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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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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1.15
채만식
1
이튿날.
 
2
허생은 십만 냥 돈에서 이만 냥을 서울 다방골 변진사에게로 환을 놓아 보냈다. 만 냥 빛을 반드시 본전의 곱절을 하여 이만 냥으로 갚는다는 약조도, 그러라는 법도 없던 것이나 허생은 당장 십만 냥토록 많은 돈이 필요치가 아니하므로, 아무려나 우선 그렇게 처치를 한 것이었었다.
 
3
나머지 팔만 냥에서 만 냥을 떼어 강선달을 행하로 주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칠만 냥은 강선달을 시켜 그와 거래를 하는 강경 장터의 큰 물산객주 윤서방집으로, 허생이 가서 찾도록 환을 놓아보내게 하였다.
 
4
만 냥으로 장사를 하여 십만 냥의 이문을 남겨 그렇게 후하게 처분을 하면서도 허생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서는 미영 몇 필을 끊여들여 먹쇠와 함께 겨울옷 한 벌씩을 해 입은 것밖에는 단돈 한 푼을 쓰는 일이 없었다.
 
5
먹쇠가 본댁에도 돈을 좀 보내 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무얼 잡수고 지내시라고 모른 척하시느냐고 게두덜거리는 것을, 허생은 서울서 떠날 제 돈 백 냥을 보낸 것이 있으니, 졸략히 한동안 지낼 테지 하고 하였다.
 
6
가난하여서 혹은 양반의 등쌀에 살 수가 없게 된 사람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데려다 준다는 소문이 안성읍에도 널리 퍼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생을 찾아왔다.
 
7
허생은 일일이 사정을 묻고 사람도 보고 한 후에 노수를 주어 새 달 보름날까지 가족을 거느리고 충청도 강경 장터로 오라고 일러서 돌려보내고 하였다. 사흘 동안에 이백여 명이나 왔었다.
 
8
허생은 이 뒤로도 오는 사람이 있거든, 자기가 하던 대로 이리이리 하여 달라고 강선달에게 부탁을 하고 마침내 안성을 떠났다.
 
9
아침 일찌감치 허생은 먹쇠를 데리고 나섰다.
 
10
허생은 행색은 지나간 팔월, 처음으로 이곳을 올 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어 꾀죄죄하고 초라하였다. 미영으로 안팎 옷 한 벌을 새로 해 입은 것이었으나, 입은 지가 오래서 벌써 때가 묻었다. 갓은 올 때에 쓰고 왔고, 이내 쓰고 있던 헌 갓이었다. 노상에서 먹쇠가 삼아 신긴 세총박이 털메짚신 대신 나막신이었다.
 
11
처음 와서 얼마 아니 되어 강선달이 그 나막신이 하도 민망하여 가죽신을 주면서 신으라고 하였다.
 
12
허생은 그런 것은 신을 줄도 모르고 신어본 적도 없다고 하였다.
 
13
“그럼, 허다못해 짚신이나 미투리도 신으서야지, 저 조금 불편하십니까.”
 
14
강선달이 그러는 말에 허생은
 
15
“짚신이나 미투리는 마른날밖에 못 신지만, 나막신은 진날 마른날 두루 신으니 그보다 더 편리한 신발이 있소.”
 
16
하였다.
 
17
강선달은 비단 신발뿐이 아니라, 그 동안 옷도 몇 차례 값진 비단 등 속으로 일습씩을 짓게 하여 가지고 나와서 허생에게 권을 하였다. 그러나 허생은 번번이 거절을 하고 입지 아니하였다.
 
18
고기가 생선도 먹지 아니하였다. 밥상에 고기와 생선이 올라도 저깔도 대지 않고, 채소와 장만으로 밥을 먹었다.
 
19
허생으로 오직 한 가지 과분한 것이 있었다면, 술울 조금씩 먹은 것이었었다. 며칠 걸러큼씩 밤으로 강선달이 향기 있고 맛좋은 술을 내온다치면, 여남은 잔씩 기울이기를 매우 즐겨하였다. 그것도 매일 밤은 아니고 며칠 걸러큼씩이요, 또 낮에는 절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아니하였다.
 
20
허생이 안사랑 중문 밖으로 나서는데 네패 교군 하나가 마침 등대를 하고 있었다.
 
