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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生傳 (채만식) ◈
◇ 9 ◇
카탈로그   목차 (총 : 9권)     이전 9권 ▶마지막
1946.11.15
채만식
1
서울 다방골 변진사는 허생이 돈 만 냥을 취해 간지 석 달 만에 본전의 갑절 이만 냥을 보낸 것을 받고, 차라리 놀라지 아니하였다.
 
2
변진사는 생면부지 초면에, 와서 돈 만 냥을 취하라고 하는 데에 벌써 그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았었다. 따라서, 그 취하여 간 만 냥 돈에 대하여, 일후에 필연코 어떤 비범한 하회가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했던 것이 과연 석 달 만에 만 냥의 갑절 이만 냥을 올려보냈던 것이었었다. 취해 간 만 냥을 반드시 갚을 것으로, 갚되 이만 냥으로 갚을 것으로 믿고 기다린 바는 아니었다. 돈이야 설혹 갚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여커나 범상한 사람에게서는 만금으로 구할 수 없는 비범한 재주를 부리고야 말 것을 그는 믿었던 것이었었다.
 
3
달리 큰 황제라도 하였다면 모르거니와, 돈 만 냥을 가지고 석 달 동안에 그 갑절 이만 냥으로 늘린다는 것을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가사 또 몇만 냥의 이문을 보았다손 치더라도, 본전 만 냥에다 석 달만에 이자 만 냥을 얹어서 이만 냥으로 갚는다는 것은 여간한 담보로는 생의치 못하는 짓이었다.
 
4
변진사는 조선에 모처럼 큰 사람이 난 것이라고 하였다.
 
5
변진사는 인물을 돕기 위하야 돈과 수고를 아끼지 싶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묵적골 허생의 본집에 다달이 양식과 그리고 옷감이며 찬거리를 대었다. 물론 간소하게였다.
 
6
허생의 부인 고씨는, 이 다음 사랑에서 돌아오시면 걱정을 하신다고, 처음에는 받지 아니하려고 하였다. 이런 것을 보면 고씨부인도 노상 어리석기만한 지어미는 아니던 모양이었다.
 
7
변진사는 허생의 부탁이라고 하인으로 하여금 꾸며대게 하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고씨부인은 잠자코 받아들었다.
 
8
변진사는 하인을 시켜 다달이 그렇게 살림 뒤를 대는 한편, 열흘 만에 한번, 혹은 보름 난에 한번 동자를 앞세우고 스스로 허생의 집을 찾아가 허생이 돌아온 여부를 묻고 하였다.
 
9
삼 년을 변지사는 꾸준히 그것을 계속하였다. 한 달 두 달도 아니요, 삼 년을 꾸준히 그런다는 것은 여간 정성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10
삼 년 만에 허생은 마침내 돌아왔다. 집을 나갈 때처럼 헌 갓을 쓰고, 낡은 무명옷을 걸치고, 굽 닳아빠진 나막신을 끌고, 이삼 일 동안 가까운 시골이라도 다녀오는 사람처럼 심상한 얼굴로 그는 돌아왔다.
 
11
허생이 돌아오던 닷새 만에 변진사가 올라왔다. 둘이는 만났다.
 
12
허생과 변진사는 두 번째 대면이었다. 그러나 둘이는 오랜 교분이 있엇던 것처럼 지기가 상합하였다.
 
13
변진사가 허생이 비범한 인물임을 안 것과 한가지로, 허생도 변진사가 녹록한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었다.
 
14
첫째 변진사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
 
15
또, 만 냥의 큰 돈을 성명도 거주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러나마 궁한 선비에게 말 한마디로 선뜻 내어주는 것은 여는 사람과 다른 딴 보짱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사람이면 더불어 천하의 경륜을 논하여도 족하리라고 허생은 생각하였었다.
 
16
허생이 돌아온 뒤로, 변진사는 사흘만큼씩 닷새만큼씩 밤저녁으로, 더러는 일기 화창한 날이면 낮으로, 조촐한 술상을 들려 가지고 허생을 찾아와 밤이 깊도록, 혹은 날이 저물도록 권커니잣거니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에 세월 가는 것을 잊고 하였다.
 
17
어떻게 하면, 조선의 정치와 나아가서는 조선 전체의 운명을 그르쳐 가고 있는 사색 당파의 싸움을 없이할 수가 있을까.
 
18
어떻게 하면, 조선이 부하고 강성한 나라가 되어 백성이 주리지 않고 편안하며 밖으로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우리의 약함을 엿보고 침노한 외난을 미리서 막을 수가 있을까.
 
