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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녀춘향수절가 ◈

◇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하 ◇

해설목차  1권  2권 미상
시대 : 조선 말기
1
이때 춘향이 하릴없어 자던 침방으로 들어가서
 
2
“향단아. 주렴 걷고 안석 밑에 베개 놓고 문 닫아라. 도련님을 생시는 만나보기 망연하니 잠이나 들면 꿈에 만나 보자. 예로부터 이르기를 꿈에 와 보이는 님은 신(信)이 없다고 일렀건만 답답히 그릴 진댄 꿈 아니면 어이 보리. 꿈아 꿈아. 네 오너라. 수심 첩첩 한이 되어 몽불성에 어이하랴.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인간 이별 만사(萬事) 중에 독수공방 어이하리. 상사불견 나의 심경 그 뉘라서 알아 주리. 미친 마음 이렁저렁 흐트러진 근심 후려쳐 다 버리고 자나 누우나 먹고 깨나 님 못 보아 가슴 답답 어린 양기(陽氣) 고운 소리 귀에 쟁쟁. 보고지고 보고지고 님의 얼굴 보고지고. 듣고지고 듣고지고 님의 소리 듣고지고. 전생에 무슨 원수로 우리 둘이 생겨나서 그린상사 한데 만나 잊지 말자 처음 맹세, 죽지 말고 한데 있어 백년기약 맺은 맹세 천금주옥(千金珠玉) 꿈 밖이요 세사일관 관계하랴. 근원 흘러 물이 되고 깊고 깊고 다시 깊고 사랑 모여 뫼가 되어 높고 높고 다시 높아 끊어질 줄 모르거든 무너질 줄 어이 아리. 귀신이 작해하고 조물이 시기로다. 일조(一朝) 낭군 이별하니 어느 날에 만나 보리. 천수만한(千愁萬恨) 가득하여 끝끝내 느끼워라. 옥안운빈 공로한이 일월이 무정이라. 오동추야 달 밝은 밤은 어이 그리 더디 새며 녹음방초 비낀 곳에 해는 어이 더디 간고. 이 상사 알으시면 님도 나를 그릴련만 독수공방 홀로 누워 다만 한숨 벗이 되고 구곡간장 굽이 썩어 솟아나니 눈물이라. 눈물 모여 바다 되고 한숨지어 청풍 되면 일엽주 물어 타고 한양낭군 찾으련만 어이 그리 못 보는고. 우수명월(憂愁明月) 달 밝은 때 설심조군 느끼오니 소연(昭然)한 꿈이로다. 현야월 두우성은 님 계신 곳 비치련만 심중에 앉은 수심 나 혼자뿐이로다. 야색(夜色) 창망한데 경경(耿耿)이 비치는 게 창외(窓外)의 형화로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앉았은들 님이 올까 누웠은들 잠이 오랴. 님도 잠도 아니온다. 이 일을 어이하리. 아마도 원수로다. 흥진비래 고진감래 예로부터 있건마는 기다림도 적지 않고 그린 지도 오래건만 일촌간장(一寸肝腸) 굽이굽이 맺힌 한을 님 아니면 뉘라 풀꼬. 명천(明天)은 하감하사 수이 보게 하옵소서. 미진인정(未盡人情) 다시 만나 백발이 다 진(盡)토록 이별없이 살고지고. 묻노라 녹수청산 우리 님 초췌행색 애연히 일별(一別) 후에 소식조차 돈절하다. 인비목석이어든 님도 응당 느끼리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3
앙천자탄(仰天自嘆)에 세월을 보내는데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제 숙소마다 잠 못 이뤄 보고지고 나의 사랑 보고지고. 주야불망(晝夜不忘)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린 마음 속히 만나 풀으리라. 일구월심(日久月心) 굳게 먹고 등과 외방(外方) 바라더라.
 
4
이때 수삭(數朔)만에 신관(新官) 사또 났으되자하골 변학도(卞學道)라 하는 양반이 오는데 문필도 유여하고 인물 풍채 활달하고 풍류 속에 달통하여 외입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 괴퍅한 중에 사증을 겸하여 혹시 실덕(失德)도 하고 오결하는 일이 간다. 고로 세상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이라 하것다. 신연하인 하인 현신할 제
 
5
“사령 등 현신이요.”
 
6
“이방이요.”
 
7
“감상이요.”
 
8
“수배요.”
 
9
“이방 부르라.”
 
10
“이방이요.”
 
11
“그새 너희 골에 일이나 없느냐.”
 
12
“예. 아직 무고(無故)합니다.”
 
13
“네 골 관노(官奴)가 삼남에 제일이라지.”
 
14
“예. 부림직하옵니다.”
 
15
“또 네 골에 춘향이란 계집이 매우 색(色)이라지.”
 
16
“예.”
 
17
“잘 있냐.”
 
18
“무고하옵니다.”
 
19
“남원이 예서 몇 린고.”
 
20
“육백 삽십 리로소이다.”
 
21
마음이 바쁜지라
 
22
“급히 치행(治行)하라.”
 
23
신연하인 물러나와
 
24
“우리 골에 일이 났다.”
 
25
이때 신관 사또 출행 날을 급히 받아 도임차(次)로 내려올 제 위의도 장할시고. 구름같은 별연(別輦) 독교(獨轎) 좌우 청장 떡 벌이고 좌우편 부축 급창 물색 진한 모시 천익 백저전대 고를 늘여 엇비슷이 눌러 매고 대모관자 통영갓을 이마 눌러 숙여쓰고 청장 줄 검쳐 잡고
 
26
“에라 물러섰다 나 있거라.”
 
27
혼금이 지엄(至嚴)하고
 
28
“좌우 구종 긴경마에 뒷채잡이 힘써라.”
 
29
통인 한쌍 책 전립에 행차 배행 뒤를 따르고 수배(首陪) 감상(監床) 공방이며 신연이방 가선하다. 노자 한쌍 사령 한쌍 일산보종 전배하여 대로변에 갈라 서고 백방수주 일산 복판 남수주 선을 둘러 주석(朱錫) 고리 어른어른 호기있게 내려올 제 전후에 혼금소리 청산(靑山)이 상응하고 권마성 높은 소리 백운(白雲)이 담담(澹澹)이라. 전주에 득달하여 경기전 객사 연명하고 영문(營門)에 잠깐 다녀 좁은목 썩 내달아 만마관 노구바위 넘어 임실 얼른 지나 오수 둘러 중화하고 즉일(卽日) 도임할 새 오리정으로 들어갈 제 천총이 영솔(領率)하고 육방(六房) 하인 청도도로 들어올 제 청도(淸道) 한쌍, 홍문기 한쌍, 주작 남동각(南東角) 남서각(南西角) 홍초남문 한쌍, 청룡 동남각(東南角) 서남각(西南角) 남초 한쌍, 현무 북동각(北東角) 북서각(北西角) 흑초홍문 한쌍, 등사 순시 한쌍, 영기 한쌍, 집사 한쌍, 기패관 한쌍, 군노(軍奴) 열두 쌍, 좌우가 요란하다. 행군 취타 풍악 소리 성동(城東)에 진동하고 삼현육각 권마성은 원근에 낭자하다. 광한루에 포진하여 개복(改服)하고 객사에 연명차로 남여 타고 들어갈새 백성 소시(所視) 엄숙하게 보이려고 눈을 별양 궁글궁글 객사에 연명하고 동헌에 좌기하고 도임상(到任床)을 잡순 후
 
30
“행수는 문안이요.”
 
31
행수, 군관(軍官) 집례받고 육방, 관속 현신 받고 사또 분부하되
 
32
“수노 불러 기생 점고하라.”
 
33
호장이 분부 듣고 기생 안책 들여 놓고 호명을 차례로 부르는데 낱낱이 글귀로 부르던 것이었다.
 
34
“우후동산(雨後東山) 명월(明月)이.”
 
35
명월이가 들어를 오는데 나군 자락을 걷음걷음 걷어다가 세요흉당에 딱 붙이고 아장아장 들어를 오더니
 
36
“점고 맞고 나오.”
 
37
“어주축수애산춘에 양편 난만 고운 춘색(春色)이 이 아니냐. 도홍(桃紅)이.”
 
38
도홍이가 들어를 오는데 홍상 자락을 걷어 안고 아장아장 조촘 걸어 들어를 오더니
 
39
“점고 맞고 나오.”
 
40
“단산(丹山)에 저 봉이 짝을 잃고 벽오동에 깃들이니 산수지영이요 비충지정이라. 기불탁속 굳은 절개 만수문전(萬壽門前) 채봉(彩鳳)이.”
 
41
채봉이가 들어오는데 나군 두른 허리 맵시 있게 걷어 안고 연보를 정히 옮겨 아장아장 걸어 들어와
 
42
“점고 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43
“청정지연 불개절에 묻노라 저 연화(蓮花) 어여쁘고 고운 태도 화중군자(花中君子) 연심(蓮心)이.”
 
44
연심이가 들어오는데 나상을 걷어 안고 나말 수혜 끌면서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오더니
 
45
“좌부진퇴로 나오.”
 
46
“화씨같이 밝은 달 벽해(碧海)에 들었나니 형산백옥(荊山白玉) 명옥(明玉)이.”
 
47
명옥이가 들어오는데 기하상 고운 태도 이행(履行)이 진중한데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를 오더니
 
48
“점고 맞고 좌부 진퇴로 나오.”
 
49
“운담풍경근오천에 양류편금에 앵앵(鶯鶯)이.”
 
50
앵앵이가 들어오는데 홍상 자락을 에후리쳐 세요흉당에 딱 붙이고 아장 걸어 가만가만 들어오더니
 
51
“점고 맞고 좌부진퇴로 나오.”
 
52
사또 분부하되
 
53
“자주 부르라.”
 
54
“예.”
 
55
호장이 분부 듣고 넉자 화두로 부르는데
 
56
“광한전 높은 집에 헌도하던 고운 선비(仙妃) 반겨 보니 계향(桂香)이.”
 
57
“예. 등대하였소.”
 
58
“송하(松下)에 저 동자(童子)야. 묻노라 선생 소식. 수첩청산(數疊靑山)에 운심(雲心)이.”
 
59
“예. 등대하였소.”
 
60
“월궁(月宮)에 높이 올라 계화(桂花)를 꺾어 애절(愛折)이.”
 
61
“예. 등대하였소.”
 
62
“차문주가하처재요 목동요지 행화(杏花).”
 
63
“예. 등대하였소.”
 
64
“아미산월반륜추 영입평강에 강선(江仙)이.”
 
65
“예. 등대하였소.”
 
66
“오동 복판 거문고 타고 나니 탄금(彈琴)이.”
 
67
“예. 등대하였소.”
 
68
“팔월 부용(芙蓉) 군자 용(容)은 만당추수 홍련(紅蓮)이.”
 
69
“예. 등대하였소.”
 
70
“주홍당사 갖은 매듭 차고 나니 금낭(錦囊)이.”
 
71
“예. 등대하였소.”
 
72
사또 분부하되
 
73
“한숨에 열 두서넛씩 불러라.”
 
74
호장이 분부 듣고 자주 부르는데
 
75
“양대선 월중선 화중선이.”
 
76
“예. 등대하였소.”
 
77
“금선이 금옥이 금련이.”
 
78
“예. 등대하였소.”
 
79
“농옥이 난옥이 홍옥이.”
 
80
“예. 등대하였소.”
 
81
“바람맞은 낙춘이.”
 
82
“예. 등대 들어를 가오.”
 
