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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5.14. 18:41 (2019.05.14. 18:41)

【여행】아르헨티나 경제난의 원인은 뭐였을까

[남미여행기 26] 포퓰리즘인가, 군부독재인가
▲ 비센테나리오 박물관에는 페론 대통령 부부의 초상화가 있다. ⓒ 오문수
 
정열의 나라 아르헨티나. 한반도의 12.6배 크기에 인구 4천 4백만명이 사는 나라다. 한 때 '남미의 파리'라 불렸고 100년 전 지하철을 건설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로와 가장 화려한 콜론극장을 지닌 나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곳곳마다 바로크식 고층건물이 즐비해 이곳이 유럽일까? 아니면 남미일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나라다.
 
19세기말 세계 5대 부국으로 한때 드넓은 팜파(대초원)에 5천 2백만 마리의 소떼가 득실거려 이탈리아 대리석 한 장과 소 한 마리를 맞바꾸던 풍요의 나라가 경제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1997년 IMF외환위기로 신음했던 대한민국이 회복해 세계 10위권에 들었지만 아르헨티나는 두 번이나 IMF외환위기(2001, 2018)를 겪었다.
 
▲ 개 산책사들이 개들을 데리고 공원에서 산책하고 있다. 자격증이 있어야 하며 수입도 상당하다고 한다 ⓒ 오문수
 
▲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 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길거리 조형물. 입체감을 준 그림이다. ⓒ 오문수
 
아르헨티나는 현재 외환보유고가 겨우 500억 달러를 약간 상회하고 외채가 2000억 달러에 육박할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늘어나는 실업률로 신음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아르헨티나 병'의 원인을 진단하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100>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정리해 봤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돼
 
아르헨티나는 187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유럽에 많은 농축산물을 수출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한동안 수출입이 줄고 소비재가 부족해지는 등 경제성장이 둔화되었지만 1920년대 중반에 유럽시장에 곡물과 육류수출이 재개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정상상태를 회복했다.
 
그러나 1929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으로 수출은 줄고 대외부채와 자본 유출이 증가하면서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정부는 위기에 대처하고자 보호주의 정책을 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1930년 우리부루 장군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군부가 지속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노동계급의 대변자 페론
 
1943년 후안 도밍고 페론을 주축으로 한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페론은 임금인상, 주 60시간 노동, 동일 노동의 남녀차별폐지와 해고 노동자의 복직 등을 요구했던 노동자 편에 섰다. 1946년 페론은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계급의 지도자들을 주축으로 노동자당을 만들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 노점상들이 경찰의 단속을 피해 이동하고 있다. ⓒ 오문수
 
집권 초기 환율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고 5개년 경제개혁을 통해 국민총생산이 29%가량 성장했고 외환보유고도 늘어났다. 한편 페론은 첫 번째 부인을 암으로 잃고 난 후 '에비타'로 알려진 여배우 출신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와 1945년에 결혼했다.
 
밑바닥 삶을 전전하다가 자신보다 나이가 2배나 많은 페론과 결혼한 그녀는 노동, 보건, 자선 분야의 일을 맡아 병원, 학교, 고아원, 양로원 건립을 주도해 노동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또한 자선단체인 '에바 페론 재단'을 운영하면서 빈민구제에 힘썼으며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는 등 여권신장운동에도 앞장섰다.
 
▲ 관광객들이 서있는 곳이 아르헨티나 5월 광장으로 군부독재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이들의 어머니회원들이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집회를 하는 현장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대통령궁인 "까사로사다"로 에바 페론이 발코니에서 군중들을 향해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까사로사다"는 분홍빛으로 칠해진 건물이라는 뜻이다. ⓒ 오문수
 
▲ 아르헨티나 명사들이 묻힌 레꼴레따에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에바 페론의 납골당이 있다. 빈민들로 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그녀는 죽은 지 24년만에 가족묘지로 돌아왔다. 상단에 두아르테 가문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 오문수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의 기수' '페론의 방패' 등의 칭호를 들으며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던 에비타는 1952년 33세의 나이에 자궁암으로 사망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잊지 않도록 해달라는 에비타의 유언대로 에비타의 시신은 썩지 않게 처리해 노동부 건물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955년 페론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노동자들의 소요를 우려해 에비타의 시신을 이탈리아 밀라노 근처의 작은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그 후 에비타의 시신은 우여곡절 끝에 1971년 스페인에 망명중이던 페론에게 돌아갔고 그녀가 죽은 지 24년 만인 1976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꼴레따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난의 원인이 포퓰리즘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에 반론을 제기한 경제전문가 김후의 저서 <불멸의 여인들>의 일부분이다.
 
