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한글 
◈ 꿈 ◈
◇ 세째권 ◇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이전 3권 ▶마지막
1939.7
이광수
1947년 면학서관(勉學書館)에서 간행한 이광수의 중편소설로 이제까지의 잘못으로 교수형을 당할 때 놀라서 꿈을 깨며 인간세계 욕망의 무상을 깨닫는 편이다.
1
꿈 - 세째권
 
 
2
조신은 다 죽은 상이 되어서 집에 돌아 왔다. 그는 굴 앞에서 당장 죄상이 발각되어서 결박을 지는 줄만 알고 마음이 조리고 있었으나 모례의 의견으로 그 자리만은 면하였다. 그러나 모례의 말투가 어느 것이 조신인지를 아는 것도 같았다.
 
3
조신이 돌아오는 것을 본 달례는 걱정스러운 듯이 조신의 눈치를 엿보았다. 그 해쓱한 낯빛, 퀭한 눈, 허둥허둥 하는 몸가짐, 모두 심상하지 아니 하였다.
 
4
『왜, 어디가 아프시오?』
 
5
달례는 조신이 방에 들어오는데 문을 비켜주며 물었다.
 
6
달보고도 바느질감을 놓고 아비를 바라보았다. 미력은 시무룩하고 마당에서 있어서 방에 들어 오려고도 아니하였다.
 
7
『미력아, 들어 오려무나. 발이 젖었으니 버선 갈아 신어라.』
 
8
하고 달례는 아들을 불러 들였다.
 
9
『모례야 모례.』
 
10
조신은 힘없이 펄썩 주저앉으며 뉘게 하는 소린지 모르게 한마디 툭 쏘았다.
 
11
『응, 무어요?』
 
12
달례는 몸이 굳어지는 모양을 보였다.
 
13
『모례라니까. 그 사람이, 달보고헌테 옥고리 준 사람이 모례란 말야. 세상 일이 이렇게도 공교하게 되는 법도 있나. 꼼짝달싹 못하고 인제는 죽었어, 죽었어. 아아.』
 
14
하고 옆에 아이들이 있는 것도 상관 아니하고 이런 소리를 하고는 고개를 폭 수그린다.
 
15
『모례가 무에요, 어머니?』
 
16
달보고가 묻는다.
 
17
미력이가,
 
18
『어머니, 굴속에서 송장이 나왔는데 그것이 평목이래. 우리 집에 접때에 와 자던 그 대사야.』
 
19
하고 어른스럽게 근심 있는 낯색을 짓는다.
 
20
『응, 굴속에 송장, 평목 대사?』
 
21
『어머니 몰르슈? 모례 아손이라는 이의 화살에 맞은 사슴이가 하필 그 굴로 도망을 가서 사람들이 사슴을 잡으러 들어 가 보니까 평목 대사의 송장이 나왔거든. 그래서 누가 이 사람을 죽였나, 죽인 사람을 찾는다고 모조리 여러 집을 뒤진데요, 필씨 대사의 행구가 나올 것이라고.』
 
22
미력이는 이 말을 하면서도 때때로 조신을 힐끗힐끗 바라본다.
 
23
『아니 여보슈, 그게 정말이요? 그게 정말 평목 대사의 시신이오?』
 
24
달례가 조신에게 묻는다. 이런 말들이 모두 조신의 죄를 낱우는 것 같았다.
 
25
『그렇다니까. 그러니 어짜란 말야?』
 
26
하고 조신은 짜증을 낸다.
 
27
『아니, 그이가, 그 시님이 어디서 누구헌테 죽었단 말요?』
 
28
하고 묻는 달례의 가슴이 들먹거린다.
 
29
『내가 어떻게 알아? 어떤 도적놈헌테 맞아죽었는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말야? 달보고야, 내, 냉수.』
 
30
조신은 입이 마르고 썼다.
 
31
『아니 그이가 새벽에 떠났다고 아니하셨소? 설마 설마, 당신이……』
 
32
하고 달례는 말을 아물리지 못한다.
 
33
조신은 냉수를 벌꺽벌꺽 마시고 나서,
 
34
『입 닫혀, 웬 방정맞은 소리야?』
 
35
물그릇을 동댕이치듯이 내어 던진다.
 
36
『평목이 죽은 것이 문제야? 모례가 나타난 것이 일이지. 평목이야 어떤 놈이 죽였는지 모르지만 죽인 놈이 있겠지. 어디 도적질을 갔다가 얻어맞아 죽었는지, 남의 유부녀 방에 들었다가 박살을 당했는지 내가 알 게 무엇이람. 그놈이 하필 왜 여기 와서 뒤어져. 그 경을 칠 여우는 왜 그놈에 상판대기 뱃대기를 파먹지는 않았어.』
 
37
가만히 내버려두면 조신은 언제까지라도 지절댈 것 같다.
 
38
『아이 어떡허면 좋아, 이 일을 어떡허면 좋소.』
 
39
하고 달례가 조신의 말을 중동을 잘라 버렸다.
 
40
『어머니, 모례가 무에요?』
 
41
달보고가 애를 썼다.
 
42
미력이가 달보고의 귀에 입을 대고,
 
43
『모례가 사랑에 든 서울 손님야. 수염 긴 양반은 원님이고 수염 조금 나고 얼굴이 옥같이 하얀 양반이 모례야.』
 
44
하고 설명해 준다.
 
45
달례는 음식을 차리러 부엌에 내려 갔다. 꿩을 뜯고 사슴의 고기를 저미고, 달례는 바빴다. 달보고는 부지런히 물을 길어 들였다. 조신은 술과 주안상을 들고 사랑으로 들락날락하였다. 나중에는 어찌 되든지 당장 할 일은 해야 하겠고, 또 태연 자약한 빛을 보이는 것이 죄를 벗어날 길이라고도 생각하였다.
 
46
『호, 꿩을 잘 구웠는걸. 사슴의 고기도 잘 만지고. 아손, 이런 산촌 음식으로는 어지간하지 않소? 이것도 좀 들어보시오.』
 
47
원은 벌써 얼근하게 주기를 띄고 이런 말을 하였다.
 
48
그러나 모례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모양이요, 말도 많이 하지 아니하였다. 조신은 이 좌석에서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아니 놓치려고 그런 눈치 아니 채울 이만큼 귀를 귀울였다.
 
49
『엇네, 주인도 한 잔 먹소.』
 
50
원은 더욱 흥이 나는 모양이었다.
 
51
『이봐라, 네 이 큰 잔에 한 잔 그득히 부어서 주인 주어라.』
 
52
통인이 큰 잔에 술을 부어서 조신을 주었다.
 
53
『황송하오.』
 
54
하고 조신은 술을 받아 외면하고 마시고는 물러나올 때에 아전이 달려 와서,
 
55
『사또 안전에 형방 아전 아뢰오.』
 
56
하고 문 밖에서 허리를 굽혔다.
 
57
통인이 문을 열었다.
 
58
원은 들었던 잔을 상에 내려놓고, 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59
『오냐, 알아 보았느냐?』
 
60
하고 수염을 쓸었다.
 
61
『예이, 이 동네 안에 있는 집은 모조리 적간하였사오나 송낙이나 바랑이나 굴갓 같은 중의 행구는 형적도 없사옵고, 동네 백성들 말이 지금부터 한 달 전에 어떤 중이 이리로 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하옵는데, 굴갓을 썼더라는 사람도 있고 송낙을 썼더라는 사람도 있으나 바랑을 지고 지팡이를 짚었더란 말을 한결 같사옵고, 아무도 그 중이 동네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못 보았다 하오.』
 
62
아전이 아뢰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원은, 안으로 통하는 문안에 아직 나가지 않고 서 있는 조신을 힐끗 보며,
 
63
『주인, 자네는 그런 중을 못 보았는가? 한 달쯤 전에.』
 
64
하고 고개를 아전 쪽으로 돌려,
 
65
『한 달쯤 전이랬것다?』
 
66
『예이, 한 달쯤 전이라 하오. 어떤 백성의 말이 길갓밭 늦은 콩을 걷다가 그런 중이 이 골짜기로 향하고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하오, 다 저녁때에.』
 
67
하고 아전이 조신을 한번 힐끗 본다.
 
68
원은 몸을 좌우로 흔들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69
『이 골짜기로?』
 
70
하고 다시 묻는다.
 
71
『예이, 바로 이 골짜기로.』
 
72
하고 또 한 번 조신을 본다.
 
73
『이 골짜기로, 다 저녁때에.』
 
74
하고 원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조신에게,
 
75
『주인, 자네는 혹시 그런 중을 못 보았나? 바랑을 지고 지팡이를 짚고, 다 저녁때에 이 골짝으로 올라 오는 중을 못 보았나?』
 
76
하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77
조신은 오른 무릎을 꿇어 절하며,
 
78
『소, 소인은 한 달 전은커녕, 금년 철 잡아서는 중이 이 골짜기에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소.』
 
79
하고 힘있게 말하였다.
 