83
낙춘이가 들어를 오는데 제가 잔뜩 맵시 있게 들어오는 체하고 들어오는데 소면한단 말은 듣고 이마빡에서 시작하여 귀 뒤가지 파 제치고 분성적한단 말은 들었던가 개분 석 냥 일곱 돈어치를 무지금하고 사다가 성(城) 겉에 회칠하듯 반죽하여 온 낯에다 맥질하고 들어오는데 키는 사근내 장승만한 년이 치마 자락을 훨씬 추워다 턱밑에 딱 붙이고 무논의 고니 걸음으로 낄룩 껑쭝 엉금엉금 섭적 들어오더니
 
84
“점고 맞고 나오.”
 
85
연연(娟娟)히 고운 기생 그 중에 많건마는 사또께옵서는 근본 춘향의 말을 높이 들었는지라 아무리 들으시되 춘향 이름 없는지라. 사또 수노 불러 묻는 말이
 
86
“기생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퇴기냐.”
 
87
수노 여쭈오되
 
88
“춘향모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89
사또 문왈
 
90
“춘향이가 기생이 아니면 어찌 규중에 있는 아이 이름이 높이 난다?”
 
91
수노 여주오되
 
92
“근본 기생의 딸이옵고 덕색(德色)이 장한 고로 권문세족 양반네와 일등재사(一等才士) 한량들과 내려오신 등내마다 구경코자 간청하되 춘향모녀 불청(不聽)키로 양반 상하 물론하고 액내지간 소인 등도 십년 일득대면하되 언어수작 없었더니 천정(天定)하신 연분인지 구관(舊官) 사또 자제 이도련님과 백년기약 맺사옵고 도련님 가실 때에 입장후에 데려가마 당부하고 춘향이도 그리 알고 수절하여 있습니다.”
 
93
사또 분을 내어
 
94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부시하요 미장전 도련님이 화방(花房)에 작첩(作妾)하여 살자 할꼬.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서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 보고 그저 말랴. 잔말 말고 불러 오라.”
 
95
춘향을 부르란 청령이 나는데 이방 호장 여쭈오되
 
96
“춘향이가 기생도 아닐 뿐 아니오라 구등 사또 자제 도련님과 맹약(盟約)이 중(重)하온데 연치(年齒)는 부동(不同)이나 동반의 분의로 부르라기 사또 정체(政體)가 손상할까 저어하옵니다.”
 
97
사또 대노하여
 
98
“만일 춘향을 시각 지체하다가는 공형 이하로 각청(各廳) 두목을 일병태거할 것이니 빨리 대령 못 시킬까.”
 
99
육방이 소동, 각청 두목이 넋을 잃어
 
100
“김번수야 이번수야. 이런 별일이 또 있느냐. 불쌍하다 춘향 정절 가련케 되기 쉽다. 사또 분부 지엄하니 어서 가자. 바삐 가자.”
 
101
사령 관노 뒤섞여서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이때 춘향이는 사령이 오는지 관노가 오는지 모르고 주야로 도련님만 생각하여 우는데 망칙한 환(患)을 당하려거든 소리가 화평(和平)할 수 있으며 한때라도 공방살이할 계집아이라. 목성(聲)에 철성이 끼어 자연 슬픈 애원성이 되어 보고 듣는 사람의 심장인들 아니 상할소냐. 님 그리워 설운 마음 식불감(食不甘) 밥 못 먹어 침불안석(寢不安席) 잠 못 자고 도련님 생각 적상되어 피골이 모두 다 상련이라. 양기(陽氣)가 쇠진하여 진양조란 울음이 되어
 
102
“갈까보다 갈까보다. 님을 따라 갈까보다. 천리라도 갈까보다 만리라도 갈까보다. 풍우(風雨)도 쉬어 넘고 날진, 수진, 해동청, 보라매도 쉬어 넘는 고봉정상(高峰頂上) 동선령고개라도 님이 와 날 찾으면 나는 발 벗어 손에 들고 나는 아니 쉬어 가지. 한양 계신 우리 낭군 나와 같이 그리(워하)는가. 무정하여 아주 잊고 나의 사랑 옮겨다가 다른 님을 괴이는가.”
 
103
한참 이리 설이 울 제 사령 등이 춘향의 애원성을 듣고 인비목석(人非木石) 아니거든 감심(感心) 아니 될 수 있냐. 육천 마디 사대(四大) 삭신이 낙수춘빙(落水春氷) 얼음 녹듯 탁 풀리어
 
104
“대체 이 아니 참 불쌍하냐. 이애 외입한 자식들이 저런 계집을 추앙(推仰) 못하면은 사람이 아니로다.”
 
105
이때에 재촉 사령 나오면서
 
106
“오너라.”
 
107
외(치)는 소리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문틈으로 내다보니 사령 군노 나왔구나.
 
108
“아차차 잊었네. 오늘이 그 삼일점고라 하더니 무슨 야단이 났나 보다.”
 
109
밀창문 여닫으며
 
110
“허허 번수(番手)님네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시기 뜻밖이네. 이번 신연(新延) 길에 노독(路毒)이나 아니 나며 사또 정체(政體) 어떠하며 구관댁(舊官宅)에 가 계시며 도련님 편지 한 장도 아니 하던가. 내가 전일(前日)은 양반을 모시기로 이목이 번거하고 도련님 정체(政體) 유달라서 모르는 체 하였건만 마음조차 없을손가. 들어가세 들어가세.”
 
111
김번수며 이번수며 여러 번수 손을 잡고 제 방에 앉힌 후에 향단이 불러
 
112
“주반상 들여라.”
 
113
취토록 먹인 후에 궤문 열고 돈 닷냥을 내어 놓(으)며
 
114
“여러 번수님네. 가시다가 술이나 잡숫고 가옵소. 뒷 말 없게 하여 주소.”
 
115
사령 등이 약주에 취하여 하는 말이
 
116
“돈이라니 당치 않다. 우리가 돈 바라고 네게 왔냐.”
 
117
하며
 
118
“들여 놓아라.”
 
119
“김번수야. 네가 차라.”
 
120
“불가(不可)타마는 입 수(數)나 다 옳으냐.”
 
121
돈 받아 차고 흐늘흐늘 들어갈 제 행수기생이 나온다. 행수기생이 나오며 두 손뼉 땅땅 마주 치면서
 
122
“여봐라 춘향아. 말 듣거라. 너만한 정절은 나도 있고 너만한 수절은 나도 있다. 너라는 정절이 왜 있으며 너라는 수절이 왜 있느냐. 정절부인 애기씨 수절부인 애기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만연하여 육방이 소동, 각 청 두목이 다 죽어난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
 
123
춘향이 할 수 없어 수절하던 그 태도로 대문 밖 썩 나서며
 
124
“형님 형님 행수 형님. 사람의 괄시를 그리 마소. 거기라고 대대 행수며 나라고 대대 춘향인가. 인생일사도무사지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125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동헌에 들어가
 
126
“춘향이 대령하였소.”
 
127
사또 보시고 대희(大喜)하여
 
128
“춘향일시 분명하다. 대상(臺上)으로 오르거라.”
 
129
춘향이 상방(上房)에 올라가 염슬단좌(斂膝端坐) 뿐이로다. 사또 대혹(大惑)하여
 
130
“책방에 가 회계나리님을 오시래라.”
 
131
회계 생원(生員)이 들어오던 것이었다. 사또 대희하여
 
132
“자네 보게. 저게 춘향일세.”
 
133
“하 그 년 매우 예쁜데. 잘 생겼소. 사또께서 서울 계실 때부터 춘향 춘향 하시더니 한 번 구경할 만하오.”
 
134
사또 웃으며
 
135
“자네 중신 하겠나.”
 
136
이윽히 앉았더니
 
137
“사또가 당초에 춘향을 부르시지 말고 매파(媒婆)를 보내어 보시는 게 옳은 것을 일이 좀 경(輕)히 되었소마는 이미 불렀으니 아마도 혼사(婚事)할 밖에 수가 없소.”
 
138
사또 대희하여 춘향더러 분부하되
 
139
“오늘부터 몸 단장 정히 하고 수청(守廳)으로 거행하라.”
 
140
“사또 분부 황송하나 일부종사(一夫從事) 바라오니 분부시행 못하겠소.”
 
141
사또 웃어 왈
 
142
“미재미재라. 계집이로다. 네가 진정 열녀로다. 네 정절 굳은 마음 어찌 그리 어여쁘냐. 당연한 말이로다. 그러나 이수재(李秀才)는 경성(京城) 사대부의 자제로서 명문귀족 사위가 되었으니 일시 사랑으로 잠깐 노류장화(路柳墻花)하던 너를 일분 생각하겠느냐. 너는 근본 정절 있어 전수일절하였다가 홍안이 낙조되고 백발이 난수하면 무정세월약유파를 탄식할 제 불쌍코 가련한 게 너 아니면 뉘가 그(이)랴. 네 아무리 수절한들 열녀 포양 누가 하랴. 그는 다 버려두고 네 골 관장에게 매임이 옳으냐 동자(童子)놈에게 매인 게 옳으냐. 네가 말을 좀 하여라.”
 
143
춘향이 여쭈오되
 
144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이요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절(節)을 본받고자 하옵는데 수차 분부 이러하니 생불여사이옵고 열불경이부(烈不更二夫)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145
이때 회계 나리가 썩 하는 말이
 
146
“네 여봐라. 어 그년 요망한 년이로고. 부유일생소천하에 일색(一色)이라. 네 여러번 사양할 게 무엇이냐. 사또께옵서 너를 추앙하여 하시는 말씀이지 너 같은 창기배(娼妓輩)(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인가. 구관은 전송하고 신관 사또 연접함이 법전(法典)에 당연하고 사례에도 당연커든 괴이한 말 내지 말라. 너희같은 천기배(賤妓輩)(에)게 충렬이자(忠烈二字) 왜 있으리.”
 
147
이때 춘향이 하 기가 막혀 천연히 앉아 여쭈오되
 
148
“충효열녀(忠孝烈女) 상하(上下) 있소. 자상히 들으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 충효열녀 없다 하니 낱낱이 하뢰리다. 해서(海西) 기생 농선이는 동선령(洞仙嶺)에 죽어 있고, 선천(宣川) 기생 아이로되 칠거학문 들어 있고, 진주(晋州) 기생 논개는 우리 나라 충렬로서 충렬문(忠烈門)에 모셔 놓고 천추향사하여 있고, 청주(淸州) 기생 화월이는 삼층각(三層閣)에 올라 있고, 평양 기생 월선이도 충렬문에 들어 있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생열녀문 지은 후에 정경 가자 있사오니 기생 해폐(害弊) 마옵소서.”
 
149
춘향 다시 사또 전에 여쭈오되
 
150
“당초에 이수재 만날 때에 태산(泰山) 서해(西海) 굳은 마음 소처(小妻)의 일심정절( 一心貞節) 맹분같은 용맹인들 빼어내지 못할 터요, 소진 장의 구변(口辯)인들 첩의 마음 옮겨가지 못할 터요, 공명 선생 높은 재조(才操) 동남풍은 빌었으되 일편단심 소녀 마음 굴복치 못하리라. 기산(箕山)의 허유는 부족수요거천하고 서산(西山)의 백숙 양인(兩人)은 불식주속하였으니 만일 허유 없었으면 고도지사 누가 하며 만일 백이 숙제 없었으면 난신적자(亂臣賊子) 많으리라. 첩신(妾身)이 수(雖) 천한 계집인들 허유 백(숙)을 모르리까. 사람의 첩이 되어 배부기가하는 법이 벼슬하는 관장님네 망국부주같사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151
사또 대노하여
 
152
“이년 들어라. 모반대역하는 죄는 능지처참하여 있고, 조롱관장하는 죄는 제서율에 율(律) 써 있고, 거역관장(拒逆官長)하는 죄는 엄형정배하느니라. 죽노라 설워마라.”
 
