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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沈) 봉사 ◈
◇ 슬플 대상(代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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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채만식
1
沈[심]봉사
2
슬플 代償[대상]
 
 
3
곽씨부인이 병이 낫다.
 
4
그렇게 난산을 한 산모가, 겨우 하루낮과 하룻밤을 누웠다. 이튿날 아침에 벌써 기동을 하였다. 부엌에 내려가 조반 분별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는 해산 빨래를 하였다. 눈먼 남편이 지벅거리면서 조석을 짓는다, 산모의 국밥 시중을 든다 하는 것을 차마 누워서 먹고 있기가 곽씨부인 같은 여인으로는 좀처럼 못할 노릇은 못할 노릇이었다. 방구석에 쌓인 악취 나는 해산빨래를 그대로 두어두고 보고, 그러다 옆집 귀덕어멈이라도 와, 필경 그런 개운치 못한 빨래를 남의 손에 빨게 하고 한다는 것 역시 곽씨부인 같은 여인으로는 좀처럼 못할 노릇은 못할 노릇이었다. 도시는 그것도 가난 소치요, 한편 타고난 결벽과 부지런한 탓이었다지만, 아무튼 그런 난산을 하여 몹시 지친 산모로, 과히 무리 무모한 기동이 아닐 수 없었다.
 
5
급한 것 몇가지만 빨아, 짜 널고는 들어와 한축을 하고 앓기 시작하였다. 몸이 불덩이같이 끓고, 밤에는 헛소리까지 하면서 밤새도록 앓았다. 도리없이 먹어야 할 국밥도 입도 대지 아니하였다.
 
6
밤이나 지나고 나면 좀 우연만할까 하였으나 차차로 더하였다. 사족과 전신이 팅팅 부었다. 열에 아홉이 살기 어렵다는 산후별증(産後別症)이었다.
 
7
의원을 청하여 왔다. 의원은 와서 맥을 보고 입맛을 다시더니, 침음하다 화제를 내었다. 약을 지어다 화약으로 달여 세 첩 네 첩 연복을 시켰다. 일변 삼신동티라 하여, 귀덕어멈이 나서서 서둘러 밤에는 경을 읽었다. 또 가물치를 구하여 달여 먹이는 등, 산후별증에 신효하다는 상약도 두 가지 세가지 써보았다. 그러나 약도 경도 아무 효험을 볼 수가 없고, 병은 시시각각으로 더 침중하여만 가다, 병이 난 지 사흘째 되는 밤까지에는 병은 이미 돌릴 가망이 없을 지경으로 기울고 말았다.
 
 
8
검정 쇠털벙거지를 쓰고, 붉은 등삼을 입고, 뒤통수가 세 뼘이나 되고, 눈이 쭉쭉 째져 올라가고, 저마다 육모방치를 들고 한 세 놈이 척척 들어서면서
 
9
“썩 나서라, 염라대왕님 영이시다.”
 
10
하고 호통을 질렀다.
 
11
곽씨부인은 놀라 물었다.
 
12
“내가 무슨 죄가 있기에, 나를 잡아가드란 말이요?”
 
13
세 놈 사자는 대답하였다.
 
14
“딱한 말이로다! 인간의 명[命]이 수에 달려 있지, 죄 있고 없는 것으로 가드냐?”
 
15
곽씨부인은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면서 빌었다.
 
16
“제발 적선하시요! 내가 시방 죽고 보면, 내게 딸린 두 목숨이 마저 죽소! 살려주오!”
 
17
“우리는 사자로, 잡아가는 직책은 있어도, 살려주는 권한은 없으니 무가 내하로다!”
 
18
세 놈 사자의 대답이었다.
 
19
곽씨부인은 악이 북받치었다.
 
20
“나는 못 가오! 서발막대 거칠 것 없는 이 철빈에, 앞 못 보는 남편과 엊그제 생겨난 핏덩이를 뒤에 두고, 날더러 황천길을 가란 말이 어인 말이요? 나는 못 가오. 나는 못 가오.”
 
21
“네 명이 오늘 닭 울기까지가 한이다! 할 말 있거든 가서 염라대왕님 앞에서 사뢰고, 어서 바삐 나서거라! 닭 울 시각이 머지않었다.”
 
