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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봉사 ◈
◇ 성장(成長) (미완) ◇
카탈로그   목차 (총 : 4권)     이전 4권 ▶마지막
1944
채만식
1
沈[심]봉사
2
成長[성장]
 
 
3
동중이 공론하여 돈 낼 사람 돈 내고, 양식이나 포백 낼 사람 양식이나 포백 내고, 또 몸으로 와서 일할 사람 와서 일하고 하여, 형세 푼수하고는 오히려 과분하달 건 출상을 아무려나 치렀다. 백여 대촌이라 하지만 너나없이 가난해빠진 도화동에서 그만한 동중 설도가 나기도 한갓 곽씨부인 당자가 생전시에 남께 실인심 아니하고 두루 어여삐 보인 덕택이었다.
 
4
날이 저뭇하여 심봉사는 회장 갔던 몇몇 손님에게 부축 위로를 받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5
아주 허탈이 되었다.
 
6
먹지도 않으면서, 사흘을 주야로 울부짖고 몸부림치고 하였다. 오늘은 더구나 그 경황을 하면서 상여 뒤를 따라갔다 왔다. 심신이 다같이 극도로 지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하늘만한 비탄이 그새 조금치라도 가셨을 바 없던 것이나, 피로한 소치로 마음은 마치 언살을 만지기처럼 어리덤덤한 것이, 노상 아픈지 달픈지 분간을 모르겠었다. 또 몸은 몸대로 수족 한번 올리고 내리기조차 대견하도록 기운이 시진하고 말았다. 그러고서 오직 졸릴 뿐이었다.
 
7
가까스로 집까지 당도하여 내던지듯 마룻전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8
손님들이라야 언제까지고 옆에서 위로나 하여 주고 있을 리 없는 노릇, 한 사람 돌아가고 두 사람 돌아가고 하다 마지막 한 사람마저 돌아갔다. 하릴없이 남은 것은 심봉사 혼자였다.
 
9
황혼은 각각으로 짙어왔다. 심봉사는 넋을 놓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다.
 
10
매양 출상한 날의 상가란, 가솔이 번다하여도 이상히 헤적적 찬바람이 돌고 쓸쓸한 법이거든, 항차 꼬리 치고 내닫는 개짐승 한 마리 없고, 휑뎅그레 빈 집안이리요. 흡사 여러 대 불 꺼진 집 같은 마룻전에 가 달랑 혼자서 짙어오는 황혼에, 굴건제복은 한 채, 넋을 놓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모양은, 보기에도 차마 민망스런 것이 있었다.
 
11
얼마만인지야 옆집 귀덕어멈이 어린 것 심청을 안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심청은 초상이 나던 때부터 이내 귀덕어멈이 맡아다 젖을 먹이고 하면서 데리고 있었다.
 
12
“무얼, 곡기를 좀 허세여지요. 미음 쑤어 둔 걸 데워다 드리겠시니, 애기 받으세요.”
 
13
귀덕어멈이 그러는 것을, 애기란 말에 심봉사는 비로소 마음이 조금 내키었다. 그래도, 한참이나는, 보이지도 않는 허공으로, 먼 눈을 올려 뜨고, 말없이 앉았다가
 
14
“여보게, 귀덕어멈?”
 
15
하고 풍허한 음성이로 부른다.
 
16
“내에.”
 
17
“적실히 내가 시방 이것이 꿈은 아니겠다?”
 
18
“시상으! 꿈이기나 했으면 오죽 천행이세요!”
 
19
“꼬옥 꿈만 같으이그려!”
 
20
귀덕어멈은 그동안 심봉사가 날마다 밤마다 울고 사살하고 하던 어떤 애통보다도 이 한마디가 가장 더 곡진한 슬픔이 맺힌 말이어서, 눈물이 팽 돌지 아니치 못하였다.
 
21
“꿈결 같으시구말구요, 시상으……”
 
22
“꿈이 아니구서야, 이대지 허망할 데가 있드란 말인가!”
 