19
이런 이야기로 긴 밤을 짧게 새우며, 해를 지우며 하기 무릇 몇 번일는지 몰랐다.
 
20
그러던 어느 날 밤, 변진사는 낯모를 손님 하나를 데리고 왔다.
 
21
허생이 수인사를 하고 보니, 당시에 크게 이름이 떨치고 있던 이완(李浣) 대장이었다.
 
22
이때에 조정에서는 북벌──북쪽으로 청국을 칠 계획을 세우고, 여러가지로 준비를 하면서 아울러 널리 인제를 구하고 있었다.
 
23
병자호란 때에 때의 임군 인조대왕이 남한산성에 농성하여 호병을 저항하다 못해 삼전도에서 청 태종(淸太宗) 홍타시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한 것은, 그리고 그것으로써 청국을 상국(上國)으로 받들게 된 것은, 낡은 상전 명나라 대신 새로이 청나라의 종이 된 것일 따름이라고 하면 그만 일수도 있었다. 약하고 어리석어 뻐젓이 제 나라 제 강토를 가지고 남의 종노릇을 한 그것이 욕이요 부끄럼이지, 우리를 정복한 자가 한족(漢族)인 명나라거나 몽고족(蒙古族)인 청나라거나,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 턱이 없는 것이었다. 한족 명나라를 상국이라 부르며 상전으로 받들고, 그 속국 ──종노릇을 하였다고 욕이 덜하고 부끄럼이 적을리가 없으며, 명나라를 멸하고 대륙의 주인이 된 몽고족 청나라에게 새로이 정복을 당하였음으로 하여, 그를 새로이 상국이라 부르며 새로운 상전으로 받들고, 그의 속국──종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욕이 더하고 부끄럼이 더하랄 법은 없는 것이었었다.
 
24
그러하건만, 때의 지도자──유생이라는 사람들은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으로부터 청나라의 속국이 된 것을, 죽도록 욕되고 부끄럼으로 여겼었다. 타고난 종놈의 기질(奴婢氣質)이었다. 선비의 집 종이 장사꾼의 집 종보다는 제가 지체가 나은 줄로 자긍를 하고, 서울 재상의 집 종이 시골 아전의 집 종이 되기를 욕되고 부끄럽게 여김과 다를 것이 없는 그 종놈의 기질인 것이었다.
 
25
조선의 유생이라는 사람들은 명나라의 문화에 미치다시피 중독이 되었었다. 그들은 명나라의 문물, 제도, 사람, 풍토 이런 것들을 하늘처럼 크게 여기고 숭배하고 하였다. 심하게 말하면, 명나라의 것이면 방귀도 구리지 아니할 지경이었다. 이리하여 조선의 유생들과 일부 사람들은 진심(精神的)으로 명나라의 종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명나라가 조선의 상국이요 우리의 상전인 것을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겼다. 따라서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이요, 우리가 그 종노릇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동시에 영광이요 자랑으로 여겼다.
 
26
이른바 사대사상(事大思想)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27
사대사상은 약한 민족이 무력──전쟁으로 정복을 당한 후에, 이어서 문화적으로 정복을 당하였을 때에 생기는 무서운 아편인 것이었다.
 
28
문화적으로 정복은, 피정복자를 동화시키고 마취시켜 피정복자인 약한 민족으로 하여금 저를 잊어버리고 정복자를 숭배코 따르고 함으로써, 정복자에의 반항력을 영원히 마비되게 하는 요물이었다. 사대사상은 그러므로 민족을 멸망시키는 대적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29
조선의 사대사상은 물론 이조시대에 와서 비로소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30
멀리 삼국 때 당(唐)나라의 무력을 빌어 삼국통일을 이룸으로써 어느덧 당나라에게 문화적인 정복을 받은 바 되어, 그 결과 정신적으로 당나라의 노예──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 속국 노릇을 하지 아니치 못한 신라(新羅)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31
또 가까이는 원(元)에게 정복을 당한 후 이윽고 조선 천지가 원나라의 행랑이 되다시피한 고려(高麗)의 중엽 이후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32
효종대왕은 병자호란에 삼전도에서 청 태종의 발부리 앞에 무릎 꿇고 항복을 한 이조대왕의 바로 아드님이었다. 그는 당시의 욕을 몸소 겪었음이나 다름이 없는 터라,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이 자못 깊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다, 그는 또 한 가지 병자호란의 뒤치다꺼리로서, 청병에게 인질──볼모로 끌려가 팔 년 동안이나 요양(遼陽 : 奉天)에 붙잡혀 있으면서 갖은 고통을 당한 것이 있었다.
 