22
세 놈 사자는 항거하는 곽씨부인을 육모방치로 함부로 때리면서, 팔을 잡고 등을 밀어 방문 밖으로 잡아끌었다. 곽씨부인은 섧게 울면서 끌려나가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다.
 
23
한참 그렇게 승강을 하면서, 그러나 세 놈이나 사자의 힘을 당치 못하여 차차로 끌려나가고 있을 즈음인데, 그러자 응애 하고 우는 어린것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리는 듯 들렸다. 퍼뜩 곽씨부인은 정신이 들었다. 앓아 누운 지 나흘 만에 처음 비로소 정신이 한번 든 것이었었다.
 
24
곽씨부인은, 정신이 들어서 보니 꿈이었다. 등잔불이 켜져 있고, 남편은 꼬부리고 누워 잠이 들었고, 그 발치에 놓인 화로에는 미역국인지 죽인지 뚝배기가 올려 놓여 있었다. 그런 지금의 이것이 생시요, 아까 그것은 정녕 꿈이었었다. 그러나 꿈은 꿈이라도 결단코 허황한 꿈은 아니었다. 머리를, 어깨를, 그 모진 육모방치로 얻어맞은 자리가 역력히 아팠다. 잡아끌린 팔이, 늘어난 것처럼 힘이 없고 뻐근하였다. 사자는 적실히 왔고, 보이지는 아니하여도 시방도 세 놈이 잔뜩 노리고 섰을시 분명하였다.
 
25
곽씨부인은 자지라져 우는 어린 것을, 가까스로 끌어당겨 젖을 물렸다. 먹지 않고 여러 날을 앓았으니, 젖이 날 리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불었든지 빠는 대로 한 모금 두 모금 넘어가는 것이 있었다.
 
26
“배불리 많이 먹어라! 에미 젖, 이것이 마지막이다!”
 
27
곽씨부인은 눈물이 쏟아지고 목이 멘다.
 
28
“차라리 생겨나지를 말드냐! 에미는 명이 그뿐이니 아무래도 오늘이 죽는 날이란다지만, 네야 부질없이 생겨났다, 무슨 죄로! ……”
 
29
느끼어 말이 막힌다.
 
30
“무엇을 먹고, 뉘 손에 길리드란 말이냐? 주검도 야속도 하고나! 적이나 너를 길러, 네 발로 걸어다닐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살려두어 줄 것이지, 주검도 야속도 하고나! 앞 못 보시는 너의 아버지, 당신 한몸 주체도 못하시는 너의 아버지, 첫이레 안의 너를 안고, 장차 어찌하신단 말이냐? 단 일년이라도 먹고 살 것이 있느냐? 그러나마 원근간에 의탁할 일가친척이 있느냐? 지질히 고단한 신세에! ……”
 
31
하도 밤이 고요하여 등잔에서 빠지직 심지 타는 소리가 유난히 높이 적막을 깨트린다.
 
32
“가엾은지고! 가엾은지고! 무슨 팔자가 그대지도 기박하면, 대대 독자에 백결 같은 가난에, 앞 못 보는 병신에, 사십이 넘도록 혈육 한 점 슬하에 없다가, 딸자식일망정 너 하나가 생겨나자 핏덩이채 너를 안고 상처를 하다니, 기박하면 이런 기박한 팔자도 있드란 말이냐! 가엾은지고! 나 한번 덜컥 죽고 보면, 그 당장부터 누가 있어 조석시중은 들어주며, 손수라도 끓여 자시자니 무얼 가지고 끓여 자시드란 말이냐! 여름이야 살만 가리면 산다지만 엄동설한을 무얼 입고 지나시드란 말이냐! 불쌍하구 가련헌지고! 보나마나 거지 거지 상거지가 되어 너를 안고 젖동냥 밥구걸 나다니다, 개울청에 빠지긴들 얼마나 할 것이며, 사나운 개한테 쫓기고 넘어져 다치긴들 얼마나 할 것이며, 기한을 못이겨 부녀 마조 안고 설리설리 울긴들 얼마나 할 것이며! …… 그런 모진 고생 하면서라도 명을 보전한다면이거니와, 그러다 부녀가 다 배 주리고 애를 졸여 고살주검을 하기가 십상일 테니! 불쌍헌지고! 가련헌지고!”
 