80
『금년 철 잡아서는 중을 하나도 못 보았다?』
 
81
원은 조신을 노려 보았다.
 
82
『예이, 금년 철 잡아서라는 것은 과한 말이오나 한 달 전에는 중을 보지 못하였소.』
 
83
원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 아전을 향하여, 모든 의심이 다 풀린 듯한 어조로,
 
84
『오, 알았다. 물러가거라. 오늘은 더 일이 없으니 물러가서 다들 수이렷다. 술을 먹되 과도히 먹지 말고 아무 때에 불러도 거행하도록 대령하렷다. 군노 사령 잘 단속하여 촌민에게 행패 없도록 네 엄칙하렷다.』
 
85
원은 먹은 술이 다 깬 듯이 서슬이 푸르다.
 
86
『소인 물러나오.』
 
87
하고 아전은 한번 굽신하고 가버렸다.
 
88
『문 닫아라. 아손, 인제 아무 공사도 없으니 마음 놓고 먹읍시다. 이봐라 술 더 올려라.』
 
89
하고 원은 도로 흥을 내었다.
 
90
조신은 데운 술을 가지러 병을 들고 안문으로 나갔다. 조신은 등에, 이마에 땀이 쭉 흘렀다.
 
91
밤도 깊어서 모두 잠이 들었다. 깨어 있는 것은 조신뿐인 것 같았다. 기실 조신은 모든 사람이 다 잠들기를 행구를 것이었다. 조신은 할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랑 벽장에 있는 평목의 행구를 치이는 것이었다.
 
92
평목의 시체를 묻지 아니한 것보다 못지 않게, 그의 기다린 처치해버리지 아니한 것을 조신은 후회하였다. 조신은 이 행구를 치울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무서워서 손을 대기가 싫어서였다. 그러나 이 행구는 평목을 죽인 살인에 대하여는 꼼짝할 수 없는 증거였다. 왜 그런고 하면 그 바랑 속에는 평목의 이름을 쓴 도첩이 있을 것이요, 또 아마 그의 바리때 밑에도 이름이 새겨 있을 것이다. 이것이 드러난 담에야 다시 무슨 변명이 있으랴. 이것을 생각하면 조신은 전신이 얼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93
조신은 식구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렸으나, 달례가 좀체로 잠이 아니 드는 모양이었다. 조신은 달례에게 대하여서도 장차 제가 시작하려는 일을 알리고 싶지 아니하였다. 죄를 진 자가 제 죄를 감추려는 모든 일은 제 그림자 보고도 말하고 싶지 아니한 것뿐이었다.
 
94
마침내 달례가 정말인지 부러인지 모르나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조신은 가만히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 흐렸던 하늘은 활짝 개이고 시월 하순달이 불붙는 쇠뿔 모양으로 떠 올라와서 푸르스름한 빛을 내고 있는 것이 귀신 사는 세상에나 볼 것같이 무시무시하였다.
 
95
조신은 호미와 낫을 들고 사랑 벽장 붙은 쪽으로 발끝걸음으로 가만가만 걸어 갔다. 다들 사냥에 지치고 술이 취하였으니,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리라고 안심은 하나 달빛이 싫었다.
 
96
조신은 아무쪼록 처마 그늘에 몸을 감추면서 호미 끝으로 벽장 바깥벽을 따짝따짝 긁어보았다. 의외에 소리가 컸다. 조신은 쥐가 긁는 소리와 같이 방안에서 자는 사람의 귀에 들리도록 가락을 맞추어서 긁었다.
 
97
마른 벽은 굳기가 돌과 같아서 여간 쥐가 긁는 소리로는 구멍이 뚫어질 것 같지 아니하였다.
 
98
<이렇게 언제 그놈의 바랑을 끌어내일 만한 구멍을 뚫는담.>
 
99
하고 조신은 뒤를 휘 둘러 보며 한숨을 쉬었다.
 
100
<그래도 뚫어야 한다. 뚫고 그놈의 바랑을 꺼내야 한다. 그밖에는 살아날 길이 없다.>
 
101
조신은 또 호미 끝으로 혹은 낫 끝으로 콕콕 찔러도 보고 박박 긁어도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흙이 떨어졌나 하고 손으로 쓸어도 보았다. 그러나 아직 욋가지가 조금 드러났을 뿐이요. 그것도 손바닥만한 넓이 밖에 못되었다.
 
102
이 모양으로 조신이 정신없이 긁고 있을 때에 방에서, 한 소리가,
 
103
『이게 무슨 소린가?』
 
104
하자, 또 한 소리가,
 
105
『쥔가 보오. 벽장에 쥐가 들었나보오.』
 
106
하고 주고받는다. 귀인이라 잠귀가 밝다 하고 조신은 벽에서 떨어져서 두어 걸음 달아나서 숨어서 귀를 기울였다.
 
107
『거 꿈 수상하오.』
 
108
하고 또 소리가 들린다. 그것은 원의 음성이었다.
 
109
『무슨 꿈이오?』
 
110
하는 것은 모례의 소리였다.
 
111
『비몽사몽인데 저 벽장문이 방싯 열리며, 웬 중의 머리가 쑥 나온단 말요. 그러자, 쥐 소리에 잠이 깼는걸.』
 
112
이것은 원의 소리.
 
113
다음에는 모례의 소리로,
 
114
『낮에 본 것이 꿈이 된 게지오.』
 
115
그리고는 잠잠하다. 조신은 두 사람이 코고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없었다.
 
116
조신은 원의 꿈이 마음에 찔렸다. 평목이가 원의 꿈에 나타나서 전후 시말을 다 말을 하면 어찌하나 하고 고개를 숙였다.
 
117
평목이 혼이 원의 꿈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어도 벽장에 든 평목의 행구는 집어치어야만 한다. 조신은 또 낫 끝으로 외가지를 따짝따짝해보았다. 그러고는 귀를 기울였다. 조신은 조금 더 힘을 주어서 호미로 흙을 긁었다. 그러다가 지긋이 흙을 잡아 당기었다. 쩍 하면서 흙 한 덩어리가 떨어진다. 흙 덩어리는 손을 피하여서 털석 하는 소리를 내고 땅에 떨어져서 부서졌다. 고요한 밤이라 조신의 귀에는 그것이 벼락치는 소리와 같았다. 조신은 큰일을 저지른 아이 모양으로 두 손을 허공에 들고 어깨를 웅숭그렸다.
 
118
『이봐라.』
 
119
하고 호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원의 소리다.
 
120
『이봐라 네, 이 벽장 열어보아라. 쥐가 들었단 말이냐. 사람이 들었단 말이냐.』
 
121
이것은 원이 웃방에서 자는 통인을 부르는 소리였다.
 
122
<아이구 이제는 죽었고나!>
 
123
하고 조신은 호미를 버리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혹시 발각이 되더라도 도적이 와서 벽을 뚫다가 달아난 것으로 보였으면 하는 한줄기 희망도 있었지마는, 그것은 그렇다 하고라도 평목의 바랑이 드러났으니 꼼짝할 수가 없다.
 
124
조신은 달례를 흔들었다. 달례가 벌떡 일어났다.
 
125
『나는 달아나오.』
 
126
조신은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127
『네, 어디로?』
 
128
달례는 조신의 소매에 매어 달렸다.
 
129
조신은 떨리는 손으로 달례의 머리를 만지면서,
 
130
『내가 평목이를 죽였어. 평목이를 죽인 게 내야. 그런데 그것이 탄로가 났어. 원이 알았어. 이제 꼼짝달싹할 수 없이 되었으니, 나는 달아나는 대로 달아나겠소. 당신은 모례 아손께 빌어보오. 살인이야 내가 했지 당신이야 상관 있소? 집과 재물은 다 빼앗기겠지만 당신이나 아이들이야 설마 죽일라구, 자, 놓으시오. 어서 나는 달아나야 해.』
 
131
하고 한손으로 달례가 잡은 소매를 나꾸채고 한 손으로 달례의 머리를 떠밀어서 몸을 빼치려고 한다. 그래도 달례는 놓친 아니하고 더욱 조신의 소매를 감아쥐며,
 
132
『당신이 달아나면 다 같이 달아납시다. 살인한 놈의 처자가 어떻게 이 동네에 붙여 있겠소. 우리 다섯 식구 가는 대로 가다가 살게 되면 살고, 죽게되면 같이 죽읍시다.』
 
133
하고 조금도 허둥허둥하는 빛도 없이 아이들을 일으킨다.
 
134
조신의 집 식구들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작은 두텁 고개를 넘어 큰 두텁고개 수풀 길에 다다랐을 때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땀에 떠 있었다.
 
135
『아버지, 좀 쉬어 갑시다.』
 
136
하는 미력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137
조신은 우뚝 서서 뒤를 돌아 보았다. 미력이는 눈 위에 기운 없이 주저앉았다.
 
138
『아버지, 나는 더 못 가겠어요.』
 
139
하고 미력이는 고만 쓰러지고 말았다.
 
