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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한라산기(登漢拏山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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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이형상(李衡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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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한라산기(登漢拏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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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숙종 28)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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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늦은 봄이라 바람은 빠르고 조수는 급하니 배는 심히 빠르게 가는데 뱃사람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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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도 반드시 뒤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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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에 이를 시험하여 보니 과연 그리하였다. 사시 말(巳時 :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돛을 달아 술시 초(戌時 : 오후7시)에 닻을 내리니 곧 이른바 제주이다. 집집마다 귤유(橘柚)이고 곳곳마다 화류(驊騮 : 좋은 말)이다. 기이한 암초가 즐겁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지만 다만 돌 색깔이 추악하다. 토질은 부조(浮燥)하고 구릉은 뚝도 되고 평지도 되고 있으니 가증할 따름이다. 제주 목사로 도임하여 상관(上官)으로서 날이 많지 않으므로 급작스레 지팡이와 신을 준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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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숙종 28)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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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참에 40리를 가니 해가 뜰 무렵 산 밑에 도착하였다. 일대가 비단을 펼친 듯 눈에 들어오니 눈이 부시다. 휘장 같기도 하고 치마 같기도 하다. 모두 벌리어 펼쳐진 것이다. 영산홍(暎山紅)으로 붉은 꽃이 곱게 만발하였다. 사이에 소나무와 대숲과 향기로운 풀이 연한 녹색을 이루니, 이 때문에 처음부터 흥취가 났다. 보교를 버리고 말을 타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에는 푸른 풀 더미들이 귀엽고, 잡목이 하늘을 가리었다. 동백 ⋅ 산유자 ⋅ 이년목 ⋅ 영릉향 ⋅ 녹각 ⋅ 송 ⋅ 비자 ⋅ 측백 ⋅ 황엽 ⋅ 적률 ⋅ 가시율 ⋅ 용목 ⋅ 저목 ⋅ 상목 ⋅ 풍목 ⋅ 칠목 ⋅ 후박 이들이 모여서 우산과 같이 덮이었다. 신선 땅의 기화요초(琪花瑤草 : 구슬 같은 꽃과 풀)들이 더부룩이 솟아올라 푸르르다. 기괴한 새와 이상한 벌레가 어우러져 험한 바위 깊숙히서 울어대는데 늙은 산척(山尺 : 산장이)도 이름은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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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혹 인적이 미치지 못한 언덕에 눈이 갔는데(양쪽 바위가 절벽이어서 휘어 잡고 올라도 미치지 못한다.) 반송(盤松 :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과 세사(細沙 : 가느다란 잔디)가 산뜻하고 깨끗하여 그윽하고 고요하다. 마치 신선(神仙)이 모자를 쓰고 도복을 입고서 은근히 한가롭게 노는 듯하다. 참으로 진 ⋅ 한(秦漢) 두 천자(天子 : 진시황과 한무제)로 하여금 이를 보게 하였더라면, 거의 애타게 바라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절벽을 안고 드(藤)줄을 거머쥐어 오르는데 좁은 길이 역시 아늑하다.