33
어린것은 양이 엔간히 찼는지 혹은 잠이 취해 그러는지 물고 빨던 젖꼭지를 힘없이 놓고 삭삭 그대로 잠을 잔다.
 
34
“마주막인걸, 에미 젖 마주막인걸, 배불리 더 먹지 그러느냐? 어서 더 먹어라, 더!
 
35
젖꼭지를 도로 물려주어도 빨지 않는다.
 
36
“쭈쯔, 에미 없이 자랄 자식이라, 나삐 먹고도 보채지 말라고, 타고난 팔잔가 보구나! 쯔쯧! …… 오냐, 부디 보채지 말구 자라거라. 병없이 자라거라. 네가 보채쌓구 병이나 끓구 하면, 너의 아버지 더 고생되시구, 더 상심허시구 하실 테니, 부디 보채지 말구, 병 끓지 말구 순히 자라거라. 순히 자라구 어서어서 자라서 앞 못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 부디부디 효도 극진히 해 드려라!”
 
37
따로 뉘고, 다독다독 다독거려 주면서 이윽고 들여다보다 새로운 눈물이 줄기져 흐른다.
 
38
“원통한지고! 설운지고! …… 내가 조금 범연하면, 내가 조금 등한하면, 앞 못 보시는 너의 아버지, 가뜩이나 고생되시기 쉽겠기에, 마음 불안하시겠기에, 남 부끄럼 무릅쓰고, 풍한서습 가리지 않고, 소 갈 데 말 갈 데 못 가는 데 없이 다니면서, 품 팔고 밥 받아다가, 으설푸지 않고 섬식지 않게 조석공궤 알뜰히 하고, 여름이면 시언한 베옷으로 겨울이면 뜨뜻한 솜옷으로, 헌것이나마 깨끗이 때 빼어 입혀 드리고, 그러면서 전곡간 밀리는 것 있으면 없는 듯이 모았다, 눈에 영하다는 의원도 보이고 약도 쓰고, 치성도 드리고…… 휘유! 그리다, 바라고 바라든 너 하나가 자식일망정 혈육이 생겨나, 신통하고 기쁜 마음 비길 데가 없고, 장차로 뼈가 휘고 살이 닳드래도 부지런히 벌고 정성껏 길러, 우리 내외 여생의 낙을 네에다 붙이자 하였든 것이! …… 원통한지고 설운지고! 인생이 이대지 허망한 줄이야 몰랐고나! 주검이 이대지 박절한 줄이야 몰랐고나! …… 너를 두고 죽다니, 너의 아버지를 두고 내가 먼점 죽다니, 눈이 아니 감겨 차마 어찌 죽을거냐? 피눈물이 앞을 가려, 황천길을 차마 어찌 가드란 말이냐?”
 
39
앓다가, 혼비중에 그대로 죽고 말았다면 차라리 팔자 좋은 죽음이었을 것을, 잠깐 정신이 들기가 오히려 불행이었었다.
 
40
소위 단장(斷腸)의 슬픔이라고 이르거니와, 만약 사람이 슬픔으로 인하여 창자가 끊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때에 곽씨부인은 창자가 정히토막토막이 끊어지고 말았을 것이었다.
 
41
생각컨대, 운명은 죽음에 들어서까지도 편안한 죽음을 시키지 않고, 잔인악착하고 싶은 대로 잔인악착히 한번 굴어보려는 것이, 이 심씨집 일문에 대한 운명의 뜻이 아니든지 모르겠다.
 
42
곽씨부인은 숨이 차오고 정신이 아찔아찔하였다. 그 정신이 아찔아찔 할 때마다 벙거지 쓰고 육모방치 든 세 놈 사자가 연방 눈에 얼찐거리고 하였다.
 
43
이를 악물고, 남은껏 기운을 짜 정신을 차리면서 남편을 불러 깨웠다.
 
44
심봉사는 두번째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반가와하면서 더듬더듬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45
“그래, 정신이 좀 들었소, 마누라?”
 
46
“네에!”
 
