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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을선전(鄭乙善傳) ◈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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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1
정을선전(鄭乙善傳) (1)
 
 
2
대명(大明) 가정 연간(嘉靖年間)에 해동 조선국 경상좌도 계림부 자산촌에 일위(一位)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은 정이요, 이름은 진희라.
 
3
잠영거족(簪纓巨族)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상국(相國)에 이르러 명망(名望)이 조야(朝野)에 진동하더니, 시세(時勢)변천(變遷)함을 인하여 법강이 해이하고 정령(政令)이 문란하여 군자의 당(黨)은 자연 물러가고 소인의 당이 점점 나아옴으로 풍진(風塵) 환로(宦路)에 뜻이 없는지라.
 
4
표(表)을 닦아 천폐(天陛)에 올려 벼슬을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구름 속에 밭 갈기와 달 아래 고기 낚기를 일삼으매, 말년(末年)에 가산(家山)은 섬부(贍富)하나, 다만 슬하(膝下)에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기로 매양 슬퍼하더니, 일일(一日)은 부인 양씨와 더불어 울적한 비회(悲懷)를 풀고자 하여 후원(後園) 동산에 올라가 일변(一邊) 풍경도 완상(玩賞)하며 일변 산보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인간 삼생사(三生事)를 담화할 새, 이때는 마침 춘삼월(春三月) 망간(望間)이라.
 
5
동산(東山) 서원(西園)에 백화(百花)는 만발하여 불긋불긋하고, 전천후계(前川後溪)의 양류(楊柳)는 무성하여 푸릇푸릇하여 원근(遠近) 산천(山川)을 단청(丹靑)하였는데, 화간접무는 분분설(花間蝶舞紛紛雪)이요, 유상앵비는 편편금(柳上鶯飛片片金)이며 비금주수(飛禽走獸)는 춘흥(春興)을 못 이기여 이리저리 쌍쌍래(雙雙來)라.
 
6
물색(物色)이 정여차(正與此)하매 즐거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환환희희(歡歡喜喜) 흥치(興致) 일층(一層) 도도(陶陶)하겠고, 슬픈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우우탄탄(吁吁嘆嘆)으로 수회(愁懷) 일층 증가(增加)할러라.
 
7
이러므로 승상이 부인을 대하여 추연(惆然) 탄왈(嘆曰),
 
8
“우리 연광(年光)이 반이 넘도록 일점혈육이 없으매, 우리에게 이르러 만년(萬年) 향화(香火)를 끊게 되니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사후(死後) 백골이라도 조선(祖先)에큰 죄인을 면치 못하리로다. 이러므로 이같은화조월석(花朝月夕)을 당하면 더욱 비회를 억제치 못하겠도다.”
 
9
하거늘, 부인이 슬픔을 못 이기어 여쭈오되,
 
10
“우리 문호(門戶)에 무자(無子)함은 다 첩(妾)의 죄악이라. 오형지속(五刑之屬)에 무후막대(無後莫代)라 하오니 마땅히 그 죄 만 번죽음 직하오되, 도리어 상공(上公)의 넓으신 은덕(恩德)을 입사와 존문(尊門)에 의탁(依託)하여 영귀(榮貴)함을 받으오니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다른 명문대가(名門大家)의 요조숙녀(窈窕淑女)을 널리 구하시어 취처(娶妻)하여 귀자(貴子)를 보시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면할까 하나이다.”
 
11
하니, 승상이 미소 답왈(答曰),
 
12
“부인에게 없는 자식이 타인에게 취처한들 어찌 생남(生男)하오리까. 이는 다 나의 팔자이오니 부인은 안심하옵소서.”
 
13
하며 시동(侍童)을 사용하여 주효(酒肴)을 내와, 승상이 부인으로 더불어 권하거니 마시거니 일배일배 우일배(一杯一杯 又一杯)로서로 위로하며 마신 후에 승상과 부인이 취흥(醉興)으로 밝은 달을 띄우고 돌아와 각기 침소로 돌아오더라.
 
14
이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전전반측(輾轉反側) 적막한 빈방 안에 올련(兀然) 독좌(獨坐)하여 수회(愁懷)를 등촉(燈燭)에 부치어 이리저리 곰곰 생각하다가,
 
15
‘옛말에 하였으되,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至誠)이 감천(感天)이라 하였으니,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가서 지성으로 정성 드리어 득남발원(得男發願)이나 하여 보면,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혹시 감동하사 일개(一介) 동자(童子)를 점지하여 후사(後嗣)나 이어 조선(祖先)에죄를 면할까.’
 