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또한 두건을 벗어 머리를 드러내고 등을 구부려서 안장을 붙잡고 거의 10여 리를 가자 숲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대개 산 허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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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나무가 서 있는 것은 5~6길이 되는 향목(香木, 만리의 바람을 받으므로 예로부터 자라지 않는다)이요, 빽빽이 땅에 깔려 있는 것은 한자쯤 되는 면죽(綿竹)이다. 향나무는 껍질이 벗겨져 몸체가 하얗고 대나무는 잎이 마르고 줄기가 부러졌다. 이는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말 갈기와 말 꼬리가 고목(枯木) 위에 걸려 있었다.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자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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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에 눈이 깊이 쌓이면 혹 백 길까지 되니(비단 산이 높아서 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바람에 휘말려 모든 봉우리 눈이 모여져 백 길 가까이 된다) 산마(山馬)는 높은 산 줄기에서 굶어 죽게 됩니다. 눈이 녹은 후에는 그 고기는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조각조각 찢어진 가죽은 아직도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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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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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대저 포구(浦口) 가에는 점점이 눈이 내려도 땅에 떨어지면 곧 녹아버리지만(섬 중에는 기후가 따뜻하여 겨울에도 얼음 조각이 없다) 유독 이 깊은 계곡에는 골짜기가 매몰되고 나무들도 묻힌다. 저 말들은 자유로이 방목되더라도 높은 곳에서 지내게 되면 죽는다는 것을 사대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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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부터 산길은 더욱 걷기가 어렵고 걸음마다 위험하여 견여(肩輿)에 의지하여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였다. 10여 리를 지나니 상봉(上峯)이었다. 사람이 끌고 지팡이에 의지하며 절뚝 걸음으로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외연(巍然)히 한 개의 가마솥이었다. 큰 바다 속에 높이 버티어 흙 색깔은 검붉으니 거의 불 속에서 구워진 벽(壁)과 같다. '남사록(南槎錄 : 김상헌이 어사로 제주를 다녀간 때의 일기체 기록)'에는 겁회(劫灰 : 세계가 멸망할 때 일어나는 큰 불의 재)에 비교하였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생각하건대 아마도 극한과 극렬로 구름이 증발하고 안개가 끓어서 토맥(土脈)이 자연히 그 성질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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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죽(香竹) 역시 뿌리를 붙지 못하였다. 혹 만향(蔓香)과 철쭉이 바위 틈에 둘리어 이어져 있는데, 맑고 깨끗하여 작달막하므로 반분(盤盆)에 심은 것 같다. 모두 마땅히 제일의 묘품(妙品)이다. 사방 어느 곳에도 날거나 달리는 게 없고 땅강아지와 개미도 역시 없다. 산남(山南)에는 초목이 겨울을 넘겨도 역시 푸르다. 암벽 북쪽은 눈이 쌓여서 한여름에도 여태 남아있다. (관에서 쓰는 얼음 조각은 산 허리로부터 계속 얻는다.) 산 남쪽은 5월에 땀받이 옷을 입기도 하고, 산 북쪽은 8월에 가죽 옷을 입기도 한다. 지척 간에도 냉열(冷熱)이 이와 같으니 세상의 염량(炎凉)이야 또한 어찌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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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손(洪裕孫)의 '소총유고(篠叢遺稿)'의 '존자암 개구유인문(尊者巖改構侑因文)'에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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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전체는 물러가는 듯하다가 도리어 높이 서 있다. 그 겉모양을 쳐다보면 둥글둥글하여 높고 험준하지 않은 것 같고, 바다 가운데 섬이어서 높게 솟아나지 않은 것 같다. 마치 들판 속에 우뚝하게 선 뫼와 같아서, 특별히 험난한 것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나아가 기어오르면서 그 속을 다녀 보면, 높고 날카로운 바위와 낭떠러지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구부러진 골짜기와 동학(洞壑)은 어둡고 침침하여 곤륜산(昆崙山)의 큰 두덕과 같고 판동(板洞)의 골짜기와 같지만, 세속을 떠난 정결과 위기(偉奇)한 맛이 많다. 