47
곽씨부인은 남편의 손을 잡는다.
 
48
“어허 잘 했소! 나는 글쎄, 마누라가 꼭 죽는 줄만 알았구려! 꼭 죽는 줄만 알았어!”
 
49
“………”
 
50
“아니 글쎄, 병이 나, 눈 것이 열흘날인데, 병나 누면서 버틈 열흘, 열하루, 열이틀, 꼬박 사흘 낮 사흘 밤을 아무 정신 못차리구 앓기만 허는구려! 먹지두 않구…… 허, 기가 맥혀! 내가 이건, 눈알라 먼 놈이 첫이레두 못간 저 어린 것 데리구 홀애비가 되느니라 허구, 가슴을 얼마나 찐지 알우? 남들두 다 허느니 그말이구……”
 
51
“………”
 
52
곽씨부인은 암루만 흘릴 뿐 말을 내지 못한다.
 
53
“아모톤 인전, 정신이 둘구 살아났으니 이런 천만다행일 도리가 없소! 워너니 그러면 그렇지, 사람의 목숨이 쉽사리 그렇게 죽구 한대서야, 어디 될 말이요?”
 
54
“………”
 
55
“그러나저러나, 첫째 우선 곡기를 해서 기운을 차리두룩 해야만 아니 허우? 그래야 젖이 나서 어린것두 배를 좀 불려보구 허지, 그동안은 온, 귀덕어멈이 하루 몇 차례 들러 목만 겨우 축여주군 해서……”
 
56
“그 신셀……”
 
57
하다가, 곽씨부인은 흑흑 느끼고 말을 잇지 못한다.
 
58
“울지 마우! 가뜩이나 기운 지친 사람이…… 사느라면 남의 신세 갚을 날이 있지, 없을랍디까?”
 
59
그러면서 심봉사는, 다른 한편 손으로 곽씨부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손 끝에 눈물이 흥건히 젖는다.
 
60
“울지 말아요! 그만 걸 가지구 새삼스럽게 이대지 울 거야 있소? ……
 
61
이, 얼굴서껀 부기는 통히 내리지를 아니했군 그래! 이, 부기가 쑤욱 다 내려야, 그래야만 거뜬히 어서 몸을 추실르구 일어설 텐데…… 자, 저기 미역죽 쑨 것이 있으니 좀 자시두룩 헙시다. 그리구, 날이 밝거들랑, 약방엘 가, 정신은 채렸으니, 곤쳐 병논을 해서, 부기 내릴 약을 지어다 쓸 요량을 해야겠소.”
 
62
“밤이 어느만때나 되었지요?”
 
63
“글쎄에…… 내가 얼마나 잤는지는 몰라두, 하마 닭이 울 무렵이지?”
 
64
“………”
 
65
곽씨부인은 깊이 한숨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새로 남편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66
“저를 마주막 보세요! 아마 영결인가 봅니다!”
 
67
“무어? 건 무슨 소리요?”
 
68
“전들 죽구야 싶으리까만서두, 명이 그뿐이라는 것 어떡헙니까!”
 
69
“아따 마누라두 괜헌 소리를 해쌓는구려! 사람이 죽어보지 않구서야 명을 어찌 안단 말요?”
 
70
“짐작되는 일이 있어 그럽니다, 제 말씀 부디 허수히 듣지 마시구 마주막 유언으루 아세요!”
 
71
“말이라두 그런 말일랑 허자 마우! 마누라가 만일 시방 죽구 보면, 내 신세가 무엇이 되겠소? 앞 못 보는 병신 내게다, 저 핏덩이를 전장허구 죽단 말이 될 말이요?”
 
72
“죽음 야숙허구 무심탄 말이 그래 두구 이른 말인가 봅니다. 휘유! ……”
 
73
곽씨부인 숨이 더욱 차와 와, 자주 마디숨을 쉬면서, 무한 힘을 들여 말을 잇는다.
 
74
“윗목 항아리에 쌀이 두어 말이나 되리다. 산미루 구해둔 것이, 초상 양식이 되다니! …… 그리구, 거넌마을 김동지댁에 돈 열 냥 맽긴 것이 있으니, 찾아다 그 쌀 해서, 초상에 쓰게 허시구……”
 
75
“초상용이 아니라, 약방에 약채두 있구, 내일 또 약두 지여 오구 하자면, 아모려나 그 돈을 찾아와야 하겠소.”
 