153
춘향이 포악하되
 
154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155
사또 기가 막혀 어찌 분하시던지 연상을 두드릴 제 탕건이 벗어지고 상투고가 탁 풀리고 대마디에 목이 쉬어
 
156
“이년 잡아 내리라.”
 
157
호령하니 골방에 수청통인
 
158
“예.”
 
159
하고 달려들어 춘향의 머리채를 주루루 끄어내며
 
160
“급창.”
 
161
“예.”
 
162
“이년 잡아 내리라.”
 
163
춘향이 떨치며
 
164
“놓아라.”
 
165
중계에 내려가니 급창이 달려들어
 
166
“요년 요년. 어떠하신 존전이라고 대답이 그러하고 살기를 바랄소냐.”
 
167
대뜰 아래 내리치니 맹호(猛虎)같은 군노 사령 벌떼같이 달려들어 감태같은 춘향의 머리채를 정정시절 연실 감 듯 뱃사공이 닻줄 감 듯 사월팔일 등(燈) 대 감 듯 휘휘친친 감아쥐고 동당이쳐 엎지르니 불쌍타 춘향 신세 백옥같은 고운 몸이 육자배기로 엎더졌구나. 좌우 나졸 늘어서서 능장, 곤장, 형장(刑杖)이며, 주장 짚고
 
168
“아뢰라. 형리(刑吏) 대령하라.”
 
169
“예. 숙여라. 형리요.”
 
170
사또 분이 어찌 났던지 벌벌 떨며 기가 막혀 허푸허푸 하며
 
171
“여보아라. 그년에게 다짐이 왜 있으리. 묻도 말고 형틀에 올려매고 정치를 부수고 물고장을 올려라.”
 
172
춘향을 형틀에 올려매고 쇄장이 거동 봐라. 형장이며 태장이며 곤장이며 한 아름 담쏙 안아다가 형틀 아래 좌르륵 부딪치는 소리 춘향의 정신이 혼미한다. 집장사령 거동 봐라. 이 놈도 잡고 능청능청 저 놈도 잡고서 능청능청 등심 좋고 빳빳하고 잘 부러지는 놈 골라 잡고 오른 어깨 벗어 메고 형장 집고 대상청령(臺上廳令) 기다릴 제
 
173
“분부 모셔라. 네 그년을 사정 두고 허장하여서는 당장에 명을 바칠 것이니 각별히 매우 치라.”
 
174
집장사령 여쭈오되
 
175
“사또 분부 지엄한데 저만한 년을 무슨 사정 두오리까. 이년 다리를 까딱 말라. 만일 요동하다가는 뼈 부러지리라.”
 
176
호통하고 들어서서 검장(檢杖) 소리 발 맞추어 서면서 가만히 하는 말이
 
177
“한두개만 견디소. 어쩔 수가 없네. 요 다리는 요리 틀고 저 다리는 저리 틀소.”
 
178
“매우 치라.”
 
179
“예잇. 때리오.”
 
180
딱 붙이니 부러진 형장개비는 푸르르 날아 공중에 빙빙 솟아 상방 대뜰 아래 떨어지고 춘향이는 아무쪼록 아픈 데를 참으려고 이를 복복 갈며 고개만 빙빙 두르면서
 
181
“애고 이게 웬 일이어.”
 
182
곤장 태장 치는 데는 사령이 서서 하나 둘 세건마는 형장부터는 법장이라 형리와 통인이 닭싸움하는 모양으로 마주 엎뎌서 하나 치면 하나 긋고 둘 치면 둘 긋고 무식하고 돈 없는 놈 술집 바람벽에 술값 긋 듯 그어 놓(으)니 한 일자(一字)가 되었구나.
 
183
춘향이는 저절로 설움겨워 맞으면서 우는데
 
184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185
이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없이 모여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186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三門) 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187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낙루(落淚)하랴. 둘째 낱 딱 붙이니
 
188
“이비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 이 매 맞고 영 죽어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189
세째 낱을 딱 붙이니
 
190
“삼종지례 지중한 법 삼강오륜(三綱五倫) 알았으니 삼치형문 정배(定配)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191
네째 낱을 딱 붙이니
 
192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잖고 위력공사(威力公事) 힘을 쓰니 사십팔방(四十八坊) 남원 백성 원망함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死生間)에 못 잊겠소.”
 
193
다섯 낱 채 딱 붙이니
 
194
“오륜(五倫) 윤기 그치잖고 부부유별(夫婦有別) 오행(五行)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님 계신 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 올까. 무죄한 이 내 몸이 악사할 일 없사오니 오결죄수 마옵소서. 애고 애고 내 신세야.”
 
195
여섯 낱 채 딱 붙이니
 
196
“육육은 삽십육으로 낱낱이 고찰하여 육만번 죽인대도 육천 마디 어린 사랑 맺힌 마음 변할 수 전혀 없소.”
 
197
일곱 낱을 딱 붙이니
 
198
“칠거지악 범하였소. 칠거지악 아니거든 칠개 형문 웬 일이오. 칠척검(七尺劍) 드는 칼로 동동이 장(杖) 질러서 이제 바삐 죽여주오. 치라 하는 저 형방아 칠 때마다 고찰 마소. 칠보홍안(七寶紅顔) 나 죽겠네.”
 
199
여덟 째 낱 딱 붙이니
 
200
“팔자 좋은 춘향 몸이 팔도 방백 수령 중에 제일 명관(明官) 만났구나. 팔도 방백 수령님네 치민(治民)하러 내려왔지 악형(惡刑)하러 내려왔소.”
 
201
아홉 낱 채 딱 붙이니
 
202
“구곡간장(九曲肝腸) 굽이 썩어 이 내 눈물 구년지수(九年之水) 되겠구나. 구고 청산(靑山) 장송(長松) 베어 청강선(淸江船) 무어 타고 한양성중 급히 가서 구중궁궐 성상전(聖上前)에 구구원정 주달(奏達)하고 구정(九庭) 뜰에 물러나와 삼청동을 찾아가서 우리 사랑 반가이 만나 굽이굽이 맺힌 마은 저근듯 풀련마는.”
 
203
열째 낱 딱 붙이니
 
204
“십생구사할 지라도 팔십년 정한 뜻을 십만번 죽인대도 가망없고 무가내지. 십육세 어린 춘향 장하원귀 가련하오.”
 
205
열 치고는 짐작할 줄 알았더니 열다섯 채 딱 붙이니
 
206
“십오야 밝은 달은 띠구름에 묻혀 있고 서울 계신 우리 낭군 삼청동에 묻혔으니 달아 달아 보느냐. 님 계신 곳 나는 어이 못 보는고.”
 
207
스물 치고 짐작할까 여겼더니 스물 다섯 딱 붙이니
 
208
“이십오현탄야월에 불승청원 저 기러기 너 가는 데 어디메냐. 가는 길에 한양성 찾아들어 삼청동 우리 님께 내 말 부디 전해다오. 나의 형상 자세히 보고 부디부디 잊지 마라.”
 
209
삼십삼천(三十三天) 어린 마음 옥황전(玉皇前)에 아뢰고저. 옥 같은 춘향 몸에 솟느니 유혈이요 흐르느니 눈물이라. 피 눈물 한데 흘러 무릉도원(武陵桃源) 홍류수(紅流水)라.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210
“소녀를 이리 말고 살지능지하여 아주 박살 죽여 주면 사후(死後) 원조라는 새가 되어 초혼조 함께 울어 적막강산 달 밝은 밤에 우리 이도련님 잠든 후 파몽이나 하여지다.”
 
211
말 못하고 기절하니 엎뎠던 통인 고개 들어 눈물 씻고 매질하던 저 사령도 눈물 씻고 돌아서며
 
212
“사람의 자식은 못 하겠네.”
 
213
좌우에 구경하는 사람과 거행하는 관속들이 눈물 씻고 돌아서며
 
214
“춘향이 매 맞는 거동 사람 자식은 못 보겠다. 모질도다 모질도다 춘향 정절이 모질도다. 출천열녀로다.”
 
215
남녀노소 없이 서로 낙루하며 돌아설 때 사또인들 좋을 리가 있으랴.
 
216
“네 이년 관정(官庭)에 발악하고 맞으니 좋은 게 무엇이냐. 일후에 또 그런 거역 관장할까.”
 
217
반생반사(半生半死) 저 춘향이 점점 포악하는 말이
 
218
“여보 사또 들으시오. 일념포한 부지생사 어이 그리 모르시오. 계집의 곡한 마음 오유월 서리 치네. 혼비중천(魂飛中天) 다니다가 우리 성군(聖君) 좌정하(坐定下)에 이 원정을 아뢰오면 사또인들 무사할까. 덕분에 죽여주오.”
 
219
사또 기가 막혀
 
220
“허허 그년 말 못할 년이로고. 큰칼 씌워 하옥하라.”
 
221
하니 큰칼 씌워 인봉하여 쇄장이 등에 업고 삼문 밖 나올 제 기생들이 나오며
 
222
“애고 서울집아 정신 차리게. 애고 불쌍하여라.”
 
223
사지를 만지며 약을 갈아 들이며 서로 보고 낙루할 제 이때 키 크고 속없는 낙춘이가 들어오며
 
224
“얼씨고 절씨고 좋을씨고 우리 남원도 현판감이 생겼구나.”
 
225
왈칵 달려들어
 
226
“애고 서울집아. 불쌍하여라.”
 
227
이리 야단할 제 춘향 어미가 이 말을 듣고 정신없이 들어오더니 춘향의 목을 안고
 
228
“애고 이게 웬 일이냐. 죄는 무슨 죄며 매는 무슨 매냐. 장청의 집사님네 길청의 이방님 내 딸이 무슨 죄요. 장군방(將軍房) 두목들아 집장하던 쇄장이도 무슨 원수 맺혔더냐. 애고 애고 내 일이야. 칠십당년 늙은 것이 의지없이 되었구나. 무남독녀 내 딸 춘향 규중(閨中)에 은근히 길러 내어 밤낮으로 서책만 놓고 내칙편 공부 일삼으며 나 보고 하는 말이. 마오 마오 설워 마오. 아들 없다 설워 마오. 외손봉사 못하리까. 어미에게 지극정성 곽거와 맹종인들 내 딸보다 더할손가. 자식 사랑하는 법이 상중하(上中下)가 다를손가. 이 내 마음 둘 데 없네. 가슴에 불이 붙어 한숨이 연기로다. 김번수야 이번수야 웃 영(令)이 지엄타고 이다지 몹시 쳤느냐. 애고 내 딸 장처 보소. 빙설(氷雪)같은 두 다리에 연지같은 피 비쳤네. 명문가 규중부야 눈 먼 딸도 원하더라. 그런 데 가 못 생기고 기생월매 딸이 되어 이 경색이 웬 일이냐. 춘향아 정신 차려라. 애고 애고 내 신세야.”
 
229
하며
 
230
“향단아. 삼문 밖에 가서 삯군 둘만 사오너라. 서울 쌍급주 보내련다.”
 
231
춘향이 쌍급주 보낸단 말을 듣고
 
232
“어머니 마오. 그게 무슨 말씀이오. 만일 급주가 서울 올라가서 도련님이 보시면 층층시하(層層侍下)에 어찌할 줄 몰라 심사 울적하여 병이 되면 근들 아니 훼절(毁節)이오. 그런 말씀 말으시고 옥으로 가사이다.”
 
