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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본 시인(詩人) - 김소월(金素月) 군(君)을 논(論)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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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12.10
김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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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詩人[시인]
2
─金素月[김소월] 君[군]을 論[논]함
 
3
나는 소월과 一面識[일면식]도 없다. 2,3 회의 文通[문통]은 있었지만 그 필적조차 기억에 희미하다.
 
4
내가 소월의 이름을 처음으로 기억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9년 전 잡지<創造[창조]>가 제 5호던가 6호던가쯤 되었을 때였었다. 그때 소월은 자기의 스승 岸曙[안서]를 介[개]하여 <창조>에 시를 한 편 투고하였다. 나는 그 원고를 보았다. 그리고 ‘不用品[불용품]’이라는 赤註[적주]를 달아서 왼편 서랍에 들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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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사용하던 안서의 원고용지는 좀 유다른 것이었었다. 掛紙[괘지]와 같이 접는 원고용지로서 가운데는 ‘岸嗜用稿[안기용고]’ 라고 인쇄하고 세로와 가로글자를 좇아서 1, 2, 3, 4 번호를 매긴 별한 원고용지였었다. 낮은 롤(ロ一ル)지에다 청색으로 찍었다. 그런데 그때 투고한 소월의 시의 용지는 꼭 안서의 것과 같은데 다만 ‘안서’ 라는 글자 대신으로 ‘소월’ 이란 글자가 있었을 뿐이었었다.
 
6
시의 내용은 기억치 못하지만 ‘달이 여사여사 하였어라’ , ‘꿈이 여사여사하여라.’ 이러한 것으로서 안서의 拙惡[졸악]한 면만 그대로 흉내낸 것이었었다.
 
7
나는 문예상의‘흉내’라는 것을 경멸하는 사람이었었다. 그래서 그 원고를 집어치우고 小岸曙[소안서]의 장래를 무시하여 버렸다.
 
8
그러나 그의 이름뿐은 기억에 그냥 남아 있었으니 同姓同名[동성동명]의 어떤 기생을 알기 때문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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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3년 뒤였었다. 안서는 그때 낮은 갱지에 아주 보기 싫은 모양으로 진홍색으로 원고용지를 박았다. 그것을 기억하였던 나는 그 뒤 어떤 날 안서의 집에서 그 안서의 원고용지와 꼭같은 소월의 원고용지를 또한 발견하였다. 이 두번째의 발견은 나로 하여금 제2 안서인 소월의 장래를 영원히 또한 철저히 무시하기를 주저치 않게 하였다. 그때는 기생 김소월의 기억조차 거진 없어져 갈 때였었다. 그러므로 小岸曙[소안서] 소월의 기억은 나의 머리에 겨우 흔적뿐이 남았었다.
 
 
10
또한 1년이라는 날짜가 지났다. 어떤 날 잡지 <開闢[개벽]>을 뒤적이던 나는 거기서 소월의‘朔州城[삭주 성]’을 보았다. 그리고 재독 삼독을 한 뒤에 책을 내어던지고 탄식하였다.─사람은 속단이라는 것을 삼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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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州城[삭주 성]
12
물로 사흘 배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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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三千里[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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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三千里[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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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州城[삭주 성]은 山[산]을 넘은 六千里[육천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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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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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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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높은 山[산]
19
밤에 높은 山[산]
 
20
朔州城[삭주 성]은 山[산] 넘어
21
먼 六千里[육천리]
22
가끔가끔 꿈에는 四五千里[사오천리]
23
가다 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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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25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리워
26
못보았오 새들도 집이 그리워
27
南北[남북]으로 오가며 아니합디까
 
28
들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29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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朔州城[삭주 성] 山[산] 넘어
31
먼 六千里[육천리]
 
 
32
이 시를 나는 재독 삼독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할 때에 나는 이 시의 어느 점에 반하여 재독 삼독하였나. 말하자면 單[단]히 문자의 유희였었다. 句句[구구]이 뜯어 볼 때에 한 구는 의미를 통할 수가 없었다. 마치 주문과 같은 말을 7․5조로 벌여 놓은 따름이었었다.
 
33
그러나 그 전편을 통독한 뒤에 독자의 머리에 걸리는 ‘통일된 감정’ 과 천근 같은 무게는 무엇인가. 마치 우리의 유년시대의 꿈과 같이 우리의 온 신경을 누르며 우리의 정열로써 숨막히게 하는 그‘힘’은 무엇인가. 앨런 포오의 어떤 소설과 같이 우리로 하여금 신비적 공포에 몸을 소스라치게 하는 그 마력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34
여기에 소월의 승리가 있다. 수수께끼와 같은 연락 없는 말을 줄로 써놓은 듯하여도 읽은 뒤에는 독자는 그 신비적 공포에 도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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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靈[영]의 해적임, 설움의 故鄕[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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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자, 내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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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생]과 死[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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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대나 죽었대나 같은 말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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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서 늙어서야 죽나니
41
그러하면 그 亦是[역시] 그럴듯도 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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何必[하필]코 내몸이라 그 무엇이 어째서
43
오늘도 山[산]마루에 올라서서 우느냐.
 
