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꿈 ◈
◇ 둘째권 ◇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이전 2권 다음
1939.7
이광수
1947년 면학서관(勉學書館)에서 간행한 이광수의 중편소설로 달례와의 행복한 생활과 방해자인 평목(平木) 스님을 죽이고, 달례의 정혼자였던 모례(毛禮)가 사냥을 나오는 편이다.
1
꿈 - 둘째권
 
 
2
조신은 달례를 데리고 남으로 남으로 걸었다.
 
3
뒤에서 무엇이 따르는 것만 같고 수풀 속에서도 무엇이 뛰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미인과 재물을 지니고 가는 것만 하여도 마음 조리는 일이어든 하물며 남의 약혼한 처녀를 빼어가지고 달아나는 조신의 마음의 조림은 비길 데가 없었다.
 
4
게다가 달례의 말을 듣건댄, 그의 새서방이 될 뻔한 모례는 글도 잘하거니와, 칼도 잘 쓰고 활도 잘 쏘고 말도 잘 달리고 또 풍악도 잘하는 화랑이었다. 모례가 칼을 차고 활을 들고 말을 타고 따라오면 어찌하나 하면 조신은 겁이 났다.
 
5
이때에,
 
6
『조신아, 조신아. 섰거라!』
 
7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8
조신은 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9
『어떻게 해, 이를 어째!』
 
10
하고 조신은 달례와 보물 보퉁이를 두리쳐 업고 뛰었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은 조신의 다리는 방앗공이 모양으로 디딘 자리만 되디디는 것 같았다. 마침 나무 한 포기 없는 데라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조신에게는 이 동안이 천년은 되는 것 같았다.
 
11
『하하하하.』
 
12
하고 뒤에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려도 모례의 화살은 날아오지 아니하였다.
 
13
『내야, 조신아, 내다. 평목이다.』
 
14
평목은 벌써 조신을 따라잡았다.
 
15
조신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입이 넓기로 유명한 평목이었다. 조신은 그만 달례를 업은 채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맥이 풀린 것이었다.
 
16
조신의 몸은 땀에 떴다. 숨은 턱에 닿았다. 목과 입이 타는 듯이 말랐다. 눈을 바로 뜰 수가 없고 입이 열리지를 아니하였다.
 
17
평목은 조신의 머리를 싼 헝겊을 벗겼다. 맹숭맹숭한 중대가리다.
 
18
『이놈아, 글쎄 내 소리도 못 알아들어? 그렇게 내다해도 못 알아들어?』
 
19
평목은 큰 입으로 비쭉거리고 웃었다.
 
20
『아이구, 평목아, 사람 살려라.』
 
21
조신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22
『이놈아, 글쎄 중놈이 백주에 남의 시집갈 아가씨를 빼가지고 달아나니깐 발이 조리지 않아?』
 
23
평목은 더욱 싱글싱글하였다.
 
24
『그래 너는 어떻게 알고 여기 따라 왔니?』
 
25
『시님께서 가 보라고 하시니까 따라 왔지.』
 
26
『내가 이 길로 오는 줄 어떻게 알고?』
 
27
『노시님이 무엇은 모르시니? 남으로 남으로 따라가면 만나리라고 그러시더라.』
 
28
『그래 너는 왜 온 거야?』
 
29
『글쎄, 시님께서 보내셔서 왔다니까.』
 
30
『아니, 왜 보내시더냐 말이다.』
 
31
『너를 붙들어 오라고. 지금 사또께서 야단이셔. 벌써 읍으로 기별을 하셨으니까, 군사들이 사방으로 떨어날 것이다. 그러면 네가 어디로 달아날 테야? 바람개비니 하늘로 오를 테냐, 두더지니 땅으로 들 테냐? 꼼짝 못하고 붙들리는 날이면 네 모가지가 뎅겅 떨어지는 날야. 그러니까 어서 나하고 아가씨 모시고 돌아가자, 가서 빌어. 아직 아가씨 말짱하십니다, 하고 빌면 네 모가지만은 제자리에 붙어 있을 것이다. 자, 어서 가자.』
 
32
하고 평목은 달례를 향하여,
 
33
『아가씨, 어서 날 따라 오시오. 글쎄 아가씨도 눈이 삐었지, 어디로 보기로 글쎄 저런 찌그러진 검둥이놈헌테 반하시오? 자, 어서 가십시다. 만일진정 모례라는 이가 싫거든 내 좋은 신랑을 한 사람 중매를 하오리다. 하다 못하면 내라도 신랑이 되어 드리지요.』
 
34
평목은 이렇게 지절대며 달례의 어깨를 밀어서 앞을 세웠다.
 
35
『이놈이.』
 
36
하고 조신은 번개같이 덤벼들어서 평목의 뺨을 때렸다.
 
37
『네, 이놈! 또 한번 그런 소리를 해보아라. 내가 너를 죽여 버리고 말 테다.』
 
38
조신은 씨근씨근하였다.
 
39
『이 못난 녀석이 어디 이런 기운이 있었어?』
 
40
평목은 달례를 놓고 커다란 입을 벌리고 껄껄 웃었다.
 
41
평목이가 웃고 보니, 조신은 부끄러움이 나서, 제 손으로 때린 평목의 뺨이 불그스레하여지는 것을 겸연쩍게 바라보았다.
 
42
평목은 어깨에 걸쳤던 보퉁이를 내려서 조신의 앞에 내어 밀며,
 
43
『엇네, 노시님이 보내시는 걸세.』
 
44
하였다.
 
45
『그게 무엔가?』
 
46
조신은 더욱 무안하였다.
 
47
『끌러보면 알지.』
 
48
조신은 끌렀다. 거기서 나온 것은 법당에 벗어 팽개를 치고 왔던 칡베 장삼과 붉은 가사였다.
 
49
『이건 왜 보내신다던가?』
 
50
조신은 가사와 장삼을 두 손으로 받들어들고 물었다.
 
51
『노시님께서 그러시데. 이걸 조신이 놈을 갖다 주어라, 이걸 보고 조신 이놈이 돌아오면 좋고, 안 돌아오거든 몸에 지니고나 댕기라고 일러라, 지금은 몰라도 살아가노라면 쓸 날이 있으리라, 그러시데. 그럼 잘 가게, 나는 가네. 부디 재미나게들 살게. 내 사또 뵙고 자네들이 하슬라 쪽으로 가더라고 거짓말을 하여 줌세. 사또도 사또지, 이제 저렇게 된 것을 다시 붙들어 가면 무얼 하노.』
 
52
하고 평목은 조신과 달례를 바라보고 한번 씩 웃고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훨훨 오던 길로 가고 말았다.
 
53
『고마웨, 평목이 고마웨.』
 
54
하고 조신이 외쳤으나 평목은 들은 체도 아니하였다.
 
55
조신은 용선 노사와 평목의 일이 고마왔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할 새가 없었다. 조신은 달례를 데리고 어서 달아나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달례를 잃어서는 아니된다.
 
56
평목은 사또에게 조신이 달아난 길을 가리키지 아니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무사히 태백산(太白山) 밑까지 달아날 수가 있었다. 여러 번 의심도 받았고 또 왈패들을 만나서 달례를 빼앗길 뻔도 하였으나 조신은 그때마다 용하게도, 혹은 구변으로, 혹은 담력으로 이러한 곤경들을 벗어났다.
 
57
『이게 다 관세음 보살님 은혜야.』
 
58
조신은 곤경을 벗어날 때마다 달례를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59
조신은 태백산 깊숙한 곳에 들어가서 터를 잡고 집을 짓고 밭을 이뤘다. 모든 것이 다 뜻대로 되는 것만 같았다. 보리를 심으면 보리가 잘되고, 콩을 심으면 콩도 잘되었다. 닭을 안기면 병아리도 잘 까고, 병아리를 까면 다 잘 자랐다. 개도 말같이 크고, 송아지도 얼른 큰 소가 되었다. 호박도 박도 동이만하게 열었다. 물도 좋고 바람도 좋았다. 이따금 호랑이, 곰, 멧돼지, 삵장이, 족제비 같은 것이 내려오는 모양이나, 아직도 강아지 하나, 병아리 한 마리 잃은 일이 없었다.
 
60
『관세음 보살님 덕이야, 산신님 덕이고.』
 
61
조신은 이렇게 기뻐하였다.
 
62
이러한 속에 옥 같은 달례를 아내로 삼아가지고 살아가는 조신은 참 복되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도 다 부러워하였다.
 
63
첫아들이 났다. 그것은 꿈에 미력님을 뵈옵고 났다고 하여서 미력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64
다음에 딸이 났다. 그것은 꿈에 달을 보고 났다고 하여 ⌜달보고⌟라고 이름을 지었다.
 
65
세째로 또 아들이 났다. 그것은 꿈에 칼(劍)을 보고 낳다고 하여서 ⌜칼보고⌟라고 이름을 지었다. 네째로 또 딸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거울보고였다.
 
66
인제는 조신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단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늙는 것이었다. 조신은 벌써 오십이 가까왔다. 머리와 수염에 희끗희끗한 것이 보이고 그렇게 꽃 같은 달례도 자식을 넷이나 낳으니 눈초리에 약간 잔주름이 보이고 살에 빛도 줄었다. 달례도 벌써 삼십이 넘었다.
 