23
“허망허시구말구요! 시상으…… 그 정정하시든 으런이……쯔쯔, 그 어질구 얌전허시든 으런이……”
 
24
“허어! 그런데 꿈이 아니라! 정녕 꿈속 같은데, 꿈이 아니요 생시다! 분명 생시다! …… 허망한지고! 허망한지고!”
 
25
“인제는 생각을 허세두 속절없구…… 고생이야 되시나따나, 그런 대루 애기나 길르시믄서, 거기다 낙을 붙이시구…… 그러구 후분이나 바라시구 허새여지, 어떡허십니까?”
 
26
“허망한지고! 허망한지고!”
 
27
“자, 애기 받으세요. 부엌에 들어가 미음 쑤어 둔 걸 좀 데워다 드리께요. 젤에 곡기를 허세야, 인전 기운을 차리시구 허시죠!”
 
28
“아직 생각이 없으이……”
 
29
그러면서 심봉사는 어린 것을 받아 안는다. 가뜩이나 눈이 보이지 아니하니, 아이를 받아 안는다는 양이, 엉성하고 어색하기 다시 없다.
 
30
잠이 들었던 어린 것은 안음안음이 편안치 아니하였던지, 조금 몸을 꼼틀거린다. 그 꼼틀거리는 것에서 심봉사는, 안은 팔을 통하여 오는 촉감으로, 어린것의 하염없은 생명의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겠었다.
 
31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어쉬면서 혼잣말로 중얼중얼.
 
32
“야속한 주검두! 악착스럼 주검두! …… 이걸 날더러 어떡허라구. 눈먼 날더러, 이 한심한 걸 어떡허라구…… 아마 귀신두 천하 어디서 모질구 독한 귀신이든가 보다, 그렇잖으면 날처럼 눈이 먼 귀신이든가 보다. 그랬길래 하필, 우리 셋 중에서 너의 어머니를 붙잡아갔지! 하필……”
 
33
암루가 볼로 흘러내린다.
 
34
“자꾸만 그러시면 소용이 있어요? 어서 방으루 들어가, 애기두 뉘구 허세요. 지끔 마악 젖을 먹구서 잠이 들었은깐, 오늘 밤은 어쩌면 새벽꺼정 내처 잘 거에요…… 참 신통해요! 젖만 배불리 먹은다치면, 제풀에 삭삭자구. 밤엔 더군다나 잘 깨질 아니해요. 쯔쯔, 것두 어머니 없이 자라기루 다아 타구난 팔잔지! 가엾어라…… 그래도 질래 그렇게 보채지 아녀구 순히 자란다면 얼마 다행입니까? 앞 못 보시는 아버니 혼잣손에!”
 
35
마악 그러고 있을 때, 귀덕어멈의 집에서 별안간 게목지르는 소리가 일었다.
 
36
“아니 이 우라 엠병을 헐 년이 어딜 갔드람, 이년이.”
 
37
술취한 귀덕아범이었다.
 
38
항용, 부처에 그중 하나가 마음이 착하면, 하나는 사람이 박절한 수가 많아서, 귀덕이네 양주가 그러하였다. 귀덕어멈은 무한 심덕이 좋은데 귀덕아범이란 위인은 세상 그런 심술이라고는 없었다. 그는 도무지, 아낙이 남께 잘하는 꼴을 못 보았다. 우환중에 의처증(疑妻症)까지 있어가지고, 아낙이 심봉사네를 다니는 것을 질끔으로 싫어하였다.
 
39
“이 주릿대를 앵길 년을, 이년을 당장 코를 깎아놓든지…… 응? 이년 어디 갔어, 이년……”
 
40
놈은, 당장 무슨 거조를 낼 듯이 소리소리 을러대어쌓는다.
 
41
귀덕어멈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42
“저 망나니가 또 술을 퍼먹구 둘와, 저 지랄야! ……”
 
43
“어여, 가보구려.”
 