항아리와 같은 높은 바위가 일곱 여덟 길이나 되고, 범이 걸터 앉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장대와 같은 전나무는 너댓 아름되는 것들이 쭉쭉 서있다. 전단(栴檀)과 향목(香木)들이 숲을 이뤄 빽빽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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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과 도깨비들이 골짜기에 대낮에도 나와 노니, 바람이 소리 내어 불어 대면 생황 ⋅ 퉁소 ⋅ 거문고 ⋅ 비파의 소리가 원근에 진동한다. 구름이 자욱이 끼는 날이면, 채색 비단과 수 놓은 비단 빛이 겉과 속을 덮는다. 높은 곳은 창과 칼을 묶어 세운 듯 오싹하게 위태롭고, 낮은 곳은 가마솥과 책상을 집어던진 듯 울퉁불퉁하다. 산 능선이 서로 얽히어 달리니, 거의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고, 끝내는 되돌아오며 합쳐진다. 골짜기는 쪼개어져서 바닥이 파여 내려가니, 그윽하고 길며, 또 좁았다가 넓어진다. 높고 낮은 산들이 흩어지고 뒤섞여졌고, 깊고 얕은 골짜기들이 아늑하고 어지럽다. 햇빛을 가리우고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니, 이는 산 전체의 동서남북 대략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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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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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형국을 바라보니, 처음에는 버팀 다리가 없이 뭉쳐서 온 산이 모두 첩석(疊石 : 중첩되어 있는 바위)이었는데, 세월이 오래어지면서 내의 바탕과 산의 골격이 자연히 노출되어 언덕이 되고 골짜기 모양이 되니, 모양새 맛이 모두 하나같지 않고, 기괴한 암석과 깊숙한 낭떠러지는 스스로 그리 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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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망봉(穴望峯)과 마주 앉았는데 산봉우리에는 구멍이 한 개 있으며 운천(雲天)을 엿 볼 수 있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절벽이 천 길이나 되는 깎아지른 석벽이어서, 밑으로 내려가더라도 땅이 없을 것 같았다. 몸이 울렁거리고 혼(魂)이 놀라 두근거리어 차마 위험을 무릅쓰고 있을 수 없었다. 사방은 봉만(峯巒)으로 둘러 쌓여 솥 같기도 하고 성곽(城郭)같기도 하다. 둘레는 10여리나 되고, 깊이는 8백 척이나 되는데 그 밑에는 백록담(白鹿潭)이다. 원경(遠俓)은 4백보이고, 수심은 수길(數丈)에 불과하다. '지지(地誌)'에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사람이 떠들면 풍우가 세차게 일어난다고 하였는데 잘못 전해진 것이다. 물이 불어도 항상 차지 아니하는데 원천(源泉)이 없는 물이 고이어 못이 된 것이다. 비가 많아서 양이 지나치면 북쪽 절벽으로 스며들어 새어 나가는 듯하다. 고기도 없고 풀도 없으며 못 가에는 모두 깨끗한 모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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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地誌)'에 이르기를 '여러 신선들이 와서 백록(白鹿 : 하얀 사슴)에게 물을 마시게 하였다.'하여 못 이름이 생겼다 함은 헛말이다. 소승(小乘 : 임제의 제주 유람 기록)에 이르기를 '사람 세상의 바람과 해와 멀리 3천 리나 떨어졌다.'함은 명산의 모양을 옳게 말한 것이다. 이제 사방에 희미한 짐승 발자국 길이 있는데 백록이 물을 마셨다는 것은 이치가 혹 그럴싸하다. 선경(仙經)에 이르기를 사슴이 천 세가 되면 색이 푸르고 또 백 세가 되면 희고 또 오백 세가 되면 색이 검는다고 하였다. '남사록'에 이르기를 속전(俗傳)에 양사영(梁思塋 : 선조 19년~21년 재임) 및 이경록(李慶祿 : 선조 25년~32년 재임)이 제주목사 때 백록을 사냥하였다고 한다. '소승'에 이른바 백발노인이 백록을 타고서 크게 탄식하였다 함은 이를 과장한 것이다. 다만 이상한 것은 못 가에 조개껍질이 있는데 모두 말하기를 바다새(海鳥)가 물어온 것이라 하였다. 그 울음소리가 '공공'하는 까닭에 그 새를 공조(貢鳥)라 부른다. 반 백리 산꼭대기까지 은근히 물어 온 것이라면 진실로 또한 힘들었을 것이다. 염제(炎帝)의 딸이 동해에 빠져 죽은 뒤 정위(精衛)라고 우는 새가 되어 매번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던 것과 더불어 도리어 반대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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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숨을 돌려 쉬고 바위에 기대여 사방을 바라보니, 삼읍(三邑, 제주목 95리, 호수 7319호 ⋅ 정의현 22리, 호수 1436호 ⋅ 대정현 12리, 호수 797호)과 9진(鎭, 화북 ⋅ 조천 ⋅ 별방 ⋅ 수산 ⋅ 서귀 ⋅ 모슬 ⋅ 차귀 ⋅ 명월 ⋅ 애월)이 솥발 같이 벌려 서서 바둑을 포석한 것 같다. 