67
조신은 아니 늙으려고 산삼도 캐러 다니고 사슴도 쏘러 다녔다.
 
68
『내가 살자고 너를 죽이는고나.』
 
69
하고 조신은 살을 맞고 쓰러져서 아직 채 죽지도 아니한 사슴의 가슴을 뚫고 그 피를 빨아먹었다. 그리고 용을 갖다가 식구들이 다 나눠 먹었다.
 
70
산삼도 먹었다.
 
71
이것으로 정말 아픔과 늙음과 죽음이 아니 오려는가?
 
72
하루는 조신이 삼을 캐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미력이, 달보고, 칼보고 세 아이가 나와 놀다가 아비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73
『아버지, 손님 왔어.』
 
74
하고 조신에게로 내달았다.
 
75
『손님? 어떤 손님?』
 
76
조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이 집에 찾아올 손님이 있을 리가 없었다.
 
77
『중이야.』
 
78
『중?』
 
79
조신은 벌써 중이 아니었다.
 
80
『응, 입이 커다래.』
 
81
『엄마가 알든?』
 
82
『처음에는 누구셔요? 하고 모르더니 손님이 이름을 대니까 엄마가 알든데.』
 
83
『이름이 뭐래?』
 
84
『무에라더라? 무슨 목이.』
 
85
조신은 다 알았다. 평목이로구나 하고,
 
86
『평목이라던?』
 
87
하고 미력이를 보고 물었다.
 
88
『오라, 평목이, 평목이래, 하하.』
 
89
아이들은 평목이란 이름과 입이 커다란 것을 생각하고 웃는다.
 
90
그러기로 평목이가 어찌하여서 왔을까. 대관절 어떻게 알고 찾아 왔을까. 조신은 큰 비밀이 깨어질 때에 제게 있는 모든 복이 터무니없이 깨어지는 것 같아서 섬뜨레하였다.
 
91
조신은 그동안 십여 년을 마음 턱 놓고 살았던 것이다. 남의 시집갈 처녀를 훔쳐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그렇더라도 이제야 뉘가 알랴 한 것이었다. 달례의 부모도 인제는 달례를 찾기를 단념하였을 것이요, 또 모례도 인제는 다른 새아씨한테 장가를 들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92
그러하던 것이 불의에 평목이 온 것을 아니 기억은 십오년 전으로 돌아가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93
평목이란 조신이 알기에는 결코 좋은 중은 아니었다. 낙산사에 있을 때에 용선 시님의 눈을 기이고는 술도 먹고 고기도 먹고 또 재 올리러 온 젊은 여자들을 노리기도 하던 자였다. 또 도적질도 곧잘하던 자였다. 그 커다란 입으로 지절대는 소리는 모두 거짓말이었고 남을 해치는 말이었다. 그런데이 작자가 조신과 달례를 곱다랗게 놓아 보낸 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용선 시님의 심부름이기 때문이라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94
집에 온 것은 과연 평목이었다. 그도 인제는 중늙은이 중이었다.
 
95
『평시님, 이게 웬일이오?』
 
96
조신은 옛날 습관으로 중의 인사를 하였다.
 
97
『지나던 길에 우연히 들렸소.』
 
98
하고 평목도 십 오년 전 서로 작별할 때보다는 무척 점잖았다.
 
99
그 날 밤 조신은 평목과 한방에서 잤다. 두 사람은 낙산사의 옛날에 돌아가서 이야기가 끝날 바를 몰랐다. 용선 시님은 아직도 정정하시고 평목은 이번 서라벌까지 다녀오는 길에 산천 구경 겸 온 것이라고 하였다.
 
100
그러나 물론 조신은 평목의 말은 무엇이나 반신 반의하였다. 더구나 평목 자신에 대한 말은 믿으려고도 아니하였다.
 
101
이것은 조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평목을 잘 아는 사람은 다 그러하였다. 평목은 악인은 아니나 거짓말장이였다.
 
102
『그런데 아모려나 기쁘오. 참 재미나게 사시는구료.』
 
103
평목은 이렇게 말하였다. 조신에게는 평목의 말이 빈정거리는 것으로 들릴 뿐더러, 그 말에는 독이 품긴 것 같았다.
 
104
『재미가 무슨 재미오, 부끄러운 일이지.』
 
105
하고 조신은 노시님이 평목을 시켜서 보내어준 가사와 장삼을 생각하였다.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그것이 어디 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106
『재미가 무슨 재미? 그럼 나허구 바꾸려오?』
 
107
평목은 벌떡 일어나 앉으며 이런 소리를 하였다.
 
108
『바꾸다니?』
 
109
조신은 불끈함을 느꼈다.
 
110
『아니, 나는 이 집에서 재미나게 살고 시님은 나 모양으로 중이 되어서 떠돌아 다녀 보란 말요.』
 
111
평목은 농담도 아닌 것같이 이런 소리를 하였다.
 
112
『에잉?』
 
113
하고 조신은 돌아누우며,
 
114
『원, 아무리 친한 처지라 하여도, 농담이라 할지라도 할 말이 다 따로 있는 것이지, 그게 다 무슨 소리란말요?』
 
115
하고 쩝 소리가 나도록 입맛을 다시었다. 평목이 달례에게 불측한 생각을 가졌거니 하니 당장에 평목을 어떻게 하기라도 하고 싶었다.
 
116
『흥, 어디 내게 그렇게 해보오. 이녁은 남의 아내를 훔쳐 내인 사람 아니오? 내 입에서 말 한마디만 나와 보오. 흥, 재미나게 살겠소. 모가지는 뉘 모가지가 날아나고? 강물은 제 곬으로 가고 죄는 지은 데로 가는 거야. 모례(毛禮)가 지금 어떻게 당신을 찾는 줄 알고.』
 
117
평목은 침을 탁 뱉았다.
 
118
모례란 말에 조신은 전신이 오그라드는 듯하였다. 모례는 달례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칼 잘 쓰고 말 잘 타기로 서울에까지 이름이 난 화랑이었다. 조신도 화랑이란 것을 잘 아는 바에 화랑이란 한번 먹은 뜻을 변함이 없고, 한번 맺은 의를 끊는 법이 없다. 모례가 십 오년이 지난 오늘에도 달례를 찾을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신은 무서웠다. 한번 모례와 마주치는 날이면 매를 만난 새와 같아서 조신은 아무리 날쳐도 그 손을 벗어나지 못할 줄을 안다.
 
119
이렇게 생각하고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120
『평시님, 아니, 정말 모례가 아직도 나를 찾고 있소?』
 
121
『어찌 안 찾을 것이오? 제 아내를 빼앗기고 찾지 않을 놈이 어디 있단 말요. 하물며 화랑이어든. 화랑이, 그래 한번 먹은 뜻을 변할 것 같소?』
 
122
『아니, 평시님, 똑바로 말을 하시오. 정말 모례가 나를 찾소?』
 
123
『찾는단 밖에. 이제 다 버린 계집을 찾아서 무엇 하겠소 마는 두 연놈을 한칼로 쌍동 자르기 전에 동이덩이같이 맺힌 분이 풀릴 것 같소??』
 
124
『아니. 정말 평시님이 모례를 보았느냐 말이오? 정말 모례가 이 조신을 찾는 것을 보았느냐 말이오?』
 
125
『글쎄 그렇다니까. 모례가 그때부터 공부도 벼슬도 다 버리고 원수 갚으러 나섰소. 산골짜기마다 굽이 샅샅이 뒤져서 아니 찾고는 말지 아니할 것 이오. 오늘이나 내일이나 여기도 올는지 모르지. 시님도 그만큼 재미를 보았으니 인제 그만 내어 놓을 때도 되지 않았소? 인제는 벌을 받을 날이 왔단 말요.』
 
126
평목은 어디까지나 조신을 간지려 죽이려는 듯이 눈과 입가에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127
『시님.』
 
128
하고 조신은 떨리는 음성으로,
 
129
『시님, 이일을 어찌하면 좋소? 그때에도 시님이 나를 살리셨으니 이번에도 시님이 나를 살려주시오. 네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시님이 나를 살려주시오. 제발 활인 공덕을 하여 주시오. 여섯 식구를 죽게 하신대서야 살생이 되지 않소? 평시님, 제발 나를 살려주시오.』
 
130
하고 두 팔을 짚고 꿇어 앉아서 수없이 평목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131
『글쎄, 시님도 그렇게 좋은 말로 하시면 모르지마는 시님이 만일 아까 모양으로 내 비위를 거스린다면 나도 다 생각이 있단 말이오. 안 그렇소?』
 
132
평목은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잦힌다.
 
133
『그저 다 잘못했으니 살려만 주오.』
 
134
조신은 또한번 이마를 조아린다.
 
