하고 시비를 판단하여 숙시숙비(孰是孰非)를 임의로 출척하고 선불선(善不善)을 불변하되 모두 무소요, 개개 요악이라. 너 같은 요물을 엄치치 않으면 하례배의 무엄함을 장양할지라. 그런 교만 방자할 일이 어디 있으리요. 오인의 죄상이 차등이 없으니 개개히 형문 30도씩 엄장하고 엄가 착수하라.”
 
431
하시고, 주렴을 내려놓고 들어 앉으시니, 눈치 빠른 잡장 사령이 포장만 굉장하고 실속은 헐장이라. 각각 하옥한 후 병방 비장(兵房裨將)을 불러 분부하되,
 
432
“그 연놈의 죄봄이 약차하니 법률대로 할 지경인즉 어찌하면 상당할꼬?”
 
433
병방이 아뢰되,
 
434
“소인의 요량에는 죽일 죄는 아니온즉 사또 통촉하옵소서.”
 
435
사또 분부하시되,
 
436
“그만 죄로 죽이기야 과하고 원악지 정배가 어떠하뇨?”
 
437
병방 비장이 아뢰되,
 
438
“득당하올 듯하오이다.”
 
439
사또 이에 좌기를 걷고 공방 비장(工房裨將)을 불러 분부하되,
 
440
“큰 배 3척만 등대하고 포진 범절과 주찬 등절을 융숭히 하고 일등 명기 30명만 추리되, 복색을 선명케 하고 생소 고각이며 각색 등불을 준비하여 연광정 앞으로 대령하라.”
 
441
하시고 도로 연관정에 좌기하니, 이 때 정히 황혼이라. 만호 누대에 체등이 찬란하고 연광정 전후 좌우에 끝끝이 등을 달고 대동강의 줄불 낙화 남풍에 불이 붙어 일대장강에 화성이 둘렀는 듯, 중국에 유명한 관능 관등이 이에서 더하리요. 사또 분부하시되,
 
442
“병방 비장 등대하라. 아까 하옥한 죄인 5명을 올리렷다.”
 
443
긴 대답 소리에 천둥 치듯 하는 가운데 5인을 나입하여 연광정 아래 꿇리고 분부하사 왈,
 
444
“너희들이 죄상에 특중하기로 원악지 정배로 마련하였으니 바삐 발배하되 배소를 어디로 정할꼬. 오늘이 4월 8일이니 상현이 아니냐. 저 월륜이 반월이 분명하니 반월반월 정당기시(正當其時)로다. 여기서 반월도(半月島)가 몇천 리냐?”
 
445
병방 비장 능갈친 소견에 벌써 알아듣고,
 
446
“예, 1천 5백 리올시다.”
 
447
사또,
 
448
“아따 멀기도 하다. 공방 비장 부르라. 아까 분부한 포진 범절 준비하였는가?”
 
449
“예, 등대하였소이다.”
 
450
대동강 넓은 물에 큰 배 3척 연선하고 각색 화병을 겹겹이 치고 강화석 옥과석을 층층이 보전하고, 화문등에 가진 교룡 줄을 찾아 돋우고, 이십 사 방 등을 달고 산친 해착 팔진 선찬 교자가 몇 틀이오. 청소주·황소주며 게당주·과하주며 감홍로·천일주를 병병이 가득 넣어 줄을 찾아 벌여 놓고, 삼현 육각 갖은 풍물 30명 일등 기생이 각각 맡아 항렬 찾아 늘어앉아 사또 오르시기를 기다리더니, 사또 분부하시되,
 
451
“이 춘풍 등 5인은 네 들어라, 십분 짐작하고 일변 아껴 중죄를 경벌로 감등하나니 부디 개과천선하라.”
 
452
하시고, 5인을 찬찬의복 일 습씩 주시고, 각각 저의 소장대로 이 춘풍은 퉁소로 칼 씌우고, 홍 도화는 거문고로 칼 씌우고, 유 채향은 해금으로 칼 씌워 차례로 세우고, 30명 기생더러 분부하시되,
 
453
“너희들이 오늘 죄인을 배소로 압송하되 각별 조심하라.”
 
454
하시고,
 
455
“바삐 발배하라.”
 
456
하시니, 5인이 천만의외에 황공 감축함을 이기지 못하여 배에 올라 연광정을 향하여 백배 사례하고 떠날 새, 30명 기생이 일시에 노래를 부르고, 생황 금실이 일제히 아뢰니, 장성일면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에 핍피중류(乏彼中流) 돛을 달아 운중에 표묘한 반월도로 향하니, 그런 성사는 천고에 처음이라.
 