성산(成山) ⋅ 송악(松岳) ⋅ 산방(山房)이 바다 속에서 우뚝 솟았고 문섬 ⋅ 소섬 ⋅ 비양도 ⋅ 가파도 ⋅ 마라도가 파도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모습은 말끔히 눈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다. 동쪽은 삼도(三島)로부터 청산(靑山) ⋅ 동여서(東餘鼠) ⋅ 백량(白梁) ⋅ 사서(斜鼠)이고, 서쪽은 추자(楸子) ⋅ 흑산(黑山) ⋅ 홍의(紅衣) ⋅ 가가(可佳) ⋅ 대화탈(大花脫) ⋅ 소화탈(小花脫)까지 아득한 가운데 뒤섞이어 있다. 진도(珍島) ⋅ 해남(海南) ⋅ 강진(康津) ⋅ 영암(靈巖) ⋅ 광주(光州) ⋅ 장흥(長興) ⋅ 보성(寶城)이 운하(雲霞) 밖에 희미하게 보인다. 용이나 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파도가 스스로 일어나는 모양을 만들어 내었으니 조물주도 또한 공교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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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山脈)은 사방으로 뻗어서 범이 달리고 거북이가 웅크린 모습이다. (봉우리가 뾰족하지 않고 그 형태가 둔한 까닭에 이와 같이 보인다.) 그 북쪽에 있는 뫼를 말하면 삼의양(三義讓) ⋅ 운우로(雲雨路) ⋅ 열안지(悅安止) ⋅ 어승생(御乘生) ⋅ 노로객(勞老客) ⋅ 감은덕(感恩德) ⋅ 답인(踏印) ⋅ 도전(倒傳) ⋅ 장올(長兀, 네 봉우리 중 하나는 가장 높고 위에 못이 있는데 지름은 50보이고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못 가에 조개껍질이 싸였는데 백록담과 같이 '공조'가 운반하여 온 것이다. 사라(紗羅) ⋅ 원당(元堂) ⋅ 곽지(郭支) ⋅ 상시(想時) ⋅ 효성(曉星) ⋅ 영통(靈通) ⋅ 동산(洞山) ⋅ 입산(笠山) ⋅ 기(箕) ⋅ 흑(黑) ⋅ 저(猪) ⋅ 장(獐) 등인데 이들은 제주목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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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쪽은 삼매양(三梅陽) ⋅ 영주(瀛州) ⋅ 성불(成佛) ⋅ 감은(感恩) ⋅ 수성(水城) ⋅ 독달(禿達) ⋅ 지미(指尾) ⋅ 수정(水頂 : 정상에 못이 있는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 운지(雲之) ⋅ 지세(指稅) ⋅ 지포(指浦) ⋅ 현라(懸蘿) ⋅ 성판(城板) ⋅ 영천(靈泉) ⋅ 두(斗) ⋅ 달(達) ⋅ 수(水 : 정상에 못이 있는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 방(方 : 한라산 절정에 있는데 모양이 정방(正方)으로 사람이 뚫어 만든 것 같다. 그 밑에는 잔디로 지름길이 되었는데 향 냄새 바람이 산에 가득하여 황홀하고 생현(笙絃)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전해 오기를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 한다) 들인데, 정의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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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쪽에는 시목(柿木) ⋅ 차귀(遮歸) ⋅ 모슬(摹瑟 ) ⋅ 고근(孤根 : 정상에는 큰 혈이 있어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둘레는 17리이다) ⋅ 구(龜) ⋅ 호(蠔) ⋅ 궁(弓) ⋅ 단(簞)등인데, 대정현에 있다. 하천을 말하면 산저(山底 : 제주 동성) ⋅ 화북(禾北) ⋅ 병문(屛門) ⋅ 개로(介路 : 정의) ⋅ 영천(靈泉) ⋅ 홍로(洪爐) ⋅ 감산(紺山 : 대정) ⋅ 색달(塞達) ⋅ 대가래(大加來)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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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숲(籔 : 곶)을 말하면 묘평(猫坪) ⋅ 김녕(金寧) ⋅ 점목(黏木 : 제주 서남 60리) ⋅ 개사(蓋沙 : 제주 서 70리) ⋅ 암수(暗數 : 제주 동남 95리) ⋅ 목교(木矯 : 정의 동 17리) ⋅ 대수(大藪 : 정의 남 4리) ⋅ 소근(所近 : 대정 서 26리) ⋅ 판교(板橋 : 대정 서 5리) ⋅ 나수(螺藪 : 대정 동 10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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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泉)은 도내에 감천(甘泉)이 없다. 백성들은 10리 안쪽에서 떠다 마실 수 있으면 가까운 샘으로 여기고, 멀면 혹은 4~5십리에 이른다. 물 맛은 짜서 참고 마시기는 하나 지방민은 익어서 괴로움을 알지 못한다. 외지인은 이를 마시면 곧 번번이 구토하고 헛구역질을 하며 병이 난다. 오직 제주의 가락천(嘉樂泉)은 성안에 있어 석혈(石穴)에서 용출하는데, 혹 마르기도 하나 감천이다. 