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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수의 세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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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문수의 세상이야기     오문수의 지식창고 2019.05.14. 18:46 (2019.05.14. 18:46)

【여행】섬 속의 섬...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 '추자도' 사람들

'기르는 어업'과 관광활성화를 통해 성장 기대
▲ 드론으로 촬영한 추자도 모습 ⓒ 이재언
 
"추자도 상공에 헬기가 뜬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의미합니다. 긴급환자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헬기가 뜨거든요"
 
지난주 바람이 심하게 일어나기 직전 추자도에 도착해 황충남씨 집에 여장을 풀기 전 추자도 상공에 헬기가 날아가는 걸 본 황충남씨가 한 말이다. 의료시설이 거의 없고 교통이 불편한 섬에서 긴급한 환자나 사고가 발생하면 위기대처수단으로 헬기가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 떨어진 추자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도다. 추자도에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의 4개 유인도와 직구도, 사수도 등 38개의 무인도서가 모인 섬들로 모두 합치면 42개의 섬이 있다. 흔히 말하는 추자도는 하나의 섬이지만 각각 상하로 나누어져 있다가 1972년에 두 섬을 잇는 다리가 완공돼 하나가 됐다.
 
섬은 섬이다. 추자도를 방문하기 위해 여수에서 완도까지 승용차로 갔다 완도행 배를 타고 도착해 다음날 돌아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닷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때라 큰 배가 들어올 수가 없단다. 하는 수 없어 작은 여객선을 타고 제주항으로 가 밤 8시 20분배를 기다리고 있는 데 저녁 7시 반쯤 결항소식이 들려왔다.
 
제주 동문시장 인근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완도행 배를 타려는데 결항이다. 급히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니 일행과 함께 탈 좌석 3개뿐이다. 광주공항을 거쳐 완도로, 완도에서 다시 여수로 되돌아오는 돌발여정이 됐다. 집에 돌아와 기상상황을 살펴보니 바람이 더 심해졌다. 만약 그 비행기를 못 탔다면 며칠간 제주에서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섬이란 악조건을 딛고 일어선 추자도 사람들
 
▲ 추자항 모습 ⓒ 오문수
 
▲ 추자항 해변에는 "작은작젯길"이 있다. 추자도말인 "작지"는 "작은 자갈"을 뜻한다. 이곳에는 추자도 역사관련 사진들이 해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오문수
 
추자도 사람들은 섬이란 조건 때문에 많은 시련을 당했다. 고려와 조선시대 사람들이 제주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추자도다. 당시 돛단배인 풍선은 바람을 이용해 운항한다. 추자도는 제주로 가는 배들이 항해하기 좋은 순조로운 바람을 기다리는 후풍처(候風處) 역할을 한 섬이었다. 그래서 추자도는 일명 후풍도(候風島)라고 불리기도 했다.
 
고려말 추자도는 출몰하는 왜구들로 인해 몸살을 앓았다. 왜구가 전라도로 침입해 오는 해로는 대마도로부터 동북풍을 타고 연화도와 욕지도, 남해의 미조항이나 순천의 방답 등지에 이르렀다. 추자도는 서해로 왕래하는 길목에 있어 왜구가 침범해 오는 루트다.
 
▲ 추자도수산업협동조합 사무실에 걸린 1964년 당시의 추자도 모습으로 대부분이 초가집이다 ⓒ 오문수
 
▲ 추자도는 고려와 조선시대 돛단배를 타고 제주를 오가던 배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섬이다. 돛단배가 항해하기 위해서는 순조로운 바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추자도는 "후풍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사진 속에 "후풍도식당"이란 간판이 보인다 ⓒ 오문수
 
절해고도인 추자도는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추자도가 조선시대 유배지로 사용된 빈도는 전체 지역 가운데 15위로 섬 지역 가운데는 제주도, 거제도, 흑산도, 진도, 남해에 이어 6위에 해당될 정도로 많았다.
 
 
일본인들의 수탈에 맞서 두 번이나 저항한 추자도민
 
일제강점기에는 해적선이 나타나 총포를 들이대고 부녀자를 강탈하고 재산을 탈취하기도 했다. 부당한 외압에 맞선 저항정신도 있다. 일제강점기 추자도에서는 두 차례의 어민항쟁이 있었다. 1926년 5월 14일 일제의 사주를 받은 추자도어업조합이 천초(우뭇가사리)를 싼 가격에 매수해 비싼 가격에 되팔아 폭리를 취하려하자 예초리 주민 700여 명이 집단으로 저항했다.
 