140
『웬일이냐. 어디가 아프냐?』
 
141
하고 달례가 미력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142
『아이구, 이를 어쩌나. 이애 몸이 불이로구려.』
 
143
조신은 업은 아이를 내려놓았다. 미력의 몸은 과연 불같이 달았다.
 
144
『미력아, 미력아.』
 
145
하고 조신과 달례가 아무리 불러도 미력은 숨소리만 짧게 씨근거리고 말을 못하였다. 조신은 굴 앞에 놓인 평목의 시체를 생각하였다. 미력이가 앓는 것은 평목의 장난인 것 같아서 일변 무섭고 일변 원망스럽다.
 
146
바람은 없었으나 새벽은 추웠다. 조신은 미력을 무릎 위에 안았다. 열 일곱 살이나 먹은 사내는 안기도 아름이 버으렀다. 어린것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떨고 있었다. 이러다가 여섯 식구가 몽탕 얼어 죽을 길밖에 없었다. 인가를 찾아가자니 집으로 되돌아가지 아니하면, 큰 두텁 고개 이십 리를 넘어야 하였다. 게다가 뒤에는 조신을 잡으려고 따르는 나졸이 있는지도 모른다.
 
147
조신은 절망적인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갈구리 같은 달은 높이 하늘에 걸리고 샛별도 주먹같이 떠올랐다. 이 망망한 법계에 몸을 담을 곳이 없는 몸인 것을 조신은 가슴 아프게 느꼈다.
 
148
이 모양으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나 조신은 벌써 숨이 끊어진 미력을 그런 줄도 모르고 안고 있었다. 달례가 미력의 몸을 만져본 때에야 비로소 그가 식은 몸인 것을 알았다.
 
149
『미력아, 미력아.』
 
150
하고 두어 번 불러보았으나 눈물도 나오지 아니하였다.
 
151
조신은 미력의 눈을 손으로 쓸어 감기며,
 
152
『미력아, 네야 무슨 죄 있느냐. 부디 왕생 극락하여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153
하고 염불을 하면서 그 시체를 안고 일어나서 허둥지둥 묻을 곳을 찾았다.
 
154
땅을 팔 수도 없거니와, 팔 새도 없었다. 조신은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하고 나무 그늘로 이리저리 헤메었다. 볕이나 잘 들 데, 물에 씻기지나 아니할 데, 이 다음에 와서 찾을 수 있는 데―이러한 곳을 찾노라고 이리저리 헤매었다. 조신은 무섭고 미운 생각으로 평목의 시체를 안고 가던 한 달 전 일을 생각하였다. 이제 그는 슬픔과 아까움과 무서움을 품고 아들의 시체를 안고 헤매는 것이다.
 
155
조신은 두드러진 바위 밑 늙은 소나무 그늘에 미력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혹시나 살아 있지나 아니한가 하고 미력의 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으나 잠잠하였다.
 
156
<정말 죽었고나.>
 
157
하고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조신은 미력의 손발을 모았다. 아직도 굳어지지 아니하여 나긋나긋하였다. 생명이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다.
 
158
조신은 미력의 시체를 눈으로 파묻었다. 아무리 두 손으로 눈을 쳐덮어도 미력의 검은 머리가 덮이지 아니하였다. 미력이가 몸을 흔들어서 눈이 흘러 내리는 것 같았다.
 
159
마침내 검은 머리도 감추었다. 인제는 달빛에 비추인 눈더미뿐이었다.
 
160
조신은 오래간만에 합장을 하였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짐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캥캥하고 여우 우는 소리가 들렸다.
 
161
조신는 돌따 서서 처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162
달례와 세 아이들은 한데 뭉쳐서 올올 떨고 있었다. 속은 비이고 몸은 얼어 들어왔다. 어제 사냥하노라고 산으로 달리고 밤을 걱정과 슬픔으로 새운 조신은 사내면서도 정신이 반은 나간 것 같았다.
 
163
『자, 다들 일어나서 가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걸음을 걸으면 몸도 더워진다.』
 
164
하고 조신은 칼보고를 업고 나섰다. 달례도 젖먹이를 업고 따랐다. 달보고도 기운 없이 따랐다.
 
165
『고개만 넘어가면 인가가 있어.』
 
166
하고 조신은 가끔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걸었다.
 
167
<가족에게 알리지 말고 저 한 몸만 빠져 나왔더면 이런 일은 없는 걸.>
 
168
하고 조신은 후회하였다. 아무리 살인한 놈의 식구라도 당장 내어 쫓지는 아니할 것이다.
 
169
<나 한 몸만 같으면야 무슨 걱정이 있으랴, 어디를 가면 못 얻어 먹고 어디를 가면 못 숨으랴. 이 식구들을 끌고야 어떻게 밥인들 얻어먹으며 몸을 숨기긴들 하랴.>
 
170
하고 조신은 얼음 길에 힘들게 다리를 옮겨 놓으면서 혼자 생각하였다.
 
171
조신의 일행이 천신만고로 두텁고개 마루터기에 올라 설 때에는 벌써 해가 떴다.
 
172
태백 산맥의 여러 봉우리들이 볕을 받아서 금빛으로 빛났다. 마루터기 찬 바람은 어이는 듯하였다. 골짜기에는 아직 밤이 남아 있고 그 위에는 안개가 있었다. 조신은 저 어두움 속에는 따뜻한 인가들이 있고 김이 나는 국과 밥이 있을 것을 생각하였다. 배고프고 떨고 있는 처자를 다만 한참동안이라도 그런 따뜻한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173
『아버지, 추워.』
 
174
『어머니, 배고파.』
 
175
아이들은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176
『잠깐만 참아. 이 고개를 다 내려가면 말죽거리야. 거기 가면 뜨뜻한 방에 들어앉어서 뜨뜻한 국에 밥을 말아먹을걸.』
 
177
조신은 이런 말로 보채는 어린것들을 위로하였다.
 
178
조신의 일행은 마침내 말죽거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곳은 그리 큰 주막거리는 아니나 삼태골, 울도, 멍에목이로 가는 길들이 갈리는 목이었다. 그래서 보행객이나 짐실이 마소들이 여기 들어서 묵어서 가는 참이었다. 조신의 계획은 밤 동안에 우선 여기까지 와 가지고 어디로나 달아날 방향을 정하자는 것이었다. 길이 사방으로 갈리기 때문에 종적을 숨기기 쉽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179
『저기 집 보인다.』
 
180
『연기가 나네.』
 
181
하고 아이들은 얼어붙은 입으로 좋아라고 재깔였다.
 
182
『떠들지 말아.』
 
183
달례가 걱정하였다.
 
184
연기 나는 집들을 본 아이들은 매우 흥분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산길을 걷는 동안은 거의 입을 벌리지 아니하였다.
 
185
냇물은 굵은 돌로 놓는 검정다리에 부딪쳐 소리를 내며 흘렀다. 물결이 없는 곳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꿩도 날고 까마귀와 까치도 날았다.
 
186
주막거리에서는 벌써 짐진 사람과 마소바리들이 떠나고 있었다. 웬 보행객 한 사람이 마주오는 것을 조신은 보았다. 조신은 어쩌나 하고 가슴이 뭉클하였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87
『어디서 떠났길래 이렇게 일찍 오시오?』
 
188
하고 그 행객이 조신의 일행을 보고 물었다. 그는 조신네 일행을 훑어보았다.
 
189
『얘 외할아버지가 병환이 위독하다고 전인이 와서 밤 도아 오는 길이오.』
 
190
하고 조신은 그럴 듯이 꾸며 대었다.
 
191
그 행객은 달례와 달보고를 힐끗힐끗 보면서 지나갔다.
 
192
조신은 아무쪼록 태연한 태도를 지으려 하였으나 인가가 가까워 올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직 방아골 살인 소식이 여기까지 올 리는 만무하다고 믿기는 믿건마는, 죄 지은 마음에는 밝은 빛이 무섭고 사람의 눈이 무서웠다.
 
193
<태연해야 돼.>
 
194
하고 조신은 저를 책망하면서 말죽거리에 들어 섰다. 부엌들에서는 김이 오르고, 죽을 배불리 먹고 짐을 싣고 나선 마소와 길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입과 코에서도 김이 나왔다.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눈은 조신의 일행에 모이는 것 같아서 낯이 간지러웠다. 조신은 아내 달례와 딸 달보고의 얼굴이 아름다운 것이 원망스러웠다. 비록 수건을 눈썹까지 내려 썼건마는, 수건 밑으로 드러난 코와 입과 뺨만 해도 그들이 세상에도 드문 미인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195
<금시에 곰보라도 되어버렸으면……>
 
196
하고 조신은 아내와 딸을 돌아보고 길바닥에 침을 탁 뱉았다.
 
197
조신은 될 수 있는 대로 거리 저편 끝 으슥한 집을 골라서 들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쳐다보고 따라오는 것이 짜증이 나서 ⌜아무 집이나⌟하고 주막에 들었다.
 
198
주막장이는 조신네 일행이 차림차림 남루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안 손님⌟이라 하여 안으로 끌어 들였다.
 
