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이일걸의 지식창고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2021년
2021년 4월
2021년 4월 15일
2021년 4월 8일
2021년 3월
2021년 3월 24일
중국학계의 ‘기자조선론’의 특징과 추진 배경 이론 분석
2021년 3월 17일
2021년 3월 8일
2021년 2월
2021년 2월 25일
2021년 2월 16일
2021년 2월 10일
2021년 1월
2021년 1월 26일
2021년 1월 20일
2021년 1월 12일
2021년 1월 4일
about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광고]
[100 세트 한정] 행운의 2달러 스타노트+네잎클로버 컬렉션 35% 19,800원 12,800원
내서재
추천 : 0
고조선(古朝鮮) 기자 조선(箕子朝鮮) 단군 조선(檀君朝鮮) 동북공정(東北工程)
【역사】
(2021.04.22. 14:12)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론’의 특징과 추진 배경 이론 분석
[스카이데일리 연재] 중국학자들이 주장하는 기자조선론의 세 가지 이론
이전 칼럼에서 중국학계의 주요 서적에 나타난 ‘기자조선론’을 분석해보았다. 중국학자들의 저술에 나타난 ‘기자조선론’의 공통점은 중화주의(中華主義)적 시각에서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학계의의 중원 중심적 시각은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역사적 부산물이다. 중국의 고고학 또한 그들의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지탱하는 이론적 토대로서 전파주의, 핵심부-주변부 이론, 사회진화론 등 세 가지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이론의 원칙이 ‘기자조선론’을 전개하는데도 원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기자조선론’의 특징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자조선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의 허상(虛像)이 아닌 실존의 역사이며, 중국 동북부 문명사에 단초(端初)를 제공하는 점이다. 둘째, 고조선(단군조선)을 부정하고 ‘기자조선’을 고조선의 시작으로 보며, 오히려 고조선은 후대에 중국인이 건립한 지방정권으로 중화(中華)를 표방했다. 따라서 한반도 북부 및 요동의 역사는 기자조선 - 위만조선 - 고구려사 - 발해사로 이어진다. 셋째, 상말주초에 기자는 조선으로 도주하여 평양에 정권을 수립하여 중원문명을 전파하였다. 넷째, 고조선의 특징인 비파형청동검문화와 고인돌 문화를 북방초원문화로 인식하였으며, 요서의 ‘기후국’이 요동롤 이동하여 ‘조선후국’으로 개칭하였는데, 비파형청동검문화는 ‘조선후국’의 문화라고 하였다. 다섯째, 요서설(遼西說)의 ‘기자동천론’은 기자는 중국동북지역을 문명화시킨 선진문명의 전파자이며, ‘군자국’을 만들었다. 여섯째, 연(燕)과 조선의 경계인 만번한을 압록강 하류로 비정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학자들의 ‘기자조선론’ 주장의 목적은 서기전 24세기에 나타난 ‘고조선(단군조선)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인 홍산문화(세칭 요하문명)를 자기 문화를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의 표출이며, 간도영유권 문제로 인한 영토분쟁지인 만주지역의 영토를 차지할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이다. 이와 같은 증거로는 2004년 8월 방한했던 중국외교부 부부장인 우다웨이(武大偉)가 우리 정부 관료들에게 한 말이다. “한국에서 간도가 조선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였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역사시대는 서기전 841년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 시작인 서기전 24세기에 대응하기 위해 ‘중원문명탐원공정’과 ‘하상주단대공정’을 실시하여 그들의 역사시기를 끌어 올렸지만, 천년이 부족하였다. 중국은 1920년대 고힐강이 주동이 되어, 전현동, 호적 등과 벌인 ‘고사부정론’에 의거하여 은상(殷商) 이전의 역사를 부정하여 역사시대가 아닌 석기 시대라고 까지 비유하였다. 더구나 은상(殷商)은 동이계의 왕조이다. 엄밀히 따지면 주(周)의 공화 원년인 서기전 841년이 사기(史記)의 12제후 연표가 시작되는 해를 가리킨다.
 