135
『그러면 내가 시님이 같이 살던 부인이야 어찌 달라겠소마는 따님을 날 주시오. 아까 보니까 이쁘장한 게 어지간히 쓰겠읍디다.』
 
136
평목의 이 말에 조신은 한번 더 가슴에서 분이 치밀고 눈초리에 불꽃이 튀는 것을 느꼈다. 그러는 순간에 번뜩 조신의 눈앞에는 도끼가 보였다. 나무를 찍고 장작을 패는 도끼다. 기운으로 말하면, 평목이 조신을 당할 리가 없다. 당할 수 없는 것은 오직 평목의 입심과 능글능글함이었다.
 
137
도끼는 방 한편 구석에 누워 있었다. 새로 갈아 놓은 날이 등잔불을 받아서 번쩍번쩍 빛났다.
 
138
『당장에 평목의 골통을 패어버릴까?』
 
139
하고 조신은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참았다. 그러고 웃는 낯으로,
 
140
『그걸, 아직 어린 걸.』
 
141
하고 눙쳐버렸다.
 
142
『어리기는 열 다섯 살이 어려요?』
 
143
평목의 눈이 빛났다.
 
144
조신은 한번 더 동이덩이 같은 것이 치미는 것을 삼켜버렸다.
 
145
『자, 인제 늦었으니 잡시다. 내일 마누라하고도 의논해서 좋도록 하십시다.』
 
146
조신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 누웠다. 평목도 누웠다.
 
147
조신은 잠이 들지 아니하였다. 헛코를 골면서 평목이 하는 양을 엿보았다. 평목은 잠이 드는 모양이었다.
 
148
평목이 코를 고는 것을 보고야 조신은 마음을 놓았다.
 
149
평목이 깊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서 조신은 소리 아니 나게 일어났다.
 
150
『암만해도 평목의 입을 막아놓아야 할 것이다.』
 
151
조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구석에 놓인 도끼를 생각하였으나 방과 몸에 피가 묻어서 형적이 남을 것을 생각하고는 목을 매어 죽이기로 하였다.
 
152
조신은 손에 맞는 끈을 생각하다가 허리띠를 끌렀다.
 
153
평목이 꿈을 꾸는지 무슨 소리를 지절거리며 돌아 누웠다.
 
154
조신은 죽온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평목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죽이는 것이 무서워졌다.
 
155
<사람을 죽이다니.>
 
156
하고 조신은 진저리를 쳤다.
 
157
그렇지마는 평목을 살려두고는 조신 제 몸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평목에게 딸을 주기는 싫었다. 딸 거울보고는 아비는 아니 닮고 어미를 닮아서 어여뻤다. 그러한 딸을 능구렁이 같은 평목에게 준다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었다.
 
158
그뿐 아니다. 설사 딸을 평목에게 주더라도 그것만으로 평목이 가만 있을 것 같지 아니하였다. 필시 재물도 달라고 할 것이다. 딸을 주고 재물을 주면 조신의 복락은 다 깨어져버리고 말 것이다.
 
159
<아무리 하여서라도 평목은 없이해 버려야 한다.>
 
160
조신은 오래 두고 망설이던 끝에 마침내 평목의 가슴을 타고 허리띠 끈으로 평목의 목을 졸랐다. 평목은 두어 번 소리를 치고 팔다리를 버둥거렸으나 마침내 조신을 당하지 못하고 말았다.
 
161
조신은 전신에서 땀이 흘렀다. 이빨이 떡떡 마주치고 팔다리는 허둥허둥하였다.
 
162
조신은 먼저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았다. 지새는 달이 있었다. 고요하다.
 
163
조신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 평목을 안아들었다. 평목의 팔다리가 축축 늘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164
조신은 나무 그늘을 골라 가면서 평목의 시체를 안고 뒷산으로 올랐다. 풀잎 소리며 또 무엇인지 모르는 소리가 들릴 적마다 조신은 전신이 굳어지는 듯하여서 소름이 쭉쭉 끼쳤다.
 
165
조신은 평소에 보아두었던 굴속에 시체를 집어넣고는 뒤도 아니 돌아보고 집으로 내려왔다. 내일이나 모레나 틈을 보아서 묻어 버리리라고 생각하였다.
 
166
이튿날 아침에 아내 달례가,
 
167
『손님은 어디 가셨어요?』
 
168
하고 물을 때에, 조신은,
 
169
『새벽에 떠나갔소.』
 
170
하고 어색한 대답을 하였다.
 
171
사람을 죽인다는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의 마음이 편안할 리가 없었고, 마음이 편안치 아니하면 그것이 얼굴과 언어 동작에 아니 나타날 수가 없었다.
 
172
조신은 밤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식욕도 줄었다. 늘 근심을 하고 있었다. 동구에 사람의 그림자만 너푼하여도 조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173
이 모양으로 삼사 일이 지난 뒤에야 조신은 비로소 평목의 시체를 묻어버리리라 하고 땅을 팔 제구를 가지고 밤에 뒷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무서워서 그 시체를 둔 굴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어두움 속에 평목이가 혀를 빼어물고 으흐흐흐하면서 조신에게 덤비어 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전신에 땀을 쪽 흘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174
그래도 이 시체를 감추어버리지 아니하면 필경 발각이 날 것이요, 발각이 나면 조신은 살인죄를 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조신은 기운을 내어서 또 밤에 산으로 갔다. 그러나 이날은 전날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다리가 떨려서 옮겨놓기가 어려웠다. 어두움 속에서는 또 평목이가 혀를 빼어 물고 두 팔을 기운 없이 흔들면서 조신을 향하여 오는 것 같았다. 조신은 겁길에 어떻게 온 지 모르게 집으로 달려왔다. 전신에는 땀이 쭉 흘렀다.
 
175
『어디를 밤이면 갔다 오시오?』
 
176
아내는 이렇게 물었다.
 
177
조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할 바를 몰라서,
 
178
『삼 캐러.』
 
179
하였다.
 
180
『밤에 무슨 삼을 캐오?』
 
181
아내는 수상하게 물었다.
 
182
『산신기도 드리는 거야.』
 
183
조신은 이러한 대답을 하였다.
 
184
산신 기도란 말은 하고 보니 또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시체를 묻지도 아니하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필시 산신님이 노염을 사서 큰 동티가 나리라 하는 것이었다.
 
185
<산신 동티란 참 무서운 것인데.>
 
186
하고 조신은 몸에 소름이 끼쳤다. 산신님이 노하시면, 적으면 삵, 족제비, 너구리 같은 것이 난동하여서 닭이며, 곡식을 해롭게 하고, 크면 늑대, 곰, 호랑이, 구렁이 같은 짐승을 내놓아서 사람을 해한다는 것이다.
 
187
산신제를 지내자니 사람을 죽인 몸이라 부정을 탈 것이오.……
 
188
<어떡허면 좋은가……>
 
189
하고 조신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
이러한 생각을 하면 벌써 산신 버력이 내리는 것만 같았다. 금시에 상멍에 (큰 구렁이)가 지붕을 뚫고 내려와서 제 몸을 감을는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내려 와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물어 죽일는지도 모른다.
 
191
조신은 머리가 쭈볏쭈볏함을 느낀다.
 
192
그러나 조신은 모처럼 쌓아 놓은 행복을 놓아버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하여서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꽉 붙들고 매어달리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193
조신은 용선 스님이 주신 가사를 생각하였다. 몸에 가사만 걸치면 천지간에 감히 범접할 귀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명하신 계행을 깨뜨린 더러운 몸에 이 가사를 걸치면 가사가 불길이 되고 바람이 되어서 그 사람을 아비 지옥으로 불어 보낸다는 것이다.
 
194
<그 가사 장삼을 집에 두어서 이런 변사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195
조신은 이렇게 생각하여 보았다.
 
196
그렇게 생각하니 검은 장삼과 붉은 가사가 저절로 너풀너풀 허공에 날아 올라가는 것 같아서 조신은 몸서리를 쳤다.
 
197
너풀너풀 가사 장삼은 조신의 눈앞에 있어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198
조신은 눈을 떠 보았다.
 
199
캄캄하다.
 
200
어두움 속에는 수없는 가사와 장삼이 너풀거렸다.
 
201
그 중에는 평목의 모양도 보이고 용선 스님의 모양도 보였다. 그러나 용선 화상의 모양은 곧 스러졌다.
 
202
조신은 정신이 어지러워서 지접할 수가 없었다.
 
203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가고 싶었으나 가위 눌린 사람같이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204
아내의 얼굴도 무서웁게 나타난 여귀와 같았다.
 
205
아이들의 얼굴도 매서운 귀신과 같았다.
 
206
조신은 어찌할 줄을 몰랐다. 눈을 떠도 무섭고 감아도 무서웠다.
 
207
<아아 내가 왜 이럴까. 밤길을 혼자 가도 무서움을 아니 타던 내가 왜 이럴까.>
 
208
조신은 정신을 수습하려고 애를 써보았으나 안되었다. 모든 것이 다 저를 위협하고 해치려는 원수인 것 같았다.
 
209
조신은 낙산사 관음상을 마음에 그려 보려 하였다. 그 자비하신 모습을 잠깐만 뵈와도 살아 날 것만 같았다. 이러한 경우에 사랑하는 처자로는 아무러한 힘도 없었다. ⌜나무⌟하고 ⌜대자대비 관세음 보살 마하살⌟을 부르려 하나 입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210
전신이 얼어 들어 오는 듯하였다.
 