199
『무얼 잡수시려오? 묵어가시려오? 애기들이 어여쁘기도 하오.』
 
200
하고 주막집 마누라는 수다를 떨었다.
 
201
『에그, 추우시겠네. 어서 이리 들어들 오시오.』
 
202
하고 방에 늘어 놓은 요때기 옷가지를 주섬주섬 치우면서도 조신네 식구를 힐끗힐끗 보았다. 조신은 그 여편네가 싫었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203
방은 따뜻하였다. 밥도 곧 들어왔다. 상을 물리는 듯 마는 듯 아이들은 고꾸라져서 잠이 들었다. 달례는 아이들이 자는 양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앉아 있었으나 역시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204
조신은 자서는 안될 텐데 하면서도 자꾸만 눈가죽이 무거웠다. 죽은 미력이를 생각하기로니 자서 될 수 있나 하고 저를 꼬집건마는 아니 잘 수가 없었다. 결국 조신도 달례도 다 잠이 들고 말았다. 마치 이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편히 쉬자 하는 것 같았다.
 
205
행객과 마소가 다 떠나고 난 주막거리는 조용하여서 낮잠 자기에 마침이었다. 조신네 식구들은 뜨뜻한 방에서 마음 놓고 자고 있었다.
 
206
이때에 조신의 귀에,
 
207
『여보시오, 손님, 여보시오, 애기 어머니, 일어나시오. 누구 손님이 찾아오셨수.』
 
208
하는 소리가 들렸다.
 
209
조신은 그것이 주막장이 마누라의 음성이다 하면서 얼낌덜낌에,
 
210
『없다고 그러시오. 여기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211
하고 돌아누웠다. 돌아눕고 생각하니 아니할 소리를 하였다 하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주막장이 마누라는 문을 열어 잡고 밖에 서서 모가지만 방안에 디밀고 있었다.
 
212
『누가 왔어요?』
 
213
하고 조신은 아까 한 말을 잊어버린 듯이 주막장이 마누라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214
『누구신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말 타고 오신 손님야요. 말 탄 시종 하나 데리고. 아주 점잖은 양반이야요.』
 
215
마누라가 이렇게 말할 때에 달례도 일어나서 벽을 향하여 머리를 만진다.
 
216
조신은 울렁거리는 가슴과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하려고 한 선하품을 하고 기지게를 켜고 나서 가장 태연하게,
 
217
『말 탄 사람이라, 나 찾아올 사람이 있나. 그래 무에라고 나를 찾아요?』
 
218
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자기 운명의 마지막이 다다랐음을 느끼면서, 그는 잠시라도 속이지 아니할 수 없었다.
 
219
『손님 행색이 유표하지 않소? 선녀 같은 아씨, 작은 아씨만 해도 눈에 띄우지 않소? 게다가 서방님이 또 특별하게 잘나셨거든. 벌써 말죽거리에 소문이 짜아한데 뭐 숨기려 숨길 수 없고 감추려 감출 수 없는 달 아니면 꽃인걸 뭐, 안 그래요, 아씨? 그래 그 손님이 말죽거리 들어서는 길로 이러이러한 사람 못 보았느냐고 물었을 것 아냐요? 그러면 말죽거리 사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런 손님이 우리집에 들었느니라고 말할 것 아냐요? 원체 유표하거든. 아이, 어쩌면 아씨는 저렇게도 어여쁘실까. 누가 애기를 셋씩이나 낳은 분이라 해? 할미는 말죽거리서 육십 평생을 살아도 저러신 분네는 처음이야. 이 작은아씨도 활짝 피면 어머니 같을 거야.』
 
220
하고 할미의 수다는 끝날 바를 모른다.
 
221
『그 손님은 어디 계슈.』
 
222
이것은 달례가 묻는 말이었다.
 
223
『아, 참, 일어나셨다고 가서 알려야겠군. 손님네 곤히 주무신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만 두라고, 깨거든 알리라고 그러시던데.』
 
224
하고 마누라는 신발을 찔찔 끌면서 가버린다.
 
225
『여보, 주인마님.』
 
226
하고 조신은 문으로 고개를 내어 밀고 불렀으나 귀가 먹었는지 그냥 부엌으로 가서 스러지고 말았다.
 
227
달보고가 일어나서 놀란 새 모양으로 아비와 어미의 낯색을 번갈아보고 있다.
 
228
조신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인제 도망하려야 도망할 재주도 없었다.
 
229
『우리를 잡으려 온 사람은 아닌가보오. 아마, 모례 아손인가보아.』
 
230
조신은 달례를 보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달례는 말없이 매무시를 고치고 있었다.
 
231
<인제는 앉아서 되는대로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232
하니 조신은 마음이 편하여졌다.
 
233
<죽기밖에 더하랴.>
 
234
하고 조신은 더욱 마음을 든든히 먹었다.
 
235
밖에서 마누라의 신 끄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에 뚜벅뚜벅 점잖은 가죽신 소리가 들렸다.
 
236
문이 열렸다. 마누라의 싱글벙글하는 얼굴이 나타나며,
 
237
『손님 오시오.』
 
238
하고 물러선다.
 
239
그래도 잠시는 손님의 모양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조신과 달례와 달보고는 굳어진 등신 모양으로 숨소리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240
달례는 문득 생각 난 듯이 아랫목에 뉘였던 두 아이를 발치로 밀어 손님이 들어오면 앉을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조신은 그것이 밉고 질투가 났으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경황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입맛을 다셨다.
 
241
『에헴.』
 
242
하고 기침을 하고 가래를 고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243
그러자 자주 긴 옷에 붉은 갓을 쓴 모례가 허리에 가느스름한 환도를 넌지시 달고 두 손을 읍하여 소매 속에 넣고 문 앞에 와서 그림을 그린 듯이 선다.
 
244
『조신 대사, 나 모례요.』
 
245
조신은 예기한 바이지마는 흠칫하였다. ⌜모례⌟라는 이름보다도 조신 대사라는 말이 더욱 무서웠다.
 
246
조신은 벌떡 일어났다. 무서워서 일어난 것인가, 인사로 일어난 것인가 조신 저도 몰랐다. 그의 눈은 휘둥굴하여 깜박거릴 힘도 없었다.
 
247
달례도 일어나서 벽을 향하고 돌아섰다. 달보고는 모례를 한번 힐끗 눈을 치떠서 보고는 고개를 소곳하고 엄마의 곁에 섰다.
 
248
『마누라는 저리 가오.』
 
249
하고 모례는 주막장이 할미를 보내었다. 모례는 할미가 부엌으로 스러지는 것을 보고 나서,
 
250
『놀라지 마오. 나는 대사를 해하러 온 사람은 아니요, 종용히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으니 내가 방에 좀 들어가야 하겠소.』
 
251
하고 신발을 벗고 올라 선다.
 
252
조신은 저도 모르는 겨를에,
 
253
『아손마마 황송하오.』
 
254
하고 방바닥에 꿇어 엎드렸다.
 
255
모례는 문을 닫고 달례가 치어놓은 자리에 벽을 등지고 섰다.
 
256
조신은 꿇어 엎댄 채로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만 쳐들고 눈을 치떠서 모례를 우러러 보며,
 
257
『황송하오, 누추한 자리오나 좌정하시오.』
 
258
하였다. 조신에게는 모례가 자기 일가족을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살리고 싶으면 살릴 수 있는 신명같이 보였다. 모례의 그 맑은 얼굴, 가느스름하고도 빛나는 눈, 어디선지 모르게 발하는 위엄에도 조신은 반항할 수 없이 눌려 버렸다. 달례가 저런 좋은 남편을 버리고 어찌하여 나 같은 찌그러지고 못난 남자를 따라왔을까 하면 꿈같고 정말 같지 아니하였다.
 
259
모례는 조신이 권하는 대로 앉았다. 깃옷으로 두 무릎을 가리우고 단정히 앉은 양은 더욱 그림 같고 신선 같았다. 그 까만 웃수염 밑에 주홍 칠을 한 듯한 입술하며 옥으로 깎고 흰 깁으로 싼 듯한 손하며, 어디를 뜯어 보아도 나와 같이 업보로 태어난 사바 세계 중생 같지는 아니하였다. 조신은 새삼스럽게 제 몸이 추악하게 생기고 마음이 오예로 찬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눈앞에 놓인 제 두 손을 보라. 그것은 사람을 죽인 손이 아닌가. 평목 대사의 목을 조르고 코와 입을 누르던 손이 아닌가. 제 집 벽장에 구멍을 뚫고 평목의 행구를 훔쳐내려던 손이 아닌가. 그나 그뿐인가, 몇 번이나 이 손으로 모례를 만나면 죽이려고 별렀는가.
 
260
<그리고 내 입, 내 혀!>
 
261
하고 조신은 이를 갈았다. 이 입, 이 혀로 얼마나 거짓말을 하였는가. 아내까지도 속이지 아니하였는가. ⌜장인이 병환이 위중해서 밤 도아 오는 길이라⌟고 오늘 아침 말죽거리 어구에서 행객에게 한 거짓말까지도 모두 물 붓는 채찍이 되어서 조신의 몸을 후려 갈겼다.
 