따라서 현 중국학계가 ‘고조선(단군조선)’을 부정하고 서기전 12세기에 나타나는 허구의 ‘기자조선’을 우리 한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망발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기에 우리 학계도 일제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 기년을 확립할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학계가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 기년이 혼란스러운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더불어 중국학계가 인식하고 있는 고조선(단군조선)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중국학계도 ‘고조선은 단군조선이며, 한국사의 시작이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주류가 아니며, 고조선에 그들을 포함시키지 않는 조선과 한국학계의 관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중국은 1950년대의 중학교 교과서부터 1970년대까지 세계사 고등학교 교과서와 대학의 역사학과 교재들은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 세 정권을 조선사의 범주 안에 집어넣어 논술하였다. 그리고 현 중국 학계는 1949년 중공정부가 수립 전까지 이 방면의 연구는 보잘 것 없었고, 정부수립 이후에도 당시 국제환경의 영향을 받아 정상적인 학술연구 방향에서 벗어난 채 모든 연구가 기자조선, 위만조선, 한사군, 삼국시대의 신라, 고구려, 백제 등 현재의 조선민족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표준형식이 되었다. 예를 들면 중국 고대 왕조인 漢 , 隋, 唐 등이 고대 조선을 “침략”한 것에 대한 비판·검토하는 종류의 연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대만(臺灣)의 학자들인 동작빈(董作賓), 이광도(李光濤), 왕 의(王 儀), 유가구(劉家駒) 등이 출판한 저서에서도 중국 대륙 학자의 관점과 비슷하였으며,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와 같은 국가와 민족을 한국사의 체계 안에 넣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변하여, 1985년 손의학(孫義學)의 『세계중세기사』에서 고구려를 요동과 압록강 유역에서 건립된 고대 정권이라 하였으며, 1977년 인민출판사의 『세계통사』 교재도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구려를 중국 동북방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처리하고, 수, 당 왕조의 고구려 정벌한 것을 통일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의 소수학자들도 고조선을 조선, 한국사의 시작이었고, 조선의 고대민족국가라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학계의 고구려와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즉 단군은 존재하지 않으며, 고조선족은 중국 고대 역사의 하나의 지방 민족정권이었으며, 기자는 고조선에 들어가 고조선의 주류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것도 중앙정권과 지방정권의 모순이 격화된 산물로, 秦 통일 이후 이어진 통일과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및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두 가지 기본관점은, 첫째 기자조선은 선진시기 분봉제(分封制) 체제하의 지방 제후국이며, 위만조선은 서한 초기 지방 왕국이었다. 고구려는 소수민족 지방 왕국이며 이들의 당시 강역은 중국의 영토이다. 둘째,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기본 강역과 고구려의 일부 옛터는 신라, 고려, 조선의 발전으로 점차 한반도의 국가 판도에 들어갔다. 이것이 역사의 계승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역사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55개 소수민족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두되어진 것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이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은 백수이(白壽彛)가 1951년에 처음 제기하였고, 1959년에 조화부(趙華富)가 다시 제기하면서 한족이 세운 왕조와 그 이외의 민족 간의 관계는 ‘중국 국내’의 문제이고 ‘국외’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손조민(孫祚民)의 반론을 제기하였으며, 문화혁명으로 인해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대한 논쟁이 중단되었다가 1979년 마수천(馬壽千)에 의해 다시 논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1980년대 3차의 학술토론회를 통해 중국은 진한(秦漢)이래 통일적 다민족국가였다는 역사를 전제로 하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중국은 한족(漢族) 중심의 민족형성이론으로는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의 현 상태의 민족문제 해결이 불가능함을 인식하였으며, 한족과 만리장성을 경계로 나누어진 이민족인 북위, 요, 금, 원, 청은 만리장성 이북 지역에서 발흥하여 관내로 진입하여 중원일대를 통치하였다. 따라서 이민족은 대부분 동이계 민족으로서 오히려 우리 민족과는 족원(族源)이 가까운 민족이며 이들 민족을 제외하고서는 중국의 역사적 발전을 설명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또한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등소평이 경제개혁을 제안한 후 경제발전이 중국의 최우선과제였으며, 1980년대 중국이 당면한 국내 현안은 경제발전과 민족문제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대두되어진 것이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이다. 통일적 다민족국가의 관계는 일반적 민족관계 형태인 연합적 관계나 연방적 관계 보다는 한층 더 발전된 관계이며, 점진적 민족융합의 방법으로 여러 민족의 “雜居”정책과 “通婚” 및 “공동언어 사용”을 통해 개별 민족의 민족의식을 점진적으로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적 다민족국가” 이론은 중국의 소수민족을 하나의 중화민족으로 융합을 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임을 알 수 있다.
 