21
강선달이 허생의 소매를 잡듯 하면서 간곡히
 
22
“마지막 청이올시다. 이걸 타고 가시지요.”
 
23
한다.
 
24
허생은 웃으면서
 
25
“성한 두 다리를 두고 어째 그런 걸 타고 다니오.”
 
26
“저한테는 그대지도 후히 해주섰는데, 저는 그것을 만분 일도 보답치 못해 차마 도리가 되였읍니까.”
 
27
“괜헌 말씀을. 아 내가 만 냥을 들여, 십만 냥 번 것이, 따지고 보면 그게 다아 강선달이 잘 서두리를 해준 덕택이 아니오. 그런 일을 생각하면, 돈 만 냥 드린 것이 오히려 나는 미흡한 생각이 드는데, 후하달 것이 무엇 있겠소.”
 
28
“겸사 말씀이시지. 자아, 날도 차고 또 강경 장타 이백 리를 걸어가시자면 아모래도 이틀은 가서야 하시니 조옴 고생이십니까. 어서 오르십시요.”
 
29
“여보 강선달?”
 
30
“네.”
 
31
“하나님이 인간에게 두 다리를 점지하신 것은 제가끔 제 발로 걸어다니도록 마련을 하시느라고 그러신 노릇이 아니겠오. 그러니 성한 두 다리를 가지고도 교군이니 무어니를 타고 다니는 것은 첫째 왈 하늘의 뜻에 거슬리는 것.”
 
32
“………”
 
33
“또오, 사람은 매일반인데, 누구는 교군 위에 편안히 앉어 가고, 누구는 사람 무게, 교군 무게 해서 그 무건 것을 메고 가고, 그런 공편되지 못할 데가 있오. 그것도 나이 많은 노인이라든가 병자라든가. 먼 길을 걷기 어려운 여인이나 어린 사람이라든가 그렇다면 혹시 모르지오만, 두 다리와 육신이 멀쩡하여 가지고, 끄덱끄덱 사람을 타고 다녀서야 그 될 말이오.”
 
34
“그럼, 말을 타시도록 하실까요?”
 
35
“말은 급한 길을 갈 때나 타라는 것이지, 편안하자고 타서는 안되지요. 한가한 사람이 편안히 가지고 타는 그 말이, 그동안 짐을 싣거드면, 그만침 일한 것(勞動)이 떨어지고, 일한 것이 떨어지니 나라에 그만침 이(利)가 생기고 하지 않소. 그뿐더러, 말을 타자면 불가불 마부가 있어야 하니, 말을 탄다는 것은 매양 마부를—————사람을 타는 것과 진배 없읍넨다.”
 
36
강선달은 하릴없이 하인을 시켜 미투리를 가져오게 한다.
 
37
“이백 리 길을 나막신을 신고야 가십니까. 이걸 신으시지요.”
 
38
강선달이 미투리를 돌기 매어, 발부리에 놓아주는 것을 허생은 웃으면서
 
39
“가다가 우리 먹쇠가, 보기에 딱하면 세총박이 털메짚신을 삼아 줄 테지만, 쯧, 이왕 그럼 신고 가지요.”
 
40
하고 미투리를 신은 후에, 나막신은 먹쇠더러 어깨에 멘 구럭에다 건사하도록 이른다.
 
41
그럴 즈음에 머리와 매무시를 흐트린 배젊은 여자 하나가 허둥거리면서 달려들었다.
 
42
여자는 허생을 알아보고, 그 앞에 가 펄썩 주저앉으면서
 
43
“허생원님, 사람 살리세요. 그런 존 세상이 있거든 나두 좀 데려다 주세요.”
 
44
한다.
 
45
“무슨 일로 그려시요.”
 
46
허생이 묻는 말에 여자는 손을 들어 가리키면서
 
47
“저 아래 술집에 있는 술에민(酒母 : 酌婦)데, 수영어미 등쌀에 살 수가 없어요.”
 
48
“수영어미가 무얼 어떻길래?”
 
49
“허구헌날을 날마다 서방을 아니한다고 때리고 꼬집고 밥을 굶기고 한답니다.”
 
50
그러면서 여자는 부끄럼도 없이 가랑이를 훌쩍 걷어춘다. 부우연 너벅다리가 성한 곳이 없는 피멍이 졌다.
 
51
허생은 무심결에 배려다보다가 문득 외면을 하면서
 
52
“팔려왔소.”
 