233
쇄장의 등에 업혀 옥으로 들어갈 제 향단이는 칼머리 들고 춘향모는 뒤를 따라 옥문전 당도하여
 
234
“옥 형방 문을 여소. 옥 형방도 잠 들었나.”
 
235
옥중에 들어가서 옥방(獄房) 형상 볼작시면 부서진 죽창(竹窓) 틈에 살 쏘느니 바람이요 무너진 헌 벽이며 헌 자리 벼룩 빈대 만신을 침노한다. 이때 춘향이 옥방에서 장탄가(長嘆歌)로 울던 것이었다.
 
236
“이내 죄가 무슨 죄냐. 국곡투식 아니거든 엄형중장(嚴刑重杖) 무슨 일고. 살인죄가 아니거든 항쇄족쇄 웬 일이며 역률 강상 아니거든 사지결박 웬 일이며 음행도적(淫行盜賊) 아니거든 이 형벌이 웬 일인고. 삼강수(三江水)는 연수되어 청천일장지에 나의 설움, 원정(原情) 지어 옥황전에 올리고저. 낭군 그(리)워 가슴 답답 불이 붙네. 한숨이 바람되어 붙는 불을 더 붙이니 속절없이 나 죽겠네. 홀로 섰는 저 국화는 높은 절개 거룩하다. 눈 속의 청송(靑松)은 천고절을 지켰구나. 푸른 솔은 나와 같고 누른 국화 낭군같이 슬픈 생각 뿌리나니 눈물이요 적시느니 한숨이라. 한숨은 청풍(淸風)삼고 눈물은 세우(細雨) 삼아 청풍이 세우를 몰아다가 불거니 뿌리거니 님의 잠을 깨우고저. 견우직녀성은 칠석 상봉하올 적에 은하수 막혔으되 실기한 일 없었건만 우리 낭군 계신 곳에 무슨 물이 막혔는지 소식조차 못 듣는고. 살아 이리 그리느니 아주 죽어 잊고지고. 차라리 이 몸 죽어 공산(空山)에 두견이 되어 이화월백(李花月白) 삼경야에 슬피 울어 낭군 귀에 들리고저. 청강에 원앙 되어 짝을 불러 다니면서 다정코 유정(有情)함을 님의 눈에 보이고저. 삼춘에 호접(胡蝶) 되어 향기 묻은 두 나래로 춘광(春光)을 자랑하여 낭군 옷에 붙고지고. 청천에 명월 되어 밤 당하면 돋아 올라 명명히 밝은 빛을 님의 얼굴에 비추고저. 이내 간장 썩는 피로 님의 화상(畵像) 그려 내어 방문 앞에 족자 삼아 걸어 두고 들며 나며 보고지고. 수절 정절 절대가인 참혹하게 되었구나. 문채 좋은 형산백옥 진토(塵土) 중에 묻혔는 듯, 향기로운 상산초가 잡풀 속에 섞였는 듯, 오동 속에 놀던 봉황 형극 속에 깃들인 듯. 자고(自古)로 성현(聖賢)네도 무죄하고 궂기시니 요(堯), 순(舜), 우(禹), 탕(湯) 인군(仁君)네도 걸주의 포악(暴惡)으로 하대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聖君) 되시고 명덕치민 주문왕도 상주(商紂)의 해를 입어 유리옥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성군 되고 만고성현(萬古聖賢) 공부자도 양호의 얼을 입어 광야에 갇혔더니 도로 놓여 대성(大聖) 되시니 이런 일로 볼작시면 죄 없는 이내 몸도 살아나서 세상 구경 다시 할까. 답답하고 원통하다. 날 살릴 이 뉘 있을까. 서울 계신 우리 낭군 벼슬길로 내려와 이렇듯이 죽어갈 제 내 목숨을 못 살린가. 하운은 다기봉하니 산이 높아 못 오던가. 금강산 상상봉(上上峰)이 평지 되거든 오려신가. 병풍에 그린 황계(黃鷄) 두 나래를 툭툭 치며 사경일점에 날 새라고 울거든 오려신가. 애고 애고 내 일이야.”
 
237
죽창문을 열치니 명정월색(明淨月色)은 방안에 든다마는 어린 것이 홀로 앉아 달더러 묻는 말이
 
238
“저 달아. 보느냐. 님 계신 데 명기(明氣) 빌려라. 나도 보게야. 우리 님이 누웠더냐 앉았더냐 보는 대로만 네가 일러 나의 수심 풀어다오.”
 
239
애고 애고 설이 울다 홀연이 잠이 드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호접이 장주 되고 장주가 호접 되어 세우(細雨)같이 남은 혼백(魂魄) 바람인 듯 구름인 듯 한 곳을 당도하니 천공지활하고 산령수려한데 은은한 죽림간(竹林間)에 일층(一層) 화각이 반공에 잠겼거늘 대체 귀신 다니는 법은 대풍기하고 승천입지하니 침상편시춘몽중에 행진강남수천리라. 전면을 살펴보니 황금대자로 만고정렬황릉지묘라 뚜렷이 붙였거늘 심신이 황홀하여 배회터니 천연한 낭자 셋이 나오는데 석숭의 애첩 녹주(綠珠) 등총(燈籠)을 들고 진주 기생 논개, 평양 기생 월선이라. 춘향을 인도하여 내당으로 들어가니 당상에 백의(白衣)한 두 부인이 옥수(玉手)를 들어 청하거늘 춘향이 사양하되
 
240
“진세간(塵世間) 천첩이 어찌 황릉묘를 오르리까.”
 
241
부인이 기특히 여겨 재삼 청하거늘 사양치 못하여 올라가니 좌(座)를 주어 앉힌 후에
 
242
“네가 춘향인가? 기특하도다. 일전에 조회차로 요지연(瑤池宴)에 올라가니 네 말이 낭자키로 간절히 보고 싶어 너를 청하였으니 심히 불안토다.”
 
243
춘향이 재배주왈(再拜奏曰)
 
244
“첩이 비록 무식하나 고서(古書)를 보옵고 사후에나 존안을 뵈올까 하였더니 이렇듯 황릉묘에 모시니 황공비감(惶恐悲感)하여이다.”
 
245
상군부인이 말씀하되
 
246
“우리 순군(舜君) 대순씨(大舜氏)가 남순수하시다가 창오산에 붕(崩)하시니 속절없는 이 두 몸이 소상죽림에 피눈물을 뿌려놓(으)니 가지마다 아롱아롱 잎잎이 원한이라. 창오산붕상수절이라야 죽상지루내가멸을 천추(千秋)에 깊은 한을 하소할 곳 없었더니 네 절행(節行) 기특키로 너더러 말하노라. 송관기천년에 청백은 어느 때며 오현금 남풍시(南風詩)를 이제까지 전하더냐.”
 
247
이렇듯이 말씀할 제 어떠한 부인
 
248
“춘향아. 나는 기주명월음독성에 화선하던 농옥이다. 소사의 아내로서 태화산(太華山) 이별 후에 승룡비거 한이 되어 옥소(玉蕭)로 원을 풀 제 곡종비거부지처하니 산하벽도춘자개라.”
 
249
이러할 제 또 한 부인 말씀하되
 
250
“나는 한궁녀(漢宮女) 소군(昭君)이라. 호지(胡地)에 오가하니 일배청총뿐이로다. 마상(馬上) 비파 한 곡조에 화도성식춘풍면이요, 환패공귀월야혼이라. 어찌 아니 원통하랴.”
 
251
한참 이러할 제 음풍이 일어나며 촛불이 벌렁벌렁하며 무엇이 촛불 앞에 달려들겨늘 춘향이 놀래어 살펴보니 사람도 아니요 귀신도 아닌데 의의한 가운데 곡성이 낭자하며
 
252
“여봐라 춘향아 네가 나를 모르리라. 나는 뉜고 하니 한고조(漢高祖) 아내 척부인이로다. 우리 황제 용비 후에 여후(呂后)의 독한 솜씨 나의 수족 끊어 내어 두 귀에다 불지르고 두 눈 빼어 음약 먹여 측간 속에 넣었으니 천추에 깊은 한을 어느 때나 풀어보랴.”
 
253
이리 울 제 상군부인 말씀하되
 
254
“이곳이라 하는 데가 유명이 노수하고 행위자별하니 오래 유(留)치 못할지라.”
 
255
여동(女童) 불러 하직할 새 동방 실솔성은 시르렁 일쌍 호접은 펄펄. 춘향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로다. 옥창(玉窓) 앵도화 떨어져 보이고 거울 복판이 깨어져 뵈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보이거늘
 
256
“나 죽을 꿈이로다.”
 
257
수심 걱정 밤을 샐 제 기러기 울고 가니 일편 서강(西江) 달에 행안남비 네 아니야. 밤은 깊어 삼경이요 궂은비는 퍼붓는데 도깨비 삑삑, 밤새 소리 붓붓, 문풍지는 펄렁펄렁, 귀신이 우는데 난장 맞아 죽은 귀신, 형장 맞아 죽은 귀신 결령치사 대롱대롱 목 매달아 죽은 귀신 사방에서 우는데 귀곡성이 낭자로다. 방 안이며 추녀 끝이며 마루 아래서도 애고 애고 귀신 소리에 잠들 길이 전혀 없다. 춘향이가 처음에는 귀신 소리에 정신이 없이 지내더니 여러 번을 들어나니 파겁이 되어 청승 굿거리 삼잡이 세악 소리로 알고 들으며
 
258
“이 몹쓸 귀신들아.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암급급여율령사파쐐”
 
259
진언 치고 앉았을 때 옥 밖으로 봉사 하나 지나가되 서울 봉사 같을 진대
 
260
“문수하오.”
 
261
외치련마는 시골봉사라
 
262
“문복(問卜)하오.”
 
263
하고 외치고 가니 춘향이 듣고
 
264
“불러주오.”
 
265
춘향 어미 봉사를 부르는데
 
266
“여보 저기 가는 봉사님.”
 
267
불러 놓(으)니 봉사 대답하되
 
268
“게 뉘기. 게 뉘기니.”
 
269
“춘향 어미요.”
 
270
“어찌 찾나.”
 
271
“우리 춘향이가 옥중에서 봉사님을 잠깐 오시라 하오.”
 
272
봉사 한번 웃으면서
 
273
“날 찾기 의외로세. 가지.”
 
274
봉사 옥으로 갈 제 춘향 어미 봉사의 지팡이를 잡고 인도할 제
 
275
“봉사님 이리 오시오. 이것은 돌다리요 이것은 개천이요. 조심하여 건너시오.”
 
276
앞에 개천이 있어 뛰어볼까. 무한히 벼르다가 뛰는데 봉사의 뜀이란 게 멀리 뛰진 못하고 올라가기만 한 길이나 올라가는 것이었다. 멀리 뛴단 것이 한가운데 가 풍덩 빠져 놓았는데 기어 나오려고 짚는 게 개똥을 짚었지.
 
277
“어뿔싸. 이게 정녕 똥이지.”
 
278
손을 들어 맡아 보니 묵은 쌀밥 먹고 썩은 놈이로고. 손을 내뿌린 게 모진 돌에다가 부딪치니 어찌 아프던지 입에다가 훌 쓸어 넣고 우는데 먼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279
“애고 애고 내 팔자야. 조그마한 개천을 못 건너고 이 봉변을 당하였으니 수원수구 뉘더러 하리. 내 신세를 생각하니 천지만물을 불견(不見)이라. 주야를 내가 알랴. 사시(四時)를 짐작하며, 춘절(春節)이 당해온들 도리화개 내가 알며, 추절(秋節)이 당해온들 황국단풍 어찌 알며, 부모를 내 아느냐, 처자를 내 아느냐, 친구 벗님을 내 아느냐. 세상천지 일월성신과 후박장단을 모르고 밤중같이 지내다가 이 지경이 되었구나. 진소위 소경이 그르냐 개천이 그르냐. 소경이 그르지 아주 생긴 개천이 그르랴.”
 