▲ 추자도민들은 일제의 강압적 수탈정책에 두번이나 항거했다. 사진은 추자교 옆에 세워진 추자도어민대일항쟁기념비 모습이다 ⓒ 오문수
 
▲ 하추자도 대왕산에서 바라다 본 바다 모습 ⓒ 오문수
 
제2차 항쟁은 6년 뒤인 1932년 5월이다. '사와다'라는 일본인이 삼치 유자망으로 추자도 어민의 내수면 어장을 침범해 작업하자 추자어민들이 총궐기에 나섰다. 두 번에 걸친 대일항쟁 추모 기념비는 추자교 입구에 세워져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추자도수산업협동조합
 
1919년에 설립된 추자도수산업협동조합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조합의 판매사업은 선어류를 주종으로 해 겨우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선어류 및 패류와 기타 수산물의 판매는 어선 세력의 취약, 판매업무 미숙, 유통처리 시설미비 등으로 1960년대 말까지 총 1억3천4백만원 미만의 저조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위판장, 제빙, 냉동, 냉장, 급유시설 등이 설치됨에 따라 어선세력이 신장되고 어획량이 증대됐다. 참조기의 원산지는 영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추자도는 국내 참조기와 멸치 어획량 45% 이상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1969년 참조기, 활어, 삼치 등 어장이 형성되어 위판량이 계속 증가해 2천년에는 최고 위판액 200억 원을 달성했다.
 
▲ 9년간 추자도수산업협동조합장직을 역임하고 퇴임한 후 섬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대변하기 위해 전국섬주민협의회장직을 맡은 이정호 회장 모습. ⓒ 오문수
 
▲ 추자도수협공판장에 크기가 80센티쯤 되는 삼치들이 위판되고 있는 모습 ⓒ 오문수
 
현재 추자도 어업현황을 보면 어족자원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1960년대 7천명에 달했던 인구가 1800여명으로 줄었다. 등록된 인구가 1800명이지 실제로 제주에 거주하는 인원을 빼면 훨씬 적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수협조합 한재순 상임이사가 추자도 수산업현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언급을 했다.
 
"유자망 파시 때는 엄청났죠. 옛날 파시 때는 돈이 많이 돌아 흥청망청 했습니다. 해안가 목이 좋은 곳은 평당 800만원까지 하던 곳이 지금은 300만원 밖에 안 해요"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찾아오는 관광섬으로
 
하지만 최근 섬주민들은 희망을 꿈꾼다. 어촌계와 주민들은 추자수협을 중심으로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류에 한정했던 양식을 멍게와 참모자반, 홍합, 참가리비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섬을 찾는 관광객도 해마다 늘고 있다. 2001년 8652명이던 관광객이 꾸준히 늘어나 2018년에는 6만 여명에 달했다.
 
▲ 영화 <나바론요새>에 나오는 절벽을 닮았다고해 붙여진 이름 "나바론 하늘길"로 절벽을 오르내리며 멋진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둘레길이다 ⓒ 이재언
 
▲ 예초리 해안가에 있는 황경한의 묘. 조선시대 신유박해(1801년) 당시 가톨릭 순교자인 황사영(황경한의 부친)이 순교하고 그의 부인 정난주는 당시 1살이 된 아들 황경한을 예초리 해안가에 두고 떠난다. 아들만큼은 죄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모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황경한은 어부에게 의탁되어 성장했고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 오문수
 
추자면에서는 역사와 문화를 가미한 후풍의 길, 신비의 길, 창조의 길, 바람의 길, 모정의 길을 만들고 스토리텔링을 했다. 추자도 관광객은 올레길 탐방, 바다낚시, 성지순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초리에 위치한 황경한의 무덤은 천주교 성지순례 마지막 111코스다. 1997년에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방문하신 곳이기도 하다.
 
'찾아오는 관광어촌, 친환경 양식섬 육성'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추자도의 앞날이 기대된다.
【작성】 오문수 oms114kr@daum.net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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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5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