211
조신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관세음 보살상을 뵈오려 하나 나오는 것은 무서운 형상뿐이었다. 눈망울 툭 불거진 사천왕상이 아니면 머리에 뿔돋힌 염라국 사자의 모양뿐이었다.
 
212
가사와 장삼이 어지럽게 너푼거리던 어두움 속에, 눈망울 불거지고 뿔 돋힌 귀신들, 머리 풀어 헤치고 입에서 피 흘리는 귀신들이 어지러이 나타나서 조신을 노려보았다.
 
213
다음 순간에 조신의 눈앞에는 이글이글 검푸른 불이 타는 불지옥과, 지글지글 사람의 기름이 끓는 큰 가마며, 입을 벌리고 혀를 잡아당기어서 자르는 광경이며, 기름틀에 넣고서 기름을 짜듯이 불의한 남녀를 눌러 짜는 광경이며, 이 모양으로 모든 흉물스러운 광경이 보이고, 나중에는 평목이가 퍼런 혀를 빼어 물고 손에, 제가 목을 매어죽던 끄나불을 들고 나타나서 조신을 향하여 손을 혀기는 것이 보일 때에 조신은 베개에 두 눈을 비비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214
조신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옆에 아내 달례가 있었다.
 
215
『웬일이오?』
 
216
달례는 남편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일어나 앉으며 묻는다. 달례가 두 팔을 들어서 흩어진 머리를 거둘 때에 그 흰 두 팔구비와 젖가슴이 어두움 속에 보이는 것이 조신의 눈에는 금방 꿈속에서 보던 귀신과 같아서 악 소리를 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217
『아니 왜 그러우?』
 
218
달례도 깜짝 놀라는 듯이 앉은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며 머리 가누던 두 손을 앞으로 내어 밀었다.
 
219
『아니야.』
 
220
하고 조신은 맥없이 도루 드러누웠다. 저도 제 행복이 부끄러웠고 아내에게도 숨기고 있는 살인의 비밀이 혹시 이런 것으로 탄로가 되지나 않는가 하여 겁만 났다.
 
221
『아니라니?』
 
222
하고 달례는 남편의 수상한 행동에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223
『요새에 웬일이오? 밤마다 헷소리를 하고―자면서 팔을 내어 두르고. 몇 번이나 소스라쳐 놀랐는지 몰라. 참 이상도 하오. 아마 무슨 일이 있나보아. 나도 꿈자리가 사납고. 어디 바로 말을 해보슈. 그 평목인가 한 중이 어디 갔소? 왜 식전 새벽에 아침도 안 먹고 간단말요. 암만해도 수상하더라니. 그이 왔다 간 다음부터 당신의 모양이 수상해요. 어디 바루 말을 해보아요. 그 중은 어디로 갔소?』
 
224
달례가 이렇게 하는 말은 마디마디 회초리가 되어서 조신의 등덜미를 후려갈기는 것 같았다.
 
225
『내가 그 녀석 간 곳을 어떻게 알아? 저 갈 데로 갔겠지.』
 
226
조신은 아무 관심 없는 양을 꾸미노라고 툭명스럽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가슴은 몹시 울렁거렸다.
 
227
『아니, 그이를 왜 그 녀석이라고 부르시오? 우리가 도망할 때에 관에 일르지도 아니한 이를?』
 
228
달례의 말은 한걸음 조신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229
『우리가 재미 있게 사는 것을 보고는 샘도 날 것 아니야?』
 
230
조신은 아니할 말을 하였다고 고대 뉘우쳤다.
 
231
『아니, 그이가 무어랍디까?』
 
232
달례는 무릎 걸음으로 조신의 곁으로 다가 앉는다.
 
233
『아냐 별일은 없었지마는.』
 
234
조신은 우물쭈물 이 이야기를 끊고 싶었다.
 
235
『아니, 그이가 무에랍디까? 모례 말을 합디까?』
 
236
『왜 모례가 있으면 좋겠어? 모례 생각이 나느냐 말야?』
 
237
조신은 가장 질투나 나는 듯이 달례 편으로 돌아 눕는다.
 
238
『왜 그런 말씀을 하슈? 누가 모례를 생각한다우?』
 
239
『그럼, 모례 말은 왜 해? 그 원수 놈의 말을 왜 입에 담느냐 말야. 모례라는 못자만 들어도 내가 분통이 터지는 줄을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말야.』
 
240
조신에게 제일 싫고 무서운 것이 모례의 이름이었다. 만일 누가 하루에 한 번씩만 모례의 이름을 조신의 귀에 불어 넣어 준다면 한 달 안에 조신은 말라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모례의 말을 가지고 아내에게 핀잔을 준 것은 모례 때문이라기보다는 죽은 평목의 비밀을 지키자는 계교로서였다. 그러나 한번 여자의 마음에 일어난 의심은 거짓말로라도 풀기 전에는 결코 잠잠케 할 수는 없었다.
 
241
달례는 전에 없이 우락부락한 남편의 태도가 불쾌한 듯이 뾰로퉁한 소리로,
 
242
『모례가 무슨 죄요? 그이가 왜 당신의 원수요? 당신이나 내가 그의 원수면 원수지. 까닭 없는 사람을 미워하면 죄가 안되오?』
 
243
하고 쏘았다.
 
244
조신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245
『무엇이 어째? 모례가 원수가 아니야? 모례놈이 내 눈앞에 번뜻 보이기만 해라. 내가 살려둘 줄 알고. 담박에 물고를 내고야 말걸.』
 
246
하고 어두움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내의 얼굴을 노려본다. 이렇게 억지로라도 성을 내니 무서움이 좀 가라앉는다. 평목의 원혼이 멀리로 달아난 것 도 같았다.
 
247
그러나 달례는 환장한가 싶은 남편의 태도가 원망스러운 듯, 전보다 더 뾰롱뾰롱하게,
 
248
『모례를 죽여요? 당신 손에 죽을 모롄 줄 알았소? 그이는 화랑이요. 칼 잘 쓰고 활 잘 쏘고 하는 그이가 당신 손에 잘 죽겠소. 사람의 일을 아나. 혹시 그이가 여기 올지도 모르지. 만일 모례가 여기 오는 일이 있다면 당신이나 내가 땅바닥에 엎드려서 비는 거야, 죽을 죄로 잘못했으니 살려 줍시사고, 저 미력이랑 달보고랑 어린것을 불쌍히 여겨서 살려 줍시사고, 제발 괴발 비는 거야. 불공한 말 한 마디만 해보오, 당장에 목이 날아날 테니, 그나 그뿐인가, 암만해도 당신이 평목 시님을 죽』
 
249
할 때에 조신은 달려들어서 달례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 버렸다.
 
250
『함부로 입을 놀려?』
 
251
하고 조신은 달례의 몸을 잡아 흔들었다.
 
252
달례는 방바닥에 이마를 대고 쓰러지면서,
 
253
『과연 그랬구료.』
 
254
하고 울면서 푸념을 한다.
 
255
『그날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혹시나 하면서 설마 그런 일이야 하였더니 정말 당신이 그 중을 죽』
 
256
할 때에 조신은 또 달례의 몸을 잡아 흔든다.
 
257
『여보, 여보.』
 
258
하고 조신은 무서워하는 사람 모양으로 숨이 차다. 조신은 달례의 귀에 입을 내고,
 
259
『그런 소리 말어, 아이들이 들어, 누가 들어.』
 
260
하고 덜덜 떨었다.
 
261
조신은 제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저밖에 다만 한 사람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무서웠다.
 
262
조신은 달례의 귀에 뜨거운 김을 불어 넣으면서 말을 한다. 그것은 달례의 분을 풀어서 입을 막자는 것이었다.
 
263
『그 놈이―평목이놈이 우리 둘이 여기 산다는 것을 일러 바친다고 위협을 한단말야. 모례가 칼을 갈아 가지고 아직도 우리들을 찾아 댕긴다고. 방방곡곡으로 샅샅이 뒤진다고 그러니까.』
 
264
하고 조신은 한층 더 소리를 낮추어서,
 
265
『그러니까 그놈이 달보고를 저를 달라는 거야, 그러니 참을 수가 있나.』
 
266
하고 한숨을 내어쉰다.
 
267
달보고를 달란다는 말에는 달례도 함칫하고 놀라는 빛을 보였다.
 
268
『이일을 어찌하면 좋소?』
 
269
하는 달례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270
조신의 집에는 이미 평화는 없었다. 어른들의 얼굴에 매양 근심하는 빛이 있으니 아이들의 얼굴에도 화기가 없었다. 닭, 개, 짐승까지도 풀이 죽고 집까지도 무슨 그늘에 싸인 듯하였다.
 
271
조신은 어찌할까 그 마음을 진정치 못한 채로 찜찜하게 하루 이틀을 보내고 있었다.
 