44
“그럼 전 가봐야겠으니, 미음일랑 샌님이 손수 데워 잡숫게 허세요. 부디 데워 잡수세요. 그러구, 밤에 혹시 애기가 깨어 울거들랑, 애야 어려워 마시구서, 울타리 너머루 절 부르세요, 네?”
 
45
“신세가 태산 같구려! 갚을 길두 없는 신세가……”
 
46
“온, 범연한 말씀두! 신세가 다 무슨 신셉니까?”
 
47
“겸사지, 신세허구두 이런 신셀 데가 있나?”
 
48
“그런 생각은 허실라두 마세요…… 아시다시피 참, 저 위인이 본판 생겨 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어, 괜헌 승질을 부리군 해서, 전 맘은 있어두 무시루와 잘 좀 보살펴 드리구 허질 못해 되려 미안하구 헌걸요…… 이건 그러구, 손 닿는 데 놔두셌다가……”
 
49
그러면서 귀덕어멈은, 어린것의 기저귀를 빨아 말려 재곡재곡 개킨 것을 심봉사한테 전해주고 총총히 돌아갔다.
 
50
심봉사는 어린 것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종시 그는 구미도 없거니와 저벅저벅 부엌엘 내려가 무얼 챙긴다. 불을 지펴 데운다 하여다 먹고 앉았고 할 경황은 조금도 나지 아니하였다. 그보다는 역시 잠이 그리웠다. 잠시 물러갔던 졸음이 또다시 덮치듯 쏟아져 아무것도 다 성가시고, 그저 졸립기만 하였다. 아닐말로, 죽은 곽씨부인이 거기에 도로 살아왔더라도, 반가움은 한참 자고 나서로 미루고 싶도록 못견디게 아쉬운 것이 잠이었다.
 
51
입은 것을 벗고, 자리를 보고 할 여부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대로 어린 것을 안고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52
어린것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53
눈두겁이 천근으로 무거운 요량하면, 잠이 미흡은 하였으나 어린 것이 바리작거리면서 울이쌓는데는 저절로 정신이 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54
어린것은 자지라져 운다.
 
55
용히 그 생각은 나 살을 만져보니, 기저귀가 처근하고, 옆으로 물큰한 것이 비어지고 하였다.
 
56
“온, 일 어떡허나!”
 
57
걱정을 하다 생각하니, 어린것이 대소변을 가리는 날까지는 하루도 몇 차례씩 당해야 할 노릇…… 걱정조차 부질없었다.
 
58
마루에다 잊고 들어온 기저귀를 더듬거리고 나가 찾아다 서투른 솜씨에 갈아 채워주고 하기에 한수고와 굼뜬 시간을 허비하였다.
 
59
기저귀를 갈아 채워 주면 그치려니 하였으나 어린 것은 더욱 울었다.
 
60
안고 일어서서 자장자장하고 다독거려 주어 보았다. 역시 그치지 않는다. 젖을 찾는 모양이었다.
 
61
도로 앉아서 손가락을 물려주어 보았다. 뚝 그치고 담쑥 받아 물더니 쪽쪽쪽쪽 빤다. 파고들 듯하면서 힘차게 빤다. 그러나 맨손가락 끝에서 나는 것이 있을 리 없는 것, 기를 쓰고 한동안 더 빨다가 그만 밀어내면서 도로 운다.
 
62
암만 달래도 소용이 없다. 달래다 달래다 못해 아주 팡져 떨어졌다.
 
63
내려놓아버린 것도 아니요, 그저 안은 것도 아닌 채, 두 다리는 쭈욱 뻗고 퍼근히 주저앉았다. 절로 입에서 흘러져 나오는 탄식이었다.
 
64
“죽구 없는 어미를, 젖만 찾으니 어떡허잔 말이냐!”
 
65
미처 못다 하고 목이 메면서 눈물이 볼을 적신다.
 
66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67
사위가 죽은 듯 괴괴하고, 새벽의 지저귀는 새소리 없고 한 걸로 미루어, 초저녁도 날색 무렵도 아니요, 한밤중이 분명하였다.
 