33
그리하여 그는 미리미리 청나라에다 한번 복수를 시험할 뜻이 있었고, 위에 오르자 미구에 북벌── 청나라를 칠 계획을 세워 부지런히 준비를 시작하였다.
 
34
이 효종대왕의 뜻을 받들어 북벌을 맡아보는 문신(文臣)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있었다.
 
35
송시열은 혼백을 명나라에다 팔아먹은 사대사상의 당대 두목이었다.
 
36
송시열과 및 그와 종파를 같이하는 지도자──유생들이 보기에는, 몽고와 만주의 호지에서 일어난 청나라는 한낱 보잘것없는 변방 족속이요, 공맹의 도와 학문이 없는 오랑캐였다. 그런 오랑캐의 무리가 그래도 신하는 신하이겠는데, 신하로 임군을 쳐 물리치고 그 자리에 올랐으니, 천하에 용서치 못할 찬역이었다. 마땅히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37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하였으니 명나라의 원수였다. 조선은 명나라의 신하 뻘이요, 명나라는 조선의 상국인즉 명나라를 멸한 명나라의 원수 청나라는 곧 조선의 원수였다. 그뿐 아니라 조선과는 병자호란의 원수가 있었다.
 
38
조선은 마땅히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를 쳐 멸함으로써 두 가지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39
명나라는 일찌기 임진왜란 때에 오십만의 대병을 조선으로 보내어, 망하게 된 조선을 살려내어 주었다.
 
40
조선이 왜병에게 아주 망하는 날이면 그 다음에 망하는 것은 명나라였다. 그러므로 명나라가 조선에 동병을 한 것은 단지 조선을 구하자는 것이 아니요, 조선을 구함으로써 명나라 자신의 보전을 도모하자는 노릇이었다. 조선이 열 번 망하더라도 명나라의 안전에 별반 영향이 없는 것이라고 하면, 명나라는 단 한 명의 군사도 동병을 하려고 아니하였을 것이었었다.
 
41
조선의 사대사상자──명나라에 혼백을 팔아먹은 유생들은 그러나 명나라의 동병이 전혀 조선의 멸망을 구원하기 위한 상국의 의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덕택에 조선은 왜병의 손에 망하고 말 것이 뻐젓이 구원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 임진왜란의 동병의 대의를 위하여, 조선은 군사를 일으켜 청나라를 칠 의리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42
송시열을 두목으로 한 유생들의 북벌──청국을 치는 이유와 목적은 그러하였다.
 
43
임군 효종대왕괴 및 무신(武臣)으로 북벌의 중심 인물인 이완 대장의 뜻하는 바 북벌의 목적은 그러나 지극히 단순하였다. 변방의 오랑캐 족속에게 무릎을 꿇어 항복을 하고, 그를 상국으로 받들고 한 분을 푼다는 것이었다.
 
44
그 이완 대장이 변진사에게서 누누이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어 인물을 시험할 겸 함께 허생을 찾아온 것이었다.
 
45
당당한 훈련대자의 지체로, 명색없는 궁한 선비를 몸소 찾아본다는 것은 적지않이 파격이었다. 그러나 이완 대장도 그런것쯤에 구애되어 방금 큰 인물이 얼마든지 소용되는 이판에, 사람 찾아보기를 주저할 옹색한 사람은 아니었다.
 
46
한 번 다녀간 이완 대장은 그 뒤에도 종종 변진사와 함께 혹은 혼자서 허생을 찾아오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허생이라는 사람이 당절에는 드문 포부와 경륜과 담략을 갖춘 큰 인물인 것을 차차로 깨닫게 되었다.
 
47
하루 저녁, 마침내 이완 대장은 마음에 먹은 바를 토설을 하였다. 변진사를 하필 따돌린 것은 아니나 마침 이완 대장만 혼자 온 길이었다.
 
48
변진사가 보내는 맛좋고 향기 있는 술과 조촐한 안주는 떨어지지를 않는 터라, 허생은 이완 대장과 마주 앉아 여러 잔을 기울였고, 이미 술이 거나하였을 무렵이었다.
 
49
“허생원, 오늘 저녁에는 내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읍니다.”
 
50
이완 대장은 이렇게 허두를 내고 나서 잔을 들어 주욱 마신 후에
 
51
“다른 게 아니라, 조정에 한번 나와 보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52
하고 묻는다.
 
53
허생은 빙긋이 입가에 미소를 띠고
 
54
“날더러 벼슬을 하라고요?”
 