16
하여, 날새기를 기다려 즉시 행장(行裝)을수습하여 남방으로 향하더라.
 
 
17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봉래산(蓬萊山)을 당도하여 수일을 한양(閑養) 후에 수십 명 역정(驛丁)을 사용하여 제단(祭壇)을 건축하고 목욕재계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백일기도를마치고 본제(本第)로 돌아오니, 이날 밤에 부인이 자연 곤뇌(困惱)하여 안석(案席)에 의지하여 잠깐 졸더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하늘에서 홍의(紅衣) 동자(童子) 내려와 부인 앞에 끓어 재배(再拜) 왈,
 
18
“소자(小子)는 남해 용자(龍子)옵더니,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하여 진세(塵世)에 내치시니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망극하옵던 차에, 봉래산 선관(仙官)이 귀댁으로 지시(指示)하옵기로 왔사오니, 부인은 어여삐 보옵소서.”
 
19
하며, 품속으로 들거늘, 양씨 놀라 깨어 보니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몽사(夢事)가 기이하기로 즉시 상공을 청하여 몽사를 여쭈오되, 승상이 청파(聽罷)에 만심대희(滿心大喜)하여 내념(內念)에 귀자(貴子)를 둘까 암축(暗祝)하더라.
 
20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이 삭(朔)이 되매 일일은 오색(五色) 채운(彩雲)이 집을 두르며 향기 만실(滿室)일새, 부인이 좋은징조 있음을 보고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옥로(玉爐)에 향을 사르며 소학(小學) 내직(內職) 편을 열람(閱覽)하다가 혼미(昏迷) 중, 일개 옥동(玉童)을 낳으니 용모 장대하며 표범이 머리와 용의 얼굴이요, 곰의 등이며 잔나비 팔이요, 이리의 허리며 겸하여 소리가 뇌성(雷聲) 같으매 사람이 이목(耳目)을 놀래는지라.
 
21
승상이 대희(大喜)하여 명명(命名) 왈(曰)을선이라 하고, 자(字)를 용부라 하다.
 
 
22
을선이 점점 자라매 총명(聰明)이 과인(過人)하여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며 동서양 제가서(諸家書)를 열람아니한 서책이 없는지라.
 
23
세월이 유수(流水) 같아서 춘광(春光)이 십에 이르매 지혜는 만인(萬人)에 지내고 재조는 천인(千人)에 지내며, 용맹은 절대(絶代)하고 겸하여 충효가 특이하니 동서양에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인물이라.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더니 자고급금(自古及今)하여 조선 동천(東天)에 특별한 영걸(英傑)이 배출하니, 금수강산(錦繡江山)일시 분명하더라.
 
 
24
각설(却說), 이때 익주(益州) 땅에 일위(一位) 재상이 있으되, 성(姓)은 류요, 명(名)은 한경이라.
 
25
몸이 일찍 현달(顯達)하여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러 충의 강직하여 명망이조야(朝野)에 진동하더니 소인의 참소(讒訴)를 만나 삭탈관직(削奪官職)하여 내치심을 당하매 고향에 돌아와, 농부 어옹(漁翁)이되어 세월을 추월(秋月) 춘풍(春風)으로 보내며 다만 한가한 사람이 되었으되, 일찍 아들이없고 일녀(一女)뿐이니, 이름은 추련(秋蓮)이라 하더라.
 
26
난 지 삼 일만에 부인 최씨 산후병으로 세상을 영결(永訣)하더라. 즉시 유모를 정하여 지성으로 양육하여 연기(年紀) 십오 세에 이르러시서(詩書)를 통달하여 지성으로 부친을 섬기며, 겸하여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무쌍(無雙)하고 용모 자색이 태임(太妊) 태사(太姒)에 비하겠고, 덕행은 동서고금에 절대하더라. 류상서 애지중지(愛之重之)하기를 장중보옥(掌中寶玉)같이 사랑하더라.
 