53
“먹고 살 수가 없어서 팔려왔어요.”
 
54
“얼마에?”
 
55
“오 년 있어 주기로 하고 일흔 냥에 팔려왔어요.”
 
56
“몇해나 되었소?”
 
57
“열일곱에 팔려와, 홀해 스물둘인데, 한은 벌써 지났어도 그동안 또 빛을 졌답니다.”
 
58
“얼마나?”
 
59
“수영집 말어, 백 냥이 넘는다고 하나봐요.”
 
60
“그 돈만 갚아 주면 몸이 빠져나올 수가 있겠구려.”
 
61
“네.”
 
62
허생은 강선달더러, 여자의 빛을 물어주라고 부탁하고 돌아서려고 한다.
 
63
여자가 다시금 앞을 막으면서 투정하듯이
 
64
“이왕이니, 그 존 세상, 나두 제발 좀 데려다 주세요.”
 
65
“부모한테로 가구려.”
 
66
“다 죽고 없답니다. 수영집 빚도, 절반은 부모 치상한 빚인걸요.”
 
67
“형제나 일가도 없소?”
 
68
“가차운 일가는 없고, 손윗오래비 하나가 있다는 것이, 노름꾼에 백피난봉으로 밤낮 나한테 와서 돈 뜯어가기가 일이랍니다. 수영집 빚이 부모 치상빚 말고 절반은 그 밑구멍으로 들어간 빚인걸요.”
 
69
“그래도 젊은 여자 하나는 데리고 갈 수가 없어.”
 
70
“이 천지에 머리 두르고 갈데라고는 오래비 집뿐이데, 가서 사흘이 못해 다시 또 팔아먹고 말걸요.”
 
71
“마땅한 홀애비라도 만나, 살림 리고 살든지.”
 
72
“싫어요. 사내라면 말만 들어도 몸서리가 치이는걸요.”
 
73
“허어. 이런 딱할 노릇이라고야.”
 
74
“데려다 주세요. 이 은공 저 은공 해서 평생 두고 허생원님 종살이해 드리께요.”
 
75
“나는 종이 소용도 없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종이라면 담을 쌓는 사람이오.”
 
76
“저 시커먼 사람은 누구예요?”
 
77
“우리 먹쇠, 내 일 거달아 주는 사람.”
 
78
“사람을 살려놓고 도루 죽이는 법이 어딨어요. 데려다 주세요. 종 두기가 싫으면, 나두 일 거달아 드리는 사람이라구 하면 그만 아녜요.”
 
79
“온 이런 질색할 일이 또 있나.”
 
80
“아니 데려다 주신다면, 뒤따라서라두 그여코 가고 말걸요.”
 
81
이건 사뭇 떼를 쓰는 판이었다.
 
82
“그럼 데리고 가기는 가는데, 가서 술집에서 지나든 버릇을 내거나 해서는 도로 쫓을 테니, 그리 알렷다.”
 
83
“그건 허생원님이 내게 하실 나름이지요.”
 
84
“젊은 여자가 어데 한평생 혼자야 지냈겠오. 마땅한 자리가 있으면 남편을 얻어 살렷다.”
 
85
“그건 그때 가보아야 하지요.”
 
86
“다짐을 두어야지, 그래서야 되오.”
 
87
“혹시, 허생원님 같은 자리나 있다면, 가 살는지.”
 
88
기집이, 하는 소리가, 가만히 보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89
“인물은 와락 보잘것없어도 열일곱 살까지 얌전한 어머니 밑에서 배우고 치어나고 해서 침선은 제법이랍니다. 허생원님 옷도 잘 꼬매 드리고 찬수도 입에 맞으시게 해 드리고 그러께요.”
 
90
설렁설렁하고, 침선은 제가 자랑하는 대로 얌전한지 어떤지 모르겠으되, 인물은 보잘것없다는 제 말과 달라, 썩 밉지 않게 생겼고, 태도 그럴 듯하였다.
 
91
일찌기 노는 계집을 겪어보지 못한 허생은 이 여자 하나를 다루기가 오히려 만 냥 돈을 들여 석 달 만에 십만 냥을 만들어내기보다도 더 맹랑하였다. 그래서 받자던 다짐도 받지를 못하고, 계집이 눙쳐 넘기는 데로 넘어가, 그대로 데리고 길을 떠나버렸다.
【원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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