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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三代) ◈
◇ 봉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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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염상섭
1
삼대(三代)
2
12. 봉욕
 
 
3
주부는 청년들의 말에 노하면서도 취한 사람으로 돌리고 뜯어말려 돌려보내려고만 하였다. 그러나 병화는 그렇지 못하였다. 눈괘가 곤두서며 쇠한다.
 
4
"더러운 것들이라? 고발을 한다? 더러운 걸 무얼 봤니? 마뜩치 않은 놈들! 너희들은 뭐냐? 경찰의 개냐?"
 
5
경애를 떼어놓고 몹시 노려보던 병화는 단번에 달려들려 하였다. 저편도 물론 그대로 있지는 않았다. 그러자 경애는 병화를 마주 얼싸안아버리고 주부는 두 청년을 두 활개를 벌리고 가로막았다. 상훈은 그대로 앉아서 물계만 본다. 술이 금방 번쩍 깨는 것 같았다.
 
6
그러나 두 계집의 힘으로 술 취한 세 장정을 막아낼 장비가 없었다. 담배 재떨이가 병화의 뺨 옆으로 날며 맞은 벽에 우지끈 하고 악살이 되는 것을 군호로 하고 세 사람은 맞달라붙었다. 어느덧 한 놈은 벌써 나둥그러졌다. 상훈도 일어서려니까 나둥그러진 자가 일어나서 상훈에게 달려든다. 이번에는 병화와 맞붙은 자와 상훈이 나둥그러졌다. 이것을 보자 병화는 둘쨋번 넘어진 자를 서너 번 발기로 쥐어박고서 상훈에게 응원을 갔다. 멱살을 낚아가지고 일깃거리는 테이블과 교의에 허리를 걸어서 메다치니 우지끈하고 부서지는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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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치가 되어 쓰러졌다.
 
8
"잘한다! 잘한다!"
 