457
이 때 성내 성외에 남녀 노소 뉘 아니 구경하며, 그 중에 오입속 아는 자는 책책 칭찬 왈,
 
458
“우리 사또 도임 1년에 그리 온자하신 학자님일러니, 오늘 일로 볼진대 오금도 문청 뜨고 속도 썩 잘 쓰시고 오입속도 능통하시도다. 들으니 이 춘풍도 재상 자제요, 훌륭한 학자에 오입에 미끄러져 그러하다니, 양 반 중에 멋 알기는 두 양반이 날개로다. 이러한 일은 만고에 유전할 일이라.”
 
459
하더라. 
 
460
이 때 사또 연광정에 앉아 바라보시고 왈,
 
461
“모두 그 놈의 판이로구나. 내 일도 방백으로 대소민의 원하는 일을 성취토록 하나니, 저 연놈의 평생 원이 저것이라. 어찌 한번 풀어 주지 아니하리요.”
 
462
하시고, 옥 경선을 부르사 왈,
 
463
“저 죄인들을 단단히 압송하였으나, 혹시 중간에 도타(逃躱)할 염려가 있기로 너를 시켜 꼭두 차사를 정하되, 혼자는 못 가리니 건 센 장교 1명을 뽑아 들이라.”
 
464
병방이 벌써 짐작하고 응성 대왈,
 
465
“노 영철이 합당하여이다.”
 
466
이에 양인을 분부하시되,
 
467
“너희 등이 1척 소선을 타고 빨리 쫓아 죄인들을 간검(看儉)하되 소루함이 없게 하라.”
 
468
하시니, 양인이 고개를 숙이고 배에 올라 따라가니, 원래 양인이 이 춘풍 등을 무소(誣訴)하다가 채란·채향에게 무류를 당하여 모양이 수통(羞痛)하고, 저의 등도 좋은 놀이에 참예치 못함이 한탄인 듯하여 일변 사화도 시키고 참소한 죄도 사함이러라.
 
469
이 때 이 춘풍이 반월도에 이르러 배를 대고 연광정을 향하여 무수히 치사하고 왈,
 
470
“이런 일은 고금에 듣지 못한 일이라. 그 감격함을 어찌 형용하리요.”
 
471
하던 차에, 노 영철·옥 경선이 득달하여 사또 분부를 전승하고, 이왕 죄상을 자복하여 무수히 사죄하고, 엎디어 일어나지 못하거늘, 춘풍이 흔연히 손을 잡아 일으키며 왈,
 
472
“우리 터에 무슨 혐의가 있으리요. 만일 그만 일을 괘념하면 대장부의 소졸한 소견이오. 오입속에 대단흠사라. 사또께옵서 특별 요량하시와 우리 등으로 하여금 태평연월을 찬송케 하심이니, 우리 한 번 흠씬 놀아 보리라. 소리와 풍악도 재주껏 하고, 술도 양대로 먹자.”
 
473
하고 서로 권하며 진취(盡醉)하니, 밤이 깊어 이미 오경이라.
 
474
서로 베고 쓰러지니 별천 우로(雨露)에 금포 나삼이 젖음을 깨닫지 못하더라. 7월 호접이 지지하여 몽진을 깨닫지 못하더라. 영명사 북 소리에 괴안 침이 서늘하여 일시에 일어나 앉으니, 십리 장강에 파탄은 잔잔하고 욱욱 천봉 일륜 홍일(一輪紅日)이 부상(扶桑)에 둥실 높이 떴다. 각각 의관을 정제하고 다시 배반을 나아와 해정하고 생각하니, 어제 일이 일장춘몽에 만겁윤회(萬劫輪廻)를 겪은 듯 무엇이라 형용하리요.
 
475
이 때 감사, 이 춘풍과 홍유 양기를 발배하고 다시 생각하니, 이 춘풍의 동탁한 용모와 씩씩한 위의(威儀) 평생에 초견이오, 일국에 짝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정직하고 온화한 덕기가 언어 동작에 자연 드러나거늘, 아무리 보아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요, 반드시 경화 사부의 자식이 분명한지라. 일변으로 그 용모 위의에 감동하는 마음도 있고, 일변으로 그 대우함이 미흡하여 뉘우치는지라. 즉시 좌기를 거두고 선화당에 돌아와서 즉시 예방 비장(禮房裨將)을 불러 왈,
 
476
“내 오늘 옥 경선과 노 영철의 간악함과 이 춘풍의 무죄함을 짐작하고 일시 희롱적으로 조처하였거니와, 내 이 춘풍의 언어 동작과 위의 풍채를 잠시 보아도 하향 범상한 인물 아닌 듯하니, 즉시 이 춘풍의 내력을 탐지하여 들이라.”
 