 
44
夜半[야반]에 울려오는 人[인]의 통곡성과도 같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하는 그 마력, 여기 소월의 승리가 있었다. 조선에 난 시인으로서 나는 아직껏 소월만치 조선말을 자유자재로 驅駟[구사]한 사람을 보지를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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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心[무심]
46
시집와서 三年[삼년]
47
오는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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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벌 난 벌에 왔읍니다
 
49
거친 벌 난 벌에 피는 꽃은
50
졌다가도 피노라 이릅디다
51
소식 없이 기다린
52
이태 三年[삼년]
 
53
바로 가던 앞江[강]이 간 봄부터
54
굽이 돌아 휘돌아 흐른다고
55
그러나 말 마소. 앞여울의
56
물빛은 예대로 푸르렀소
 
57
시집와서 三年[삼년]
58
어느 때나
59
터진 개 개여울의 여울물은
60
거친 벌 난 벌에 흘렀읍니다
 
 
61
‘풀따기’의 제2절
62
그리운 우리님은 어디 계신고.
63
날마다 피어 나는 우리님 생각.
64
날마다 뒷山[산]에 홀로 앉아서
65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66
‘님에게’의 未節[미절]
67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68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69
추거운 벼갯가의 꿈은 있지만
70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71
아아 이와 같이 교묘한‘말의 유희’가 어디 있을까. 그는 마치 자기가 조선말을 발명한 듯이 기탄 없이 자유자재로 썼다.
 
72
요한이 新詩[신시]를 개척하여 놓은 뒤에 아직껏 쓰지 않던 새로운 시 용어가 많이 생겨났다. 안서가 佛詩[불시]를 소개하고 이어서 자기의 창작도 발표한 뒤부터는 불란서식 감정의 시 용어도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껏 순정한 조선 사람의 감정을 나타낼 만한 조선말은 시단상에 나타난 일이 없었다. 소월이 그 첫 길을 열어 놓았다.
 
73
뿐만 아니라 소월은 조선 사람의 감정을 알았다. 요한이나 안서의 시에 나타난 감정으로써 좋은 교양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소월의 시에 나타난 감정은 시골 과부들의 노래를 새로운 표현 형식으로 다시 나타낸 따름이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조선 재래의 민요 그것이었었다.
 
74
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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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76
길어 둔 독엣물도 찌었지마는
77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78
살아서 살을 맞는 표적이외다
 
79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80
나무는 밑그루를 꺽은 셈이요
81
새라면 두 죽지가 傷[상]한 셈이라
82
내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83
밤마다 닭소리라 날이 첫 時[시]면
84
당신의 넋맞으러 나가 볼께요
85
그믐에 지는 달이 山[산]에 걸리면
86
당신의 길신갈이 차릴 때외다
 
87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88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89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90
죽기 前[전] 또 못잊을 말씀이외다
 
 
91
나는 이 시인의 생장을 도무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시로써 그 윤곽의 암시뿐은 얻을 수가 있다.
 
92
요한의 시에서 꽃이면 호박꽃 살구꽃 복사꽃이요 인물이라면 어린 남녀들 뿐이요 사랑이라면 달빛이나 꽃에 대한 사랑뿐인 것이 그의 유년시대를 암시하는 것이라 하면 소월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진달래꽃과 많은 갈매기와 어부 바닷놀 뒷산 과부─ 이런 것은 그의 유년시대의 환경을 말함이라 볼 수 있다.
 
93
이러한 서로 다른 환경 아래서 길러난 두 시인의 시의 차이는 또한 재미있다. 요한의 시를 15.6세의 소녀의 남모르는 사랑의 애끊는 가슴으로 비길진대 소월의 시는 정욕에 불붙는 과부의 열정으로 볼 수 있다.
 
94
아니 이것은 그들의 시뿐이 이런 것이 아니고 그들의 연애에 대한 관찰과 태도도 또한 이와 같았다.
 
 
95
요한의 ‘등대’
96
등대의 불은 꺼졌다 살았다
97
그대의 마음은 더웠다 식었다
98
등대는 배가 그리워 그리하는지
99
그대는 내가 싫어서 그리하는지
100
배는 그리워도 바위가 막히어
101
밤마다 타는 불 평생 탈 밖에
102
싫다고 가는 님은 가는 님은
103
애초에 만나지나 않았던들
104
(춘원, 요한, 파인 3인집에서)
 
 
105
소월의 ‘진달래꽃’
106
나 보기가 역겨워
107
가실 때에는
108
말 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109
寧邊[영변]에 藥山[약산]
110
진달래꽃
111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112
가시는 걸음 걸음
113
놓인 그 꽃을
114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115
나 보기가 역겨워
116
가실 때에는
117
죽어도 아니 눈물흘리오리다
 
 
118
江村[강촌](소월의 시, 아하 同[동])
119
날 저물고 돋는 달에
120
흰 물이 솰솰...
121
금모래 반짝...
122
靑[청]노새 몰고 가는 郎君[낭군]!
123
여기는 江村[강촌]
124
江村[강촌]에 내몸은 홀로 사네.
125
말하자면, 나도 나도
126
늦은 봄 오늘이 다 盡[진]토록
127
百年妻春[백년처춘]을 울고 가네.
128
길쎄 저문 나는 선비,
129
당신은 江村[강촌]에 홀로 된 몸.
 
