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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최근 3개월 조회수 : 31 (2 등급)

“총살당한 작은아버지, 사망신고 미뤘으니 과태료 내라고...”

 
여순사건으로 아버지·작은아버지 잃은 김화자씨, 70주기 추념식서 특별법 제정 거듭 호소
▲ 19일 오전 10시 반, 여수시 중앙동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 모습 ⓒ 오문수
 
19일 오전 10시 반, 여수 중앙동 소재 이순신 광장에서는 '여순사건 70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추념식에는 전라남도 김영록 도지사를 비롯한 관계자와 유족,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좌익 군인들이 제주도 봉기를 진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이다. 당시 14연대 좌익 군인들이 주도한 봉기는 여수와 순천을 점령했고 그 세력은 전남 동부지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 후 미군의 개입과 국군토벌대의 진압작전으로 1948년 10월 27일 봉기는 진압되었다.
 
여순사건 직후 순천, 광양, 보성, 장흥, 고흥, 화순, 곡성, 구례, 하동과 함양 일부가 점령되어 약 1만여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당시 사건을 전후해 좌익이 경찰과 우익인사를 학살한 경우보다 진압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경우가 훨씬 많았고 잔인했다.
 
추념식이 열린 이순신광장에는 제주 4.3유족회 대표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온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해 자리를 메웠다.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은 이날 행사는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날이다. 4대 종단을 비롯한 교계가 참석했고 그동안 특별법제정에 반대해왔던 단체회원들도 참석했기 때문이다. 여순사건 70주년 기념추모사업 박정명 시민추진위원장의 추도사이다.
 
"가슴 아린 기억이 새록새록 해지는 가을이 어김없이 또 돌아왔습니다. 여순사건 70주년, 참으로 긴 세월 동안 가슴 먹먹한 우리의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올가을은 여느 가을보다 조금은 편하고 수월하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동안 멀어져 있었던 양측 유족이 한 자리에 만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고, 그리고 온 시민과 함께 하는 70주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뜻깊은 가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날 추도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온 대부분은 아픈 현대사의 비극을 떨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유족석 맨 뒤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수심에 잠겨있는 여성이 보여 대화를 나눴다.
 
김화자(71)씨는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잃은 유족이다. 71세이니 태어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아버지 얼굴도 모르지만 아버지 사진을 지니고 다닌다. 그녀가 살아왔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 김화자씨 아버지인 고 김관두씨 모습. 일제강점기 말엽에 일본군에 끌려가 군속으로 일하다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다. 강제징집 당시 20세 였다고 한다. ⓒ 김화자
 
그의 아버지 김관두씨는 일제강점기말 일본에 끌려가 군속으로 일하다 해방이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세상물정을 알게 된 김씨는 고향인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에서 친구 8명과 함께 건국준비위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식자층이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순사건이 발발한 후 검속령이 내리자 그는 2개월 동안 외가로 피신했다. 하지만 당시 여수시내 중학교 6학년(현재의 고3에 해당)에 재학 중이던 동생 김영두씨(당시 19세)가 경찰에 검거돼 총살당했다. 총살현장을 지켜보던 이웃어른들이 전해준 말을 김화자씨가 이야기했다.
 
"눈을 가리고 손과 발을 묶어놓고는 경찰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냐고 묻자, '내 목숨보다 나 공부시키느라 고생하신 어머니한테 불효하는 게 안타깝다'고 하며 총을 6발이나 맞고 숨졌대요"
 
동생이 총살당하자 마을이장이 나서서 김관두씨를 자수시켰다. 그러나 가족이 파출소로 그를 찾아갔을 때, 김씨는 핏자국과 물고문을 당한 뒤 진흙탕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트럭에 실려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14개월 후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두 아들이 죽자 할머니는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켜 가출해 돌아다니다 고흥 친척집에서 객사했다. 집은 불태워졌고 김화자씨의 어머니는 재혼했다. 갈 곳이 없어진 김화자씨는 5촌 친척 집에 맡겨져 8살부터 노예같은 생활을 했다. 산과 들로 바다로 일하러 다녀야만 했다.
 
철이 들어 억울한 가족사를 안 김화자씨는 아버지의 사망이유를 조회해보았다. '병사'였다. 그녀는 진실과화해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병사에서 고문사'로 정정기재했다.
 
2014년에 제정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으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에게도 보상의 길이 열렸다. 이 법은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녀는 작은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어갔다며 면사무소에 신고하러 갔다가 분노가 폭발했다. 담당자가 "60여년전에 돌아가셨는데 사망신고를 미뤘기 때문에 과태료를 내야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으로 사람을 죽여 놓고 사망신고 안했다고 과태료를 내라고?"
 
분노한 그녀는 "국민목숨을 지켜줘야 할 나라가 사람을 죽여 놓고! 이게 나라냐?"며 호통치고 책상을 쳤다. 그 후 주변사람이 증인이 되어줘 사망신고를 마쳤다.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전국현장을 돌다가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는 그녀에게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여순사건 당시 아버지가 희생당해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채 고아 아닌 고아가 되었던 김화자씨가 여순사건 70주기 추념식장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해 용서할 생각은 없느냐?
"젊었을 적에는 나도 총들고 가해자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하지만 또다시 피를 봐야 하고 나도 살인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는 참고 좋은 방향으로 가야지요. 하지만 가해자들이 먼저 찾아와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근현대시절 국가폭력에 의해 집단 희생된 지역인 제주, 거창, 광주는 특별법이 제정되고 기념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여수는 아직도 세워지지 않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오늘도 일부 인사의 발언으로 연단이 소란해지기까지 하는 걸 보면 화해와 상생의 길이 쉽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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