27
상서 환거(鰥居)할 수 없어 노씨라 하는여자를 재취(再娶)하여 일남일녀를 낳은지라. 노씨 본래 마음이 어질지 못하여 추련을 항상해하고자 하더라.
 
28
상서 소시(少時)로부터 정승상과 단금(斷金)의 붕우(朋友)라. 황상(皇上)의 내치심을당함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승상을 항시(恒時)로 사모하더니, 마침 상서에 회갑이라 잔치를배설(排設)하고 정승상과 누년(累年) 적조(積阻)하던 회포를 설화(說話)코자 청래(請來)하였는지라.
 
29
정승상이 멀고 먼 도로를 혐의(嫌疑)치 않고 즉시 을선을 데리고 발정(發程)하여 익주로 행하여 가더라. 이때 유 상서가 정 승상을만나 적년(積年)에 그리던 깊은 정회를 담화할 새, 을선을 명하여 상서께 뵈오니 상서 또한노씨 몸에서 낳은 자식을 불러 승상께 뵈옵게한 후, 승상과 상서 서로 즐거워함이 비할 데없더라.
 
30
여러 날 즐거워 지낼 새, 일일은 을선이 동산에 올라 풍경을 두루 구경하다가 한편을 바라본즉 후원에 있는 양류(楊柳) 가지 흔들흔들하거늘, 을선이 자세히 살펴보니 한 낭자가 여러시비(侍婢)를 데리고 추천(鞦韆)하는지라.
 
31
잠깐 은신(隱身)하여 본즉 구름 같은 머리채는 허리 아래 너풀너풀하고, 오이씨 같은 발길은 반공중(半空中)에 흩날려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추천 줄을 휘어잡고, 앞줄을 벌려 뒤가늘며, 뒷줄을 벌려 앞이 늘고, 한 번 굴러 두번 굴러 반공중에 솟아올라 벽련화(碧蓮花)를두 발길로 툭툭 차 던지며 양류 가지를 휘어잡는 모양은 평생 보던 바가 처음이라.
 
32
한번 보매 심신(心身)이 산란(散亂)하여 점점 나가볼 새, 시비 등이 소저(小姐)께 대하여 말하되,
 
33
“경선(京城) 댁에서 사실 때에 국내(國內) 자색(姿色)을 많이 보았으되, 우리 소저 같은인물은 보지 못하였더니, 외방(外房)에 오신 정공자(公子)의 인물이 소저와 차등 없는 듯하오니, 짐짓 남중일색(男中一色)인가 하외다.”
 
34
하니, 소저 웃고 왈,
 
35
“내 인물이 무엇이 곱다 하리오.”
 
36
하더라.
 
37
이윽고 추천 유희(遊戲)를 다하고 들어가거늘 을선이 이 거동을 완상(玩賞)하고 정신이산란하여 날이 저물도록 그곳에서 배회하다가외당으로 들어오더라.
 
38
낭자의 고운 태도가 눈에 암암(暗暗)하고청아(淸雅)한 음성은 귀에 쟁쟁(錚錚)하여심혼(心魂)이 흩어져 장부(丈夫)의 간장을 다녹이는 듯, 적막한 방 안에 등촉(燈燭)으로 벗을 삼아 홀로 앉아 생각하니,
 
39
‘세상 만물이 다 짝이 있는데 나 혼자 짝이없어 항상 근심하더니, 우연히 류상서 집 후원에 이르렀다가 백옥 같은 사람에 마음을 놀래는가.’
 
40
이윽히 생각하며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못하여 여취여광(如醉如狂)하여 눈에 보이는것이 전혀 다 류소저 모양이라. 이러므로 불과오륙 일 지간에 인형(人形)이 초췌(憔悴)하고그렇게 흔하던 잠도 없더라.
 
41
이튿날 승상께옵서 길을 떠나 집으로 가실새, 을선이 마지못하여 부친을 뫼시고 돌아왔으나만사무심(萬事無心)하여 학업을 전폐하고 생각하느니 류소저로다.
 
42
일념(一念)에 병이 되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지라. 승상 부부가 민망하여 온갖 약을 쓴들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은 손가. 백약이 무효하여병세 점점 침중(沈重)하는지라. 그 모친이 약을 달이며 을선의 곁에 앉았더니 을선이 병중군말로,
 
43
“류소저 집 후원에서 보던 낭자 여기 왔느냐?”
 