또 전하기로는 김정(金淨)이 귀양살이 할 때 판 우물도 있다. 명월소(明月所)에는 감천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제주 동성 안에 산지샘(山厎泉)이 있는데, 석조(石槽)의 길이는 3칸이고 넓이는 1칸이다. 샘 맥이 사면(四面)을 따라 용출하여 물맛이 극히 좋고 차갑다. 겨울에는 따뜻하여 탕(湯)과 같고, 여름에는 차가워 얼음 같다. 성 안의 3천 호가 모두 여기에서 떠다 마신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마를 때가 없으니, 실로 이는 서울 외에는 드문 명천(名泉)이다. 토질(土疾)이 있어도 이 물을 마시면 곧 자연히 차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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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淵) 같은 것은 하천이 흘러 비록 모두 땅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고 하지만, 못이 되는 것도 역시 많다. 포구(浦口)같은 것은 삼읍을 돌아가면서 무릇 70개의 포구가 있어서 점지(點指)하여 보고 즐기니 가슴 속에 품는 것이 자연히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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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산기슭 50리 밖에 영실(瀛室)이라고 하는 동부(洞府)가 있다. 속명으로 오백장군동(五百將軍洞)이라 한다. 천 길이나 되는 푸른 절벽들이 둘러져 있어 병풍을 펼친 것 같다. 위에 괴석이 있는데 나한(羅漢)같은 모양이 무릇 5백이나 된다. 아래에는 세 개의 폭포가 걸려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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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곡(壑谷) 곁에 고단(古壇)을 쌓았는데 단 위에는 복숭아를 심었으며 총죽(叢竹)사이에 홀로 서 있다. 남쪽 산기슭에도 나무가 있는데 측백도 아니고 삼나무도 아니며 박달나무도 아니고 전나무도 아니며 은은히 당개(幢盖) 같은데, 전하기를 계수나무라고 한다. 또 만지(蔓芝)가 있는데 땅에 무더기로 나서 무성하다. 줄기에는 가는 털이 있고 색깔은 청태(靑苔 : 푸른 이끼) 종류이며 마디마디에 뿌리가 난다. 혹 채고(釵股 : 비녀 살) 같기도 하고 혹은 견사(絹絲) 같기도 하다.맛은 달고 향기는 비록 계수나무와 영지(靈芝) 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역시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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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수행동(修行洞)이 있다. 동(洞)에는 칠성대(七星臺)가 있어 좌선암(坐禪巖)이라고 말하였다. 이는 옛 스님의 팔정 옛터(八定之攄 : 팔정은 四禪定과 四無色定)인데, 이를 존자암(尊者庵)이라 부른다. 홍유손(洪裕孫)의 '존자암 개구 유인문(尊者庵 改構 侑因文)'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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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자가 암자를 짓기는 고 ⋅ 량 ⋅ 부(高梁夫)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난 때 비로소 이루어 졌고, 삼읍(三邑)이 나뉘어진 뒤에까지 오래도록 전해졌다. 그 터를 말하면 주봉(主峯)은 넓고 크며, 둥글게 올라가서 험하게 높다가 점점 낮아져서, 마치 봉황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아래로 내려와 웅크리고 사랑스럽게 그 병아리를 보는 것과 같다. 이는 현무(玄武)의 기이(奇異)함이다. 찬 샘물(寒泉)의 근원은 깊어 옥과 같은 소리를 내며, 맑게 걸러져 향기롭고 맑으니, 이른바 월덕(月德)의 방위에 있어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이는 주작(朱雀)의 기이(奇異)함이다. 비스듬히 이어져 용처럼 꿈틀꿈틀 기어가다가, 허리에서 마치 왼쪽 팔로 묶인 끈을 풀고자 하는 모습은 청룡(靑龍)의 경승(景勝)이다. 꼬리를 끌면서 다시 돌아오려고 머리에서 오른손으로 그 무릎을 쓰다듬는 것과 같은 모습은 백호(白虎)의 미(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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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경을 말하자면, 기암과 괴석들이 쪼아 새기고 갈고 깎은 듯이 삐죽삐죽 솟아 있기도 하고, 떨어져 서 있기도 하고, 엉기어 서 있기도 하고, 기울게 서 있기도 하고, 짝 지어 서 있기도 한데, 마치 속삭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돌아보며 줄지어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조물주가 정성 들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좋은 나무와 기이한 나무들이 푸르게 물들이고 치장하여 삼림이 빽빽한데, 서로 손을 잡아 서 있기도 하고, 등을 돌려 서 있기도 하고, 옆으로 누워 있기도 하고, 비스듬히 서 있기도 하니, 마치 누가 어른인지 다투는 것도 같고, 누가 잘났는지 경쟁하는 것도 같고, 어지럽게 일어나 춤추고 절하며 줄지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토신(土神)이 힘을 다하여 심어 놓은 것이다.