262
『아손마마, 살려 주오. 모두 죽을 죄로 잘못하였소. 저 어린것들을 불쌍히 여겨서 제발 살려 주오.』
 
263
하고 조신은 우는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무수히 이마를 조아렸다.
 
264
『조신 대사.』
 
265
하고 모례가 무거운 어조로 부른다.
 
266
『예이, 황송하오. 이몸과 같이 긍흉 극악한 죄인을 대사라시니 더욱 황송하오.』
 
267
하고 조신은 전신이 땅에 잦아듬을 느꼈다.
 
268
『조신 대사, 긍흉 극악한 죄인이라 하니 무슨 죄 무슨 죄를 지었노?』
 
269
모례의 소리에는 죄를 나투는 법관과 같이 엄한 중에도 제자의 참회를 받는 스승과 같은 자비로운 울림이 있었다.
 
270
조신은 더욱 마음이 비창해지고 부끄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271
『비구로서 탐음심을 발하였으니 죄옵고, 그밖에도 죄가 수수 만만이오나 달례 아가씨를 후려낸 것과 평목 대사를 죽인 것이 죄중에도 가장 큰 죄라고 깨닫소.』
 
272
이렇게 참회를 하고 나니, 도리어 마음이 가벼워지는 듯해서 눈물에 젖은 낯을 들어 모례를 쳐다보았다.
 
273
『그러한 죄를 짓고도 살고 싶은가?』
 
274
조신은 잠깐 동안 말이 막혔다. 진정을 말하면 그래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또 한 번 거짓말을 하였다.
 
275
『이몸은 만 번 죽어 마땅하오나 이몸이 죽으면 저것들을 뉘가 먹여 살리오. 아손마마, 저것들을 불쌍히 보시와서 그저 이번만 한번 살려주소사.』
 
276
하고 조신은 소리를 내어서 느껴 울었다. 그러나 조신은 제가 마치 저 죽는 것은 둘째요, 처자가 가여워서 슬퍼하는 모양을 꾸미는 것이 저를 속임인 줄 알면서도 아무쪼록 모례가(또 달례나 달보고도) 거기 속아주기를 바라는 범부의 심사가 부끄럽고도 슬펐다.
 
277
모례가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조신은 더욱 사정하고 조르고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뉘우치는 깨끗한 마음으로 말을 꺼내었으나 살고 싶은 생각, 요행을 바라는 탐심의 구름이 점점 조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였다. 조신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모례를 눈물로 이기고 싶었다.
 
278
『제발 이번만. 아손마마, 활인 공덕으로 제발 이번 한번만 살려줍소사. 이번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죄를 안 짓고 착한 사람이 되겠사옵고, 또 세세생생에 아손마마 복혜쌍전하소서 하고 축원하겠사오니 아손마마, 제발 이번만 살려줍소사.』
 
279
하고 조신은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울었다.
 
280
『조신 대사!』
 
281
하고 모례는 아까보다도 높은 어조로 불렀다. 조신이 듣기에 그것은 무서운 어조요, 제 눈물에 속은 어조는 아니었다. 조신은 한줄기 살아날 희망도 끊어지는가 하고 낙심하면서 고개를 쳐들어 모례를 우러러보았다. 속으로는 모례의 마음을 돌려 줍소서 하고 무수히 관세음 보살을 염하였다.
 
282
『조신 대사, 나는 대사를 죽일 마음도 없고 살릴 힘도 없소. 대사가 내 아내 달례를 유혹하여가지고 달아난 뒤로 나는 여태껏 대사의 거처를 탐문하였었소. 대사를 찾기만 하면 이 칼로 죽여서 원수를 갚을 양으로. 그러다가 평목 대사가 대사의 숨은 곳을 알아내었다 하기로 진가를 알아볼 양으로 내가 평목 대사를 보냈던 것이요. 평목 대사를 먼저 보낼 때에는 내게 두 가지 생각이 있었소. 만일 조신 대사가 죄를 뉘우치고 내게 와서 빌고 다시 중이 되어서 수도를 한다면 나는 영영 모른 체하고 말리라 하는 마음하고, 또 한 생각은 만일 조신 대사가 참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칼로……』
 
283
하고 허리에 찬 칼을 쭉 빼어서 조신을 겨누며,
 
284
『만일 아직도 뉘우침이 없다면 내가 이칼로 조신 대사의 목을 버히려 하는 것이었소. 그랬더니 평목 대사가 떠난 뒤에 열흘이 되어도 스무 날이 되어도 한 달이 되어도 소식이 없으므로 내가 그 고을 원께 청하여 사냥을 나왔던 것이요. 내가 대사의 집을 찾다가 우물가에서 저 아기를 만나서는 모든 의심이 다 풀리고 저 아기가 달례의 딸인 줄을 안 것이요. 내가 저 아기에게 옥고리를 준 것은 그것을 보면 혹시나 대사나 달례가 내가 가까이 온 줄을 알아보고 지난 잘못을 뉘우치는 눈물을 흘리고 내게 용서함을 청할까 한 것이요. 나는 살생을 원치는 아니하오. 더구나 한번 몸에 가사를 걸었던 비구의 몸에 피를 내기를 원치 아니하였소. 그래서 조신 대사에게 살 기회를 넉넉히 줄 겸, 또 정말 그 집이 조신 대사와 달례가 사는 집인가를 확실히 알 겸 대사의 집에 사처를 정하였던 것이요. 그러나 내가 바라던 것은 다 틀려버렸소. 조신 대사는 평목 대사를 죽였다는 것이 발각되었소구료. 복도 죄도 지은 데로 가는 것이야. 조신 대사는 불제자이면서도 죄를 짓고 복을 누리려 하였소. 꾀를 가지고 천하를 속이고 인과 응보의 법을 속이려 하였지마는, 그게 될 일인가. 조신 대사는 굴에서 평목 대사의 시신이 나왔을 때에도 시치미를 떼었소. 대사는 그러하므로 천지의 법을 속여 보려 하였고 또 벽장에 둔 바랑을 꺼내려고 구멍을 뚫었지마는, 그것이 도로 그 바랑을 세상에 내어 놓게 재촉하였소. 그것이 안되니까, 대사는 도망하였소. 도망하여 세상과 천지를 속이려 하였지마는, 그 사슴이가 자취를 남기던 것 과 같이 조신 대사도 자취를 남겼소. 그림자와 같이 따르는 업보를 어떻게 피한단 말요? 그런데 조신 대사는 제 죄의 자취를 지워버리고 제 업보의 그림자를 떼어 버리려고 하였소. 그게 어리석다는 것이야. 탐욕이 중생의 눈을 가리운 거야, 그런데 조신 대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제는 눈물과 말과 보챔으로 또 한번 하늘과 땅을 속여보자는 거야. 부끄러운 일 아뇨? 황송한 일 아뇨? 이 자리에서는 조신 대사의 목숨은 내게 달렸소. 내 한번 손을 들면 대사의 목이 이 칼에 떨어지는 거야. 내가 십유여 년 두고 벼르던 원수를 쾌히 갚을 수 있는 이때요.』
 
285
하고 모례는 벌떡 일어나 칼을 높이 들어 조신의 목을 겨눈다.
 
286
조신은 황황하여 몸을 일으켜 합장하고,
 
287
<아손마마, 살려줍시오. 잠깐만 참아줍시오.>
 
288
하고 애원하는 눈으로 모례를 우러러본다. 모례의 눈에서는 불길이 뿜었다.
 
289
모례는 소리를 높였다. 타오르는 분노를 더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당장에 그 손에 들린 칼이 조신의 목에 떨어질 것같이 흔들리고 번쩍거렸다.
 
290
『이놈! 네 조신아, 듣거라. 불도를 닦는다는 중으로서 남의 아내를 빼어 내고도 잘못한 줄을 모르고, 네 법려인 사람을 죽이고도 아직도 좀꾀를 부려서 나를 속이고 천지신명을 속이려 하니, 너 같은 놈을 살려두면 우리 나라가 더러워질 것이다. 내가 당장에 이 칼로 네 목을 자를 것이로되, 아니 하는 뜻은 너는 이미 나라의 죄인이라, 나라의 죄인을 내 손으로 죽이기 황송하여 참거니와, 만일 네가 도망하여 나라에서 너를 잡지 못하면 내가 하늘 끝까지 가서라도 이 칼로 네 목을 베이고야 말 터이니 그리 알어라.』
 
291
하고 칼을 도로 집에 꽂고 자리에 앉는다.
 
292
조신은 고만 방바닥에 엎더지고 말았다. 머리를 부딪는 소리가 땅 하였다. 조신은 마치 벼락 맞은 사람과 같았다. 힘줄에도 힘이 없고 뼈에서도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오직 부끄러움과 절망의 답답함만이 가슴에 꽉 차서 숨이 막힐 듯하였다.
 
