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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山西省) 핑야오고성(平遥古城) # 조왕군 # 조왕신 # 핑야오 성황묘
【문화】
(2024.03.21. 09:43) 
◈ 불을 다루는 조왕신, 집안 재물 관장하는 재물신으로 여겨
핑야오고성 조군묘(灶君廟)
핑야오고성 성황묘 침전을 구경하고 나와 후원으로 걸어가니 동서 양쪽에 부엌신을 모시는 조군전(灶君殿)과 재신전(财神殿)이 있었다. 오후 5시 30분 관람 마감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와 빠르게 전각을 돌아보고 사진 촬영을 했다.
핑야오고성 조군묘(灶君廟)
 
 
핑야오고성 성황묘 침전을 구경하고 나와 후원으로 걸어가니 동서 양쪽에 부엌신을 모시는 조군전(灶君殿)과 재신전(财神殿)이 있었다. 오후 5시 30분 관람 마감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와 빠르게 전각을 돌아보고 사진 촬영을 했다.
 
 
▲ 조군전(灶君殿)
 
 
우리나라에서는 조왕을 부뚜막신, 조왕할머니로 불렀다. 옛날 돌아가신 장모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조왕 단지에 정화수를 갈아주고, 초를 밝혀 밥을 짓고 조왕님께 정성껏 기도하였다.
 
필자는 장모님께 “조왕님께 무슨 기도를 올리세요?” 하고 물어보면, 장모님은 “우리 막내 건강하라고 기도했어!”라고 말했다. 다음날 동네 아주머니에게 매일 어떤 기도를 하는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대부분 가족의 무병장수를 빌고, 동네의 안정을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장모가 기상하는 시간 새벽 2~3시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여 조금 더 누워계시다가 나가시라고 권유해도 장모님은 어둠 속에서 일어나 불을 밝히고 일을 했다. 농촌에서는 새벽에 일찍 하루 일을 시작하는데, 그것은 그 시간이 만물이 생동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정화수를 올린 조왕그릇(조왕중발)(사진:한국무속신앙사전)
 
 
우리나라에서도 조왕에 대한 신앙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는 보여주는 자료가 무척 많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는 조왕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조왕을 조신(竈神), 취사명(醉司命), 동주사명(東廚司命), 사명조군(司命竈君), 호택천존(護宅天尊), 정복신군(定福神君), 조왕보살, 조군(竈君) 등 다양하게 불렀다. 호칭에 붙어 있는 신, 천존, 보살, 왕, 군, 사명(司命)은 조왕의 높은 위치를 뜻한다. 민간에서는 조왕신을 조왕군(灶王君), 조왕 할아버지(竈王爺)라고 부르며 귀하게 모셨다.
 
조왕군(灶王君)의 명칭은 전국시대(기원전 403~기원전 221년)에 12개 나라에서 활약한 책사들의 문장을 전한의 학자 유향(劉向, BC 77~BC 6)이 모아 33권으로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에 처음 등장한다.
 
《춘추》가 역사(歷史)를 기록한 책인 반면에 《전국책》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문헌이다. 사마천은 이 자료를 《史記》에 반영하며 가치를 높이 인정했다. 후대에 당송 팔대가 한유, 유종원, 구양수, 왕안석, 증공, 소순, 소식, 소철 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전국책》을 한학(漢學) 교재로 사용했다.
 
 
▲ 《전국책(戰國策)》 저자 유향(劉向, BC 77~BC 6)
 
 
조왕 호칭 가운데 동주사명(東廚司命)은 ‘조왕신’과 ‘사명’을 같은 신으로 보고 있지만, 원래 조왕신과 사명신은 성격이 전혀 다른 별개의 신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조왕신이 사명조군, 동주사명이 되어 버렸다. 조왕신 신상에는 “司命神位 九天東廚司命張公定福君之神位”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편, 조왕을 술 취한 사령(醉司命)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왕신을 하늘로 올려보낼 때 술 찌꺼기를 아궁이 위에 붙여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九天司命灶君(灶王爺、灶神)
 
 
송나라 맹원로(孟元老)가 저술한 《东京梦华录·十二月(동경몽화록·12월)》에 보면 “송나라 사람들은 12월 24일을 해가 바뀌는 교년(交年)으로 여겼다. 이날이 되면 사람들은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한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은 모두 돈 종이를 태우고, 불경을 외우고, 고향을 찾아 새해를 맞이했다. 도회지 사람들은 승려와 도사들을 청해 밤늦게까지 경전을 읽게 하였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술지게미로 아궁이에 바르는 것을 취사명이라고 했다.”
 
【원문】 宋 孟元老 《东京梦华录·十二月》:“二十四日交年,都人至夜请僧道看经……帖灶马於灶上,以酒糟涂抹灶门,谓之醉司命。
 
 
▲ 别岁书法作品(사진:위키백과)
 
 
송나라 오영이 지은 《别岁诗》에는 “조왕은 사명을 취하게 만들고, 문에 종이를 바르고 종규 그림을 그렸다. 다소 비통(伤怀)하고 속이 상한(傷心) 일이 있더라도, 계곡의 물과 구름은 梦归의 시처럼 함께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음력 12월 24일을 '취사명'이라고 부른다.”
 
【원문】 宋 吴泳 《别岁诗》:“灶涂醉司命,门贴画 钟馗 。”后因称农历十二月二十四日为“醉司命”。
 
别岁原文
 
故乡於此时,酿熟岁猪肥。
骨董羹延客,屠酥酒饷儿。
灶涂醉司命,门帖画钟馗。
多少伤怀事,溪云带梦归。
 
 
청나라 시인인 진배지(陣裵之, 1794~1826)는 자가 맹해(孟楷), 호는 소운(小雲, 별호는 낭옥산인(朗玉山人)으로 전당(錢塘) 지금의 항저우 사람이다. 시인은 《향원루억어(香畹楼忆语)》에서 “취사명(醉司命)의 밤이 되면, 찬 바람 불어오고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새날이 찾아온다.”라고 시를 읊었다.
 