 
에비타의 포퓰리즘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가지고 그녀를 모방한 남미 국가들이 모두 망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 파이를 키우려고 하지는 않고 나누어 주기에만 바빴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제학적인 통계자료는 이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아르헨티나는 후안 페론이 집권했던 10년 동안 130퍼센트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실질적인 평균 임금은 세 배 이상 올랐다.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원흉은 페론 정권이 아니라 그 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독재 정권이었다. 그들은 국민이 페론 시절보다 더 잘살게 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들은 허황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단기 외채를 들여와 국민들에게 풀었으며, 국민들은 잠시 벼락부자가 된 듯한 환상에 빠졌다. 그러나 단기외채라는 달콤한 유혹은 머지않아 이자율 150퍼센트라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아르헨티나 경제를 아예 죽이고 말았다.
 
 
대통령궁이 있는 '까사로사다' 건물 뒤로 돌아가면 비센테나리오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아르헨티나 근현대사를 기록한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역임한 사람들을 연대기로 수록해 놓고 있었다. 박물관 중간쯤에는 페론 대통령과 부인인 에비타의 그림과 재직기간 동안의 업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다.
 
페론 대통령의 기록물 다음 칸에는 군부독재자들의 기록물과 민주화투쟁에 나선 사진자료가 있는데, 이와 함께 동영상을 보여줬다. 군인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는 장면은 1987년 6월 항쟁 사진과 흡사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반갑다"며 3시간 동안 필자 옆에서 박물관 기록물에 대해 설명해준 직원이 헤어지며 해준 말이다.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현대사를 가진 한국이 경제난을 극복하고 민주화까지 이룬 것이 부럽습니다. 아르헨티나 경제난의 주요한 원인은 군부독재 때문입니다."
 
▲ 한인 3만명이 거주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타운에 가면 한국음식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식당 "대원정"을 방문했던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쓴 글과 사진들이 보인다. ⓒ 오문수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가 낳은 '더러운 전쟁'
 
아르헨티나는 1975년 석유파동 여파로 수출이 감소하고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이로 인한 경제파탄과 사회불안은 좌우익테러와 전국적인 파업, 더 나아가 군부쿠데타를 불러왔다. 1976년 군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의회를 해산시키고 페론정권을 붕괴시켰다.
 
▲ 우리의 6월항쟁을 연상케하는 동영상 모습으로 군인의 폭력으로 피를 흘리는 아르헨티나 젊은이 모습이 보인다. 아르헨티나 근현대사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비센테나리오 박물관 동영상을 촬영했다. ⓒ 오문수
 
▲ 군부독재에 맞선 시위대 모습. 비센테나리오 박물관 동영상 자료를 촬영했다. 우리의 6월 항쟁 모습과 흡사하다 ⓒ 오문수
 
소위 '더러운 전쟁(Guerra Sucia)'라 불리는 비델라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3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재판없이 처형됐고 3만여명의 실종자가 국가보안군에 의해 비밀리에 살해당했다.
 
강압통치와 계속되는 경제상황을 이어받은 레오폴도 갈티에리 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영국이 점령하고 있는 포클랜드를 침공했지만 패전했다.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아르헨티나는 약 20억 달러의 전비 지출로 경제는 더욱 악화됐다.
 
 
'아르헨티나 병'... 도덕적 해이의 모습
 
1983년 민정이양이 이뤄져 라울 알폰신 대통령이 집권해 화폐개혁을 했지만 경제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어 들어선 메넴, 델라 루아, 두알데,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행을 안내한 교민 가이드가 '아르헨티나 병'에 대한 예를 제시했다.
 
"아르헨티나는 고등학교까지 학비가 무료이고 사립대학을 제외한 국립대학교는 무료입니다. 예산지출을 줄이기 위해 출산장려금과 연금혜택을 줄이려하자 시위가 심하게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개혁에 대한 저항이 거세게 일어나 시위가 잦은 곳입니다."
 
아르헨티나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추측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묻힌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묘지에 가면 으리으리한 납골당들이 죽 늘어서있다. 1822년 정원을 개조해 만든 납골당에 시신을 모시려면 5억원 정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묻힌 레꼴레따 납골당.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사는 데 1억 2천만원이면 가능한데 납골당에 들어가려면 5억원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죽어서 호텔에 가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오문수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웬만한 아파트 한 채 값이 1억 2천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했다. 부자들이 빈민들을 위해 솔선수범할 때 사회가 통합된다. 죽어서 5억짜리 호텔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이민으로 구성된 나라라서 국가적 연대감이나 애국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군부독재와 정치부재, 경제실정에서 오는 병폐랄 수 있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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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