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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의 운동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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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3.12.06. 23:06) 
◈ 일제강점기 조선의 운동선수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에는 개별 종목마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많았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는 비록 13명으로 적지만 많은 종목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있었다. 종합 월간지 《동광》은 1925년 5월 민족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수양동우회)의 기관지로 경성에서 발행된 잡지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선에는 개별 종목마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많았다. 올림픽에 나간 선수는 비록 13명으로 적지만 많은 종목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있었다. 종합 월간지 《동광》은 1925년 5월 민족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기관지로 경성에서 발행된 잡지이다. 도산 안창호(1878 ~1938) 선생이 1913년 미국에서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지부가 1922년 경성에서 결성되고 평양의 단체와 통합하면서 1926년 1월 수양동우회로 통합되었다.
 
잡지 발행인은 주요한(朱耀翰) 선생이고, 잡지의 이름은 김여식(金麗植)이 지었다. 필진에는 춘원 이광수, 주요한, 박현환, 김윤경, 이윤재, 최남선, 안확, 황의돈, 장도빈, 권덕규, 손진태, 이능화 등이 참여했다. 《동광》은 다양한 논설과 문예물을 실었고, 과학의 대중화, 역사, 한글의 연구, 건전 상식, 해외 정세, 농업, 교육 기사 등을 게재하여 사람들에게 호응이 높았다. 《동광》은 일시 휴간도 하였으나 꾸준하게 발행하고 제호도 바꿔 《새벽》이 1961년 1월까지 총 52호가 발간되었다.
 
 
'동광' 제15호, 1927년 7월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동광》 편집진은 1931년 봄에 재미있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조선이 낳은 10대 운동가는 누구일까?”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14명의 선정위원을 구성하여 개별 선수에게 표를 주고, 결과는 《동광》 제29호(1931.12.27. 발행)에 발표했다. 1위는 야구의 천재로 불리는 송운(松雲) 이영민(1905 ~1954)이 14표를 받았고. 마라톤의 김은배(13표), 여자정구의 김복림(11표), 권투의 황을수(10표). 투원반의 유약한(9표), 여자육상 단거리의 현금녀(9표). 야구의 함용화(6표), 투창의 노승현(5표), 축구의 김원겸(5표), 빙상의 최재은(4표), 정구의 장원진(3표), 씨름의 김윤근(2표), 농구의 이혜택(2표), 럭비의 윤명선(2표), 럭비의 엄동원(2표), 육상의 김명수(2표), 유도의 강락원(2표) 순이었다.
 
이영민은 조선의 홈런왕으로 축구도 잘하고, 육상도 잘하는 만능 운동선수였다. 1926년 개장한 경성운동장에서 1928년 6월 8일 1호 홈런을 기록했다. 이영민은 1934년 11월 일본 야구올스타로 뽑혀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과 도쿄에서 경기도 하였다. 1948년 런던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첫 승을 달성하고, 조선야구협회 발기 총회를 주도하고 오늘날의 청룡기야구대회를 만들었다. 1958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이영민 타격상’을 제정해 전국 고교야구대회 규정을 다 채운 선수 중 타율이 높은 선수에게 상을 주었다. 이 상 수상자는 백인천, 이광환, 이만수, 최정, 김현수, 김민석 등이 있다.
 
김은배(金銀培, 1907~1980년) 선수는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마라톤에 참가했다. 당시 14개국 28명이 참가한 대회에 일본 참가선수는 3명이었다. 츠다 세이치로 선수가 2시간 35분 42초로 5위, 김은배 선수는 2시간 37분 28초로 6위, 권태하(權泰夏, 1906-1971년) 선수는 2시간 42분 52초로 9위를 했다.
 