【원문】 ” 清 陈裴之 《香畹楼忆语》:“醉司命之夕,风雪遄归。”
 
 
▲ 조군묘(灶君廟) 앞마당
 
 
조왕의 성별을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조왕신의 유래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염제(炎帝), 황제(黃帝), 오(奧), 축융(祝融), 괄(髺), 별신(星神), 송무기(宋無忌), 소길리(蘇吉利), 선(禪), 장단(張單), 외(隗), 장자곽(張子郭) 등으로 남자 성이 많이 등장한다.
 
현재 중국의 조왕신 그림을 보면 각진 얼굴, 큰 귀에 긴 수염을 한 외모이고, 한대(漢代) 때의 문관 관복과 관모를 쓴 모습이거나 도교 도사들이 입는 저고리와 관을 쓰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남성의 조왕신을 모시고 조왕청 염불을 따로 하고 있다.
 
 
▲ 밀양 표충사 대원암 조왕탱(사진:위키백과)
 
 
밀양 표충사 대원암 조왕탱(密陽 表忠寺 大願庵 竈王幀)은 대한제국 광무 7년(1903년)에 제작된 불화로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충남 서산 부춘산의 대표적인 사찰 옥천암은 바위에서 옥 같은 물이 흘러나온다고 하여 옥천암이라 하였다. 옥천암의 조왕삼존도는 조선 후기 작품으로 중앙에 조왕신이 있고, 좌측에 땔감을 담당하는 담시역사(擔柴力士), 우측에는 공양간을 담당하는 조식취모(造食炊母)가 있는 보기 드문 귀한 삼존도이다.
 
 
▲ 서산 옥천암 조왕삼존도(사진:CPN문화재TV)
 
 
1976년 4월에 필자는 남부 지방 사찰순례를 하면서 경남 사천시 봉명산 다솔사(多率寺)를 방문했다. 교통이 불편해 어렵게 도착한 다솔사 공양간은 소나무 솔가지가 타는 연기로 맵고, 부엌은 온통 시꺼멓게 그을리고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부엌이 무척 어두웠다. 그런데 한순간 환한 빛이 들어와 조왕님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다.
 
절에는 공양주 보살님이 혼자서 절을 지키고 있었다. 보살님은 때가 지나 식은 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미안해하면서 돌아갈 때 먹으라고 맛있는 누룽지와 과일을 꺼내주셨다. 지금도 다솔사 공양간의 추억이 생생하다.
 
 
▲ 서울 흥천사 조왕도(사진: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중국에서는 조왕신이 불을 다루는 일을 맡고 있어 집안의 재복을 관장하는 재물신(財物神)이라고도 여겼다. 성황묘 안에 동서 양쪽으로 조군전과 재신전이 같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옛사람들은 마루에 성주신, 안방에 삼신, 부엌에 조왕신, 장독에 철륭신(노적지신, 天龍神), 측간에 측신이 있다고 믿었다.
 
 
▲ 중국 조왕신(사진:위키백과)
 
 
옛사람들은 집안일 하다가 아무리 피곤해도 부뚜막에 걸터앉지 않았다. 그것은 소중한 먹거리를 만들고, 조왕신이 머무는 신성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댁으로 신행 가려고 친정집을 떠날 때면, 친정어머니가 결혼한 딸을 데리고 부엌에 가서 솥뚜껑을 세 번 들썩거려 소리를 내게 했다. 그것은 조왕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풍습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풍습이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 재신전(財神殿) 재물신
 
 
사찰의 공양간에는 조왕탱화를 모시거나, 나무조왕대신(南無竈王大神)이라는 글을 써서 모셨다. 동진(東晉) 시기 문학가 갈홍(葛洪, 283~343)이 쓴 도교 경전 《포박자(袍朴子)》에 보면 “매월 그믐밤 조왕신이 옥황상제에게 죄를 고해, 죄가 많은 사람은 수명을 300일 감하고 가벼운 자는 3일을 감한다.”라고 했다.
 
사람들은 조왕신이 하늘에 올라가 인간의 죄를 알린다고 생각해 그믐밤 날 특히 말을 조심하고 조왕신이 옥황상제에게 말을 하지 못하도록 부뚜막에 맛있는 엿을 단단하고 크게 붙여 놓기도 했다. 이런 풍속은 미신이라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 샤먼의 기도(장소: 몽골 타왕복드산 그레이트 오보)
 
 
우리나라에서는 고유한 전래 풍습이 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신(迷信)이라는 편견 속에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에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온 사람들이 아파트에 성주단지를 다시 모시고, 시골과 산골에서는 당제를 부활하고, 집 외부 천장에 음나무를 놓아 집안에 액운이 침입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최근 몇 년간 몽골 여행을 다녀오면서 몽골인들이 왜 점을 자주 보는지 알게 되었다. 몽골과 중국 국경 가까이 있는 타왕복드산 프레지던트 오보에서 몽골 부랴트 샤먼이 신과 대화를 나누고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샤먼은 기도를 시작할 때 순간적으로 신이 들어오고 기도를 마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핑야오고성 성황묘의 조군전(灶君殿)과 재신전(财神殿)를 관람하면서, 도교 사원 묘중묘(廟中廟)의 이중 형태 속에 꼭꼭 숨어있는 민속과 옛사람들의 놀라운 지혜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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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시성(山西省) 핑야오고성(平遥古城) # 조왕군 # 조왕신 # 핑야오 성황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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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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