293
칼보고가 깨어서 울었다. 그 소리에 젖먹이도 깨어서 기겁을 할 듯이 울었다. 조신은 고개를 들어서 달례와 달보고를 바라보았다. 달례는 벽을 향한 대로 느껴 울고 달보고는 두 손으로 낯을 가리우고 울고 있었다.
 
294
조신은 모례를 바라보았다. 모례는 깎아 놓은 등신 모양으로 가만히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마귀가 가까운 어디서 까옥까옥하고 자꾸 짖고 있었다.
 
295
조신은 마침내 결심을 하였다. 인제는 별수 없다. 자기는 자현하여서 받을 죄를 받기로 하고 처자의 목숨을 모례에게 부탁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내답게 이렇게 하리라 하고 작정을 하니 마음이 가쁜하였다.
 
296
『아손마마!』
 
297
하고 조신은 모례를 불렀다.
 
298
모례는 말 없이 조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눈에는 몹시 멸시하는 빛이 있었다.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입귀가 좌우로 처진 양이 참을 수 없이 못마땅하다는 뜻을 표함이었다. 이것은 지위 높은 귀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299
조신은 모례의 표정을 보고 더욱 가슴이 섬뜨레하였으나 큰 결심을 한 조신에게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도 없고 꺼릴 것도 없었다. 만일 이제 또 모례가 칼을 빼어 목을 겨누더라도, 그 날이 목덜미에 스치더라도 눈도 깜짝 아니할 것 같다. 아까운 것이 있을 때에는 바싹만 해도 겁이 많을러니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니, 하늘과 땅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조신은 처자도 이제는 제 것이 아니요. 제 몸도 목숨도 그러함을 느꼈다. 조신은 마치 무서운 꿈을 깨어난 가벼움으로 입을 열었다.
 
300
『모례 아손, 이제 내 마음은 작정되었소. 나는 이길로 가서 자현하려오. 나는 남의 아내를 유인하고 남의 목숨을 끊었으니, 내가 나라에서 받을 벌이 무엇인지를 아오. 나는 앙탈 아니하고 내게 오는 업보를 달게 받겠소. 내게 이런 마음이 나도록―나를 오래 떠났던 본심에 돌아가도록 이끌어 준 아손의 자비 방편을 못내 고맙게 생각하오.』
 
301
하고 조신은 잠깐 말을 끊고 모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모례의 눈과 입에는 어느덧 경멸의 빛이 줄어졌다. 그것을 볼 때에 조신은 만족하고 또 새로운 힘을 얻었다.
 
302
조신은 그리고는 달례와 아이들을 돌아 보았다. 약간 그들에게 마음이 끌렸으나 이제는 도저히 내 것이 아니라고 제 마음을 꽉 누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303
『모례아손, 이 몸이 간 뒤에는 의지할 곳 없는 이것들을 부디 건져 주소사. 굶어 죽지 않도록, 죄인의 자식이라고 천대받지 않토록 부디 돌아 보아 주소사. 그 은혜는 세세 생생에 갚사오리다.』
 
304
할 때에 조신은 얼음같이 식었던 몸이 훈훈하게 온기가 돎을 느꼈다. 그러고 두 눈에서는 따뜻한 눈물이 막을 수 없이 흘러 내렸다.
 
305
달례도 달보고도 모두 더욱 느껴워서 울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프지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슬픔이었다.
 
306
모례의 눈도 젖었다. 그가 가만히 눈을 감을 때에 두 줄 눈물이 옥같이 흰 뺨에 흘러 내리는 것을 그는 씻으려고도 아니하였다.
 
307
방안은 고요하였다. 천지도 고요하였다. 한 중생이 바로 깨달아 보리심을 발할 때에는 삼천 대천 세계가 여섯 가지로 흔들리고 지옥의 불길도 일시는 쉬인다고 한다.
 
308
이렇게 고요한 동안에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309
모례는 이윽고 손을 들어 낯에 눈물을 씻고,
 
310
『조신 대사, 잘 알았소. 그렇게 보살의 본심에 돌아오시니 고맙소. 길 잃으면 중생이요 깨달으면 보살이라, 과연 대사는 보살이시오. 나는 지금 대사의 말씀에서 눈물에서 부처님을 뵈왔소. 이 방안에 시방 삼세 제블 보살이 뫼와 겨오심을 뵈왔소. 대사의 가족은 염려 마시오. 내가 다 생각한 바가 있소. 대강 말씀하리다. 아이들은 내가 내 집에 데려다가 내 아들 딸로 기르오리다. 그러고 아이들의 어머닐랑은 내 집에를 오든지, 친정으로 가든지, 또는 달리 원하는 데로 가든지 마음대로 하기로 하는 것이 어떠하오?』
 
311
모례의 관대함을 조신은 찬탄하여 일어나 절하고,
 
312
『은혜 망극하오. 더 무슨 말씀을 이몸이 하오리까?』
 
313
하고 달보고를 돌아보며,
 
314
『달보고야, 이제부터는 이 어른이 네 참 아버지시다. 검보고도 거울보고도 다 이제부터는 모례 아손을 아버지로 모시고 섬겨라. 나는 두텁고개 눈 속에 묻힌 미력이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련다.』
 
315
할 때에는 그래도 목이 메었다. 조신의 눈앞에는 제 몸이 미력의 뒤를 따라 죽음의 어두운 길로 걸어가는 양이 보이고, 평목이가 혀를 빼어 물고 어둠 속에서 불쑥 나오는 양이 보여서 머리가 쭈뼛하였다. 무서워서 어떻게 죽나 하는 생각이 나자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316
이때에 달례가 벽을 향하고 그린 듯이 섰던 몸을 돌려서 오른 무릎을 꿇고 왼편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두 손을 단정히 놓고 앉아 잠깐 모례를 치떠보고 고부슴하게 고개를 숙이며 옥을 굴리는 듯한 목소리로,
 
317
『모례아손마마, 죄 많은 이몸이 무슨 면목으로 마마를 대하며 무슨 염의 로 말씀을 여쭈오리까. 다만 목을 늘여서 죽이시기를 바라는 일밖에 없사오나 당초에 이몸이 조신 대사를 유혹한 것이옵고 조신 대사가 이몸에 먼저 손을 대인 것은 아니오니 그것만은 알아 줍소서. 우리 나라 법에 남편 있는 계집이 딴 남진을 하는 것은 죽일 죄라 하옵고, 또 불의라 하여도 십유여 년 남편이라고 부르던 조신 대사가 이제 이몸 때문에 죽게 된었사온데, 이 몸 혼자 세상에 살아 있을 염치도 없사옵고 또 아손마마께서 자비심을 베프시와서, 저 어린것들을 거두어주신다 하오시니 더우기 황감하올 뿐더러, 죽더라도 마음에 걸리는 일 하나도 없사오며, 또 평생에 남편으로 섬기기를 언약하고도 배반한 이 죄인이, 마지막 길을 떠날 때에 아손마마의 칼에 이 죄 많은 몸을 벗어나면 저 생에서 받는 죄도 가벼울 것 같사오니, 제발 아손의 허리에 차신 칼로 이 목을 베여줍소사.』
 
318
하고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가만히 몸을 앞으로 굽히며 옥과 같이 흰 목을 모례의 앞에 늘인다.
 
319
조신은 달례의 그 말, 그 태도에 감복하였다.
 
320
<달례는 도저히 나 같은 범부의 짝은 아니다. 저 사람이 나와 같이 십여 년을 동거한 것은 무슨 이상한 인연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무슨 장난이다.>
 
321
이렇게 생각하고 한 끝으로는 아깝고 한 끝으로는 부끄럽고 또 한 끝으로는 대견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이 인연도 장난도 꿈도 다 끝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아쉽고 슬펐다. 도저히 이 대견한 인연을 일각이라도 더 늘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면 하염없음을 금할 수 없었다.
 
322
『아아, 그립고도 귀여운 내 달례.』
 
323
하고 조신은 달례의 검은 머리 쪽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324
말 없이 달례의 하소연을 듣고 있던 모례는 눈을 번쩍 뜨며,
 
325
『달례, 잘 생각하였소. 바로 생각하였소. 진실로 내 칼에 죽는 것이 소원이오? 마음에 아무 꺼리낌도 없고 말에 아무 거짓도 없소?』
 
326
하고 달례를 향하여 물었다.
 
327
『천만에 말씀이셔라. 본래 믿지 못할 달례오나 세상을 떠나는 이몸의 마지막 하소연이오니 터럭끝만한 거짓도 없는 것을 고대로 믿어줍소사.』
 
328
하는 달례의 음성에는 조금 떨림이 있었으나 분명하고도 힘이 있었다.
 
329
모례는 벌떡 일어나 한걸음 달례의 앞으로 다가 서며,
 
330
『진정 소원이 그러하거든, 일찍 세세 생생에 부부되기를 언약한 옛정을 생각하여, 이몸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달례의 소원을 이루어드리리다.』
 
331
하고 왼편 손으로 금으로 아로새긴 칼집을 잡고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쥐기 잠시 주저하는 듯하더니, 번개가 번쩍하며 시퍼런 칼날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332
『달례, 눈을 들어 이 칼을 보오.』
 
333
하고 모례는 칼을 한번 춤을 추이니 스르릉하고 칼이 울었다.
 