280
애고 애고 설이 우니 춘향 어미 위로하되
 
281
“그만 우시오.”
 
282
봉사를 목욕시켜 옥으로 들어가니 춘향이 반기면서
 
283
“애고 봉사님. 어서 오.”
 
284
봉사 그 중에 춘향이가 일색이란 말은 듣고 반가(와)하며
 
285
“음성을 들으니 춘향 각씨인가부다.”
 
286
“예. 기옵니다.”
 
287
“내가 벌써 와서 자네를 한번이나 볼 터로되 빈즉다사라. 못 오고 청하여 왔으니 내 쉰사가 아니로세.”
 
288
“그럴 리가 있소. 안맹(眼盲)하옵고 노래(老來)에 기력이 어떠하시오.”
 
289
“내 염려는 말게. 대체 나를 어찌 청하였나.”
 
290
“예. 다름 아니라 간밤에 흉몽을 하였삽기로 해몽도 하고 우리 서방님이 어느때나 나를 찾을까 길흉 여부 점을 하려고 청하였소.”
 
291
“그러게.”
 
292
봉사 점을 하는데
 
293
“가이태서유상치경이축축왈 천하언재심이요 지하언재시리요만은 고지즉응하시느니 신기영의시니 감이수통언하소서. 망지휴구와 망석궐의를 유신유령이 망수소보하여 약가약비를 상명고지즉응(尙明叩之卽應)하시느니. 복희, 문왕, 무왕, 무공(武公), 주공, 공자, 오대성현 칠십이현, 안증사맹, 성문십철, 제갈공명 선생, 이순풍, 소강절, 정명도, 정이천, 주염계, 주회암, 엄군평, 사마군, 귀곡, 손빈, 진(秦), 유, 왕보사, 주원장, 제대선생은 명찰명기하옵소서. 마의도자, 구천현녀,육정, 육갑 신장이여 연월일시(年月日時) 사치공조, 배괘동자, 성괘동랑, 허공유감, 여왕(女王) 본가봉사, 단로향화(壇爐香火), 명신문차실향, 원사강림언하소서. 전라좌도 남원부 천변(川邊)에 거하는 임자생신(壬子生辰) 곤명열녀(坤命烈女) 성춘향이 하월하일(何月何日)에 방사옥중하오며 서울 삼청동 거하는 이몽룡은 하일하시에 도차본부하오리까. 복걸 첨신은 신명소시하옵소서.”
 
294
산통을 철겅철겅 흔들더니
 
295
“어디 보자, 일이삼사오륙칠. 허허 좋다. 상괘로고. 칠간산이로구나. 어유피망하니 소적대성이라. 옛날 주무왕(周武王)이 벼슬할 제 이 괘를 얻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였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천리상지하니 친인이 유면이라. 자네 서방님이 불원간에 내려와서 평생 한을 풀겠네. 걱정 마소. 참 좋거든.”
 
296
춘향이 대답하되
 
297
“말대로 그러면 오죽 좋사오리까. 간밤 꿈 해몽이나 좀 하여 주옵소서.”
 
298
“어디 자상히 말을 하소.”
 
299
“단장하던 체경이 깨져 보이고 창전(窓前)에 앵도꽃이 떨어져 보이고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려 뵈고 태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말라 보이니 나 죽을 꿈 아니오.”
 
300
봉사 이윽히 생각하다가 양구(良久)에 왈
 
301
“그 꿈 장히 좋다. 화락(花落)하니 능성실(能成實)이요, 경파(鏡破)하니 기무성(豈無聲)가. 능히 열매가 열려야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질 때 소리가 없을손가. 문상(門上)에 현우인(懸偶人)하니 만인이 개앙시(皆仰視)라. 문 위에 허수아비 달렸으면 사람마다 우러러볼 것이요. 해갈(海渴)하니 용안견(龍顔見)이요 산붕(山崩)하니 지택평(地澤平)이라. 바다가 마르면 용의 얼굴을 능히 볼 것이요 산이 무너지면 평지가 될 것이라. 좋다. 쌍가마 탈 꿈이로세. 걱정 마소. 멀지 않네.”
 
302
한참 이리 수작할 제 뜻밖에 까마귀가 옥 담에 와 앉더니 까옥까옥 울거늘 춘향이 손을 들어 후여 날리며
 
303
“방정맞은 까마귀야. 나를 잡아 가려거든 조르지나 말려무나.”
 
304
봉사가 이 말을 듣더니
 
305
“가만 있소. 그 까마귀가 가옥가옥 그렇게 울지.”
 
306
“예. 그래요.”
 
307
“좋다. 좋다. 가자(字)는 아름다울 가자(嘉字)요, 옥자(字)는 집 옥자(屋字)라. 아름답고 즐겁고 좋은 일이 불원간 돌아와서 평생에 맺힌 한을 풀 것이니 조금도 걱정 마소. 지금은 복채 천냥을 준대도 아니 받아 갈 것이니 두고 보고 영귀(榮貴)하게 되는 때에 괄시나 부디 마소. 나 돌아가네.”
 
308
“예 평안히 가옵시고 후일 상봉하옵시다.”
 
309
춘향이 장탄수심으로 세월을 보내니라.
 
310
이때 한양성 도련님은 주야로 시서 백가어를 숙독하였으니 글로는 이백(李白)이요, 글씨는 왕희지(王羲之)라. 국가에 경사 있어 태평과를 보이실 새 서책을 품에 품고 장중에 들어가 좌우를 둘러 보니 억조창생 허다 선비 일시에 숙배한다. 어악풍류 청아성에 앵무새가 춤을 춘다. 대제학 택출하여 어제를 내리시니 도승지 모셔내어 홍장(紅帳) 위에 걸어 놓(으)니 글 제에 하였으되
 
311
“춘당춘색이 고금동이라.”
 
312
뚜렷이 걸었거늘 이도령 글 제를 살펴보니 익히 보던 배라. 시지(試紙)를 펼쳐놓고 해제(解題)를 생각하여 용지연(龍池硯)에 먹을 갈아 당황모 무심필을 반중동 덤벅 풀어 왕희지 필법으로 조맹부 체(體)를 받아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장하니 상시관이 이 글을 보고 자자(字字)이 비점이요 구구(句句)이 관주로다. 용사비등(龍蛇飛騰)하고 평사낙안이라 금세의 대재(大才)로다. 금방의 이름을 불러 어주삼배(御酒三盃) 권하신 후 장원급제 휘장이라. 신래(新來)의 진퇴(進退)를 나올 적에 머리에는 어사화요 몸에는 앵삼이라. 허리에는 학대로다. 삼일(三日) 유가한 연후에 산소에 소분하고 전하께 숙배하니 전하께옵서 친히 불러 보신 후에
 
313
“경의 재조 조정에 으뜸이라.”
 
314
하시고 도승지 입시(入侍)하사 전라도 어사를 제수하시니 평생의 소원이라.
 
315
수의(繡衣), 마패(馬牌), 유척을 내주시니 전하께 하직하고 본댁으로 나갈 때 철관 풍채는 심산맹호(深山猛虎)같은지라. 부모전 하직하고 전라도로 행할 새 남대문 밖 썩 나서서 서리, 중방, 역졸 등을 거느리고 청파역 말 잡아 타고 칠패, 팔패, 배다리 얼른 넘어 밥전거리 지나 동작이를 얼픗 건너 남대령을 넘어 과천읍에 중화(中火)하고 사근내, 미륵당이, 수원 숙소(宿所)하고 대황교, 떡전거리, 진개울, 중미, 진위읍에 중화하고 칠원, 소사, 애고다리, 성환역에 숙소하고 상류천, 하류천, 새술막, 천안읍에 중화하고 삼거리, 도리치, 김제역 말 갈아 타고 신구, 덕평을 얼른 지나 원터에 숙소하고 팔풍정, 화란, 광정, 모란, 공주, 금강을 건너 금영에 중화하고 높은 한길 소개문, 어미널티, 경천에 숙소하고 노성, 풋개, 사다리, 은진, 간치당이, 황화정, 장애미고개, 여산읍에 숙소참하고 이튿날 서리 중방 불러 분부하되
 
316
“전라도 초읍 여산이라. 막중국사 거행불명즉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317
추상같이 호령하며 서리 불러 분부하되
 
318
“너는 좌도로 들어 진산, 금산, 무주, 용담, 진안, 장수, 운봉, 구례로 이 팔읍을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자, 중방 역졸 너희 등은 우도로 용안, 함열, 임피, 옥구, 김제, 만경, 고부, 부안, 흥덕, 고창, 장성, 영광, 무장, 무안, 함평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고, 종사 불러 익산, 금구, 태인, 정읍, 순창, 옥과, 광주, 나주, 평창, 담양, 동복, 화순, 강진, 영암, 장흥, 보성, 흥양, 낙안, 순천, 곡성으로 순행하여 아무 날 남원읍으로 대령하라.”
 
319
분부하여 각기 분발하신 후에
 
320
어사또 행장을 차리는데 모양 보소. 숱 사람을 속이려고 모자 없는 헌 파립에 벌이줄 총총 매어 초사갓끈 달아 쓰고 당만 남은 헌 망건에 갖풀관자 노끈당줄 달아 쓰고 의뭉하게 헌 도복에 무명실 띠를 흉중에 둘러 매고 살만 남은 헌 부채에 솔방울 선추달아 일광을 가리고 내려올 제 통새암, 삼례 숙소하고 한내, 주엽쟁이, 가리내, 싱금정 구경하고 숩정이, 공북루 서문을 얼른 지나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소강남여기로다. 기린토월(麒麟吐月)이며 한벽철연(寒碧淸煙), 남고창종(南固暮鍾), 건지망월(乾止望月), 다가사후(多佳射侯), 덕진채련(德眞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완산팔경을 다 구경하고 차차로 암행(暗行)하여 내려올 제 각읍 수령들이 어사 났단 말을 듣고 민정(民情)을 가다듬고 전공사(前公事)를 염려할 제 하인인들 편하리요.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공사회계(公事會計)하는 형방, 서기 얼른 하면 도망차로 신발하고 수다한 각 청상(廳上)이 넋을 잃어 분주할제 이때 어사또는 임실 국화들 근처를 당도하니 차시(此時) 마침 농절(農節)이라. 농부들이 농부가(農夫歌)하며 이러할 제 야단이었다.
 
321
“어여로 상사디야 천리건곤 태평시(太平時)에 도덕 높은 우리 성군(聖君) 강구연월 동요 듣던 요(堯)임금 성덕(聖德)이라
322
어여로 상사디야. 순(舜)임금 높은 성덕으로 내신 성기 역산에 밭을 갈고
323
어여로 상사디야. 신농씨 내신 따비 천추만대(千秋萬代) 유전(遺傳)하니 어이 아니 높으던가
324
어여로 상사디야. 하우씨(夏禹氏) 어진 임금 구년홍수(九年洪水) 다스리고
325
어여라 상사디야. 은왕(殷王) 성탕 어진 임금 대한칠년(大旱七年) 당하였네
326
어여라 상사디야. 이 농사를 지어내어 우리 성군 공세 후에 남은 곡식 장만하여 앙사부모 아니하며 하육처자 아니할까
327
어여라 상사디야. 백초를 심어 사시(四時)를 짐작하니 유신(有信)한 게 백초로다
328
어여라 상사디야. 청운공명 좋은 호강 이 업(業)을 당할소냐
329
어여라 상사디야. 남전북답 기경하여 함포고복(含哺鼓腹) 하여보세
330
얼럴럴 상사디야.”
 