9
하고 경애는 마치 씨름판이나 투우장에 와서 구경하듯이 바라만 보고, 주부는 아직도 불기가 있는 난로에 와서 쓰러질까보아 가로막고만 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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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단박에 고꾸라져서 외투는 흙투성이가 되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깨물렸는지 짓찧었는지 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추켜들고 씨근거리며 앉았으나 경애는 못 본 척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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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는 길 가던 사람이 우중우중 모여 서서 두런두런하는 모양이나 아무도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12
두 청년은 일어서서 이제는 덤비지는 못하고 욕지거리만 하였으나 또 달려들려는 거동이라 주부가 발발 떨며 두 청년의 흙을 털어 주고 어서 가라고 달래나 장본인인 경애는 샐샐 웃고만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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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그래? 젊은 사람들이 술들을 먹거든 곱게 삭여야지! 그러나 애들 썼네! 우선 한숨들 돌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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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외투 주머니에서 해태표를 꺼내어 일일이 권하러 돌아다녔으나 두 청년은 손으로 탁 쳐버리고 상훈은 권하지도 앉으니까 차례에 못 가고 병화만 하나를 받아서 붙여주는 불에 붙이었다. 경애도 피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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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쌓이고 이 좋은 날 이 속에서 싸우다니... 훈련원 벌판, 아니 경성 운동장으로 가서 최후의 결승을 하거나 장충단 솔밭에 가서 결투를 하고 경애는 또 골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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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너 같은 놈은 버릇을 가르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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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숨을 돌려가지고 병화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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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지 가자! 하지만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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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비릿하게 경찰서에 갈 거 무어 있니. 대문 밖에라도 나가서 요정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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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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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병화가 이번에는 찢어진 외투를 벗어붙이려니까 문간에서 동동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호기스럽게 호령하듯 문 열라는 소리가 순사다. 주부는 구세주나 만난 듯이 얼핏 가서 열었다. 순사는 왜들 떠드느냐고 호령을 하며 들어와서 휘둘러보다가 병화를 유심히 노려본다. 순행 순사의 출현을 두 청년도 반가워하였다. 일본 순사이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하였던 마음이 풀리니까 다시 취해들 올라왔다. 순사가 보기에는 모두 주정뱅이 골라서 대강 이야기를 듣고 모두 파출소로 가자고 한다. 주부와 경애도 가자고 하였으나 경애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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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는 집이 번다고 사정을 하며 의자며 기명 깨어진 것은 갑을 안 받아도 좋으니 어서들 끌고 가서 무사히 보내달라고만 부탁하였다. 상훈도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서면서도 누구나 만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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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은 쫙 헤어졌다가 하나 둘씩 모여서 줄줄 쫓아온다. 순사도 이제는 제지도 아니하고 가만 내버려둔다. 좌우 양쪽의 상점 문은 다 들이고 낮같이 밝은 전등불이 눈 위에 반사되어 끌려가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한층 더 분명히 보인다. 상훈은 이 밤중에 설마 아는 사람, 그 중에도 교회 사람을 만나랴 싶었으나 그래도 애가 씌어서 멀리서 사람 그림자만 나타나도 겁을 벌벌 내었다. 외투깃을 올리고 노랑 안경을 다시 꺼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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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에 들어가서는 데리고 간 순사가 한층 더 뽐내며 두 일본 청년의 말부터 들은 뒤에 병화와 상훈의 말은 들으려고도 않고 으르딱딱거렸다. 옆의 순사는 경애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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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는 바커스 계집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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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반색을 하는 듯이 웃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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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끼(난봉)를 작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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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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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데 와서 대접받으랴마는 생전 처음 당하는 일이라 경애는 분해 못 견디었다. 자기가 조선 사람이고 가외 술집에 있기 때문에 이런 하대를 받고 놀림감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찔렀다. 하나 무어라고 대거리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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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온 순사가 동료에게 설명한다. 그 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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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쓰또 키스오! 고이쓰또 키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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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다. 이놈과 입을 맞추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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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이왕이면 돈 무게가 나가는 남자하고 키스를 하든 무얼 하든 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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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젊은 순사가 병화의 구지레한 꼴을 바라보다가 경애를 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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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 넓은 일이외다. 순사 나리란 도적놈에게만 필요한 줄 알았더니 꽤 바쁘신 모양이로군! 키스 도적놈을 잡는 것도 아닐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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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도 취중이요 분한 김이라 대거리로 한 번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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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마라! 건방진 년! 예가 어딘 줄 알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리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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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온 순사가 불호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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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술이 덜 깨었군! 본서로 데리구 가서 재워야 하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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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소리를 했다가 핀잔 맞은 순사도 발끈하였다. 그래도 미인의 취담이라 재롱으로 보았던지 손을 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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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한 경위를 대강 취조를 하고 나서도 일본 청년은 주소 성명만 적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세 사람은 모른 척하고 한참 세워두더니 본서로 전화를 건다. 말눈치가 저편에서는 그대로 놓아보내라 하는 모양인데 이 편에서,
 
42
"암만 해도 너무 반항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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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어쩌고 한다.
 
44
전화를 끊더니 아까 실없는 소리를 하던 순사더러 본서로 데리고 가라고 분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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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무슨 반항을 했단 말이오? 아까 그놈들하고 함께 가기 전에는 안 갈 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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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화는 눈에 쌍심지가 솟았다. 경관에게 육장 부대끼는 병화는 이런 데쯤에 비쓱비쓱할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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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우리집으로 갈 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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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경애가 파출소에서 돌쳐서 나오려니까 순사는 허겁을 해서 목덜미를 휘어잡았다.
 