334
달례는 고개를 들어서 칼을 치어다보았다.
 
335
『칼을 보았소.』
 
336
하고 달례는 다시 고개를 늘인다.
 
337
『칼이 무섭지 아니한가?』
 
338
하는 모례의 말에 달례는,
 
339
『무서울 줄이 있사오리까, 그 칼날이 한 찰나라도 빨리 내 살을 버히는 맛을 보고 싶어이다.』
 
340
하고 그린 듯하였다.
 
341
『모례는 마지막으로 달례에게 수유를 주오. 이 세상에 대한 애착과 모든 인연을 다 끊고 마음이 가장 깨끗하고 고요해진 때에, 인제 죽어도 아무 부족함이 전연 없고 물과 같이 마음이 된 때에 손을 드시오. 그때에 내 칼이 떨어지리다.』
 
342
조신이나 달보고나 다 눈이 둥그래지고 검보고, 거울보고는 달보고의 손을 부여잡고 죽은 듯이 있었다.
 
343
세 번이나 숨을 쉬었을까 하는 동안이 지나간 뒤에 달례는 가볍게 자기 바른손을 들었다.
 
344
번쩍하고 칼날이 빛날 때에는 조신도 달보고도 손으로 눈을 가리고 땅에 엎드려서 한참 아무 소리도 없었다.
 
345
조신은 무서운 광경을 예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놀랐다. 달례의 머리쪽이 썽둥 잘라지고 뒷덜미에 한 치 길이만큼 실오라기만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346
모례의 칼은 벌써 칼집에 있었다.
 
347
조신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 머리쪽을 자른 것은 승이 되란 말이요, 목에 살을 잠깐 베어서 피를 내인 것은 이것으로 죽이는 것을 대신한다는 뜻이었다. 그 어떻게 그렇게 모례의 검술이 용할까 하고 탄복하였다.
 
348
조신은 유쾌하다 할이만큼 가벼운 포승을 지고 잡혀가서 옥에 매인 사람이 되었다.
 
349
중생이 사는 곳에 죄가 있어서 나라이 있는 곳에 옥이 있었다. 왕궁을 지을 때에는 옥도 아니 짓지 못하였다 극락이 있으면 지옥이 있었다. 이것은 모두 중생의 탐욕이 그리는 그림이었다.
 
350
옥은 어느 나라나 어느 고을이나 마찬가지로 어둡고 괴로운 곳이었다. 문은 검고 두껍고 담은 흉 없고 높고 창은 작고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더워서 서늘하거나 따뜻함이 있을 수 없었다. 더할 수 없이 더러운 마음들이 이루는 세계이매, 그같이 더러웠다. 흙바닥은 오줌과 똥과 피와 고름으로 반죽이 되고 그 위에 때묻은 죄인들이 목에는 칼, 손에는 수갑, 발에는 고랑을 차고 미움과 원망과 슬픔과 절망의 숨을 쉬고 있었다. 어둠침침한 속에 허여멀끔한 여인 얼굴과 멀뚱멀뚱한 눈들이 번쩍거렸다. 쿨룩쿨룩 기침소리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속에서 개벽 이래로 몇 천 몇 만의 사람이 죽어나간 것이다. 조신은 이러한 옥 속에 들어온 것이었다.
 
351
옥에서 주는 밥이 맛있고 배부를 리가 없어서 배는 늘 고팠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중에 가장 더럽고 괴로운 데가 옥인 모양으로, 사람이 먹는 것 중에 가장 맛없는 밥이 옥밥이었다. 배는 늘 고팠다. 목은 늘 말랐다. 늘 추웠다. 늘 아팠다. 늘 침침하고 늘 답답하였다.
 
352
그러나 조신은 이속에서 기쁨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이 생활을 수도하는 고행을 삼으려는 갸륵한 결심을 하였다. 조신은 오래 잊어 버렸던 중의 생활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는 일심으로 진언을 외우고 염불을 하였다. 얻어들은 경 구절도 생각하고 참선도 하였다. 이런 것은 과연 큰 효과가 있어서 조신은 날마다 날마다 제 법력이 늘어감을 느꼈다. 그 증거로는 마음이 편안하였다. 다른 죄수들이 다 짜증을 내고 악담을 하고 한숨을 쉬어도 조신은 점점 더 태연할 수가 있었다.
 
353
날마다 죄수는 들고 났다. 어떤 죄수는 끌려 나갔다가 몹시 얻어맞고 늘어져서 다시 피에 젖은 옷에서 비린내를 뿜으면서 들어오기도 하나, 어떤 죄수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지 아니하여서 그 자리가 하루 이틀 비어 있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은 무죄 백방이 되었거나, 죽은 것이라고 다른 죄수들이 생각하고는 그자리를 다시금 돌아보는 것이다.
 
354
새로 들어오는 죄수는 살도 있고 기운도 있었다. 그는 먼저부터 있는 죄수들에게 여러 가지 세상 소식을 전하였다. 이것은 옥 중에서는 가장 큰 낙이었다.
 
355
이 속에 들어오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다름이 없었다. 도적질하고 온 놈, 사람 때리고 온 놈, 또는 조신 모양으로 사람을 죽이고 온 놈, 남의 집에 불 싸놓고 붙들려 온 놈, 계집 때문에 잡힌 놈, 양반 욕보인 죄로 걸린 놈. 이 모양으로 가지 각색 죄명으로 온 놈들이었으나, 한가지 모든 놈에 공통한 것은 저는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람을 죽였지마는, 그런 경우에는 아니 죽일 수 없었다든가, 불을 놓은 것은 사실이나 불 놓인 놈의 소행이 더 나쁘다든가, 이 모양이어서 아무도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조신은 그런 핑계를 들을 때마다 제 죄도 생각해보았다.
 
356
<달례 같은 어여쁜 계집이 와서 매달리니 어떻게 뿌리쳐? 누구는 그런 경우에 가만 둘까. 평목이 놈이 무리한 소리로 위협을 하니 어떻게 가만 두어? 누구는 그놈을 안 죽여 버릴 테야?>
 
357
이 모양으로 생각하면 조신은 아무 죄도 없는 것 같았다.
 
358
<아뿔사!>
 
359
하고 조신은 흠칫하였다.―
 
360
<평목이 놈이 나 없는 틈에 내 딸에게 아니 내 아내에게 무례한 짓을 하려 했기 때문에 그놈을 죽였다고 했다면 고만 아냐? 분해, 분해!>
 
361
조신은 제가 대답 잘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362
<괜히 모두 불었다. 모례놈헌테 속았다.>
 
363
이렇게 생각한 조신에게는 다시 마음의 평화는 없었다.
 
364
조신은 아직 판결은 아니 받고 있었다. 사실을 활활 다 자복하였건마는, 법의 판정에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가 많았다. 죄인이 자복을 하였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다 믿는 것은 법이 아니다. 평목의 시체를 관원이 검시도 하여야 하고 동네 사람들의 증언도 들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이 사건은 해가 넘어서 조신은 옥에서 한 설을 쉬었다.
 
365
섣달 그믐날 밤 부중 여러 절에서는 딩 딩 묵은 해를 보내는 인경이 울었다. 장방에 조신과 같이 갇힌 수십 명 죄수들이 잠을 못 이루고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것이 등잔불 빛에 번쩍번쩍하였다. 그들은 모두 집을 생각하고 처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벽 틈으로는 찬바람이 휘휘 들어오고 바깥에서는 아마 눈보라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쓰윽쓰윽하고 바다의 물결소리 모양으로 들렸다.
 
366
조신은 한 소리도 아니 놓치려는 듯이 인경소리를 세고 있었다. 마침내 잉잉 하는 울림을 남기고 인경소리도 그쳤다. 방 어느 구석에선가 훌적훌적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367
인경 소리에 가라앉았던 조신의 마음에는 다시 번뇌의 물결이 출렁거리기를 시작하였다.
 
368
『어, 추워!』
 
369
하고 조신은 이를 악물고 주먹을 한번 불끈 쥐었다.
 
370
『죽기 싫어. 살고 싶어.』
 
371
조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살아날 가망은 없었다. 조신의 눈앞에는 평목의 시신과 바랑이 나뜨고 원과 모례의 얼굴이 나왔다. 증거는 확실하다. 그러고 조신은 세 번 문초에 다 똑바로 자백하였다.
 
372
『왜, 모른다고 뻗대지 못했어? 그렇지 않으면 평목에게 죄를 뒤집어 씨우지를 아니했어? 에익, 고지식한 것!』
 
373
스스로 저를 책망하고 원망하였다.
 
374
한 번뇌에서 문을 열어주면 뭇 번뇌가 뒤따라 들어온다.
 