331
한참 이리할 제 어사또 주령 짚고 이만하고 서서 농부가를 구경하다가
 
332
“거기는 대풍(大豊)이로고.”
 
333
또 한편을 바라보니 이상한 일이 있다. 중씰한 노인들이 낄낄이 모여 서서 등걸밭을 일구는데 갈멍덕 숙여 쓰고 쇠스랑 손에 들고 백발가(白髮歌)를 부르는데
 
334
“등장가자 등장가자 하느님 전에 등장갈 양이면 무슨 말을 하실는지. 늙은이는 죽지 말고 젊은 사람 늙지 말게. 하느님 전에 등장가세. 원수로다 원수로다 백발이 원수로다. 오는 백발 막으려고 우수(右手)에 도끼 들고 좌수(左手)에 가시 들고 오는 백발 두드리며 가는 홍안(紅顔) 끌어당겨 청사(靑絲)로 결박하여 단단히 졸라매되 가는 홍안 절로 가고 백발은 시시(時時)로 돌아와 귀 밑에 살 잡히고 검은 머리 백발되니 조여청사모성설이라. 무정한 게 세월이라. 소년향락 깊은들 왕왕이 달라가니 이 아니 광음(光陰)인가. 천금준마(千金駿馬) 잡아 타고 장안대도 달리고저. 만고강산(萬古江山) 좋은 경개(景槪) 다시 한 번 보고지고. 절대가인(絶代佳人) 곁에 두고 백만교태(百萬嬌態) 놀고 지고. 화조월석 사시가경(四時佳景) 눈 어둡고 귀가 먹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어 할일 없는 일이로세. 슬프다 우리 벗님 어디로 가겠는고. 구추(九秋) 단풍잎 지듯이 선아선아 떨어지고 새벽하늘 별 지듯이 삼오삼오 쓸어지니 가는 길이 어디멘고. 어여로 가래질이야. 아마도 우리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인가 하노라.”
 
335
한참 이러할 제 한 농부 썩 나서며
 
336
“담배 먹세. 담배먹세.”
 
337
갈멍덕 숙여 쓰고 두덕에 나오더니 곱돌조대 넌짓 들어 꽁무니 더듬더니 가죽 쌈지 빼어 놓고 세우 침을 뱉아 엄지가락이 자빠지게 비빚비빚 단단히 넣어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질러 담배를 먹는데 농군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빡빡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것다. 양 볼때기가 오목오목 코궁기가 발심발심 연기가 홀홀 나게 피워 물고 나서니 어사또 반말하기는 공성이 났지.
 
338
“저 농부 말 좀 물어보면 좋겠구먼.”
 
339
“무슨 말.”
 
340
“이 골 춘향이가 본관에 수청들어 뇌물을 많이 먹고 민정(民政)에 작폐한단 말이 옳은지.”
 
341
저 농부 열을 내어
 
342
“게가 어디 사나.”
 
343
“아무데 살든지.”
 
344
“아무데 살든지라니. 게는 눈콩알 귀꽁알이 없나. 지금 춘향이를 수청 아니든다 하고 형장 맞고 갇혔으니 창가(娼家)에 그런 열녀 세상에 드문지라. 옥결같은 춘향몸에 자네 같은 동냥치가 누설을 시키다간 빌어먹도 못하고 굶어 뒤어지리. 올라간 이도령인지 삼도령인지 그놈의 자식은 일거후 무소식하니 인사(人事) 그렇고는 벼슬은커니와 내 좇도 못하지.”
 
345
“어 그게 무슨 말인고.”
 
346
“왜. 어찌 되나.”
 
347
“되기야 어찌 되랴마는 남의 말로 구습을 너무 고약히 하는고.”
 
348
“자네가 철 모르는 말을 하매 그렇지.”
 
349
수작을 파하고 돌아서며
 
350
“허허 망신이로고. 자 농부네들 일 하오.”
 
351
“예.”
 
352
하직하고 한 모롱이를 돌아드니 아이 하나 오는데, 주령 막대 끌면서 시조(時調) 절반 사설(辭說) 절반 섞어 하되
 
353
“오늘이 며칠인고. 천리길 한양성을 며칠 걸어 올라가랴. 조자룡의 월강(越江)하던 청총마(靑총馬)가 있었다면 금일로 가련마는 불쌍하다 춘향이는 이서방을 생각하여 옥중에 갇히어서 명재경각 불쌍하다. 몹쓸 양반 이서방은 일거 소식 돈절하니 양반의 도리는 그러한가.”
 
354
어사또 그 말 듣고
 
355
“이애. 어디 있니.”
 
356
“남원읍에 사오.”
 
357
“어디를 가니.”
 
358
“서울 가오.”
 
359
“무슨 일로 가니.”
 
360
“춘향의 편지 갖고 구관댁에 가오.”
 
361
“이애. 그 편지 좀 보자꾸나.”
 
362
“그 양반 철모르는 양반이네.”
 
363
“웬 소린고.”
 
364
“글쎄 들어보오. 남아(男兒) 편지 보기도 어렵거든 황 남의 내간을 보잔단 말이오.”
 
365
“이애 들어라. 행인이 임발우개봉이란 말이 있느니라. 좀 보면 관계하랴.”
 
366
“그 양반 몰골은 흉악하구만 문자속은 기특하오. 얼른 보고 주오.”
 
367
“호노자식이로고.”
 
368
편지 받아 떼어 보니 사연에 하였으되
 
369
일차 이별후 성식이 적조하니 도련님 시봉 체후만안하옵신지 원절복모하옵니다. 천첩 춘향은 장대뇌상에 관봉치패하고 명재경각(命在頃刻)이라. 지어사경에 혼비황릉지묘하여 출몰귀관하니 첩신(妾身)이 수유만사나 단지 열불이경(烈不二更)이요 첩지사생(妾之死生)과 노모(老母) 형상이 부지하경이오니 서방님 심량처지하옵소서.
 
370
편지 끝에 하였으되
 
371
거세하시군별첩고 작이동설우동추라. 광풍반야누여설하니 하위남원옥중수라.
 
372
혈서(血書)로 하였는데 평사낙안(平沙落雁) 기러기 격으로 그저 툭툭 찍은 것이 모두 다 애고로다. 어사 보더니 두 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방울방울 떨어지니 저 아이 하는 말이
 
373
“남의 편지 보고 왜 우시오.”
 
374
“엇다 이애. 남의 편지라도 설운 사연을 보니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375
“여보 인정있는 체하고 남의 편지 눈물 묻어 찢어지오. 그 편지 한장 값이 열 닷냥이오. 편지 값 물어내오.”
 
376
“여봐라. 이도령이 나와 죽마고우(竹馬故友) 친구로서 하향(遐鄕)에 볼 일이 있어 나와 함께 내려오다 완영에 들렸으니 내일 남원으로 만나자 언약하였다. 나를 따라 가 있다가 그 양반을 뵈어라.”
 
377
그 아이 반색하며
 
378
“서울을 저 건너로 알으시오.”
 
379
하며 달려들어
 
380
“편지 내오.”
 
381
상지할 제 옷 앞자락을 잡고 실랑하며 살펴보니 명주 전대를 허리에 둘렀는데 제기(祭器) 접시같은 것이 들었거늘 물러나며
 
382
“이것 어디서 났소. 찬 바람이 나오.”
 
383
“이놈 만일 천기누설(天機漏洩)하여서는 생명을 보전치 못하리라.”
 
384
당부하고 남원으로 들어올 제 박석치를 올라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산도 예 보던 산이요 물도 예 보던 물이라. 남문 밖 썩 내달아
 
385
“광한루야 잘 있더냐. 오작교야 무사하냐.”
 
386
객사청청유색신은 나귀 매고 놀던 데요, 청운낙수 맑은 물은 내 발 씻던 청계수(淸溪水)라. 녹수진경 넓은 길은 왕래하는 옛길이요, 오작교 다리 밑에 빨래하는 여인들은 계집아이 섞여 앉아
 
387
“야야.”
 
388
“왜야.”
 
389
“애고 애고 불쌍터라. 춘향이가 불쌍터라. 모질더라 모질더라. 우리 골 사또가 모질더라. 절개 높은 춘향이를 위력겁탈(威力劫奪)하려 한들 철석같은 춘향 마음 죽는 것을 헤아릴까. 무정터라 무정터라. 이도령이 무정터라.”
 
390
저희끼리 공론하며 추적추적 빨래하는 모양은 영양공주, 난양공주, 진채봉, 계섬월, 백릉파, 적경홍, 심요연, 가춘운도 같다마는 양소유가 없었으니 뉘를 찾아 앉았는고. 어사또 누에 올라 자상히 살펴보니 석양은 재서(在西)하고 숙조(宿鳥)는 투림할 제 저 건너 양류목(楊柳木)은 우리 춘향 그네 매고 오락가락 놀던 양을 어제 본 듯 반갑도다. 동편을 바라보니 장림 심처(深處) 녹림간(綠林間)에 춘향집이 저기로다. 저 안에 내동원은 예 보던 고면(古面)이요, 석벽의 험한 옥(獄)은 우리 춘향 우니는 듯 불쌍코 가긍하다. 일락서산(日落西山) 황혼시에 춘향문전 당도하니 행랑은 무너지고 몸채는 꾀를 벗었는데 예 보던 벽오동은 수풀 속에 우뚝 서서 바람을 못 이기어 추레하게 서 있거늘 단장 밑에 백두루미는 함부로 다니다가 개한테 물렸는지 깃도 빠지고 다리를 징금 끼룩 뚜루룩 울음 울고 빗장전 누렁개는 기운없이 졸다가 구면(舊面)객을 몰라보고 꽝꽝 짖고 내달으니
 
391
“요 개야 짖지 마라. 주인같은 손님이다. 너의 주인 어디 가고 네가 나와 반기느냐.”
 
392
중문을 바라보니 내 손으로 쓴 글자가 충성 충(忠)자 완연터니 가운데 중(中)자는 어디 가고 마음 심(心)자만 남아 있고. 와룡장자 입춘서(立春書)는 동남풍에 펄렁펄렁 이내 수심 도와낸다. 그렁저렁 들어가니 내정은 적막한데 춘향의 모 거동 보소. 미음 솥에 불 넣으며
 
393
“애고 애고 내 일이야. 모질도다 모질도다. 이서방이 모질도다. 위경 내 딸 아주 잊어 소식조차 돈절하네. 애고 애고 설운지고. 향단아 이리와 불 넣어라.”
 
394
하고 나오더니 울 안의 개울물에 흰 머리 감아 빗고 정화수 한 동이를 단하에 받쳐 놓고 복지(伏地)하여 축원하되
 
395
“천지지신 일월성신은 화위동심하옵소서. 다만 독녀 춘향이를 금쪽같이 길러내어 외손봉사 바라더니 무죄한 매를 맞고 옥중에 갇혔으니 살릴 길이 없삽니다. 천지지신(天地之神)은 감동하사 한양성 이몽룡을 청운에 높이 올려 내 딸 춘향 살려지이다.”
 
396
빌기를 다한 후
 
397
“향단아 담배 한 대 붙여 다오.”
 
398
춘향의 모 받아 물고 후유 한숨 눈물 질새, 이때 어사 춘향모 정성 보고
 
399
“나의 벼슬한 게 선영음덕으로 알았더니 우리 장모 덕이로다.”
 