신선과 아라한이 그 사이를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머무는 듯하며, 이상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이 그 속을 언제나 날아다니고 기어 다닌다. 이는 경개(景槪)를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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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령(長嶺)과 원악(圓岳)이 거듭 싸 안고 나란히 서 있으므로, 붉은 구름과 푸른 안개를 뿜어낸다면, 백 일에 백 리 밖 멀지 않는 데서 한 발짝 씩 걸으며, 푸른 바다 흰 물결은 쪽빛을 끌어당기고 눈이 쌓인 듯하고, 자봉(紫鳳)과 창붕(蒼鵬)이 하늘을 덮고 날아오르면, 우역(郵驛) 하나를 설치할만한 가깝지 않은 곳에서 세 때의 밥을 먹는다. 비가 개고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새로 만든 거울과 같고, 들녘 아지랑이가 바람에 쓸려 가면 작은 티끌까지도 다 없어져 만 리를 훤히 내다볼 수 있는데, 하늘 밖에 있는 해방(海邦)들이 뚜렷이 바둑돌을 흩어 놓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눈을 뜰 수 없는 바람과 귀를 먹게 하는 비가 내리게 되면 하늘은 어둡고 땅은 깜깜하여 눈을 부릅뜨고 볼지라도 지척을 분간 할 수 없으며, 큰 땅 덩어리가 혼동되어 어둡고 캄캄함이 거위 알 속에 있는 듯하다. 이에 티끌 세상의 시끄러움은 사라지고 세상 밖 신선 땅의 현묘함이 온전하게 되니, 이것이 곧 열자(列子) 어구(禦寇) 책에 있는 '원교산(圓嶠山)이요 동방 만천(東方曼倩) 영주(瀛州)의 땅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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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과대하게 포장된 말이 없는 게 아니나, 맛과 느낌을 표현함은 다한 것이다. 지금은 거주하는 스님이 없고, 단지 헐린 온돌이 몇 칸만 남아 있다. 또한 각각 유다른 구경거리도 있는데 소승(小乘 : 임제의 제주 유람 기록)에 이른바 “가는 곳마다 신선의 취향(趣向)이요, 걸음마다 기관(奇觀)이다.” 하였음은 진실로 사실을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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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하늘 닿는 끝을 바라보니 백색 사정(沙汀 : 물가에 있는 모래밭)같은 것이 있는데, 곧 '표해록(漂海錄 : 최부가 중국에 표도한 기록)'에 '백해(白海)'라고 칭한 곳이다. 향양(向讓)의 눈으로써 만 되의 바닷길을 능히 바라볼 수 있었음은 그 또한 다행한 일이다. 곁에 늙은 아전이 있었는데, 일찍이 월남까지 표류하였다가 돌아온 ‘과해일기(過海日記)'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향하여 무릎 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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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이 마도(馬島)입니다. 강호(江戶)입니다. 옥구도(玉球島)입니다. 여인국(女人國)입니다. 유구국(琉球國)입니다. 안남국(安南國)입니다. 섬라국(暹羅國)입니다. 점성(占城)입니다. 만라가(萬剌加)입니다. 영파부(寧波府)입니다. 소항주(蘇抗州)입니다. 양주(楊州)입니다. 산동(山東)입니다. 청주(靑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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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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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력히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마치 손바닥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황홀하고 아찔하여 눈이 어지럽고 마음이 현란하였다. 