권태하(權泰夏, 1906~1971) 선수는 올림픽 주경기장에 일찍 들어왔으나 트랙 바닥에 표시된 하얀 선을 결승선으로 착각하고 골인 지점 10m 앞에서 쓰러졌다. 이 장면을 보고 놀란 관중들은 큰 함성소리를 계속 질러 권태하 선수를 응원했다. 권 선수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비틀비틀 거리며 골인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10m와 마라토너의 10m는 차원이 다르다. 이날 최선을 다한 권 선수는 결승점을 지나 쓰러진 후 3시간이 지나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권태하, 츠다, 김은배 선수 (1932년 LA올림픽 마라톤)
 
 
100여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육상연맹 기록을 보면 19번에 권태하(明大出) 22번에 손기정(양정고보), 24번 유장춘(柳長春, 경성), 26번 오동우(吳東祐, 조선철도) 선수가 우승했다고 기록과 소속이 적혀있다. 권태하의 소속은 明大出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명치대(明治大) 출신이란 뜻이다.
 
정상희(鄭商熙, 1907-1981년)선수는 육상 800m 선수였다. 손기정 선수의 양정고보 선배로 후배인 손기정 선수의 뛰어난 실력을 간파하고는 손기정, 남승룡 선수에게 선진 마라톤기술을 전수했다. 정상희와 권태하는 충북 청주 출신으로 1927년에 만나 깊게 교유했다. 정상희는 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한 모금행사를 계획하고 저명인사 및 체육계의 후원을 이끌어 내며 조선인의 승리를 꿈꿨다. 그는 1935년 명치대를 졸업한 후 일본 외무성에 취직해 선수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독일로 출발 하던 때인 12월에 경성으로 와서 조선육상경기협회 임원 개편에 참여해 조선 대의원에 피선되었다. 그는 독일에서 개최된 동계 하계 올림픽에 모두 간여하여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본 신문에 글을 투고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오다 미키호 아사히 신문 체육부장을 설득해 독일 출발 2주전에 쓰다 마라톤 코치를 해임시킨다. 그는 1936년 6월 조선육상경기협회 명예비서 자격으로 공식 임원단의 일원으로 파견된다. 정상희와 권태하는 직장인 조선총독부와 만주철도에 휴가를 제출하고 베를린에 건너가 손기정과 남승룡을 지원한다.
 
그런데 일본 육상연맹이 예정에 없던 최종 선발전을 치르게 하여 7월 22일 경기를 하였다. 시합 도중에 시와쿠 선수가 샛길로 뛰는 것을 적발하여 엄중 항의하였다. 정상희는 광복 후에 삼성전자 사장, 삼성물산 사장, 대한체육회 이사장,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역임하면서 후배 운동선수들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격려했다.
 
조선에서는 옛날부터 얼음 위에서 썰매타기 등 다양한 놀이를 많이 했다. 나라에서는 한강이 얼면 얼음을 잘라 동빙고 서빙고에 보존했다. 특히 유교 제사가 많아 여름철에 음식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얼음이 많이 저장했다. 1900년대에 들어와서 얼음을 파는 장빙업자들이 많이 생겼다. 1894년 겨울 고종은 경복궁 향원정에 외국인들을 초대하여 빙족회를 열었다. 빙족회는 당시 스케이트를 타고 즐기는 모임으로 조산 사람들은 ‘얼음 신발놀이’로 불렸다. 동아일보 신문에는 1904년 인천에 사는 현동순(玄東淳)이 선교사 찔레트가 미국에 돌아갈 때 내놓은 것을 구해 얼음을 탔다고 했다. 1923년에 대동강 빙상대회가 열렸고, 이후 압록강 빙상대회가 개최되었다.
 
 
1930년대 한강 풍경(사진: 동아일보)
 
 
제4회 독일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은 높이 2,962m의 추크슈피체에서 1936년 2월 6일부터 16일까지 28개국 646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당시 일본 선수단은 34명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7명 중 조선인은 김정연(1910~1932), 이성덕(1911~1968), 장우식 3명이었다. 김정연 선수는 평남 강서 출신으로 평양고보를 나와 메이지대학에 유학하여 1935년 제5회 전일본빙상대회에서 5,000m와 10,000m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정연 선수는 얼음판의 마라톤이라는 10,000m에서 18분 2초 7로 13위를 차지했다. 은퇴 후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등 빙상 발전을 위해 지도자, 행정가로 활약했다. ​故 김정연 선수의 유족은 유품 345점을 국립체육박물관에 기증했다.
 