400
하고
 
401
“그 안에 뉘 있나.”
 
402
“뉘시오.”
 
403
“내로세.”
 
404
“내라니 뉘신가.”
 
405
어사 들어가며
 
406
“이서방일세.”
 
407
“이서방이라니. 옳지 이풍헌 아들 이서방인가.”
 
408
“허허 장모 망령이로세. 나를 몰라, 나를 몰라.”
 
409
“자네가 뉘기여.”
 
410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 하였으니 어찌 나를 모르는가.”
 
411
춘향의 모 반겨하여
 
412
“애고 애고 이게 왠 일인고. 어디 갔다 이제 와. 풍세대작(風勢大作)터니 바람결에 풍겨 온가. 봉운기봉터니 구름 속에 싸여온가. 춘향의 소식 듣고 살리려고 와 계신가. 어서 어서 들어가세.”
 
413
손을 잡고 들어가서 촛불 앞에 앉혀 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걸인 중에는 상걸인이 되었구나. 춘향의 모 기가 막혀
 
414
“이게 웬 일이오.”
 
415
“양반이 그릇되매 형언(形言)할 수 없네. 그때 올라가서 벼슬 길 끊어지고 탕진가산(蕩盡家産)하여 부친께서는 학장질 가시고 모친은 친가로 가시고 다 각기 갈리어서 나는 춘향에게 내려와서 돈 천이나 얻어 갈까 하였더니 와서 보니 양가(兩家) 이력 말 아닐세.”
 
416
춘향의 모 이 말 듣고 기가 막혀
 
417
“무정한 이 사람아. 일차 이별후로 소식이 없었으니 그런 인사가 있으며 후긴지 바랐더니 이리 잘 되었소. 쏘아 논 살이 되고 엎질러진 물이 되어 수원수구(誰怨誰咎)할까마는 내 딸 춘향 어쩔라나.”
 
418
홧김에 달려들어 코를 물어 뗄려 하니
 
419
“내 탓이지 코 탓인가. 장모가 나를 몰라 보네. 하늘이 무심(無心)태도 풍운조화(風雲造化)와 뇌성뇌기(雷聲雷氣)는 있느니.”
 
420
춘향모 기가 차서
 
421
“양반이 그릇되매 간롱조차 들었구나.”
 
422
어사 짐짓 춘향모의 하는 거동을 보려 하고
 
423
“시장하여 나 죽겠네. 나 밥 한 술 주소.”
 
424
춘향모 밥 달라는 말을 듣고
 
425
“밥 없네.”
 
426
어찌 밥 없을꼬마는 홧김에 하는 말이었다. 이때 향단이 옥에 갔다 나오더니 저의 아씨 야단 소리에 가슴이 우둔우둔 정신이 울렁울렁 정처없이 들어가서 가만히 살펴보니 전의 서방님이 와 계(시)구나. 어찌 반갑던지 우루룩 들어가서
 
427
“향단이 문안이오. 대감님 문안이 어떠하옵시며 대부인 기후 안녕하옵시며 서방님께서도 원로에 평안히 행차하시니까.”
 
428
“오냐. 고생이 어떠하냐.”
 
429
“소녀 몸을 무탈하옵니다. 아씨 아씨 큰 아씨. 마오 마오 그리 마오. 멀고 먼 천리 길에 뉘 보려고 와계(시)관대 이 괄시가 왠 일이오. 애기씨가 알으시면 지레 야단이 날 것이니 너무 괄시 마옵소서.”
 
430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먹던 밥에 풋고추 저리김치 양념 넣고 단간장에 냉수 가득 떠서 모반에 받쳐 드리면서
 
431
“더운 진지 할 동안에 시장하신데 우선 요기하옵소서.”
 
432
어사또 반겨하며
 
433
“밥아 너 본지 오래로구나.”
 
434
여러가지를 한데다가 붓더니 숟가락 댈 것 없이 손으로 뒤져서 한편으로 몰아치더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하는구나.
 
435
춘향모 하는 말이
 
436
“얼씨구 밥 빌어먹기는 공성이 났구나.”
 
437
이때 향단이는 저의 애기씨 신세를 생가하여 크게 울든 못하고 체읍하여 우는 말이
 
438
“어찌할꺼나 어찌할꺼나. 도덕 높은 우리 애기씨 어찌하여 살리시려오. 어찌꺼나요 어찌꺼나요.”
 
439
실성으로 우는 양을 어사또 보시더니 기가 막혀
 
440
“여봐라 향단아.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너의 아기씨가 설마 살지 죽을소냐. 행실이 지극하면 사는 날이 있느니라.”
 
441
춘향모 듣더니
 
442
“애고 양반이라고 오기는 있어서 대체 자네가 왜 저 모양인가.”
 
443
향단이 하는 말이
 
444
“우리 큰 아씨 하는 말을 조금도 괘념 마옵소서. 나 많아야 노망한 중에 이 일을 당해 놓(으)니 홧김에 하는 말을 일분인들 노하리까. 더운 진지 잡수시오.”
 
445
어사또 밥상 받고 생각하니 분기탱천하여 마음이 울적, 오장이 울렁울렁 석반이 맛이 없어
 
446
“향단아. 상 물려라.”
 
447
담뱃대 투툭 털며
 
448
“여보소 장모. 춘향이나 좀 보아야지.”
 
449
“그러지요. 서방님이 춘향을 아니 보아서야 인정이라 하오리까.”
 
450
향단이 여쭈오되
 
451
“지금은 문을 닫았으니 파루치거든 가사이다.”
 
452
이때 마침 파루를 뎅뎅 치는구나. 향단이는 미음상 이고 등롱 들고 어사또는 뒤를 따라 옥문간 당도하니 인적이 고요하고 쇄장이도 간 곳 없네.
 
453
이때 춘향이 비몽사몽간에 서방님이 오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이요, 몸에는 홍삼이라. 상사일념(相思一念)에 목을 안고 만단정회(萬端情懷)하는 차라
 
454
“춘향아.”
 
455
부른들 대답이 있을소냐.
 
456
어사또 하는 말이
 
457
“크게 한번 불러 보소.”
 
458
“모르는 말씀이오. 예서 동헌이 마주치는데 소리가 크게 나면 사또 염문(廉問)할 것이니 잠깐 지체하옵소서.”
 
459
“무에 어때, 염문이 무엇인고. 내가 부를 게 가만 있소. 춘향아.”
 
460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일어나며
 
461
“허허 이 목소리 잠결인가 꿈결인가. 그 목소리 괴이하다.”
 
462
어사또 기가 막혀
 
463
“내가 왔다고 말을 하소.”
 
464
“왔단 말을 하게 되면 기절담락(膽落)할 것이니 가만히 계옵소서.”
 
465
춘향이 저의 모친 음성을 듣고 깜짝 놀래어
 
466
“어머니 어찌 오셨소. 몹쓸 딸자식을 생각하와 천방지방 다니다가 낙상하기 쉽소. 일후일랑은 오실라 마옵소서.”
 
467
“날랑은 염려말고 정신을 차리어라. 왔다.”
 
468
“오다니 뉘가 와요.”
 
469
“그저 왔다.”
 
470
“갑갑하여 나 죽겠소. 일러 주오. 꿈 가운데 님을 만나 만단정회하였더니 혹시 서방님께서 기별 왔소. 언제 오신단 소식 왔소. 벼슬 띠고 내려온단 노문 왔소. 답답하여라.”
 
471
“너의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가 내려왔다.”
 
472
“허허. 이게 왠 말인가. 서방님이 오시다니 몽중에 보던 님을 생시에 본단말(인)가.”
 
473
문틈으로 손을 잡고 말 못하고 기색하며
 
474
“애고 이게 누구시오. 아마도 꿈이로다. 상사불견(相思不見) 그린 님을 이리 수이 만날손가. 이제 죽어 한이 없네. 어찌 그리 무정한가. 박명하다 나의 모녀. 서방님 이별 후에 자나 누(우)나 님 그리워 일구월심 한이더니 내 신세 이리 되어 매에 감겨 죽게 되는 날 살리려 와 셰시오.”
 
475
한참 이리 반기다가 님의 형상 자세 보니 어찌 아니 한심하랴.
 
476
“여보 서방님. 내 몸 하나 죽는 것은 설운 마음 없소마는 서방님 이 지경이 왠 일이오.”
 
477
“오냐 춘향아. 설워 마라. 인명이 재천인데 설만들 죽을소냐.”
 
478
춘향이 저의 모친 불러
 
479
“한양성 서방님을 칠년대한(七年大旱) 가문 날에 갈민대우 기다린 들 나와 같이 자진(自盡)턴가. 심은 나무(가) 꺾어지고 공든 탑이 무너졌네. 가련하다 이내 신세 하릴없이 되었구나. 어머님 나 죽은 후에라도 원이나 없게 하여 주옵소서. 나 입던 비단 장옷 봉장 안에 들었으니 그 옷 내어 팔아다가 한산세저 바꾸어서 물색 곱게 도포 짓고 백방사주 긴 치마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관, 망, 신발 사드리고 절병, 천은비녀, 밀화장도, 옥지환이 함 속에 들었으니 그것도 팔아다가 한삼, 고의 불초(不肖)찮게 하여 주오. 금명간 죽을 년이 세간 두어 무엇할까. 용장, 봉장, 빼닫이를 되는대로 팔아다가 별찬 진지 대접하오. 나 죽은 후에라도 나 없다 말으시고 날 본 듯이 섬기소서. 서방님 내 말씀 들으시오. 내일이 본관 사또 생신이라. 취중에 주망 나면 나를 올려 칠 것이니 형문 맞은 다리 장독(杖毒)이 났으니 수족인들 놀릴손가. 만수운환 흐트러진 머리 이렁저렁 걷어 얹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들어가서 장폐하여 죽거들랑 삯군인 체 달려들어 둘러업고 우리 둘이 처음 만나 놀던 부용당의 적막하고 요적(寥寂)한 데 뉘어 놓고 서방님 손수 염습하되 나의 혼백 위로하여 입은 옷 벗기지 말고 양지 끝에 묻었다가 서방님 귀히 되어 청운에 오르거든 일시도 둘라 말고 육진장포 개렴하여 조촐한 상여 위에 덩그렇게 실은 후에 북망산천 찾아갈 제 앞 남산 뒷 남산 다 버리고 한양성으로 올려다가 선산 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춘향지묘라 여덟자만 새겨 주오. 망부석이 아니 될까. 서산에 지는 해는 내일 다시 오련마는 불쌍한 춘향이는 한 번 가면 어느 때 다시 올까. 신원이나 하여주오. 애고 애고 내 신세야. 불쌍한 나의 모친 나를 잃고 가산을 탕진하면 하릴없이 걸인 되어 이집 저집 걸식타가 언덕 밑에 조속조속 졸면서 자진하여 죽게 되면 지리산 갈가마귀 두 날개를 떡 벌리고 둥덩실 날아 들어 까옥까옥 두 눈을 다 파먹은들 어느 자식 있어 후여 하고 날려 주리.”
 
480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481
어사또
 
482
“울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느니라. 네가 나를 어찌 알고 이렇듯이 설워하느냐.”
 
483
작별하고 춘향 집에 돌아왔지.
 
484
춘향이는 어둠침침 야삼경에 서방님을 번개같이 얼른 보고 옥방에 홀로 앉아 탄식하는 말이
 
485
“명천(明天)은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厚薄)이 없건마는 나의 신세 무슨 죄로 이팔청춘에 님 보내고 모진 목숨 살아 이 형문 이 형장 무슨 일(인)고. 옥중고생 삼사삭에 밤낮없이 님 오시기만 바라더니 이제는 님의 얼굴 보았으니 광채없이 되었구나. 죽어 황천에 돌아간들 제왕전(諸王前)에 무슨 말을 자랑하리.”
 