272
추수도 다 끝나고 높은 산에는 단풍이 들었다. 콩에 배불린 꿩들이 살찐 몸으로 무겁게 날고 있었다. 매 사냥군 활 사냥군들이 다니기 시작하고, 산촌 집들 옆에는 겨을에 때일 나뭇더미가 탐스럽게 쌓여 있었다. 이제 얼마 아니하여 눈이 와서 덮이면 사람들은 뜨뜻이 불을 지피고 술과 떡에 배를 불리면서 편안하게 재미있는 과동을 하는 것이다.
 
273
그러나 조신의 마음에는 편안한 것이 없었다. 곳간에 쌓인 나락 섬에서는 평목의 팔이 쑥 나오는 것 같고, 나뭇더미에서도 평목의 큰 입이 혀를 빼어 물고 내미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모례가 언제 어느 때에 시퍼런 칼을 빼어들고 말을 달려 들어올는지도 몰라서 밤 바람에 굴르는 낙엽 소리에도 귀가 쭝긋하였다.
 
274
『이 자리를 떠서 어디 다른 데로 가서 숨어야 할 터인데.』
 
275
조신은 날마다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하면서도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지 궁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천지도 좁았다.
 
276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일찌기 떠나야 된다 된다 하면서 머뭇머뭇하는 동안에 첫눈이 내렸다. 조신은 식전에 일어나 만산 편야로 하얗게 눈이 덮인 것을 보고는 가슴이 두군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서 도망을 가더라도 눈 위에 발자국이 남을 것이 무서웠다.
 
277
이날 미력이가 아랫 동네에 놀러 갔다가 돌아와서 조신의 가슴을 놀라게 하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것은 이 고을 원님이 서울서 온 귀한 손님을 위하여 이 골짜기에 사냥을 온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큰 사냥이면 매도 있고 활도 쓰고 또 굴에 불을 때어서 곰이나 너구리나 여우도 잡는 것이 예사다. 수십 명 일행이 흔히 하루 이틀을 묵으면서 많은 짐승을 잡아가지고야 돌아 가는 것이었다. 그나 그뿐인가, 동네 사람들 은모두 모릿군으로 나서서 산에 있는 굴은 말할 것도 없고 바위 밑까지도 샅샅이 뒤지는 것이었다. 그리되면 저 평목의 시신이 필시 드러날 것이요, 그것이 드러난다면 원님이 반드시 이일을 그냥 두지 아니하고 범인을 찾을 것이다.
 
278
<그것을 묻어버릴 것을.>
 
279
하고 조신은 뉘우쳤다. 묻어야 묻어야 하면서도 무서워서 못한 지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 비록 선선한 가을 일기라 하더라도 한 달이나 묵은 송장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필시 썩어서 는적는적 손을 대일 수 없이 되었거나 혹은 여우가 뜯어먹어 더욱 보기 흉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조신은 평목의 시체 처치를 못한 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280
조신은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아내와 아이들이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양이 아마 낯색이 변한 것이라고 짐작하고 짐짓 태연한 모양을 한다는 것이 이런 소리가 되어 나왔다.―
 
281
『망할 녀석들! 사냥은 무슨 주리할 사냥을 나와. 짐승 죽이는 것은 살생이 아닌가. 지옥에를 갈 여석들!』
 
282
이 말에 달례는 눈을 크게 뜨고 조신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하나 하는 것 같았다.
 
283
조신도 아니할 소리를 하였다 하고 가슴이 섬뜨레하였다. 저도 그런 소리를 하려는 생각이 없이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소리가 나온 것이었다. 무슨 신의 힘이 저로 하여금 그런 소리를 하게 한 것 같아서 조신은 등골에 얼음물을 퍼붓는 듯함을 느꼈다.
 
284
그러나 이제 평목의 시체를 처치할 수는 없었다. 우선 눈이 오지 아니하였다. 발자국을 어찌하나. 오늘 볕이 나서 눈만 다 녹인다면 밤에 아무런 일이 있더라도 평목의 시신을 묻어 버리리라고 마음에 작정하였다.
 
285
그러나 물 길러 나갔던 달보고는 또 하나 이상한 소식을 전하였다.―
 
286
『내가 물을 긷고 있는데, 웬 사람이 말을 타고 오겠지―자주 긴 옷을 입고. 이렇게 이렇게 이상하게 생긴 갓을 쓰고. 그리고 아주 잘생긴 사람야. 이렇게 이렇게 수염이 나고. 그 사람이 우물 옆으로 지나가더니 몇 걸음 가서 되 돌따서 오더니, 말에서 내리더니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보더니 아가 나 물 좀 다우 그래요. 그래서 바가지로 물을 떠주니까 두어 모금 마시고는 너의 집이 어디냐 그러겠지. 그래……』
 
287
하고 달보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신은 눈이 둥그레지며,
 
288
『그래 우리 집을 가르쳐 주었니?』
 
289
하고 숨결이 커진다.
 
290
달보고는 아버지의 수상한 서슬에 놀란 듯이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두어 번 까닥까닥한다.
 
291
『그래, 그 사람이 젊은 사람이든?』
 
292
이번에는 달례가 묻는다.
 
293
『나이를 잘 모르겠어. 수염을 보면 나이가 많은 것도 같은데 얼굴을 보면 아주 젊은 사람 같아요.』
 
294
달보고는 그 붉은 옷 입은 사람을 이렇게 그렸다. 그리고는 부끄러운 듯이 왼편 손을 펴서 파르스름한 옥고리 하나를 내어놓으며 수줍은 듯이 이렇게 설명하였다―
 
295
『그 사람이 물을 받아 먹고 돌아 설 때에 웬일인지 띠의 달렸던 이 옥고리가 땅에 떨어지겠지. 그러니깐 그 사람이 깜짝 놀라서, 꺼꾸버서 이것을 줍더니, 잠깐 무엇을 생각하더니, 아따 물값이다, 하고 나를 주어요.』
 
296
『왜 남의 사내헌테서 그런 것을 받아, 커다란 계집애가?』
 
297
하고 달례가 달보고를 노려본다.
 
298
『싫다고 해도 자꾸만 주는걸.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니 이것은 분명히 네 것이라고 그러면서.』
 
299
하고 달보고는 아주 어색하게 변명을 한다.
 
300
조신은 까닭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도무지 수상하였다. 이런 때에는 억지로라도 성을 내는 것이 마음을 진정하는 길일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신은 커다란 손으로 그 옥고리를 집어서 문 밖으로 홱 내어던지면서,
 
301
『그놈이 어떤 놈인데 이런 것으로 남의 계집애를 후려.』
 
302
하였다.
 
303
옥고리는 공중으로 날아서 뜰앞 바윗돌에 떨어져서 째깍 소리를 내고 서너 조각으로 깨어졌다.
 
304
달보고는 손으로 두 눈을 가리우고 방바닥에 엎드려서 울었다.
 
305
달례는 눈에 눈물이 어리며,
 
306
『울지 마. 엄마가 그보다 더 좋은 옥고리 줄께 울지 마.』
 
307
하고 일어나서 시렁에 얽었던 상자를 내려 하얀 옥고리 하나를 꺼내어 달보고에게 주었다. 달보고는 ⌜싫여, 싫여.⌟하고 그것을 받지 아니하였다.
 
308
얼마 후에 관인이 와서 조신의 집을 서울 손님의 사처로 정하였으니 제일 좋은 방 하나를 깨끗이 치울 것과 따라 오는 하인들이 묵을 방도 하나 치우라는 분부를 전하였다.
 
309
조신은 마음에는 찜찜하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사랑을 치웠다. 이것은 창을 열면 눈에 덮인 태백산이 바라보이고 강 한 굽이조차 눈에 들어오는 방이었다. 절에서 자라난 조신은 경치를 사랑하였다. 그는 이 방에서 평생을 즐겁게 지내려 하였었다. 그러나 평목이가 이 방에서 죽어나간 뒤로는이 방은 조신에게는 가장 싫고 무서운 방이 되어서 그 앞으로 지나가기도 머리가 쭈볏거렸다.
 
310
조신은 사랑방 문을 열 때에 연해 헛기침을 하고 진언을 염하였다. 문을 열면 그 속에서 평목이가 혀를 빼어 물고 나올 것만 같았다.
 
311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써늘한 기운이 비인 방 냄새와 함께 훅 내뿜을 뿐이었다.
 
312
조신은 방을 떨고 훔쳤다. 깨끗한 돗자리를 깔고 방석을 깔았다. 목침을 찾다가 문득 그것이 평목이가 베었던 것임을 생각하였다.
 
313
서울 손님이라는 것이 어떤 귀인인가. 혹시나 내 집에 복이 될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314
『설마, 설마.』
 
315
하고 조신은 중얼거렸다. 설마 모례야 올라고 하는 것이었다.
 
316
그러나 그 사람이 달보고를 유심히 보더라는 것, 옥고리를 준 것, 하필 이 집으로 사처를 정한다는 것들을 생각하면 그것이 모례인 것도 같았다.
 
317
<만일 그것이 모례면 어찌하나.>
 
318
조신은 멍하니 태백산 쪽을 바라보았다. 날은 아직도 흐리고 산에는 거무스름한 안개가 있다.
 