477
하니, 비장도 이 춘풍의 관대 정직한 풍도와 평양 일경에 물론을 어찌 모르리요마는, 사의로 아뢰기가 유소여하며, 봉명하고 나와서 7비장과 회의한 후 관인간(官人間)에 지사자(知事者)를 청하여 문의하니 모든 사람이 여출일구하는 말이,
 
478
“그 양반의 옥골선풍과 관대 정직한 위의는 이 세상에 드물거니와, 그 양반의 내력은 대강 전하건대 본디 서울 재상가 자제로서, 아시부터 성경 현서에 강의 공부로 문일지십(聞一知十)하는 천재라. 학문과 도덕이 지주하므로 성명이 조야에 자자하여 돌아오는 공명과 영화로움이 적지 아니하되, 그 양반은 부귀 영화를 부운과 떨어진 짚신같이 물리치고 오직 경학 공부에 잠심하오며, 여가 있으면 온갖 음률을 연습하며 또한 정통하였다 하오며, 홍랑과 유랑은 본디 이 곳 기생 출신으로 인물의 동탁함과 요조한 자색이 인간의 인물이 아니요, 선녀의 하가인 듯하온 중, 두 기생의 지기가 또한 고상하와 양랑이 의논하고 수천금을 허비하여 기안에 제명한 후, 경서를 공부하기와 음률을 정통하기에 잠심하더니, 운종룡 풍종호(雲從龍風從虎)는 자연의 이치라. 이러한 남녀가 일세에 탄생하올 때에 어찌 천장한 배필이 아니오리까. 양랑이 이 춘풍을 만나 백년가약을 이룸이 우연치 않은 신선의 인연도 있었다 하오며, 이 곳에 교방을 설시한 후로 과연 화류계에 전래하여 거의 고폐가 되던 음풍 패속이 일시에 없어지고 풍류의 진정한 화기를 회복하므로, 일경에 송성(頌聲)이 자자하여 장차 풍화의 개량됨을 기약하더니, 자고로 소인의 참소로 인하여 군자의 배척당하는 일이 어찌 조정에만 있사오리까. 전관 사또 등대에 수통인 노 영철과 기생 옥 경선이 음간이 상통하여 음흉한 참소로 이 춘풍이 살인의 죄명을 업고 억울히 경상도 장기로 정배하오되, 일성이 진동하여 뉘 아니 분원타 하오리이까. 다행이 오늘날 해배하여 오는 길에 또한 옥 경선과 노 영철이 요악한 참소로 명철하신 사또 앞에 시험타가 낭패하오니, 과연 우리 순사또의 명철하신 덕택이로소이다.”
 
479
비장이 감사에게 들어가 일일이 복명하거늘, 감사 듣고 왈,
 
480
“내 잠시 보고 의심하였더니 과연 그러하도다.”
 
481
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비장을 반월도에 보내어 이 춘풍에게 전갈하여 왈,
 
482
“노물이 어제 부벽루에 올라 일시 소창하던 중 홀연히 옥소 소리 들리더니, 기생과 풍악에 일시에 진동하여 물풍치가 되는 고로, 잠시 기율의 해이함을 징계하고자 하여 일시 거조하였거니와, 그대는 옥저 소리로 내 놀이를 희롱하였으니, 노물은 기악으로 형구를 삼아 그대를 희롱하였으니 피차일반이라. 과히 허물치 말고 속히 양랑과 한가지로 청아한 사업을 계속하기를 바라노라.”
 
483
하고 비장이 반월도에 건너가니, 이 춘풍이 양랑과 모든 기생을 데리고 작일에 놀던 여흥을 세잔 갱장하던 중 비장 옴을 보고 이 춘풍과 양랑이 여러 기생을 영솔하고 나와서 맞거늘, 비장이 감사의 전갈하는 말씀을 일일이 전갈하니, 이 춘풍과 양랑이 일어나 읍하고 다시 앉아 감사의 관대한 후의를 무수히 축사한 후, 배반을 다시 올려 질탕히 노닐새, 옥 경선과 노 영철은 한 구석에 끼여 앉아서 고개를 차마 들어 보지 못하는 양은 도리어 가긍터라.
 
484
비장을 보낸 후에 이 춘풍이 양랑으로 더불어 대성산 아래 초당으로 돌아와서 세상의 영욕 궁달을 부운에 붙여 버리고 양랑으로 더불어 금서(琴書)의 생활이 자족하고, 홍유 양랑에게 일남 일녀씩 나아 차례로 길러 성취한 후, 여년을 화란 춘풍으로 마친지라. 세상 사람이 이르되 ‘지상 삼선(地上三仙)’이라 하더라.
【원문】삼선기(三仙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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