44
무수한 헛소리를 크게 부르거늘, 그 모친이을선의 섬어(譫語)하는 거동을 보고 놀라며승상을 청하여 이 연유를 여쭈오되,
 
45
“을선이 기(其) 병중에 ○○○○○○○ 하옵디다.”
 
46
하거늘, 승상이 청파에 괴상히 여기어 을선을깨워 묻되,
 
47
“네 병세를 살펴보니, 우리 말년에 너를 낳아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사랑하더니, 홀연 득병하여 이같이 위중하니, 네가 무슨 연고 있는듯 싶으니, 사실을 은휘(隱諱)치 말고 심중소회(素懷)를 자세히 설명하라.”
 
48
을선이 민면(黽勉)한 말로 여쭈오되,
 
49
“부친께옵서 이같이 묻자오시니 어찌 기망(欺妄)하오리까. 과년(過年) 전일 류상서 집에갔을 때에, 후원 동산에서 추천하는 낭자를 보고 심신이 아득하여 일념에 병이 되어 부모 안전(案前)에 이같이 불효를 끼치오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이다.”
 
50
승상이 청파에,
 
51
“네 병이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런 말을 왜 진작 아니 하였단 말이냐? 익주 갔을 때에 류상서의 아들을 보매 그 상모(相貌)가 아름답지못하기로 그저 돌아왔더니, 네 진실로 그러할진대 매파(媒婆)를 보내어 유 상서께 통혼(通婚)하면 응당 희소식이 있을 듯하니 안심하라.”
 
52
하고, 매파를 즉시 보내어 통혼하였는지라.
 
53
류상서는 을선을 보내고 사모불망(思慕不忘)하던 차에 승상의 보내신 매파의 청혼함을듣고 못내 기뻐하여 즉시 허락하며 택일(擇日)까지 하여 보내는지라.
 
54
이때 승상이 을선더러 류소저와 정혼(定婚)된 말을 이르니, 을선이 부친의 말씀을 듣고 일변 황감(惶感)하며 일변 기뻐하여 병세 점점차도 있더라.
 
 
55
각설, 이때 천자(天子) 문무백관(文武百官)을 인격(人格)을 택취(擇取)하려 하시고, 각도 행관(行關)하사 별과(別科)를 뵈일새 과일(科日)이 점점 임(臨)하였는지라.
 
56
이때 을선의 연광이 십팔 세라. 서책을 품에품고 장중(場中)에 들어가 본즉, 천자 열후(列侯) 종실(宗室)과 만조백관(滿朝百官)을거느리시고 전각(殿閣)에 어좌(御座)하시는지라.
 
57
여러 시관(試官)이 하관(下官)을 명하여 글제를 내어 걸거늘, 을선이 시지(試紙)를 펼쳐놓코 산호필(珊瑚筆) 반쯤 풀러 일필휘지(一筆揮之)하니 용사비등(龍蛇飛騰)하여 자자(字字) 주옥(珠玉)이요, 필법(筆法)은 왕일소(王逸少)라. 일천(一天)에 선장(先場)하고 장중을 두루 구경하더라.
 
58
천자, 여러 시관으로 더불어 경향(京鄕) 선비의 시축(試軸)을 열람하시다가 한 글 장을 보시고 칭찬불이(稱讚不已)하시며 봉내(封內)를 개탁(開坼)하여 보신즉, 전 승상 진희의아들 을선이라 하였거늘, 황상(皇上)이 대열(大悅)하여 즉시 장원을 시키시고 신래(新來)를 재촉하실새, 을선이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여취여광하여어전(御前)에 다다라 복지(伏地)하오니, 을선이다시 명소(命召)하사 당상(堂上)에 올려 앉히시고 을선에 용모를 잠깐 살펴보신즉, 미간(眉間)이 광활함에 일월(日月) 정기(精氣) 감추었고 봉안(鳳眼)에 광채를 띠었으니 심모원려(深謀遠慮)하겠고, 호골(虎骨) 용안(龍顏)이요, 곰의 등이요, 잔나비 팔이며 이리 허리에 음성이 뇌성 같으며 신장이 구 척이라.
 