319
<모례가 십칠 년 전 일을 아직도 생각하고 있을까. 더구나 귀한 사람이 그런 것을 오래 두고 생각할라고. 벌써 다른 아내를 얻어서 아들딸 낳고 살 것이다. 설령 아직도 달례를 생각하기로소니 우리집에 달례가 있는 줄을 알 까닭이 없다. 달보고가 하도 어미를 닮았으니까 혹시 우리집이 달례의 집인가 의심할까. 모례가 나를 본 일은 없다. 누가 그에게 내 용모 파기를 하였을까. 내 찌그러진 얼굴, 비뚤어진 코―그러나 세상에 그렇게 생긴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으란 법은 없다.>
 
320
조신의 생각은 끝이 없다. 그러고도 무엇이 뒷덜미를 내려짚는 듯이 절박한 것 같다.
 
321
조신은 무엇을 찾는 듯이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322
『앗, 저 바랑, 저 바랑?』
 
323
하고 조신은 크게 눈을 떴다. 벽장문이 방싯 열리고 그 속에 집어넣었던 평목(平木)의 바랑이 삐죽이 내다보고 있다.
 
324
조신의 머리카락은 모두 하늘로 뻗었다. 저것을 처치를 아니하였고나 하고 조신은 발을 구르고 싶었다.
 
325
조신을 얼껼더껼에 벽장문을 홱 잡아 제치고 평목의 바랑을 왈칵 나꾸채었다. 그리고는 구렁이나 손에 잡힌 것같이 손을 떼었다. 바랑은 덜컥하고 방바닥에 떨어져서 흔들렸다. 척척 이긴 굵은 벼로 지은 바랑이다. 평목의 등에 업혀서 산천을 두루 돌고 촌락으로 들락날락하던 바랑이다.
 
326
조신은 이윽히 이 말없는 바랑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바랑은 아무 말이 없었으나 그 속에는 많은 말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이 벽장에서 떨어질 때에 떨거덕한 것은 평목의 밥과 국과 반찬과 물을 먹기에 몇 십 년을 쓰던 바릿대요, 버썩 하는 소리를 내인 것은 평목이 어느 절에 들어가면 꺼내어 입던 가사 장삼일 것과 그 밖에 바늘과 실과 칼과 이런 도구가 들어 있을 것은 열어보지 아니하고라도 조신도 알 수가 있었다. 조신이 낙산사에서 지니고 있던 바랑과 바랏대는 어느 누구가 쓰고 있는지 모른다.
 
327
그러나 조신의 생각에는 평목의 바랑 속에는 이런 으례 있을 것 외에 무서운 무엇이 나올 것만 같았다. 조신은 바랑을 여는 대신에 그 끈을 더욱 꼭 졸라 매었다. 무서운 것이 나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조신은 그 바랑을 번쩍 들어서 벽장에 들여 쏘았다. 침침한 벽장 속에 바랑은 야릇한 소리를 내고 들어가 굴렀다. 조신의 귀에는 그것이 바랑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만 같지는 아니하였다. 분명 무슨 이상한 소리가 그 속에 있었다. 그 이상한 소리는 잉하게 귀에 묻어서 떨어지지 아니하였고, 조신의 손과 팔에도 바랑을 집어넣을 때에 무엇이 물컥하고 뜨뜻미지근하던 것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328
<아아 모두 죄를 무서워하는 내 마음의 조화다. 있기는 무엇이 있어.>
 
329
하고 조신은 제 마음을 든든하게 먹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이란 것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330
조신이 서울 손님의 사처 방을 다 치우고 나서 지향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을 즈음에 조신의 집을 향하고 올라오는 사오 인의 말 탄 사람과 수십 명의 사람의 떼를 보았다. 그들 중에는 동네 백성들도 섞여 있었다.
 
331
말 탄 사람들은 조신의 집 앞에서 말을 내렸다. 관인이 내달아 일변 주인을 찾고 일변 말을 나무에 매었다.
 
332
조신은 떨리는 가슴으로 나서서 귀인들 앞에 오른편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333
『어, 깨끗한 집이로군, 근농가로군!』
 
334
코밑에 여덟 팔자 수염이 난 귀인이 조신의 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분이 아마 이 고을 원인가 하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335
원은 집 모양을 휘 돌아본 뒤에, 고개를 돌려 한 걸음 뒤에선 귀인을 보면서,
 
336
『이번 사냥에 네 집에서 이 손님하고 하루 이틀 묵어 가겠으니, 각별히 거행하렷다.』
 
337
하고 위엄 있게 말하였다.
 
338
『예이. 누추한 곳에 귀인이 왕림하시니 황송하오. 벽촌이라 찬수는 없사오나 정성껏 거행하오리다.』
 
339
하고 조신은 또 한번 무릎을 꿇었다.
 
340
『어디 방을 좀 볼까?』
 
341
하는 원에 말에 조신은 황망하게 사랑 문을 열어 제쳤다. 원과 손님은 방안을 휘 둘러보고,
 
342
『어, 정갈한 방이로군!』
 
343
하고 방 칭찬을 하고는,
 
344
『이봐라, 네 그 부담을 방에 들여라.』
 
345
하여 짐을 들이도록 분부하고 손님을 향하여서,
 
346
『아손, 어찌하시려오? 방에 들어 가 잠깐 쉬시려오, 그냥 산으로 가시려오?』
 
347
하고 의향을 묻는다.
 
348
손님은 그 옥으로 깎은 듯한 얼굴에 구슬같이 맑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서,
 
349
『해도 늦었으나 먼저 사냥을 합시다.』
 
350
한다.
 
351
『그러시지, 다행히 사슴이라도 한 마리 잡으면 저녁 술 안주가 될 것이니까?』
 
352
하고 원은 아래턱의 긴 수염을 흔들며 허허하고 소리를 내어서 웃는다.
 
353
귀인들은 소매 넓은 붉은 우틔를 벗고 좁은 행전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옆에 오동집에 금으로 아로새긴 칼을 차고 어깨에 활과 전통을 메고, 머리는 자주 박두를 쓰고 나섰다. 관인들은 창을 들고 모릿군들은 손에 작대를 들고 매바치는 팔목에 매를 받고 산을 향하여서 길을 떠났다. 조신은 산길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동네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앞잡이를 하라는 영광스러운 분부를 받았다. 사냥개는 없었으나 동네 개들이 제 주인을 따라서 좋아라고 꼬리를 치며 달리고, 미력이를 비롯하여 동네 아이놈들도 몽둥이 하나 씩을 들고 무서운 듯이 멀찌기 따라 오며 자깔대었다.
 
354
사람들이 걸음을 걸을 때마다 눈에 덮인 낙엽들이 부시럭부시럭, 와싹와싹 소리를 내었다. 까치들이 짖고 솔개, 산새들이 놀란 듯이 우짖고 왔다 갔다 하였다.
 
355
먼저 산제터인 바위 밑에 이르러 제물을 바치고 오늘 사냥에 새와 짐승을 줍시사고 빈 뒤에 모두 음복하고, 그리고는 사냥이 벌어졌다.
 
356
매받치는 등성이 바위 위에 서고 모릿군들은 잔 솔 포기와 나무 포기, 풀 포기를 작대로 치며 ⌜아리, 아리⌟하고 꿩과 토끼를 몰아내고, 개들도 얼른 눈치를 채어서 코를 끌고 꼬리를 치고 어떤 때에 네 굽을 모아 뛰면서 새짐승을 뒤졌다. 놀란 꿩들이 껙껙 소리를 지르면서 날고, 토끼도 귀를 빳빳이 뻗고 달렸다. 이러는 동안에 두 귀인은 매받치 옆에 서 있었다. 앞잡이인 조신도 그 옆에 모시고 있었다.
 
357
얼마 아니하여서 대여섯 마리 꿩을 잡았다. 아직도 채 죽지 아니한 꿩은 망태 속에서 쌔근쌔근 괴로운 숨을 쉬고 있었다.
 
358
또 서울 손님의 화살이 토끼도 한 마리 맞혔다. 목덜미에 살이 꽂힌 채로 한 길이나 높이 껑충 솟아 뛸 때에는 모두 기쁜 고함을 쳤다.
 
359
매는 몇 마리 꿩을 움퀴더니 더욱 눈은 빛나고 몸에 힘이 올랐다. 그의 주둥이와 가슴패기에는 빨간 피가 묻었다.
 
360
『살생.』
 
361
하고 조신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362
『살생을 아니하오리다.』
 
363
하고 굳게굳게 시방 제불 전에 맹세한 조신이다. 그러나 제 손으로 이미 평목을 죽이지 아니하였느냐. 중을 죽였으니 살생 중에도 가장 죄가 무서운 살생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마는 오랫동안 자비의 수행을 한 일이 있는 조신은 목전에 벌어진 살생의 광경을 보고 마음이 자못 불안하였다.
 