 
1932년 LA올림픽에 황을수 선수
 
 
조선에 권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광무대 단성사의 주인이던 박승필이 ‘유각권(柔角拳)구락부’를 조직했고, 이를 통해 흥행대회를 연 것이다. 유각권이란, 유술(유도), 각저(씨름), 권투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1916년 미국 선교사였던 질레트가 권투글러브를 가지고 들어와 널리 알려졌다. 1922년 YMCA에서 소개되었고, 권투부를 만든 것은 1924년의 일이다. 1927년 YMCA권투부가 정식으로 생겨났고 당시 수련생은 30여 명이었다. 최초의 권투대회는 1928년 6월에 YMCA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한 제1회 전 조선권투선수권대회다.
 
특히 YMCA와 일본에서 권투를 배운 성의경에 의해 1929년 안국동 사거리에 ‘조선권투구락부’를 만들고 자비로 선수들을 육성해 YMCA와 더불어 권투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복싱 종목에서는 1932년 LA 올림픽에 황을수 선수가 라이트급으로 출전했고,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는 이규환 선수가 웰터급으로 참가했다. 조선이 낳은 천재 황을수 권투선수는 일본에 건너온 순천 출신 서정권(1912~1980) 선수를 지도하여 서정권은 일본을 석권하고 미국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하며 WBC밴터급 6위까지 진출했다.
 
일제강점기 올림픽에 출전한 조선 선수로는 1932년 LA 하계 마라톤 종목에 김은배, 권태하, 복싱 황을수 선수가 참가했다. 1936년 독일 동계 올림픽에는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이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 참가하고, 베를린 하계대회에 손기정, 남승룡, 농구 종목에 이성구, 장이진, 염은현, 복싱에 이규환 선수가 참가했다.
 
이성구(李性求, 1911~2002)는 천안 출생으로 1928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농구를 시작하였다. 1930년 연희전문에 진학하여 농구부를 창설하고 주장 선수로 활약하였다. 1936년 전일본농구선수권대회를 제패하여 장이진(張利鎭), 염은현(廉殷鉉)과 함께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였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청 통계처장으로 일하였다. 아시아농구연맹(ABC) 창립을 주도하여 부회장(1958)에 피선되고, 1988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총재로 취임했다. 2017년 6월 21일 연세대 체육관에 이성구 부조상이 제막되었다.
 
 
이성구(李性求, 1911~2002)
 
 
유도 선수 이제황(李齊晃, 1910~1981)은 서울 후암동에서 태어난 한국 유도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중앙기독청년회에 입문하여 장권 선생으로부터 배우고 1932년 초단이 되었다. 몽양 여운형의 영향을 받아 독립투쟁에 참여하였다. 베이징에 유학하여 동양철학을 배우면서 비밀 연락책으로 활동했다. 1948년 대한유도회 이사와 유도연구원장을 지냈다. 1953년 대한유도학교(현재 용인대학교) 학감을 맡아 학교의 기틀을 세우고, 유도를 알리는 저술 활동을 하였다. 유도학교의 교훈인 도의상마 욕이위인(道義相磨 欲而爲人)를 제정해 제자들에게 “무도 교육을 통해 타인을 이롭게 하고,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둔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무도인의 자세”라고 가르쳤다. 1956년에 대한유도회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유도회 발전에 공헌했다.
 
정상윤(丁相允, 1908~1992)은 유명한 농구 선수로 1933년부터 지도자로 나섰다. 조선체육회의 규정, 정관, 규약을 만들고, 남북체육단일 팀의 한국 대표를 지냈다. 대한농구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 농구의 태두(泰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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