59
천자 특별히 사랑하사, 여러 번 진퇴(進退)하시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除授)하시고 사악(賜樂)까지 하(下)시더라. 한림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궐문 밖에 나오니 한림원 시배(侍陪)와 화동(花童)과 악생(樂生)이 좌우에 나열하고, 청홍개(靑紅蓋)는 반공에 솟아 있는지라. 일위 소년이 삼층 윤거(輪車)의 높이 앉아 봉미선(鳳尾扇)으로 일광(日光)을 가리우고 대로상(大路上)으로 언연(偃然)히 지내니, 짐짓 동서양 고금영웅을 슬하에 꿇릴 만한 인물일러라. 이원풍악(梨園風樂) 소리는 원근에 진동하매 만조백관이며 장안 만민이 다투어 완상하며 칭찬 않는이 없더라.
 
60
이때 한림이 영친(榮親)할 사로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고 번제(番第)로 돌아오더라.
 
61
승상 부부가 한림의 손을 잡고 못내 즐겨 하시며, 즉시 익주 류상서 댁으로 기별하더라. 상서, 이 소식 듣고 크게 기뻐하여 희색(喜色)을띄어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과 소저를 보고수말(首末)을 하시고 즐길새, 그제야 유모까지 놓고 기뻐하되, 노씨 홀로 겉으로 좋아하나속으로는 흉계만 생각하더라.
 
 
62
각설, 이때 조왕(趙王)이 한 딸을 두었으되, 자색이 비범하여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비할때 없어 현서(賢壻) 택하기를 널리 하더니, 마침 정을선의 풍채와 용모가 비범한 인물이며겸하여 한림학사의 위의(威儀)를 칭찬불이(稱讚不已)하며, 백 학사라 하는 사람을 보내어 청혼한즉 한림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기를 재촉하거늘, 조왕이 대로하여 천자께 주왈(奏曰),
 
63
“신(臣)의 여식이 있삽기로 한림 을선에게 청혼한즉 거절하오니, 통분하옵고 애닯사외다.”
 
64
하거늘, 천자 청파에 즉시 을선을 명초(命招)하시니, 한림이 궐내로 들어가 복지하오니, 천자 가라사대,
 
65
“짐의 조카 조왕이 네게로 청혼한즉 거절하였다 하니 그것이 분명하냐?”
 
66
하시니, 한림이 복지 주왈,
 
67
“소신이 소국 천한 용재(庸才)오니 어찌 조왕의 구혼(求婚)함을 거절하오리까. 정(情)에구애(拘礙)하는 일이 앞에 있삽기로 존명(尊命)을 봉행(奉行)치 못하였나이다.”
 
68
상이 문왈(問曰),
 
69
“무슨 사정이 있는가?”
 
70
하시니, 한림이 주왈
 
71
“전 상서 류한경의 여식과 정혼하여 택일 봉채(封采)하였나이다.”
 
72
말씀을 주달하오니, 천자 들으시고 가라사대,
 
73
“사정도 그러할 뿐 아니라 혼인은 인륜대사(人倫大事)라. 금석같이 뇌정(牢定)한 혼인을 왕위(王威)로 저어(齟齬)하면 이는 인사의 어그러진 일이라. 겸하여 짐이 군부(君父)되어 백성의 선악(善惡)을 어찌 알리오.”
 
74
하시고, 조왕을 부르사 이 뜻으로 이르시고달래어 만류하시고, 한림에게 가라사대,
 
75
“또한 류한경은 죄 중에 있는지라. 네 빙부(聘父)된다 하기로 네 낯을 보아 죄를 특사(特赦)하노라.”
 
76
하시고, 익주로 방출(放黜)하시니, 한림이천은(天恩)을 축사(祝辭)하고 물러 나와 오더라.
 
77
이때 길일(吉日)이 가까워 오거늘 한림이 부친을 뫼시고 익주로 내려갈새, 한원(翰院) 시배(侍陪)와 이원풍악이며 위의(威儀) 거동을이로 측량치 못할러라.
 
 
78
각설, 이때 노씨 매양 소저를 죽이고자 하더니 일일은 독한 약을 음식에 넣어 소저를 주니, 소저 마침 속이 불편한지라. 이를 받아 유모를들리고 침소에 돌아와 먹으려 할새, 하늘이 살피심이 소소(炤炤)한지라.
 
79
홀연 난데없는 바람이 일어나 티끌이 죽에날려 들거늘, 소저가 티끌을 건져 문밖에 버리니 푸른 불이 일어나는지라.
 