364
꿩망태가 두둑하게 된 때에 서울 손님은 원을 보고,
 
365
『매 사냥은 그만큼 보았으니, 나는 사슴이나 노루를 찾아보려오. 돼지도 좋고. 모처럼 활을 메고 나왔다가 토끼 한 마리만 잡아 가지고 가서는 직성이 아니 풀릴 것 같소. 그럼 태수는 여기서 더 매 사냥을 하시오. 나는 좀 더 깊이 산속으로 들어 가 보랴오.』
 
366
하고 서 있던 바윗등에서 내려선다. 원은 웃으며,
 
367
『아손 조심하시오. 태백산에는 호랑이도 있고 곰도 있소. 응, 곰은 벌써 숨었겠지마는 표범도 있소. 혼자는 못 가실 것이니, 창군을 몇 데리고 가시오.』
 
368
하고 건장한 창 든 관인 두 쌍을 불러준다.
 
369
조신은 또 앞장을 섰다. 조신은 이 산속에 골짜기 몇, 굴이 몇인 것도 안다. 그는 보약을 구하노라고 지난 몇 해 매일같이 산을 탔다.
 
370
조신은 자신 있게 앞장을 섰다. 오직 조심하는 것은 평목의 시신을 버린 굴 근처로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 대하여서는 조신은 안심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평목을 내버린 굴은 동네 가까이어서 사슴이나 기타 큰 짐승 사냥에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371
조신은 아무쪼록 평목이 굴에서 멀리 떨어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372
골은 더욱 깊어지고 수풀도 갈수록 깊어졌다. 무시무시하게도 고요한 산속이다. 조신이 앞을 서고 손님이 다음에 걷고 창군들이 그 뒤를 따랐다.
 
373
사람들의 눈은 짐승의 발자국을 하나도 아니 놓치려고 하얀 눈을 보고 있었다. 바싹 소리만 나도 귀를 기울였다.
 
374
눈 위에는 작은 새 짐승들의 귀여운 발자국들이 가로 세로 있었다. 그러나 큰 짐승의 발자국은 좀체로 보이지 아니하였다.
 
375
얼마를 헤매며 몇 굴을 뒤지다가 마침내 산비탈 눈 위에 뚜렷뚜렷이 박힌 굵직굵직한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376
모두들 숨소리를 죽였다. 사냥에 익숙한 듯이 손님은 가만히 발자국을 들여다 보아서 그것이 사슴의 것인 것과 개울을 건너서 등성이로 올라간 발자국인 것을 알아내고, 이제부터는 조신의 앞잡이는 쓸데없다는 듯이 제가 앞장을 서서 비탈을 올라갔다. 조신과 창군들은 그 뒤를 따랐다.
 
377
손님은 등성에 서서 지형을 살펴보고, 창군 두 쌍은 좌우로 갈라서, 한 쌍은 서편 골짜기로, 하나는 동편 골짜기로 내려가라 하고 자기는 조신을 데리고 발자국을 따라서 내려갔다.
 
378
발자국은 두 마리의 것이었다. 암수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디로 가노라고 떠난 것이었다. 활과 칼을 가진 이가 그들을 뒤따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조신은 제가 그 사슴이가 된 것 같았다. 될 수 있으면 앞서 달려가서 사슴에게 일러 주고 싶었다.
 
379
사슴들은 똑바로 가지는 아니하였다. 그들은 제 발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안다. 그들은 가끔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어떤 등성이나 골짜기에는 발자국을 어지려 놓기도 하였다. 무척 제 자국을 감추려고 애를 썼으나 땅을 밟지 아니하고는 갈 수 없는 그들이라 아무리 하여도 자국은 남았다. 혹은 바위를 타고 넘고 혹은 아직 얼어붙지 아니한 시냇물을 밟아서 아무쪼록 제 자국을 감추려 한 사슴 자웅의 심사가 가여웠다.
 
380
열에 아홉은 이 두 사슴 중에 적어도 한 마리는 목숨의 끝날이 왔다고 조신은 생각하고 한없이 슬펐다.
 
381
『인연과 업보!』
 
382
하고 조신은 닥쳐오는 운명을 벗어나기 어려움을 마음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느꼈다.
 
383
다행한 것은, 사슴들의 발자국이 평목의 시신이 누워 있는 굴과는 딴 방향으로 향한 것이다.
 
384
조신이 인연을 생각하고 업보를 생각하면서 손님의 뒤를 따르고 있을 때에 문득 손님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나무 뒤에 감추었다. 조신도 손님이 하는 대로 하고 손님이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385
『있다!』
 
386
하고 조신은 속으로 외쳤다.
 
387
한 백 보나 떨어쳐서 싸리 포기들이 흔들리는 속에 사슴 두 마리가 서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388
<사람이 따르는 것을 눈치 채었나?>
 
389
하고 조신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390
손님은 활에 살을 메어 들었다. 그리고 사슴들이 싸리포기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슴들은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그 위엄 있는 뿔이 머리를 따라서 흔들렸다.
 
391
사슴은 분명히 위험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은 얼마 높지 아니한 등성이를 타고 넘음으로 이 위험을 피하려고 결심한 모양이었다. 숫놈이 먼저 뛰고 암놈이 한번 더 이쪽을 바라보고는 남편의 뒤를 따랐다. 조신이 이 모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퉁 하고 활 시위가 울리며 꿩의 깃을 단 살이 사슴을 따라 날으는 것을 보았다.
 
392
살은 숫사슴의 왼편 뒷다리에 박혔다. 퍽하고 박히는 소리가 조신의 귀에 들리는 듯하였다.
 
393
살을 맞은 사슴은 한번 껑충 네 발을 궁구르고는 무릎을 꿇고 쓰러질 때에 암사슴은 댓 걸음 더 달리다가 돌따 서서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았다. 이때에 둘째 화살이 날라서 암사슴의 앞가슴에 박혔다. 살 맞은 사슴은 밍하는 것 같은 한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나는 듯이 ㄱ자로 방향을 꺾어 달려 내려 갔다. 숫사슴이 벌떡 일어나서 암사슴이 가는 방향으로 달렸다. 몹시 다리를 절었다.
 
394
이것이 모두 눈 깜짝할 새다.
 
395
손님도 뛰고 조신도 뛰었다. 창군들도 본 모양이어서 좌우로서 군호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396
사슴은 허둥거리는 걸음으로 엎치락 눈보라를 날리면서 뛰었으나 얼마 아니하여 암놈은 눈 위에 구르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상처가 앞가슴이라, 깊은데다가 기운이 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숫놈은 절뚝거리면서도, 고꾸라지면서도 구르면서도 피를 흘리면서도 죽음을 피해보려고 기운차게 달렸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흰 눈 위에 붉은 피가 떨어져 있었다.
 
397
죽음에서 도망하려는 사슴은 아직도 적을 피하노라고 여러 번 방향을 바꾸었으나, 차차 걸음이 느려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따르는 사람들은 점점 사슴에게 가까이 갔다. 사슴은 이제는 더 뛸 수 없다는 듯이 땅에 엎드려서 고개를 던졌으나 순식간에 또 일어나서 뛰었다. 비틀비틀하면서도 뛰었다.
 
398
사슴은 또 한 번 방향을 바꾸었다. 얼마를 가다가 또 한 번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기운이 진할수록 오르는 힘은 지세를 따라서 자꾸만 내려갔다. 매 사냥하던 사람들도 인제는 사슴을 따르는 편에 어울렸다.
 
399
조신은 무서운 일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사슴이 평목의 굴을 향하고 달리는 것이었다. 조신은 그가 또 한 번 방향을 바꾸기를 바랐으나 모릿군들 등쌀에 사슴은 평목의 굴로 곧장 몰려갔다.
 
400
『그리 가면 안돼!』
 
401
하고 조신은 저도모르는 결에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조신을 돌아보았으나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조신은 제 소리에 제가 놀랐다.
 
402
사슴은 점점 평목의 굴로 가까이 간다. 마치 평목의 굴에서 무슨 줄이 나와서 사슴을 끌어들이는 것같이 조신에게는 보였다. 조신의 등골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403
『아, 아, 아차!』
 
404
하고 조신은 몸을 뒤로 잣히면서 소리를 질렀다. 사슴이 바로 굴 입에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조신의 이 이상한 자세와 소리에 서울 손님이 물끄러미 보았다. 조신은 정신이 아뜩하고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405
사슴은 평목의 굴 앞에 이르러서 머리를 굴속으로 넣고 그리고 들어가려는 모양을 보이더니 무엇에 놀랐는지 도로 뒷걸음쳐 나왔다. 조신은,
 
406
『살아 났다.』
 
407
하고 몸이 앞으로 굽도록 긴 한숨을 내어 쉬었다.
 
408
그러나 사슴이 다른 데로 향하려 할 때에는 벌써 모릿군들이 굴 앞을 에워쌌다. 사슴은 고개를 들어 절망적인 그 순하고 점잖은 눈으로 한번 사람을 휘 둘러보고는 몸을 돌려 굴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409
『사슴을 두 마리나 잡았다.』
 
410
하고 사람들은 떠들었다.
 
411
『단 두 방에 두 마리를.』
 
412
하고 사람들은 서울 손님의 재주를 칭찬하고 천신같이 그를 우러러 보았다.
 
413
그 중에도 원이 더욱 손님의 솜씨를 칭찬하였다.
 