68
이 깊은 밤중에 어린 것을 부여안고 남들 잠든 동네로 젖동냥을 나가다니 망녕엣 짓이요, 그렇다고 저 우는 것을 보고 앉아 어찌하자는 도리가 없었다.
 
69
진작부터 옆집 귀덕어멈이 생각나지 아니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청해 한 말도 있고, 노상 싫은 내색이야 아니한다 할값이라도, 이 밤중에 곤히 자는 남을 깨워 일으켜 젖을 구한다는 것은 도무지 염치가 아닌 일이었다. 그도 오늘 밤 한번이라면이거니와, 십상 매일 밤 그 짓을 하게 될는지 모르는 것을, 사람마다 제가 난 제 자식도 밤중 곤한 잠이 깨어 젖을 먹이기란 괴롭고 성가신 노릇이라 이르거든, 내 자식 보챈다고 남께 적악도 분수가 있지 아니한가. 그러니 귀덕어멈의 밤젖을 얻어 먹인다는 것은, 비단 오늘 밤뿐만 아니라, 장차로도 생각지 마는 것이 마땅하였다. 항차 그의 남편 된 손이 그러한 사람인데야.
 
70
어린것은 까무라칠 듯 울기만 하고…… 그대로 두어두면 곧 죽는 성만 싶었다.
 
71
‘물이라도? ……’
 
72
그러다 생각하니, 귀덕어멈이 쑤어두었다고 한 미음이 있었다.
 
73
지벅거리고 부엌으로 내려가, 여기저기 이 그릇 저 그릇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아 보면서 헤매고 다니다, 겨우 미음을 찾아내었다.
 
74
미처 데우고 할 염량도 못하고, 허둥지둥 가지고 들어와, 손가락 끝에다 찍어서 빨려주어 보았다. 빈손가락 때처럼 꿀꺽 울음을 그치고 쪽쪽쪽 빤다. 얼른 다른 손가락에다 찍어서 갈아 물려준다. 흠뻑씩 넘어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듯 입이 따라 올라오면서 들이 빤다. 또 찍어 넣어 준다. 잘 빤다. 희한하였다.
 
75
그렇게 부지런히 손가락 미음을 빨리는 동안 양이 찼을까마는 잠이 왔든지 얼마 후에는 슬며시 빨기를 그치고 색색 잠이 든다.
 
76
얼마나 다행인지. 후, 저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77
눈먼 홀애비에다, 첫이레 갖에 지난 강보엣 것의, 막막하고도 궁상스런 첫 하룻밤은 이렇게 해서 지났다.
 
 
78
봄밤이 어쩌면 그다지도 긴지. 다시 깨어 보채는 어린 것을 안고, 날새기를 기다리는 지리답답하기더라니. 겨우겨우 뜰에서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는 집앞 길로 기침하면서 사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79
심봉사는 우는 어린 것을 한팔에 안고 한손으로는 지팡막대를 두드리면서 집을 나섰다. 향하고 가는 곳은 동네 우물.
 
80
우물에는 노소 섞어, 여인들이 너댓이나 모였다. 그중 하나가 먼저 알아보고는
 
81
“아이 저, 심봉사 아냐?”
 
82
한다.
 
83
그 말에 모두들 바라다보면서, 주거니받거니 지껄임이 나온다.
 
84
“이 새벽에 어딜 저럭허구 가는구?”
 
85
“보나마나, 어린것 젖 얻어멕이려 나왔을 테지, 머.”
 
86
“그러니, 하루 이틀 아니구, 육장 저것을 어떻게……”
 
87
“남의 일 같잖드라!”
 
88
“가난해 탈이지, 넉넉하다면야……”
 
89
“남이나 주구 말지?”
 
90
“그러게!”
 
91
“욕심이 어디 그런가?”
 
92
이윽고 심봉사가 우물 두던 가까이 당도하였다.
 