49
경애는 삐끗하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 가누고 다시 붙들려 섰다. 줄기차게 지키고 섰던 구경꾼들 속에서는 킥킥 웃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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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고 갈 순사는 부리나케 칼을 저그럭거리며 차고 모자를 떼어 쓰며 나선다. 경애는 그래도 발악을 하고 병화도 발을 구르며 떠들어대었으나 무슨 소린지 순사들의 호령 소리와 맞장구를 쳐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훈은 반씩반씩 어우르는 일본말로 애걸을 하고 섰다. 그러나 경애에게 감정이 잔뜩 난 순사들은 마음을 돌리려고는 아니한다. 그렇다고 세 사람을 포승으로 묶어가지고 갈 수도 없고 지랄들을 치는 것을 눈길에 끌고 나서기도 싫은 모양이다. 병화는 뺨을 두어 번 얻어맞았으나 얻어맞으면 더 날뛴다. 애초부터 엄포로 가자고 한 것이었던지 본서로 가는 것은 흐지부지하고 병화의 정강이를 구둣발길로 걷어차서 마루에 주저앉게 하니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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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이 그 틈을 타서 또 애걸을 하니까 그제야 주소 성명 직업을 적으라 하고 상훈만을 나가라 한다. 직업에 학교 교원이라고 쓰니까 어느 학교냐고 묻더니 장황한 설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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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스쿨이 아닌가! 교원이요 게다가 크리스천으로서 그만한 지각이 들었을 사람이 젊은 사람을 데기고 다니면서 술을 먹고 우리들을 성이 가시게 하고 다니다니 창피한 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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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꾸짖듯 꾸짖는 것도 고개를 굽실거리며 듣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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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혼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상훈 말로 내놓을 리도 없다. 순사는 변화를 구류간 속인지 뒷간 속인지 저 구석을 끌어다 넣어버렸다. 경애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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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여기 있거라. 한데 두면 또 키스를 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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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숙직실인 다다밋방에다 데려다두었다. 경애는 그래도 미인이라 우대를 하는 것이다. 저희들 자는 방에다가 넣어두는 것도 우스운 일이나 어쨌든 어한도 되고 구경꾼 보는 데 섰는 것보다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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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이 하는 수 없이 혼자 바커스로 향하여 가려니까 구경꾼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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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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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간통쯤 떨어져가려니까 뒤에서 누가 부른다. 돌려다보니 중산모 쓰고 양복 입은 청년이다. 목도리를 칭칭 감아서 그런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상훈은 등에 식은땀이 쭉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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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딜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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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모자도 벗지 않고 인사를 하며 목도리 속에서 턱을 빼낸다. 그러나 역시 상훈은 알아볼 수 없다. 청년은 짓궂은 웃음을 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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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몰라 보십니까? 덕기하고 한 회 졸업한 xxx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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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제 이름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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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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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대꾸를 하여주었으나 결코 반갑지 않은 손이었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후르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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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의 그 여자도 같은 옛날 동창생인데요.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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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젊은 애들이 술이 취해서 싸움을 하는 것을 말리려고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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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은 어름어름하고 어서 빠져 달아나려 하였다. 그러나 짓궂게 쫓아오며 잔소리를 꺼내놓다가 추우니 어디 가서 술을 먹자고 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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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저를 잘 모르셔도 저는 길러내주신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제 정성을 그렇게 막으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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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주정처럼 하는 소리가 비웃는 것같이 들렸다. 상훈은 화를 참으며 달래어 보내고 나니 마침 바커스 주부와 마주쳤다. 주부는 기다리다 못해서 문을 잠그고 파출소에 가서도 거의 한 시간이나 애걸복걸을 하여 두 사람을 데려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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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그렇게까지 실랑이를 한 것은 그 영업을 벌이고도 어느 기회에 한 잔 안 낸 것과, 언젠가 조사를 갔을 때 경애가 나와서 보통 카페 계집애처럼 아양을 부리지 않은 것들이 감정을 사게 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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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상훈은 자리 속에 누워서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마장꾼들이 새벽 3시에 들어오는 주인을 기다리고 그대로들 있어서 함께 자버렸지만 그야말로 노름꾼처럼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어디 갔더냐고 묻는 데에 변변히 대답도 못하였다. 생각할수록 자기 낯이 뜨거웠다. 봉욕, 봉욕 하여야 그렇게도 가지가지로 욕을 톡톡히 보기는 좀처럼 어려울 것 같았다. 경애에게 기구망측지상이라고 놀림을 받았다든지 파출소에 불려가서 설유를 당한 것은 위례두커녕 경애가 병화와 입을 맞추고 그 법석을 한 것과 나중판에 예전 소학교 졸업생이라는 아이를 만난 것이 생각할수록 분하고 꺼림하였다. 병화의 춤에 논 것이지만 어쨌든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저녁에 예배당에 갔다가 오는 길에 또 다시 그는 경애를 한번 찾아서 보리라는 궁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사하고 어젯밤에 만남 그놈이 술을 먹고 다니는 것을 보면 교회에는 아니 다니는 것 같으나 그래도 저희들 축에서 소문이 돌아 교회 속에까지 말이 들어갈까 보아 그것이 또 염려가 되기는 하였다.
【원문】봉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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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상섭(廉想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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