80
대경(大驚)하여 이에 유모를 불러 연유를말하니 유모 대경하여 이에 개를 불러 죽을 먹이니 그 개 즉시 죽거늘, 소저가와 유모가 더욱놀라 차후는 주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유모의 집에서 밥을 지어 수건의 싸다가 겨우 연명(延命)만 하더라.
 
81
노씨 마음에 헤오되,
 
82
‘약을 먹여도 죽지 아니하니 가장 이상하도다.’
 
83
하고 다시 해할 계교를 생각하더니 세월이여류하여 길일이 다다르매, 정시랑(侍郞)이위의(威儀)를 갖추어 여러 날을 행하여 류부(柳府)에 이르니, 시랑의 풍채 전일보다 더배승(倍勝)하여 몸에 운문사(雲紋紗) 관대(冠帶)를 입고 허리의 금사(金絲) 각대(角帶)를 띠었으니 천상 신선이 하강한 듯하더라.
 
84
차시(此時), 천조(天朝) 사관(辭官)이이르렀는지라. 승상이 천은을 숙사(肅謝)하고사문(赦文)을 보니 전과(前過)를 사하여 관작(官爵)을 회복한 성지(聖旨)라.
 
85
류승상이 북향(北向) 사은하고 사관을 관대(寬待)하여 보낸 후, 류승상이 초왕(楚王)부자를 맞아 기간(其間) 사모하던 회포를 펼새, 눈을 들어 정시랑을 보니 옥모(玉貌) 풍채전(前)에서 배승(倍勝)한지라.
 
86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좌상(座上) 제빈(諸賓)이 일시에 승상을 향하여 쾌서(快壻)얻음을 치하(致賀)하니, 류공이 희불자승(喜不自勝)하여 치하를 사양하지 아니하더라.
 
87
이튿날 예를 갖추어 전안(奠鴈)할새, 근처 방백(方伯) 수령(守令)이며, 시비와 하예(下隸) 등 쌍을 무리 지어 신부를 인도하여 이르매 신랑이 교배석(交拜席)에 나아가 눈을 들러 신부를 잠깐 보니,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몸의 채의(彩衣)를 입고, 무수한 시녀가옹위(擁衛)하였으니 그 절묘한 거동이 전에추천하던 모양과 배승하더라.
 
88
그러하나 신부가 수색(愁色)이 만안(滿顔)하고 유모가 눈물 흔적이 있거늘, 심중(心中)의 괴이하니 누구를 향하여 물으리오.
 
89
이에 교배(交拜)하기를 마치고 동방(洞房)의 나아가니, 좌우의 ○○과 운모병(雲母屛)이 황홀한지라. 괴로이 소저를 기다리더니 이윽고 소저가 유모 촉(燭)을 잡히고 들어오거늘, 시랑이 팔을 들어 맞아 좌(座)를 정한 후에, 인(因)하여 촉을 물리고 원앙금리(鴛鴦衾裏) 나아갔더니 문득 창외(窓外)에 수상한 인적이 있거늘 마음의 놀라 급히 일어 앉아 들으니 어떤 놈이 말하되,
 
90
“네 비록 시랑 벼슬을 하였으나 남의 계집을품고 누웠으니 죽기를 아끼지 아니한다.”
 
91
하거늘 창틈으로 열어보니 신장이 구 척이요, 삼 척 장검(長劍)을 비끼고 섰거늘, 이를 보매심신이 떨리어 칼을 빼어 그놈을 죽이고자 하여 문을 열고 보니 문득 간데없거늘, 분을 참지못하여 탄식하고 생각하매,
 
92
‘오늘날 교배석에서 보니 수색(愁色)이 만안 (滿顔)하기로 괴이히 여겼더니 원래 이런 일이있도다.’
 
93
하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들어 소저를죽여 분을 풀고자 하다가 또 생각하되,
 
94
‘내 옥 같은 마음을 어찌 저 더러운 계집을침노하리오.’
 
95
하고 옷을 입고 급히 일어나니, 소저가 경황(驚惶) 중 옥성(玉聲)을 열어 가로되,
 
96
“군자(君子)는 잠깐 앉아 첩의 말을 들으소서.”
 