다만 하늘은 덮개가 되고 물은 땅이 되어 내 다리 아래에서 위아래 입술처럼 합쳐진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밖에 사람 사는 곳들이 있으니, 곧 내가 앉아 있는 돌이 바로 천하의 중앙에 해당하고, 균일하게 가지런하여 사방으로 틈이나 비틀어짐이 전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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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禹)가 물을 다스리고 공물을 정할 적이 숭고산(嵩高山)을 중악(中嶽)으로 여겼었고, 마테오릿지(예수회 선교사, 1552년~1610년)가 일본의 동남쪽을 중앙으로 여겼던 것은 서로 현격한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어찌 작은 언덕들에서 각각 다투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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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魯)나라 공자(孔子)는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가 작다고 하였다. 내 일찍이 국외(局外 : 중국 땅 밖)에서 이를 알았는데, 이제 과연 경험하는 바이다. 우리들은 손으로 여지도(與地圖)를 펴고, 옛 사람의 글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이치로써 사물을 보니, 곧 하늘은 더욱 높고 바다는 더욱 넓어서 다함이 없는 것이다. 물(物)로써 물(物)을 보니 손으로 가리킬 수 있고 자로 잴 수 있는데, 서쪽의 큰 바다나 몽고의 큰 사막도 역시 이와 같은 것에 불과할 따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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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金淨 : 기묘사화로 중종 14년인 1519년에 이곳으로 유배 와서 1521년 이곳에서 사사됨)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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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男兒)로 이 땅에 태어나서 큰 바다를 가로 질러 이 기이(奇異)한 곳을 밝고 이 기이한 풍속을 보게 되었다. 대개 와서 보고자 하여도 올 수 없는 곳이고, 오지 않으려 해도 면(免)하지 못하니,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 미리 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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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하였는데 역시 더욱 달관하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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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丘陵)과 연곡(淵谷)이 기량(技倆)은 재토(滓土 : 진토) 속에서 모습이 본시 이 와 같았는데, 접대 내가 세간에 편히 누워서 생각할 적에는 잠봉(蚕峰 : 누에머리 모양의 산봉우리) 무더기와 같은 것이라 여겼는데, 그러나 여기서 직접 보니 멀찍이 높이 솟아 창쾌(暢快)하고 엄숙하게 느껴져 말로써 다 그려낼 수 없다. 바로 오래 묵은 빚(夙債)이 있었는데, 평생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 듯싶다. 수성(壽星 : 노인성)의 빛을 마침 서로 만날 수 없었는데, 속세의 때 묻은 인연이 아직 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노인성은 오직 중국의 형악과 한라산에 오르고 서야 가히 볼 수 있다 하였다. 춘분과 추분에 절반을 바라볼 수 있는데, 절제사 심연원(沈連源)과 토정 이지함(土亭李之菡)은 보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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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며 따라온 수령들에게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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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높고 정수리가 움푹 들어갔으며 지면이 오목하고 발(足)쪽이 들리었으며, 이 한라산은 한가운데가 우뚝 솟아 있고 여러 뫼들이 별처럼 여기저기 벌리어져 있으니, 온 섬을 들어 이름을 붙인다면 연엽노주형(蓮葉露珠形 : 연잎 위에 이슬 구슬 형태)라 하겠는데, 어찌 그렇지 않겠소. 또한 천지가 개벽할 때에 모든 사물들이 소진(消盡)하고 융해(融解)되면서 강한 게 변하여 유한 것이 되고, 유한 게 변하여 강한 것으로 되었을 터이니, 이를 판별할 수 있다면 높다란 산과 커다란 골짜기는 어찌 섬과 뭍의 구별이 있겠소. 생각하건대, 그 산의 다리(脚)가 뭍으로부터 들어왔을 터이니, 바람이 치고 파도에 삼켜서 옛적부터 무너지고 뚫어져서 지금은 비록 바닷물이 들고 나고 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기맥(氣脈)이 연락되고 있음을 보아서 가히 알 수 있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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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주방인 중에 포작한(鮑作漢)이 있었는데 손을 들어 가리키며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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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바다에 칼날 같은 돌들이 옹기종기 가까운 바다와 갯가에 꽂혀 있습니다. 