76
“진어사댁 관대 한 벌을 맡아다, 흉배에 학을 수놓다, 못다 논 채 보에 싸서 농에 넣었으니, 남의 댁 소중한 의복, 잊지 마시구 참겨 보내시구 ……”
 
77
“이왕 맡아다 손댄 것이니, 차차루 몸 추시르구 일어나, 마저 마쳐서 보내두룩 허구려!”
 
78
“옆집 귀덕어멈이, 근지는 미천해두 심지가 무던헙너인다. 날이 궂거나저물어서 멀리 젖동냥을 못 나가시는 날은, 어린것이 배고파 울거들랑 안고 가서 젖 한 모금 빨려 달라시면 젖두 흔허려니와, 여러 해 두구 저허구 지내든 정리루 보아, 과히 괄시는 아니허리다요.”
 
79
“그래! 귀덕어멈이 가만히 본다치면 사람이 무던하단 말야! 그새두 글쎄, 하루 몇 차례씩 들러서는, 저걸 젖을 멕여주구 나 먹을 걸 끓여 주구…… 참, 복받을 사람이야!”
 
80
“멕일 것이 있어요? 입힐 것이 있어요? 앞 못 보시는 으런이, 당신 몸 하나 거천하시기에두 애가 쓰이실 텐디, 저걸 더리고 조옴 하시겠어요? …… 그래두, 그래두, 암만 고생스러시드래두, 남일랑 내주시지는 마세요? 손수 길르게 하세요? 마주막 원정입니다!”
 
81
“온, 마누라두! …… 금을 주어두 아니 바꾸구 옥을 주어두 아니 바꿀 저걸, 끔찍한 내 새끼를, 그래 아무려면 남을 주다니, 온, 될 뻔이나 한 말이요?
 
82
“사세나 지질히 어렵지 말았어야, 수히 얼른, 마땅한 자리를 골라서 ……”
 
83
“날더러 장가를 들라? 심봉사 심학규가 팔자 늘어지나 보다! ……아따, 마누라가 어서 일어나서, 똑떨어진 젊은 색시 하나 골라, 첩장가들여서, 날 호강 좀 시키구려? 허허허허…… 그렇지만, 그랬다 괜히, 신정에 빠져서 마누라 소박하면 어떡헐료?”
 
84
“그리구, 저것이 천행으로 죽지 않구서 자라거들랑, 그래서 제 발루 걸구 하거들랑, 막대 잡혀 앞세우시구, 길 물어가면서, 제 무덤 찾아오세서, 아가 이게 너의 어머니 무덤이다 허시구, 모녀 상봉시켜 주세요, 부디.”
 
85
“부디나마나, 마누라가 저걸 데리구 내 무덤을 찾아와, 아가 이게 너의 아버지 산소란다 하면서, 부녀 상봉을 시키게 될지 뉘 아오? …… 자, 그런 청승스런 이야길랑 인전 고만 해둡시다. 고만 해두구서, 저 죽을, 좀……”
 
86
“깜빡 잊을 뻔했네! …… 어린것 이름은 청이라구 부르게 허세요.”
 
87
“청이? 무슨 자?”
 
88
“맑을 청 자.”
 
89
“오오, 맑을 청 자! …… 청이, 청이, 쯧, 좋소그려! 부르기두 좋구, 글자두 쓰기두 좋구……”
 
90
“부디부디, 저 죽구 없다구, 너무 슬퍼허시다, 귀중허신 몸 상치 마시구, 천만 보증허세요! 이생에 미진한 한을 후생에나 풀게 허지요! 휘유!”
 
91
심봉사는 더듬더듬 화로 옆으로 가 놓인 뚝배기를 만져본다. 싸늘하였다.
 
92
“허어, 화로불이 그새 다 죽었군…… 마누라, 내 부엌으루 내려가, 뎁혀 가지고 오리다?”
 
93
심봉사는 한손에 죽 뚝배기를 집어 들고, 한손으로 벽을 더듬으면서, 문을 열고 나간다. 마악 나가는데, 닭이 홰를 툭툭 치면서 꼬꼬 울었다.
 