97
하거늘, 시랑이 들은 체 아니하고 나와, 부친께 수말을 고하고 바삐 가기를 청하니, 초왕이대경하여 바삐 승상을 청하여 지금 발행하여상경함을 이르고, 하예(下隸)를 불러 행장을 차리라 하니 류승상이 계(階)에 내려 허물을 청하여 왈,
 
98
“어찌된 연고로 이 밤에 상경코자 하시느뇨?”
 
99
정공 부자 일언(一言)을 부답(不答)하고 발행하더라.
 
 
100
원래 이 간부(姦夫)로 칭하는 자는 노녀의 사촌 오라비 노태니, 노씨 전일에 독약을 시험하되 무사함을 애달아 주사야탁(晝思夜度)하여 소저 죽이기를 꾀하더니 문득 길일이 다다르매 일계(一計)를 생각하고 이에 심복으로 노태를 불러 가만히 차사(此事)를 이르고 금은을 많이 주어 행사(行事)하라 하매, 노태 금은을 욕심내어 삼척 장검을 짚고 원광(圓光)을 띠어 소저 침소의 이르러 동정을살피고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류소저를 갱참(坑塹)에 넣으니, 가련타, 류 소저가 백옥 같은 몸에 누명을 실으니 원정(怨情)의 뉘에게 말하리오.
 
101
불승분원(不勝忿怨)하여 칼을 빼어 죽으려하다가 다시 생각하니,
 
102
‘이렇듯 죽으면 내 일신이 옥 같음을 뉘 알리오.’
 
103
하고 이에 속적삼을 벗어 손가락을 깨물어피를 내어 혈서(血書)를 쓰니 눈물이 변하여피 되더라.
 
104
류승상이 초왕을 보내고 급히 안으로 들어와실상(實狀)을 알고자 하니, 노씨는 모르는 체하고 먼저 문왈,
 
105
“신랑이 무슨 연고로 심야(深夜)에 급히 가나이까?”
 
106
승상이 가로되,
 
107
“내 곡절(曲折)을 모르매 제 노기 충천(衝天)하여 일언을 부답하더니 어찌 한 곡절을알리오. 자세히 알고자 하노라.”
 
108
노씨 승상의 귀에 대고 왈,
 
109
“첩이 잠결에 듣사오니 신랑이 방문 밖에서어떤 남자와 소리 지르며 여차여차(如此如此)하니 아무렇거나 추련에게 물으소서.”
 
110
승상이 즉시 소저 침소의 가니, 소저가 이불을 덮고 일어나지 아니하니, 시비로 이불을 벗기고 꾸짖어 왈,
 
111
“네 아비 들어오되 동(動)함이 없으니 이 무슨 도리며 정랑이 무슨 일로 밤중에 졸연(猝然)히 돌아가니 이 무슨 일인지 너는 자세히알 지니 실진무은(悉陳無隱)하라.”
 
112
소저가 겨우 고왈(告曰),
 
113
“야야(爺爺) 불초(不肖)한 자식을 두었다가집을 망하게 하오니, 소녀의 불효 만사무석(萬死無惜)이로소이다.”
 
114
하고 함루무언(含淚無言)하니 승상이 다시이르되,
 
115
“너는 어찌 일언을 아니 하느뇨?”
 
116
재삼 무르되 종시(終始) 일언을 답하지 아니하고 눈물이 여우(如雨)하니, 승상이 각하되,
 
117
‘전일에 지극한 효성으로 오늘날 불효를 끼치니 무슨 곡절이 있도다.’
 
118
하고, 일어나 와당(外堂)으로 나오더라.
 
119
차시, 유모가 소저를 붙들고 통곡하니 소저가눈물을 머금고 왈,
 
120
“유모는 나의 원통한 죽음을 불쌍히 여겨 후일(後日)에 변백(辨白)함을 바라노라.”
 
121
하고, 혈서 쓴 적삼을 주니, 유모가 소저가죽을까 겁(怯)하여 단언(斷言)을 위로하니 소저가 다시 일언을 아니하고 반일(半日)을 애곡(哀哭)하다가 명(命)이 끊어지니 유모가 적삼을 안고 통곡하며, 외당에 나와 소저의 명이진(盡)함을 고하니 승상이 대경하여 이르되,
 
122
“병 들지 아니한 사람이 반일이 못하여 세상을 버리니 이상하도다.”
 