55
“조정에서는 시방 은밀히 큰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이 있읍니다. 북벌할 준비를 하는 주이지요. 그래서, 두루 큰 인물을 구하던 차인데, 마침 허생원 같은 분을 만나 나로서는 여간 마음 든든한 바가 아니올시다.”
 
56
“네에, 북벌을 하신다고요. 네에. 거 매우 장하신 노릇입니다.”
 
57
정중한 말과는 달라, 허생은 신통치 못해하는 얼굴로 연해 그러더니
 
58
“무슨 필요로 북벌은 하시나요?”
 
59
“문신으로는 우암(尤庵)이, 무신으로는 불초한 내가 각기 상감의 명을 받들어 북벌 일자를 계획하고 있기는 있으나, 그 우암이라는 사람과 사사이 의견이 맞지를 아니해서 여간 각다분한 게 아닙니다. 도시에, 같은 북벌이라고 해도 우암의 북벌에 대한 뜻과 상감이나 나의 북벌에 대한 뜻이 서로 어긋나는 것이 있어서.”
 
60
“우암은 물으나마나 변방의 오랑캐 족속 청나라가 이신벌군(以臣伐君)을 하였으니 쳐야 하고, 대명을 멸망시킨 원수와 삼전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청나라를 쳐야 하고, 임진란 적에 구원병을 보내준 의리로 청나라를 쳐야 하고, 그런다는 것일 테지요.”
 
61
“꼭 허생원 말씀대로랍니다.”
 
62
“그러면, 상감께서와 이대장의 북벌에 대한 뜻은?”
 
63
“삼전도의 원수를 갚자는 것이지요.”
 
64
“단지 그것인가요?”
 
65
“그렇지요.”
 
66
“그렇다면, 북벌은 아예 파의하시기만 못할 듯합니다.”
 
67
“북벌을 파의하라고요?”
 
68
이오나 대장은 펄쩍 뛰면서 따지듯 묻는다. 허생은 한결같이 침착히
 
69
“여보시요, 이대장?”
 
70
“네.”
 
71
“자고 이대로 이 동방 천지에서 제로라는 족속은 제마다 한번씩 연경에다 도읍을 하고, 중원을 호령해보지 아니했읍니까. 중원 바닥의 한족은 물론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元(원)나라가 청나라가 다 한번씩은 중원의 주인 노릇을 해보지 아니했읍니까. 심지어 저 왜국의 풍신수길이 같은 놈이 다 그런 앙큼스런 배포로, 임진년에 우선 조선을 범했든 게 아닙니까. 조선을 수중에 넣는 날이면 연경 도읍은 절반도 더 성공이니까요. 그런데 우리 조선 족속은 사천 년을 내려오면서 언제 한번 그런 생의라도 해보았나요. 육장 그놈들한테 침노를 당하고 눌려만 살았지. 그러니, 예라 우리도 어디 연경다 도읍을 하고 한바탕 중원을 호령해 보자 이런 뜻으로, 이런 목적으로 북벌을 한다면 모르거니와 그래 고작 삼전도의 분풀이 그거란 말씀이요. 우암 같은 명나라 놈의 서족(庶族)이 지껄이는 잠꼬대는 족히 더불어 논할 것도 없지만 말이지요.”
 
72
“………”
 
73
이오나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약간 괴참한 얼굴이었다.
 
74
허생은 자작으로 한자을 부어마시고 나서 다시
 
75
“가사 경륜이 그렇게까지는 크지 못하다고 하드래도, 요동(遼東)이나마 도로 찾겠다는 것으로 북벌하는 목적을 삼아야지요. 아시다시피 요동은 고구려 적까지도 우리 땅이 아니었읍니까. 앞으로 삼사백 년이 못가서, 우리 조선은 땅이 모자랄 날이 옵니다. 그러니, 시방부터라도 서둘러서 도로 찾아야 할 게 아닙니까. 찾아만 놓으면 삼사백 년 후뿐이 아니라, 지금 당장도 요긴한 땅이니깐요. 그럴 것이지, 그래 국력을 기울여 성패를 걸고 북벌을 한다면서, 겨우 삼전도의 분풀이나 하겠다고요. 설마 이대장으로 앉아 전쟁을 장기 한판 두기처럼 대수론 일로 여기시지야 아니하시겠지.”
 
76
“………”
 
77
“이대장?”
 
78
“네.”
 
79
“준비를 하셨다니, 무엇이 얼마나 준비가 되섰나요?”
 