93
“앞 못 보는 심학규올시다. 염치 없는 동냥을 나왔읍니다. 이것이 그렇게 에미를 잃구 배가 고파 보채는 걸, 안구 나왔읍니다. 어느 부인이시든지, 댁의 애기 먹구 남는 젖이 있으시거들랑, 한 모금 빨려주시면 은혜가 태산보다 높겠읍니다.”
 
94
심상히 하느라고 하는 말이요 음성이요 하였으나, 듣는 여인들의 얼굴은 한가지로 처연한 빛이 떠돈다. 그중 늙수레한 여인 하나는 치맛자락으로 눈물을 씻는다.
 
95
여인들은 그러면서 잠잠하고 있다. 그중 나이 어린 소부 하나에게로 눈이 모인다.
 
96
소부는 고개를 소곳하고 있더니, 옆엣 여인을 돌려다보면서 묻는다.
 
97
“갠찮으까요?”
 
98
“그럼 어떤가베?”
 
99
“난, 시어머님이 혹시……”
 
100
“아무리 박헌 시집이기루, 남는 젖 에미 없는 남의 어린 것 좀 맥였기루, 몽둥이질해 내쫓을까?”
 
101
“적선이면 그런 적선이 또 있으리. 어서 한모금 빨려주지? 저 울어 쌓는걸……”
 
102
눈물 씻던, 늙수그레한 여인이 같이서 권이었다.
 
103
소부는 더 주저치 아니하고 앞으로 나와 어린 것을 받아 젖을 물린다.
 
104
여럿은 그를 둘러싸고 들여다 보면서 입입이들 지껄인다.
 
105
“여승 즈이 어머니야!”
 
106
“얼굴이 갸름헌 것이랑, 날선 코랑……”
 
107
“자라믄 아무튼이지 인물 축에 빠지진 않겠어!”
 
108
“온, 영결스럽기두들! 아, 어린것이 자라는 동안 몇번 변을 헌다구……”
 
109
“그래두 제 바탕 게 있지, 어디 갑디까?”
 
110
“이것이 시방, 즈이 어머니를 읽구, 이 모양이 된 줄을 안다면, 어떨꾸? 제 맘이……”
 
111
“그러니깐 울지 않어?”
 
112
“호호호!”
 
113
“기가 멕히지, 머!”
 
114
“어린 자식 두구 상처하란 욕이 상욕이라드니, 그 말이 옳아!”
 
115
“그런 걸 보믄, 세상에 사내처럼 쓰잘데없는 건 없어!”
 
116
“그렇거들랑, 이녁 그 쓰잘데없는 아이아버지 좀, 쫓아내 버리구섬, 혼저 살아보겠지?”
 
117
“제발.”
 
118
“아무튼, 홀애비 살림은 이가 서 말이요, 홀에미 살림은 쌀이 서 말 이라구 아녀우?”
 
119
“뒷말 뺑덕어멈은, 십년 과부에, 쌀 서 말은 커녕, 세 톨두 없드라!”
 
120
마지막 이 말에, 모두들 재그르르 하고 웃는다.
 
121
그다지 많이 불은 젖은 아니었어도, 원체 아직 적은 양이라 어린것은 배가 불끈 일어나도록 먹었다.
 
122
배가 부르니, 그것으로 만족인지라, 아무 소리 않고 눈을 뜨고 아릿아릿 논다.
 
123
“그만하면 천하가 태평인걸, 밤새두룩 울구 보챘나 쯔쯔.”
 
124
눈물 씻던 여인이, 안아보고가 싶었던지 받아서 안고 들여다보면서 그러다가, 심봉사한테 내어준다.
 
125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적선허구두 이런 적선이 또 있으십니까? 젖 먹여주신 부인, 복 많이 받으소서!”
 
126
심봉사는 몇번이고 허리를 굽히면서 치하가 곡진하다.
 