123
하고 일장(一場)을 통곡하고 유모로 인도하라 하고 소저의 빈소(殯所)에 이르니 비풍(悲風)이 소슬하여 능히 들어갈 수 없더라.
 
124
차후는 사람이 소저 빈소 근처에 이른즉 연(連)하여 죽으니 승상이 능히 염습(殮襲)하지 못하고 종일 호곡(號哭)하다가, 유모의 드린 바 혈서를 쓴 적삼을 내어 보니 대개 유모에게 한 글이라. 그 글에 하였으되,
 
125
“추련은 삼가 글을 유모에게 부치노라. 내 세상의 난지 삼 일만에 모친을 이별하니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마는, 유모의 은혜를 입어 잔명(殘命)을 보존하여 십오 세에 이르러 정가(鄭家)에 정혼(定婚)하매, 나의 팔자가 갈수록 무상하여 귀신의 작희(作戲)를 만나 청춘의 원혼이 되니 한하여 부질없도다. 천만의외에 동방화촉(洞房華燭) 깊은 밤에어떤 사람이 큰 칼을 들고 여차여차하매 정랑(鄭郞)이 어찌 의심치 않으리오. 나를 죽이려하다가 멈추고 나아가니 내 무슨 면목으로 부친과 유모를 보며 세상의 있을 마음이 있으리오. 슬프다. 외로운 혼백이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임자 없는 귀신이 되리로다. 죽은 내 몸을점점이 풀 위에 얹어 오작(烏鵲)의 밥이 되면이것이 내 원(願)이요, 금의(錦衣)로 안장(安葬)하면 혼백이라도 한을 풀지 못하리로다. 유모의 은혜를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갚지 못하고 누명을 쓰고 죽으니 원한이 철천(徹天)하다. 지하에 돌아가 모친 혼령을 뵈오면 나의 애매(曖昧)한 악명(惡名)을 고할까 하노라.”
 
126
하였더라. 승상이 남파(覽罷)에 방성대곡(放聲大哭)왈,
 
127
“이 계교 내기는 분명 가내거사(家內巨事)로다. 내 어찌하면 명백히 알리오.”
 
128
하며, 일변 노씨의 시비를 엄형(嚴刑) 추문(推問)하니, 시비 등이 황황(遑遑) 망극(罔極)하여 아무리 할 줄 모로더라.
 
129
승상이 이제 시비의 복초(服招) 아니함을노하여 엄형 추문하더니, 홀연 공중으로부터 외쳐 왈,
 
130
“부친은 애매한 시비를 엄형하지 마소서. 소녀의 애매한 누명을 자연 알리이다.”
 
131
하더니, 홀연 방안의 앉았던 노씨, 문밖에 나와 없어지며 안개 자옥하고 무슨 소리 나더니, 노씨 피를 무수히 토하고 죽는지라.
 
132
모두 이르되, 불측(不測)한 행실을 하다가이렇듯 죽으니 신명(神明)이 무심치 아니하다하고, 불쌍한 소저는 이팔청춘에 몹쓸 악명을쓰고 죽으니, 철천(徹天)한 원한을 뉘라서 설치(雪恥)하리오.
 
133
노태는 그 경상(景狀)을 보고 스스로 결항(結項)하고, 노씨 자녀는 그날부터 말도 못하고 인사(人事)를 버렸더라.
 
134
일변 소저를 염빈(殮殯)하려 하여 방문을연 즉 사나운 기운이 일어나 사람에게 쏘이며연하여 죽는지라. 감히 다시 가까이 가도 못하더니, 홀연 소저에 곡성이 철천하며 근처 사람들이 그 곡성을 들은즉 연하여 죽는지라.
 
135
일촌(一村) 인민(人民)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승상이 어찌 홀로 살리오. 인하여 병들어 기세(棄世)하니 유모 부처(夫妻) 통곡하며 선산(先山)에 안장하더라.
 
136
이후로 마을 사람이 점점 패하여 흩어지니일촌(一村)이 비었으되, 오직 유모 부처는 나가려 하면 소저에 혼이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밤마다 울며 유모에 집에 와 있다가 달이 기울면침소로 돌아가더라.
 
 
137
차하(次下)를 급히 보시고,
【원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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