80
“서울서 오천 명, 팔도에서 만 명, 도합 일만오천 명 군사를 조련한 것이 있고, 그 일만오천 명 군사를 일 년 동안은 동병할 만한 각종 병장기, 군량, 마초, 화약, 돈이 준비가 되었읍니다.”
 
81
“수군(水軍 : 海軍)은?”
 
82
“없읍니다. 주장 육전만 할 요량이니까요.”
 
83
“이대장?”
 
84
“네.”
 
85
“원나라가 중원을 평정하기에 군사를 얼마나 동원했으며, 몇해나 걸려서 평정을 했는지 아십니까?”
 
86
“………”
 
87
“또오, 청나라가 중원을 평정하기에 얼마나 군사를 동병을 했으며, 몇해나 걸려서 평정을 했는지 아십니까?”
 
88
“………”
 
89
“설마 군사 일만오천 명을 동병해가지고 일 년 만에 중원을 평정하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시겠지.”
 
90
“………”
 
91
“우리도 중원을 평정하고 연경다 도읍을 하든지, 요동만 도로 찾고 말든지, 그것은 하여간 삼십만 보병과 오만 수병으로, 연방 축나는 군사를 보충해 가면서 졸잡아 십 년 하나는 끌어야 목적을 이룰 것입니다. 대장 요량에 지금 조선 형편으로 삼십오만을 십 년 동안 동병을 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92
“………”
 
93
“정녕 북벌을 하시려거든 우선 북벌을 파의하십시요. 조련하든 군사를 헐으십시요. 병장기는 녹혀서 괭이를 만들게 하십시요. 화약은 물에 넣고, 돈과 군량은 가난한 백성을 노나 주십시요. 그러고서 이십 년 동안 전쟁 이자는 입밖에 내지를 말고, 오직 조정에서는 사색 붕당의 싸움을 물리치고, 수령 방백으로는 백성의 재물을 범치 못하게 하십시요. 그래서 우선 우리 조선이 부강하고, 일변 백성은 나라를 신뢰하는 나라가 되게 해놓십시요.”
 
94
“이십 년은 너무 요원치 않습니까?”
 
95
“가만히 거십시요. 그렇게 이십 년을 해서 뜻대로 조선이 부강하고 백성이 조정을 신뢰하고 하거든, 그때부터 십 년 위한하고, 전쟁할 준비를 시작하십시요. 삼사십만 군사를 십 년 이상 동병할 수 있는 준비를 하십시요. 그러나 전쟁할 준비라고 해서 군사를 조련하고, 병장기를 만들고, 군량 마초를 장만하고 그러는 것만이 전쟁할 준비가 아닙니다. 염탐을 몇백 명이고 청나라를 들여보내서 사백여 주의 지리를 세밀히 조사하고, 군비의 어떠한가를 조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청나라 조정과 중원 백성의 사이를 떼어놓고, 그 밖에도 할 일이 많습니다마는 우선 대강은 그렇습니다.”
 
96
“그렇다면 삼십 년이 지난 뒤겠는데, 그때 가서는 이 이완은 벌써 지하의 객이 되었을 게 아니겠읍니까?”
 
97
“이대장은 돌아가섰어도 나라와 백성은 있읍니다. 한 개인의 수명은 불과 칠십이지만, 나라와 백성의 앞날은 영원무궁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대에 못하면 우리 아들들이 잇지 않습니까. 우리 아들들이 못다 하면 우리 아들들의 아들들이 또 있지 않습니까.”
 
98
“허생원. 아니, 선생님!”
 
99
그러면서 이완 대장은 허생의 손목을 덤쑥 쥐고
 
100
“크신 줄은 알았지만, 이대지 크신 줄은 몰랐읍니다. 내 상감께 품하지요. 매우 반가워하실 것입니다. 부대 조정에 나와 주십시요.”
 
101
“허허, 실없은 말씀을. 자, 약주나 드십시요.”
 
102
“진정이올시다. 저바라지 마십시요.”
 
103
“나는 미흡한 공부를 좀 해야 하겠읍니다, 허허허. 내가 오늘 저녁은 과음을 했어, 허허.”
 
104
그러더니 허생은 술상 앞에 쓰러지면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것이었었다.
 
105
이완 대장은 허릴없이 자리를 일어서고.
 
106
사흘 후에 이완 대장은 변진사와 같이 허생을 찾아왔다. 그러나 허생의 집은 이미 비고 없었다. (解放[해방] 2년 9월 16일 鄕第[향제]에서)
 
 
107
<朝鮮金融組合聯合會[조선금융조합련합회] 協同文庫[협동문고] 4-1, 1946. 11. 15>
【원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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