414
원은 창 든 군사에게 명하여 굴속에 든 사슴을 잡아내라 하였다.
 
415
창 든 군사 한 쌍이 창으로 앞을 겨누고 허리를 반쯤 굽히고 굴로 들어 갔다.
 
416
조신은 얼굴이 해쓱하여서 닥쳐오는 업보에 떨고 있었다. 도망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관세음, 관세음⌟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들 미력이가 아버지의 수상한 모양을 보고 가만히 그 곁에 가서 조신의 낯빛을 엿보았다.
 
417
『엣, 송장이다! 죽은 사람이다!』
 
418
하고 외치는 소리가 굴속에서 나왔다.
 
419
돌아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라서 서로 돌아 보았다.
 
420
창 든 사람들은 굴속에서 뛰어나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421
『사람이요, 사람이 죽어 넘어졌소. 송장 냄새가 코를 받치오!』
 
422
그들은 허겁지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423
『살인이로군.』
 
424
누구의 입에선가 이런 말이 나왔다. 사슴의 일은 잊어버린 듯하였다.
 
425
원은 관인들에 명하여 그 시신을 끌어내라 하였다.
 
426
관인은 둘러선 백성 중에서 네 사람을 지명하여 데리고 횃불을 켜 들고 굴로 들어갔다. 그 중에는 조신도 끼어 있었다.
 
427
조신은 반이나 정신이 나갔다. 그러나 이런 때에 그런 눈치를 보이는 것이 제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정신까지 없지는 아니하였다. 그는 와들와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진정하면서 관인의 뒤를 따라 굴로 들어갔다. 굴속에는 과연 송장 냄새가 있었다. 사슴도 이 냄새에 놀래어서 도로 나오려던 것이라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428
춤추는 횃불 빛에 보이는 것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평목의 눈뜬 시체요, 하나는 저편 구석에 빛나는 사슴의 눈이었다.
 
429
『들어, 들어.』
 
430
하고 관인은 호령하였다. 사람들은 송장에 손을 대기가 싫어서 머뭇머뭇하고 있었다.
 
431
『두 어깨 밑에 손을 넣어, 두 무릎 밑에 손을 넣어!』
 
432
조신은 죽을 용맹을 내어서 평목의 어깨 밑에 손을 넣었다. 그 순간 그가 평목을 타고 앉아 목을 졸라매던 것, 평목이가 픽픽 소리를 내며 팔다리를 버둥거리던 것, 혀를 빼어 물고 늘어지던 것, 그것을 두리쳐 메고 굴로 오던 것―이 모든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433
『평목 스님, 제발 내 죄를 용서하시고 극락 왕생하시오.』
 
434
하고 조신은 수없이 빌었다. 그렇지마는 평목이가 극락에 갈 리도 없고 저를 죽인 자를 원망하는 마음을 풀리도 없다고 조신은 생각하였다. 세세 생생에 원수 갚기 내기를 할 큰 원업을 맺었다고 조신은 생각하였으나, 그래도 조신은 이런 생각을 누르고 평목에게 빌 길밖에 없었다. 살 맞은 사슴을 이 굴로 인도한 것도 평목의 원혼이었다.
 
435
『평목 스님, 잘못했소. 옛정을 생각하여 용서하시오. 원한을 품은 대로는 왕생 극락을 못하실 터이니 용서하시오. 나를 이번에 살려만 주시면 평생에 스님을 위하여 염불하고 그 공덕을 스님께 회향할 터이니, 살려주오.』
 
436
조신은 이렇게 뇌이고 또 뇌었다.
 
437
가까스로 평목의 시체가 땅에서 떨어졌다.
 
438
조신은 평목의 입김이 푸푸 제 입과 코에 닿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걸었다.
 
439
평목의 시체는 굴 문 밖에 놓였다. 밝은 데 내다놓고 보니 과히 썩지도 아니하여서 용모를 분별할 수가 있었다.
 
440
『중이로군.』
 
441
누가 이렇게 말하였다.
 
442
『평목 대사다.』
 
443
서울 손님은 이렇게 소리쳤다.
 
444
『우리집에 왔던 그 손님이야.』
 
445
미력이는 조신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446
조신은 입술을 물고 미력이를 노려보았다. 미력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 곁에서 물러났다.
 
447
원은 한번 평목의 시체들 다 돌아다보고 나서 서울 손님을 향하여,
 
448
『모례 아손은 이 중을 아신단 말씀이오?』
 
449
하고 서울 손님을 바라본다.
 
450
조신은 ⌜모례⌟란 말에 또 한번 아니 놀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달보고에게 옥고리를 준 것이나 조신의 집에 사처를 정한 것이나 다 알아지는 것 같았다.
 
451
모례는 원의 묻는 말에 잠깐 생각하더니,
 
452
『그렇소, 이 사람은 평목이라는 세달사 중이요. 내가 십 육칠년 전 명주 낙산사에서 이 중을 알았고, 그 후에도 서울에 오면 내 집을 늘 찾았소.』
 
453
하고 대답하였다.
 
454
원은 의외라는 듯이 모례를 이윽히 보더니,
 
455
『그러면 모례 아손은 이 중이 어떻게 죽었는지 무슨 짐작되는 일이 있으시오?』
 
456
하고 묻는다.
 
457
『노상 짐작이 없지도 아니하오마는 보지 못한 일이니 확실히야 알 수 있소? 대관절 태수는 이 사람이 어떻게 죽은 것으로 보시오? 그것부터 말씀해 보시면 내 짐작과 맞는지 아니 맞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니, 사또의 말씀을 듣고 내 짐작을 말씀하오리다.』
 
458
하며 조신을 돌아본다.
 
459
조신은 애원하는 눈으로 모례를 바라보았다. 죽고 살고가 인제는 모례의 말 한마디에 달린 것이었다. 모례라는 ⌜모⌟자만 들어도 일어나던 질투연마는 지금은,
 
460
<모례 아손, 살려 줍시오.>
 
461
하고 그 발 앞에 꿇어 엎드려 빌 마음밖에 없었다. 조신은 또,
 
462
<평목 스님, 내가 잘못했소.>
 
463
하고 평목의 시신을 붙들고 빌고도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무사히 벗어날 수가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요행을 바라면서 일이 되어가는 양을 보고 있었다. 그의 아들 미력이는 먼 발치에 서서 아비 조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눈이 제 눈과 마주칠 때에 조신은 그것을 피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464
원은 모례에게 자기의 소견을 설명하였다.
 
465
『내가 보기에는 이 사람이 여기 와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죽어서 여기 온 것 같소. 이 사람이 여기서 자다가 죽었을 양이면 옆에 행구가 있을 텐데 그것이 없소. 바랑이나 갓이나 신발이나 지팡이나 이런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이 굴속에서 자다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죽어 가지고 이리로 온 것이 분명하오. 또 혀를 빼어 문 것을 보면 목을 매어 죽은 모양인데, 목에는 이렇게 바 오락으로 졸라매었던 형적이 있지마는 여기는 바 오락이도 없고 매어달릴 데도 없으니 무엇으로 보든지 여기서 아니 죽은 것만은 분명하오.』
 
466
원의 설명을 듣고 있던 모례는 때때로 옳은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듣고 있다.
 
467
말을 끝내인 태수는 꽨 듯한 낯빛으로 모례를 본다. 모례는 또 한 번 끄덕하고,
 
468
『옳은 말씀이오. 내가 보기에도 그러하오. 그러면 사또는 이 사람을 해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시오?』
 
469
하고 원에게 묻는다. 원은 대답하되,
 
470
『그 말씀이오. 이 사람이 죽기는 이 동네에서라고 생각하오. 여기서 멀지도 아니한 집이 있고 또 굴이 여기 있는 줄을 잘 알고, 또 세달사나 낙산사에 관계가 있는 사람인가 하오. 지나가는 중을 재물을 탐하는 적심으로 죽였다고 볼 수 없으니 필시 무슨 사혐인가 하오. 이런 생각으로 알아보면 진범이 알아질 것도 같소마는 아손 말씀이 죽은 사람은 아신다 하니 이제는 아손이 보시는 바를 일러주시오.』
 
471
라고 한다.
 
472
『과연 사또는 명관이시오. 절절이 다 이치에 꼭 맞는 말씀이오. 나도 사또 생각과 같은 생각이오. 평목으로 말하면 분명히 사혐으로 죽었다고 보오. 평목을 죽인 자가 누구냐 하는 데 대하여서도 나로서는 짐작하는 바가 있소마는, 일이 일이라 경경히 누구를 지목하여 말하기가 어렵소. 이치에 꼭 그럴 것 같으면서 실상은 그렇지 아니한 일도 간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사또는 우선 죽은 사람의 행구와 이 사람이 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을 알아보시오. 그래서 상당한 증거만 나서면 그 남저지 평목이나 평목을 해한 사람에 대한 말씀은 그때에 내가 자세히 사또께 아로이리다.』
 
473
하는 모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태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474
『아손 말씀이 지당하오.』
【원문】둘째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91
- 전체 순위 : 739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4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5) 날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3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꿈(夢)
 
 
 
  # 조신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이전 2권 다음 한글 
◈ 꿈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