486
애고 애고 설이 울 제 자진하여 반생반사(半生半死)하는구나.
 
487
어사또 춘향 집에 나와서 그날 밤을 새려 하고 문안 문밖 염문할 새 길청에 가 들으니 이방 승발 불러 하는 말이
 
488
“여보소. 들으니 수의도가 새문 밖 이씨라더니 아까 삼경에 등롱불 켜 들고 춘향모 앞세우고 폐의파관한 손님이 아마도 수상하니 내일 본관 잔치 끝에 일습을 구별하여 생탈없이 십분 조심하소.”
 
489
어사 그 말 듣고
 
490
“그놈들 알기는 아는데.”
 
491
하고 또 장청(杖廳)에 가 들으니 행수, 군관 거동 보소.
 
492
“여러 군관님네 아까 옥거리 바장이는 걸인 실로 괴이하데. 아마도 분명 어사(인)듯하니 용모파기 내어 놓고 자세히 보소.”
 
493
어사또 듣고
 
494
“그놈들 개개여신이로다.”
 
495
하고 현사에 가 들으니 호장 역시 그러하다. 육방(六房) 염문 다 한 후에 춘향집 돌아와서 그 밤을 샌 연후에 이튿날 조사 끝에 근읍(近邑) 수령이 모여든다. 운봉영장, 구례, 곡성, 순창, 옥과, 진안, 장수 원님이 차례로 모여든다. 좌편에 행수, 군관 우편에 청령, 사령 한가운데 본관은 주인이 되어 하인 불러 분부하되
 
496
“관청색 불러 다담을 올리라. 육고자 불러 큰 소를 잡고, 예방(禮房) 불러 고인을 대령하고, 승발 불러 차일을 대령하라. 사령 불러 잡인을 금하라.”
 
497
이렇듯 요란할 제 기치, 군물(軍物)이며 육각풍류(六角風流) 반공에 떠 있고 홍의홍상(紅衣紅裳) 기생들은 백수(白手) 나삼(羅衫) 높이 들어 춤을 추고 지화자 둥덩실 하는 소리 어사또 마음이 심란하구나.
 
498
“여봐라 사령들아 . 너의 원 전에 여쭈어라. 먼 데 있는 걸인이 좋은 잔치에 당하였으니 주효(酒肴) 좀 얻어 먹자고 여쭈어라.”
 
499
저 사령 거동 보소.
 
500
“어느 양반이건데, 우리 안전님 걸인 혼금(혼禁)하니 그런 말은 내도 마오.”
 
501
등 밀쳐내니 어찌 아니 명관(名官)인가. 운봉이 그 거동을 보고 본관에게 청하는 말이
 
502
“저 걸인의 의관은 남루하나 양반의 후예인 듯하니 말석에 앉히고 술잔이나 먹여 보냄이 어떠하뇨.”
 
503
본관 하는 말이
 
504
“운봉 소견대로 하오마는.”
 
505
하니, 마는 소리 후 입맛이 사납겠다. 어사 속으로
 
506
“오냐. 도적질은 내가 하마. 오라는 네가 져라.”
 
507
운봉이 분부하여
 
508
“저 양반 듭시래라.”
 
509
어사또 들어가 단좌하여 좌우를 살펴보니 당상의 모든 수령 다담을 앞에 놓고 진양조가 양양할 제 어사또 상을 보니 어찌 아니 통분하랴. 모 떨어진 개상판에 닥채 젓가락,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놓았구나. 상을 발길로 탁 차 던지며 운봉의 갈비를 직신
 
510
“갈비 한대 먹고지고.”
 
511
“다라도 잡수시오.”
 
512
하고 운봉이 하는 말이
 
513
“이러한 잔치에 풍류로만 놀아서는 맛이 적사오니 차운 한 수씩 하여 보면 어떠하오.”
 
514
“그 말이 옿다.”
 
515
하니 운봉이 운을 낼 제 높을 고(高)자, 기름 고(膏)자 두 자를 내어 놓고 차례로 운을 달 제 어사또 하는 말이
 
516
“걸인이 어려서 추구권이나 읽었더니 좋은 잔치 당하여서 주효를 포식하고 그저 가기 무렴하니 차운 한 수 하사이다.”
 
517
운봉이 반겨 듣고 필연(筆硯)을 내어주니 좌중이 다 못하여 글 두귀를 지었으되 민정(民情)을 생각하고 본관 정체(政體)를 생각하여 지었것다.
 
518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519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520
촉루낙시(燭淚落時) 민루낙(民淚落)이요
521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522
이 글 뜻은
 
523
금동이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524
이렇듯이 지었으되 본관은 몰라 보고 운봉이 글을 보며 내념에
 
525
“아뿔싸. 일이 났다.”
 
526
이때 어사또 하직하고 간 연후에 공형 불러 분부하되
 
527
“야야. 일이 났다.”
 
528
공방 불러 포진(鋪陳) 단속, 병방 불러 역마(驛馬) 단속, 관청색 불러 다담 단속, 옥 형방 불러 죄인 단속, 집사 불러 형구(刑具) 단속, 형방 불러 문부 단속, 사령 불러 합번 단속, 한참 이리 요란할 제 물색없는 저 본관이
 
529
“여보 운봉은 어디를 다니시오.”
 
530
“소피하고 들어오오.”
 
531
본관이 분부하되
 
532
“춘향을 급히 올리라.”
 
533
고 주광이 난다.
 
534
이때에 어사또 군호할 제 서리 보고 눈을 주니 서리, 중방 거동 보소. 역졸 불러 단속할 제 이리 가며 수군 저리 가며 수군수군. 서리, 역졸 거동 보소. 외올 망건 공단 쓰개 새 평립 눌러 쓰고 석 자 감발 새 짚신에 한삼(汗衫) 고의 산뜻 입고 육모 방망이 녹피 끈을 손목에 걸어 쥐고 예서 번뜻 제서 번뜻 남원읍이 우꾼우꾼. 청파역졸 거동 보소. 달같은 마패(馬牌)를 햇빛같이 번뜻 들어
 
535
“암행어사 출또야.”
 
536
외(치)는 소리 강산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눕는 듯 초목금수(草木禽獸)인들 아니 떨랴. 남문에서
 
537
“출또야.”
 
538
북문에서
 
539
“출또야.”
 
540
동.서문 출또 소리 청천(靑天)에 진동하고
 
541
“공형(公兄) 들라.”
 
542
외(치)는 소리 육방(六房)이 넋을 잃어
 
543
“공형이오.”
 
544
등채로 휘닥딱
 
545
“애고 중다.”
 
546
“공방 공방.”
 
547
공방이 포진 들고 들어오며
 
548
“안하려던 공방을 하라더니 저 불 속에 어찌 들랴.”
 
549
등채로 휘닥딱
 
550
“애고 박 터졌네.”
 
551
좌수 별감 넋을 잃고 이방 호장 실혼(失魂)하고 삼색나졸 분주하네. 모든 수령 도망할 제 거동 보소. 인궤 잃고 과줄 들고 병부 잃고 송편 들고 탕건 잃고 용수 쓰고 갓 잃고 소반 쓰고 칼집 쥐고 오줌누기. 부서지(느)니 거문고요 깨지느니 북 장고라. 본관이 똥을 싸고 멍석구멍 새앙쥐 눈 뜨듯 하고 내아(內衙)로 들어가서
 
552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르다 목 들여라.”
 
553
관청색(官廳色)은 상을 잃고 문짝 이고 내달으니 서리 역졸 달려들어 후닥딱
 
554
“애고 나 죽네.”
 
555
이때 수의사또 분부하되
 
556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를 금(禁)하고 객사(客舍)로 도처하라.”
 
557
좌정 후에
 
558
“본관은 봉고파직하라.”
 
559
분부하니
 
560
“본관은 봉고파직이오.”
 
561
사대문(四大門)에 방(榜) 붙이고 옥 형리 불러 분부하되
 
562
“네 골 옥수를 다 올리라.”
 
563
호령하니 죄인을 올리거늘 다 각각 문죄 후에 무죄자(無罪者) 방송할 새
 
564
“저 계집은 무엇인고.”
 
565
형리 여쭈오되
 
566
“기생 월매 딸이온데 관정(官庭)에 포악한 죄로 옥중에 있삽내다.”
 
567
“무슨 죄인고.”
 
568
형리 아뢰되
 
569
“본관 사또 수청으로 불렀더니 수절이 정절이라 수청 아니 들려 하고 관전(官前)에 포악한 춘향이로소이다.”
 
570
어사또 분부하되
 
571
“너만 년이 수절한다고 관정 포악하였으니 살기를 바랄소냐. 죽어 마땅하되 내 수청도 거역할까.”
 
572
춘향이 기가 막혀
 
573
“내려오는 관장(官長)마다 개개이 명관(名官)이로구나. 수의사또 듣조시오. 층암절벽 높은 바위 바람 분들 무너지며 청송녹죽 푸른 나무가 눈이 온들 변하리까. 그런 분부 마옵시고 어서 바삐 죽여주오.”
 
574
하며
 
575
“향단아 서방님 어디 계신가 보아라. 어젯밤에 옥 문간에 와 계실 제 천만 당부하였더니 어디를 가셨는지 나 죽는 줄 모르는가.”
 
576
어사또 분부하되
 
577
“얼굴 들어 나를 보라.”
 
578
하시니 춘향이 고개 들어 대상(臺上)을 살펴보니 걸객(乞客)으로 왔던 낭군 어사또로 뚜렷이 앉았구나. 반 웃음 반 울음에
 
579
“얼씨구나 좋을씨고 어사낭군 좋을씨고. 남원읍내 추절(秋節)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李花春風)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580
한참 이리 즐길 적에 춘향모 들어와서 가없이 즐겨하는 말을 어찌 다 설화(說話)하랴. 춘향의 높은 절개 광채 있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어사또 남원 공사(公事) 닦은 후에 춘향 모녀와 향단이를 서울로 치행(治行)할 제 위의(威儀) 찬란하니 세상 사람들이 누가 아니 칭찬하랴. 이때 춘향이 남원을 하직할 새 영귀(榮貴)하게 되었건만 고향을 이별하니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아니 되랴.
 
581
놀고 자던 부용당(芙蓉堂)아. 너 부디 잘 있거라. 광한루 오작교며 영주각(瀛州閣)도 잘 있거라. 춘초는 연년녹하되 왕손은 귀불귀라 날로 두고 이름이라. 다 각기 이별할 제 만세무량(萬歲無量)하옵소서. 다시 보기 망연이라.
 
582
이때 어사또는 좌.우도 순읍(巡邑)하여 민정을 살핀 후에 서울로 올라가 어전(御前)에 숙배하니 삼당상 입시(入侍)하사 문부(文簿)를 사정(査定) 후에 상(上)이 대찬(大讚)하시고 즉시 이조참의 대사성을 봉하시고 춘향으로 정렬부인을 봉하시니 사은숙배하고 물러나와 부모 전에 뵈온대 성은을 축수(祝壽)하시더라. 이때 이판 호판 좌.우.영상 다 지내고 퇴사 후에 정렬부인으로 더불어 백년동락(百年同樂)할 새 정렬부인에게 삼남삼녀(三男三女)를 두었으니 개개이 총명하여 그 부친을 압두하고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직거일품으로 만세유전하더라.
【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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