375
<달례가 보고 싶다.>
 
376
조신은 달례와 같이 살 때에 재미있고 즐겁던 여러 장면을 생각한다. 그 어여쁜 얼굴, 부드러운 살, 따뜻한 애정 이런 것이 모두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또렷또렷이 나타난다. 그때에는 뜨뜻한 방에 금침이 있고 곁에는 달례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있었었다.
 
377
『으응.』
 
378
하고 조신은 저도 모르는 결에 안간힘 쓰는 소리를 내었다.
 
379
<어느 놈이 내게서 달례를 빼앗았니?>
 
380
하고 조신은 소리소리 치고 싶었다.
 
381
조신에게서 달례를 빼앗은 것은 모례인 것만 같았다.
 
382
<이놈아!>
 
383
하고 조신은 모례를 자빠뜨리고 가슴을 타고 앉아서 살멱을 꽉 내려누르고 싶었다.
 
384
이렇게 생각하면 달례는 지금 모례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 같았다. 모례의 칼에 머리 쪽을 잘렸으니 필시 달례는 어느 절에 숨어서 제 복을 빌어주려니 하고 생각하던 것이 어리석은 것 같았다.
 
385
<그렇다. 달례는 지금 모례의 집에 있다. 분명 모례의 집 안방에 있다. 달례는 곱게 단장을 하고 모례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
 
386
조신의 눈에는 겹겹으로 수병풍을 두른 모례집 안방이 나오고 그 속에 모례와 달례가 주고받는 사랑의 광경이 환히 보였다.
 
387
조신의 코에서는 불길같이 뜨거운 숨이 소리를 내이고 내뿜었다. 조신의 혼은 시퍼런 칼을 들고 모례의 집으로 달렸다. 쾅쾅 모례집 대문을 부서져라 하고 두드렸다. 개가 콩콩 짖었다. 대문은 아니 열리매, 훌쩍 담을 뛰어 넘었다. 모례집 안방 문을 와지끈하고 발길로 차서 깨뜨렸다. 모례는 칼을 빼어들고 마주나오고 달례는 몸을 옴추리고 울었다.―조신은 꿈인지 생신지 몰랐다.
 
388
<아아, 무서운 질투의 불길. 천하의 무서운 것 중에 가장 무서운 것!>
 
389
조신은 무서운 꿈을 깬듯이 치를 떨었다. 못한다, 이것이 옥중이 아니냐. 두 발은 고랑에 끼어 있고 두 손은 수갑에 잠겨 있다. 꿈은 나갈지언정 몸은 못 나간다.
 
390
조신은 옥을 깨뜨리고라도 한번 더 세상에 나가보고 싶었다. 다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달례가 모례의 집에 있나 없나 그것이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날을 두고 백방으로 생각하여도 그것은 되지 않을 일이었다. 한방에 혼자 있더라도 해볼 만하고 또 죽을 죄인들끼리만 한방에 모여 있더라도 무슨 도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죄 무거운 사람, 가벼운 사람 뒤섞여서 둘씩 셋씩 한 고랑을 채와놓고 그런 사람을 열 간통 장방에 수십 명이나 몰아넣었으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391
조신은 모든 것을 단념하고 처음 옥에 들어왔을 때 모양으로 주력과 참선으로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내생 인연이나 지어보려 하였으나 탐애의 질투의 폭풍이 불어 일으키는 마음의 검은 물결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392
대보름도 지나고 지독한 입춘 추위도 다 지난 어떤 날 조신은 장방에서 끌려 나갔다. 왁살스러운 옥사장이 한 손으로 조신의 상투를 잡고 한 손으로 덜미를 짚어서 발이 땅에 닿기가 어렵게 몰아쳤다. 조신은 오늘 또 무슨 문초를 하는가 보다. 이번에는 한번 버티어보자 하고 기운을 내었다.
 
393
그러나 조신은 관정(官庭)으로 가는 것이 아님을 알고 발을 멈추며,
 
394
『관정으로 안 들어가고 어디로 가는 거요?』
 
395
하고 물었다.
 
396
옥사장은 조신의 꽁무니를 무릎으로 퍽 차며,
 
397
『어디는 어디야 수급대 터로 품삯 타러 가지. 잔말 말고 어서 가.』
 
398
하고 더 사정없이 덜미를 누르고 머리채를 나꾸 챈다.
 
399
『품삯이 무에요?』
 
400
조신은 그래도 묻는다.
 
401
『아따 한세상 수구한 품삯 몰라, 잘했다는 상금 말야.』
 
402
하고 옥사장은 또 한 번 아까보다 더 세게 항문께를 무릎으로 치받으니 눈에 불이 번쩍 나고 조신의 몸뚱이가 한번 공중에 떴다가 떨어진다.
 
403
『아이쿠, 좀 인정을 두어주우.』
 
404
하고 조신은 끌려간다.
 
405
다른 옥사장 하나가,
 
406
『이 놈아, 그렇게도 가는 데가 알고 싶어? 이 놈아, 양반 댁 유부녀 후려내고 사람 죽였으면 마지막 가는 데가 어딘지 알 것 아냐. 그래도 모르겠거든 바로 일러줄까! 닭 채다가 붙들린 족제비 모양으로, 부엌 모퉁이 응달에 시래기 타래 모양으로 매어다는 데 말야, 여기를 이렇게.』
 
407
하고 손길을 쫙 펴서 조신의 모가지를 엄지가락과 손길 새에 꽉 끼고 힘껏 툭 턱을 치받치니 조신은 고개가 잣혀지며 아래윗니가 떡하고 마주친다. 그 것이 우스워서 조신을 잡아가는 옥졸들이 하하하고 앙천 대소한다.
 
408
조신은 이제야 분명히 제가 가는 곳을 알았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끌리기 싫다는 송아지 모양으로 두 발을 버티고 허릿심을 쑥 빼어 버리니 조신의 몸뚱이가 옥사장의 손에 잡힌 머리채에 디롱디롱 달렸다가 옥사장의 팔에 힘이 빠지니 땅바닥에 엉치가 퍽 떨어진다.
 
409
『안 갈 테야? 이럴 테야? 난장을 맞고야 일어날 테야!』
 
410
하고 옥사장들은 허리에 찼던 철편을 굴러 조신의 등덜미를 후려 갈기며 끊어져라 빠져라 하고 끄대기를 나꾸챈다.
 
411
『아이구구.』
 
412
하고 조신은 일어선다.
 
413
벌써 형장이 가까운 모양이어서 조신의 두리번 거리는 눈에는 사람들이 보였다. 옥사장이 덜미를 덮어 눌러서 몸이 기억자로 굽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은 잘 안 보이고 아랫도리만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달례가 보이지나 아니하나 하고 연해 눈을 좌우로 굴렸다. 조신의 눈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달례인 것 같기도 하였으나 정말 달례는 보지 못하였다.
 
414
조신은 마침내 보고 싶은 달례도 보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눈을 싸매고, 뒷짐을 지고, 목에 올가미를 쓰고 매어 달려서 다리를 버둥버둥 하였다.
 
415
『살려 주오, 살려 주오.』
 
416
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제 귀에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
 
417
숨이 꼭 막혀서 답답하였다. 차차 정신이 흐려졌다.
 
418
『무서워서 어떻게 죽나. 죽은 뒤에 무엇이 있나?』
 
419
하고 조신은 관세음 보살을 염하면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420
『아이고, 나는 죽네, 관세음 보살.』
 
421
그리고는 조신은 정신이 아뜩하였다.
 
422
얼마를 지났는지,
 
423
『조신아, 이놈아, 조신아.』
 
424
하고 꽁무니를 누가 차는 것을 조신은 감각하였다.
 
425
조신은 눈을 번쩍 떴다.
 
426
선잠을 깬 눈앞에는 낙산사 관음상이 빙그레 웃으시고, 고개를 돌리니 용선 노장이 턱춤을 추이면서 웃고 있었다.
 
427
―끝―
 
428
(조신은 이때부터 일심으로 수도하여서 낙산사성이라는 네 명승 중에 한 분 인 조신 대사가 되었다.)
【원문】세째권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여러분의 댓글이 지식지도를 만듭니다. 글쓰기
〔소설〕
▪ 분류 : 근/현대 소설
▪ 최근 3개월 조회수 : 91
- 전체 순위 : 739 위 (2 등급)
- 분류 순위 : 104 위 / 882 작품
지식지도 보기
내서재 추천 : 0
▣ 함께 읽은 작품
(최근일주일간)
• (5) 날개
▣ 참조 지식지도
▣ 기본 정보
◈ 기본
  # [제목]
 
  이광수(李光洙) [저자]
 
  1939년 [발표]
 
  소설(小說) [분류]
 
◈ 참조
  꿈(夢)
 
 
 
  # 조신
 
▣ 참조 정보 (쪽별)
백과 참조
목록 참조
외부 참조

  지식놀이터 :: 원문/전문 > 문학 > 한국문학 > 근/현대 소설 카탈로그   목차 (총 : 3권)     이전 3권 ▶마지막 한글 
◈ 꿈 ◈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 : 2021년 10월 07일