이것이 섬을 돌아가며 있으므로 배가 출입할 항구가 없습니다. 석맥(石脈)들이 서로 이어지고 얼크러져서 큰 화탈 작은 화탈섬으로부터 추자도와 백량도까지 이르르며 육지 고을에 도달하게 됩니다. 홰나무뿌리 열 아름 넘는 것들이 여태 바다 밑에 아직도 있습니다. 분명히 바다로 바뀌기 전에 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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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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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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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해(碧海)가 상전(桑田)이 되는 이치가 혹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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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다. 마침내 한라산은 서쪽이 머리가 되고 동쪽이 발이 된다고 하였더니, 모두 그렇다고 하며 말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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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哺時 : 오후 4시)에 하산하였는데 산 허리 반쯤 못 미쳐서 홀연히 큰 소리를 지르는 자가 있었다.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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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쯤에 보는 신기루(蜃氣樓) 또한 기이한 일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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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나도 역시 돌 위에 자리를 깔고 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큰 화탈섬과 작은 화탈섬이 처음에는 옥교(屋轎)와 같았다. 혹은 머리가 커지고 배가 작아지는 듯하더니, 혹은 발꿈치를 뾰죽 세우고 어깨를 낮추는 듯하였다. 보면 볼수록 점점 바뀌며 잠시마다 갑자기 바뀌었다. 흙 둔덕이 옥 비녀 같기도 하였다가, 굴러가는 솥뚜껑 같기도 하고, 누워 있는 소(牛) 같기도 하고 배 위의 누각과 스님이 공손히 두 팔을 낀 모습 같았다가, 돌연히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것과 무지개를 타고 다리를 건너가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푸르고 하얗다가 자색과 홍색이 간간히 끼기도 하였다.기기괴괴하고 천태만상을 보이며 층층 높은 기둥에 걸출한 결구(結構)들이 불시에 만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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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바다 일 면은 자수를 놓은 병풍과도 같았다. 떨어지는 노을에 쇠잔한 햇살이 물 안개에 가리어 반짝이다 사라졌다. 형형색색이 움직일 때마다 가히 탄성을 보낼 만하였다. 생각하건대, 하늘이 나의 도량이 좁음을 가련히 여기고 내 마음 씀이 소루함을 민망히 여기어서, 이를 큰 바다로써 넓히고 이를 섬세히 새기어 치장함으로써, 나로 하여금 그 변환(變幻)이 한결 같은 않음을 깨우치게 하려는 것일지니, 오늘의 나들이에서는 얻는 바가 이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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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손뼉을 치며 내려왔다. 엷게 땅거미 질 때 제주 감영에 돌아왔다. 어수선하더니 한 줄기 소낙비가 크게 지나가며 티끌들을 씻고 지나갔다. 우리는 종일 맑은 구름 위에서 속세를 초월하여 거리끼지 않았으니, 참으로 이는 신선들이 사는 삼천(三天)의 동부(洞府)이지, 속된 사람들이 사는 세계는 아니다.
【원문】등한라산기(登漢拏山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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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4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