 
94
아궁에 불을 지펴, 죽을 데우고 하느라고 한식경은 있다 심봉사는 김 오르는 죽 뚝배기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95
“거, 눈먼 홀애비가, 천하 못할 건 살림살일까 보군! 끙!”
 
96
혼잣말로 그러면서, 곽씨부인 옆으로 와 앉는다.
 
97
“자, 뜨듯이 뎁혔으니, 어서 좀 자십시다?”
 
98
“………”
 
99
“응? 마누라?”
 
100
“………”
 
101
“마누라?”
 
102
“………”
 
103
“그새 잠이 들었나아?”
 
104
팔에 손을 대고 가볍게 흔든다. 이상히 서늑하고 뻣뻣한 것 같았다.
 
105
“응? 잠이 들었소?”
 
106
“………”
 
107
“또, 정신을 놓았나!”
 
108
이번에는 귀를 기울여 숨소리를 들어본다. 숨소리가 없다.
 
109
“엉?”
 
110
놀라면서 급히 손으로 얼굴을 만진다. 차디찼다. 눈은 감기고 콧김이 없다.
 
111
“정말이구려.”
 
112
부르짖으면서 사체 위에 엎드린다.
 
113
“마누라, 마누라, 이게 웬 말이요? 마누라가 죽다니, 웬 말이요.”
 
114
몸부림을 치고 통곡을 한다.
 
115
“나는 병중에 비감이 들어 하는 말로 허수히 들었지, 설마 정말인 줄이야 몰랐구려!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가 죽다니 웬 말이요? 나를 두고 마누라가 죽다니 웬 말이요?”
 
116
어린것이, 소리에 놀라 잠이 깨어 까무라칠 듯 운다.
 
117
얼마를 심봉사는, 설운 사살을 하면서 땅을 치며 몸부림을 하며 울다 어찌어찌 어린 것 우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118
뚝 울음을 그치고, 어린것한테로 쏠려들어, 불끈 집어들고 일어선다. 흰 눈알을 헤번득거리면서, 숨을 식식거리면서, 곧 미친사람 거동이다.
 
119
“이것! 웨 생겨났드냐? 에미를 죽이구 생겨난 것이 자식이드냐? 원수지! 에잉!”
 
120
그대로 태질을 치려, 번쩍 치 꼬느어 든다. 곡성 소리를 듣고 달려온 귀덕어멈이, 찰나에 덤쑥 빼앗아 안지 아니하였으면, 어린것은 인하여 저의 모친을 뒤따라 저승길을 갔을는지도 몰랐다.
 
121
“진정허세요 샌님! 진정을 허세요!”
 
122
귀덕어멈이 어린 것을 젖꼭지 물려 달래면서, 심봉사더러 탓하듯 위무를 한다.
 
123
“진정이라니? 진정이라니? 내가 눈이 아니 뒤집히구 어쩐단 말인가? 환장을 아니허구 어쩐단 말인가?”
 
124
“그래두 진정을 허세예지, 애기가 무슨 죄에요?”
 
125
“어이구! 원통한지고! 압통헌지고!”
 
126
심봉사는 사지에 맥이 풀려, 펄썩 주저앉는다.
 
127
“마누라, 마누라, 야숙두 허구려. 야숙두 허구려. 아무리 죽음길이 무상허기로서니, 나를 두구 가단 말이 웬 말이요? 첫이레 안의 저 어린걸, 눈먼 내게 끼쳐두고 마누라 혼자 가단 말이 웬 말이요? 이왕지사 내가 죽구 마누라가 살아주지! 마누라가 죽구 내가 사니, 무얼 허드란 말이요? 마누라, 마누라, 제발 도로 와, 나허구 바꾸어 갑시다, 나허구 바꾸어 가요, 제발!”
 
128
애절하며 울다, 필경 기색하여 쓰러지고 만다.
 
129
딸자식이라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던, 만득의 귀한 한점 혈육이요, 기쁜 탄생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그 대상은 이렇듯 끔찍하고 슬픈 것이 있었다.
【원문】슬플 대상(代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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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0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