127
소부 당자는 수줍어하면서 잠자코 있고, 눈물 씻던 여인이
 
128
“그만 것이 그리 대단허다구 그러세요? 예사지…… 내일두 안구 나와 한 모금 얻어 멕이세요. 새벽 우물에 젖 있는 사람이 하나나 둘이야 노오 없을랍디까?”
 
129
“네, 네. 그저 감축헙니다!”
 
130
“그러구, 낮이랑 석양때랑은 동네루 나가 돌아다니면서 언어멕이시구…… 좀 그러세여지, 아직 어디 암죽만 가지구서야, 진기가 있어야 어린 것이 살루 가구 허지요.”
 
131
“암죽은, 쌀을 이루 다 씹어서 쑤어 멕이는 게 젤이래요. 배탈두 아니 나구.”
 
132
다른 여인이 그렇게 거드는 것을, 또 한 여인은
 
133
“좋기는 좋다지만, 안직 암죽은 일르지!”
 
134
한다. 이어서 제마다 한마디씩
 
135
“일곱 이레 다 갈 동안은, 미음이나 밥이 좋답디다?”
 
136
“좋기야 유모를 정허면 젤 좋지만서두……”
 
137
“즈이 어머니가 아니 죽구 살았으면 더 좋지.”
 
138
“벙어리가 아니드면, 조옴 말을 잘했으리?”
 
139
“쓰잘데없는 소리들두!”
 
140
마지막, 눈물 씻던 여인이 여럿을 나무란다.
 
141
심봉사는 다시금 치하를 한 후에 우물두던을 떠나 집으로 향하였다.
 
142
아침은 그렇게 해서 때웠고, 새때는 미음을 먹였다. 간밤처럼 손가락으로 찍어먹이지 않고, 숟가락 끝에 떠서 먹였다. 먹이는 이는 눈이 아니 보이고, 어린것은 젖꼭지가 아니고 하여, 어색하고 힘이 들었으나, 그런대로 양을 채우는 시늉을 하였다.
 
143
낮에는 마악 안고 젖동냥을 나가려는 참인데, 귀덕어멈이 마침 와서, 배가 불끈 일어서도록 먹여주었다.
 
144
점심과 저녁 새참은 다시 미음을 먹이고, 저녁은 동냥젖을 먹였다.
 
145
새벽처럼, 한팔에 어린 것을 안고, 한손으로 지팡막대를 두드리면서 동네로 나섰다. 부인 곽씨가, 고이 앉혀두고 벌어다 먹여 살린 덕에, 별로이 동네 출입이라고는 하여보지 아니하여 놓아서 도무지 지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것도 행길이나 큰 고샅은, 눈 멀기 전에 다녀본 가늠으로 아무려나 찾아간다지만, 좁은 고샅이나 남의 집 문전은 전혀 먼 눈 처럼 어두웠다.
 
146
얼마를 행길에서만 헤매다, 요행 알은체하여 주는 사람을 만났다.
 
147
“심생원 어디를 가십니까?”
 
148
“거 누구?”
 
149
“저올시다.”
 
150
“오오! …… 아, 이애를 젖을 좀 얻어 멕이려 나선다구 나섰는데, 온 향방을 못 정허겠군그래! …… 이 근처에 거, 애기 있는 집 없을까?”
 
151
“없기는요, 일러루 오십시요.”
 
152
손목을 이끌고, 얼마 아니 가서, 한 점의 문전을 대어준다.
 
153
“이 집이 바루 달포 전에 해산을 했는데, 젖두 퍽 많구 허답니다.”
 
154
“고마우이! 못 만났드라면, 생고생만 허구 다녔을걸.”
 
155
심봉사는 사립문 가까이 다가서서, 밭은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156
“이댁 아낙에 이쭙니다. 동네 사는 심봉사 심학규올시다. 어린것이 에미를 잃구 배가 고파 우는 걸 안구 나왔읍니다. 혹시 댁의 애기 먹구 남은 젖이 있거들랑 한모금만 빨려주시면 덕분에 이것이 보채지 않구 오늘밤을 지나겠읍니다.”
 