 
130
후살이
131
홀로 된 그 女子[여자]
132
近日[근일]에 와서는 후살이 간다 하여라.
133
그렇지 않으랴. 그 사람 떠나서
134
제이十年[십년], 저 혼자 더 살은 오늘날에 와서야...
135
모두 다 그럴듯한 사람사는 일테요.
 
 
136
그의 읊은 모든 노래는 순전한 조선 사람의 감정이요 村老[촌노]들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었었다. 일본 歌人[가인] 高濱淸[고빈청](虛字[허자])씨가 조선을 漫遊[만유]하는 동안에 민요 ‘아리랑’ 을 듣고 그의 著[저]「조선」에 말한 바‘망국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哀調[애조]’는 소월의 온갖 시에 풍부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 애조야말로 누누 수천 년간 鄕問[향문]의 부녀들에게 전하여 내려온 바 그 조선 ‘미나리’ 가 가지고 있는 그 애조에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소설 독특의 ‘희롱’ 이라고까지 형용하고 싶은 放奔[방분]한 서사 기술로써 적어 놓은 것이 소월의 시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선 정조의 진실한 이해자요 조선 감정의 진실한 재현자요 조선말 驅馳[구치]의 鬼才[귀재] ─ 그것이 우리의 시인 소월이었다.
 
137
우리의 속담말에 ‘두각을 나타낸다’ 는 것이 있는 반면에 또한 ‘옥이라도 갈지 않으면 빛을 못 낸다’ 는 말이 있다. 金廷湜[김정식](소월의 본명)이 小岸曙[소안서]에서 소월로 변화한 그것은 ‘두각을 나타내었’ 는지 수양으로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중간 시기가 있었음은 짐작할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시집「진달래꽃」에서 그 중간 시기의 작품을 골라 보느라고 애를 썼다. 시에 作[작] 年月[년월]이 기입 안 되었으니 짐작할 수가 없었다.
 
138
님과 벗
139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140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141
딸기꽃 피어서 香氣[향기]로운 때를
142
苦椒[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143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144
이러한 몇 편의 시가 그의 중간 시기의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중간 시기로서 이러한 詩作[시작]의 몇 해가 있었을 것은 짐작된다. 안서식 서사법과 안서식 형용사로 둘러싸인 소월의 본체가 그 차용물인 껍질을 깨뜨리고 애쓴 몇 해가 있었을 줄 안다. 그리고 그 껍질을 깨뜨리고 나타난 것이‘朔州城[삭주 성]’ 시대로부터 지금까지의 소월이었다.
 
145
나는 아까 소월을 전연히 모른다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그를 조금 모른다. 그러나 남이 모르는 ‘여인으로서의 소월’ 의 일면을 나는 안다.
 
146
5년 전에 내가 〈靈臺[영대]〉를 편집할 때에 소월은(그는 꼭 毛筆[모필]로써 원고를 썼다) 원고와 別便[별편]으로 나에게 편지를 하였다. 그 편지에는 ‘句節點[구절점]들을 주의하여 원고와 틀림이 없도록 주의하여 달라’는 말이 있었다. 사실 조선에 있어서는 인쇄 기술이 열악하여 인쇄공의 주의로 ‘込物[입물]’ 컴마 등을 畧[약]도 하고 加[가]도 하며 편자 혹은 교정자의 몰상식으로 작품상 용어의 정정도 하므로 ‘작품은 인격이라는 말은 조선서는 쓰기가 어려운 바이다. 이러한 것을 특히 別便[별편]으로 주의해 보낸 데 소월의 작품에 대한 충실함과 자기 작품을 존경하는 경건한 태도와 긍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다른 곳에서도 그렇거니와 시에 있어서는 한 구가 위에 붙는 것과 아래 붙는 것으로 그 뜻이 온전히 달라질 것이다.
 
 
147
이상의 屢屢[누누] 수십 어로써 나는 소월에게 대한 말은 대략 썼다.
 
148
한 사람을 비평하려면 어찌 요만 것으로 되랴마는 소월의 시인으로서의 일면뿐은 대략 말하였다.
 
149
좌우간 그는 자기의 작품에 충실된 사람이다. 조선 정조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고 조선 민중과 시가를 접근시킬 가장 큰 인물이다.
 
 
150
(韓國日報[한국일보], 1929.12.10~12)
【원문】내가 본 시인(詩人) - 김소월(金素月) 군(君)을 논(論)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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