결국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를 공고히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즉, 변강지역의 안전, 사회발전의 평준화, 종합적인 국력 및 국민소질의 제고(提高)를 위해서는 변강의 내지화(內地化)가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의거 중국정부는 동북지역의 문제점을 분석하여 동북공정을 추진하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중원지역과 전혀 다른 동북의 역사와 문화였으며, 간도분쟁 발발의 잠재성이었다. 특히 발해, 고구려 이전의 역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고조선(단군조선)의 문제는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고조선은 서기전 24세기에서 건국된 역사와 광활한 만주 대륙에 걸친 영역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비록 서기전 12세기에 나타나는 ‘기자’와 ‘기자조선’이라는 존재는 이미 중국역사서에 왜곡되어 윤색시킨 역사적 기록이 있기에 이를 이용하여 고조선(단군조선)을 부정하기 위해 ‘기자’와 ‘기자조선’의 문제와 관련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이 체계화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을 한민족의 고대사인 고조선(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과 관련시켜 추진하는 목적을 네 개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북공정을 추진하기 위해 조작된 기본이론이다. 이와 같은 논리로써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성을 중국사와 연계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역사상 기록된 모든 자료를 발굴, 인용하여 이들 국가가 우리 민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중국의 변방 약소민족 정권임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둘째, 통일한국 이후 반드시 제기되는 간도분쟁의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논리로써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간도지역이 애초부터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거주하는 조선족의 동요를 막으려는 것이다.
 
셋째,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은 간도지역이 존재했던 국가들의 족원(族源)을 왜곡시키고 있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족은 대부분 한족으로 동화되어 오늘날의 한국민족과는 상관이 없는 종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손진기의 저서인 “동북민족원류”에서 주장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북공정이 추진된 이후 나타난 것은 고조선의 ‘기자동래설’과 “일주서(逸周書)의 ‘고이(高夷)를 고구려 선인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귀속시키기 위해 고구려의 족원을 한족의 후예로 설정하여 한국사와 단절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덕산(李德山)은 ’동북변강사의 연구‘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다른 주변 국가와 민족을 서로 관련지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의 기타 변강지구와 서로 비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동북사의 독특한 연구방법으로 동북사의 기본 특징을 찾아낼 수 없다. 따라서 독특한 연구 방법을 버리고 동북고민족과 중원내지의 고민족을 특별히 동이족계 가운데 여러 종족과 연계하여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덕산의 주장은 동북의 민족과 중원의 민족을 동이족으로 간주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결국 북방지역의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시키려는 것이다.
 
넷째, 동북공정의 전략에 의해 출간되는 대부분의 저서들은 한결같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에 입각하여 북방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된 이론에 의해 반복 기술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목적은 이 지역에 대해 역사적으로 중국사였음을 문헌으로 남겨 후대에 증거로 삼자는 것이다.
 
결국 중국학계의 ‘기자조선론’의 추진 배경 이론에는 전파주의, 핵심부-주변부 이론, 사회진화론을 토대로 삼고,‘통일적 다민족 국가이론’이라는 그들만의 조작이론에 근거하여 이웃 국가의 역사를 왜곡하고 영토를 빼앗으려는 패권적 문화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고조선(古朝鮮) 기자 조선(箕子朝鮮) 단군 조선(檀君朝鮮) 동북공정(東北工程)
【역사】 이일걸(蘇山)의 우리 땅 간도 대륙
• 고조선(단군조선)의 건국 기원(서기전 24세기) 불신론의 실체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론’의 특징과 추진 배경 이론 분석
• 중국학계의 기자조선의 진실에 대한 왜곡 실상 (Ⅱ)
【작성】 이일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광고]
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로그인 후 구독 가능
구독자수 : 0
▣ 정보 :
역사 (보통)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 참조정보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 참조정보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