157
가난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이상, 남의 집 문전에 밥을 비는 걸인은 언제고 어디나 있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장님이 강보의 어린 것을 안고 와서, 젖 한 모금 먹여주오 하는 젖동냥은 전고에 드믄 일이요, 보기 어려운 기구한 풍물이라 할 것이었다.
 
158
동냥젖으로 저녁배를 불린 어린 것은 아침처럼 조금 놀다가 역시 칭으리지 않고 잠이 들었다.
 
159
심봉사는 비로소 부엌에 내려가 밥을 지었다. 쌀과 나무는 한동안 걱정 아니하여도 지날 것이 있었다.
 
160
저녁을 지으면서 밥물을 떠두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밤새도록 깨지 않고 새벽까지 내처 자서, 떠둔 밥물이 소용되지 아니하여도 좋았다.
 
161
이튿날 새벽에는 어제처럼 우물로 나갔다. 젖 있는 여인이 둘이나 나와서 서로들 안아다 먹여 주었다.
 
162
세때는 어제처럼 밥물을 먹였다.
 
163
점심때는 안고 동네로 나와 젖 있는 집을 물어가서 동냥젖을 먹였다.
 
164
저녁은 귀덕어멈이 낮에 아니 온 대신 와서 먹여주었다.
 
165
또 이튿날도 그렇게 하였다.
 
166
쉬운 것은 세월이어서, 이럭저럭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새벽에는 으례 우물에 나가서 젖을 얻어 먹이고, 아침 새때와 점심 새때는 밥물로 때우고, 점심때와 저녁때는 동네로 나가서 동냥젖을 얻어먹였다. 하루걸러큼, 혹은 매일, 점심때 아니면 석양때에 귀덕어멈이 와서, 한 차례씩을 먹여주고 하여, 동네로 젖동냥을 나가기는, 하루 한번 쯤이면 족하였다.
 
167
밤에는 대개 새벽까지 내처 잤다. 간혹 깨어서 울어도, 밥물 받아둔 걸 떠먹이면, 이내 그치고 하였다.
 
168
가장 어려운 것이, 낮때나 석양때 동네로 젖동냥을 나가서였다.
 
169
가, 문앞에서 젖동냥을 청하면, 선뜻 안아들여다 배불리 먹여 내주는 집도 없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러면서 내일도 또 오라고까지 하기도 하였으나, 어떤 집에서는
 
170
“우리 아이 멕일 젖도 모자라요.”
 
171
혹은
 
172
“젖은 무슨 젖야?”
 
173
하고 거절하는 수도 종종 있었다.
 
174
서투른 장님이라, 돌부리에 걷어채이거나, 패인 곳을 딛다가 넘어지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나운 개가 짖고 내달아 비명을 지르고 나가 동그라진 일도 있었다. 날세를 모르고 나갔다 비가 와서 부녀가 함빡 젖어가지고 떨기도 하였다.
 
175
이런 말못한 신고를 겪으면서도 다만 한가지, 부녀가 병은 나지 않고 무사히 지나와서, 여간한 다행이 아니었다. 젖을 양이 지나치게 얻어먹을 때도 있고, 나쁘게 얻어먹을 때도 있고, 그러면서 하루 두세 차례는 그 알량한 밥물로 배를 채우고 하였으니, 응당 배탈도 나고 하였으련만, 또 입히는 것이 고르지 않고, 찬비도 맛고 하니 감기도 들리고 하였으련만, 과시 어미없이 그렇게 함부로 자라란, 타고난 팔자라는 것인지, 도무지 탈이라는 걸 모르고 자랐다. 만약 병이라도 끌리고 하였다면 고생을 갑절 더 하게 하였을 것이었다.
 
176
하옇든 그러기를 한 달…… 그러자 하루는 뜻 아니한 나그네가 심봉사 부녀를 찾아왔다. (미완)
【원문】성장(成長)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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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蔡萬植)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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